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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른이해 〓/조직신학I(서철원교수)

서철원-하나님 나라 바른이해

by 【고동엽】 2009. 5. 6.

 

                                             하나님 나라 바른이해

 

 하나님 나라는 성경의 주제이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통치권이 인정되는 나라이다. 하나님 나라의 대행자인 첫 인간이 하나님의 왕권을 반역하여 창조 세계가 타락하자, 하나님은 하나님 나라를 회복하기 위해서 구속의 경륜을 작정하시고 섭리하셔서 사람들의 왕이 되고자 하셨다.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하나님의 통치권, 곧 하나님의 왕권이 인정될 때 하나님은 그 나라를 하나님의 나라로 인정하시고 그 왕과 왕국을 축복하셨다. 하나님의 나라는 인간의 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실현되는 것이므로, 다윗이 간음죄를 지었을 때에도 그의 왕권을 인정해 주심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다윗의 의로 된 것이 아님을 보여주셨다.
 
 
 
때가 되어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속주로 세상에 보내셨다. 예수 그리스의 오심은 하나님 나라의 도래였다.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부터 죽음과 부활까지의 모든 과정은 '하나님 나라 왕'의 오심과 영광스런 통치를 증거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죄인들을 위해 모든 대가를 지불하셨고, 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그 사람의 마음에 하나님이 성령으로 임하셔서 통치하신다. 예수 그리스도는 창조주이실 뿐 아니라 구속주가 되시기 때문에, 언제나 하나님 나라의 왕이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확립하신 하나님 나라는 세상의 나라가 아니라, 죄 용서를 통해 세워지는 나라이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의 확장 역시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될 때 가능하다.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로써 이 땅에 이미 하나님 나라는 임했다. 이루어졌다. 종말에 온전히 완성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믿는 우리의 참 왕이시다. 하나님 나라 백성인 믿는 자들은 왕이신 그리스도의 통치권을 인정해야 하며, 항상 왕이신 그리스도 뜻을 따라 살아야 한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 나라가 확장될 수 있도록 사죄의 복음을 증거하며 온 세상에 그리스도를 전해야 한다. 하나님 나라의 새 백성이 된 자들부터 새 백성에게 주어진 새 법을 따라 새 백성답게 살아갈 때, 비록 죄와의 투쟁이 쉽지 않다 하더라도,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누리는 행복을 얻을 수 있다. 하나님은 믿는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통치가 진정으로 회복되며 '하나님 나라'의 왕권이 인정받기를 원하신다. 그리스도의 왕 되심을 인정하고 그 왕을 전파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일이 믿는 우리에게 맡겨졌다. 이것은 하나님의 선물이요 은혜이다. 하나님 나라의 개념과 의미, 하나님 나라의 확립과 확장 등에 대해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하나님의 나라는 신약성경의 주제이다.


신약의 중심 주제는 '하나님 나라'이다. 예수님의 오심과 세례, 죽으심과 부활은 모두 '하나님 나라'와 관련이 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의미한다. 예수님이 세례 받으신 장면은 왕으로 임명되는 메시야 임직식이었다.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처음으로 선포하신 말씀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였다. 첫 선포 이후에도 예수님이 하신 설교의 중심 주제는 하나님 나라였고, 하나님 나라의 성격을 비유로 말씀하셨다. 예수님이 선포하신 천국 복음을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었다. 예수님이 고난받고 죽으심으로, 믿는 자들을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요 제사장으로 삼으셨다.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 본격적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확립되었다. 성령께서 오셔서 실질적으로 백성들을 소유하시고 다스리기 시작하셨다. 이렇게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져가면서 사단의 나라는 멸해진다.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학자들은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19세기에는 윤리적이고 종교적인 측면을 강조하면서 예수를 연구했다. 릿츌에 의하면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가 설립한 윤리적이고 종교적 공동체였고, 사랑의 법을 실행하기 원하는 모든 사람들로 구성된 공동체였다. 한편, 바이쓰와 그의 후계자 슈바이쳐는 하나님의 나라를 미래적이며 종말론적인 나라로 보았다. 그들에 의하면, 예수는 세상의 끝이 임박하다고 믿었다가 그렇게 되지 않자 비극적인 죽음으로 종말의 새 세계를 도입하려 했다. 이런 견해는 발트와 불트만 등 변증신학자들에 의해 20세기 중반 이후까지 진행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종말에만 임하는 나라가 아니다. 종말에 온전하게 세워지지만 예수의 오심과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 이미 이 세상에 임했고 설립되었다.

