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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2,922편)〓/소망 설교

몬1:1-7 포용하는 자

by 【고동엽】 2021. 9.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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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1:1-7 포용하는 자
빌레몬서1:1-7까지 말씀으로 포용하는 자라는 제목으로 같이 생각해 보겠습니다.


사람의 갈등은 자기편에서 보기 때문에 생깁니다.
올빼미는 다른 사람이 전부 자는 밤이 편합니다. 잘 보인다고 합니다.
개구리는 연못이 자기 운동장입니다.
두더지는 땅속이 자기 집입니다. 땅속에 어떻게 살까? 아닙니다.
두더지는 땅속에 살아야 편합니다.
지렁이는 거적대기 밑에 들어가 있습니다. 거기가 지렁이 집입니다.
올빼미나 개구리나 지렁이나 두더지는 그 입장에서 보지 않으면 절대로 그걸 이해하지 못합니다. 사람은 물속에도 안있고, 땅 속에도 안있습니다.
거적대기 밑에도 안들어가 있습니다. 밖에 나와 있습니다.
밖에 나와 있는 사람은 두더지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올빼미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두더지나 올빼미나 개구리나 지렁이의 입장에서 보면 그건 금방 이해가 됩니다.
사람도 내 형편속에서 내 입장 같고 다른 사람을 보면 이해가 절대로 이해가 안됩니다.
그러나 그렇게는 안됩니다. 포용을 하려고 하면 그렇게 하면 안되고
상대방 입장에서 나를 볼 수 있는 눈이 떠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빌레몬과 오네시모에 대한 말씀입니다.
빌레몬은 집주인이고 아주 부자입니다. 오네시모는 거기에 종이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빌레몬에게 편지를 합니다.
뭐라고 편지를 하냐면 오네시모는 빌레몬의 종으로 있다가 거기서 무엇인가를 도둑질해갔습니다. 그리고는 거기서 도망을 쳐 나왔습니다.
도망쳐 나와서 이제는 잡혀서 감옥 속에 들어있는 바울을 만난 겁니다.
그래서 바울을 만나고 완전히 오네시모가 뒤집어 졌습니다.
그러고 나서 주인인 빌레몬에게 편지를 하는 내용이 이 빌레몬서 1장 전체 내용입니다.
옛날에는 성가시게 했던 사람이지만 지금은 아니라는 겁니다.
옛날에는 도둑놈이었지만 이제는 아니라는 겁니다.
옛날에는 정말 힘들게 한 사람이었지만 지금은 아니고 완전히 변했다.
그러니까 포용을 해줘라.
바울이 그러면서 하는 얘기가 너도 나에게 빚졌지 않느냐 나는 얘기하지 않겠다.
그러면서 바울은 어마어마한 얘기를 합니다. 빌레몬 네가 나에게 빚졌으니까
너도 빚진 사람을 용서해 주라는 겁니다.


