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간의 삶 3단계
폴 투르니에 라고 하는 분이 있습니다. 스위스의 유명한 심리학자요 그리고 의사입니다. 그 분이 많은 책을 썼습니다. 저도 이 분의 책을 대부분 다 가지고 있고 또 즐겨 읽는 중에 있습니다만은 그는 인간의 삶을 3단계로 간단하게 설명을 하는데 그 속에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가 아동기라고 하는 어린아이 시절이 있다. 어린아이 시절에 열망하는 바는 소유올시다. 먹는 것, 가지는 것, 소유만이 행복의 기준입니다. 보다 더 많은 것을 가지려고 그렇게 소유했을 때 좋고 자기 손에서 떠나갈 때 웁니다. 이게 아동기적인 인간이란 말입니다. 그 다음에 두번째는 청년기가 있습니다. 이때는 경험의 열망이 있습니다. 많은 지식을 경험하고 많은 세계를 경험하고 많은 것을 체험하려고 듭니다. 그래서 경험의 열망이 있어서 경험할 수 있을 때 그것을 행복이라고 생각하고 경험하지 못할 때에 불행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보다 더 많은 것을 경험하고 체험하려고 하는 그런 세계를 넓게 확장하는 그런 시대가 있다 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인격의 열망이올시다. 이 장년기가 되면 이제는 행복이 소유에 있는 것도 아니고 체험에 있는 것도 아니라는 걸 알게 됩니다. 이거 부질없는 것이라는 것. 가져봐야 아무 것도 아니고 가질 수도 없고 또 가진다는 말이 도대체 뭐냐. 뭐 체험한다고 해서 뭐 그게 체험이 어떻게 됩니까.
2.천박해져가는 인간
‘새도 가지를 가려서 앉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장자에 보면 ‘원추’라는 새 이야기가 나옵니다. 원추는 남해에서 출발해서 북해를 오가며 살아가는 새입니다. 원추는 날아가는 도중 오동나무가 아니면 앉지를 않는다고 합니다. 또 대나무 열매가 아니면 먹지 않고 감로천이 아니면 마시지도 않는다고 합니다. 여기서 보듯 말 못하는 새도 하룻밤 쉬어가는 나뭇가지를 가려서 앉고 먹지 말아야 할 것은 먹지 않습니다. 오늘날 인간은 먹을 것,먹지 말아야 할 것을 가리지 않습니다. 너무 섣불리 먹고 마시고 생각없이 말을 합니다. 인간이 너무 천박해졌다고 생각됩니다. 특히 신앙을 가진 사람들 중에서도 이런 사람이 많다고 여겨집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경계하도록 하신 것들을 까맣게 잊고 있는 이들의 미래를 생각하면 너무 걱정스럽습니다. 기독교인은 좀더 분별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정익 목사(신촌성결교회)
3. 신묘 막측하심이라
성경: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신묘막측하심이라 주의 행사가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시139: 13- 14)
기독교 복음의 핵심은 인간이 얼마나 위대한 존재인가를 깨닫는 것입니다. 성서에서 가르치는 인간에 대한 가장 핵심적인 교훈은 인간이 하나님의 이미지를 갖고 창조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은 측량할 수 없는 독특성과 존귀함과 위대함을 가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세상의 어떠한 것도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것은 없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의 가장 중요한 것도 인간이 무엇보다 더 가치있다고 가르치셨습니다. 하나님의 율법도 사람보다 더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떠한 하나님의 성물도 성전의 전통도 예수님에게는 사람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가장 위대한 작품입니다. /이홍헌 목사(예은교회)
4.건강한 새벽형 인간
가을이 되면서 많은 사람이 새벽형 인간이 되길 애쓰고 있다. 새벽에 일어나 기도와 운동으로 하루를 상쾌하게 출발한다는 것은 영육간의 건강을 지켜나가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그러나 새벽에 일찍 일어나 이런 활동을 하는 것만으로 건강해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새벽형 인간이란 새벽에 일어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모든 생체 리듬이 새벽과 아침으로 옮겨지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의 몸은 하나의 리듬에 조율돼야 그 기능이 가장 효율적으로 유지될 수 있다. 새벽형과 저녁형을 동시에 가질 수는 없다. 그래서 새벽형 인간이 되려면 복잡하고 힘든 일은 가능한 한 아침으로 몰고 저녁에는 단순한 일을 처리하고 일찍 잠을 잘 수 있어야 한다. 그러잖으면 결국 생체리듬이 깨져 만성적인 수면 부족과 집중력 및 기억력 저하,몸의 활력이 저하되는 증상 등이 생길 수 있다. 그리고 면역력도 떨어져 쉽게 아플 수도 있어 건강을 위해 새벽형 인간이 되고자 한 게 오히려 건강을 해치는 결과를 빚을 수도 있다. 건강한 새벽형은 노력과 욕심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이성훈 길르앗치유문화원 원장
5.새벽형 인간
요즘 ‘아침형 인간’이란 새로운 트랜드가 만들어졌다. 서점가에는 이러한 신조어를 사용한 책들이 오랫동안 베스트 셀러 코너에 있다. 내용인즉 역사상의 탁월한 리더들은 아침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잘 활용한 깨어있는 사람들이었다. 아침을 지배할 줄 아는 사람은 일과 가정,여가의 균형을 지킬 줄 알고 육체적으로,정신적으로 건강한 삶을 사는 사람이다. 따라서 ‘아침형 인간’은 일과 여유가 있으며 늘 밝고 긍정적인 생각으로 세상과 사람을 대하는 맑은 영혼과 생기를 지니고 살아가는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 교회는 이미 오래전부터 이러한 ‘아침형 인간’을 넘어서는 ‘새벽형 인간’을 강조해왔다. 한국 교회가 개발한 ‘새벽기도회’를 통해 교회의 성장과 부흥이 이루어졌다는 견해도 있다. 최근 몇몇 대형교회는 ‘특별 새벽기도회’를 통해 교회의 건재를 과시(?)했다. 은혜를 받기 위해서 새벽 2∼3시에 일어나야 할 정도로 혹독한 영성 훈련을 경험했다고 한다. 단순한 인생의 행복을 위한 ‘아침형 인간’을 넘어서서 하나님의 축복을 갈망하는 ‘새벽형 크리스천’이 되기 위한 참된 고행의 노력이 분명하다. 우리는 주변에서 육체적으로,정신적으로 건강치 못한 사람들의 삶의 변화에 대한 고백을 자주 듣는다. 어둠형 인간에서 새벽형 인간으로의 변화를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함께 하심을 간증하기도 한다. 그 대표적 예가 ‘새벽형 크리스천’의 저자 문봉주 대사다. 그는 과거 술과 담배로 찌들었던 ‘잡사’의 삶을 교회의 ‘참집사’의 삶으로 변화시킨 전능하신 하나님의 프로세스를 고백한다. “(하나님) 말씀은 인생의 핸들이다. 기도는 인생을 움직이는 동력전달장치이다. 새벽기도는 모든 문제 해결의 원동력이다…새벽기도로 일어나라.”
우리는 새벽형 인간으로의 변화가 ‘자신의 명철을 의지하지 아니하고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아니하며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의뢰하고 경외하는 사람’에게서 완성된다는 잠언의 말씀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지금 대부분의 한국 교회는 사순절 절기를 맞아 ‘특별 새벽기도회’를 열고 있다. 모든 ‘새벽형 크리스천’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함께 현재 이 나라가 겪고 있는 정치적 혼란,경제적 불황,사회적 불안에 대한 해결을 위해 변화의 기도운동을 불러일으켜야 한다. 그것이 이 시대의 ‘새벽형 인간’의 신앙적 삶의 자세이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도 새벽 미명에 일어나 기도하신 ‘새벽형 인간’임을 기억하면서 말이다./지인성 목사(린나이코리아 사목)
6.인간의 기원
인간의 기원에 대해 가장 영향력을 미친 사람은 진화론을 주장한 찰스 다윈이다. 그는 ‘종의 기원’(The Origin of Species)에서 자연 선택을 근간으로 새로운 종이 생긴다고 주장하였다. 다윈의 진화론은 영국의 산업자본주의 발전을 생물계에 도입한 이론이다. 놀라운 것은 오늘날 대부분의 생물학 교과서에서는 진화론만이 과학적 이론인 것처럼 기록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진화론은 과학이라기보다는 철학이다. 사실 그는 한 종에서 다른 종으로 옮겨가는 사슬의 고리(link)를 다 찾아내지도 못하였거니와 그의 이론의 많은 부분이 추측으로 일관돼 있다. 그러나 최근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창조론을 교과서에 진화론과 함께 다루고 있어 학생들로 하여금 비교하고 선택케 한 것은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여러 해전부터 창조과학회가 설립돼 창조론을 젊은이들에게 교육하고 있어 좀 늦은 감이 있으나 그나마 다행스럽게 생각된다.