 

하나님은 창조 세계가 '하나님의 나라'가 되도록 작정하셨다.


하나님은 직접 창조하신 세계가 자연 그래도 있게 두시지 않고 계발되고 문명화되어 '하나님의 나라'가 되도록 작정하시고 섭리하셨다. 피조물이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공동체가 되기를 바라셨다. 하나님은 창조된 세계가 '하나님의 나라'가 되도록 대행자를 세우시고 그에게 우주의 통치를 위탁하셨다. 하나님이 세우신 대행자는 아담이었다. 하나님은 이 대행자(아담)가 자발적이고 기쁘게 수행하도록 그와 언약을 맺으셨다. 아담은 이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를 설립하려는 하나님의 경륜, 창조의 목표, 운명을 바로 알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 나갔다.

 

하나님은 반역한 세상을 '하나님 나라'로 회복하기 위해 구속 경륜을 시작하셨다.


아담은 하나님 앞에서 순종의 의무를 지닌 언약 당사자의 자리에서 떠났다. 자기 스스로, 하나님처럼 모든 것을 결정하기로 했다. 하나님을 위해서 살지 않고 자기를 위해서 살기로 방향을 전환했다.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라 '자기의 나라'를 세우는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하나님은 아담이 최고 영광의 자리에 세우셨지만, 아담은 은혜를 배반하고 반란을 일으켰다. 이 반란이 '타락'이다. 아담에게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가 임했다. 그는 낙원에서 추방되었다. 영생 대신 사망이 도입되었다. 아담뿐만 아니라 다른 피조물에게도 고통과 악이 발생했다. 창조 세계의 법칙으로 사망이 도입되었다. 인간 세계는 고통과 고난, 후회와 한탄과 탄식이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창조의 그대로 세상을 둘 수 없었다. 하나님은 창조의 경륜을 이루시고자 하셨다. 죄와 사탄의 계교를 이기고 창조가 하나님의 나라가 되도록 하셨다.


타락한 세계가 하나님의 나라가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다시 말해 본격적인 구속 경륜을 집행하기 전에, 몇가지 예방 조치를 하셨다. 창조가 하나님의 과정을 따라 움직이고 보존되도록 하셨는데, 그 때문에 인간의 죄에도 불구하고 창조가 그 존재와 운행을 계속하고 있다. 하나님은 아담의 사형을 연기하시고 그를 통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탄생하여 창조 세계를 탐구하고 계발하도록 하셨다. 좀 더 적극적으로 죄악을 억제하기 위해 정부 제도를 수립하셨다. 정부는 악을 억제하고 죄를 감소시키는 도구로 만들어졌다. 정부는 하나님 나라의 봉사자 역할을 하기 위해 하나님에게서 공권력을 부여받았다. 이처럼 하나님은 창조에서 죄를 완전히 제거하여 창조에 하나님의 영광이 빛나기를 바라셨다.


하나님은 자기의 창조에서 죄를 완전히 제거하여 창조를 자기에게로 회복시키시는 '구속 경륜'을 진행하셨다. 이를 위해 한 민족을 택하셨다. 거기서 구속자가 나게 하셨다. 하나님은 세상의 구속주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인류의 죄 때문에 죽게 하시고, 그리스의 죽으심을 힘입어 세상의 모든 죄 문제를 해결하시기로 작정하셨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피흘려 화목 제물로 죽으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의해서 세상의 죄를 제거하시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을 모으시고 생산해 내셨다. 훈련받게 하셨다. 이제 그리스도의 피 흘리심으로, 죄와 사탄의 종이 되었던 세상은 하나님이 직접 다스리시는 세상이 되었다. 종말에 이 통치가 완전해질 것이다.

