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금 바로'
어느 꾀 많은 고등학교 학생이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목사님, 사람이 죽기 바로 직전이라도 회개만 하면 천국에 갈 수 있겠지요?"
"그럼, 그렇고 말고."
"목사님, 그러면 죽기 전에 단 몇분의 시간만 있어도 되겠지요?"
"그럼, 그렇고 말고."
이 학생이 안심하고 만족한 얼굴로 돌아서 나가려하자, 목사님은 그 뒤통수에 대고 끝으로 이렇게 말해 주었습니다.
"자네는 자신이 언제 죽을는지 그 정확한 시간은 분명히 알고 있겠지?"
이 학생이 머리를 긁적이고 서자 목사님이 다시 말했습니다.
"지금 바로 준비하게, 그것이 현명한 길일세."
누구에게나 회개할 수 있는 기회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기회가 늘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 바로' 시작하십시오.
2. 대책이 없습니까?
홍해 앞에서처럼 막다른 골목에서 대책이 없습니까? 무려 40년을 지나갈 광야에서처럼 식수와 식량과 주거의 대책이 없습니까? 금성철벽의 여리고가 가로막아 앞으로 나갈 대책이 없습니까? 키 2미터 70센티의 거인 골리앗이 나타나 협박 공갈 할 때 대책이 없습니까? 그때 모세나 목동 다윗은 하나님이 대책이었습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 도와주실 것 해결해 주실 것 믿었습니다. 우리의 대책은 하나님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을 기쁘게 합니다.(히 11:6) 그러나 불 신앙은 하나님을 불쾌하게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듭니다.(요일서 5:10) 하나님을 유일한 대책으로 삼는 사람들에게는 믿음대로 되는 경지에 사는 수준 높은 크리스천이 되게 합니다.
3. 믿음만 있다면
밤새 내려앉은 어둠이 채 눈도 뜨기 전인 이른 아침, 박영순 님은 고등학생 아들과 딸의 도시락을 싸고 남편의 출근을 도와준 뒤에 집을 나선다.
수입에 조금이라도 보태자고 계속한 재봉일, 벌써 20년의 세월이 흘렀고 그녀는 어느새 재봉의 베테랑이 되어있었다. 80여 명의 생산부 사원을 관리하는 생산과장이 재봉틀을 돌리는 그녀의 직함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회사에 부도가 나고, 생산과장이던 그녀는 얼떨결에 사장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달라진 건 없다. 그녀는 변함없이 제일 먼저 출근하여 할 일 을 점검하고 동료들을 맞이한다.
"경희 엄마, 이제 감기는 괜찮아졌어? 힘들면 하루 더 쉬어도 되는데..."
"아이구 정민씨 오늘도 예쁜데, 좋은 일이라도 있어?"
부도가 난 것은 작년 12월 2일, 사장은 행방을 감췄고 임원들도 모두 떠나갔다. 공장은 경매에 부쳐졌고 '조다쉬'라는 미국 상표는 기다렸다는 듯이 한국에서 철수해 버렸다. 남은 거라곤 80명의 생산 사원과 아직 납품하지 못한 20일 정도의 일감뿐이었다.
갑작스런 일에 모두들 어찌할 바를 몰랐다. 하나 둘 다른 직장을 구하기도 했지만 남은 일은 마무리를 하자는 의견이 모아졌다. 그러나 휴식시간이면 난롯가에 모여 앉아 도란도란 파우던 웃음꽃이 이젠 한 숨으로 변해 벼렸다.
그들 대부분은 고만고만하게 빠듯한 살림에 일손을 놓을 수 없는 처지였다. 물론 생계를 책임진 가장도 있었다. 박영순 님도 예외는 아니었다. 물론 월급을 더 줄 테니 와 달라는 유혹도 많았다. 그러나 그만 두고 다른 곳으로 갈 수는 없었다. 어쨌던 자신은 그들을 책임진 생산과장이 아니던가. 그리고 5-6년 이상 언니. 동생으로 허물없이 지내던 사이였으니... 그들과 함께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자 사원들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해보자고, 이 바닥에서 잔뼈가 굵은 우리 자신을 믿어보자고 힘주어 말하였다. "사장과 임원들도 손들고 나간 회사인데..." 웅성거림도 없진 않았다. 그러나 평소 일 잘하고 자상하기만 하던 생산과장의 말은 믿음을 주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박영순 님과 생산부 여성사원 70여 명은 온힘을 다해 회사 살리기에 나섰다. 일감을 따내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던가. 부도 전에 일감을 줬던 업체에서 수천만원짜리 교복제작을 일감으로 주었다. 대전 제일 패션을 비롯하여 소문을 들은 여려 회사에서도 주문이 들어왔다.
올해 들어 사원들은 박영순 님을 사장으로 '기흥어패럴'이라는 회사를 발족시켰다.
지난해 12월 30일 12월분 임금이 예전에 변함없는 기준으로 지급되었다. 부도가 난 지 불과 한 달도 안돼 회사는 다시 정상을 찾고 있다.
4.신앙의 대상
어떤 책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나라에 공처가 선발대회가 열렸습니다. “누가 진정한 공처가인가!” 진정한 공처가를 가려내기 위해서 빨간색 깃발과 노란색 깃발을 꽂아 놓고 수없이 몰려든 공처가들에게 심판관이 다음과 같이 선언했습니다.
“당신들이 정말 공처가라고 생각하면 노란 깃발 앞으로 모이시오.”
거의 모든 사람들이 다 노란 깃발 앞으로 가는데 한 사람만 빨간색 깃발 앞에 외롭게 서 있었습니다. 심판관이 그 사람에게 왜 그렇게 혼자 그 쪽에 서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 사람이 대답하기를 “내 아내가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는 가지 말라고 했습니다.”
아합도 아마 그와 같은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합은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셨는지에 대한 증거는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 하나님이 갈멜 산에서 바알 선지자들의 그 모든 요구와 그들의 도전을 어떻게 어떻게 물리치셨으며 얼마나 능력있는 분이셨던가를 말하지 않았습니다. 아직도 아합의 입술에는 하나님에 대한 진실한 고백이 없었던 것입니다.
표적이 부족해서 믿을 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영원히 신앙 안에 들어가지 못할 것입니다. 구약성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얼마나 많은 하나님의 표적을 목격했읍니까? 그러고도 그들이 철저한 불신앙 속에 머물러 있었던 것을 보십시오. 아합에게 표적이 부족했읍니까? 그는 하나님이 그들 가운데 역사하시는 것을 자기의 눈으로 보았습니다. 그러고도 아직 그의 마음속에 하나님에 대한 외경심이 결핍되어 있는 것입니다. 표적이나 눈에 보이는 어떤 현상도 어디까지나 자기의 주관적인 체험에 불과합니다. 자기의 지식이나 생각, 판단도 주관적인 것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 역사가 증명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증언한 그 그리스도만은 우리의 진정한 신앙의 대상입니다.
5.믿음의 기도
커다란 시련에 직면한, 여섯 자녀를 거느린 선한 과부가 있었습니다. 온 가족은 저녁 식사에서 마지막 빵 한 덩어리를 먹어야만 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집 안에 음식이라고는 없었으나 믿음의 어머니는 식탁 위에 일곱 개의 접시를 올려 놓았습니다.
“얘들아, 하나님께 우리 먹을 것을 주시도록 기도해야 하겠다”고 어머니는 자녀들을 식탁에 둘러 앉혀 놓고 말했습니다. 그 어머니의 기도가 막 끝났을 때 한 아이가 외쳤습니다. “문간에 빵집 아저씨가 와 있어요.”
“눈 때문에 꼼짝 못하겠군요. 몸 좀 녹이려고 들렸답니다.”
집안으로 들어선 빵집 주인이 말했습니다.
“아침에 빵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그래요. 하지만 돈이 없어서.” 어머니가 말했습니다.
“아니. 이 아이들에게 줄 빵이 없단 말입니까?” “
한 덩어리도 없습니다.”
“좋아요. 가져다 드릴테니 조금만 기다리세요.”
빵집 주인은 자기 마차로 가서 일곱 덩어리의 빵을 가지고 집 안으로 다시 들어왔습니다. 그리고는 각각의 접시 위에 하나씩 올려 놓았습니다. “
엄마. 빵을 달라고 기도했더니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들으시고 빵을 보내 주셨어요.”
한 아이가 외쳤습니다.
“나도요.”
자녀들마다 하나님께서 기도를 개인적으로 응답하신 것을 느끼면서 소리높여 외쳤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큰 믿음을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다만 크신 하나님께 대한 믿음만 가지고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6.헛된 믿음
홍수가 나서 온 마을에 물이 들어차 있을 때 한 사람이 그의 집 1층 창문밖을 내다보며 배를 타고 있는 다른 사람을 태연히 구경하고 있었다.
그때 배에 탄 사람들이 그에게 "이 배로 와서 생명을 구하시오!"하자, 그는"아니오, 나는 주님을 믿습니다."라고 대답했다. 1층에 물이 차게 되자, 곧 그 불쌍한 친구는 그의 집 2층으로 올라 창문에서 내다보았다. 다시 배에 탄 사람이 그에게 와서 생명을 구하라고 했지만, 그는 "아니오, 나는 주님을 믿습니다"하며 완강하게 대답했다. 층마다 계속해서 물이 차게 되자 곧 그 사람은 지붕 꼭대기까지 올라갔다.
헬리콥터가 날아와 그의 머리위에서 배회하며 조종사가 큰 소리로 외쳤다. "우리가 가죽 로프를 내려주겠소. 그걸 타고 헬리콥터로 올라와서 생명을 구하시오!" 지붕 꼭대기에 앉아 궁지에 빠진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아니오. 나는 주님을 믿습니다." 결국 그 불쌍한 남자는 익사하고 말았다.
'천국문'에서 그는 베드로를 만나게 되었다. "제 얘기를 들어주세요. 저는 불만을 품고 있습니다. 제가 천국으로 들어가기 전에 제 마음 속에서 이 불만을 없애 주시기 바랍니다. 일단 그곳에 들어가면 그 누구도 불평할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저는 이제까지 하늘의 전능을 굳게 믿어 왔는데, 결국 하나님은 저를 죽게 내버려 두셨습니다!"
베드로는 깊은 생각에 잠기곤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너를 위해 할 수 있었던 그 밖의 다른 대책을 알지 못한다. 우리는 배를 두 번, 헬리콥터를 한 번 보냈다."
7.산을 옮긴 믿음
미국 알라스카의 스티브라는 청년이 처음 교회에 나갔다. 그날 목사는 마태복음 17장 20절의 말씀을 본문으로 겨자씨만한 믿음이 있으면 산을 올길 수 있다는 내용의 설교를 했다. 그의 집 뒷산에는 겨울이면 눈사태가 나서 골치를 앓고 있던차, 그 설교를 들은 스티브는 눈이 확 뜨였다. 그는 자기가 그런 일을 해보아야겠다고 마음먹고 그 믿음을 얻기 위하여 기도를 시작했다. 이 소식이 설교를 한 그 목사의 귀에 들어갔다. 목사는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성경에 있는 말씀이라서 설교는 했으나 아직까지 산을 옮겼다는 기록이 없기 때문이다. 이제 스티브의 기도는 응답받지 못할 것은 뻔한 일이요, 그리고는 낙심할 것이 뻔한 일이므로 그 목사는 그의 뒷처리를 좀 잘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다. 스티브의 기도는 열흘이 가도 스므날이 가도 후퇴하지 않았다. 목사의 마음은 다급해졌다. 40일째 되던날 스티브는
벙글벙글 웃으며 목사실로 들어와서 하는 말이 "목사님, 20세기는 산을 번쩍 들어서 옮기는 것이 아니라 기계로 옮기시더군요"라고 하고는 새로 생긴 고속도로에 흙이 필요하다고 하며 큰 추럭들이 와서 그 흙을 계속 실어간 산이 거의 다 없어져가는 것을 보고 왔다고 했다.
8.위대한 믿음
달라스 신학교가 지금은 미국에서 가장 훌륭한 신학교가 되어 있지만 1924년 경에는 빚 때문에 폐교의 위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그러나 언제나처럼 이 학교를 설립하신 루이스 쉐퍼 박사와 하나님의 사람들은 학장실 문을 잠그고 이 학교를 처분할 것이냐는 문제를 두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쉐퍼박사 옆자리에 해리 아이언사이드 라는 유명한 하나님의 사람이 다음과 같은 기도를 했습니다. "주님, 당신은 모든 산과 모든 언덕과 그리고 모든 가축들을 소유하고 계시는 부자가 아니십니까? 그 가축들 중 얼마를 팔아서 돈을 보내주셔서 이 학교의 빚을 무사히 갚고 학생들을 계속 양육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이러한 기도가 계속되고 있는 동안에 이상스러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달라스 카우보이의 모자와 구두를 신은 어떤 사람이 서무실에 들어오더니 다음과 같은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까?
"저는 달라스의 카우보이입니다. 저는 오늘 마차 두 대의 가축을 가득 싣고 시장에 가서 그 가축들을 다 팔았습니다. 그 돈을 가지고 저는 다른 데 투자할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제 마음속에 이것을 더욱 보람 있는 일에 써야 한다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이 돈을 기부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이 돈을 받아주십시오."
서무실의 아가씨는 영문도 모르고 그 돈을 가지고 황급히 학장실로 뛰어갔습니다. 가니까 막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라는 소리가가 들렸습니다.
그 수표를 받아든 쉐퍼박사는 아이언사이드 박사의 어깨를 툭 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주님께서 방금 가축을 팔아서 이 수표를 보내주셨습니다."
69. 혼자 아닌 나
L.E.던킨의 시 "나는 혼자가 아니다".
"나는 혼자가 아니다
남들은 나의 선택한 길과 다른 길을 걷고 있으나
나는 혼자가 아니다
남들은 나를 조롱하고
같은 길을 가자고 강요해도
나는 혼자가 아니다
세상을 향해 아니오라고 말하는 것은
결코 손해가 아니다
친구들이 뜻을 같이 하지 않는다고 불평해도
다른 사람들이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볼지라도
또 내가 이 길에 미혹된 듯이 보여도
예수님께서 걸어가신 길을 선택하고 있는 이상
나는 혼자가 아니다"
10.믿음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하였습니다. 이 `실상'이란 말은 헬라어로 휴포스타시스라고 하는데, 이 말에 대하여 이런 얘기가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헬라의 한 여인이 아버지의 유업을 이어 받았는데 토지 문제가 잘못되어 법정에서 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첫번 재판에 실패를 한 이 여인이 알렉산드리아의 고등법원에다 상소를 하기 위하여 모든 법적 증거 서류를 모아서 돌항아리에다 넣고 뚜껑을 닫아서 자기 집의 노예를 시켜서 고등법원으로 보내었는데, 이 노예가 가다가 숙박하던 어느 여인숙에 불이 나게 되어 모두 불에 타서 죽어 버렸습니다.
그 사건 이후 2천 년이 지난 뒤 고고학자들에 의하여 이 돌항아리가 발견되었는데 그 속에서 그때의 모든 문서와 함께 재판장 앞으로 보내는 한 장의 긴 편지가 있었습니다. 그 편지 마지막 부분에 “재판장님으로 하여금 내 고소가 참된 것임을 알게 하고자 여기에 내 휴포스타시스를 보내 드립니다” 라고 씌어져 있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이 휴포스타시스란 바로 증거물에 대한 확실한 신념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바로 이것입니다. 이 믿음은 미래 지향적인 세계관을 유출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증거를 가지고 그의 약속을 믿고 나가는 것입니다. 성경은 언제나 약속이 있으면 반드시 실현이 있고, 영원한 미래가 있는가 하면 현재적 성취도 항상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신앙입니다.
11.믿음의 선언
1812년 3월 12일, 인도의 세람포르에서 화제가 발생했다. 윌리암 케리와 그의 동료들이 수 년에 걸쳐 갖은 고생을 감수하여 번역한 책들이 삽시간에 연기 속에 사라져 버렸다. 성경 번역을 위한 원고들의 손실은 막대한 것이었다. 새로 주조된 타미르 타이프와 중국 금속타자기가 전손(全損)되 었다. 애를 써서 편집한 원고, 문법책, 사전들이 사라져 버렸다. 이 때의 손실에 대해 케리는 이렇게 썼다.
“인쇄기 외에는 아무 것도 건져 내지 못했다. 이것은 너무 큰 타격이어서 앞으로 오랫 동안 성경을 인쇄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12개월 동안 열심히 일한다 해도 회복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재산, 원고 등의 손실은 말할 것도 없고. 이 상황은 쉽게 극복되기 어려울 것이다.” 위에서 언급된 원고의 손실에는 거의 모든 인도 성경과 카나레스 신약 성경과 산스크리트어로 번역한 2권의 구약 성경과 많은 페이지의 벵갈어 사전과 테루구 문법책 전부와 푼자비 대부분과 산스크리어트어 고급사전 전부와 그의 언어 사업의 걸작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와 그의 동역자들에게는 믿음의 선언이 뒤따랐다. “틀림없이 하나님께서는 이 좋지 않은 일을 통해서 우리의 이익을 증진시키실 것이다.” 오래 지나지 않아서 하나님의 계획이 드러났다. “그 재해는 영국 그리스도인들의 귀를 열었다. 타오르는 불꽃 속에서 그들은 그 사업이 얼마나 위대한 일인가를 보았다. 그리고 그 사실은 널리 알려졌다. 이와 같이 파멸은 선교열에 불타는 친구들을 증가시키는 횃불인 것이 입증되었다.”
12. 가장 위대한 것
아름답고 쾌활하며 교양있는 여인으로서 구세군 창설자의 딸인 미리엄 부드는 전도유망한 기독교 사업을 시작하여 유례없는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오래가지 않아 질병에 걸려 죽음의 지경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어느날, 한 친구가 찾아와서는 그토록 유능하던 여성이 병 때문에 주님의 일을 하지 못하게 된 것이 매우 유감스럽게 보인다고 위로의 말을 했습니다. 그러자 미리엄은 부드러운 미소를 띄우면서 “주의 일을 하는 것은 위대한 것이지만 주의 뜻을 행하는 것은 더욱 위대합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당신은 자신의 삶의 방향과 목적과 의미를 추구하고 있읍니까? 이 놀라운 진리는 주님께서 우리의 '멈춤'도 인도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상기함으로써 더욱 의미가 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천천히 멈춰서서 하나님을 바라볼 필요가 있을 때를 알고 계십니다. 만일 당신이 인생의 십자로를 만났다면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파멸로 이를지도 모르는 결론으로 남들처럼 성급하게 달려 가지 않도록 하십시오.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라고 했습니다. 주님 앞에 기도하는 마음으로 결정할 문제를 내어놓으며 길을 열어 주시기를 위하여 주님을 의지하십시오.
13. 절대적 신념
스코틀랜드의 종교개혁자 존 낙스(1513~72)는 "박해의 상징"인 메리 여왕의 불의에 대해 통렬하게 비판하는 책을 출간,왕의 비위를 건드리는 바람에 왕정파에 의해 체포된 적이 있었다. "그대의 신앙과 그대가 말한 것을 철회할 생각이 없는가?" 지휘관이 매섭게 쏘아보며 물었다. 그러자 낙스는 분명한 어조로 대답했다."마음이 그것을 생각했습니다.입이 말했고 손이 그것을 썼습니다. 만일 그것으로도 모자란다면 하나님의 은총을 힘입어 피로써 그것을 증명하겠습니다"
14.새로운 결단
어거스틴이 바닷가를 거닐면서 삼위일체에 대해 고민을 했습니다. 삼위일체를 이해할 수 없어 계속 고민하며 걸어가는데 자기 앞에 어느 어린 아이 하나가 바닷가에 앉아 장난을 하며 놀고 있었습니다. 자세히 보니 조개껍질로 바닷물을 퍼서 자기 앞에 파놓은 조그마한 구멍에 붓는 일을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어거스틴은 물었습니다. “너 왜 이런 짓을 하고 있니?”
어린이가 대답하기를 “바닷물을 다 퍼서 여기 넣을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때 어거스틴은 깨달았습니다. 내가 어리석은 생각을 했구나 다시는 삼위일체에 대해서 의심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어거스틴이 바닷가에서 본 것은 환상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계시했느냐 이것이 문제가 합리적이냐, 이치에 맞느냐 하는 이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어느쪽이 사실이냐 그것만 문제가 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오셨으면 오신 것으로 끝난 것이지 이것이 가능하냐 아니냐. 내 마음에 드느냐 안드느냐. 이치에 맞느냐 안맞느냐가 무슨 상관입니까? 오직 믿음으로 묻지 말고 믿어야할 것입니다. 일본 사람들의 격언 중에 재미있는 것이 있습니다. “갈까 말까 하는 길은 가지 말라. 먹을까 말까 하는 음식은 먹지 말라. 할까 말까 하는 일은 하지 말라. 죽을까 말까 할 때는 죽으라”입니다. 우리에게 좀더 새로운 결단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지성, 우리의 판단이 다 충족된 다음에 무엇을 하겠다는 어리석은 생각은 하지 맙시다.
15.하나님의 때
백년 전 영국에 찰스 스미온이란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분은 캠브리지의 한 교구를 맡은 성공회 신부였습니다. 그가 처음에 안수를 받고 설교를 시작 할 때에 교인들이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 당시에는 들어가서 앉기 전에 문을 열고 들어가야 되었습니다. 그런데 장로님들이 이 분이 목사가 되는 것을 반대했습니다. 그래서 이 장로님들이 교회를 죽 돌면서 문을 열고 들어가는 곳을 자물쇠로 전부 잠그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몇 주간 동안은 교인들은 교회의 가운데 서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말하기를
“내가 자물쇠를 열지는 않겠다. 하나님께서 이 교회에서 일하시는 것을 보여 주겠다.”
