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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풍병자를 일으킨 믿음 (막 2:1-12)
"예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소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마가복음 2:5)
예수님을 만나면 인생의 모든 문제는 해결됩니다. 예수 만남의 자리는 죄의 용서와 생명의 역사와 함께 삶의 변화와 부흥이 있습니다. 인간은 예수님을 만나는데서 삶의 문제와 과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복음서는 예수님과의 만남의 사건을 경험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을 만남으로 경험한 축복의 삶을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의 말씀은 가버나움의 한 중풍병자가 예수님을 만남으로 중풍병의 원인인 죄 사함을 받고 중풍병에서 고침 받은 사건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만남으로 한 인간의 문제가 해결되고 축복된 인생으로 변화됨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문제는 예수님과의 만남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하는 ‘주님 만남의 나의 모습’은 우리의 신앙 삶이 어떤 것인가를 척도 하는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자신에게 질문해야 합니다. “나는 예수님을 어떻게 만나고 있는가? 지금 나는 예수님과 함께 하고 있는가? 예수님과 함께 하는 예수님 만남을 위한 나의 신앙생활은 무엇인가?” 우리는 이러한 질문과 함께 그 질문에 대한 분명한 답을 가지고 있어야 함을 분명히 해야합니다. 우리에게는 예수님과 함께 하는 주님 만남의 신앙인이 되어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과 함께 하는 만남을 방해하는 요소가 있습니다. 그것은 중풍병자와 그의 친구들이 예수님을 만나려고 찾아갈 때에 직면했던 어려움입니다.
그것은 협소성입니다. 중풍병자가 누운 침상을 들고 예수님이 계신 집을 찾았지만 예수님께서 계신 집은 사람들로 가득 차서 문 앞에도 들어설 자리가 없었습니다. 협소한 공간은 예수님을 만나는 어려운 조건이 되었습니다.
인간의 진리에 대한 불신의 고집과 무지함의 편협성은 예수님을 만나는데 장애가 됩니다. 이 세상은 예수님을 만나는 협소한 환경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현대인들은, 복잡한 사회 구조와 문화생활 속에서 바쁘다는 것 때문에 자유롭고 진지하게 생각할 수 없는 좁은 생각과 협소한 마음의 공간 속에 살아가고, 향락과 유흥의 환경 속에서 예수님을 만날 수 없는 협소한 영적 공간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현대인들은 예수님을 만나기가 어렵습니다.
예수님 만나기에 어려운 조건의 또 하나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려는데 집안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 때문에 집에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이들은 구경꾼들이고 예수님을 책잡으려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었습니다.
불신앙적인 사람들의 영향력이 예수님 만남의 역사를 방해하고 있습니다. 형식과 전통에 잠겨 생명 없는 신앙의 삶을 살아가는 무능력한 신앙인들의 가르침과 삶이 예수님을 만나는데 장애적 요인인 것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절망감입니다. 중풍병자와 그들의 친구가 예수님을 만날 수 없다는데서 절망했을 절망감입니다. 아마 이 절망감은 그들로 하여금 예수님 만남의 큰 장애가 되도록 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 없이 살아가는데서 겪는 절망감이 현대인들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없이 절망의 노예로 살아가면서, 그 절망감까지 의식하지 못하며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무서운 절망은 예수님을 만나는데 무서운 장애적 요소입니다.
그러나 성경의 말씀은 예수님 만남의 축복을 우리에게 보도록 하십니다. 그것은, 예수님과의 만남을 만들어내고, 그 예수님으로부터 죄 사함과 함께 중풍병에서 고침 받는 축복을 소유한 중풍병자와 그의 친구들의 믿음입니다. 우리는 그 믿음으로 예수님과 함께 하는 예수님 만남의 축복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 믿음은 무엇입니까?