 

이스라엘 역사가 갖는 의의는 하나님의 통치권의 확립이었다.


구약은 하나님의 사역 목표에 대해서, 하나님의 통치가 확립되고 인류가 구원얻는 것이라고 보았다. 하나님이 창조 세계의 왕이시므로 구약에서는 하나님은 왕으로 자주 고백되고 찬양되었다. 시편에서는 하나님은 왕으로서 백성을 다스리신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고백했다.
사사시대에 사사들이 나라를 다스렸지만, 실제 이스라엘을 다스리시는 이는 하나님이셨다. 왕 제도를 요구하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사무엘을 통해 왕 제도를 주셨는데, 왕정 제도가 하나님의 통치를 위임받아서 하는 것으로 백성과 약정이 맺어진 다음에 허락되었다. 이스라엘의 초대 왕인 사울이 왜 실패했는가? 그는 하나님의 통치권을 인정하지 않고, 자기의 세속적 왕권을 세우려 했기 때문에 버림받은 것이다. 사울이 하나님의 왕 되심을 거부하고 하나님 나라가 진행되는 것을 막자 하나님도 사울을 배척하셨다. 사울 뿐만 아니라 사울의 후손들도 왕이 될 수 없도록 막으셨다. 사울을 죽음을 통해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왕은 하나님이시고 왕 된 사람은 하나님의 위임 통치자라는 진리를 증거하셨다.

 

하나님의 왕 되심을 인정했기 때문에 성공한 왕이 바로 다윗이다. 그가 통일 이스라엘의 왕이 된 다음에 수도를 예루살렘으로 정하고 행한 첫 번째 조치는 '하나님의 법한 첫 번째의 조치가 하나님의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모셔오는 일이었다. 그리하여 자기의 왕권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인정했다. 다윗은 하나님의 통치권과 자기의 왕권을 일치시켰다. 그가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자기를 왕으로 세우시고 하나님의 경륜을 이루시고 계심을 제대로 보았기 때문이다. 다윗이 간음하여 가정의 근본법을 깼을 때도, 하나님은 다윗을 왕위에서 끌어내리시지 않으셨다. 다윗이 왕이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였지 자신의 공로가 아니었다. 하나님은 다윗의 왕권이 은혜임을 강조하기 위해서 다윗의 범죄에도 불구하고 그를 왕으로 계속 일하게 하셨다. 뿐만 아니라 범죄 관계로 맺은 아내에게서 얻은 아들을 후계자로 세우셔서 그의 왕권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더욱 분명히 드러내셨다.


다윗은 하나님의 이 은혜를 잘 알고 하나님의 왕권을 더욱 견고히 해드리는 수종자 노릇을 했다. 하나님의 왕권을 인정한 의미에서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었다. 하나님은 메시야가 다스릴 하나님 나라의 모습을 다윗의 왕권에 연결시키셨다. 다윗의 아들 솔로몬도 하나님의 통치권을 잘 인정해드렸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중심 예루살렘에서 다스리심을 분명히 하기 위해 그는 자기 궁궐을 건축하기 앞서 하나님의 성전을 먼저 건축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중심에 좌정하시고 다스리시니 성이 요동치 않고 평화가 임했다. 평화의 왕인 솔로몬은 평화의 왕이신 그리스도의 표상이 되었다. 솔로몬이 말년에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왕이심을 인정하지 않자, 하나님은 솔로몬 제국을 아들 르호보암 때에 나누셨다. 남유다의 역사에서 왕들이 위기를 만날 때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왕되심을 그들이 인정하는지 확인하셨다. 유다 왕들 중에서 히스기야는 하나님께 의존하고 세상 외교정책을 추구하지 않았다. 그는 여호와 하나님의 통치권을 인정하고 신뢰하여 하나님을 유다의 왕이 되게 하였다.