본문에서 빌레몬이 바울에게 어떻게 빚졌냐면
우리의 사랑받는 자요 동역자인 빌레몬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또 뭐라고 얘기하냐면 내가 항상 하나님께 감사한다.
왜 감사하냐면 성도에 대한 네 사랑과 믿음이 있다는 것을 내가 늘 들어서 감사하며
늘 내가 기도했다. 네 믿음의 교제가 선을 알게 하고,
그리스도께 역사하도록 그리스도게 영광을 돌리도록 역사한다고 얘기하면서
성도들이 너로 말미암아 평안을 얻었다.
너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많은 기쁨과 위로를 얻었다.
그렇게 얘기하면서 바울이 빌레몬에게 포용하라고 하려고 먼저 빌레몬을 높이 올리면서 하는 내용의 얘기입니다.
바로 빌레몬에게 오네시모를 포용해 주라고요.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는 어떻게 하며 포용해야 될 것인가 하는 것을 우리가 보겠습니다.
1-2절 보겠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바울과 및 형제 디모데는 우리의 사랑을 받는 자요, 동역자인 빌레몬과 및 자매 압비아와 및 우리와 함께 군사 된 아킵보와 네 집에 있는 교회에게 편지하노니
제일 먼저 포용하는 자 첫 번째는 인정받을 만큼 일꾼으로 헌신하며 포용하는 자가 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 여기서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를 위하여 갇힌 자가 된 자기 바울이라고 얘기하면서 빌레몬을 뭐라고 얘기하냐면 우리의 사랑받는자 라고 얘기합니다.
그 다음에 동역자 그렇게 얘기합니다.
사랑받는자 그러면 빌레몬이 무엇인가 이쁜 짓을 했다는 겁니다.
빌레몬은 원래 부자입니다.
빌레몬은 바울의 전도여행때 에베소 두란노 서원에서 복음을 들었지 않느냐 봅니다.
그래서 그 집을 통해서 교회가 세워졌던 사람이 빌레몬입니다.
그래서 이 빌레몬이 바울에게는 어떻게 비쳐졌냐면 우리의 사랑을 받는자라고 비쳐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동역자라고 하는 것은 같이 일하는 사람입니다.
목표가 똑같고 관점이 똑같은 사람이 동역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빌레몬을 볼 때 바울의 사랑을 받는자 성도들의 사랑을 받는 자요
또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같이 열심히 힘을 합해서 일하는 사람 빌레몬이라고 얘기하면서
바로 그 빌레몬이 오네시모를 받아줄 것을 포용해 줄 것을 여기다가 설명하려고 1절2절에
제일 먼저 우리의 사랑받는 자요 동역자인 빌레몬이라고 말하고 있듯이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바울에게 인정받고 열심히 일했던 사람이 이 빌레몬이듯이
우리도 하나님과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을 만큼
우리는 하나님의 일꾼으로서 헌신하며 다른 사람이 혹시라도 우리에게 걸림돌이 된다든지,
다른 사람이 나를 성가시게 한다든지 해도 우리는 빌레몬같이 인정받을 만큼 일꾼으로 헌신해서 다른 사람을 포용해 주는 사람이 돼야 될 것을 얘기해 주고 있습니다.
포용이라고 하는 것은 보듬어 주는 것입니다.
인정받을 만큼 일꾼으로 헌신하며 다른 사람을 보듬어 주라는 것입니다.
저 어려서는 버스도 많이 없었고 아스팔트로 시내외에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고향에서 완전히 큰 시내로 가려면 20리는 걸어 가야됩니다.
우리동네는 버스는 많이 다녔어요. 그래서 버스를 타고 갑니다.
그런데 의자가 하나만 비어 있어요.
우리어머니랑 나랑 가는데, 그런데 나를 거기다 딱 앉히는 거에요.
버스에 사람이 많으니까 다른 사람이 나를 못 누르도록 요렇게 하고 가시는 거에요.
우리 어머니가. 지금은 돌아 가셨지만 나는 지금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나 편히 앉아 있으라고 하고 어머니는 서서 다른 사람 못오게 막 이렇게 막아요.
저는 그래서 어머니라는 분은 저러신 분이구나 하고 속으로 인정을 했습니다.
항상 인정을 했습니다.


빌레몬도 바울에게 하는 것이나 다른 사람에게 하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 정말로 인정받을 만큼 일꾼으로 헌신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네가 그러니까 빌레몬을 포용해 줘라. 빌레몬은 포용해 줄 수 있어요? 없어요?
내꺼 가지고 도망갔는데. 도망간것만 가지고 생각하면 포용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빌레몬 자신이 받은 은혜를 생각하면 포용할 수 있습니다.
빌레몬은 누구한테 복음을 들었습니까? 바울에게 복음을 들었습니다.


빌레몬은 바울에게 복음에 빚진자입니다. 그러면 자기는 바울에게 복음의 빚진자니
자기에게 물질에 빚진자인 오네시모를 용서하라는 겁니다.
바울이 지금 그런 원리로 여기다가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포용하라고 하기 전에 빌레몬에게 뭐라고 얘기해요
지금 1절에 보면 사랑받는 자요 도 동역자인 빌레몬이다. 그렇게 얘기합니다.