그러면 인간의 기원을 성경은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가? 창세기 1장 1절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또 창세기 1장 26∼27절에서는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라고 기록하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리의 형상, 우리의 모양이란 말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할 때 그의 거룩하심과 의로우심과 지식과 세상을 통치하는 능력과 하나님과 교통하는 영성을 주셨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우연히 생긴 존재가 결코 아니다. 진화론의 문제점은 과학적 근거도 약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인간의 존엄성을 완전히 파괴해놓았다는 점이다. 우리 인간이 원숭이에게서 진화되었다면 우리가 구태여 도덕적으로 살아야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인간은 동물이 아닌 하나님께서 특별히 만들어 주신 하나님의 형상인 것이다.
첫번째 사람을 아담이라고 불렀는데 히브리어의 뜻은 사람이란 말이다. 그래서 히브리서 저자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무(無)에서 풀과 동물과 사람을 지으셨다는 점이다. 성경은 인간과 우주의 창조에 관하여 ‘어떻게’에 대한 대답은 하지 않고 있다. 또 하나님의 존재에 관한 증명도 하지 않고 있다. 왜냐하면 성경은 인간과 우주 창조의 ‘왜’(이유)를 답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신성종목사 <대전 월평동산교회>
7.인간이란 무엇인가?
오늘부터 인간론에 대해 얘기하고자 한다. 우리나라에서 첫번째로 만들어진 모 대백과사전에서 ‘인간’이란 주제가 빠진 적이 있었다. 지금도 작은 분량으로 되어 있으나 사실은 가장 중요한 주제가 인간론이다. 비록 우리가 우주여행을 하고,로봇을 만들고,DNA의 비밀을 알아내 생명을 만들어내는 수준에 와 있지만 아직도 잘 알지 못하는 것은 인간이 무엇인가이다.
성경에 보면 시편 8장 4절에서 다윗은 사람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묻고 있다. 과학자들은 유전암호(genetic code)를 해독하여 뇌의 기능과 전자기능을 알아내 인간의 정체성을 찾아내려 하고 있다. 더구나 미수정란의 핵을 체세포의 핵으로 바꾸어 유전적으로 똑같은 생물을 얻는 클로닝(cloning) 기술로 인해서 수많은 동일인간을 만들어낼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서 분명한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있다. 자신에 대한 정체성을 바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개인적 혼란은 물론 사회적 혼란이 일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정체성을 바로 깨닫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모르는 것이다.
우리가 단순히 원형질(protoplasm)의 한 조각이라면 내가 무엇인지 알아야 할 필요가 없다. 그냥 동물처럼 되는 대로 살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다. 그러므로 우리가 우리의 정체성을 아는 것이 우리의 생의 목적과 삶의 질,선택의 방향을 결정케 해준다.
과학은 ‘어떻게’의 문제를 연구하지만 ‘왜’의 문제에 대해서는 해답을 주지 못한다. ‘왜’의 문제는 철학과 종교의 분야이다. 그러나 솔직히 아무리 위대한 철학자라도 인간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바른 해답을 줄 수는 없다. 왜냐하면 인간을 창조한 신(神)의 문제는 위대한 철학자인 칸트까지도 신을 요청하는 정도에서 더 나아가지를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간론은 엄밀한 의미에서 종교에서 해답을 찾아야 한다. 종교는 수없이 많고 거의 대부분 인간이 만든 것들이기 때문에 종교라고 무조건 그 해답을 다 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동양의 성자인 공자가 내세에 대해서 묻는 제자에게 내가 현세도 다 모르는데 어떻게 내세를 알 수 있느냐고 대답한 것은 양심적인 대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여기서는 성경을 통해서 그 해답을 찾아보려고 한다. 왜냐하면 성경만이 성령의 감동으로 된 유일무이한 책으로서 우리의 모든 문제에 대해 해답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신성종목사 <대전 월평동산교회>
10. 인간이긴 컴퓨터
체스 챔피언 카스파로프와 IBM이 만든 슈퍼 컴퓨터 딥 블루의 체스 게임은 드디어 1승 3무 2패로 인간의 패배로 끝났다. 어떤 면에서 이 결과는 인간이 만든 인공지능 기계가 마침내 인간을 이겼다는 사실이 시사하는 불길한 미래에 대한 우려를 자아내기도 한다. 물론 이번 카스파로프를
이긴 슈퍼 컴퓨터 딥 블루도 인간이 만든 것이기 때문에 이번 게임의 승자는 결국 인간일 수 밖에 없다는 낙관론도 있다. 또 딥 블루의 연산능력을 1초에 2억가지 수를 읽을 정도로 끌어올렸고 지난 1백년간의 주요 대국을 모두 입력, 참고자료로 활용했으며 카스파로프의 기보마저 활용할 수 있었기 때문에 컴퓨터 과학의 승리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말하자면 컴퓨터는 아무리 뛰어난 것이라도 결국은 단순반복연산 기능만 가진 기계일 뿐이다. 하지만 딥 블루는 마치 지능을 갖고 있는 것처럼 여러 수를 내다보면서 공격적인 행마를 펼쳤으며 그 때문에 [매우 인간적인 대응수]를 썼다는 평가를 얻었다. 감정의 기복이 없는 컴퓨터의 냉혈적인 포커 페이스(무표정한 얼굴)가 인간을 몰아붙여 얻은 승리라는 평가도 있다.
카스파로프 자신도 {인간에게서 착각이라든가 부담감, 피로로 인한 집중장애 등을 제거할 수 있다면 컴퓨터에 질 까닭이 없다}고 아쉬워했다.
그렇지만 인간은 이제 인간을 이기는 인공지능을 만들어낸 것은 분명해졌다. 물론 아직도 감정이 있는 컴퓨터, 창조력 응용력을 가진 컴퓨터는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체스 게임에서 인간 챔피언을 이길 정도로 풍부한 대응력을 가진 컴퓨터가 탄생했다는 것은 경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인간의 감정이 오히려 약점이 되고 대신 컴퓨터의 냉혈적 포커페이스가 강점이 될 수 있는 현실을 간과할 수 없다. 인간을 능가하는 기계인간의 출현과 그것을 제어하지 못하고 오히려 인간 자신이 지배당하는비극이 심각하게 우려되지 않을 수 없다.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자신이 만든 인조인간에게 죽음을 당하는 비극은 소설속의 가상현실만은 아닐지 모른다. 인간이 책임감과 통제력을 유지함으로써 미래 인류의 불행을 미연에 막는 노력이 절실하다. 인간과 사이보그 지능의 적대적 관계 아닌 협력관계를 보장하는 것은 역시 인간의 겸손함과 윤리의식일 것이다.
11.아담은 언제 어떤 형태로 창조됐을까?
아담창조의 시기에 대해 신학자들은 B.C 4004년 즉 지금으로부터 6천여년 전에 창조됐다고 주장한다.이 주장에 대해선 신학자들사이에 별다른 이견이 없다. 아담이후의 족보를 살펴보면 예수는 64대에 해당하기때문에 이는
B.C 4년에 출생한 예수로부터 역추적해 산출된 것이다. 인구통계학자들에
따르면 인구 평균증가율을 매년 0.2%~0.5%로 계산할 때 아담이후 현재까지
50억~60억 세계인구에 도달한다.
그러나 진화론자들은 수상(樹上)생활을 했던 원숭이와 인간의 공통조상이 약 6천만년 전에, 현대인은 약 1백만년전에 출현했다고 추측한다. 이같은 주장에 근거하면 현재 인구는 30조가 넘는다는 계산이다.
이와함께 아담은 태아에서 갓 태어난 아기형태가 아닌 성인으로 창조됐음을 성경은 밝히고 있다.창세기 2장 7절에서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었다"고 기록하고 있다.아담은 배후자를 통해 정자와 난자의 착상에 의해 태어나지 않고 성인으로 태어났을 것이라고 신학자들은 추정하고 있다.
12. 아담의 갈비뼈로 어떻게 하와를 만들었을까?