B.C.63년에 이스라엘은 독립을 잃고 에돔의 피가 섞인 헤롯이 왕이 되어 로마의 속국이 되었다. 유다가 강대국들 밑에서 속국으로 지내면서, 그들은 하나님의 통치권이 확립되면 이스라엘의 독립을 다시 획득할 수 있다고 굳게 믿었다. 그들은 유다가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이스라엘이 바랄 수 있는 유일하고 최고의 희망이었기에, 이스라엘은 메시야를 기다렸다. 그가 오시면 이스라엘이 독립할 줄 확신했다. 이 소망을 심는 일에 선지자들이 크게 공헌하였고 그들의 묵시문학이 백성들의 기대를 더욱 부풀어 주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메시야가 오시면 하나님의 왕권이 확립될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이처럼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왕이셨고 이스라엘을 다스리셨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저들의 왕이시고 또 다스리신다는 사실이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왕이시기 때문에, 이스라엘 역사가 갖는 의의는 하나님의 통치권의 확립이었다.

 

유대인들이 이해한 하나님 나라는 예수님을 통해 이루어질 나라가 아니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통치권이 확립되고 그 왕권이 시행되는 세상이 하나님 나라라는 확신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역사적 상황에 살고 있던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굳이 정의하지 않으셨다. 이런 성경적 배경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일차적으로 하나님의 통치이고,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사회라고 정의할 수 있다. 신약에 이루어질 하나님 나라는 세상 왕들이 외적으로 악만 제재하는 나라가 아니었다. 죄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메시야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나라였다. 메시야의 오심이 곧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온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오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가까이 와 있다. 메시야가 사람들 중에 와 계심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사람들 중에 임해 있기 때문에 가까이 왔다는 말을 '현재 완료형'으로 사용하였다(마 3:2; 4:17). 성령으로 기름부음 받아 메시야로 임직된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왕으로서 성령의 권능으로 그의 나라를 다스리기 시작하셨다.


 예수님은 권능으로 사람들의 병을 고치고 귀신을 추방하고 죄를 사하며, 기사와 능력을 행하셨다. 사탄의 권세와 그의 왕국을 궤멸하여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돌리시고 죄를 해결하여 사람들의 마음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하셨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들은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통치를 자기들 나라의 해방과 독립에 연결시켰다. 원수의 나라를 제압하고 세계를 지배하는 세상적 왕권을 생각하였다. 한 예로, 그들은 오병이어 기적을 보고는 예수님을 억지로 임금으로 삼으려 했다. 그들이 생각한 왕은 굶주림의 문제, 사회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세상적 왕이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통치로 이스라엘의 독립과 독립국가 이스라엘의 확립과 영광을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증거한 '하나님 나라'는 죄가 사해지고 제거되어서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오시고 사람들이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신령한 나라였다. 그래서 예수님은 성령의 권세로 병이 치료하고, 귀신을 추방하며 죄를 사해 주셨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와 유대인들의 추구와 목표가 달랐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그의 기적 행사에서 걸려 넘어지고 반감을 갖게 되었다. 귀신들려 눈멀고 벙어린 된 자를 고쳐주신 사건에서, 바리새인들이 귀신의 왕 바알세불의 힘으로 귀신을 쫓아냈다고 하자, 예수님은 귀신을 쫓아냄으로 지금 하나님께서 직접 너희 중에서 다스리기 시작하셨다고 선언하셨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 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마 12:28)
하나님의 결정적인 통치는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으로 말미암아서이다.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가로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 하니"(계 11:15)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에서 단순 과거 시제가 사용되었다.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는 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완전한 다스리심은 종말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하나님은 창조 때부터 자기의 나라를 세우려고 하셨다.