그 옆으로 들어가는 문이 열리는 데는 오랜 기간이 걸렸습니다. 그러나 그는 굽히지 않고 계속해서 사역했습니다. 결국에 가서는 그 교회가 아주 훌륭한 믿음의 사람들로 가득차게 되었습니다. 바로 이 분이 나중에 유명한 IVF 창설자 중의 한 분이 되었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을 바라고 기다릴 준비를 갖추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때를 기다릴 준비가 되어 있읍니까. 사라가 야기시킨 문제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16 담대한 믿음
스위스의 한 순교자가 장작더미위에 맨발로 올라섰다. 이제 막 불을 질러 화형을 집행하려는 순간 자기의 화형집행 형리를 감독하던 치안판사를 가까이 오라고 했다. “죄송하오나 판사님의 손을 내 가슴에 얹어 보십시오. 저는 이제 곧 화형을 당하는 몸이옵니다. 만약 저의 심장이 평상시보다 조금이라도 빠르게 뛴다면 저의 종교를 믿지 마시고 저의 하나님을 부인하셔도 좋습니다” 라고 하였다. 그렇지 않아도 순교자의 표정이 너무 담담하여 의아했던 그는 떨리는 손으로 순교자의 가슴에 손을 얹었다. 그 순교자의 가슴은 화형을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라 침대에 잠자러 가는 사람처럼 고요하기만 했다. 치안판사는 너무나 놀랐다. 이 비범한 힘이 어디서 왔단 말인가. 죽음이 불신자들에게는 불안한 것이요. 두려운 것이며 고통스러운 것이 될 수밖에 없으나 구원받은 성도들에게는 주님을 만나는 순간이요. 주님이 예비하신 아름다운 영원한 집으로 들어가는 순간이니 어찌 불안하며 두려우랴.
무디 선생은 “세상이 점점 멀어지니 천국문이 열린 것이 보이는구나”라고 하며 기쁘게 세상을 마쳤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 천국문이 보이지 않는다면 기쁘게 죽어갈 수 없을 것이요. 기쁘게 죽어가지 않을 자가 어찌 천국에 가겠는가. 마지막 모습이 그의 행방을 말해 줄 것이다.
17.인생엔 결코 만년 후보란 없다
여자 배구 국가대표 감독 김철용. 그는 신념으로 똘똘 뭉친 사람이다. 강철 인간, 도무지 빈틈이 없다. 술도 담배도 안 한다. 스트레스 같은 것은 그에게는 사치이다. 그의 머리 속에는 오직 배구와 그가 믿는 하나님이 있을 뿐이다. 그는 어디서나 새벽기도에 간다. 선수들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면서 그들에게 힘을 달라고 기도한다.
"사람 사는게 계획대로만 되는게 아닙니다. 제가 맡은 팀이 역전하는 경기가 많았는데 그게 어디 사람의 힘으로 되겠습니까? 단체경기에서는 하나로 묶는 끈 즉 믿음이 중요합니다. 지도자는 기술은 가르칠 수 있지만 믿음은
어쩔 수 없습니다. 지도자가 직접 본을 보여야 합니다."
80년 8월 성남 송림고등학교에 체육교사 겸 배구 감독으로 부임했다. 그는 1년만에 1, 2학년만으로 전국대회에서 우승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지도자로서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일신여상 118연승, 호남정유 92연승. 그는 대학원에도 진학하여 성균관 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따냈다. 그는 시합때마다 각 선수들의 경기 모습을 메모했다가 경기가 끝난후 메모한 것을 바탕으로 분석하고 거기에서 나타난 부족한 점을 훈련때 반영한다. 가령 A라는 선수가 상대선수의 스파이크를 받을 때의 자세가 조금 이상하면 그것을 메모해 놨다가 훈련 때 A선수를 불러 고쳐질 때까지 연습시킨다. 그는 자다가도 좋은 생각이 떠오르면 벌떡 일어나 수첩에 메모한다. 그는 24시간 배구와 기도밖에 모른다. 주일에는 그가 장로로 있는 은평구 신사동 안디옥 교회에 나가 하루를 보낸다. 그의 꿈은 세 가지이다. 국내제패, 아시아제패, 세계제패이다. 비스마르크가 "젊은이들에게 권하고 싶은 것은 단 세마디 뿐이다. 일하라. 더욱 일하라. 끝까지 일하라"고 역설한 것처럼 부지런한 배구감독, 끝까지 일하는 감독으로 남을 것이다.
18.우리가 믿어야할 것
세 사람의 사냥꾼이 산 중턱에서 짐승을 쫓고 있었다. 멀리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길래 바라보니 산불이 나서 맹열한 기세로 불길이 다가오고 있었다. 사냥꾼들은 당황하기 시작했다.
한 사람은 나무에 잘 오르므로 가장 튼튼하고 높은 나무를 골라 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불길은 위로 올라가는 성질이 있으므로 이 사람은 불행하게도 생명을 잃었다.
두번째 사람은 뛰는 데는 자신이 있었다. 그는 불길을 피해 힘차게 달렸다. 불은 쉬지 않고 그의 뒤를 따랐다. 마침내 그는 지쳐서 뛰는 속도가 느려졌다. 불은 가까이 타들었고 불길이 그 사람을 삼켜 버렸다.
세번째 사람은 나무에 오르는 재주 , 뛰는 재주도 없었다. 자기의 두 친구가 황급히 자기 주위를 떠나자 그 역시 살아날 방도를 구해야 했다. 그는 성냥을 꺼내어 맞불을 질렀다. 그리고는 불탄 자리 안에 피신했다. 잠시 후에 산불이 다가왔지만 불탄 자리는 피하고 지나갔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가진 재간을 너무 믿는다. 성경에는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한 것에 있지 않다고 말하고 있으며, 지혜롭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지혜를 하나님께서는 헛것으로 안다고 하셨다.
19.흔들리는 믿음
어느 한 여 집사의 이야기입니다. 아무런 문제 없이 살아가던 그 가정에 어려움이 닥쳐왔습니다. 멀쩡하던 남편이 하루 아침에 쓰러지더니 사경에 헤매게 되었습니다. 이 집사는 열심히 기도하며 하나님을 의지하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기대하던 하나님의 응답이 늦어지자 불안해졌습니다
그러던 차에 평소 잘 알고 지내던 이웃 아주머니를 만납니다. 그 아주머니의 남편은 몇 해 전 쓰러져서 자기 남편과 똑같은 처지에 있었습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가 오가던 중 그 아주머니는 자기 남편이 용한 무당의 굿을 통해서 나았다고 말했습니다. 처음엔 그 여 집사의 마음이 동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거듭할수록 그런 방법을 한 번 써보고자 하는 욕망이 있었습니다. 결국 그 집에 어느 무당이 찾아와 시끄러운 날들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더 안 좋았습니다. 그때부터 이 집사는 절이든지 점쟁이든지 그 무엇이든지 찾아다니에 되었습니다. 그 결과가 어떠했을까요? 그 남편은 소리 없이 죽었습니다. 그 가정은 믿음에서 이미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얼마 안 남은 목숨도 구하지 못했을 뿐더러 영생의 소망마저 잃어버리게 된 것입니다. 이방민족이 승리한다고 그들의 신을 섬긴 이스라엘의 어리석음을 볼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사람들의 결과는 이렇습니다. 아무리 악이 형통한다고 해도 그것을 부러워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이 구원을 가져다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구원은 세상이 가져다주지 못합니다. 인간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어떤 피조물도 구원을 말할 수 없습니다
20 어느 목수의 십자가
독실하게 예수를 잘 믿는 어떤 목수가 있었습니다. 그는 아무리 생각해도 믿음으로만 구원받기에는 무엇인가 미흡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기는 하지만 기도도 열심히 하고, 전도도 잘하고, 헌금도 많이 해야 구원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목사님께 확실한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믿음 그위에 나의 공로와 선한 행위가 따라야 할 것이 아니냐고 말했습니다.
목사님께서 에베소서 2장 8-9절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하신 말씀을 제시하며 설명해 주어도 어쩐지 믿음으로만 구원받기는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목사님이 교회 출입문짝을 그 목수에게 맞추었 습니다. 목수는 하나님의 집에서 쓸 성물이라 정성을 다하여 만들었습니다. 목사님은 문이 다 되었다는 전갈을 받고 목수를 찾아갔습니다. 완성된 문짝을 한참 바라본 목사님은 목수의 솜씨를 칭찬하더니 문득 생각이 난 듯 문작 위에다 사과 궤짝을 덧붙여 못을 잘 박아 달라고 말했습니다. 목수는 이상하다는 듯 말했습니다.
"목사님! 이렇게 잘 만들어 드렸는데 문짝에다 왜 사과 궤짝 나무판을 붙인단 말입니까?"
이때 목사님은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십자가는 구원을 위한 완전한 걸작품입니다. 거기에 인간이 더하거나 감하여도 안됩니다. 다만 십자가를 믿으면 인간의 구원은 이루어집니다."
21.벌레도 없앴다구요
김준곤목사의 `기도의 능역'에 대한 칼럼 중 일부.
"일본의 어느 마을에 한 기독교인이 천 그루 정도의 과수를 가꾸고 있었다. 열매가 맺을 무렵, 이상한 벌레들이 생기기 시작하더니 약을 치고 잡아도 기승을 부렸다. 이 분은 철야기도를 했다. 가족도 다 모여 벌레가 없어지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 수 백 마리의 이상한 새떼들이 몰려오더니 한 나무에 하나씩 붙어 한 시간 만에 벌레를 전부 쪼아 먹어버려 나무들이 깨끗해 졌다고 한다"
22.심장마비로 죽은 대주교
철학자 「세레카」는 ‘그림의 떡은 떡이 아니요, 붙지 않은 불은 불이 아니며, 간절하지 않는 기도는 기도가 아니다’라고 했다. 그러므로 기도는 믿음 안에서 간구하는 요청이며, 때로는 목숨을 건 전투 같은 것이며, 때로는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모험이기도 하다. 이것을 잘 보여주는 이야기가 있다.
역사가 「H.C 월즈」가 쓴 단편집 <대주교의 죽음>을 보면 의미심장한 에피소드가 나온다. 어느 대주교가 그날 밤도 습관처럼 성당에 들어가 기도를 드리는데 갑자기 눈앞에 빛이 보이면서 신비한 음성이 들리더라는 것이었다.
“내가 네 기도를 듣는데, 그래 무슨 일이냐(Yes, What is it)?"
그 소리에 너무 놀란 나머지 대주교는 심장마비로 죽고 말았다는 이야기이다.
평생을 기도했던 대주교이지만 자신의 기도가 형식적인 기도에 불과했던 까닭에 막상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자 놀라서 죽어 버리고 만 것이다.
지금 하나님께서 당신 앞에 나타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23.우리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미국의 돈에는 일전 짜리나 천불 짜리에나 모두 "In God We Trust"(우리는 하나님을 믿습니다)라는 말이 찍혀 있다. 이것이 달러가 세계의 돈이 되는 축복을 받은 이유인지 모르겠다.
이것은 남북전쟁의 어려운 때에, 한 농촌의 목사가 당시의 재무장관인 췌이스(S.P.Chase)씨에게 건의하고 국회가 승인을 해서 그렇게 이루어진 것이다.
24.용기 있는 믿음
프러시아의 후레데릭 대왕은 그리스도와 교회를 비웃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의 충성스러운 신하 본진랜드 장군은 성실한 크리스챤이었다. 하루는 신하들과 같이 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 대왕의 천한 야유가 시작되었다.
그리스도 예수를 비웃는 말이었다. 그래서 온 장내는 그런 분위기로 되어가고 있었다. 이 때에 엄숙한 표정을 한 본진랜드 장군이 자리에서 일어나 대왕을 똑바로 바라보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대왕폐하. 대왕께서는 내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아십니다. 그래서 나는 전쟁터에서 대왕을 위하여 38번을 싸워서 이긴 것입니다. 저는 이제 나이 많은 늙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제 나는 머지 않아 지금 대왕이 비웃으시는 나의 구주 그리스도를 만나 뵈러 가게 됩니다. 나이 많아 영원을 바라보는 나는 예수 그리스도가 대왕보다 더욱 위대한 분인 것을 압니다. 폐하, 소신은 이제 물러가려 합니다.” 이 엄청난 태도와 말에 온 장내는 두려움에 떨게 되었다. 장군을 즉시 처형하라는 추상같은 대왕의 명령이 떨어질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의 예상과는 다르게 대왕의 떨리는 음성이 다음과 같이 들려왔다. “본진랜드 장군. 내가 잘못했소. 나를 용서하시오.” 우리는 조만간에 꼭 주님을 만나 뵙는 날이 있음을 기억하고 항상 담대하고 용기있게 믿음을 지켜야 할 것이다.
25. 결과를 기대하라
어느 때 챨스 스펄전이 자기 제자들을 런던 거리에 옥외집회를 열도록 보냈다. 날마다 그들이 보고하러 왔다. 어떤 이들은 성공했고 다른 이들은 실패했다. 어느날 은사와 재능을 거의 못갖춘 젊은이가 얼굴에 풀이 죽은 채 스펄전에게 다가왔다. “스펄전씨” 그는 말하기를 “나는 왜 그리스도에게로 영혼을 인도할 수 없는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나는 이 옥외집회에 참석해서 충실히 설교도 하고 죽을 힘을 다했는데 나의 호소에 응답하는 사람이 없고 별 일이 없습니다.” 스펄전은 잠시 그 젊은이를 보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설교할 때마다 하나님의 능력이 영혼을 구원하시리라 기대한단 말씀입니까.” 젊은 사람은 당황했다. 그가 말하기를 “아니죠. 나는 추측 못합니다. 당연히 못하지요. 나는 그것을 거의 기대할 수 없습니다. 아직 교육도 마치지 못했고. 다른 이들처럼 많은 은사와 재능도 없습니다. 아니. 나는 틀린 사람입니다. 그것을 기대해서도 안됩니다.” “그때” 스펄전은 외쳤다. “그것이 당신이 결과를 못보는 이유이다.” 젊은이는 믿음의 결과를 기대하지 않았다. 하나님 말씀에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가 있다. 만일 당신이 결과를 기대하지 않으면 그것들을 얻을 수 없다.
26.그리스도를 보라
1956년 쉰살이 넘은 여자가수가 흑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메트로폴리탄에 출연, 관중을 감동 속에 몰아 넣는 노래를 불렀다.
필라델피아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 이 `여왕'은 흑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 속에 성장하면서도 언제나 희망을 잃지 않고 노래해 결국 세계 정상에 우뚝 섰다.
그녀의 이름은 마리안 앤더슨. 그녀는 그날 이렇게 말했다.
"견디기 어려운 일을 만날 때마다 언제나 제 시선은 고난과 부활의 예수 그리스도께로 향했지요. 제 아픔은 오직 예수님만이 아십니다."
27. 당신의 믿음이 성장하기를 원한다면
당신의 믿음이 성장하기를 원한다면 거기에는 당신이 반드시 지켜야 하는 네 가지 규칙이 있다.
첫째는, 기꺼이 큰 믿음을 가지도록 하라. 사람들이 믿을 수 없다고 말할 때 "기꺼이 믿겠는가?"라고 물어 보라. 왜냐하면, 신앙을 향한 강한 의지가 서 있으면 성령께서 커다란 믿음을 주시기 때문이다.
둘째, 당신이 가지고 있는 믿음을 사용하라. 팔 근육이 연약한 어린아이는 점차 그 근육을 사용하기 전까지는 커다란 망치를 휘두를 수가 없다. 그러므로 뱃머리에 서서 멀리까지 수영해 갈 수 있기를 기다리지 말라. 배 끝에서 물 속으로 뛰어내려서 조금씩 헤엄을 쳐 보라. 이런 조그만 노력을 통해서 당신은 크고 위대한 탐험을 위해 준비되기 때문이다.
셋째, 당신과 환경 사이에 하나님을 모시는 것을 명심하라. 모든 것은 당신이 하나님을 어디에 모시느냐에 달려 있다.
넷째, 매일매일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면서 살아가라. 이 규칙들을 지키는 당신의 믿음은 성장할 것이다.
28.세상에서 버린 인간
일본 동경 근처에 자마라는 작은 도시가 있습니다. 그곳 성결교회에 미하다 요시오라는 분이 계신데 자마시의 상공회의소 부회장이며 목재상을 경영하고 있습니다. 이분은 신체적으로 완전치 못하여 딴 회사에서 채용하지 않는 사람들을 여러 명 채용해서 칭송이 높고 한번은 그에 관한 얘기가 신문에 났다고 합니다. 그러자 편지 한 통이 날아왔습니다. 내용은 "나는 반평생을 형무소에서 살아온 전과 21범인데 이번에 출소하면 나 같은 사람도 채용해 주겠습니까?"라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가족이 모여 상의를 한 후 일단 찾아가 보기로 했습니다. 먼저 형무소 소장을 만났더니 고개를 옆으로 흔들며 그 자는 나갔다가 사흘이면 또 들어오는 절도 상습범인데 상관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래도 미하다 씨는 그 범인을 직접 만나고 출소하면 채용하겠다 는 약속을 했습니다. 출소하는 날 형무소장은 "뜻은 대단히 귀한데 한 가지 부탁은 그 사람이 보이는 데에다 절대로 현금을 두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전과 21범은 미하다 씨의 전도로 교회에 나갔는데 세상에서 천시와 학대를 받던 그가 성도들의 사랑에 감동되어 진실한 그리스도인이 되었을 뿐 아니라 미하다 씨에게 가장 신임받는 금전출납 회계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스도는 세상에서 버린 인간을 새롭게 만들어 쓰시는 진리입니다.
29.믿는다
`믿는다'라는 말을 표현하는 히브리어는 여러가지가 있으나 그중에서도 비교적 잘 사용하는 것이 `아만'입니다.
`아만'이란 절대 확실하다고 생각되는 것에 자기를 맡기는 마음의 움직임입니다. 어린아이를 달래는 어머니의 동작을 표현하는 동사도 이 아만과 같은 어원이라고 합니다. 즉 히브리 사람들은 어린아이가 어머니의 품에 안심하고 자신을 맡기는 모습을 보고 믿음도 이와 같다고 본 것입니다. 어린아이는 무력합니다. 연약한 아기에게 있어 어머니의 품안은 절대 안전한 것입니다. 어린아이는 어머니의 품안에 안심하고 자신의 모든 것을 맡깁니다.
확실하다고 생각되는 것에 자신을 맡긴다는 의미에서 볼 때 믿는 마음은 우리 주변 일상에서 쉽게 볼 수 있습니다.
30.내가 믿는 하나님
한 이교도가 어거스틴에게 자기가 섬기는 작은 나무 우상을 보이며 질문하였다. "나의 신은 여기에 있는데 당신의 신은 어디에 있소?" 어거스틴은 이렇게 대답했다. "나의 하나님은 보일 수 없소. 그것은 하나님께서 계시지 않아서가 아니라 당신이 하나님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오." 유명한 설교가인 존 허프먼 목사는 프린스턴 신학교를 나와 12년 동안 목회했지만, 성공적이지 못했다. 목사직을 그만둘까 하는 생각을 할 만큼 좌절하고 자신감을 잃었다. 그는 모교에서 실시하는 목사 연수 교육에 참가했다. 그곳에서 존경하던 노교수 로버트 윌슨 박사를 만났다. 제자의 상담을 받은 노교수는 "자네는 12년간 작은 하나님을 믿었군. 큰 하나님을 믿는 자가 되게"하고 충고했다. 노교수의 표현인 "작은 하나님을 믿는 자"와 "큰 하나님을 믿는 자"의 차이는 다음과 같다. 작은 하나님을 믿는 자란 나의 지식과 나의 요구에 하나님을 맞추어 하나님을 나 정도로 작게 만드는 신자이다. 큰 하나님을 믿는 자란 하나님의 권능을 믿는 사람이다.
31.말씀이 증명된 사실
미국의 한 기계 회사 사장이자 우주 계획의 고문인 헤럴드 힐이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인공 위성을 발사하기 위해서는 지구의 궤도를 잘 알아야 하기 때문에 메릴랜드의 그린벨트에서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날마다 컴퓨터 앞에서 지금으로부터 10만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그간의 태양과 달의 궤도를 살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궤도를 조사하던 중에 기계가 정지되더니 경고들이 켜졌습니다. 그래서 적신호의 원인을 분석한 결과 지구가 태양의 궤도를 운행하는 과정에서 꼭 하루가 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 기계를 조사하던 청년 한 사람이 주일학교 다닐 때 들었던 하나님의 말씀이 기억나서 여호수아 10장 12절에서 14절까지를 읽고 하나님께서 태양을 머무르게 한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태양이 중천에 머물러서 거의 종일토록 속히 내려가지 아니하였다 하지 아니하였느냐"(수19:13). 하나님의 말씀을 신화처럼 여겼던 과학자들에게 첨단의 기계를 통해서 성경의 기록이 사실이라는 것이 증명되었던 사건이었습니다.
32.고집쟁이 신앙인
신앙이 돈독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열심히 기도하는 가운데 의롭게 살려고 노력했다. 자기 생각에는 세상 사람들과 접촉을 피하는 것이 죄를 덜 범하는 것이라 생각되어 언억 위에 따로 집을 짓고 살았다.
어느 날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냥 비가 오나보다 했는데 그 비는 그칠 줄을 몰랐다. 홍수 경보가 발표되었고, 빨리 안전지대로 피하라고 라디오에서는 계속 방송이 나왔다. 남들은 다 안전지대로 피난을 가는데 이 사람은 하나님께 기도만 드리고 있었다. `하나님, 이 홍수에서 우리 집과 우리 재산, 그리고 가족들의 생명을 구원하여 주옵소서...'하고 간절히 기도를 드렸다. 기도가 끝나갈 무렵,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렷다. 나가보았더니 어떤 청년이 트럭을 가지고와서 빨리 트럭에 올라타라고 하는 것이었다. 빨리 안전지대로 피난을 가지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사람은 자기는 하나님께서 직접 구언해주실 터이니 염려 말라고 하면서 트럭을 돌려 보냈다.
그리고는 또 기도만 하는 것이었다. `노아의 가족을 구하셨듯이 우리 가족도 구원해주옵소서.' 억수같은 비는 이내 차고 넘쳐 사방이 물바다가 되었다. 그때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나가보니 어떤 사람 하나가 조그만 보트 하나를 가지고와서 얼른 타라고 하는 것이었다. 커다란 방주라면 몰라도 그 조그만 보트에 탈 수는 없었다. 노아가 온 가족과 재산을 구원했듯 자기도 식구들과 재산을 구원하려면 큰 방주가 있어야지 그 조그만 보트에 식구들만 태울 수가 없어 거절했다.
그 사람은 계속해서 기도했다. `구하라 그러면 주실 것이요, 약속하셨으니 구원해 주십시오.' 한참 기도하고 있는데 지붕 위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아, 이제는 하나님이 직접 오셔서 구원해주시는가보다 하고 나가보니 헬리콥터 한 대가 지붕 위에 떠 있는데 밧줄 한 가닥이 내려져 있고 위에서 빨리 잡으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밧줄에 매달릴 수가 없었다. 밧줄보다는 조그만 보트가 낫고, 보트보다는 트럭이 좋았다. 그는 헬리콥터에서 내려준 밧줄도 거절했다.