남자는 XY의 두가지 성염색체를 가지고 있다. 반면 여자는 XX 염색체만을 가지고 있다.여자의 몸 일부를 아무리 세포증식시킬지라도 남자의 신체을 얻을 수 없다는 결론이다. X염색체만을 가지고 있기때문이다.그러나 남자의 몸 일부를 떼어 여자의 몸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은 이미 유전학적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따라서 하나님은 남자인 아담의 갈비뼈를 취해 여자를 만든 것이다.갈비뼈는 세포증식이 가장 왕성한 부분이라는 것도 이미 의학이 설명하고 있다.특히 하나님은 아담으로부터 갈비뼈를 취할 당시 "깊은 잠"에 빠지게 했다.외과적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마취와 같은 형태의 잠을 주신 것이라고 신학자들은 설명한다.
13. 컴퓨터에 맹목적인 삶
"세상은 인간만의 것이 아니다" 이것은 월트디즈니 프로덕션의 3차원 그래픽애니메이션 "토이 스토리"의 광고에 쓰여진 카피다.
최근 잇따라 성공하고 있는 디즈니사의 따듯한 감동을 주는 만화영화들이 급기야 3차원 컴퓨터 영상까지 대중에게 인지시키는 결과를 낳고 있다. 영화적으로야 올 여름에 개봉될 만화영화 "노틀담의 꼽추"가 기대를 모으고 있지만 마치 환경론자들의 캐치프레이즈처럼 들리는 이 카피는 컴퓨터가 또 다른 세상을 창조하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보다 직설적으로는 국내의 한 일간지가 인터네트의 열풍을 새로운 컴퓨터 문화로 정착시키기 위해 "어린이에게 인터네트를"이라는 주제의 "키드넷" 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예도 있다.
아마 올해에도 초등학교 3학년을 자녀로 둔 많은 학부모들이 자녀들의 산수성적을 향상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할 것이다. 하반기가 되면 아이의 산수성적에 따라 학교 내의 특별활동인 컴퓨터반 가입이 결정될 것이기 때문이 다.
명작이라고 일컫는 문학작품들을 보면 작품속의 주인공들이 살던 시대의 사회적 환경을 엿볼 수 있다. 쿠오바디스의 로마, 로빈훗의 영국, 장발장의 프랑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미국, 닥터 지바고의 러시아에 이르기까지 문학은 그 시대의 사회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오늘날 우리가 접하는 많은 작품 역시 이런 문학의 특성에 따라 20세기 후반의 인간사회를 대표하는 컴퓨터와 무관하지 않음은 당연한 일이다. 최근 미국 베스트셀러 작가들의 작품은 대부분 20세기 과학이 이루어낸 많은 변화를 소재로 하고 있다. 영화로 만들어져 영상산업의 부가가치를 증명한 "쥬라기공원"의 저자 마이클 클라이튼은 고대의 모기 화석에서 DNA를 추출, 상상을 초월하는 공룡시대를 재현할 수 있다는 가정을 근거로 하고 있다.
이 작품은 영화화 과정에서 조지 루커스의 컴퓨터 영상시뮬레이션이 화제가 되었지만 원작의 곳곳에는 컴퓨터 없이는 아무것도 이루어질 수 없음을 서술로 보여주고 있다. 또 다른 그의 히트작 "델로스"는 "로보로이드"라고 명명한 인간과 유사한 로봇을 받드는 신에 도전하는 인간의 무뢰함을 단죄하는 내용이지만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이 컴퓨터를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과학자이자 해커급의 프로그래머로 서술되고 있다.
최근작으로 "OP센터"라는 작품을 통해 남북한의 대치 상황과 긴장감을 묘사하고 있지만, 노동1호 스커드미사일과 서울.평양.워싱턴이 동시에 움직이는 무한 성능의 통신장비, 그리고 남한의 육군 소위 지문까지도 찾아내는 OP센터의 컴퓨터가 서술되는 그의 작품 속의 인물들도 단순한 정보전의 전문가가아닌 해커급의 프로그래머들로 서술되고 있다.
영화.신문.소설뿐만 아니라 어린이의 학교 수업까지 컴퓨터 이야기로 채워진 세상에서 다음 세대를 이어갈 사람들은 어떤 모습일까? 이번 봄에 초등학교에 입학한 필자의 막내 아이는 어느 날 가계부를 쓰는 엄마의 계산기를 보고는 자신도 산수문제를 푸는데 엄마의 계산기를 쓰겠다고 해서 필자를 당황케 한 일이 있다. 필자와 같은 경험을 지닌 부모들이 많으리라고 생각되지만 그 궁색한 답변을 어떻게 해결했는지 궁금하다.
아이에게 산수를 가르치는 것은 계산기의 편리함을 알기에 앞서 계산기를 이해할 수 있는 보편적인 상식의 교육을 하는 것이다. 아시작 아시모프는 그래서 로봇의 3대 법칙을 만들었는지 모른다. "로봇(컴퓨터)은 인간을 해치지 않아야 한다." "로봇(컴퓨터)은 반드시 인간의 지시에 따라야 한다. 단 1의법칙에 위배될 때는 예외로 한다." "로봇(컴퓨터)은 반드시 자신을 보호해야한다. 단 제1의 법칙 또는 2의 법칙에 위배될 때는 예외로 한다."세상이 인간만의 것이 아닐지라도 또 다른 주체로 컴퓨터가 떠오르고 인간이 그에 맹목적으로 매달리는 것을 보면서 적지 않은 공포감을 느끼는 것은 필자만의 기우이기를 바란다.
14.지난 1천년 인류 역사 결산
미국의 워싱턴 포스트지는 지난 1천년간의 인류역사에서 가장 위대했던 인물로 몽골제국을 건설했던 칭기스칸을 선정했다. 이 신문은 최근 서기 1000년에서 2000년까지의 인류사를 결산하는 송년특집기사 『1천년 각 분야 최고와 최악』에서 칭기스칸을 「태평양과 동유럽을 연결하는 대제국건설로 동서문화를 촉진했으며 인터넷보다 7백년 앞서 국제통신망을 건설했다」며 1천년 최고의 인물로 뽑았다. 최악의 인물로는 아돌프 히틀러를 선정했다.
분야별 최고 또는 최악의 인물은 다음과 같다.
△가장 취대한 시간과 장소=화가 터치아노가 활약했던 15세기의 베네치아. 안정된 정치와 현란한 문화의 중심도시로 코스모폴리터니즘을 발흥시키면서 거의 완벽한 표현의 자유를 구가했던 시대
△가장 뛰어난 책=18세기 중반에 나온 새뮤얼 존슨의 영어사전. 존슨 혼자 9년간 4만개의 단어를 모으고 단어마다 예문을 제시, 인간의 의지와 학문적 업적에서 기념비적인 책으로 인정받음.
△가장 큰 실수: 러시아침공. 나폴레옹과 히틀러등 러시아를 침공한 정복자들은 결국 광대한 땅과 혹한 때문에 침공에 실패해 자멸의 길을 걸었다.
△가장 위대한 발명=인쇄술. 총포와 화약등 원거리 실상무기가 후보로 올랐으나 인류를 문명세계로 이끈 인쇄술의 공로를 따르지 못했다.
△가장 위대한 그림=바티칸의 시스티나성당 천장에 그려진 미켈란젤로의 그림
△가장 위대한 배우=여배우는 그레타 가르보, 남배우는 말론 브랜도, 로렌스 올리비에등을 제치고 만화영화의 주인공 토끼 벅스바니가 뽑혔다.
△가장 위대한 과학자=알베르트 아인슈타인. 1세기 이상 시대를 앞서 우주를 바라보고 이론을 만들었던 아인슈타인만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독창적 과학적 과학자였다는 평. 차점자는 코페르니쿠스.
△가장 위대한 작곡=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 전체 4막속에 인간서의 본질이 거의 망라돼 있는 유일한 음악
△가장 위대한 가수=엔리코 카루소.
△가장 악했던 인물=아돌프 히틀러. 스탈린, 폴 포트와 함께 이색적으로 진화론을 통해 인종우열론을 이끌어낸 다윈등이 거론됐으나 웅변술 지도력등 뛰어난 재능을 엄청난 죄악을 저지르는데 동원한 히틀러에 결국 낙점됐다. /문화일보
15. 너는 누구냐
어느날 14세의 소녀 소피가 이름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편지를 받는다. 그 편지에는 짤막하게 {너는 누구냐?}라고만 적혀 있었다. 소피는 거울을 들여다 보며 {너는 누구?}라고 자문해 본다. 그리고 자기가 누구인지를 모른다니 좀 이상하지 않나 하는 의문을 품는다.
{게다가 자기 얼굴인데도 자기가 결정하지 못한다니 그럴 수 있어? 친구는 내가 고를 수 있는데 내 얼굴은 내가 고르지 못한다. 인간이 된다는 것도 내가 선택한 게 아니다.} 이렇게 생각한 끝에 소피는 [인간이란 뭣인가?]하는 의문을 처음으로 품게 된다.