우리도 다른 사람들이 나를 인정할 만큼 일꾼으로 헌신하며 다른 사람을 포용해 줘야 됩니다. 포용이라는 것은 남을 받아주고 이해해 주는 것입니다. 가장 귀한 것입니다. 왜 그렇게 해야 됩니다. 빌레몬이 바울에게 받은 은혜가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하라는 겁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다른 사람이 있기 때문에 내가 있는 겁니다.
부부지간 싸움도 어떻게 싸움니까? 당신이 있기 때문에 내가 있습니다. 라고 하면 싸울까요? 안싸울까요? 안싸우지요. 안싸워요.
당신이 있기 때문에 내가 있다고 하면 당신이 볼 때 높이 올라가잖아요. 그러면 안 싸워요. 그런데 그 사람이 나한테 별로 해준게 없거든요.
나한테 별로 해준게 없어도 상대방을 높여주면 안 싸운다고요.
포용이라는 것은 높여주는 겁니다.
그럴 조건이 안되었는데도 받아주고 높여주고 이해해 주는 겁니다.
지금 오네시모는 빌레몬편에서 보면 도둑놈입니다. 훔쳐갖고 도망간 사람이에요.
그런데 그시대 로마법으로 보면 주인이 죽이려면 죽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바울이 주인의 허락없이 마음대로 오네시모를 써서는 법에 걸립니다.
그래서 빌레몬에게 허락을 받으려고 포용해주라고 얘기를 해주고 있는 겁니다.
어쩝니까 빌레몬 입장에서 보면 포용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포용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빌레몬이 하나님에게 받은 은혜가 크다고 하면 포용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습니다.
아까 서두에 말씀드렸습니다. 두더지 입장에서 보지 않으면 두더지를 이해 할 수 없습니다.
아니 왜 답답하게 입으로 땅을 파냐 파기를. 왜 거기서 답답하게 거기서 사냐.
환한데 나와서 살아야지. 그런데 그것은 두더지에게 물어 봐야돼요.
두더지는 나는 거기는 환해서 못살아요. 어째요. 누구 말이 맞아요. 다 말이 맞아요.
상대방을 이해하고 포용해 주려면 내가 그쪽 입장이 되어야 이해하고 포용해 줄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나를 인정할 만큼 열심히 일꾼으로 헌신해서 다른 사람을 포용해 줘야 돼요.
그럴때 그 삶을 가치가 있는 겁니다. 그 삶은 너무나 너무나 귀한 겁니다.


빌레몬은 자기집에서 교회를 시작한 사람이에요. 그런 사람이 몇 안되거든요.
그런데 그 중에 한 사람이 빌레몬이에요. 돈이 아무리 많아도 무슨 소용이 있어요.
하나님의 일에 온전히 다 써버린 사람이 빌레몬입니다.
우리도 정말로 이렇게 인정받을 만큼 일꾼으로 헌신하며
다른 사람을 포용하는 사람이 돼야 됩니다.


고전15:58절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헛되지 않기 때문에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주의 일에 힘쓰는 자들이 되라고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인정받을 만큼 열심히 일꾼으로 헌신하며
다른 사람을 포용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됩니다.




모세를 보면 출애굽여정 가운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모세가 시내산에 돌판을 받으려고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빨리 안 내려오니까 아론과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춤추고 있어요.
금송아지가 자기들을 여기까지 인도했다는 거죠. 하나님은 역사하지 않으니까 다 버려버리고 그러다가 모세가 돌판을 갖고 내려왔습니다. 그걸 보고 돌판을 던져버렸습니다.
돌판은 깨져버렸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이 그런다고 하면서 안올라 가신다고 하십니다.
그러니까 모세가 계속해서 그들을 용서해 주라고 이스라엘 백성을 용서해 주라고
계속 얘기하니까 하나님이 돌판을 다시 써줍니다.


모세입장으로 보면 꼴보고 싫고, 너무 보기도 싫어 얼마나 힘들게 해요.
조금 가면 물없다고 불평하고, 조금가면 먹을 거 없다고
계속 불평하는 백성들을 모세는 어쩝니까. 보듬어 줍니다.
그 아픔가운데서도 그렇게 쭉 끌어가니까 너무나 열심히 일을 했거든요.
다른 사람에게 많은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러면서 자기가 맡은 그 일들을 잘 감당하는 그런 포용하는 모세였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모세를 뭐라고 얘기합니까? 충성된자다 온유한자다 그렇게 말합니다. 온유하다는 말이 바로 포용과 같은 의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가시게 해도 품어줬던 겁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른사람에게 인정받을 만큼 열심히 일꾼으로 헌신하며,
다른 사람을 포용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인정받을 만큼 포용해 줘라 그 말입니다.


두 번째 4-5절입니다.
내가 항상 내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에 너를 말함은 주 예수와 및 모든 성도에 대한 네 사랑과 믿음이 있음을 들음이니
두 번째는 감사할 만큼 믿음을 보여주며 포용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4절부터 보면 내가 항상 내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에 너희를 말하는데
왜그러느냐면 예수와 모든 성도에 대한 네 사랑과 믿음이 있음을 들었기 때문에 늘 감사하며 기도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빌레몬이 우리주님과 성도에 대한 사랑과 믿음이 있음을 들어서
내가 늘 지금도 감사하고 기도한다고 말하고 있듯이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른사람이 나에게 감사할 만큼 믿음을 보여주며 포용하는 사람이 돼야 됩니다.
포용! 포용은 누가 포용을 하는 겁니까? 위에 사람이요, 형편이 괜찮은 사람이요,
더 넓은 사람이 포용을 하는 겁니다. 오네시모가 빌레몬을 포용합니까? 아닙니다.
주인인 빌레몬이 종인 오네시모를 포용하는 겁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포용한다고 하는 것 너무나 귀한 것입니다.
우리는 정말로 다른 사람이 너무나 고맙고 감사합니다 라고 할만큼
우리는 포용하는 그래서 믿음을 보여주는 그런 사람이 돼야 됩니다.
지금 여기에 있는 빌레몬은 다른 사람들이 너무나 고맙고 감사하다고 얘기하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그것을 에바브라 편에 바울이 들은 겁니다.
거기에 골로새 교회 목회자가 에바브라거든요.
에바브라편에 들어서 그걸 가지고 빌레몬을 칭찬하고 있습니다.
내가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고 내가 너를 위해 기도한다.
왜냐하면 예수와 모든 성도에 대한 네 사랑과 믿음이 있음을 들었기 때문에 그렇다는 겁니다.