창조주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 이후에는 다스리시고 그전에는 다스리지 않았는가? 하나님게서 천지의 창조주로서는 이 세상을 지배하시고 보존하시며 섭리하시며 인도하신다. 그러나 죄가 인류에게 들어온 후, 하나님의 법이 사람들에게 세워지지 않고 순종되지 못했다. 죄가 사람들을 지배하고 있어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에 오지 못했고 통치하지 못하셨다. 하나님의 통치를 받지 못하자 사람들은 파멸의 길로 치닫게 되었다. 하나님의 통치에 있어서는 죄가 선결되어야 했다. 하나님의 나라는 죄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설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세상에 자기의 나라를 세우실 때 죄를 제거하는 일을 먼저 하셨다. 인류 역사는 하나님께서 죄와 투쟁하시는 투쟁의 역사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죄가 해결되기 전에는 하나님의 나라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오심 이후가 아니라 창조 때부터 세상에서 자기의 나라를 세우려고 하셨다. 왜냐하면 창조 세계, 인간 세계의 왕은 하나님 자신이기 때문이다. 만일 하나님이 타락한 세상을 심판하시고 그냥 방치하셨다면 하나님의 창조가 보존되고 존속될 수가 없었을 것이다. 하나님은 세상을 만드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시려는 창조 목적과 경륜을 가지셨기 때문에 인간이 타락한 이후에도 세상을 간섭하셔서 이 창조를 보존하셨고 창조가 부패의 길로 가는 것을 억제하셨다. 죄는 그냥 내어버려 두면 모든 것을 분리하고 분열케 해서 마침내 모든 것을 소멸하게 한다. 이것이 죄의 특징이다. 세상이 범죄하여 창조가 파괴되고 소멸하게 되었다. 그러나 창조주는 사람들 가운데 자기의 나라를 세우셔서 백성들에 의해 찬양받으시고 영광받기를 원하셨다. 이 목표 때문에 하나님께서 자기의 창조를 파괴하는 죄를 그냥 방치해 두신 것이 아니고 이 타락한 세상을 간섭하셨다.


예수 그리스도는 죽음과 부활로 세상을 회복하시고 세상을 하나님 나라로 회복하셨다.
죄 때문에 인간은 질병, 고통, 죽음, 부패, 해체 속에 살아 왔다. 이 모든 것들을 창조에서 제거하시고 창조를 하나님께로 돌려 하나님의 영광이 되게 하고 하나님의 영광에 동참하는 것이 '구속'이다. 하나님을 섬기도록 창조된 인간이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구속이요 회복이다. 하나님은 이 모든 일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시기로 하셨고 마침내 이루셨다. 종말에 모든 것을 완전하게 회복하실 것이다. 예수 그리스를 통해 이루신 회복에 대해 좀더 자세히 살펴 보자. 하나님은 선악과를 따먹은 인류를 당장 죽이지 않으셨다. 심판은 선언하셨어도 심판을 당장 집행하지 않으시고 집행유예를 하셨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경륜을 가지셨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모든 역사는 예수 그리스도 세상의 구속주의 출생 준비였고, 그 때문에 존재 의의가 있다. 마침내 때가 차매 하나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시되, 여인에게서 나게 하시고, 이스라엘을 지배한 율법 아래 나게 하셨다. 율법 아래 나게 하심으로 모든 율법의 요구들을 다 성취해 드리게 하셨다. 율법의 요구를 따라 죄값을 대신 치르기 위해 피흘려 죽으셨다. 이로써 그는 세상의 구속주가 되셨다. 그가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하나님과 세상을 화목하게 하셨다. 성령께서 사람들 마음에 오심으로, 하나님은 인류에게 다시 오시고 인류를 자기의 백성으로 삼으셨다. 하나님의 생명이 사람들에게로 흘러 넘쳐오게 되었으며 구속받은 이들을 통해 하나님은 다시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게 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은 다시 하나님의 말씀으로 신뢰받게 되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다시 모시며 섬길 수 있게 되었다.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과 죽으심과 부활하심으로 세상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가 되기 시작한 것이다. 세상 구속과 함께 하나님의 나라가 되게 하는 모든 일을 주 예수 그리스께서 다 이루셨다. 그러므로 신학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합당하게 나라 자체라고 부른다. 그리스도의 구속이 곧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냈다. 구속주 되시는 예수님은 동시에 하나님 나라의 왕이 되셔서 자기의 피로 창조의 재통일을 이루어 가신다. 구속 사건 이후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가 곧 하나님의 나라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이 적용되어 죄가 사해지고 성령께서 오셔서 하나님의 생명이 지배하며,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면 그곳은 예수 그리스도가 다스리시는 영역이다. 교회만이 그리스도가 다스리시는 곳이 아니다. 모든 활동 분야가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 영역이 되었다. 왜냐하면 그가 자기의 피값으로 모든 것을 사셨기 때문이다. 피로 모든 것을 사셨기에, 예수 그리스도는 이 세상의 모든 영역을 자기의 것이라고 권리 주장을 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의 백성된 그리스인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자기의 것이라고 주장하신 모든 영역을 예수 그리스도의 것이 되도록 거룩하게 구별하여 드리는 책임을 지고 있다.