다음날 그녀는 또 한장의 괴상한 편지를 받는다. 이번에는 그냥 {세계는 어디에서 왔는가?}라고만 적혀있었다. 그런 걸 누구든 알 턱이 없지 않나 하고 웃어넘기려다 문득 생각한다. 세계가 어디서 왔는지를 전혀 물어보지도 않는 채로 산다는 게 오히려 이상하지 않는가고. 그런지 며칠 후에 그 이름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긴 편지가 왔다. 이번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사람이 사는 데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이냐고 굶주린 사람에게 묻는다면 먹는 것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추위에 떨고 있는 사람은 따스함이라 대답할 것이고, 외로운 사람은 벗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기본조건이 모두 충족된다 하더라도, 그래도 사람들에게 절실한게 있을까? 그렇다. 사람은 모두 먹어야 하고, 사랑도 필요하다. 그러나 그밖에도 절실한 게 있다. 우리는 누구인가, 왜 살고 있는가를 알고 싶어하는 절실한 욕구를 우리는 갖고 있다….}.
[철학자로부터의 이상한 편지]라는 부제가 붙은 [소피의 세계]는 이렇게 시작된다. 노르웨이의 작가 요스타인 골델이 쓴 이 책은 미국에서는 대학의 철학 부독본으로까지 채용되고, 일본에서는 7백페이지 가까이나 되는 두꺼운 책인데도 60만부나 팔렸다.
그것은 고대신화로부터 칸트 마르크스 프로이트를 거쳐 현대의 우주론에 이르는 철학의 역사에 관한 얘기책이다. 그게 세계적인 베스트 셀러가 된 것은 마치 14세 소녀를 위한 미스터리 소설처럼 알기 쉽고도 흥미롭게 엮어진 때문에서만이 아니다.
불확실한 시대를 살고있는 우리에게 사고의 원점에 돌아가서 [당신은 누구인가?]하는 기본문제를 풀도록 일깨워주고 있기 때문이다. [너는 누구냐] 하는 물음에 대해 당장에 나오는 해답은 [나는 한국인]이다. 그러나 [한국인은 누구냐?]고 재차 물을 때 여기 만족스럽게 해답을 내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아무도 거기까지는 [미처] 생각해보지 않았으며, 또 그럴 필요를 느끼지 않은 채 지금까지 살아온 것이다.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이라는 의문사다. 사람에게 지혜를 불어넣어 주는 것도 [왜]라는 의문이다. 그런 [무엇]과 [왜]라는 의문을 티끌만치도 품지 않은 채 우리는 마냥 달리고 있다.
그나마 앞을 향해 달리고 있는지 아닌지조차 우리는 조금도 의심치 않고 있다. 고대 희랍의 철학자 탈레스가 어느 날 우주의 신비로움을 생각하며 하늘을 쳐다보며 걷다 발을 헛디디고 물에 빠졌다. 그것을 보고 사람들이 {발 밑에 있는 것도 모르면서 어떻게 하늘을 안다는 것이냐}며 비웃었다.
우리는 지금 발 밑에만 정신이 팔려서 먼 산에서 무슨 비구름이 몰려오고 있는지도 모르고 있다. 빛을 보기 위해서 눈이 있고 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귀가 있다. 그리고 생각을 하기 위해 사람에게는 머리가 있고 마음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도 머리를 쓰지 않고 있다.
모두가 어디로 가고 있는가 하는 방향감각을 잃었으며, 어디로 가야 하는가 하는 목적의식도 잃고 있다. 오늘의 세계는 물론이요, 내일의 인류에 대해서 불안을 느끼지 않는 것은 우리 한국인뿐인 것만 같다.
한마디로 우리는 생각하는 버릇을 잊고 있다. 그만큼 우리는 철학을 멀리하고 있다. 우리는 마치 과학 또는 과학적 기술만이 행복에 이르는 우리의 길을 비춰주는 유일한 등불인 것처럼 여기고 있다. 분명 과학은 우리나라의 고도성장의 기둥이 된다. 그것은 세계화를 서두르는 우리의 추진력이 되어준다. 그러나 과연 고도성장이 우리를 행복으로 이끌어 줄 것인지, 또는 이른바 세계화가 우리의 아이덴티티를 어떻게 바꿔놓을 것인가하고 의문을 품어보는 사람이 없다.
우리는 21세기를 향해 잘 달리고 있다고 많은 사람들이 말한다. 그러나
21세기는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것과는 엉뚱하게 다를지도 모른다. 여기대해 대답해 줄 수 있는 철학자가 우리나라에는 없다. 또 [소피의 세계]가 우리나라에서 번역된다 해도 과연 몇부나 팔릴지 의심스럽다.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가장 큰 위기는 바로 이런 데 있다.
우리는 지금 걸음을 멈추고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사는가?] [나는제 길을 걷고 있는가?]고 한번쯤만이라도 돌이켜 생각해 보아야 한다. 우리는 지금 엉뚱한 길을 걷고 있는지도 모르는 것이다. //주간조선
16.인간의 장수 -지난 2세기 동안 평균수명 40세 연장-
현재 산업화된 나라들에서 노인인구의 증가는 놀랄만하다. 금세기에 들어 인간의 수명은 25세를 더 추가시켰으며 지난 2세기 동안 수명연장은 무려 40세나 된다. 지난 2세기 동안 인간수명 연장의 실적은 그 이전 인류 역사 5천년 도안에 이룩된 성과와 맞먹는다. 이와 같은 놀랄 만한 업적은 감염질환 의 퇴치가 주원인이며 영양 위생 기타 환경요소의 개선으로 설명하고 있다.
미국의 예를 들면 1940년에 90세까지 살 수 있는 가능성이 7%에 불과하였으 나 1980년에 이 가능성은 24%로 증가되었다. 1989년도 통계를 보면 65세 이상의 인구는 전체인구의 13%를 차지하였으며 2020년이 되면 이 노인층의 인구는 23%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것이 소위 인간분포의 정방형화라고 하는데 이는 각 연령층의 인구비례가 소년층 청년층 노년층 모두 비슷한 분포를 보이는 것을 말한다. 미개한 사회 일수록 피라미드형 인구분포를 보여 유년 소년층의 인구가 가장 많고 나이가 들수록 생존율이 급격히 낮아져 극히 소수에 불과한 분포를 보인다.
노인층 인구의 증가는 고령자로 갈수록 그 증가율이 더 급속하다. 프랑스의 예를 들면 1954년 1백세 이상의 인구는 2백명에 불과하였으나 1990년 그 수가 3천명이나 되었다. 미국에서도 1950년 1백세 고령자가 4천4백75명으로 기록되
었으나 1990년에 그 수가 5천4백명으로 증가하였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어서 경제발전과 더불어 급속한 노인인구의 증가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노인인구의 폭증은 각 사회에 나름대로 부담을 안겨주고 있다. 고령자 증가에 따른 사회의 의무는 의학적 측면과 사회적 측면에서 생각할 수 있다. 노화현상에 대한 기초 연구를 개발, 축적하며 고령자들에게 최선의 치료를 베푸는 지식과 기술과 설비를 준비하는 일이 시급하다.
이미 선진 여러나라에서는 수십년 전부터 노인병학을 발전시켜 왔으며 많은 업적을 쌓아가고 있다. 미국의학협회지 최근호는 노인병 문제를 특집으로 다루어 그 사회의 관심도를 보여주고 있다. 미국에서는 이미 1971년에 백악관 주재하에 노화에 대한 전문가회의가 있었고 곧 이어 1974년에 국립보건원내에 국립노화 연구소를 설립한 바 있다.
노인인구의 급속한 증가에 대하여 사회가 품고 있는 걱정을 살펴보면, 첫째, 우리 사회가 팽창하는 고령인구를 경제적으로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 둘째 노인층이 증가함으로써 세대간의 갈등을 더욱 조장하지는 않을까? 셋째, 노인인구 의 증가는 사회의 생산력을 감퇴하지 않을 것인가 등으로 요약할 수 있겠다.
우리 사회는 이와 같은 질문의 해답을 부정적 면에서 찾아서는 안되겠다. 많은 경우 노인문제에 대한 부정적 견해는 연령의 차별, 연령에 대한 독선적 견해, 또는 누구나 나이가 들어 노인이 된다는 엄격한 현실을 도피하려는 데서 온다고 본다.
