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교도의 개혁주의 사상
낙스의 개혁에 대한 의지는 단순히 종교, 정치 개혁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그의 개혁의 관점을 보면 그는 교회 개혁, 학교 교육,그리고 사회사업에도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낙스의 영향은 스코틀랜드의 청교도 뿐만 아니라 미국의 청교도들에게까지 동일한 영향을 끼친 것을 볼 수 있다. 사회개혁에 대한 청교도들의 입장은 매우 분명한 개혁주의 유산을 가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리랜드 라이큰은 청교도들의 특징을 설명하기를 다음과 같이했다.
“청교도들이 지녔던 두드러진 특징은 청교도 운동은 무엇보다도 종교 운동으로 자리 매겨야 한다고 보았다. 또한 청교도 운동은 옳고 그름을 보여주는 선한 양심운동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청교도 운동은 개량 운동이었다. 이것은 청교도운동은 사회를 새롭게 쌓아 올리려는 이상을 연료 삼아 추진되는 이상 운동이었다. 청교도는 또한 개신교 전체가 그랬듯이 하나의 저항 운동이었다. 이러한 청교도가 현대적으로 보이는 까닭은 이 운동이 어느 정도 국제적인 운동이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교도 운동은 소수파운동이었다.[미국 청교도는 다르지만] 청교도 설교가들과 교수들이 담당했던 의미 심장한 역할에도 불구하고 이 운동의 성패를 가름하는 마지막 열쇠는 그것이 평신도 운동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중요한 모습은 청교도 운동은 만사를 성경으로 해석하는 운동이요 그러기에 청교도들은 성경이 믿음과 행위의 최종적인 권위라고 함으로서 문제를 해결하였다. 마지막으로 청교도 운동은 교양 있는 운동인 동시에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운동이었다.
결국 청교도들의 중요한 기준 점은
첫째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충성이다.
성경에서 교리와 생활의 근거를 찾았다. 따라서 그들의 생활철학은 신본주의적이었다.
둘째는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책임이다.
셋째는 그들은 교회와 국가의 구별을 주장하고 교회는 민주적인 방법으로 선택된 장로들에 의하여 다스려져야 함을 따랐다.
넷째는 개혁의 방편으로서의 설교의 존엄성을 가졌다.
이러한 청교도들의 중심적 사상의 흐름은 종교개혁으로 피어난 신학과 신앙의 결합체라고 볼 수 있다. 청교도들은 확고한 개혁주의적 신앙관에 확고히 뿌리 박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개혁주의 사고에 기반을 둔 청교도들은 자연스럽게 사회에 참여했다. 그들은 사회를 이 땅에서 일구어야할 삶을 위해 하나님이 허락하신 질서의 한 부분이라고 여겼다. 이러한 소명사상은 청교도들에게 너무나 중요하고 중심이 되는 사상이었다. 이것은 정치적인 영역에서 예외가 아니었다. 청교도가 다른 종교집단과 구별되는 점 가운데 하나는 정치 참여이다.
청교도들은 기독교 사회에 대한 이상을 가지고 모든 문화영역에 참여했다. 이런 목적에 동원되는 수단은 청교도들마다 조금씩 달라질 수 있으나, 그 목적 자체는 결코 흔들리지 않았다. 초기 영국 청교도인 토머스 카트라이트는 이렇게 기술했다
. “우리는 국가를 교회처럼 세워야 합니다. 즉 기독교적 원리 위에 세워야 하는 것이다.-- 교회가 세상의 기초이므로 이 기초 위에 세운 국가는 교회를 세우는 원리에 다라 구성됨이 마땅하다”
이렇게 청교도들이 건강한 사회를 추구했던 것은 공동선에 대한 책임을 통감했기 때문이다. 윌리엄 퍼킨즈는
“공동선이 사욕과 사리만을 따르는 사람은 누구든 -- 자기 소명을 소홀히 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나만 위해야 한다 하면서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신다 하는 사람은 그야 말로 사악한 사람이다”
고 강조하였다. 청교도들은 이러한 사회의 공공 선을 위하여 가난한 자들을 위한 사업을 벌였다. 뿐만 아니라 실업자들에 대한 관심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청교도들의 사상은 사람 위에 사람 없다는 평등주의 사상에서 볼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통치자에 관한 사항뿐 아니라 목회자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었다. 청교도들은
“통치자를 위해 백성이 있는 것이 아니라, 백성을 위해 통치자가 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 하나님을 닮은 제사장으로 세움을 입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 사이에는 성직자니 평신도니 하는 구분이 있을 수 없다. 오직 목회자는 그리스도인들이 선출한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교회의 동의 없이는 목회자들에게는 이 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할 권리도 권한도 없다”
고 하였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정치 지도자나 목회자들에게 불순하게 했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욱 겸손히 받든 것이 바로 청교도들의 기록이다. 이것은 목회자들에게서 나온 말들이며 개혁신학의 만인 제사장직에 대한 뒷받침이었다.