마침내 언덕은 물바다로 변하고 그 집도 물에 잠겨 붕괴되었으며, 그도 물에 빠져 죽었다. 다행한 것은 그가 죽어서 예수님 앞에 인도되었던 것이다. 그는 화가 났다. 주님을 보자마다 "제가 얼마나 기도드렸는데 그럴 수 있습니까?"하고 따졌다. 그때 주님이 하시는 말씀이 "이 고집쟁이야, 내가 세 번이나 너를 구원하려고 트럭도 보내고 보트도 보내고 헬리콥터도 보냈는데 네가 거절했으면서 무슨 소리냐!"하시더라는 것이었다.
33.한번 믿어보세요
사막을 통과해 바다로 나가고자 하는 강물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강물은 사막에 널려있는 수 많은 모래를 보자 걱정이 되어 탄식했습니다.
"아, 이 사막이 나를 완전히 말려버리겠구나, 그리고 저 햇님의 뜨거운 열기는 나를 다 없애버릴거야. 그러면 난 악취 풍기는 늪지대로 변하게 되겠지."
그때 강물은 한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사막을 한번 믿어보세요."
그러나 강물은 걱정이 되어 반문했습니다.
"그러면 나를 던진 후에도 내 모습 그대로 남아있게 될까요? 내 본래의 특성을 잃게 되지는 않을까요?"
목소리가 대답했습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당신은 본래의 그 모습 그대로 유지할 수 있을 거예요."
그래서 강물은 그 말을 믿고 사막에 몸을 내 맡겼습니다. 그러자 사막의 뜨거운 역기 때문에 강물은 수증기가 되어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하늘로 올라간 강물은 구름이 되어 뜨러운 사막위를 둥둥 떠서 흘러갔습니다. 그리고 강물은 이전보다 더 아름답고 더 활기차게 흘러서 바다로 갔습니다.
강물은 너무나 기뻐하며 말했습니다.
"나는 새롭게 태어났다. 이제야 비로소 나는 진정 내가 된거야."
34.믿음의 위력
오래 전 평안북도 정주에 살던 가난한 농부가 열병을 앓았다.
이웃에 살던 크리스천이 이 사람에게 신앙을 가지라며 전도했다.
「나같은 사람이 예수를 믿어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이렇게 말하며 완강히 거부했던 농부는 나중에 외국인 선교사의
방문을 받고 복음을 받아들였다.
그날 이 농부의 열병이 씻은듯이 사라졌다.
그리고 진짜 「유익한 일」이 후세에 나타났다.
이 가난한 농부의 아들이 복음안에서 성장, 1946년 지금의 연세대 초대 총장이 된 것이다.
백낙준 박사 이야기다.
35.믿음과 행함
한 스승이 캄캄한 방중에 제자를 찾아갔습니다. 불이 완전히 꺼진 방에서 제자는 열심히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무슨 기도를 그렇게 열심히 하느냐"
"네, 세상이 너무나 어두워서 밝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제가 열심히 기도했으니까, 하나님께서는 이 방의 불도 켜주실 거예요."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네가 마땅히 해야 될 일까지 해주시지는 않는단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방마다 전선을 연결해 주셨습니다. 성령의 빛, 사랑의 빛, 평안의 빛, 행복의 빛을 전해 주는 하늘의 전선을 이미 누구에게나 주셨습니다. 이제 그 스위치를 올리는 일만 남았습니다. 그것마저도 하나님 책임으로 돌린다면 그는 영원히 구원을 받지 못할 것입니다.
36.신앙은 세습이 아닙니다
어떤 청년이 의과대학을 졸업하고도 의사시험도 보지않고 면허도 없이 병원 개업을 하겠다고 신고를 했다면, 그 사람은 정신이 돈 사람일 것입니다. 그 청년이 관엉에 가서 말하기를 "나는 의사 면허증은 없지만 우리 증조 할아버지도, 할아버지도, 우리 아버지도 3대째 내려오는 의사 가정이니 나는 면허증이 없어도 충분히 의사일을 할 수 있습니다"고 한다면 관청에서는 그 사람을 정신병자로 취급할 것입니다.
이와 같이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부모님이나 할아버지 할머니가 독실한 기독교인이었기 때문에 자기도 기독교인이라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큰 잘못 입니다. 참 신앙과 거듭남은 그 개인의 신불신의 문제이지, 조상의 훌륭한 신앙이 세습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사람이(본인 자신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요3:3)
37.굳게 믿는대로
미국의 어느 철도회사에서 실제로 있었던 사건입니다. 이 회사에서는 늘 냉동차가 역에서 정차하고 있는 동안 그 차안을 청소하는 것이 상례였습니다. 그런데 불행히도 냉동차 안에서 청소를 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누군가가 문을 밖에서 잠가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다음날 아침 다시 이 냉동차의 문을 열었을 때는 이 냉동차에 갇혀 있었던 그 사람은 싸늘한 시체로 발견되었습니다.
회사가 발칵 뒤집혔습니다. 사건경위를 추적하는 가운데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사실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 냉동차는 청소하느라고 스위치를 뽑은 상태였기 때문에 그 안에 갇힌 사람이 얼어죽을 만큼 기온이 떨어진 것도 아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산소가 부족해서 질식할 정도로 그 냉동차가 적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얼어죽을 만큼 기온이 떨어진 것도 아니요, 산소도 충분했다고 하면 도저히 청소하던 그 사람은 무슨 이유로 하룻밤을 넘기지 못하고 죽었을까 하는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 사건을 조사하면서 갇혔던 청소부 자신의 생각 때문에 죽음을 맞이하게 된 것으로 최종적인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자기가 갇혔다는 것을 안 순간 그는 절망에 빠지게 되었고 자신은 냉동차 안에서 동태처럼 꽁꽁 얼어죽게 되었다고 굳게 믿었고, 바로 이 생각 때문에 사실은 죽어야 할 아무런 객관적인 이유가 없는 그 상항을 이겨내지 못하고 죽고 만 것입니다.
38.전적의탁
옛날에 한 수도사가 올리브 나무 묘목을 심었습니다. 그리고는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주님! 이 연약한 뿌리가 잘 자랄 수 있도록 단비를 내려주시 옵소서." 하나님께서는 단비를 내려주셨습니다. 그 수도사는 또 기도했습니다. "주님! 햇빛이 필요합니다. 햇빛을 주시옵소서." 그러자 검은 구름을 몰아 내시고 밝은 햇빛을 비추어 주셨습니다. 그러자 수도사는 "오 주여! 이 나무를 튼튼히 하기 위해선 서리가 필요합니다"라고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그랬더니 그 작은 나무에 서리가 앉아 어린 올리브 나무는 죽어버렸습니다. 그래서 그 수도사는 다른 수도사의 방을 찾아가 자기의 경험을 털어 놓았습니다.
그때 방에 있떤 수도사는 잘 자란 올리브 나무를 보여주며 "나는 나무를 키울 때 그 나무를 만드신 하나님께서 나보다 그 나무를 더 잘 알고 계시므로 다만 주여! 이 나무가 필요한 것을 때에 따라 주시옵소서. 강풍이든,햇빛이든, 바람이든, 비든, 서리든...하고 기도드릴 뿐입니다."라고 설명했습니다.이것이 잘 키우게 된 비결이었습니다. 우리는 믿음의 생활을 하면서 내 생각과 말과 행동 속에 하나님을 끌어 들이려는 잘못을 범합니다. 참 믿음은 전적으로 예수님께 매달리고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알고 그 뜻에 합당하게 순종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뜻에 나의 생각을 일치시키는 것이 믿음이라고 봅니다.
39. 믿음은 자라난다
나는 1947년에 처음 내가 이 사역을 시작했을 때보다는 지금이 더 많은 믿음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곤 합니다. 그러나 믿음 자체의 성질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1947년에는 적은 믿음이었던 것일 따름입니다. 그것은 둘 다 적은 믿음이며 단지 지금은 약간 더 커진 상태의 적은 믿음일 뿐입니다. 그러나 두 종류가 모두 풀어놓아지기를 기다리는 내 마음속에 있는 하나님께 대한 믿음입니다. 내가 어떤 일을 성취하였을 때마다 나는 내가 좀더 많은 믿음을 풀어놓았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내가 또다시 물 위를 걸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금광 탐색자가 귀한 광물을 아주 조금밖에 발견하지 못했던 것 이상으로 당신이 적은 믿음을 가졌다는 사실에 대해 낙심하지 마십시오.
금탐색자는 아주 적은 금부스러기라도 나온 곳에는 그보다 더 많은 양의 금이 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그는 그것으로 인해 계속 금을 채굴하는 것입니다.
폭풍우가 당신과 당신의 사랑하는 사람들을 계속하여 내리칠 때, 무엇이 당신으로 하여금 계속 견디어 낼 수 있게 해줄까요? 그것은 당신이 가진 적은 믿음입니다. 그 믿음의 아주 작고도 작은 조그만 부분입니다. 그것은 당신 안에 그보다 더 많은 것이 있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적은 믿음을 가진 사람이었지만 물 위를 걸었습니다. 그는 단지 적은 믿음을 가지고서 그처럼 엄청난 일을 했었다는 사실을 절대 잊지 맙시다. 그리고 그 믿음조차도 의심과 섞여 있었던 믿음이란 사실을, 이처럼 우리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가진 것을 받으셔서 그것으로써 이적을 행하시는 아주 위대한 하나님이십니다.
40.믿음이 있기 때문에
텔레비젼을 통해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서커스를 보게 되면 그 중에 한두 번쯤은 꼭 빠지지 않고 나오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동물들이 불이 붙어있는 둥근고리 속을 뛰어넘는 모습입니다.
대개의 동물은 원래 불을 싫어합니다. 털이 긴 동물일수록 거의 본능적으로 불을 두려워하고 꺼려합니다. 그렇다면 이 동물이 그 본능을 거슬러 가면서 불이 붙을 고리속으로 뛰어들게 하는 힘은 무엇일까요?
그 힘은 뛰어든 후에 이루어지는 보상이나 혹은 뛰어들지 않을 수 없을 만큼 내모는 가혹한 훈련이 아니라 바로 동물과 조련사 사이에 있는 믿음이라고 합니다.
동물에게는 여태껏 조련사가 훈련시키는 대로 해서 목숨이 위험했거나 손해를 당한 적이 없었다는 믿음, 나에게 위험한 일은 시키지 않는다는 그 믿음이 있기 때문에 본능을 거슬러 가면서까지 불속으로 뛰어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의 믿음을 배신하지 않는 일일 것입니다.
41.순수한 믿음
1990년 겨울, 뜻하지 않게 내 삶 속에 찾아온 시련 때문에 하나님께 기도
하기조자 힘들 때 학생회 겨울 수양회를 떠나게 되었다. 그날따라 오후부터 갑자기 내리기 시작한 폭설로 인해 학생들을 태우고 내가 손수 운전하고 떠난 버스가 3시간 반이면 도착할 수양관에 9시간 30분이 지나서도 도착을 하지 못했다. 겨우 눈발이 조금씩 멈추기 시작했을 때는 이미 새벽 12시 반이 넘었고 우리는 칠흑같이 어두운 시골길을 달리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멀쩡히 잘달리던 차의 속도가 점점 떨어지더니 급기야는 차가 멎어버렸다. 나는 당황감과 불안감에 기도할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머리
속에서 이 갑작스런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궁리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학생들은 순수한 믿음과 마음으로 하나님께 매달려서 간절한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학생들이 기도를 막 끝내고 ‘아멘’하는 순간, 정말 신기하게도 차의 속력이 다시 붙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속력이 다시 붙는 것만이 아니라 언제 그랬냐는 듯이 멀쩡히 차가 달리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 순간 버스 안은 온통 감사와 놀라움에 차 울음바다가 되었고 터질 것 같은 목소리로 우리 하나님 아버지를 찬양하기 시작했다. 나도 운전대를 붙잡고 얼마나 회개와 감사의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 어려움 때문에 흔들리고 약해져 있는 나를 어린 영혼들의 기도와 그에 대한 확실한 응답으로 먼저 깨우치시고 다시 설 수 있는 은혜를 주신 하나님의 계획과 사랑이 얼마나 놀랍고 감사했는지....
42.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어느 눈 먼 소년이 친구들과 함께 연날리기를 하고 있었다.
지나가던 사람이 이 아이를 보고 말했다.
"얘야, 네 연이 어디 있니? 땅에 떨어졌는지 하늘로 날아갔는지 넌 모르지 않니?"
그러나 이때 그 아이는 확실하게
"무슨 말씀을 하시죠? 지금 공중에 높이 떠 있잖아요?"하고 대답했다.
그 사람이 "넌 보이지도 않는데 어떻게 알지?"하고 다시 물어왔다.
"그래요, 볼 수는 없어요 그렇지만 이 줄이 팽팽하게 끌어 당겨지는 것은 연이 하늘 위에 떠 있다는 것을 믿을 수 있게 해줍니다."라고 눈먼 소년은 자신에게 말하는 것이었다.
43.믿음과 행함의 노
고기들이 일으킨 잔잔한 물결이 동그랗게 원을 그리며 퍼져나가는 아름다운 호수 위에 십여 척의 작은 배들이 떠 있다. "참 아름다워라 주님의 세계는" 청소년들이 힘차게 찬송가를 부른다. 각 배마다 청소년이 한 명씩 타고 있다.
한배에서 선생님이 설교를 한다."믿음이 중요합니까, 행함이 중요합니까?"
각 보트에는 노가 두 개씩 있다. 한 노에는 `믿음', 또다른 노에는`행함'이라 적혀 있었다.
선생님이 "여러분 믿음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면 믿음의 노를 들어올리세요." 라고 말하자 믿음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학생들이 `믿음'이라 적힌 노를 높이 들어 올린다. 다음에는 행함이 중요하는 학생들이 노를 들어 올린다.선생님은 다시 말한다. "여러분이 중요하다고 들어 올린 노만을 가지고 노를 저어서 저 앞에 보이는 물 위에 붉은 푯대를 돌아 오십시오." 학생들은 두 개의 노 중 중요하다고 들어 올렸던 노 하나만을 가지고 열심히 배를 저어 나아갔다. 그러나 학생들이 보트는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모두가 한족 방향으로 돌기만 하는 것이다. 배가 한쪽으로 도니까 학생들은 배의 오른쪽을 저었다가 다시 왼쪽을 저었다가 이렇게 반복하여 겨우 방향을 잡고 앞으로 배를 저어 나아간다.
"여러분 이번에는 양쪽 노를 다 사용해서 저 푯대를 다시 돌아 오십시오." 믿음과 행함이라 각기 쓴 두개의 노를 다 사용하니 배가 앞을 향하여 빠르게 나아간다. 한족 노만을 사용할 때보다 힘도 들지 않고 배가 한쪽으로 돌지도 않고 잘 나아가는 것이 아닌가. 믿으과 행함, 둘 다 중요하다는 것은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44 변치않는 믿음
허드슨 테일러가 중국 내륙에 들어가 양주에서 선교사역을 할 때의 일이다. 선교사들이 의료 선교를 열심히 하자 양주의 학자들과 일부 군 인사들은 선교사들에 대한 나쁜 유언비어를 유포하였다. 그후 선교사 집의 창문에 돌들이 날라오고 비난의 글들이 나돌기 시작했다. 그 글에는 선교사들이 죽어가는 사람들의 눈알을 도려내고 어린아이들을 잡아 먹으며 아이 밴 여자의 배를 갈라 그것으로 약을 만든다는 것이었다. 이에 분노한 군중들은 폭도로 변해갔다. 이 일로 많은 선교사들이 심한 상처를 입거나 죽어 갔다. 영국 당국은 양주 사태에 대해 직접 개입하였다. 그러나 양주 폭동 이후 허드슨 테일러가 이끄는 선교회는 “군함을 앞세우는 선교회”라는 심한 비난의 대상이 되어 헌금이 대폭 줄어들었다. 200여 명이 넘는 중국 내륙 선교회에 후원금이 영국으로부터 들어오지 않자 허드슨 테일러는 사람들에게 구차한 변명을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만 기도를 하였다. 그후 얼마 있지 않아 죠지 뮬러에게서 편지가 왔다. 2000파운드의 수표와 함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어떤 상황에서도 변치 않는 믿음을 갖길 원하신다.
45.고난과 믿음
몇 해 전에 내 친구 하나는 가족들과 아주 거북한 관계 가운데 있었습니다. 가족들이 그가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을 공공연히 반대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가족들을 방문하기로 되어 있는 주말이 다가옴에 따라. 자기 믿음이 가족들의 공격에 잘 견딜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그는 염려도 되고 두렵기도 했습니다. 금요일 날, 풀이 죽은 듯한 그의 모습은 가족들과의 충돌 자체를 피하고 싶어하고 있는 그의 마음을 잘 나타내고 있었습니다. 월요일 아침이 되자 그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주말에 있었던 일을 들려 주는 그의 목소리는 유쾌하고 힘이 있었습니다. 주말에는 예상했던 대로 어려움이 많았고, 많은 모욕적인 말들이 그에게 감정적인 상처를 입히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의 믿음이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는 더 크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가족들의 장광설을 듣고 있는 동안에도 그는 하나님을의뢰하며, 핵심이 되는 성경 구절들을 상기할 수 있었으며,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그를 강하게 해주셨습니다. 그는 화를 잘내는 자기의 성격이 누그러지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일어나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연단의 불은 믿음의 반응이라는 보석을 드러냈고, 주님을 찬양하게 했습니다.
46. 믿음을 귀하게 여기시는 주님
나는 얼마 전에 캐나다에 있는 한 회원으로부터 아주 감동적인 간증을 받았습니다. 그 자매는 의사들로부터 뇌종양을 앓고 있다는 진단을받았습니다. 의사들은 서둘러 여러가지 검사를 하길 원했고,그녀는 매우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녀는 모든 장비를 갖춘 검사대 위에 누워 있을 때, “예수님, 지금 당신께서 바로 저와 함께 계시다면 저를 지켜주세요”라고 간단히 기도했습니다. 그녀는 곧 몇 가지 정밀한 검사에 들어갔으므로 그 이상 기도할 시간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녀의 믿음을 귀하게 여기셨습니다. 결국 그 다음 검사에서는 뇌종양이 아닌 것으로 나왔습니다. 그때 그녀는 그 어느 것으로도 깨어지지 못할 큰 평안과 기쁨으로 넘쳐 흘렀습니다. 그 이후로 그녀는 여지껏 두통을 앓은 적이 없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로 안겼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인간의 아들되시는 예수님만이 당신이 처한 어두운 상황에서 위로를 가져다줄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십니다. 폭풍우는 당신의 환경에서 사납게 휘몰아 칠 수도 있고 당신의 내부에서 휘몰아 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당신은 표면에 나타난 사물 자체만 바라보고서 기운을 북돋아 줄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폭풍우 속에서 예수님을 찾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바로 거기에 계시며. 그는 당신이 처한 문제의 바다 위로 걸어오셔서 격려의 말씀을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47.신앙
얼마 전에 세상을 떠난 유명한 프란시스 쉐퍼 박사가 스위스의 라브리에서 세계의 지성들이 모인 가운데 이 시대의 방향과 믿음의 갈길을 제시하면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19세기에 일어났던 가장 커다란 비극은 사람들이 절대 가치를 버린 것이다.” 프란시스 쉐퍼 박사의 표현을 빌리면. “그래서 현대인은 절망의 선밑으로 떨어졌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절대 가치, 절대 표준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19세기 이전에는. 사람들은 절대적으로 옳은 것이 있고 절대적으로 그른 것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전제 아래서 옳다. 그르다 하는 논쟁을 벌였습니다. 그러나 19세기부터 사람들은 절대 가치를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예를 들어, 한 남자는 반드시 한여인과 영원히 함께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19세기 전까지는 누구나 받아들였습니다. 그것을 깨뜨리는 사람들조차도 일단은 받아들이고 깨뜨렸습니다. 그러나 19세기에 들어오면서, '이혼이 왜 죄냐'는 의문이 제기되었습니다. 한 여자가 한 남자와만 살아야 할 이유가 도대체 어디에 있냐고 따지고 들게 되면서 절대 표준과 절대 가치가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현대의 도덕적인 혼란과 문제는 그때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옛날에는 썩 내키지 않아도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것을 받아들이면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그것을 받아들여야 할 이유가 무엇이냐? 내가 싫은데”라고 말합니다. 그리하여 “우상에게 절할 수 없다”는 절대 가치에 대해 현대인들은 “그것이 왜 우상이냐?”고 따지며 절대 가치를 무시해버립니다. 그러나 옛날 히브리의 세 청년은 우상숭배 문제에 대해서는 토의할 가치조차도 없다고 선언했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이러한 타협하지 않는 절대적 신앙이필요합니다.
48. 너희 믿음대로 되라
1979년 9월 6일 미스 아메리카 선발 대회에서 1등으로 당선된 세릴 프레위트양의 간증은 한때 많은 은혜를 끼쳤습니다. 그녀는 1968년 어렸을 때 아버지와 함께 자동차를 타고 가다가 차가 전복되어 왼쪽다리를 다쳐서 봉합수술을 받았지만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불구자가 되었습니다. 그 후 상처는 아물었지만 세포가 죽었기 때문인지 발육이 정지되어 왼쪽 다리가 오른쪽 다리보다 2인치나 짧은 절름발이가 되고말았습니다. 모두들 그녀의 뛰어난 용모를 아까와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교회에 참석하여 훌륭한 신앙의 소녀로 성장했습니다. 1974년 10월 21일 그녀는 미시시피주의 잭슨시에서 열린 부흥회에 참석했습니다.300여 명의 참석자 가운에 섞여 하나님께 자기의 다리가 낫게 해 달라고 마음을 쏟아 기도했습니다. 열심으로 기도하고 있을 때 자기의 왼쪽 다리가 쭉쭉 늘어나는 것을 느꼈습니다. 일어나 걸어 보았습니다. 기적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2인치나 짧던 왼쪽 다리가 오른쪽과 똑같아졌습니다. 마침내 그녀는 52대 미스 아메리카로 당선되었던 것입니다. 미스 아메리카는 미스 유니버스나 다른 미인들과는 달리 용모만이 아니라 교양이 많은 사람이 당선되므로 거기에 뽑히는 사람은 더 명예스럽다고 합니다. TV에서 그녀는 간증하기를 "주님 외에 누가 저를 고쳤겠습니까?"라며 아름다운 소리로 주를 찬송하는 것이었습니다.