21세기를 앞두고 우리사회도 복지사회의 슬로건을 내걸고 사회선진화를 계획 하고 있다. 급속히 증가하는 노인인구를 위한 의학적 및 사회적 사업이 많은 다른 과제 중 우선순위에 들어가리라 믿는다. 노인문제의 해결은 겉치레나 입막음의 정책으로는 되지 않으며 긴 안목으로 잘 계획된 조직적 정책수립으로만 가능하다. 모든 사회구성원이 이 문제를 정확히 인식, 앞을 내다보는 현명한 사회정책을 수립하는 것이 시급하다.
17.극한 상황서 인간은 얼마나 생존할 수있나
최명석군이 9일여(2백30시간)만에 극적으로 구조된 것을 계기로 극한 상황에서 인간이 얼마나 생존할수 있는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의학계에서는 인간의 극한 생존능력을 "3,3,3이론"으로 설명한다. 보통 사람이 공기를 3분동안 마시지 못하면 목숨을 잃고 물은 3일,음식은 3개월동안 먹지 않으면 사망한다는 이론이다. 따라서 삼풍사고의 매몰자들도 부상당하지 않고 물과 공기만 주어졌다면 생존가능성이 충분한 것이다.
지금까지의 사례를 살펴보면 붕괴,매몰사고와 지진등 불의의 사고의 경우 생존 가능시간은 대체로 20일을 넘기 어려운 것 같다.
올해 4월20일 발생한 미국 오클라호마시티연방건물 폭파사건에서는 14일만에 생존자가 구조됐고 일본 고베대지진 당시에는 64시간만에 구조된 기록이 있다.
국내에서는 67년 충남 청양군 구봉광산 지하 1백25m갱속에 갇혔던 양창선 (당시 36세)씨의 15일 9시간이 최고 기록이다. 82년에는 강원도 태백탄광에서 4명의 광원이 14일8시간만에 구출되기도 했다. 이들은 당시 지하수로 목을 축이고 갱목껍질로 배를 채우면서 구조를 기다렸다.
그러나 물을 제공받는등 처음부터 외부의 지원을 받는다면 생존기간은 훨씬 늘어나게 된다. 기네스북의 기록에 따르면 81년 미국 텍사스주의 빌 휘트(당시 50세)씨는 외부의 지원속에 7월31일부터 12월19일까지 1백41일을 지하 2m에 묻힌 관속에서 버텨냈다.
최장단식기록은 스코틀랜드의 앵거스 바에리씨가 세운 3백82시간. 비만을 줄이기 위해 의사의 지속적인 감시아래 물과 비타민제를 먹으면서 세워진 기록이다.
경우는 다르지만 김영삼 대통령도 5공시절인 83년 군사독재에 항거하며 23일간 단식투쟁을 벌인바 있다.
전문가들은 인간의 체질과 건강상태가 생존기간에 큰 영향을 미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정신력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이번에 구조된 최군의 경우도 낙천적이면서도 강인한 성격을 가진 것이 생존에 결정적인 도움을 준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18.인간의 유전자는 신의 영역
활용기술 특허 허용여부 싸고 종교계와 업계 치열한 공방
인간의 유전자는 5만개가 넘는다. 과학자들은 인간의 모든 유전자를 서로 빨리 밝혀내려고 분초를 다투고 있다. 그 뒤에는 생물공학 업체들이 바짝 따라붙는다. 그들은 과학자들이 새로운 유전자를 발표하기가 무섭게 그것을 이용한 상품 특허를 따내려고 안간힘이다.
미 특허청은 유전공학 제품에 대한 특허를 81년 이래 1만1천8백15건이나 승인했다. 인간의 유전자 수는 방대하긴 하지만 무한 것이 아니다. 지금의 아이들이 손자를 볼 때쯤이면 인간의 모든 유전자들은 낱낱이 그 실체가 밝혀져 장사가 될 만한 것은 모두 상품화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인간의 생명이 비록 유전자 형태이긴 하지만 상업적인 목적으로 특허화될 수 있는 것인가. 최근 카톨릭에서 불교에 이르기가지 미국의 모든 주요 종교를 대표하는 1백87명의 성직자들은 워싱턴에서 회합을 갖고 그 질문에 대해 「아니다」고 보기 드물게 한 목소리를 냈다. 『인간과동물은 창조주의 피조물이기 때문에 그에 대한 특허권은 절대 인정할 수 없다』고 천명한 것이다
인간 유전자의 상품화에 대한 논쟁은 갈릴레오의 경우처럼 단순히 종교와 과학의 충돌이라고 볼 수만은 없다. 그것은 최근 급성장하고 있는 생명공학으 미래를 담보로 할 뿐 아니라 관련 기업에도 수십억 달러가 걸려 있는 한판의 큰 도박이기 때문이다. 금년 초 앰젠사는 유전자를 이용한 비만억제 약품 개발을 위해 록펠러대에 2천만 달러를 투자했다. 물론 그것을 시판하기까지는 그 10배에 달하는 경비가 소요될 수도 있다. 그러나 판매 수익은 그보다 더 많을지도 모른다.
유전공학 상품 특허에 대한 시비는 언제나 도덕적인 갈등을 낳게 마련이다. 종교인들은 아무리 유전자라고 해도 인간의 생명은 신성한 것이기 때문에 일반 상품으로 매매돼서는 절대 안 되며 유전공학으로 태어난 동물에 대해서도 개발자가 특허권을 주장하는 것은 터무니없다는 입장이다.
반면 업계의 생각은 전혀 딴판이다. 그들은 사회적인 효용성을 근거로 유전공학 제품의 상품화가 불가피하고 환자들에게 꼭 필요한 의약품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특허권 보장이 필수적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상반된 주장의 배경에는 각각 그럴만한 법적.문화적 근거가 있다. 우선 미국에는 인간의 장기에 대한 매매 행위는 수요가 있긴 하지만 법으로 금지돼 있다. 윤리학자 제임스 넬슨은 『인간의 장기는 인간의 생명 그 자체와 다름없기 때문에 매매될 수 없다는 것이 미국의 문화』라고 말한다. 그는 유전자도 인간의 장기와 마찬가지로 보호돼야 한다고 믿는다.
그런 반면 미국은 실용주의를 신봉하는 나라이기 때문에 법도 융통성 있게 해석될 수 있다. 지난 80년 대법원은 유전공학으로 개발된 원유 유출을 정화하는 유기물에 대해 특허권을 인정했다. 그 이후 당국은 인간의 유전자를 활용한 상품에 대해서도 바로 그 판례를 적용해 특허를 내주고 있다. 그 가운데는 심장마비 환자의 응혈을 해소할 수 있는 제넨테크사의 유전공학 약품도 포함돼 있다.
그렇다면 과연 도덕적으로 허용되는 유전공학의 영역은 무엇이고 그 한계를 결정하는 주체는 누구인가? 앞으로 과학자들이 인간의 유전자를 조작해 특별한 능력을 갖춘 사람을 만들어 낸다고 해도 현행법으로는 그것을 저지할 방법이 없다. 또 업계는 사회적인 효용성을 내세워 인간 유전자의 상품화에 박차를 가할 게 분명하다. 따라서 지금 시급히 요구되는 것은 신과 자연의 섭리에 맡겨둬야 하는 것이 무엇이고 인간이 손댈 수 있는 한계가 어디인지에 대한 명쾌한 해답일 것이다.
19.견딜 수 없는 가벼움의 무거움
인간을 견딜 수 없게 하는 것은 존재의 가벼움인가, 무거움인가? 멀쩡한 목숨들이 지하철에서 독가스를 마시고 죽어가는 `일본풍경'이나 괴한의 기관단총 난사에 맞아 죽는 `미국 풍경'은 존재의 가벼움을 보여주는 장면일까 무거움의 장면일까? 사람이 한 순간 아주 간단하게, 그가 통제할 수 없는 변수들의 작동권에 휘말려 소멸한다는 것은 인간 존재의 견딜 수 없는 가벼움을 증거하는 현상 같아 보인다. 통제불능의 변수들을 `우연'이라 한다면, 인간 존재의 문법은 그 우연성의 침입 앞에서 마치 한국산 자동차처럼 아주 가볍게 망가진다. 그러나 독가스를 뿌리고 기관총을 난사하는 행위 자체도 우연한 것인가? 우연하지 않다면 그 우연하지 않은 사건의 희생자가 되는 것은 우연한 일인가? 우연하지 않은 사건의 우연하지 않은 희생자가 되는 것은 존재의 무거움인가?