정치의 영역은 더욱 분명하였다. 청교도들은 개혁주의자들의 법치주의 사상과 언약 사상을 받아들였다. 청교도들에게 의하면 통치자는 하나님의 질서를 보호하기 위해 세운 자로 보았다. 그러므로 통치자의 임무를 첫째 악한 자를 벌[Punisher]하므로 사회정의를 실현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통치자의 업무는 권선징악이다. 둘째는 통치자는 물질적인 것을 잘 관리하여 백성에게 공급하는 자이다.[Provider] 그리고 좋은 목회자를 양성하여 교회에 공급하는 것과 같은 영적인 공급자가 되어야 한다. 셋째 통치자는 그릇된 사상으로부터 백성을 보호하며, 잘못된 신앙으로부터 교회를 지킬 의무가 있다.[Protector] 이렇게 그들의 업무는 3P로 볼 수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권세에 복종하여야 한다 그러나 불법적인 권세에는 복종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청교도들의 사상이다. 합법적인 권세는 하나님이 세우시고 백성이 인준하는 권세라야 할 것이다.
이런 권세 자에게 복종하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존 위스롭이 말한 대로 “백성의 뜻과 계약”에 의하지 않고는 누구의 통치도 받아서는 안된다는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 존 밀턴도 이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있었다.
“왕이니 행정관들은 백성의 권한을 위임받아 행사하므로 -- 백성들은 수시로 그 적합함을 판단하여 그들을 선택하거나 거부하거나, 아니면 재 신임하거나 내칠 수도 있다.--백성은 그들에게 부여된 자유민의 자유와 권한으로서 가장 초선이라고 판단되는 통치를 받을 수 있다”
청교도들은 백성들의 의무도 바로 규정하고 있다.
“백성들의 의무는 위정자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저들을 존경하며, 세금과 그 밖의 국민적인 의무를 다하고, 저들의 합법적인 명령에 순종하고 양심을 인하여 저들의 권세에 복종하는 것이다. 불신이나 종교적인 상이점이 위정자의 공정하고 합법적인 권세를 무효화 할 수 없고, 그에게 마땅히 행하여야 할 순종에서 백성을 해방시키지 않는다. 교직자도 이점에서 제외되지 않는다. 더구나 자기의 영토 안에 있는 위정자들 위에, 혹은 그 백성 중 누구라도 교황이 다스릴 권세나 사법권을 가졌다고 할 수 없고 ,교황은 통치자들이 이단자라고 판단되거나 다른 구실로 저들의 영토나 생명을 빼앗을 권한이 없다”[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23:4]
청교도들이 가지고 있는 정치사상은 오늘날 민주주의 형성에 지대한 공헌을 끼친 것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청교도들의 소명의식은 귀중한 교훈이다. 이러한 청교도들의 중심사상인 하나님 중심으로 산다, 삶의 모든 영역은 하나님의 통치영역이다. 평범한 일상사 속에서 하나님을 발견한다. 숭고한 삶을 산다. 소망하며 살아간다. 실천적인 행동을 한다, 문제의 근본을 살피는 자세를 가지고 산다. 균형 잡힌 생활을 한다. 단순 질박하고 확고한 기초 위에서 산다는 이상은 현대의 프란시스 쉐퍼의 삶을 보게 한다. 성경 밖에서 만나는 가장 성경 적인 사람들이라는 별명을 가진 청교들의 사회개혁에 관한 의지와 투쟁 그리고 그들의 실천적인 삶과 분명한 절대적 기준은 쉐퍼의 저작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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