 

창조주요 구속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나라의 왕이시다.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엡 1:10)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시기로 경륜하시고서 이 세상을 창조하셨는데, 이 창조를 아들을 통해서 이루셨다. 그 아들을 왕으로 세우심으로 이 모든 세상을 통일하셔서 이 창조가 아름다운 창조가 되게 하셨다. 하나님이 자기 아들을 왕으로 세우시고 통일하시기 때문에 이 창조 세계가 아름답게 된 것이다. 이 창조가 타락하자 하나님은 그 회복을 경륜하시고 이 일을 만유의 상속자이신 아들에게 위탁하신다.
 
 
  성자께서 아버지의 경륜을 집행하시고 구속을 성취하시고 창조를 아버지께 돌리시되, 그가 피흘려 죄값을 지불한 구속주가 되셨다.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에 교회를 설립하심으로 하나님 나라의 왕이 되셨다. 부활하사 새 인류를 생산해 내셔서 교회의 주가 되었을 뿐 아니라 회복된 창조의 왕이 되셨다.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라 그가 근본이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자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골 1:18) 원래 창조의 왕이신 이가 구속의 사역을 통하여 창조를 회복하셨다. 예수 그리스도는 구속주요 창조주로서 이중으로 세상에 대해 권리를 주장하신다. 피값을 지불하시고 세상을 자기의 것으로 회복하신 그리스도는 모든 창조의 영역들을 자기에게 구별하기를 요구하신다. 예수 그리스도는 무력으로 세상을 정복한 영웅들처럼 하지 않으시고, 세상이 자신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바치기를 요구하신다.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 방식은 세상 왕들과 달라, 구속주께서 왕으로 다스리시는 사회에는 관용과 용서와 사랑이 있어서 교정과 재생이 있게 된다. 법이 엄정하게 서면서도 관용과 용납이 있고, 사랑의 법이 역사하여 자유와 해방을 누리며 살게 되어 감사와 기쁨이 그치지 않는다.


그러므로 주의 나라의 백성된 우리는 창조주와 구속주로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스리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야 한다. 이렇게 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지면 그것은 하나님의 창조 경륜이 실현되는 것을 뜻한다. 이 경륜이 완전히 실현될 때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할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이 만물의 목표이다. 사람들에 의해 자기의 경륜이 다 구현되지 못한다 하더라도, 하나님은 마침내 자기의 경륜을 다 이루실 것이다.

 

하나님 나라는 어떻게 확장되는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 나라의 시작이요 근본이요 완성이시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 나라의 모든 것을 창출해 내셨다. 그가 죄 문제를 해결하여 하나님이 사람들 중에 오실 수 있게 하셨다. 그리스도는 직접 하나님의 생명을 믿는 자들에게 주시고 평강을 주신다.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나라는 영존하며 모든 나라와 족속들을 다 포용하는 광활하다. 이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흘리심과 사죄 선포를 통해 확장된다. 하나님의 나라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흘리심으로 세워졌으니, 그 나라의 확장 역시 그리스도의 피흘리심으로 되는 되며, 피흘리신 복음을 전파해야 하나님의 나라는 확장된다. 세상 나라처럼 무력에 의해 확장되는 것이 아니고 오직 복음 전파와 그 세력으로 이뤄지고 확장되는 것이다. 복음전파로 사람들을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이끌어오면, 그들의 영혼이 죄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백성으로 입적된다.