그 다음에 또 6절에는
네 믿음의 교제가 우리 가운데 있는 선을 알게 하고 그리스도께 미치도록
그리스도께 미치도록 그 말은 영광되도록 그 말입니다.
그리스도께 영광되도록 역사했다. 네 믿음의 교제가 선을 알게 하고
그리스도께 영광되도록 그렇게 만들었다. 이렇게 바울은 빌레몬을 칭찬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이 나에게 감사할 만큼 포용하는
그런 믿음을 보여는 우리 모두가 되야 될 줄 믿습니다.
디모데 전서 6장 17-18을 보세요.
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 (했습니다.)


우리는 항상 나눠주기를 좋아하고 동정하는 자가 되는 것 이것이 좋은 터를 쌓고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라고 18-19절에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볼 때 다른 사람이 감사할 만큼 너무나 고마워 할 만큼
우리는 믿음을 보여주며 포용해 주는 사람이 돼야 됩니다.


요나단이라고 하는 사람은 다윗을 포용한 사람입니다.
요나단은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 할 때마다 항상 다윗에게 알려줬던 사람입니다.
요나단은 사울의 아들로서 얼마든지 다음 왕으로서 일들을 준비할 수도 있고
다윗이 미워서 사울편에 서서 일할 수도 있는 사람이지만,
요나단은 절대 사울편에 서지 않고 다윗편에 서서 다윗이 놀랄정도록 감사할 만큼
믿음을 보여주며 위험을 무릅쓰며 다윗을 포용하는 것을 우리는 잘 압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사람이 나를 생각할 때 너무나 고맙고 감사하다고 그것을 느낄 만큼 내가 포용해 줘서, 믿음을 보여주는 사람이 돼야 됩니다.
그래야 사는 가치가 있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사는 가치는 우리한테 있는게 아니라
다른사람이 나를 보는 눈에 있습니다.
나의 삶의 가치는 다른 사람이 평가하는 거지, 하나님이 평가하는 거지 내가 평가 하는게 아닙니다. 다른 사람 가슴이 어떻게 보여지는가 그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다른 사람 가슴에 내가 인정받을 만 합니까? 다른사람 가슴에 내가 정말로 감사할 만 합니까. 우리는 포용할 만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요나단은 얼마든지 다윗을 미워할 수도 있지만 사울한테 미움을 받으면서까지 다윗을 도와줍니다. 다윗이 얼마나 요나단이 감사하겠습니까?
항상 무릎꿇을 때만다 다윗 가슴에 요나단이 있을 겁니다.
요나단이 다윗을 품어주니까 그렇습니다.
우리도 항상 나를 생각할 때 나를 다른 사람이 생각할 때
가슴이 찡하게 남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 사람이 인생의 성공자입니다.
그래서 빌레몬에게 인생의 성공자가 되라고 이렇게 말하기 전에 빌레몬을 칭찬하면서
뒷말을 하려고 여기다가 지금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정말로 네가 한 모든 것 내가 모든 것 들었다.
그것을 생각할 때마다 내가 너무너무 고맙다. 라고 하는 말을
내가 들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세 번째 보겠습니다.
7절 형제여 성도들의 마음이 너로 말미암아 평안함을 얻었으니 내가 너의 사랑으로 많은 기쁨과 위로를 얻었노라.