49.믿음의 기도
아프리카의 그리스도인 청년이 고열로 헛소리를 해 대고 있었다. 고통이 그의 몸을 휘감고 있었다. 좀처럼 열이 내려가지 않았다. 유럽에서 온 선교사마저도 도움이 되지 못했다. 환자의 고통을 덜어 주기 위해 할 수 있는 대로 다 해보았다. 선교사가 한 가지 아는 것은 환자에게 얼음 주머니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아프리카 정글 속에서 얻지 못할 물건을 탐내는 것과 같은 것이다. 환자의 어머니는 하나님께서 불가능을 가능케 하신다는 선교사의 설교를 들은 적이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하나님께 얼음을 달라고 함께 기도하자고 했다. "얼음을? 이렇게 뜨거운 곳에 하나님이 얼음을 주실 수가 있겠소?"라고 선교사는 난처한듯 말했다. "그래도 구해 봅시다"하고 그 어머니는 간청했다.그래서 두 사람은 환자의 침대 옆에 무릎을 꿇고 얼음을 주시기를 기도했다. "주님, 내 아들을 치료하는데 얼음이 있어야 한다면 얼음을 보내 주소서. 당신께서는 하실 수 있음을 믿나이다." 기도가 끝나자마자 뇌성이 울리고 큰 공만한 얼음들이 오두막 지붕 위로 쏟아졌다. 우박이었다. 마침내 청년은 회복되었다. "하나님의 뜻 아닌 일을 제외하고는 응납되지 않는 기도는 없다." "기도가 어떤것(Anything)이냐 하면 그것은 바로 모든 것(Everthing)이다. 그게 사실일진대 그것은 가장 위대한 진리이다."
50.갱신된 믿음
미국에 가면 이런 말이 있습니다. “내가 결혼한 내 남편은 어디 갔는가.”라는. 처음 결혼했을 때 남편은 자기를 참으로 사랑해 주고 위해 주는 좋은 남편이었는데 몇 해 지나니까 그 남편이 무언지 좀 변해 버렸습니다. 자기를 무시하고, 등한히 하고, 사랑치 아니하는 그런 남편이 되었습니다. “처음 결혼했던 내 남편은 어디에 갔는가.” 하는 말입니다. 같은 말을 부인에게도 할 수 있습니다. “내가 결혼한 내 아내는 어디 갔느냐.” 처음엔 좋은 아내였고 아름다운 여성이었는데 몇 해 가니까 마음이 변심되어 남편을 무시하고 등한히 하고 돌보지 않습니다. “처음에 결혼했던 내 아내가 어디 있는가.” 아마 이와 같은 문제는 모든 세계에 적용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계시록 2장에 보면 에베소 교회에 주신 말씀 가운데 “처음 행위를 가지라”는 말씀이 나와 있습니다. 언제나 마음이 새롭게 갱신되어 나가는 곳에 건전한 생명이 있는 모습으로 유지되어 갈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주님께 대해 늘 새롭게 받는 갱신된 믿음을 가질때 확고한 신념 가운데 살 수 있다고 믿습니다.
51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사람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사람은 영적으로 죽은 사람과 같습니다. 영적 죽음에는 다음과 같은 특징들이 있습니다.
1. 활동이 없습니다. 영으로 죽은 사람은 하나님과 영생에 대하여 무능력합니다.
2. 감각이 없습니다. 죄와 더러운 양심으로 꽉 차 감각이 없습니다.
3. 냄새가 납니다. 영적으로 죽은 사람은 죄와 사망의 냄새가 납니다.
4. 매장되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정욕과 악습과 죄의 무덤에 매장되어 있습니다. 술과 음탕에 빠진 사람들은 모두 매장된 자들입니다. 더러운 무덤이나 깨끗한 무덤이나 똑같이 무덤에 불과한 것처럼, 아름다운 사람이든 추한 사람이든 주님이 없는 사람은 무덤에 매장되어 있는 것입니다.
5. 묶여 있습니다. 여러가지 근심, 불안, 사람들의 평가에 묶여 있습니다.
6. 다른 사람과 교제가 없습니다. 진정 마음을 열고 생명을 나누지 못합니다. 죽은 자들에게는 생명 이외에는 아무것도 소용없습니다.
52. 불신자들의 최후
드루드회(Druidical Society)라는 단체는 39명의 회원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모임의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참된 신앙을 방해하고 조롱하며 모독하는 일이었다.
이 단체가 모여서 아주 극단적으로 신앙을 조롱한 일이 있었는데, 그들은 성경을 불에 태우고 개에게 침례(세례)를 베풀고 개와 함께 앉아서 성찬식을 행하였다.
그런데 바로 그날 저녁에 그 단체의 회장이 이상한 염증에 걸려서 그의 두 눈은 퉁퉁 불어 튀어 나오고 혀가 부풀어 올랐다. 그는 극심한 육체적이고 정신적인 고통으로 밤을 지새다가 새벽이 되기전에 죽어 버렸다. 그리고 또 다른 한 회원이 죽어 있는 것을 이튿날 아침에 발견하게 되었다.
그후 5년 안에, 남아 있는 34명의 회원들이 모두 다음과 같이 죽었던 것이다.
8명이 총에 맞아 죽었고, 2명은 굶어 죽었고, 7명은 단두대에서 죽었고, 3명이 사고로 죽었고, 1명은 경련을 일으켜 죽었고, 7명이 물에 빠져 익사하였고, 5명이 자살해 죽었고, 한명은 추위에 얼어 죽었던 것이다.
하나님의 이름을 망녕되이 일컫는 자들이 맞은 최후이다.
“나의 자녀들이 정말 지옥에 떨어질까 두려워하는 마음을 갖겠금 지옥에 대하여 충분히 설교를 하지 않는 목사에게는 내 돈의 한푼이라도 내어 주지 않겠다”-셋 레스-
53. 천생연분이로군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교포부부가 서로 총격을 가해 모두 죽은 끔찍한 사건이 발생했다. 연하인 남편의 잦은 외출에 화가 치밀은 부인이 권총으로 쏜 것이다. 턱과 가슴에 각각 한발씩의 총격을 가하고 총을 떨어뜨린 채 도망치는 부인을 유혈이 낭자한 남편이 권총을 집어 명중시킴으로써 두명 다 죽고 말았다.
지난 9일 필라델피아에서 일어난 남편 K씨(45)와 부인 K씨(53)의 죽음을 놓고 모인 곳마다 말이 많았는데 신문을 보고 있던 어느 독자는 혼잣말로 `천생연분이로군'이라고 뇌까렸다.
기독교에서는 부부를 `하나님의 예정된 짝', 불신세계에서는 `천생연분'이라고 하는데 그 독자의 말은 진실한 짝이란 표현보다는 성격이 과격한 부부끼리 만났다는 말로 들어야 할 것 같다.
어떤 부부는 둘 다 성질이 브레이크가 고장난 기차 같아 급하게 달리기만 하고 밤낮 싸움만 하는가 하면, 또다른 부부는 게으르고 느려서 초겨울에 펴놓은 이불도 겨울이 다 지나서야 개놓는다든가 쓰레기가 대문까지 차도 치울 생각 한번 안하고도 태연하게 살아가기도 한다.
과연 어떻게 만나야 할지는 잘모를 일이지만 부부란 상대적으로 한쪽이 급하면 다른 한쪽은 조금 느리고, 한쪽이 보채면 다른 한쪽은 좀더 늦추어서 균형을 잡아야 할 것 같다.
죽은 K씨 부부 금고에서는 1백50만 달러의 현금이 나왔다고 한다. 우리나라 돈으로 계산하면 약 12억원에 가까운 돈이니 행복은 결코 돈으로 이루어지지 않음을 증거하는 사건이라 할 것이다.
54.불신
옛날 어느 곳에 오래된 고목이 한 그루 서 있었습니다. 너무나 큰이 나무 위에는 매들이 날아와 둥지를 짓고 새끼들을 기르고 있었고 나무 밑에는 산돼지들이 새끼를 기르며 살고 있었습니다. 매들이 떨어뜨리는 나뭇잎과 찌꺼기들은 밑에 있는 돼지들의 먹이가 되었고 돼지들의 찌거기는 매의 먹이가 되었으므로 이들은 서로 공생하며 평화롭게 살았습니다. 이들의 사이가 샘이 난 여우가 이들을 갈라놓기 위한 한 가지 꾀를 생각해냈습니다. 여우는 곧장 매에게로 달려가 “나무 밑에 있는 돼지들은 너희 매를 잡아 먹으려고 매일 나무 밑둥을 갉아 먹고 있단다. 얼마 못가서 나무가 쓰러지면. 네 새끼들은 떨어져서 돼지의 밥이 될 것이다. 이따금 나무가 심하게 흔들리지 않던. 그게 바로 밑둥이 넘어지려는 징조야.” 그리고 이번에는 돼지에게로 달려가서 “나무 위에 있는 매들은 너희 돼지새끼들을 잡아먹으려고 항상 기회만 노리고 있단다. 어미 돼지가 먹이를 구하러 멀리 가면 그때 새끼를 잡아먹기 위해 이따금 어미매가 내려와서 너희 집을 기웃거리며 먹이를 찾지않던, 그게 바로 매가 새끼를 노릴 때란 말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때부터 매와 돼지의 생활은 서로를 믿지 못하는 생활이 되었습니다. 매는 모이를 구하러 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혹시 나간 사이에 나무가 쓰러지면 새끼들이 돼지에게 잡혀먹힐 것을 생각하니 꼼짝 못하고 항상 새끼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이는 돼지도 마찬가지여서 먹이를 구하러 가지 못하고 매와 돼지는 서로 경계하면서 새끼들만 지키고 있었습니다. 결국 매도 돼지도 굶주려서 죽고 말았습니다. 사단은 우리의 마음에 불신을 심어주어 우리를 파멸시킵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주님을 의지하면 우리의 삶은 풍성해집니다.
55. 두 딸
나는 어떤 어머니가 자기 자녀들 중 한 자녀가 자기에게 대해 가지는 조그마한 의심 행위로 인해 마음에 심히 분개하고 슬퍼하던 일을 지금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다. 그 어머니는 두 딸을 나의 집으로 데리고 와서 잠시 맡겨놓고 그동안에 어떤 볼 일을 보러 나가고 없었다. 이 두 딸 중 하나는 어린 아이의 행복된 신뢰심을 가지고 내 방안에서 발견할 수 있는 온갖 놀이품을 가지고 만족스럽게 놀면서 어머니가 돌아올 때까지 노래도 하고 뛰며 놀았다. 그러나 다른 딸아이는 제법 어른다운 조심과 불신을 품고 방 한구석에 쳐박혀서 모든 것을 곰곰이 회의하기 시작했다. 첫째로는 자기 어머니가 자기를 데리려 과연 다시 돌아올까를 걱정했고. 어머니가 자기를 잊어버리고 그냥두면 어떻게 하나 걱정을 했으며, 자기는 집에서 원래 장난꾸러기였으니까 어머니가 잠시라도 자기를 떼어놓고선 얼마나 기뻐하실까를 상상하기도 했다. 완전히 이 딸은 절망상태에 빠져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울면서 초라하게 남아 있었다. 정작 그 어머니가 돌아와서 울고 있던 이 딸이 사실을 전부 말해주자 그 어머니의 얼굴 표정은 굳었다. 나는 그때의 어머니의 얼굴 표정이 쉽게 잊혀지지가 않는다. 비애, 상처받은 사랑, 분개, 연민 등이 마구 튀어나왔다. 어머니는 흥분했다. 딸이 잘못인지, 자기가 잘못인지 도무지 누가 잘못된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의심이란 이런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언제나 최상의 것을 채워주신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을 가진 자를 가장 기뻐하신다. 어떠한 상황에서든지 그분께 감사를 드린다면 위로부터 오는 기쁨이 늘 있을 것이다.
56. 공짜 신앙생활
당신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이번 주에 어떤 희생을 치렀는가? 이 질문에 “이번 주에 교회에 두 번 갔습니다”라고 대답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나는 당신이 집에 있을 때만큼 재미를 보려고 교회에 간 것이라고 따끔하게 지적하고 싶다. 교회에 가서 친구들과 즐겁게 놀았으니 그곳에 가는 것이 즐거운 일이 아니겠는가? 즐기고 놀았으니 전혀 희생하지 않았다. 우리는 희생하지 않고 편한 일만 하려고 한다. 이런 모습을 반성해야 한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수많은 그리스도인이 아무 대가도 치르지 않고 공짜로 신앙생활을 하려는 아주 영악한 부류라는 것이다.
우리는 고난 받고 땀과 피를 흘리며 죽는 일에 대해선 예수님께 재빠르게 떠넘긴다. 그분이 고난과 죽음을 통해 맺은 모든 열매를 오직 믿음을 통해 우리의 것으로 만들려고 한다. 이것을 ‘매우 현명한 거래’라고 여긴다. 이렇게 수지맞는 거래를 한 우리는 스스로 대견스러워 등을 두드리며 다시 편한 일과 습관을 향해 쏜살같이 질주한다. 나의 이런 비판이 기독교인들에게 인기가 없겠지만, 오늘날 교회의 상태를 다음과 같이 진단한다. “복음주의적 교회에 다니는 교인들은 기독교를 통해 즐겁고 재미있는 시간을 보낸다. 게다가 덤으로 성경적 경건의 모양을 갖출 수 있는 기회마저 얻는데, 오늘날 그것마저 미미한 수준에 머물고 있다.”
「내 자아를 버려라」/ A. W. 토저 [생명의삶 2008.7.29]
57.신앙의 균형
독일 라이프치히의 양대 명물이 있다. 촛불기도회로 독일 통일의 초석을 이룬 니콜라이 교회와 성 토마스 교회다.
전자가 교회의 역사 참여를 보여준 대표적인 증거라면, 후자는 교회 영성의 본거지라 할 수 있다. 유명한 음악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1685∼1750)가 생애 마지막까지 26년 동안 이 교회의 오르가니스트 겸 음악감독을 맡으면서 140여 편의 칸타타를 비롯한 수많은 작품을 내놓은 곳이다. 바하의 무덤도 교회 본당에 있을 정도다. 교회음악의 산실이다.
라이프치히에는 균형이 있다. 두 교회는 기독교 복음 선교의 양축을 대변한다. 봉사와 예배, 참여와 영성, 일과 기도, 이웃 사랑과 하나님 사랑, '세상 속으로'와 '하늘을 향하여', '사이'와 '넘어서' 등. 라이프치히를 찾는 이들에게 두 교회는 최고의 신앙 학습 장소다. 한국 땅에서도 이런 교회의 모습을 보고 싶다. /박종화 목사(경동교회)
58. 자동판매기 신앙
동네 입구에 있는 주유소에 자동 세차장이 있어 가끔 차를 세차합니다.
500원만 넣으면 카페트를 빨아주기도 하고, 공기를 흡입하여 먼지를 빨아들이기도 하고, 센바람이 나와 먼지를 불어서 날려버리기도 합니다.
커피 자판기나 음료수 자판기는 흔하게 어디서든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미국에는 미국유타주에는 동전을 넣으면 이혼서류가 나오는 자판기가 있다고 합니다. 파리에는 1프랑을 넣으면 솔향기 산소를 뿌려주는 자판기가 있으며 동전을 넣으면 담배 한 개피에 불까지 붙여주는 자판기도 있습니다. 참, 별별 자판기가 다 있어서 편리한 세상이 되었습니다.
모름지기 장사란 사람과 사람이 얼굴을 마주보면서 물건이 좋네 나쁘네, 깎아달라 까짓거 기분이다~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감정'을 주고받는 것인데, 그런 '감정' 장사는 점점 사라지고 손가락 몇 개만 있으면 되는 '무감정'의 시대가 되었습니다.
혹시 우리의 신앙도 이렇듯 무감정 자판기 신앙이 되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벌써 사람들은 손가락 몇 개로 유명한(?) 목사님들의 설교를 골라서 듣고 있습니다. ⓒ최용우
59. 야물딱지게 신앙생활을 하자
흐리멍텅하지 말고 야물딱지게 신앙생활을 하자.
미지근하지 말고 야물딱지게 신앙생활을 하자.
유야무야 하지말고 야물딱지게 신앙생활을 하자.
어리버리 하지말고 야물딱지게 신앙생활을 하자.
해찰하지 말고 야물딱지게 신앙생활을 하자.
마귀에게 속지말고 야물딱지게 신앙생활을 하자.
뭉기적거리지 말고 야물딱지게 신앙생활하자.
근심걱정염려 하지말고 야물딱지게 신앙생활을 하자
여기저기 한눈 팔지 말고 야물딱지게 신앙생활을 하자.
정신 바짝 차리고 제대로 야물딱지게 신앙생활을 하자 ⓒ최용우
60. 신앙생활을 잘 하는 방법
"어떻게 하면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있을까요?"
하고 물어보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화초나 나무는 물이 충분하면 잘 자랍니다.
화초나 나무가 물을 공급받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뿌리로 땅속에 있는 물을 빨아들이는 방법과
잎으로 하늘에서 내리는 비나 이슬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산 속 바위틈에 자라는 나무를 보셨습니까? 물도 없이 어떻게 자랄까요?
아침마다 하나님께서 새벽이슬을 통해 나무의 잎을 충분히 적셔줍니다.
사람도 화초나 나무와 다를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땅에서는 은혜의 샘에서 생수를 공급받고
하늘에서는 하늘 문을 열고 물질을 공급받습니다.
'은혜의 샘'이 넘치게 하려면 예배드리는 일을 소홀히 하지 마십시오.
'하늘 문'이 닫히지 않게 하려면 기도하는 일을 소홀히 하지 마십시오.
신앙생활을 잘 하려면 다른 비결 없습니다.
'은혜의 샘'이 막히지 않게 해야 하고, '하늘 문'이 닫히지 않게 해야 합니다.
예배 잘 드리고 기도 잘하면 됩니다. ⓒ최용우
61.열쇠를 돌려야
어떤 외딴 마을에 술집이 하나 생겼다. 조용하던 마을에 술꾼들이 모이고 밤늦도록 어찌나 떠들어대는 지 인근 교회에서는 특히 주일 저녁 예배에 큰 지장이 되었다. 교인들은 하나님께서 그 술집을 불태워 버리시든지 어떻게 하여 달라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어느 수요일 저녁 비가 억수같이 퍼붓는데 교인들이 한참 기도하는 중 마침 그 술집에 벼락이 떨어져 순식간에 온 집이 다 타 버리고 만 것이었다. 술집 주인은 동네 교회에서 하나님께 그렇게 기도하여 재산을 잃었다는 것을 알고 법원에 재판을 걸었다.
반면에 교인들은 그럴리가 없다고 변호사를 대고 맞소송을 걸었다. 얼마 동안의 심의 끝에 재판관은 아주 도전적인 결론을 내렸다.
즉 술집 주인은 기도의 능력을 확실히 믿고 있었고 반면에 소위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기도의 능력을 믿지 않고 있는 것이라는 걸론이었다.
이 이야기에 미소를 지을 것이지만 사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하나님께 대한 기도에 믿음이 없을 때가 많다. 초기에 살았던 그리스도인들도 그런 불신이 있었다.
사도행전 12장에 보면 베드로가 하나님의 도움으로 감옥에서 풀려나올 때 교회는 그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고 있었다. 그러나 베드로가 자유로운 몸으로 그들이 모인 곳에 찾아왔을 때 로데라는 여자아이가 그의 음성을 듣고 모인 사람들에게 "베드로가 왔어요"라고 했지만 그들은 "네가 미쳤다. 그는 천사라"고 하며 믿지를 못했다.
베드로가 들어오고 나서야 보고 놀라지 않았던가!
주님은 그들의 간구에 응답하셨는데도 기도한 그들 자신은 그것을 기대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기도하며 간구할 뿐 아니라 그의 응답을 깨어 기다리는 믿음을 갖자. 기도가 열쇠임에는 틀림없으나 믿음이 있어야 천국의 자물쇠 구멍에 넣고 돌린다. /한국컴퓨터선교회
62 그래도 할렐루야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건강, 부, 권세, 명예, 출세 그것이 다 망가진다
고 하더라도 그래도 나의 삶을 지탱하고 있는 깊이의 차원 또 다른 세계의 추구가 결국은 우리들의 생을 풍부하게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같은 깊이의 차원의 삶은 어떤 고난이나, 급격한 변화나 세상적인 불행이나, 심지어는 불치의 병이 온다고 할지라도 결단코 절망하지 않는, 절망을 넘어서서 영원에의 세계에로 통하는 삶을 영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이라는 분이 "내가 사나 죽으나 예수에게 속하여 있다"고 고백하신 말씀은 생사를 초월한 참 사는 세계를 포착한 사람의 고백이라고 믿습니다. 여기에 노래의 출발점이, 또한 감사와 용기와 전진의 기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할렐루야!"이것이 오늘 여러분의 노래가 되시기 바랍니다. /한국컴퓨터선교회
63.주님을 섬기는 마음 (주님의 의지 믿음)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근심. 걱정. 번민 등 모든 것은 사라지고 만다.
나는 오늘까지 무척 괴로운 일을 당하기도 하고, 칼날로 위협 당한 일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또한 어떤 때에는 얻어맞고 아래위의 이빨이 부러지기도 하고 하여, 그 때문에 나는 때때로 생명의 위험의 고비를 여러 번 넘겼다.
예수의 제자 바울 역시 그러했다. 그는 신변에 위기가 닥치면 주 예수의 모습을 우러러 사모했다. 그리스도는 "바울아! 힘을 내어라"고 격려해주셨다. 앞이 막막할 때에 우리들은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아야 한다. 그리고 일그러진 마음을 또 한 번 돌이켜 보고 마음을 돌리는 일이 우리들의 종교이다.
"아 감당할 수 없다고 느껴질 때 주님의 모습을 바라보노라면 신기한 힘이 솟아오른다. 우리들의 속죄를 위해 못 박히신 주님의 모습을 앙모하여라! 우리들의 이 마음가짐을 맛보게 된다면 온갖 근심과 걱정 불경기도 충분히 타게되어질 것이다." /한국컴퓨터선교회
68.기적을 체험한 어머니의 믿음
어는 성가대원이 내게 이런 간증을 했다.