확신하는 믿음
그들은 예수님에 대한 분명하고도 정확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중풍병자와 네 친구는 왜, 힘들여 예수님을 만나려고 했습니까? 친구들은 왜, 친구의 침상을 메어오고, 또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을 수 있는 지붕을 뜯어내는 일을 했습니까? 그것은 바로 중풍병자가 나을 수 있는 길은 오직 예수님께로 가는 것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그들의 친구의 병을 고쳐주실 수 있는 분으로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우리 복음이 말로만 너희에게 이른 것이 아니라 오직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살전 1:5)이라고 했습니다. 확신하는 믿음은 그리스도의 만남과 함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신앙의 삶을 살게 합니다. 확신하는 신앙의 사람은 살아 계신 주님의 축복을 실현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이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 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엡1:17-19)
확신 있는 신앙을 위해 기도한 것입니다. 확신 속에 주님과 함께 하는 만남을 이루시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함께 하는 믿음
믿음은 개별성의 것이지만 함께 하는 것입니다. 함께 하는 믿음은 주님과 함께 하는 주님 만남의 신앙입니다.
중풍병자와 그 친구들은 함께 했습니다. 친구들의 사랑을 받아 드릴 줄 아는 중풍병자와, 친구를 위하여 사랑을 줄줄 아는 함께 하는 친구들의 믿음이 되었기에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함께 했기에 주님의 축복을 받는 승리하는 믿음이 되었습니다.
바울의 사역은 바울 혼자만의 것이 아닙니다. 바울 곁에는 ‘누가’와 ‘디모데’가 있었고, ‘에바브로디도’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와 같은 사람들이 있었고, 그 밖에도 수많은 기도지원자들과 함께 수고하는 동역자들이 있었습니다. 함께 하는 믿음 속에 주님이 함께 하시는 주님 만남의 역사가 있는 것입니다.
이기적 신앙은 주님으로부터 멀리 있는 믿음입니다. 혼자만이 살아갈 수 없듯이 혼자만의 신앙은 믿음의 역사를 일으킬 수 없습니다. 함께 하는 믿음 속에 주님의 능력과 역사가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함께 하는 믿음으로 주님 만남을 이루십시오.
행동하는 믿음
네 친구는 행동하는 믿음을 보여주었습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행동을 동반하는 것입니다. 행동이 동반되는 것이 되어야 온전한 믿음입니다. 이 말이 결코 믿음 없는 행동을 미화하는 말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믿음이 행동을 만들어 낸다는 것입니다. 행동을 만들어 내는 믿음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중풍병자의 네 친구는 예수님의 능력을 분명히 믿었기에 중풍병자를 예수님께로 데려가는 행동을 보인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이 구원받는 삶임을 확신하는 믿음의 사람이 전도하여 예수님께 데려오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것이 이루어짐을 믿는 사람이 기도하는 것입니다. 천국을 믿는 사람이 천국을 사모하며 사는 것입니다.
예수 구원을 믿는다면서 하나님의 자녀 된 삶을 사지 못한다면 믿음이 아닙니다. 영생과 천국을 믿는다면서 천국을 영생을 사모하며 살지 못한다면 그것은 믿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야고보는 야고보서 2장 14절에서 26절 사이에서 행동한는 믿음에 대하여 말씀했습니다.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예수님께서 계신 집은 많은 사람이 모여들어 문으로 들어가도 나오기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대체로 구경꾼들입니다. 그 중에는 예수님을 책잡으려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들 중에는 안식일에 병든 자를 고쳐주는 것이 옳으냐고 논쟁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이들의 믿음은 행동하지 못하는 믿음입니다. 믿을 수 없기에 행동하지 않는 믿음이었습니다. 이러한 믿음은 중풍병자가 예수님을 만나는 데 장해가 되는 믿음입니다. 중풍병자를 일으킨 믿음은 행동하게 하는 믿음입니다.
포기하지 않는 믿음
중풍병자의 네 친구는 사람들이 많아 중풍병자를 예수님 앞으로 데려갈 수 없자, 지붕위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지붕을 뚫었습니다. 그리고 중풍병자의 침상을 달아 내렸습니다. 그들은 방해와 장애에 직면하여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포기하지 않는 믿음은 장소가 좁아 들어갈 수 없는 협소한 조건을 뛰어넘게 했습니다. 포기하지 않는 믿음은 지붕을 뚫는 모험과 용기 있는 결단을 만들어 냈습니다.