일본 풍경이나 미국 풍경 같은 것이 오늘날 문명세계의 어디서건 발생할 수 있고 또 발생한다는 사실, 그리고 누구도 그 풍경으로부터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은 현대인을 어이없게 한다. 자연을 다스리고 우연을 통제하기 위한 문명의 긴 노력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목숨이 여전히 가볍게 위협당할 수 있다면 문명과 사회와 질서와 제도들은 다 무엇하자는 것인가. 그러나 현대인을 미치게 하는 것은 문명의 전개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삶이 여전히 불안하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 반대, 곧 문명이 발전하면 할수록, 아니 바로 그 문명의 질 때문에, 삶은 더 많은 위협 앞에 노출된다는 이상한 역설이다. 옛날 사람들은 더러 호랑이한테 물려가는 수는 있어도 미치광이의 자동차에 치여 죽고 기관총에 맞아 죽고 독가스 마시고 죽는 수는 없었다. 이 `최신식' 죽음의 방식은 현대인에게서 자기 도취의 모든 순간들을 앗아간다. 어찌된 일인가 어리둥절해 하는 그에게 유일한 위안은 부지런히 생명보험에 드는 일이다.
<고도를 기다리며>의 극작가 새뮤얼 베케트는 어느날 파리 노상에서 낯선 청년의 칼에 찔려 병원으로 실려간다. 입원 기간 내내 그를 궁금하게 한 것은 그 낯선 사내가 왜 자기를 찔렀을까라는 의문이었다. 정신이상자였을까? 그러나 경찰에 붙잡혀 온 그 사내는 미치광이가 아니었다. 이 멀쩡한 사내는 "왜 나를 찔렀소?"라는 베케트의 질문에 "모르겠는데요"라고 대답한다. "나를 미치게 한 것은 바로 그 대답이었다"라고 베케트는 나중에 술회한다. "차라리 무슨 이유를 댔더라면, 그 이유가 아무리 황당한 것이라 해도 나는 오히려 안심했을 것이다. 그의 행동은 최소한 `이유'를 가진 것이니까. 그런데 모르겠다니, 그 무슨 어이없는 대답인가. " 베케트의 이 경험은 존재의 `어이없음'이라는 그의 극작 주제와 기막히게 어울리는 것이었는지 모른다. 그게 한 극작가의 생애에 발생한 예외적 사건이 아니라는 사실만 빼고는.
문명이 삶의 질을 높인다는 믿음으로 굳게 무장한 이 시대에 어째서 어이없는 사건들이 무더기로 터져나오는가라는 문제는 현대인의 악몽임과 동시에 당대 `문화론'을 쓰는 사람이라면 맨 먼저 다루어야 할 화두이다. 문명과 문화 개념의 중첩 부분을 제외한다면 문화론의 할일은 무엇보다도 `문명에 대한 반성'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기술적으로 가능해진 시대, 가능하므로 무슨 일이든 할 수 있게 된 이 고도 기술의 자본주의 문명시대에 인간 사회가 통제불능의 혼란에 빠지고 `자유와 책임'이라는 시민사회적 윤리가 곤두박질하는 연유는 무엇일까? 문화는 이 극도로 파편화한 사회를 얽어맬 어떤 통합력을 가질 수 있을까? 이것은 당대 문화론이 다루어야 할 두번째 주요 화두이다.
하지만 우리가 아까운 지면을 빌려 구태여 이런 화두를 던져보는 것은 단순히 문화론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런 반성작업이 문화 자체의 할일이고 사회의 과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아무리 따져도 우리 사회의 문화적 반성능력은 그런 문제를 다루기에는 턱없이 역부족인 미성숙의 단계에 있어 보인다. 이 미성숙성의 포위 속에서 우리가 `삶의 질'을 말할 수 있을까? 우리를 괴롭히는 것은 존재의 존재론적 가벼움이나 무거움이 아니라 이 문명이 정의하는 삶의 질 속에서 느끼는 존재의 어이없음이다. 그러나 어이없는 사건들은 이유 없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이유가 있어서 발생한다. 돈지갑의 두께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무게 자체는 잠자리 날개처럼 나날이 가벼워진다는 것도 그 이유의 하나이다. 이 가벼움을 견딜 수 없어 어이없는 사건들이 터지는 것은 아닌가? 견딜 수 없는 가벼움 때문에 견딜 수없는 무거움이 우리를 짓누른 것은 아닌가, 어이없게도?
이것들은 사실 수사적 질문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이미 해답의 상당 부분을 알고 있다. 알고 있으면 우리는 어이 없이 그 앎을 은폐하는 적극적 무지를 지향하고 있다.
20.사람이 산다는 것
전능의 신 제우스가 인간과 동물을 만들어 보라고 프로메테우스에게 명령을 내렸다. 만들다보니 인간보다 동물의 수가 더 많아졌다. 그러자 제우스는 짐승 수를 줄이고 사람 수를 늘리라고 다시 프로메테우스에게 명령했다.
프로메테우스는 이미 만들어진 짐승중의 일부를 부수고 인간으로 바꿔 놓았다. 이리하여 모습이나 마음이나 다같이 인간인 사람과 모습은인간이지만 마음은 짐승인 사람의 두 가지가 되었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인간의 수명은 처음에는 20년이었다. 그것을 인간은 늘 불만스레 여기고 있었다. 때마침 겨울이 되자 추위를 견디다못한 말이 인간에게 와서 겨울을 나게 방하나를 빌려 달라고 부탁했다. 인간은 {너의 수명중의 얼마를 내게 나눠준다면 방 하나를 빌려 주겠다}고 말했다.
말은 이 흥정을 받아들이고 자기 수명 중에서 15년을 떼어 주었다. 그 다음에 소가 와서 똑같은 부탁을 했다. 인간은 말 때와 똑같은 조건으로 소에 방을 빌려 주었다. 마지막에 찾아온 개에도 똑같은 조건으로 방을 빌려 주었다. 이리하여 인간의 수명은 65세가 되었다. 그 후부터 인간은 원래의 수명인 20년 동안은 선량하게 살지만 말한테서 받은 나이가 되면 허풍이 많고 거만해지고, 소에서 받은 나이가 되면 남을 지배하려들고, 개로부터 받은 나이에 이르면 잔소리가 많아지고 화도 잘 내게 되었다.
셰익스피어는 [마음 내키는 대로]라는 희극에서 인생을 다음과 같이 7단계로 나누었다. {세상은 모두가 하나의 무대, 인간이란 남자나 여자나 한낱 어릿광대에 지나지 않는다. 모두가 그 무대에 등장했다가 7막을 연기한 다음에 퇴장한다. 첫째 막에서는 유모 품에 안겨서 칭얼대는 어린애 역할을 한다. 다음에는 가기 싫은 학교에 억지로 다니는 학생이 되고, 그 다음에는 애처롭게 연가나 부르는 연인 노릇을 한다. 다음에는 싸움을 좋아하고, 물불을 가리지도 않고 명예욕에 불타는 군인이 된다. 5막째 에는 뇌물로 아랫배가 튀어나오고, 그럴싸한 격언을 뇌까리며 위엄부리
고, 그러면서도 제법 자기 일에는 열심인 재판관 노릇을 한다. 그러다 6막에 들어가면 몸에 맞지도 않는 젊었을 때의 옷을 걸쳐 입고, 허리에는 돈주머니를 꿰찬 얼빠진 늙은이가 되어버린다. 마지막 막에서는 노망하여 눈도 안보이고 이빨도 없는 어린애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사람의 인생이란 이처럼 어리석음의 연속이다. 인생을 한껏 1백세로 늘려 잡는다 해도 여기서 어린 시절과 노인시절을 빼면 정말로 인간다운 삶으로 여길 수 있는 것은 50년이다. 여기서 잠자는 시간과 밥 먹는 시간들을 뺀다면 25년밖에 안 남는다. 여기서 또 병이며 걱정 거리로 빼앗기는 시간들을 빼면 10여년 밖에 남지를 않는다. 그나마 그 짧은 동안에도 자기가 죽은 다음의 명예까지 걱정해야 한다니 인생처럼 고달픈 것도 없다. 전국시대 양주의 넋두리다.
그 짧은 동안이나마 제법 슬기롭게 잘 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장자에는 {나이가 50이 되어서야 겨우 지난 49년 동안의 잘못을 깨닫게 되었다}는 얘기가 나온다. 세상만사는 모두 변한다. 오늘의 진리가 내일의 허위일 수도 있고, 오늘의 부정이 내일 정의로 둔갑하는 수도 있다. 그런 속에서 올바른 삶의 길을 지켜 나간다는 것처럼 어려운 것도 없다.