어린아이가 맹장염을 앓아 수술을 했는데, 맹장을 떼낸 뒷자리 창자에 혹이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 그것은 암 종류일 수도 아닐 수도 있는데, 의사들은 다시 수술을 하자고 제의했다. 그러나 어머니와 아들은 예수님께서 그 혹을 떼내어 주실 것을 믿고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께 먼저 기도했다. 이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는 내게 성령의 지시를 주셨다. 설교를 마친 후 병자를 위한 기도 시간에 내가 "내일 병원에 가서 수술하려는 사람 중에 뱃속에 혹이 난 사람은 오늘밤에 고침을 받았습니다."라고 말하자 그 어머니는 '이 말씀은 내 것이다,'하고 그대로 받아들였다. 다음 날 병원에 가서 엑스레이를 찍어보니까 혹이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져 버렸다. 하나님께서 고쳐주신 것이다.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된 것은 먼저 어린 아이의 어머니가 예수님께서 고쳐주신다는 뜨거운 믿음을 가졌기 때문이다. 즉 "주님께서 고쳐주신다."고 선포했을 때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믿음이 그러한 기적을 체험하게 한 것이다. /한국컴퓨터선교회
69 믿음의 눈
어느 교회 건축현장에서 세 벽들공이 땀을 뻘뻘 흘리며 벽돌을 쌓고있었습니다. 그 때에 지나가던 행인이 "당신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습니다까?" 라고 물었습니다.
첫번째 벽돌공은 '보시다시피 벽돌을 쌓고 있지요"라고 대답했습니다.
두번째 사람은,"하루치 돈벌이를 하고 있답니다. 처자식을 먹여 살려야 하니까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세번째 사람은 '저는 지금 대성전을 짓고 있습니다. 이 성전이 완공되면 이 성전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희망과 용기를 얻고 하나님을 찬양하겠지요. 아마도 길이길이 정신적 영적 영향을 미칠 위대한 전당이 될 것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이것은 믿음이 눈을 가진 사람의 모습입니다.
마지못해 일하는 사람과 즐거움으로 일하는 사람은 그 일에 대한 결과도 다르지만 그들 인생의 결과도 크게 다르다.
-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 (살전 5:16-18)
/안양일심교회 예장고신
70. 믿음의 능력
하나님이 바라시는 그러한 위대한 인물로 만들어 달라고 기도한다면 하나님은 그 기도에 응답하십니다고 에델 위터스(Ethel Waters)는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실패하지 않는 자는 돕지 않으신다. 나는 성경이 한 가지 사실, 즉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아름다운 계획의 산물이라는 사실에 대해 너무도 명백하게 제시해 준다고 믿습니다. 한 사람의 삶이 엉망진창이 되어 버렸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잘못이 아니라 그 사람의 잘못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계획을 따르지 않았거나, 그 계획을 기대하지 않았거나, 아니면 소유한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지 않았던 것입니다.
시편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모든 인간을 천사들보다 조금 못하게 만드셨다는 말씀을 읽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영광과 존귀로 관을 씌우셨다는 말씀도 읽게 됩니다.
당신은 진정 당신의 삶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을 따를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그리고 진정 그분을 당신의 후원자로 여기고 계십니까? 그렇다면 오늘 당신의 모든 것을 그분께 맡기십시오. 그리고 오늘부터 남은 인생을 하나님의 방법을 따르면서 살도록 하십시오. /로버트 슐러
71.무디의 믿음
다음은 무디 선생의 말이다. "나는 믿음을 달라고 기도했다. 그리고 믿음이 어느 날 하늘로부터 번개같이 뚝 떨어질 것을 기대했다. 그러나 믿음은 오는 것 같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로마서 10장 17절을 읽었다. '믿음은 들음에서 오고 들음은 성서(말씀)에서 온다'는 말씀을 보고 지금까지 내가 성서를 덮어놓고 믿음을 위하여 기도했던 어리석음을 깨달았다. 이제 나는성서를 공부하는 동안 내 믿음이 줄곧 자라나기 시작하는 것을 깨달았다. /한국컴퓨터선교회
72. 탐분과 타와이
어느 태국 주재 선교사의 얘기다. 여행을 하던 중 장삼을 걸치고 맨발로 걷는 태국 스님 한 분을 차에 태우게 되었다. 선교사는 전도를 할까 하여 말을 걸었다. 기독교에 대해 들어보았냐고 묻자 그 스님은 아주 좋은 종교라고 생각한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그는 덧붙여 예수님 말씀이나 부처님 말씀이나 다 같은 것이 아니겠는가 하고 말했다. 착한 일을 많이 해라 선하게 살아라 하는 것이 결국 모든 종교는 같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선교사는 죽어 천국 갈 자신이 있는가를 물었다. 그랬던 스님은 틀림없이 자기는 천국을 간다고 했다. "그러면 죄 용서함을 받았다는 말입니까?" 하고 선교사가 묻자 스님은 죄가 무엇인지를 몰랐다. 그래서 죄란 하나님을 믿지 않고 예배와 찬양을 드리지 않으며 그분께 전폭적으로 의지하지 않는 모든 것들이 죄가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스님은 "그런 건 이미 다 해결했습니다. 매일아침 저녁으로, 또 시시때때로 '탐분'(고양)을 많이 하니까 염려 없습니다.
그리고 나는 이미 어렸을 때부터 네 몸을 부처님께 '타와이'(바치다) 했는데 그 이상 무엇이 더 필요합니까?"라고 했다. 여기까지 이야기를 나눈 후 선교사는 그 마음이 답답함을 느꼈다.
성도들 중에서도 헌금 좀 많이 하고, 교회 일에 열심을 좀 내면 천국은 맡아 놓은 것처럼 착각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음을 생각한 것이다. /한국컴퓨터선교회
73. 믿음의 사랑
리챠드 범브랜드 목사가 약 30명의 크리스챤들과 함께 루마니아의 감옥에 갇혀 있을 때의 일이다. 하루는 김옥 문이 열리고 한 사람이 감옥 속으로 밀쳐 던져졌는데, 침침한 감방 속에서 그 사람이 누구인가 알아지기까지는 약간의 시간이 걸렸다.
감방 속의 모든 크리스챤들은 곧 그가 누구인지를 알게 되었다. 그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자기들을 체포하고 고문하던 비밀경찰의 대위였다. 그가 왜 감옥에 들어 왔는지 너무나 의아해 하는 크리스챤들에게 그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했다.
얼마 전에, 열 두 살 된 소년이 자기를 면회 왔다고 하여 사무실로 들여보내라고 했다. 수줍어하며 자기의 사무실에 들어오는 소년의 품에는 아름다운 꽃다발이 한 아름 안겨져 있었다.
소년은 입을 열어서 말했다. "대위님, 당신이 우리 엄마와 아빠를 체포해 가신 분이에요. 오늘은 우리 엄마의 생일이예요. 나는 엄마의 생일이면 꼭 꽃다발을 사서 엄마에게 선물하고 어머니를 기쁘게 해 드려 왔어요. 그런데 금년에는 당신이 우리 부모님을 체포해 갔기 때문에 어머니를 기쁘게 해 드리는 꽃을 선물할 수 없게 되었어요. 우리 어머니는 크리스챤이기 때문에 나에게 늘 가르쳐 주시기를, 원수도 사랑해야 하고 악을 선으로 갚아야 한다고 하셨어요. 나에게는 지금 어머니가 안 계시니까 이 꽃으로 대위님의 애기들의 어머니를 기쁘게 해 드리고 싶어서 가지고 왔어요. 이 꽃다발을 대위님 부인에게 전달해 주실 수 있으시겠어요?"
대위는 그 소년의 꽃다발을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는 소년을 부둥켜안고 눈물로 울었다고 한다. 그 후로 그의 마음에는 양심의 가책과 회개가 왔고 남은 인생을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기로 결심했다는 것이었다. /한국컴퓨터선교회
74. 신뢰
과학자와 생물학자 몇 사람이 알프스산에 있는 특별한 종류의 꽃을 조사하고 있었습니다.
어느날 들풀을 따라서 조사하던 중 아름다운 꽃을 찾아내었는데 그 꽃은 양쪽의 험준한 절벽으로 된 협곡에 있었습니다. 누군가가 그 꽃을 꺾으려면 절벽으로 내려가야만 했습니다. 이 꽃을 보고 있던 그 곳 원주민인 한 소년에게 "만일 네가 저 꽃을 꺾으러 계곡에 내려가면 많은 돈을 주마"고 했습니다.
그 소년은 협곡을 바라보더니 "잠깐만 기다리세요. 곧 돌아올께요"라고 했습니다. 잠시 후에소년은 어른 한 사람을 데리고 와서 "이 분이 밧줄을 잡아주면 제가 계곡에 내려가서 그 꽃을 꺽을 수 있습니다. 이 분은 제 아버지입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이 소년이 자기 아버지를 신뢰한 것처럼 주님을 신뢰할 수 있는지요? 때로 우리는 사람들이나 우리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더 신뢰하는 자신을 봅니다. 인간은 우리를 실망시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 가지 요구가 우리를 내려 누를 수 있지만 우리는 모든 일에 현명하시며, 모든 일을 우리의 선과 그의 영광을 위해 사랑으로 돌보아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한국컴퓨터선교회
75. 믿음이 슬픔을 덜어준다.
제1차 세계 대전 중의 나는 절친한 친구의 집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나의 동료 목사인 그는 방금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발지 전투에서 전사했다는 사망 통지서를 받은 터였다. 그 아들도 목사가 되기로 결정되어 있었고 충분한 성직자의 자질을 지닌 청년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가슴이 찢어지는 슬픔을 느꼈다. 그와 내가 침묵 속에서 함께 앉아 있을 때 그는 차분하고 사랑스럽게 아들에 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나는 한탄하거나 하나님께 반항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내 아들은 가버렸다오. 언젠가는 그 애를 다시 만날 수가 있겠지요. 한 가지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제 그 아이가 여기 없기 때문에, 내 몫의 목사직뿐만 아니라 아들 몫까지 두 몫의 목사가 되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노력할 작정입니다."
그는 이 불가피한 사건을 용기 있게 받아들였으며 그를 좌절시키는 힘과 싸워서 승리한 것이다. 우리가 슬픔을 이길 수 있는지 없는지는 우리가 지닌 믿음의 크기에 따라 그 슬픔을 유발하는 문제를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의해 결정되는 셈이다. /한국컴퓨터선교회
76. 가장 훌륭한 직공
우리가 생활하면서 여러 가지 일들을 결정해 나가는 것은 마치 무늬 융단을 짜는 것과 같다. 융단을 짜는 데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실이 사용된다. 그 융단에 들어 있는 무늬는 그것이 다 짜여질 무렵이 되어야 알 수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들의 삶의 패턴 역시 종말에 가까와서야 분명하게 알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생애에 들어오는 한 올 한올의 실이 다 최종적 상품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것이다.
무늬 융단을 짜는 사람이 하나의 융단을 짜기 시작할 때는 자기가 짤 상품에 대한 패턴이나 구상을 가지고 있다. 우리의 하나님 아버지는 가장 휼륭한 직공이시다. 그는 우리의 삶을 어떤 것으로 만드시려고 하시는지 스스로 알고 계신다. 그러나 그는 우리의 협동을 필요로 하신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생애에 대하여 어떤 꿈을 가지고 있는가?
여러분은 여러분의 삶의 무늬 융단이 거의 다 완성될 때, 즉 여러분생애의 여행이 마지막에 이르러 어떤 무늬를 보기 원하는가? 여러분은 여러분이 지금 하고 있는 여러 가지 결정들을 통하여 장차 완성될 상품에 기여하지 않겠는가? /한국컴퓨터선교회
77. 상급을 주시는 하나님
어떤 목사가 죽어서 심판대 앞에서 심문을 받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대는 항상 선했는가?]
[아닙니다]
[그대는 항상 의로왔는가?]
[아닙니다]
[그대는 항상 깨끗했는가?]
[아닙니다]
이 목사님은 곧 저주가 내릴 것이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는데 그때 밝은 빛이 환하게 비추며 주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이 보였습니다. 구세주는 이목사님을 껴안고 보좌를 향해 올려다보면서
[아버지 이 사람은 항상 선하지 못하고 의롭지 못했고 항상 깨끗하지 못했으나 세상에서 그는 저의 편에서 있었으니 지금 여기에서는 제가 이 사람의 편에 서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만일 이곳에서 그를 시인하면 그는 아버지 앞에서 우리를 시인하실 것이며 눈물이 없는 저 땅에서 우리에게 풍성한 상급을 주실 것이고 우리는 십자가를 내려놓고 면류관을 쓰게 될 것입니다. /한국컴퓨터선교회
78.믿음이 있는 삶
빌딩을 들어서면서 믿음이 없는 사람이라면 안심하고 그 건물 안에 들어갈 수가 없을 것입니다. 내가 들어가는 순간 와르르 하고 무너지는 와우 아파트 모양이 되지 않을까. 내가 타는 엘리베이터 도중에서 고장이나 나지 않을까. 만약에 우리가 우리의 생활 속에서 이렇게까지 의심을 하고 있다면 우리는 하루도 더 살지 못하고 말 것입니다.
믿음은 우리에게 이만큼 안정과 생의 근거를 주고 있습니다.
믿음 같이 든든하고 안전한 것은 더 없겠습니다.
대지에 두 발을 딛고 서서 하늘을 바라보는 대견스러운 인간의 모습은 믿음이 주는 안정 위에 기립하여 있는 모습입니다. 내가 너를 믿을 수 없고 네가 나를 믿을 수 없게 되어, 우리가 서로 믿음의 신실한 관계를 이루지 못하고 있을 때 그때의 비극은 가슴을 도려내는 아픔 보다도 더 큰 허무의 안개 속에 둥둥 떠내려가야 하는 비극일 것입니다.
주님이시여!
믿음을 잃은 인간에게 생명의 보호와 아름다운 생애를 위하여 믿음의 반석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생존을 담고 있는 이 사회가 진실하고 믿음직한 사회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주께서 인간에게 먼저 신실한 마음과 생각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믿음이 있는 인간, 믿음이 있는 사회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한국컴퓨터선교회
79. 취소된 판단
어느 어머니가 자기 아들의 안전을 위해 매일 기도했지만 그 아들이 어느 날 직장에서 작업을 하다가 사고로 숨졌다는 내용의 편지를 저에게 썼습니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의 해답을 지난 4년 동안 찾고 있었다] 고 그 어머니는 말했습니다.
또한 갑자기 심장마비로 남편을 잃고 혼자서 생활을 해야 할 부인의 이야기도 있습니다. 저와 아내가 장례식에서 그 부인을 만났을 때 그녀는 슬픔이 깊었지만 하나님께 그 설명을 요구하지 않은 여인이었습니다. 그 부인 역시 남편을 잃은 비극 가운데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려고 방황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과거의 경험으로 주님을 온전히 믿을 수 있는 분이심을 알았던 것입니다.
시련 중에 하나님을 축복하는 자는 그 시련을 통해 하나님으로부터 축복을 받을 것이다.
80. 십자가가 상징이 됨
십자가가 기독교의 상징이 된 것은 충성스런 첫번째 전사였던 콘스탄틴 대제 때부터이다. 콘스탄틴 대제는 312년 밀미안 교량전투 때 하늘에 나타난 불십 자가와 "이 표로 승리하리라" 라는 불 표적을 보았다. 그리하여 그는 십자가를 그린 군기를 앞세우고 병사들의 방패에는 그리스도라는 희랍어의 첫 글자`X'를 새기게 하여 싸움에서 대 승리를 거두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수치와 압제의 상징이었던 십자가가 그 후로 명예와 주권의 상징이 되었고 모든 나라들이 십자가를 교회의 상징으로 택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 후 라틴 십자가, T자형 십자가, 손잡이가 달린 십자객, X형 십자가, 감마형 십자가, 몰타 십자가, 방사형 십자가, 이중 또는 삼중 가로 막대를 지른 로렌 십자가, 층단 십자가 등 무려 385가지나 되는 많은 십자가가 등장했다.
그러나 우리는 자칫 십자가가 상징이 되었듯이 우리의 신앙마저도 상징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한국컴퓨터선교회
81. 썬다싱의 환상 속의 십자가
인도의 성자 썬다싱은 자기 조상의 신과 예수 중 어느 신이 참 신인가를 알 수 없어 괴로와 하다가 "살아 계신 하나님이여 어린 영혼에게 살아 계신 참 하나님을 가르쳐 주옵소서"라고 간절히 기도했더니 십자가를 지신 주님께서 나타나셔서 내가 참 하나님이라고 가르쳐 주셨답니다. 그때부터 그는 전적으로 주님께 헌신했습니다.
이와 같이 많은 사람의 신앙생활 가운데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나타나셨다든지 주님께서 친히 나타나셔서 환상으로 말씀하셨다든지 하는 이야기가 많이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것을 어떠한 경우는 극적으로 환상처럼 육체로 나타내시기도 하시지만, 그러나 보지 않고 믿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그런 환상을 구하지 말고 주님이 나와 함께 계시고 언제 어디서나 은총과 사랑으로 인도하심을 믿어야합니다. 우리는 주님이 함께 계심을 믿음의 눈으로 소유해야 합니다.
82.지옥자리를 채운 사람
신자의 나태함을 꼬집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어느 날 사탄의 대장이 잔치를 베풀면서 회의를 했다.
사탄의 대장이 "지옥의 자리가 많이 비었다. 이 자리를 채울 사람이 필요한데 무슨 좋은 방법이 없느냐?"라고 물었다.
그러자 한 사탄이 "세상에 가서 성경을 믿을 것이 못된다고 하겠습니다." 했고 다른 사탄이 "저는 세상에 신은 없다고 할겁니다. 그리고 지옥도 천국도 없다고 하겠습니다."하고 말했다. 그러자 옆에 잠자코 듣고 있던 막내 사탄이 "저는 세상에 내려가 사람들에게 '믿는 것도 좋지만 차차 믿어도 된다'고 하겠습니다"하고 했다. 얼마후 두 사탄은 몇 명만 데리고 왔지만 막내 사탄을 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와 자리를 채우게 된다.
그들은 모두 "차차 봉사하겠다", "차차 믿겠다" 등의 "차차-"하다가 때를 놓치고만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83. 과학자의 참된 믿음
1889년 24세의 독일인이 미국에 건너갔다. 왜소한 키와 찌그러진 눈썹, 남루한 의복, 더듬거리는 영어로 입국을 거절당할 뻔했던 이 사람은 그 후 하루 2달러의 급료를 받으며 현실과 싸워나갔다. 그는 신앙의 승리를 믿으며 매진, 10년 후 세계에서 주목받는 인물이 되었다. 이 사람이 유명한 전기 학자요 크리스천인 스타인 메츠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제 과학자들은 실험실에서 하나님에 관한 연구로 모든 일을 해야 합니다" /국민일보
84. 거룩한 뜻
위대한 종교 개혁자 마틴 루터에게 후레드릭 미코니우스라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널리 알려진 사람은 아니었으나 루터에게는 더 할 수 없는 격려와 위로와 기쁨을 주는 친구였습니다. 종교 개혁이 한창 진행되고 있을 무렵, 후레드릭은 불치의 병에 걸려 죽음을 앞에 두고 사랑하는 친구 루터에게 최후의 유서를 보냈습니다. 이를 받은 루터는 깊은 감회에 빠졌으나 곧 기도하기 시작했으며, 하루를 온전히 기도함으로 성령께서는 사랑하는 친구가 아직도 죽을 때가 안되었다는 사실을 루터의 마음 속에 확신시켜 주셨습니다.
루터는 후레드릭에게 다음과 같이 편지를 썼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너에게 살 것을 명령한다. 왜냐하면 종교를 개혁하는 하나님의 사역에 있어서 아직도 네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주님께서는 결코 네가 죽었다는 소식을 나로 하여금 듣지 않게 할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기에 나는 하나님의 뜻이 네게서 이루어지길 기도한다. 나는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고자 추구하므로 이를 확신한다."
이 편지를 받은 후레드릭의 병은 신속히 회복되어 의사가 선언한 불치의병에서 소생되어 6년을 더 살며 루터를 도와 종교 개혁의 위대한 사업을 완성할 수 있었다는 일화가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생명의 삶
85. 믿음의 모험
얼마 전 워싱톤에 있는 조폐공사에 한 관광팀이 도착하여 녹인 주물을 동전의 모형에 부어넣는 과정을 견학하였다. 직공은 한 남자에게 이렇게 제안하였다. "선생님, 당신이 손을 물에 대고 있으면 제가 이 주물을 붓겠습니다.
그래도 화상을 안 입게 되지요. 한 번 시험해 보실까요?" 그랬더니 "천만에요, 그러나 당신 말은 그대로 믿겠습니다" 라고 그 남자는 대답하였다.
그 때 그의 아내가 왔으므로 직공은 그녀에게 같은 제의를 했다. "네, 좋아요"라고 그녀는 선뜻 동의하였다. 실험이 안전하게 끝나자 그 직공은 남편되는 사람을 돌아보며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은 저를 믿는다고 하셨지요. 그러나 사모님은 저를 신뢰하셨답니다." 아내는 직공의 말과 기술을 믿고 대답하게 모험을 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신실함에 모든 것을 걸었었다. 그는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다. 믿음은 어디로 인도되는 지를 가르켜 달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희생 제물로 준비했었다. 그러나 '왜' 하나님이 이삭을 원하시며 '어떻게' 하나님이 그의 약속을 이루실 것인지를 몰랐다. 모험적인 그의 믿음이 그로 하여금 신실하신 자의 아비가 되게 하였다.
86. 하나님까지 잃어버리면
기독교 방송 드라마에 맹인 목사인 윤인수 목사의 간증 드라마가 방송된 적이 있습니다. 중병으로 앓아 누워 있는 어머니를 간병하기 위해 어린 소년 윤인수가 길거리에 나가 신문을 팔고 구두닦기를 시작했습니다.