 사람들을 예수 믿도록 인도하면,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권세로 죄를 용서받고 해방되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된다. 이렇게 하나님 나라는 확장되어 간다. 예수를 믿어 새생명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의 출생이다. 그러므로 예수 믿은 자들은 믿은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세상에 예수의 복음을 전하여 새로운 생명들이 더 많이 태어나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이로써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도록 해야 한다. 계속해서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나라는 어떻게 확장될 수 있는가?

 

① 신앙 교육을 통해 확장된다. 이미 신앙을 가진 어린이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복음을 계속 전하여 복음과 구원이 그들에게 촉구되면 그들의 신앙은 더욱 자라게 된다. 신앙이 더욱 확고히 된다. 구원의 복음을 영접한 어린이들을 통해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고 굳건해지는 것이다.


② 학문 활동을 통해 확장된다. 인간의 지식은 인간을 구원하지 못한다. 복음만이 사람을 구원한다. 결국 학문은 하나님의 계획과 경륜에 따라 창조된 창조를 연구하여 사물의 성질과 이치와 법칙을 규명하여 정리하고 해석하여 체계화하는 활동이므로 학문이 구제되어야 한다. 학문이 구제되는 길도 학문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에로 돌아가고 그리스도의 구속에 기초해야 가능하다. 예수님은 학문의 세계도 피값으로 사셨으므로 권리 주장을 하신다. 학문도 그리스도의 것이다. 그러므로 주의 백성된 자들은 학문의 영역에서도 그리스도께서 왕으로 역사하시도록 해 드려야 할 사명을 갖고 있다. 학문도 그리스도의 구속과 그의 왕권을 확립해 드리기 위해 전개되어야 할 것이다.


③ 죄악의 억제를 통해 하나님 나라가 확장된다. 복음을 믿게 하는 길과 함께, 죄 제거와 죄 개입의 방지로 하나님의 나라의 유지가 가능하다. 죄는 아브라함 카이퍼의 말대로 분리하고 분열하는 역사를 하므로 죄가 개입되면 깨어지고 흩어지는 일이 자동적으로 진행된다. 교회에 죄가 들어오면 교회는 큰 충격을 받게 되고, 죄가 주는 파급효과가 크다. 교회는 이 파괴적 죄의 역사에서 구속받은 백성들의 모임이므로 교회는 죄를 억제하고 배제하기 위해서 최대의 노력을 다 기울여야 할 것이다.


④ 주 되심을 인정해 갈 때 하나님 나라는 확장된다. 구약에서 하나님의 고유 이름인 여호와를 감히 부를 수 없어서 대리 호칭으로 '주님'을 사용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부를 때에 야웨의 히랍어 역어인 '주'를 사용했다. 신약교회는 주 예수란 호칭으로 구약의 야웨와 동등하신 분 또는 구약의 야웨와 동일하신 분으로 보았다. 그러므로 주 예수란 호칭은 예우적 호칭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천지의 대권을 다 가지신 하나님이시라는 뜻이다. 백성들이 '주' 예수라고 고백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위에 모든 주권을 다 가지신 하나님이란 고백이다.


⑤ 하나님의 법으로 살아가면서 하나님 나라는 확장된다. 죄 문제의 해결로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되고 확장된다고 하지만, 하나님 나라의 성장과 유지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것으로 되어진다.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의 법으로 살 때 거기에 하나님의 나라가 있고 진행되고 하나님께서 다스리시게 된다. 하나님의 나라가 합법적인 나라로 영위되려면 대다수의 백성들이 국법을 충실하게 준수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 곧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생활의 법과 질서로 삼고 살 때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나라의 왕으로서 역사하신다. 하나님 나라의 법대로 살기 위해서는 죄의 유혹에서 승리해야 하는데, 죄의 유혹을 이기는 길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다는 사실을 늘 반복적으로 확인하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새 존재가 되면 새 법을 따라 살아야 한다


 하나님 나라의 새 백성에게는 새 법이 주어진다.