박쥐가 땅에 떨어져서 족제비에 붙잡혔다. 살려달라고 박쥐가 애원하자 족제비는 [새들은 우리의 적이니까 너를 살려줄 수가 없다]고 말했다. 박쥐는 [나는 새가 아니라 쥐입니다]면서 간신히 그 자리를 모면했다. 그러지 얼마 후에 또 다시 땅에 떨어져서 다른 족제비에게 붙잡혔다. 그 족제비는 [나는 쥐를 제일 싫어한다]고 말하면서 잡아먹으려 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나는 쥐가 아니라 새입니다]고 우겨서 살아났다.
그러나 이솝은 이와 정반대 되는 얘기도 들려주고 있다.
새들과 짐승들 사이에서 전쟁이 벌어지려 하고 있다. 새들이 박쥐에 자기 네편을 들어달라고 간청했다. 박쥐는 잘못 편들다 혹시 낭패 보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에 [나는 새가 아니라 짐승이다]라면서 편들기를 거절했다. 이번에는 짐승들이 자기네 편을 들어달라고 말했다. 그러자 [나는 새이다]라고 발뺌을 했다. 다행히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다. 새들과 짐승들은 제각기 평화를 축하하는 잔치를 벌리기로 했다. 박쥐는 두 곳에서 모두 박대를 받았다.
사람이 명예며 체면이며 책임이며 긍지며 양심 따위를 내버리고 그냥 살아남기로 마음먹는다면 산다는 것은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니다. 영악한 사람은 바람 따라 잘 나부끼기도 한다. 한해가 또 저물어간다. 마치 치사스럽고, 추악하고, 뻔뻔스런 인간들만으로 엮어진 것 같은 한해가 저물어가고 있는 것이다.
21.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건 `건강'
대우기전이 사내 임직원 3백4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61%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게 무엇이냐"는 설문에 대해 이렇게
대답했다. `가정'(19.9%)이나 `자아실현'(15.7%)은 한참 뒤처졌다. 특이한 점은 임원의 경우 60%가 자아실현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꼽았다는 것이다.
명예퇴직이며 감원 등 몰아치는 폭풍 앞에서 일반 직장인들이 기댈 수 있는 자산은 결국 건강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까.. 그러다 보니 직장생활의 보람도 결국은 보수에서 찾는다. "직장생활을 통해 가장 큰 보람이 무엇이냐"는 설문에 51.4%는 "생활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경제적 보수"라고 응답했다.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고 완성하는 기회"라는 응답은 18.7%, "대인관계를 통한 인간적인 성숙" "사회적 존재로서 대사회적 기여" 등은 각각 16.0%에 그쳤다. 이제 `직장=자아실현의 장'이라는 등식은 더이상 의미가 없어져 가는 것일까.
##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
61.0% 건강
19.9% 가정
15.7% 자아실현
10.4% 대인관계
3.9% 재산
1.5% 지식
1.5% 사회적 안녕
1.2% 명예
22.인간성을 회복합시다
19세기 초 러시아의 문호 도스토엡스키는 그의 책 『죄와 벌』에서 그가 살고 있던 시대를 고발합니다. 주인공 『라스코르니코프』는 문학생이며 나폴레옹 숭배자인데 『나폴레옹처럼 선택된 강자는 범인을 위해서 법을 딛고 넘어설 권리를 가진다.』는 논리에 도달한다. 그는 자신을 『선택된 강자』라고 자처합니다. 그는 고리대금업 하는 노인을 죽일뿐 아니라 그 동생까지 살해하고는 금품을 빼앗아 달아나 버립니다. 오늘날 정치인에서부터 최근에는 초등학교 학생까지 폭력이 그치지 않습니다. 이제 인간성은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인간성입니다.
23.위대한 동물
태평양 한 가운데 하와이 주가 있습니다.. 하와이 주 수도인 주청 소재지 호놀룰루에 가면 와이키키 해변가에 해양 동물원이 있습니다.. 전부 구경하려면 2시간 정도 소요되는 동물원으로 거기에는 세계 각지에서 온 아주 사나운 맹수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곳을 한바퀴 돌고 마지막 막사를 나오는데 거기에 이상한 팻말 하나가 서 있었습니다.. 가까이 가서 보니 거
기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씌어져 있었습니다.. “The greatest animal in the world”(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동물).
하도 궁금해서 그곳에 가보았습니다.. 그런데 기대했던 동물은 보이지 아니하고 대신 이상하게 생긴 큰 거울 하나가 놓여 있었습니다.. 그 거울을 들여다보자 바로 내 자신이 보여졌습니다.. 즉 그곳은 각 사람 자신의 모습을 보여 주면서 자신이 바로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동물임을 일깨워 주는 곳이었습니다.. 바로 그 문구를 보는 순간 '인간이야말로 정말 위대하다. 아무리 동물들이 몸집이 크고 힘이 세다 해도 인간을 따를 수는 없다'는 생각을 가져 보았습니다.. 창세기를 보면 하나님께서 우주 만물을 만드신 다음 에덴 동산에 인간을 만드시고 인간에게 말씀하시기를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라. 그리고 모든 것을 정복하고 다스리라”고 하신 것을 찾아 볼 수가 있습니다.. 이처럼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기 때문에 모든 동식물을 다스릴 수 있는 힘과 지혜를 가지고 있습니다..
24.통로를 찾는 사람
현대인들은 만족결핍증을 앓고 있다. 인생의 진정한 만족은 술이나 향락, 과도한 소유에 있지 않다. 미국의 작가 게일 훼일은 "통로를 찾는 사람들"이란 글에서 참 만족을 갖고 사는 사람들의 조건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삶과 뜻에 분명한 방향을 가진 사람, 허무와 실망에 매이지 않는 사람, 앞날의 계획을 믿음과 용기로 성취하는 사람, 누군가를 무척 사랑하는 사람, 신뢰할 친구가 많은 사람, 낙천적이고 비밀이 없는 사람, 자기비평에 신경 쓰지 않는 사람, 큰 두려움이 없는 사람".
25.한국의 복제인간
옹진골 옹당촌에 옹고집이란 자가 살고 있는데 성벽이 고약하고 심술이 맹랑하며 인색하기로는 놀부 큰형님 뻘이었다. 이 옹고집의 집에 동냥갔다가 모진 행패를 당하고 온 도사가 허수아비에 부적을 붙여 옹고집과 똑같은 복제인간을 만든다. 이 허옹을 진옹 집에 보내어 집안에 분란을 일으킨다.
양옹이 옹옹 하니 이옹 저옹을 분별할 수 없어 관가에 소송을 하는데 대 곤장 30대를 맞은 진옹이 그대로 버티다가는 죽겠다고 생각되어 허옹이라고 자백하고 가산을 모조리 빼앗기고 유랑생활을 한다. 한국의 복제인간은 이렇게 권선징악을 위해서 탄생했지만 복제인간이 탄생되면 인간질서가 뒤죽박죽이 된다는 시사이기도 하다.
중국 [요재지이]에도 실체가 없는 세 명의 복제미녀가 온 나라 안의 건달들을 후리고 궁중에 들어가 나라까지 망치는 이야기가 있다. 올더스 헉슬리의 공상과학소설인 [신나는 세상]에도 과학자들이 한꺼번에96명의 똑같은 아기를 낳게 하는 대목이 있다.
아기를 자연 임신해서 낳는 태아시대에서 대량 배양시대로 옮아감으로써 엄마도 아빠도 없고 가정도 없는 짐승과 같은 사회의 출현을 예고한 것이다. 복제인간이 액물인데는 이처럼 동-서양이 다르지 않았다.
헉슬리는 6세기후의 세상일로 이 복제인간을 다루었으나 유전학계에서는 2005년까지는 필요한 만큼의 아인슈타인이나 마릴린 먼로 그리고 마이클 조던을 복제해낼 수 있다고 장담해 왔다. 이 장담을 뒷받침이라도 하듯 영국의 과학진은 복제양을 대량으로 만들어 내는데 성공하여 복제인간 출현이 임박했음을 시사했다.
복제인간에는 장점도 없지는 않다. 내장을 서로간 저항 없이 이식할 수 있기에 장수하게 되고 마음 맞는 사나이를 못 만나면 처녀 출생을 할수 있고 사랑하는 아이가 죽어 상처가 깊으면 똑같은 아이를 다시 가질 수도 있다. 또 세포은행에 자신의 세포를 예탁했다 그것으로써 자신을 복제, 적어도 2백년은 장수할 수가 있다고도 한다.
하지만 1백명의 아인슈타인을 복제했다 하더라도 성장하는 동안 환경변수에 따라 그 모두가 천재가 된다는 보장은 없으며 수천 수만명의 마릴린 먼로가 득실거리면 미인의 인식기준이 달라져 오히려 천하의 추녀뺑덕어멈이 선망 받게 될 것이다.