친구의 도움을 받긴 했지만 앞을 보지 못하는 윤인수로서는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습니다. 어느 날 윤인수는 열심을 일을 해서 돈을 벌었습니다. 기뻐하며 그 돈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에게 돈을 내놓았습니다. 돈을 받아 든 인수는 버럭 화를 내었습니다. "십일조는 무슨 놈의 십일조인가, 하나님이 우리한테 해준 게 뭐가 있단 말인가, 나의 눈은 멀게 했고 엄마는 병들게 했고 공산당에게 쫓겨 피난민 신세가 되게 했고 재산도 다 빼앗기게 한 그런 하나님께 무슨 놈의 십일조를 내라느냐"며 항변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병든 어머니는 어린 아들의 손목을 꼬옥 쥔 다음 "인수야 고향 잃어버린 것도 한스럽고 집 잃어버린 것도 원통하고 건강 잃어버린 것도 서러운데 하나님까지 잃어버리고 믿음까지 잃어버리면 뭐가 남겠니"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이야기는 건강한 삶을 살아가면서 하나님을 멀리하고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들에게, 그리고 지금 당장 하나님께로 돌아와 잃어버린 믿음을 회복하지 않으면 안 될 절박한 상황에 처한 모든 사람들에게 엄청난 교훈과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올 때 우리 모두는 치료받고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생명의 삶
87. 믿음이 문제
어느 아주머니가 목사님을 찾아가서 자신의 고민을 다 이야기했습니다. 그 이야기 속에는 신앙적인 내용이 전혀 없어서 목사님이 아주머니에게 물었습니다. "자매님, 하나님을 아십니까?" 질문을 받은 아주머니는 대답 대신 그 질문을 목사님께 되돌렸습니다. "목사님은 하나님을 아십니까?" 목사님은 "나도 모릅니다"라고 대답하시며, 이어서 중요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나는 매 순간마다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서 놀라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보면 이 세상에 하나님의 역사가 아닌 것이 없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역사요 하나님의 품안에서 존재하므로 새삼 하나님을 안다 모른다 할 것이 없습니다. 증거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결국은 믿음이 문제입니다. 증거가 없는 것이 아니라 증거를 보지 않고 부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88. 믿음과 의심
믿음은 단순한 일개 동작이 아니고 연속된 행위이다. 그래서 늘 지니고 있는 마음의 자세이며 의심 없는 순종이다. 나는 위대한 사상가들 보다 위대한 신앙가들의 편에 서고 싶다. 믿음은 하나님의 영원하신 말씀에 부단 없이 긍정하는 영혼의 아멘 이다. 믿음의 최대 관심사는 하나님의 약속들을 획득하는 것이다. 믿음은 온갖 반대와 고난 중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언제나 발견한다. 우리가 믿음으로 살면 살수록 하나님을 신뢰하는 일이 더 쉬워진다. 의심은 영적 질병의 징조이다.
영혼이 건강하면 믿음을 생각지 않고도 우리는 믿게 된다. 믿음의 영웅들은 하나님께 모든 것을 걸었다. 역사는 이들이 옳았음을 증명한다. 믿음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수락할 용의가 있으며 하나님이 적의 편을 든다고 믿지 않는다. 이성의 승락이며 마음의 동의다. 감정이 아니다. 비록 감정이 믿음의 결과일망정.... /생명의 삶
89.신앙부흥의 선행조건
1. 겸손이다.
학생운동의 위대한 지도자 죤 모트는 말하기를 "겸손은 부단히 유지 되어야 한다. 인간의 생명에 대해서는 두 가지 견해가 있다. 하나는 인간의 생명은 자신의 것으로 임의로 취급할 수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의 생명은 타자에 속한 것이데 생명의 소유주는 그리스도 자신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자신들의 생명을 기꺼이 그리스도께 드리고 통회하여 마음과 정신을 낮춤으로 자신들을 우리의 위대하신 하나님의 처분에 맡기는 자들은 마음과 영혼의 소성함을 입게 될 것이다.(사57:15)
2. 기도이다.
쉘든 고든(Sheldon D. Gordon)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세상에서 위대한 사람들은 기도하는 사람들이다. 이 말은 기도에 대해서 '말하는 자'들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자신들이 기도를 믿는다고 말하는 자들을 두고 하는 말도 아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자들은 시간을 내서 기도하는 자들이다. 오늘날 바로 이들이 하나님을위해 최상의 것을 하고 있는 자들이다. 그들은 영혼들을 구하고 문제들을 해결하며 교회를 일깨우고 세상을 좀 더 오래 향기롭게 하는 일에 있어서 최상의 일을 하고 있다.
이러한 기도에 대치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3. 영적인 갈망이다.
우리는 적극적으로 여호와의 얼굴의 구해야 한다. 계속해서 하나님의 임재를 추구하는 자들만이 영적으로 이 세대를 일깨워 분발시키는 그리스도인의 사역자들이 될 것이다.
4. 고백과 회개이다
본문(대하7:14)은 우리에게 악한 길에서 돌이키라고 담대히 촉구한다.
우리는 오직 죄의 심각성, 사악함과 비열함에 대해 개인적으로 집단적이며 국가적으로 슬퍼 괴로워하게 될 때만이 신앙부흥을 체험하는 자들 될 수 있을 것이다.
-W. C. Kaiser, 신앙부흥의 영적 원리들, 209-210.에서
90.영적인 것, 현세적인 것의 조화
이 두 가지는(영적/ 사회적) 건전한 영적 삶에 있어서 병행한다. 죠지 물러는 기도의 위인이었지만 동시에 고아들을 돌보는 일에 있어서도 위대하였다. 챨스 스펄젼은 군중 앞에서 설교하였지만 여러 양로원과 고아원을 세우기도 하였다. 구세군 대장인 부드는 타락한 자들을 위한 복음전도자였지만 또한 실업 구제사업과 부녀자들을 위항 제반 사업을 대규모로 조직한 사람이다. 참된 기독교 신앙은 내세는 물론 현세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을 놓치지 않는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영적인 상태에 대해서 가장 깊은 관심을 보이는 자들은 대체로, 현세에서 사람들을 위해 최대의 것을 하는 자들이다. 영혼의 가치에 대해 깨달으면 영혼을 간직한 몸을 점점 더 소중히 여기게 된다. 우리는 사람의 전체를 돌보아야 한다.
/어네스트 베이커,성경의 신앙부흥 운동들, 123.에서
91.믿음의 눈
많은 보물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내게 있는 보물은 금과 은보다도 더 좋은 것이고 누구든지 빈 그릇을 가지고 오면 그것을 채워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그릇을 가지고 갔습니다. 금보다 은보다 더 귀한 것이기에 큰그릇을 가지고 가면 미안해서 제일 작은 그릇을 가지고 갔습니다. 주인은 아무 말 없이 가득 채워 주었습니다.
두번째 사람은 그것을 보고 그 사람보다 조금 더 큰그릇을 가지고 갔습니다. 주인은 또 아무 말 없이 가득 채워 주었습니다.
그것을 보고 있던 세 번째 사람은 그보다 더 큰그릇을 가지고 갔습니다. 너무 커서 미안하지만 한번 가지고 가보자고 생각하고 갔더니 크고 작은 것은 하나도 따지지 않고 또 아무 말 없이 가득 채워 주었습니다.
네번째 사람은 세번째 사람보다 더 큰그릇을 가지고 갔습니다. 역시 가득 채워 주었습니다. 그러자 첫번재 사람이 항의하기를 "왜 다른 사람은 나보다 더 큰그릇인데 가득 채워 주었습니까? 라고 했습니다.
주인은 그 사람에게 "너는 더 줄래야 줄 것이 없지 않느냐? 그만큼 밖에 채워 줄 수 없지 않느냐?"고 대답했습니다. /한국컴퓨터선교회
92. 하나님의 동행을 믿는 리빙스턴
검은 대륙 아프리카의 위대한 선교사 데이빗 리빙스톤 (D.Livingstone)은 말년에 옥스포드 대학에서 명예 박사 학위를 받게 되었다. 학위 수여식에 앞선 예배 시간에 리빙스턴은 학생들 앞에서 자신의 경험담을 얘기하고 있었다.
무덥고 짜증만 나는 한낮이 계속되고, 또 춥고 소름끼치는 그 많은 밤 동안 자신과의 싸움을 계속 했노라는 리빙스턴의 말에 많은 학생들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또 말하기를, 온갖 짐승의 공격과 인디언들의 방해로 당한 고통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고 했다. 사실 그의 오른 팔은 사자의 공격으로 불구가 되어 있었다.
연설을 마치자, 한 학생이 손을 들고 일어섰다.
"선생님! 선생님으로 하여금 아프리카 생활을 잘 이겨내도록 한 비결이있었다면 그것이 무엇이었습니까?" 리빙스톤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입을 열었다. "내게 있어 비결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저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하신 예수님의 말씀과 그분의 십자가가 나를 끝까지 붙들어 주었을 뿐입니다."
홍수 이후 하나님께서는 노아와 그의 가족들에게 무지개를 보이시며 새로운 언약, 즉 다시는 그와 같은 홍수가 있지 않을 것이라는 언약을 확증해주셨다.
노아는 아마도, 그 후로 고난과 역경이 생길 때마다 무지개를 통하여 보여 주신 하나님의 보호하심에 큰 위로를 받고 그것을 이겨 나갔을 것이다.
마치, 리빙스턴이 예수님의 말씀에 위로를 받아 용기를 얻고 아프리카에서의 고난과 역경을 이겼던 것처럼 /한국컴퓨터선교회
93.생명을 이루는 의
동유럽의 어느 나라에 공산군이 쳐들어와 때마침 예배를 드리고 있던 교회당을 포위했다. 단 한 사람도 빠져나갈 수 없을 만큼 교회당은 여러 겹의 공산군으로 둘러싸였다.
장교 한 사람이 차에서 내리더니 예배당 문을 활짝 열었다. 순간 긴장하고 벌벌 떨기만 하였다. "예수를 버릴 사람만 밖으로 나가시오! 그리고 예수를 따르기로 작정한 사람은 예배당에 남아 죽음을 기다리시오!" 예배당 안으로 쩌렁쩌렁 울리는 공산군의 장교의 명령은 그야말로 저승사자의 목소리였다.
한두 사람이 예배당 문을 빠져나가기 시작하자 저마다 앞을 다투어 문으로 향했다.
잠시 시간이 흐르고 예배당에는 이들을 지키던 장교와 열 댓명의 신자가 남게 되었다. 장교는 예배당 문을 닫고서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이제 저들은 죽은 목숨이오. 우리의 계획은 예배당에 있는 모든 사람을 죽이는 것이라오. 나도 그리스도인이오. 차마 당신들마저 죽일 수는 없소. 하나님이 살려주신 목숨이라 생각하고 어서 뒷문으로 도망가시오!" 한편 예배당 밖으로 나갔던 사람들은 트럭에 실려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하나님을 믿는 의를 우리에게 생명을 주는 그야말로 귀중한 것으로, 이생에서 뿐 아니라 내세에까지 그 생명은 우리를 살리게 될 것이다. /한국컴퓨터선교회
94. 완벽한 의사 예수
내가 잘 알고 있는 한 의사가 있는데 그는 높은 지식과 겸손하고 비단결같이 고운 마음을 지닌 사람이다. 그런데 그가 오진을 해서 더 살 수있는 사람이 죽고 말았다. (행3:16)
이 일로 인하여 마음 속에 깊은 상처를 입은 그는 날마다 울고 탄식하며,"나는 의사로서 실패자다. 나는 실패한 사람이다"라고 자신을 학대하여 완전히 자신감을 잃고 말았다. 그렇게 괴로운 생활로 일을 돌보지 않아 마침내 병원문을 닫아 버리고 술로 세월을 보내다가 끝내는 병이 들어 입원하고 말았다.
그는 병원에서도 대화하기를 거절하였고, 심지어는 가족들과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때 한 목사님이 그를 찾아가 전도하고 이같이 말했다.
"선생님, 당신은 수많은 환자들을 치료해 주셨지요? 그러면 수많은 사람 중에 한 사람 오진한 것은 한 부분에서 실패한 것이지, 당신 자신이 실패자는 아닙니다. 당신은 훌륭한 의사입니다. 예수님 앞에 나와 용서를 받아 당신 자신을 멸시하지 말고 훌륭한 의사로서의 자부심과 자신감을 가지고 일어나십시오. 결코 낙심하지 마십시오."목사님은 그를 위해 기도해 주었다. 기도가 끝난 다음 그가 " 목사님 정말 저는 실패자가 아닙니까?" 라고 조금은 힘있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서 그 목사님은 다시 한번 "그렇습니다. 당신은 실패자가 아닙니다.
훌륭한 의사입니다"라고 격려해 주었다.
그때부터 그는 다시 웃으면서 대화를 시작했으며, 자신감을 회복하고 병원문을 열어 환자들을 돌보았다.
그 후에 그 목사님이 그 병원을 찾아갈 때마다 그는 목사님의 손을 꼭잡고, "목사님은 내가 재생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은인입니다. 나는 목사님을 통해 예수님을 알게 되었고, 한 부분에서 실패했을 뿐이지 내 자신이 실패자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도 활달하고 쾌활하며 유능한 의사로서 많은 사람들을 치료해주고 있다. [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행3:16)/한국컴퓨터선교회
96.힐튼호텔 이야기
미국에 콘라드 힐튼(Conrad Hilton)이란 사람이 있는데 그는 아주 가난한집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이곳저곳으로 떠돌아다니는 행상인이었기에 그도 아버지를 따라 이곳저곳으로 떠돌아다니는 행상의 일을 했다.
그런데 이곳저곳으로 떠돌아다니자니 제일 힘든 일이 있었다. 저녁이 되면 힘든 일이 있었다. 저녁이 되면 잠자리가 제일 불편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낮에 장사를 잘하고 저녁이 되면 편안한 잠자리를 가질까 하는 것이 그의 염려였다. 그뿐만 아니었다. 어떤 때는 잠잘 처소를 찾지 못해 밤을 지새운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돌아가신 어머님의 생각이 간절했고 어머님의 무릎 위에 앉아서 듣던 성경구절이 생각났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라.] 그리고 생각하기를 자기처럼 떠돌아다니다가 저녁이 되면 찾아 들어가 피곤한 몸을 쉴 수 있는 호텔사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고 했는데... 호텔사업을 해보고 싶다고 그는 기도 드리기 시작했다.
오직 믿음 하나만 가지고 노력한 끝에 이루어진 것이 오늘날의 힐튼호텔인 것이다. 오늘날 힐튼 호텔 체인은 세계 어느 곳을 가도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 [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이다.](히11:1). /한국컴퓨터선교회
97.믿음으로 살리라
마틴 루터가 로마에 도착하여 교회의 부패상을 목격했을 때 크게 마음이 흔들렸다. 완전히 무흠한 교회로 믿었던 그의 신앙이 무섭게 동요되었다.
스스로 죄인이며 반역자로 생각하여 성당으로 가서 스칼라 상크타(신성한 계단)를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때 뇌리 속에서 성경말씀 한 귀절이 떠올랐습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롬 1:17)는 말씀이었다.
그는 진지하게 묵상하고 연구한 후 가톨릭 교회와 공식적인 절연을 선언하고 이 칭의 교리를 설교하기 시작했다. "의인은 행함이나 고해성사로 살지 아니하고 오직 믿음으로 사는 것"이라고 말했다.
성도의 거룩함은 믿음에서 출발하여야 한다. //한국컴퓨터선교회
98.세 번째 고민
실존 철학자 하이덱거는 "사람에게는 세 가지 고민이 있다. 첫째는 물질에 대한 것, 둘째는 사람에 대한 것, 세 째는 자신에 대한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물질 즉 돈을 벌려고 한다. 그것이 성공하면 다음으로는 사람은 자기 마음대로 지배하려고 한다. 만약 그것도 성공하면 마지막으로 자신에 고민을 느끼게 된다. 첫째의 고민을 푸는 자는 간혹 있다. 둘째의 고민을 푸는 자는 더욱 간혹 있다. 그러나 세계의 고민은 아무도 풀지 못한다."고 하였다. 이 세째의 고민은 믿음에서 얻어지는 영원한 소망만이 풀어줄 것이다. /한국컴퓨터선교회
99.긍정적인 믿음
시카고에 대 화재가 나서 온 시가지가 불바다를 이루었을 때의 일이다.
각 신문사의 기자들이 화재현장에 도착해보니 건물들이 모두 불타고있었고, 더욱이 시가지 한복판에 있던 무디 목사의 교회도 모두 불타버리는 것을 보게 되었다.
기자들이 무디 목사 곁으로 다가가 "목사님 항상 살아 계신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셔서 무엇이든지 원하기만 하면 이루어 주신다고 설교 하셨지요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거룩한 성전인 교회가 불이 타 없어지는 것을 가만 두십니까?"라고 빈정거리며 말하자, 무디 목사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벌써부터 하나님께 큰 교회를 달라고 기도해 왔소. 그 기도의 응답으로 지금 교회가 불탄 것입니다. 우리가 큰 교회를 헐고 다시 세워야 하는데 하나님께서는 불에 태워서 건물을 허는 비용이 들지 않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 말에 기자들은 어이없어 했다. 왜냐하면 무디 목사는 밤중에 화재를 당하여 잠옷 바람으로 겨우 목숨만 건진 빈주먹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자들은 다시 "그럼, 그 큰 교회를 세울 돈은 가지고있습니까?"하고 물었다. 그러자 무디 목사는 옆구리에 끼고 있던 낡은 성경책을 내놓으면서 대답했다.
"나는 수표와 돈을 가지고 나오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써도 바닥이 나지 않는 하나님의 금고인 성경책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얼마 안 가서 불에 탄 교회보다 더 크고 훌륭한 교회를 볼 것입니다."
무디 목사는 그 화재 이후 영국으로 건너가 전 영국을 뒤흔드는 부흥을 일으켰고, 영국에서는 교회건축을 위해 많은 헌금을 했다.
이렇게 해서 무디 목사는 영국 국민이 바친 헌금으로 화재가 난 자리에 옛날 교회보다 훨씬 크고 아름다운 교회를 지을 수가 있었다.
[내가 주님께 감사 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신묘막측 하심이라 주의 행사를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 /한국컴퓨터선교회
100. 마르키스의 선택
우리가 참된 믿음을 가지게 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을 부인하고 하늘의 영광과 빛의 세계를 바라보아야 하는데 이렇게 하고자 할 때 개인적으로 많은 어려움과 고통을 함께 받을 수가 있다. 이탈리아의 마르키스(Marquis)라는 사람은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되고 믿음을 간직하게 되면서 황제의 술관원이었던 그의 아버지가 물려주는 유산을 거절하고 아들로 불리워지는 것조차 거절했다. 또한 이탈리아의 타락된 생활과 쾌락으로 썩어져 가던 부귀를 누리는 것보다 차라리 그리스도를 따라 기꺼이 고난을 당하는 것이 낫다고 하여 그 쪽을 택하였다. 이로 인해 그의 아내와 자식과 모든 재물을 잃게 되었고, 그는 숱한 능욕과 고난을 당해야만 했다. 그는 이제 세상의 것을 바라본 것이 아니라 하늘의 찬란한 빛을 바라보았고, 하늘의 생을 바라보았기 때문에 그는 고난을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한국컴퓨터선교회
101. 신뢰로 타개한 경제공황
1930년대 미국에는 굉장한 경제공항이 있었다. 미국회사에서는 전반적으로 이런 현상에 공포를 느낄 정도였다. 실업자가 쏟아져 나오고 은행에 돈을 넣어두었던 사람들이 예금액을 찾아가 버려 은행문을 닫게되고 공장의 기계들은 작동을 멈출 정도로 대단했었다. 이처럼 혼란스러운 시대의 대통령은 루즈벨트였는데 그는 이 경제공항을 타개하기 위해 뉴딜정책 이라 불리우는 새로운 방안을 내놓고 실천하는 한편 매일 저녁 라디오 방송을 통해 경제적 불행은 곧 극복될 수 있다는 것을 계속적으로 이야기했다.
얼마후 정말로 공장의 기계들이 가동하기 시작했고, 고용원이 증가했으며, 사람들은 다시 돈을 은행에 예치하기 시작했다. 얼마 후 거의 정상적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것은 미국 사람들이 루스벨트 대통령을 믿고 신뢰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믿고 신뢰할 때 하나님이 우리를 견코케 하여 주신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붙잡고 계시는데 어찌 두려움을 이겨내지 못하겠는가.
/한국컴퓨터선교회
102.히틀러의 경호
독일의 독재자였던 히틀러가 그의 정책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자신을 암살하여 한다는 정보를 듣고는 극히 심한 경호를 하고 다녔다. 베를린에서 차를 타고 다닐 때는 기린차 처럼 커다란 밴츠를 타고 다녔으며 옛날 동료들로 하여금 운전을 하게 했다. 옆에는 항상 그의 수석보좌관이 타고 있었고 다른 호위병들은 다른 차를 타고 뒤를 따랐다. 간혹 자동차의 외부 발판에 히틀러의 친위대 군인들이 소총을 들고 서 있을 때도 있었다. 또한 큰 행사로 인해 국민들이 모여 있을 경우에는 그가 지나는 길에 대원들이 줄을 지어 서서 통로를 만들었다. 히틀러가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 이렇듯 철저히 경비를 하게 했듯이 하나님의 자녀인 성도들도 그 믿음을 더욱 견고히 지켜야 할 것이다. /한국컴퓨터선교회
103.천년간이나 유지되는 집(견고한 믿음)
천년간이나 그대로 유지되는 집이 있을까? 실제로 미국 테네사주 매리빌이란 곳에 그러한 집이 있다. 이 건물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가 다시 오셔서 세상을 다스리게 될 때까지 그대로 서 있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이 집을 지었다고 한다. 이 집은 99년이라는 긴 기간 동안에 완성되었는데 특이한 것은 집 안팎 어디에도 못을 사용한 흔적이 없고 문과 창의 틀을 제외하고는 나무를 쓰지 않았고, 대리석과 돌, 시멘트만을 사용해 벽은 두께가 5피트나 되도록 지었다는 것이다. 이 집을 지은 니콜슨 부부는 이 집은 주님 오실 때까지 견딜 수 있노라 믿고 있다. 그리스도인의 삶도 이와 같다. 주님 오시는 날까지 성도의 신앙을 계획하고 건설해야 하는 것이다. //한국컴퓨터선교회
104.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사업
아이언 사이드 박사(Dr Ironside)는 어렸을 적에 방학 때나 토요일 또는 학교에서 돌아오면, 기독교인이었던 한 스코틀랜드인이 운영하는 구둣방에 나가 일을 하여 홀로 살고 있는 어머님을 도왔다.
