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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와 3.1정신초막절을 지킬것이요

by 【고동엽】 2021. 10. 16.

본문 요8:31-36
설삼용목사설교자료 중에서

1919년 3월 1 일 독립만세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3.1독립만세 운동과 8.15해방을 비교해 볼 때 3.1운동은 실패로 돌아갔고 8.15는 해방이 되었으니 8.15가 더 가치가 있다고 판단할지 모르나 3.1운동이 더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3.1정신이라는 말은 자주 들었으나 8.15정신이라는 말은 없는 것만 보아도 3.1정신이 우리 민족의식에 끼친 영향은 실로 지대한 것입니다.

우시노꾸 전 주한일본대사가 말했듯이 "한국은 1945년 8웜 15일에 독립이 아닌 다만 해방되었을 따름이다."라고 한 말은 한국과 일본이 1:1의 호각관계를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을 천명한 것이었습니다. 일본이 태평양 전쟁에서 패망한 결과, 한국은 어부지리로 독립이 아닌 해방을 맞이한 것이지 한국이 독립전쟁을 하여 쟁취한 것이 아니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와 반면에 3.1운동은 비록 실패로 돌아갔으나 고귀한 피를 흘리고 무력 앞에 맨주먹으로 항쟁한 불후의 금자탑을 우리 민족역사 앞에 이룩했던 것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우리가 즐겨쓰는 3.1정신이 과연 무엇인지를 아는 백성들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이제 3.1운동을 기독교의 구속사적인 관점에서 볼 때 대체로 세 가지로 3.1정신을 요약할 수 있습니다.
1. 출애굽정신