세 번째는 다른 사람들이 평안을 얻을 만큼
사랑으로 위로해서 포용하는 자가 되야 됩니다.
지금 바울은 빌레몬에게 형제여 성도들의 마음이 너로 말미암아 평안함을 얻었다.
내가 너의 사랑으로 많은 기쁨과 위로를 얻었다.
성도들이 빌레몬을 생각할 때 평안을 얻었다는 겁니다.
그 다음에 그 사랑으로 말미암아 기쁨과 평안을 얻었다는 겁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나하고 만날때마다 항상 편안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사랑으로 위로를 해주고 그래서
다른 사람을 포용해 주는거 너무나 귀하고 가치있다는 겁니다.
우리는 항상 빌레몬에게 바울이 이렇게 부탁하고 있듯이
하나님이 지금 누구에게 부탁하고 있습니까? 나에게 부탁합니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하는 얘기가 너의 마음이 너의 사랑이 나에게 기쁨과 위로를 주었다.
네가 한 모든 사랑의 위로가 나에게 평안함을 주었다 라고 얘기하고 있듯이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나 때문에 다른 사람이 평안함을 얻어야 합니다. 나 때문에 다른 사람이 좋아야 합니다.
그 사람은 너무나 가치 있는 삶을 산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가치있는 삶을 살아야 됩니다.
이 세상 얼마 오래 살지 못합니다.
저도요 애기들을 볼때마다 엊그제 딱지치기하느라고 호주머니에 딱지를 이렇게 넣고 다녔어요. 그때 우리는 돈주고 산 딱지는 비싸서 못사고 종이로 접어서 갖고 다녔어요.
또 우리동네는 케이스가 많았어요. 그때는 전쟁나고 얼마 안돼서 기관총 쏘면 총만 나가고 케이스는 퐁퐁 떨어져요. 그러면 그것을 메고 와서 다 껴서 따먹고 한지가 얼마 안 되는 것 같아요. 엊그제 같은데 지금 세월이 많이 흘렀어요.
저도 인생을 가만히 뒤돌아보면 다른 사람이 나를 생각할 때 어떻게 생각할까?
만약 내가 지금 죽었을 때 다른사람이 에이 잘 죽었다고 말할까?
어떤 사람 가슴에 찡하게 남아있으면서 아~ 그분은 나한테 그렇게 평안함을 주었지.
그분은 내가 생각할 때만다 너무나 고마워. 나는 그분을 인정해 라고 하는 말을 듣고 살아야 합니다. 그보다 더 좋은 말이 어디 있습니까? 그것은 돈으로 해결된 문제가 아닙니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주고, 행동으로 주고, 나를 줬을 때, 그분이 먹고 느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의 가치는 포용에 있습니다.
그래서 나 때문에 평안함을 얻을 만큼 사랑으로 위로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돼야 됩니다.
그래서 포용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야 됩니다.


마태복음5장16절입니다.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우리를 보고 하나님 앞에 영광 돌려 드리라고요. 우리가 빛 된 삶을 살아서요.
산상수훈의 앞부분에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의 빛이라고요.
빛이 가면 훤해지잖아요. 답답한 문제도 빛이 가면 훤해져 버려요. 내가 가면 풀어져요.
엉켰던 것도 내가 가면 풀어져요. 내가 가면 훤해져. 금방 정돈 되어져. 평안해 진다 그말이에요. 근데 네가 가면 엉클러지고 성가시고 문제가 복잡해지면 안되지요.


그러면 포용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우리는 나를 보고
다른 사람이 평안을 얻을 만큼 사랑으로 위로해야 됩니다.


후새라고 하는 사람은 다윗의 모사였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압살롬의 난 때문에 도망가고 있을 때 후새가 좇아 나왔습니다. 또 잇대도 따라나왔습니다.
그럴 때 다윗이 너는 네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합니다.
잇대는 블레셋 사람이거든요. 가드사람입니다. 넌 빨리 들어가라.
다윗 마음에 자기 아들은 자기를 죽이려고 하는데, 도망가서 이제 왕으로 올지 안 올지 모르는 사람에게 잇대가 따라나오지요, 후새가 따라나오지요. 얼마나 맘에 평안함을 얻었겠습니까? 나중에 다윗이 환궁한 후에 후새를 보거나 잇대를 봤을 때
너무나 잘했다고 칭찬했을 거 아니에요.


우리도 마찬가지에요.
우리도 우리의 삶을 통해서 나 때문에 다른 사람이 평안함을 얻은 사람이 성공자입니다.


오늘 말씀을 정돈하겠습니다.
우리는 포용해주는 사람이 돼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나를 인정할 만큼,
다른 사람이 나를 볼 때 감사할만큼,
다른 사람이 나를 볼 때 평안함을 얻을 만큼,
우리는 포용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나를 평가했을 때, 정말로 저분은 나는 저분 때문에 살았어,
나는 저분 때문에 평안을 얻었고, 감사하고, 저분을 나는 인정하고, 자랑하고 싶어 라고 하는
그런 빌레몬과 같이 포용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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