그런데 그 주인은 가게의 구석구석에 성경구절을 붙여 놓아 누구든 그곳에 들어서면 하나님의 말씀을 볼 수 있도록 하였다. 어떤 상품도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 하는 내용 없이 손님들에게 전해지지 않았으며 많은 사람들이 그로 인해 구원받기 위해 그를 다시 찾아오곤 했다.
아이언사이드 박사의 일은 구두 밑창을 만들기 위해 가죽을 두드려 펴는 것이었다. 적당한 크기의 소가죽을 잘라 물에 적신 후 완전히 말라 굳어질 때까지 두드려 펴는 것이었다. 한참을 두들기다 보면 온몸의 기운이 모두 없어지곤 했다.
어느 날 그는 기독교인이 아닌 구두장이가 가죽이 마르도록 두드려 펴지도 않은 채 젖은 가죽의 밑창에 못질을 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이래야 손님들이 빨리 다시 오게 된단 말이야"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기독교인인 주인은 아이언사이드에게 "나는 50센티나 75센티를 벌기 위해 구두를 만든 다고는 생각지 않는단다 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이 일을 하고 있지. 하늘나라에서는 모든 구두들이 내게로 몰려 올거야. 난 하나님께서 '댄(Dan), 너는 참 어리석게도 최선을 다하지 않는구나, 하고 말씀하시기를 원치 않는단다" 이라고 말하였다.
105. 평신도 신앙성숙비결 "이색주장"
분주한 일상생활에 쫓기는 현대의 크리스천들. 특히 직장을 가진 평신도들의 신앙성숙을 돕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이들이 교회에서 봉사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주는 것이라는 이색적인 주장이 제기됐다.
바쁜 사람들일수록 교회에서 자원봉사를 하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전략".
미국의 교회성장다이제스트(CGD)는 최근 "일반인들은 바쁘다는 핑계로 기도나 성경을 읽는 일을 게을리 하는 반면 교회에서 교사 성가대 상담요원 등으로 봉사하는 사람들은 아무리 바빠도 신앙생활을 등한시하지 않는다"며 "사회생활로 바쁜 사람들을 교회를 위해 바쁜 사람들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CGD가 미국의 직장인 크리스천 3백18명을 상대로 조사한 설문에 따르면 교회에서 봉사하지 않는 응답자 가운데 53%가 "가장 바쁠 때 중단해도 좋은 일"로 "하나님과의 교제시간을 줄인다"를 꼽은 반면 교회봉사를 하는 응답자 가운데는 3%만이 "바쁠 때 신앙생활을 위한 시간을 줄인다"고 응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토대로 CGD의 한 관계자는 "직장을 가진 평신도들의 신앙성숙을 위해 교회는 다양한 직무를 개발, 자원봉사자를 양성해야 한다"며 "직업을 살려 무료진료 세무상담 이^미용 스포츠교실 컴퓨터강습 꽃꽂이교실 문화강좌 등에서 봉사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106. 감사는 믿음의 척도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8)
기독교의 신앙은 '감사'에서 시작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감사란 다름 아닌 "창조와 구원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대한 기독교인들의 응답"이기 때문이다.
기독교인은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서 왔음을 알고 감사하는데 바로 이 감사가 예배의 동기이다. 구약성서에서 감사라는 말은 동사 [야다](감사를 드리다)와 명사[토데](감사를 드림)로 표현되고 있다. 구약성서에서 쓰이고 있는 이 [야댜]와 [토데]는 "마음의 샘줄기"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즉 마음에서 샘줄기가 흐른다는 말이다.
그리고 신약성서에서는 [유카리스테오스](감사한 마음을 가지다. 감사를 드리다), [카리스](감사)라는 말이 명사로 쓰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감사라는 말은 또 영어로는 THANKS인데 이 말은 "생각한다"란 뜻을 지닌 THINK에서 나온 말이다.
다시 말해서 감사는 깊이 생각하는 것으로 인생을 깊이 생각하고 하나님을 깊이 생각할 때 저절로 나오는 행동인 것이다. 때문에 하나님 앞에 어떻게 감사하는 생활을 하는지를 보면 바로 그 사람의 믿음의 수준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성경에서 감사의 표현은 구약과 신약이 조금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주로 구약은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역사적 관점에서의 감사가 그 핵심을 이루고 있으며, 신약은 그리스도의 대속에 대한 구속사적 관점에서의 감사가 주를 이루고 있다.
먼저 구약성서에서의 감사는 모든 시편마다 언급되고 있으며, 이스라엘 역사를 통하여 주제가 되고 있다. 이처럼 '감사 드림'은 이스라엘의 예배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다. 구약성경은 이스라엘민족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철저하게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을 살려고 노력하고잇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스라엘민족은 감사함으로 성전에 들어갔으며, 예배를 드릴 때에도 감사의 노래를 불었으며, 서원을 드리는 제사를 올리면서도 감사를 하였다.
또한 그들은 감사를 번제 대응으로 하였으며, 야훼의 제단 앞에서 행하는 "재판"에도 감사드림이 따랐다. 이스라엘 민족이 예루살렘에 올라간 것은 다름 아닌 야훼의 이름에 감사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러한 이스라엘민족의 감사는 바로 신앙에서 온 것이었다. 이스라엘민족은 야훼가 이스라엘과 맺은 계약을 지키는데 신실하게 언제나 감사를 표했다. 이러한 감사는 하나님에 대한 지신들의 의무를 다하겠다는 표현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구약의 감사는 신약에서는 조금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역사적 관점에서의 감사가 구약에서의 감사였다면 신약의 감사는 그리스도의 대속에 대한 구속적 감사가 그 핵심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신약에 보면 생전에 예수를 안 사람들은 예수가 행한 일과 그의 인격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다. 그러나 예수를 직접 뵙지는 못했지만 그를 믿는 자들은
◇하나님의 권능에 의해 이루어진 것에 대하여
◇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도래하는 왕국에 참여할 것에 대하여
◇복음을 전하게 된 데 대하여
◇특별한 영적인 은사에 대하여
◇ 육적인 음식에 대하여
◇ 세상에서 맛볼 수 있는 즐거움에 대하여
◇신앙의 전파에 대하여
◇ 형제들의 사랑과 신앙에 대하여
◇하나니의 인도하심에 대하여 감사했다.
사도 바울은 성도들에게 감사하는 자가 되라고 역설했다. 바울이 감사생활을 강조한 것은 감사가 믿음을 온전케 하기 때문이다. 감사는 은혜 받은 자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은혜에 감사하게 될 때 교인들은 더욱 더 그 은혜 안에서 굳건한 믿음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또한 감사는 우리의 생활을 윤택하게 해주며 우리의 미래를 확실하게 해준다. 감사는 또 다른 감사의 역사를 경험케 하며 이러한 계속적인 감사는 우리의 영혼을 살찌우게 한다. 우리들이 가진 것 중에서 아무것도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않은 것이 없다. 그러면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의 감사는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가. 이밖에도 일반적인 생활에서의 감사(살전5:18)가 있는데 이 감사야말로 긍정적인 신앙생활의 원동력이다. 말세의 특징 중 하나는 감사가 없다는 것이다.
107.'일회성' 감사 난무
크리스찬이 감사를 실천해야 하는 이유는 이러한 성서적 근거를 갖고 있다 즉 기독교 신앙의 출발점이자 귀착점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 드리는 모범을 보이셨고, 그리스도의 은혜에 감사를 드렸다는 사실이 성서 전편에 기록돼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대의 크리스찬들도 감사의 생활을 실천해야 마땅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감사의 생활은 기독교신앙을 지속하는 양식이다. 매일 매일의 가정예배와 주일성수를 통해 구원받은 것을 감사하고 이를 이웃과 함께 나눠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감사의 마음을 어떻게 표현하냐다. 자신이 받은 은혜대로 감사하면 문제는 간단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그러지 못하는 게 교회생활이다. 다시 말해서 다른 교인들 눈치를 살피고, 다른 교회 행사를 곁눈질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크리스찬의 미덕으로 간주될 수 있는 감사는 무엇보다 마음에서 우러난 감사여야 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여론이다.
구원에의 확신에서 오는 감사, 새로운 삶의 비전을 찾는데서 오는 감사, 새로운 삶의 비전을 찾는데서 오는 감사, 불신자를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는 데서 오는 감사 중 마음에서 우러난 감사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마음에서 우러난 감사가 아니라면 그것은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요식 행위에 불과할 것이다. 장로는 이 정도 해야 된다니까 할 수 없이 생색을 내고, 초신자니까 이 정도 해도 괜찮겠지 하고 생각해 버리면 잘못된 감사라는 것이다. 일단 감사하는 마음이 기도와 찬송으로 흠뻑 묻어난다면, 그 다음 문제는 수준이다. 어떤 수준에서 감사하는 마음을 나타내면 좋을까 하는 것이다. 무턱대고 남들 하는 대로 따라 하다간 체면 잃기 쉽상이고 반대로 감사의 과소비를 자행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한때 서울의 모 교회에서는 그냥 십일조와 감사헌금만 내면 될 것을 생일헌금, 취업헌금, 사업헌금, 승진헌금, 입학헌금 등 각종 명목으로 감사를 '쥐어짜' 사회적으로까지 물의를 빚기도 했다. 따라서 감사를 실천할 때는 기도의 응답으로 시작하는 것이 좋을 것으로 보인다. 하나님께서 이런 감사를 원하신다는 확신 속에 감사를 실천하는 것이 좋을 것이란 얘기다. 그렇게 한다면 너무 드러나지 않게 감사를 표현할 수 있고 그 속에서 신앙의 확신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한편으로 감사하는 생활은 봉사의 삶으로 나타난다. 진정한 감사는 봉사행위에서 제대로 체험되고 실천될 수 있기 때문이다. 봉사라고 하는 구체적인 실천과 체험이 없으면 그 삶의 신앙생활은 알맹이가 없는 것이다. 감사는 곧 봉사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 한국교회는 물질적인 감사에만 관심을 갖고 봉사사업에는 무관심한 경우가 많은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수해가 났다거나 대형참사가 일어나면 서로 앞다퉈 담임목회자 사진과 성도일동의 명의로 거액의 헌금을 언론매체에 기부하면서도 주변의 장애인 시설이나 고아원, 양로원에는 특정기간 아니면 얼굴도 내밀지 않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심지어는 교회주변 주민들에게 주일날 주차피해를 주고서도 사과의 말 한마디하지 않아 물의를 빚는 경우도 심심찮게 일어나고 있다. 하나님께만 감사하고 주민들에겐 감사할 필요가 없는지 모르겠지만, 감사의 기본자세가 잘못돼 있다는 지적이 높게 일고 있다. 물론 대부분의 교회는 관할 구청이나 동사무소와 협조체제를 유지하여 무의탁 노인들을 돌보거나 소녀소녀가장들을 후원하는 일에 열심을 내고 있다. 그런 교회들은 각 기관으로부터 감사장이나 표창장도 받는다. 그것이 결국 해당교회의 지역선교에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문제는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감사, 사진 찍기 위한 봉사, 실적 위주의 헌금이다. 이런 행태들은 결국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교인들에게 모종의 억압을 강요해 결국 교회를 떠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따라서 한국교회는 앞으로 감사하는 마음을 물질위주보다 철저한 봉사로 나타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교회전체가 움직이는 대형 행사보다 남전도회나 여전도회, 청년회 등이 중심이 되어 소규모로 진행할 수 있는 봉사사업을 발굴하고 지원해야 한다. 교회전체가 움직이는 것보다 이렇게 움직이는 것이 봉사사업을 훨씬 밀도 높게 펼칠 수 있기 때문이다. 각 단위별로 봉사대상을 정하고, 필요한 인원을 할당하며, 물질을 보태 지속적으로 후원하는 것이 피봉사자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고 봉사자들에게도 확실한 감사를 체험케 할 수 있다. 한편으로 한국교회는 '일회성' 감사를 지양해야 한다. 일반 기업이나 사회단체들이 생색내기 위해 연말연시에 불우이웃을 돌아보는 것은 이런저런 사정으로 이해해 줄 수 있다지만, 교회마저 부활절이나 성탄절 외에는 불우이웃을 돌보지 않는다면 사회적으로 더욱 지탄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예배 때마다 기도할 때마다 입으로만 감사를 되풀이할게 아니라 구체적인 현장을 찾아가 그리스도의 은혜에 감사해야 할 것이다.
108. [축복수단]으로 변질
한국교회는 [감사]를 강조한다. 감사가 기독교신앙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요소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이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교회가 강조하는 [감사]는 그 본질이 크게 손상되고 있어 우려를 낳고 있다. 한국교회의 감사에 대한 오해는 [물량주의]라는 병폐와 맞물려 더욱 심각한 양상을 지닌다. [감사]가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은혜에 대한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더 큰 축복]을 받기 위한 수단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으면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 구원을 받는다는 사실을 인식한다면, 교인의 모든 감사의 삶 자체일 수밖에 없다. 여기서 한걸은 더 나아가 세상에서 건강으로나 물질로나 어려움없이 잘살게 된다면 그것 역시 하나님의 은혜이니 감사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문제는 일이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많은 목회자들이 [받은 축복에 대해 십일조 등 여러 명목으로 감사의 예물을 드리면 더 큰 축복을 내려 주신다"고 강조한다. 즉 지금보다 더 잘살려면 아낌없이 감사의 ㅖ물을 바치라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하나님을 [감사의 대가로 더 많은 것을 주시는 존재]정도로 격하시키는 동시에 감사라는 신앙행위를 하나의 거래 정도로 변질시키는 것이다. 우리나라 초창기 기독교는 그렇지 않았다. 물론 당시에는 [이낌없이 드릴만한] 물질도 거의 없었지만 순수한 마음으로 감사의 예를 올리곤 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날연보]라고 할 수 있다. [날연보]란 하나님께 감사의 예물을 드려야 한는데 가진 것이 없으나 어느날 하루를 정해거 봉사하는 것을 말한다. 비록 눈에 보이는 물질을 드리지는 못해도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은 충분히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경제가 발전하고 갈수록 물질을 중시하는 타락한 자본주의에 물들면서 교회 역시 그러한 풍토속에 매몰돼감으로써 [물질을 통한 감사]가 강조되고 급기야는 감사가 감사로 끝나지 않는 분위기가 확산된 것이다.
현재 한국교회 내에서 [감사]를 둘러싸고 나타나는 문제들을 아주 심각하다. [감사의 예물]을 강조하는 것 자체를 무조건 나쁘다고만 볼 수 없다. 그러나 앞서 지적한 것과 마찬가지고 이것이 [더 큰 축복]을 위한 수단으로 변질되는 것은 결코 기독교적이라고 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감사의 예물을 걷어들인 뒤 그것을 오로지 교회를 늘이고 치장하는 데에만 사용한다는 것은 더욱 큰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물질로 표현된 감사]는 당연히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사용돼야 함에도 한국교회는 이를 의도적으로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감사의 예물]을 강조하다 보니 자연히 [감사]와 [헌금]이 불가분의 관게를 거칠 수밖에 없다. 한국교회에서는 [감사]가 곧 [헌금]이라는 사실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일선 목회자들은 [범사에 감사하라]는 성경의 가르침을 삶속에서 일어난 모든 일에 대해 [감사헌금]을 드리라는 의미로 가르친다. 이에 따라 생일부터 시작해서 개업, 이사 등 모든 일에 대해 감사헌금을 내는게 관례화 돼 있다. 뿐만 아니라 자녀의 입시, 취직 등 개인적으로 기쁜 일에 대해서도 감사헌금을 내야 한다. 그러다보니 감사헌금의 종류만해도 수십가지에 이른다.
일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심한 경우, [일이 잘되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께 예물을 바쳐야 한다]며 노골적으로 헌금을 강요하는 경우도 있다. 수험생 자녀를 둔 부모, 몸이 아픈 가족이 있는 교인들이 주된 대상이다. 이것은 한마디로 [헌금을 통해 축복을 사라]는 것과 조금도 다름이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 역시 [감사의 예물]로 치부되고 있다. 감사헌금을 미리 내고 축복을 [예약] 하는 것이다. 잘못된 감사의 개념은 한국교회르 끝없는 문제의 암흑속으로 몰아가고 있다. 이제는 믿지 않는 사람들까지도 "교회가 너무 돈을 밝힌다"고 서슴없이 말하곤 한다. 이같은 질곡에서 벗어나 교회의 본질을 회복하고 성장을 계속하기 이해서는 [감사]에 대한 올바른 개념을 하루속히 정립해야만 한다. 특히 물질적인 감사만을 강조한다거나, 감사를 축복의 수단 정도로 여기는 잘못된 의식에서 벗어나는 것이 중요하다.
109.기독교인 성서관 신앙의식 조사 설문 결과
기독교인들의 성서관과 신앙의식을 조사한 설문결과가 발표돼 괸심을 끌고 있다. 크리스챤 아카데미 공동체성서연구원(원장 김영운 목사)은 지난해 12월부터 6개월동안 예장통합, 합동, 감리교, 기독교대한 성경교, 기장, 침례교 등 개신교의 대표적인 6개 교단 소속 1백80개 교회, 4백 70여명의 신도들의 성서관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 지난 1일 발표했다.
감리교신학대학 이원규 교수에게 의뢰해 실시한 이번 설문결과 기독교인들은 성경을 매우 자주 읽고 있으며 성경이 가르치는대로 살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기독교인 중에는 성서를 글자 그대로 이해하는 축자적인 성서관을 가진 경우가 상당수에 이르고 있으며 성경의 사건과 기적이야기가 모두 사실이라고 믿는 비율이 상당히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 성경 어떻게 읽고 있나
`성경을 얼마나 자주 읽느냐'는 질문에 `매일 읽는다'는 응답자가 43.4%, `며칠에 한 번'은 28.8%, `가끔 생각날 때'는 19.8% 등으로 대답했으며 8.0%의 응답자들은 `거의 읽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나이가 많을수록 성경을 많이 읽는 것으로 나타나 `매일 성서를 읽는다'고 대답한 교인중 20세 미만은 16.0%, 20대는 36.9%, 30대는 36.0%, 40대는 45.5%, 50대는 66.1%, 60대 이상은 64.9%로 조사됐다. 교단별로는 보수교단 소속 응답자일수록 성서를 많이 읽는다고 대답했다.
주로 읽는 성경에 대해서는 63.4%가 개역성경을 읽는다고 대답해 공동번역과 표준새번역성경이 발간된 뒤에도 여전히 개역성경이 한국의 교인들에게 가장 친숙한 번역본인 것으로 나타났다. 개역성경 다음으로는 21.1%의 응답자가 공동번역, 15.4%가 표준새번역을 읽는다고 대답했다. 보수교단일수록 개역성경을 많이 읽고 있으며 기장이나 감리교 등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교단에서는 공동번역을 보는 비율이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성서통독 회수를 묻는 질문에 46.7%의 응답자가 신구약을 두번 이상 읽었다고 대답해 상당히 높은 비율을 보였다. 신구약을 한번씩 읽은 응답자는 25.6%, 신약은 7.5%, 구약은 0.9%로 나타났으며 19.4%의 응답자들은 한번도 통독하지 못했다고 대답했다.
■ 성서관은
성서를 읽는 이유에 대해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라고 답한 응답자가 63.2%로 가장 많았고, `진리탐구를 위해' 16.4%, `삶의 의미를 찾으려고' 8.2%, `마음이 편해지므로' 5.0%, `생활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해' 4.5% 등으로 대답했다.
성서가 가르치는 대로 사는 것이 생활에서 가능하다고 생각하는지를 묻는 질문에 53.6%의 응답자가 `상당부분 가능하다'고 대답했으며 `어느 정도 가능'은 41.6%, `거의 불가능'은 4.7%등으로 나타나 교인들은 성서적 가르침의 실천가능성에 대해서는 상당히 긍정적인 의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절반가량의 교인들은 성서의 줄거리나 내용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성서를 거의 이해한다'는 응답자는 10.9%, `많은 부분 이해한다' 34.7%, `어느 정도 이해한다' 47.9%, `별로 이해하지 못한다' 6.6% 등으로 성서를 많이 이해하고 있다는 응답자는 45.6%에 머물고 있다.
■ 성경 얼마나 믿는가
상당수의 교인들의 축자영감설과 무오설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보수교단과 농촌교회 교인일수록 이런 경향이 두드러졌다.
`성서가 어떻게 기록됐다고 보는가'라는 질문에 47.4%의 응답자가 `하나님의 지시대로 기자들이 구절 구절 받아적었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43.4%의 응답자는 `하나님의 뜻을 깨달은 기자들이 자신의 신앙경험을 토대로 해석해 기록했다'고 대답했다. 9.2%의 응답자는 `기자들이 사건과 이야기를 객관적으로 서술했다'고 대답했다.
성서에 나오는 기적이야기의 사실성을 묻는 질문에 85.1%의 교인들은 `전적으로 사실이다'고 대답했고, 14.6%는 `어느 정도 사실이다', 0.2%의 교인들 만이 `별로 사실이 아니다'고 응답했다.
`성서는 한 글자도 과오가 없다'고 보느냐는 질문에는 68.5%가 `전적으로 그렇다', 27.3%가 어느 정도 그렇다', 4.1%가 `별로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다.
110.룸살롱의 크리스마스
천구백구십년 겨울, 나는 그때 강남에 있는 한 룸살롱의 웨이터로 일하고 있었다. 말하자면 위장취업인 셈이다. 우물가(유흥가 선교)를 시작하면서 어떻게접촉점을 찾아나갈 것인지 고민을 하다가 묘수를 찾아내게 되었는데 그것이 술집에 웨이터로 취직을 하는 것이었다.
내가 위장을 하긴 했지만 아무래도 유흥가 사람들에게는 자기들의 세계와는 다른 어떤 분위기가 느껴졌던 모양이다.은연중에 그들은 나를 경계하고 있었다. 나는 그들과 친해지기 위해 최대한 애를 썼다. 손님이 없는 무료한 초저녁 시간을 메우기 위해 동료 웨이터들과 함께 동전 따먹기 놀이를 하거나, 아가씨(호스티스)대기실에 들어가 고스톱을 치거나, 웨이터 보조(룸살롱의 룸 서비스 맨)들의 일을 도와 룸을 청소하기도 했다. 또 성냥과 담배를 준비해 가지고 로비에 나와 앉아 있다가 담배를 찾는 아가씨들이 있으면 불울 붙여 주었고, 짓궂은 손님들의 잔인한 요구(?)를 견디다 못해 수치로 얼굴이 엉망이 되어 로비로 뛰어나와 울음을 터뜨리면 어깨를 토닥이며 위로를 해주기도 했다. 그리고 어떤 날은 일을 끝내고 나이든 마담들과 함께 포장마차에 앉아 그들의 푸념을 아침까지 들어주기도 했다. 아마도 그런 노력들은 내게서 풍기는 거룩한 체 잘하는 역겨운 성직자의 냄새를 얼마만큼은 희석시켜 주었으리라.