기독교를 한마디로 표현할 때 출애굽(Free from Egypt) 사상이라고 합니다. 출애굽을 엑소더스라고 하는데 이 말은 엑스(~로부터)와 호도스(길)의 합성어이므로 '길로부터 벗어난다'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즉, 애굽의 사슬을 벗어나서 자유를 쟁취한 이스라엘의 역사를 출애굽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그 밖에도 새 술을 새 부대에 넣으라고 한다든지, 낡은 시대가 지나가고 새 시대가 도래한다고 한다든지, 묵시록에 나오는 새 하늘과 새 땅, 그리고 새 예루살렘이 완성의 종말에 이루어진다고 하는 것은 모두가 다 출애굽사상과 직결되고 있으므로 기독교문화는 탈출문화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출애굽 사상에 뿌리박은 기독교인들의 종교적인 열정은 곧 민족 의식으로 연결되고, 이 민족의식은 드디어 자기 생명을 초개와 같이 내던질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 한 예로 3.1운동의 민족 대표자 33명중의 한 분이 셨던 길선주 목사는 민족대표 서명에 쓰라고 자기 도장을 선뜻 내어 맡기고 사경회를 인도하러 갔다고 합니다. 죽는 일에 선뜻 도장을 내어줄 사람이 요즈음 어디에 있겠습니까? 우리는 3.1운동에 이처럼 생명을 내던진 사람들을 얼마든지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여기에서 나타난 뚜렷한 흔적인 민족의식은 곧 신앙의식과 밀착되어 나타난 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덴마크의 갱생도 그룬트비그 목사가 주도하여 민족의식을 신앙의식으로 승화시킨 결과였던 것입니다. 3.1운동은 우리 나라 역사 속에서 유일하게 민족의식과 신앙의식이 결부된 것이었습니다. 그러한 점에서 3.1운동은 출애굽정신의 유일한 쾌거요, 불후의 금자탑입니다. 기독교를 서양종교 운운하며 고유한 민족의식에 깊은 상처를 주었다는 비판은 근거 없이 악의에 찬 낭설에 불과한 것입니다. 오히려 기독교인이 되어서 조국을 사랑하고 유구한 민족문화 창달에 기여한 것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요, 그 증거가 바로 3.1운동이었습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그 증거를 포착하면 YMCA를 거점으로 한 한국기독청년의 독립운동사를 살펴보면 가히 기독청년과 독립운동의 깊은 함수관계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 누구도 이 거사를 꿈꾸기 전에, 한국기독청년들은 독립운동을 비밀리에 계획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1919년 1월 26일 연희전문의 김원벽, 보성전문의 강기덕, 전수학교의 윤자영, 세브란스의전의 이용설, 공업전문의 주종의, 경성의전의 김형기 등 8명이 관수동 대관원에 모여 YMCA 간사였던 박희도의 주재로 회의를 열어 독립선언서는 2월 20일까지 연희전문 출신의 주익이 기초하고 학생들은 세포조직을 하며, 선교사를 통하여 조선독립운동을 전 세계에 알리기로 결정을 했던 것입니다. 바로 이때 기독교의 이승훈 장로가 천도교의 손병희와 불교의 한용운을 만나 전 민족적 거사를 합의한 뒤 박희도를 찾아 기독청년의 독립운동을 양보하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청년들은 독자적인 거사를 완강하게 고집하였던 것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이때 선언서가 인쇄 중에 있었고, 모든 준비가 완료되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승훈 장로의 중재 결과 기독청년들은 전 민족적 거사라는 명분 아래 모이기로 결정하고, 2월 24일 승동교회 뒷뜰에서 준비된 선언서를 흐르는 눈물과 함께 한 장도 남김없이 다 불태우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 얼마나 영웅적인 모습입니까? 기독교가 이 땅에 상륙한 지 30여 년에 불과했지만 민족을 출애굽하기 위해서 남몰래 죽을 결심을 하였고, 또 다시 민족 대동단결의 기치 아래 99%까지 추진되었던 계획마저 포기할 수 있었던 그 결단성은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2. 남은 자 정신
독립선언서 공약 제 3장의 두 번째 나오는 내용에 "최후의 일인까지, 최후 의 일각까지 민족의 정당한 의사를 쾌히 발표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여기에 남은 자(remnant) 사상이 엿보이고 있습니다. 영적으로 살려는 소수의 무리 (spiritually minded minority)를 남은 자(remnant)라고 합니다. 이 말이 곧 이사야서의 중심사상인데 이스라엘 백성이 포로되어 이역만리에서 차례대로 죽어가도 최후의 남은 자가 돌아와서 이스라엘을 재건하리라는 희망에서 출발하여 마침 내 이새의 그루터기에서 메시야가 태어나 이스라엘을 회복할 것이라는 이스라 엘 신앙의 대명사가 된 단어가 바로 remnant입니다. 어느 나라든지 이러한 창조적인 소수(creative minority)가 없는 나라는 망하고 마는 법입니다.

3.1운동에 있어서 이 창조적인 소수가 과연 누구였습니까? 그것이 바로 종교인이었습니다. 최후의 일인까지, 최후의 일각까지 민족의 마지막 보루요, 전위대 역할을 감당한 자가 바로 종교인이었습니다. 일본 경찰은 언론을 말살하고, 각급 사회단체를 폐쇄하고, 교육기관을 탄압하여 필봉은 꺾고, 입은 봉하며, 고관들은 일본의 작위와 재산을 부여받아 부귀영화를 누리며 매국노가 되어 버리던 그 시대에 최후의 조직이요, 마지막 보루였던 종교계급을 하나님께서 들어 쓰신 것이었습니다.