 

① 그 첫 번째가 진실의 법이다. 참과 진실을 말함이 그리스도인의 제 1계명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진실을 근거로 서 있다. 그러기에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그 나라에 참예하지 못하고 성밖에 있으며 또 불과 유황 못에 참예할 것으로 그 나라의 법이 작정되었다(계 22:15; 21:8). 하나님의 나라가 성장 유지되고, 또 국가와 사회도 되게 하려면 진실의 법을 높이 세우고 굳게 해야 한다.


② 신실의 법을 따라 살아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약속을 꼭 지켜야 한다. 하나님은 미쁘시고 의로우사 한 번 하신 약속은 반드시 지키신다. 원래 약속의 상대자가 언약을 파기하면 언약은 무효화된다. 그러나 하나님은 약속을 어길 수 없기 때문에 백성들의 신실치 않음과 범죄 행위에도 불구하고 약속을 이행하신다. 백성들은 왕과의 언약을 폐기했지만 왕이신 하나님은 '자기 약속'이기 때문에 그 백성에게 메시야를 허락하시고 구원을 베푸셨다. 언약을 수행하시되, 언약 당사자인 자신이 직접 언약을 수행하기로 작정하셨다. 이처럼 나라의 왕이신 하나님의 속성이 '신실함'이므로 그 백성이 된 자들 역시 신실함을 속성으로 삼아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신실함의 성품을 자신의 것으로 삼아야 하는 것이다.


③ 양심의 법을 따라 살아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연약하고 가냘픈 양심의 소리를 따라 행동해야 하며, 이 양심의 소리를 누르고 욕망의 충족을 위해 열심히 살아서는 안 된다. 양심의 소리를 듣는 것부터 하나님의 계심과 다스리심을 인정하는 것이다. 신앙 교육을 통해서 하나님이 주신 신앙 양심에 합하는 가치를 갖는 훈련을 받고, 양심의 법을 따라 살아야 한다.


④ 노동의 법을 따라 살아야 한다. 노동의 법은 수고한 것에 대한 대가를 지불받는 법을 말한다. 그리스도인들이 지켜야 할 하나님의 법은 지불한 수고의 대가의 법칙이다. 조물주 하나님은 인간을 지으시고 일하는 존재로 작정하셨다. 하나님은 아담을 지으시고 의식주에 대해 아무런 염려가 없게 하셨어도 매일 힘써 일하지 않으면 안 될 일을 주셨다. 인간이 타락한 후 땀흘려 일해야만 의식주를 해결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노동이 의식주 해결의 근본이며 인간 사회를 보존하는 법칙이 되어, 일하지 않는 사람들이 백성이 되는 나라는 파산한다. 자기가 수고해서 번 돈을 무위도식을 위해 남에게 주면 바르지 않다. 수고를 지불하고서 돈을 벌어야 하고 눈 앞에 보이는 돈을 그냥 자기 것으로 삼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은 자기의 수고로 삶을 살도록 사회유지의 법을 세우셨으므로 우리는 열심히 일해야 하고 일한 수고의 대가로 살아야 한다.


⑤ 절제의 법을 따라 살아야 한다. 신약이 제시하는 인간 생활의 법은 절제이다. 절제의 생활이 하나님이 세우신 바른 인간의 생활규범이다. 그런데 너무 과도하게 일하면 피곤하게 되는 것이 생활 법칙이다. 모든 행사가 다 절제되어야 한다. 사회에서 절제는 검소이다. 하나님 나라의 새 백성들은 소박한 생활 양식을 바른 삶의 방식으로 정하고 살아야 한다.(פרופסור  שְׂצְליוּ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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