우리는 친해졌다. 나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마음속 깊은 내면의 비밀이나 고통에 대해서 들을 수 있었다. 나는 그들의 세계를 점점 깊이 이해할 수 있었고, 예수님께서 낮고 천한 사람들에게 바리새인들보다 관대하게 대했던 이유를 가슴으로 깨닫게 되었다.
크리스마스 이브가 되었다. 24일은 보통 날보다도 손님이 많았다. 여덟시가채 되기도 전에 여덟개의 룸이 모두 찼고 단골 손님들조차도 돌아가야 했다. 나는 선물과 케익을 준비하고 생일 초대장을 만들었다. 나는 모든 웨이터와 호스테스들에게 생일 축하파티에 참석해 줄 것을 부탁했다. 누구의 생일파티냐고 물었지만 웃어만 주었다.
밤은 점점 깊어졌다. 술좌석은 달아올랐다. 그리고 '루돌프 사슴코'와 같은캐롤송이, 심지어는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이 가요처럼 연주되기도 했다. 그들은 크리스마스 노래에 맞추어 고함을 쳤고 술을 마셨고 온갖 음담패설과 음란한 행위를 즐겼다. 술과 음란과 욕설과 거룩한 캐롤송, 그게 세상이었다. 마침내 열두시가 넘었고 셔터가 내려지자 손님들은 아가씨를 끼고 여관으로 갔다.
우리 웨이터들과, 짝짓기에 참여하지 못한 아가씨들은 대충 정리를 끝내고 B룸으로 모였다. 두시 삼십분이었다. 모인 사람을 세어보니 열일곱명이나 되었다.
나는 전등을 끄고 케익에 불을 붙였다. 분위기는 조금 산만했다. 남궁마담이 누구의 생일이냐고 질문했다.
나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차근차근 위대한 그분의 생일에 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분이 누구며 그분이 왜 이 땅에 오셨는지를 말해 주었다. 또 그분이 이 땅에 사는 동안 누구에게 관심을 가지셨고 어떻게 사셨는지도 말해 주었다.
나의 이야기가 계속되면서 산만했던 분위기는 숙연해졌고 그들은 조용히 머리를 숙였다. 부유함으로 거만 했던자들의 친구가 아니라, 가난하고 외롭고비틀거리는 상한 마음들을 눈물로 어루만져 주었던 단아한 그의 사랑은 지금 듣고있는 그들의 심정을 가장 잘 덮어주고 있었다. 누군가가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았고 마침내는 여기저기서 눈물을 찍어내는 모습들을 볼 수 있었다.
나는 하나님의 임재를 느꼈다.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가슴에 안는 순간이었다. 가장 음란하고 추악한 일에 쓰임 받던 그들이, 그리고 그곳 공간이... 가장 거룩하게 드려지는 순간이었다. 우리 모두는 그날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가슴이 미어지도록 소리쳐 불렀다.
그날 이후에 나는 그들로부터 예수님에 대해 좀더 알려달라는 요구를 받게 되었고 그 룸살롱에서는 아주 자연스럽게 매주 성경공부모임이 열려지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 모임을 통해 하나님께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 성경공부모임을 2년만에 끝을 보게 되었는데 이유는, 그 룸살롱의 주인이 신앙을 이유로 전업을 했기 때문이었다.
머지않아 크리스마스가 된다.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내 자신에게 다시 한번 예수님께서 이 땅에 왜 오셨는지 아기 예수님이 계신 마굿간은 어디인지 그리고 어떻게 사셨는지 물어보고 싶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 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마태복음 20:28)
111.쥐실험
로제츠 로제탄 박사는 하버드 대학에서 '학생들과 쥐'를 상대로 다음과 같은 실험을 했습니다. 박사는 세 그룹의 학생들과 세 그룹의 쥐를 나눈 후 첫째 그룹의 학생들에게 한 그룹의 쥐를 주면서 말했습니다.
"여러분은 행운아입니다. 천재적인 쥐를 다루게 되어서 여러분에게 큰 기대를 할 수가 있겠군요"
둘째 그룹의 학생에게도 한 그룹의 쥐를 주면서 말했습니다. "여러분은 보통 쥐를 다루게 되었으니 보통 정도의 기대를 갖고 있습니다."
세째 그룹의 학생들에게도 남은 그룹의 쥐를 주면서 말했습니다.
"여러분은 바보같은 쥐를 주게 되었으니 별로 기대할 것이 없겠군요"
그 후 6주간 같은 조건으로 실험을 하고 결과를 알아보았습니다. 실험 결과 천재라고 소개한 쥐들은 천재처럼 능란하게 행동했고 보통이라고 소개한 쥐들은 보통의 실적을 올렸으며 바보라고 소개한 쥐들은 형편없이 행동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실 천재 쥐, 보통쥐, 바보쥐를 분류하여 준 것이 아닌데 학생들의 자세가 쥐에게 반사가 되었고 쥐들은 학생들의 자세에 따라 행동을 하였던 것입니다. 이처럼 자세는 무언의 언어입니다. 어떠한 기대와 자세를 갖느냐에 따라 상대의 틀을 만드는 것입니다.
로젠탈, 자곰슨 등의 연구에 의해 피그말리온 효과는 밝혀진 것인데 교사가 학생에 대해 긍정적인 기대를 가지면 학생은 실제로 교사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되며 인정과 기대를 높이 할 수록 더 훌륭하게 된다는 이론으로 피그말리온 효과는 어릴 수록 더욱 효과적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대하고 있는 상대자에게 기대를 가지고서 그 기대를 표명하며 권고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그럴 경우 상대자는 그 기대에 부응하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며 , 또 기대처럼 이룰 수가 있는 것입니다. 미래지향적 인간관인 긍정적 사고의 중요함이 이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112.절대온도
물리학에는 절대온도라는 용어가 있다. 이 용어는 -270도씨를 가리킨다. 1660년 영국의 화학자 보일이 발견한 보일의 법칙에 의하면 기온이 1도씨 내려갈 때마다 부피는 약 1/270씩 줄어들게 되며, 기온이 -270도씨 즉 절대온도에 이르게 되면 부피는 이론상으로 제로가 된다.
현편 금속체의 온도를 절대온도로 낮추게 되면 금속체의 전기적 저항이 사라지게 되는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이 현상을 이용하면 전력의 소모 없이 많은 전류를 흘릴 수 있어 강력한 자장을 얻어낼 수 있으며 얼마전 국산화 개발에 성공한 자기 공명 전산화 단층 촬영장치(인체의 어느 한 단면을 진단 촬영하는 기계: NMR-CT)는 이 현상을 이용한 고가(수출가격 1대당 약 20억원)의 첨단 전자 의료 기기이다.
우리에게도 절대 온도가 필요하다. 우리에게도 우리의 부피를 제로로 만들어 버리는 절대 온도가 필요하다. 우리의 절대 온도는 몇도인가? 그것은 물리학적으로는 측정될 수 없는 온도이다. 그러나 다른 용어로는 설명될 수 있다. 왜냐하면 그 절대 온도는 바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 안에서의 절대 신앙, 절대 믿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절대 신앙을 갖게 될 때 우리의 영혼에서 성경의 역사를 방해하는 악마적 저항체들은 사라지게 되며, 대신 강력한 성령의 열매들이 맺혀지게 된다. 이 성령의 열매들은 자기 공명 단층 촬영기보다 더 값비싼 것이다. 왜냐하면 그 열매들은 단순히 진단기기가 아니라 치유와 위로와 변화와 구원과 확증을 주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113. 미생지신
다음은 장자의 도척편에서 미생지신(尾生之信)이라는 제목으로 소개되고 있는 이야기이다.
노나라에 미생이라는 아주 정직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남하고 약속만 하면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약속을 어기는 법이 없는 인물이었다. 그런데 그 사나이가 어느 날 애인과 데이트 약속을 했다. "내일 밤 개울 다리 밑에서 만나요"라는 약속에 일 분도 어김없이 그는 약속 장소로 나갔다. 여자가 장난삼아 그런 약속을 했는지는 몰라도 하여튼 여자는 그 시간에 그 장소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나 미생은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은 성격이었으므로 다소는 상했겠지만 여자가 한 말을 믿고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여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에 밀물로 개울물이 점점 불어서 그의 몸은 물에 잠기기 시작했다. 발에서 무릎, 무릎에서 가슴으로 물은 불어갈 뿐인데 그는 단념하지 않았다. 나중에는 물이 머리 위까지 올라와 정신 없이 교각에 달라붙었으나 그 보람도 없이 결국 그는 익사해 버리고 말았다고 한다.
지나친 이야기인지 모르지만 신의를 지키는 미생의 자세를 우리는 본받아야 할 세상이다.
114 믿음
믿음은 단순한 일개 동작이 아니고 연속된 행위이다. 그래서 늘 지니고 있는 마음의 자세이며 의심 없는 순종이다. 나는 위대한 사상가들 보다 위대한 신앙가들의 편에 서고 싶다.
믿음은 하나님의 영원하신 말씀에 부단 없이 긍정하는 영혼의 아멘이다. 믿음의 최대 관심사는 하나님의 약속들을 획득하는 것이다. 믿음은 온갖 반대와 고난 중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언제나 발견한다. 우리가 믿음으로 살면 살수록 하나님을 신뢰하는 일이 더 쉬워진다. 의심은 영적 질병의 징조이다.
영혼이 건강하면 믿음을 생각지 않고도 우리는 믿게 된다. 믿음의 영웅들은 하나님께 모든 것을 걸었다. 역사는 이들이 옳았음을 증명한다.
믿음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수락할 용의가 있으며 하나님이 적의 편을 든다고 믿지 않는다. 이성의 승락이며 마음의 동의다. 감정이 아니다. 비록 감정이 믿음의 결과일망정....
115. 믿음의 단계
1. 믿음은 그 생각을 마음 속에서 조심스럽게 형성한다- 어떤 모양을 만들어 내고 조작하여 이리저리 도자기를 빗듯이 굴린다. 그리고 난 후 , 그것이 무엇인가를 자세히 본다.
2. 믿음은 그것을 튼튼히 하여 그 생각이 굳어지게 한다. 잠재력을 발휘하여 그 생각이 이미 형성되었다. 지금 그것을 단단하게 할 것이다. 당신은 그것을 실행에 옮길 것이며 그것을 목표로 삼아 나아간다.
3. 믿음은 그것을 경작한다. 그것을 형성하여 굳힌 후에 경작한다. 이 말은 과실을 맺는 성숙을 향한 새로운 성장을 발전시키는 게 당신의 주의를 기울이는 것을 뜻한다.
4. 믿음은 그것을 완성한다. 수확이 다가왔다. 당신은 성공한 것이다. 당신은 상장을 받아 벽에다 걸어놓고 상품도 받았다. 하나님의 은총으로 얻은 수확을 뽐내고 기뻐하라. 당신은 지금 믿음의 길을 걷고 있기 때문에 당신은 보다 큰 성취와 성공과 업적을 기대 한다.
56.일본인의 신앙관
일본인들은 신이나 영적인 대상에 대해 일반적인 신앙을 지니고는 있지만 종교에 대한 열심은 부족한 것으로 18일 드러났다.
최근 토쿄신문의 여론 조사에 따르면 『신이나 부처의 존재를 믿는가』란 질문에 대해 58.9%가 『믿고 있다』, 『어느 정도 믿고 있다』고 응답했으나, 『신앙 생활을 열심히 하고 있다』는 대답은 9%에 불과했다.
연령별로는 60세 이상의 고령자들이 신이나 부처의 존재를 믿고 있는 반면 젊은이들은 초능력등 영적인 현상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해 20대의 62%가 『과학적으로 설명하기 힘든 불가사의한 힘』을 신뢰한다고 응답했다.
종교의 일반적인 인상에 대해서는 『마음,정신』(51.1%),『전통행사,관혼 상제』(17.1%), 『돈』(9.6%), 『수행』(6.2%)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종교라고 할 때 어떤 종교가 먼저 생각되는가』라는 종교인지도에 관한 질문에는 『기독교, 신도, 불교』등 전통적인 종교가 74%로 높게 나타났으며 최근 기승을 부리고 있는 신흥종교는 11%로 드러났다.
옴진리교 등 신흥 종교에 대한 인상에 대해서는 『배금주의』(60.1%), 『집요한 전도활동』(45.9%), 『두려운 느낌』(37%)등으로 응답됐다. 신흥종교 에 젊은이들이 몰입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판단력 결여』(24.8%), 『초능력에 대한 관심』(23.2%), 『윤리의 결여』(20.4%), 『가정의 붕괴』(18.6%)등으로 나타났다.
옴진리교 사건으로 관심이 높아진 종말에 대해서는 18%만이 『믿는다』, 『어느 정도 믿는다』로 응답, 비교적 낮은 수치를 보였으며 83%가 신앙의 자유 등을 명기한 현행 종교인 법을 고쳐야 한다고 응답했다. /목회와신학
117.신앙부흥을 바라자
신앙부흥은 교회성장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러나 정확히 그 관계가 어떤 것인가 하는 것은 종종 분명하지 않다. 어떤 경우에는 신앙부흥이 교회성장을 유발한다고 할 수 있지만 어떤 경우에는 신앙부흥과 교회성장의 관계가 너무 멀어 성장없이 신앙부흥이 일어나거나 신앙부흥 없이 성장이 일어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교회는 신앙부흥 그 자체만을 위해서도 생각해보아야 할 충분한 가치가 있다.
신앙부흥은 여러 가지 의미로 사용된다. 주로 지성을 통해 현실을 이해하려는 사람들은 신앙부흥을 이 분야의 전문가들에 의해 흥이 돋구어지는 감정적인 잔치로써 영적인 행복을 잠시 불러일으켰다가는 다시 회중들을 이전과 조금도 다름없는 상태로 되돌아가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많은 수의 사람들이 회심할 때마다 신앙부흥이 일어났다고 보기도 한다.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무엇보다 기존 교회를 정화하고 활성화하는 것을 신앙부흥이라고 본다. 그래서 신앙부흥은 하나님이 그의 교회에 활기를 불어넣으시고 정의와 자비와 세계복음화를 위한 계획을 실천하는 가장 좋은 수단들을 의미한다.
신앙부흥과 이로 인한 복음적 각성은 그리스도의 교회 안에서의 성령의 활동이다. 따라서 전능한 하나님의 주도로 이루어지는 것이지만 대개는 그것을 열렬히 구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진다. 수많은 사례들을 볼 때 기도가 신앙부흥을 가져왔다. 언제나 먼저 오랜 기간 계속되는 열렬한 기도 있고, 그리고 나서 신앙부흥이 일어나는 것이다.
신앙부흥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인간은 그것을 마음대로 할 수 없고 하나님에게 그것을 달라고 강요할 수도 없다. 하나님은 독자적 판단에 따라 자신이 원하는 때에 자신이 원하는 곳에서 이 선물을 주신다. 그것은 갑자기 생겨나고 갑자기 닥치고 교회를 각성시키고 여름 하늘의 벼락처럼 갑자기 오고 홀연히 나타나 은혜의 사역을 시작하고 하나님의 백성에게 축복을 가져다 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계속적으로 드려지는 진실한 기도에 응답하신다.
한편 성경에 대한 지식은 꼭 필요한 것이다. 성경에 대한 지식이 반드시 신앙부흥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지만 성경에 대한 지식이 없으면 전통적 의미에서의 신앙부흥이 일어나지 않는다. 유럽과 아메리카 교회들에서의 신앙부흥은 오랜 세월에 걸쳐 가정과 교회에서 주의 깊게 성경을 읽은 것이 낳은 결과였다. 한국의 신앙부흥에서도 큰 원동력으로 작용한 것은 철저한 성경연구였다. 만약 성경에 대한 지식이 없다면 의와 사랑의 하나님, 신앙부흥을 구하는 기도, 신앙부흥을 경험한 사람들이 도달하는 높은 윤리적 수준, 그리스도의 구원을 사람들과 나누어 가지려는 관심, 성령의 실재 등 그밖의 신앙부흥의 많은 국면들이 불가능하게 될 것이다. /한국일보
118. 유럽 사람들 신앙심 시들
유럽인들의 신앙심이 그리스와 스페인을 제외한 거의 모든 나라에서 10년 전에 비해 크게 약해진 것으로 여론조사 결과 드러났다고 유럽연합 집행위원회가 27일 발표
특히 아일랜드는 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 23%나 감소했으며 프랑스는 13%, 룩셀부르크느느 12%, 이탈리아는 11% 줄어들었고 덴마크는 겨우 14%만이 신앙심을 갖고 있다고 응답해 무신론자가 가장 많은 나라로 파악됐다.
그러나 그리스에서는 하느님을 자기 생활에서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10년 전보다 19%나 늘어난 75%이상을 차지, 그리스인들이 가장 믿음이 깊은 것으로 판명됐으며 스페인에서 하느님을 믿는 사람은 10년 전과 변함없이 46%로 나타났다고 한다.
119.김일성과 김정일의 기독교 경험
1. 김일성 주석의 아버지 김형직
김일성은 만경대에서 1912년 4월 15일에 아버지 김형직과 어머니 강반석 사이에 큰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 김형직은 1911년 평양의 기독교 계통의 학교인 숭실중학교(당시 숭실아카데미로 불림)에 입학하여 1913년까지 수학한 후 순화 보통학교, 명신 보통학교에서 교사 생활과 독립운동을 병행했다. 숭실중학교는 당시 미국계 미션스쿨로서 한국에서 기독교를 전파할 기독교 지도자를 야성하는 교육 기관이었다. 당시 김형직이 기독교가 대중화되지 않은 시기에 숭실중학교에 입학했다는 사실은 그의 기독교 신앙의 독실성을 말해 준다.
김형직은 기독교 신앙은 당시 기독교 일반의 경우처럼 독립운동과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다. 김형직은 1917년 3월 23일 장일환, 배민수, 백세빈 등과 함께 조선 국민회를 결성했다. 조선 국민회는 기독교 항일 운동단체로 당시 한국의 젊은 기독교인들이 전국적으로 모이는 평안장로신학교 개교일을 전후하여 많은 조직원을 확보함으로써 막강한 세력을 발전했다. 김형직은 항일운동을 하다가 체포되어 극심한 옥살이로고생을 했으며 그로 인해 사망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2. 김일성 주석의 어머니 강반석
어머니 강반석은 창덕학교 교장으로 있던 강돈욱 장로의 둘째딸로서 장로교 계통의 독실한 기독교 집안 출신이었다. 강반석의 반석이라는 이름이 베드로의 별명인 반석에 어울리게 신앙심이 두터운 교인이었음은 분명하다.
강반석은 고향 칠골에 있던 교회에서 집사로 봉직했다고 한다. 그래서 북한이 1992년 4월, 봉수교회와 장충성당 건립에 이어 어머니의 고향 칠골에 `칠골 교회' 를 건립했다.
3.김일성 주석
김일성은 독실한 기독교 신앙을 가진 가정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모태 신앙을 갖고 성장했다. 김일성 주석은 어린 시절 어머니를 따라 매주 교회에 출석했다는 사실을 자신의 회고록에 기록하고 있다. 김일성은 모태 신앙을 가진 기독교 신자로 양육되었다. 김일성 주석은 국민학교 5~6학년 2년동안 외조부댁에서 학교를 다니는 동안 할아버지 강돈욱과 삼촌 강양욱의 여향을 받으며 성장했다. 또한 그의 회고록에서 개인적으로 손정도 목사를 생명의 은인으로 여길 만큼 큰 도움을 받았다고 말하고 있다.
4.그의 아들 김정일
김정일의 기독교 경험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김정일은 7세에 친어머니를 여윈 관계로 친척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자랐다. 이들의 신앙 정도에 대해 알 수 없기 때문에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이들 역시 기독교 집안의 사람들로서 김정일을 키우면서 기독교적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다.
또한 김일성도 김정일을 후계자로 양성시키는 과정에서 아버지로부터 조부모에 대한 얘기를 많이 들었을 것이며 기독교인맥을 통하여 기독교에 대해서도 정보와 지식을 접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자신의 기독교 경험과 기독교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 것인가 등에 관한 체험담도 들려주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김일성과 마찬가지로 김정일도 강양욱 목사를 통해서 기독교를 접할 수 있었을 것이다. 김정일은 정치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던 1970년대에 부주석으로까지 활약한 강약욱으로부터 기독교에 대한 지식을 얻었을 것이다. 그리고 조모 강씨 집안의 인물들과 접촉에서는 기독교에 얽힌 가족 관계에 대해서도 많이 알게 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김정일은 이러한 기독교 경험을 바탕으로 기독교의 조직 통합 기술을 당선전동부에서 활동하던 시기부터 유익하게 활용했을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다. 1967년부터 유일사상체계 확립을 시작하여 1974년에는 "유일사상 체계확립의 10대 원칙"을 명문화하고 사상 학습을 생활 주기에 따라 체계화하는 등 종교적 성격으로 사회를 조직화했다.
이상의 내용을 종합해 볼 때 김일성, 김정일은 기독교 신자는 아니지만 일반적인 한국인에 비하면 기독교적 영향을 훨씬 많이 받았고 기독교에 대해서 체험적으로 알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김일성의 기독교적 가정 배경과 기독교인 들과의 접촉, 그리고 기독교 세력의 도전 경험 등으로 기독교 교리와 교훈, 생활 방식을 접할 기회를 빈번하게 가졌다고 볼 수 있다.
120.믿음의 선물
영국의 시인 J.옥스남(1861~1941)의 "믿음"이란 시를 소개한다.
"주여 제게 믿음을 주소서
매일 매일의 사명을 다할 수 있도록 평온한 마음을 주시고
주의 길을 갈 수 있도록 손을 붙잡아 주소서
모든 것 가운데서
당신을 찾을 수 있는 고요한 마음을 주소서
주께서 원하시면 어디든지 갈 수 있는
순전한 영혼을 주소서
미래는 주께서 주신 선물
주의 사랑을 믿기에
두려움 없이 그 앞으로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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