수로보니게 이방여인이 자신의 딸이 귀신들림으로 예수님께 찾아와 울며 부르짖어 고쳐주실 것을 간청했습니다. 예수님은 한 말씀도 하시지 않고 그 간구에 냉담했습니다. 그러나 여인은 포기하지 않고 더욱 간절히 절하며 간청했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여인에게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않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나 여인은 예수님께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마15:27) 예수님은 이 여인에게 “여자여 네 믿음이 크 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고 축복하시며 그 딸을 고쳐주셨습니다. 여인의 큰 믿음은 포기하지 않는 믿음입니다.
우리들의 삶 가운데는 쉽게 포기하기 때문에 쉽게 잃어버리는 귀중하고 값진 일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믿음은 포기하지 않게 하는 역사를 만들어 냅니다. 포기하지 않는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안에서의 축복의 인생을 차지하게 하는 것입니다.
적극적인 믿음(모험하는 믿음)
적극적인 믿음은 주님과 함께 하는 주님 만남의 역사 속에 살게 합니다. 중풍병자의 친구들은 침상을 메고 주님을 찾는 적극성을 보였습니다. 예수님이 계신 집안으로 들어갈 수 없게 되자, 지붕으로 올라가 지붕을 뜯어내고 중풍병자가 누운 침상을 내렸습니다. 이 적극적인 믿음을 보시고 주님은 중풍병자의 죄를 사해주시고 병을 고쳐주셨습니다.
적극적인 믿음은 행동화하고 모험하기를 즐겨하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적극적이기를 원하십니다.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은 적극적 믿음의 삶을 살라는 말씀입니다.
이탈리아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 상상의 아들인 13세의 ‘바비 힐’ 군은 어느 날 아프리카 밀림의 성자 ‘알베르트 슈바이처’ 박사에 관한 책을 잃고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 어린이는 유럽지역 미공군 ‘린제이’ 장군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제가 저금통에 모은 돈으로 산, 아스피린 한 병을 보냅니다. 이 약을 아프리카에 계신 슈바이쳐 박사님의 병원에 낙하산으로 떨어뜨려 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린제이 장군은 이 소년의 편지를 방송국에 보냈고, 방송국에서는 이 갸륵한 사연을 그대로 방송했습니다. 이 방송을 듣고 감동 받은 우럽사람들이 모금과 함께 약품을 보내왔습니다. 결국 40만 달러치의 약품이 모아지고 이탈리아와 프랑스에서 제공한 비행기에 싣고, ‘바비 힐’군 까지 동승시켜 아프리카의 슈바이쳐 박사에게 보내졌습니다. 적극적인 믿음, 모험의 역사를 만들고, 이 역사는 예수님 만남의 축복의 역사를 만드는 것입니다.
사랑의 믿음
형제를 사랑하는 믿음은 큰 믿음입니다. 사랑은 희생과 헌신을 만들어냈습니다. 사랑하는 믿음은 함께 행동하게 하고 적극적이 되게 합니다. 그리고 모험하게 합니다.
중풍병자의 네 친구는 친구를 사랑하기에 친구를 살리기 위해 예수님께로 데리고 가고자 했습니다. 친구들의 사랑은 한 마음이 되어 함께 침상을 들고 갔습니다. 사랑은 지붕위로 올라가는 적극적인 믿음으로 발전시켰습니다. 사랑은 지붕을 뚫는 모험을 하도록 했습니다. 그 사랑은 중풍병자로 하여금, 주님 만남을 만들고, 죄 사함의 역사와 함께, 중풍병자로 하여금 자리를 들고 돌아가는 축복자가 되게 했습니다.
사랑이 없는 하나님 말씀의 율법전문가인 서기관들은 예수님의 죄 사함의 선언에 대해서 시비했습니다. 그들은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7절) 그들의 율법관과 교권의식을 가지고 예수님을 비난했습니다.
사랑 없는 믿음은 심판하고 정죄 하며 비난하기를 즐겨합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믿음은 사람을 살리기를 즐거워합니다. 사랑하는 믿음은 생명의 역사를 창조하는 주님 만남의 믿음입니다.
중풍병자를 살리는 믿음으로 주님 만남의 축복을 가지십시다. 사순절 주님 만남의 축복을 이루는, 중풍병자를 일으킨 믿음의 축복자가 되십시오. 아멘
출처/김성철목사 설교자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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