어느 시대든지 전체주의가 극성을 부리면 언론을 봉쇄하고, 대학교수를 벙어리를 만들고, 학교를 문닫아 버립니다. 그러나 교회마저 문닫는 날이면 그 사회는 최후 거점을 상실하고 마는 것입니다. 히틀러가 독일을 다스릴 때 그래도 교회만은 그 입을 봉할 수가 없었던 것처럼 3.1운동은 종교인으로 하여금 민족의식의 전위대 역할을 감당하게 하였던 것입니다. 제 1선이 무너지면 제 2선으로 대신하기 위하여 함태영, 송진우, 현상윤, 김성수 등으로 후진그룹을 형성시켜 투옥자들을 뒷바라지하게 한 용의주도한 계획은 실로 남은 자 사상의 멋진 작품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3. 부활정신
독립선언서에는 부활정신이 다음과 같이 나타나 있습니다.
"동빙한설에 호흡을 폐칩한 것이 피 일시의 세라 하면 화풍난양에 기액을 진서함은 차 일시의 세이니 천지의 기운에 제하고 세계의 변조를 승한 오인은 아무 주저할 것 없으며 아무 기탄 할 것 없도다. 남녀노소 없이 음울한 고소에서 활발히 기해하여 만휘군상으로 더불어 흔쾌한 부활을 성수하게 되도다." 이상과 같은 내용은 문자 그대로 부활정신이었습니다.
1910년 일본 제국주의는 이 땅을 송두리째 삼키면서 착취의 손길을 폈습니다. 마치 예수의 무덤을 돌로 막고 로마 군인으로 하여금 불의의 사고를 방지하기 위하여 철야 감시했던 것처럼 일본제국주의는 30여 세밖에 안 된 이 땅의 기독교를 완전 매장하고 인봉을 하고 철야감시 했지만 인간적인 수단 방법으로는 이를 저지하거나 억제하지 못하였습니다. 정의가 불의 앞에 영원히 말살될 수가 없으며, 사랑이 권력으로 유전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민족의 공존동생권이 침략주의의 제물이 될 수가 없는 법입니다. 태양이 솟으면 새벽의 어두움이 사라지고, 봄이 오면 꽃은 피어나기 마련입니다. 불의와 불법으로 삶의 도구를 삼는 인간들이 3월 1일 정오에 여지없이 무너져 버린 것입니다. 서슬이 시퍼런 제국주의의 칼날을 향해 추풍낙엽처럼 쓰러지며 ‘대한독립만세'를 부르짖던 선열들의 고귀한 피는 그들이 이러한 부활정신이 있었기에 그렇게 강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죽음 저편의 부활의 세계를 분명히 보았기에 그렇게 죽을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죽음을 초월한 사람들이 아니고는 그렇게 용감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부활정신은 죽음에서의 해방을 뜻합니다. 죽음이라는 것은 우리의 신체 밖에서도 허다합니다. 자신의 가능성을 묻어 두고 있는 것도 일종의 죽음입니다. 민족의식이 잠자고 있는 것은 분명히 죽음입니다. 민족의 주체성을 확립하지 못하는 것도 죽음입니다. 기독교인들이 부활이라는 존재양태를 상실하고있는 것도 죽음입니다. 성장하지 못하고 정체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도 죽음입니다. 우리를 속박하고 있는 제국주의의 낡은 체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죽음입니다.

3.1운동의 부활정신은 이러한 민족적 죽음에서 깨어나고자 하는 요인이 내포되어 있는 것입니다. 일본제국주의 집권자가 죽음만을 생산하고 있는 그 모든 진상을 폭로시켜 버리는 것이 3.1운동입니다. 또한 모든 사악한 인위적인 제도와 부패하고 음흉한 체제와 못 되고 악한 이데올로기가 결정적인 심판을 받게 되는 것이 바로 3.1운동의 부활정신입니다.

이제 우리는 3.1운동의 세 가지 기본정신을 살려서 보다 나은 차원으로 나라의 기초를 다지고 보다 나은 삶을 추구하는 정신자세를 가져야 할 것입니다. 우리를 속박하는 낡은 체제로부터 벗어나려는 출애굽정신을 살려야 하겠습니다. 또한 최후의 일인까지, 최후의 일각까지 자기 책임을 다하는 남은 자의 정신을 우리들의 삶의 현장에서 구체적으로 표현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보다 나은 시대로 부활하고자 하는 3.1정신을 계승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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