또 1백명의 맹자를 만들게 한다면 1백명의 히틀러나 도척도 복제할 수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 다. 그래서 유럽에서는 그 연구를 규제하고있고 미국도 이번 복제양의 탄생으로 충격을 받아 복제인간이 몰려들 길목을 막을 채비를 하는 것일 게다.
26.사람의 나이와 노쇠
미국의 레오나드 헤어플릭 박사는 동물실험을 통해 피부의 세포 분열 주기와 동물의 수명이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이론을 주장했으며 이를 통하여 동물의 과학적인 수명을 측정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 고양이의 세포 분열 횟수는 8회, 말은 20회, 인간은 60회이므로, 고양이의 수명은 16년이고 말의 수명은 40년, 사람의 수명은 120년이라고 주장한다.
인간의 탈모 치료를 연구하면서 사람의 머리카락은 그 수명이 약 5년이며, 인간의 한평생에는 머리카락이 25번까지 나오도록 유전자에 프로그램밍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한 학자가 있다. 따라서 인간에게 주어진 수명은 120세라고 했다.
성경의 창세기에도 `그들의 날은 120년이 되리라'고 했고, 구약 시대의 많은 사람들이 120세 전후까지 살았다(모세 120세, 사라 127세, 요셉 110세, 여호수아 110세)
사람의 능력은 얼마의 나이에 절정에 이를까? 사람의 나이와 노쇠 현상을 연구하는 학문으로 연령학이라고 하는 분야가 있다.
여기에서 스틸 박사는 인간의 능력이 그 절정에 이르는 연령을 제시하고 있다.
기억력은 10-23세에 절정을 이르고 상상력은 20-30세에, 창조력은 30-55세에, 종합력은 45-60세에, 판단력은 50-70세에 절정에 이른다.
또 육체적인 능력의 절정기에 연구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신속함은 18-28세에 절정에 이르고 스태미너는 25-35세, 기량은 33-43세, 인내력은 38-48세, 불굴의 힘은 40-70세에 절정에 이른다.
정신적인 종합력이나 판단력, 그리고 육체적인 인내력이나 불굴의 힘과 같이 가장 가치있고 고귀한 능력은 50대 이후 70세까지 나타남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과업이라고 하는 아폴로 우주선의 탑승자들은 모두가 40세 전후의 사람들이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고전은 모두 저자의 나이 60세 이후에 쓰여진 것이 많다. 따라서 인간이 어려운 과업을 추진할 수 있는 나이는 60세 이후가 된다.
나이가 들었다고, 또 나이가 60이나 70이 되었다고 실망해서는 안된다. 이때야말로 가장 가치가 있고 고귀한 능력이 발휘될 때가 된 것이다.
27. 인간을 만드소서
유대인의 옛 민화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신이 사람을 창조하려 하자 천사들이 반대했다고 한다. "인간을 만들면 그들은 욕심 때문에 곧 거짓말과 거짓 행위를 일삼을 것이오니 아예 만들지 마소서"하고 정의의 천사가 말했다.
"인간을 만들면 그들은 씻을 수 없을 만큼 더러워질 것입니다. 그들은 죄의 진탕에서 마구 뒹굴 것이오니 아예 만들지 마소서"하고 성결의 천사가 진언하였다.
"인간을 창조하지 마소서. 그들은 계속 싸울 것입니다. 이 우주에 혼란이 생긱 것이오니 아예 만들지 마소서"하고 평화의 천사가 말했다.
그러나 자비의 천사는 이렇게 말했다.
"신이시여, 인간을 만드소서. 그들의 거짓도 자비로써 용서의 길이 트일 것이오며, 그들의 사나움도 사랑의 손길로써 부드러워질 수 있사오며, 그들의 더러움도 용서로써 다시 씻을 길이 있사옵니다."
28. 연령별 인간능력
미국의 심리학자 `스타일'이란 분이 연령별로 인간의 능력에 대한 조사를 해 놓은 내용이 있다. 일생에 있어서 기억력이 가장 왕성한 시기는 10-23세, 상상력이 가장 왕성한 시기는 20-30세, 창조력이 가장 왕성한 시기는 30-50세, 판단력이 가장 왕성한 시기는 45-70세가 넘는 시기라고 한다.
가장 하나님을 잘 만날 수 있고 꼭 만나야 할 시기는 20대로써, 상상력이 풍부한 20대야말로 가장 종교적인 세대라 하겠다. 만약 20대에 신앙을 통해서 가치관이나 인생관을 확립하지 못하면, 30-40대에 왕성한 창조력을 발휘하기 보다는 현상 유지에 급급하여 소시민적인 생활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50대 이상에서 볼 수 있는 바른 판단력은 오히려 흐려지고 이기적인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29.인간 동물원
코펜하겐의 한 동물원에서는 호모 사피엔스라는 동물 이름으로 사람을 우리 속에 가두어 관람시키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오랑우탄 비비고릴라 등 유인원 가까이 전시하여 인간으로의 진화를 알 수 있게 전시하고 있다.
이는 교육적 목적보다는 현대문명 속에서 오만해진 인간을 풍자하는 저의가 물씬한 인간동물원이다. 이를테면 `인간과 원숭이의 염색체는 98.5%가 같고 단지 1.5%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는 등의 설명판에서 그것을 엿볼수 있다.
우리 나라에도 인생을 터득시키는 인간동물원이 있었다. 숙종때 의주에서 국경 무역을 해서 3만섬을 거두는 정씨 성의 거상이 있었다. 중국 사람들이 진귀한 새를 좋아하여 집안에 커다란 새집을 짓고 진귀한 새들을 모아길러 팔고 있었다. 그 새에 모이를 주는 머슴이 조석으로 새집을 드나들며 한탄을 했다.
너희 새들은 팔자가 좋아 잠만 자고 일도 않고서 종일토록 노래만 부르니 애고애고 내팔자야 하고 팔자타령하는 것을 주인이 여러번 들었다. 어느날 이 머슴이 모이 주러 새집에 들어간 사이 주인이 밖에서 자물쇠를 잠그고는 새팔자가 되게 해줄테니 조롱 속에서 놀고 먹어라 했다.
그러고서 조석으로 융숭하게 밥상을 차려 들여 보냈다. 사나흘이 지나자 미칠 것 같고 이레가 지나자 차리리 죽느니만 못할 것 같아 주인에게 죽여 달라고 애원했다. 이 인간동물원을 거쳐 나온 머슴은 노동의 고마움으로 남달리 일을 많이 잘 하여 북경을 내왕하는 역시 거상으로 성장했다.
14세기 피렌체 상인인 사케티의 `르네상스 견문기'의 한 이야기에도 이같은 인간동물원이 등장한다. 이탈리아 한 지방의 봉건주가 집안에다 우리를 지어놓고 백성 가운데 일안하고 게으르며 먹고 놀기만 하는 자를 이 우리 속에 초대하여 환대를 베풀며 놀고 먹게 했다. 그렇게 해서 사람을 만들어내곤 했던 것이다.
동물학자 에드먼드 모리스는 `인간동물원'이란 저서에서 현대인은 도시의 콘크리트 정글이라는 인간동물원에 갇혀 살고 있음을 입증했다. 자연 속의 야생 동물들은 자해를 하거나 무턱대고 비대하거나 위궤양이나 암에 걸리거나 자살한다는 법이 없다.
우리 속에 가두면 그와 같은 증상을 나타낸다 하고 현대인이 동물원에 갇혀 살고 있음을 그로써 입증하고 있다. 동물원의 다른 짐승들이 잡혀 들었다면 호모 사피엔스는 제꾀에 넘어가 제발로 걸어 들었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라 했다. 곧 코펜하겐의 인간동물원은 문명비판인 것이다.
30. 완벽한 걸작품
미술 역사의 최대 조각가는 미켈란젤로. 그의 작품들은 인류에게 큰 감동을 주는 <완벽한 걸작품>이다. 특히 모세작은 그의 작품 중에서도 손 꼽히는 걸작품이다. 누가 보더라도 손 끝 하나댈 수 없는 완벽한 작품이었지만, 정작 미켈란젤로에게 있어서는 <미흡한 데>가 있었던 모양이다. 지금도 그 모세상 발등에는 좁고 긴 흠이 나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모세상이 완성된 후 미켈란젤로가 "왜 너는 말을 하지 않는냐?고 울부 짖으며 끌로 발등을 내리쳤기 때문이라고 한다.
31.노자의 인간론
1. 상사(上士): 인간은 자기를 버리고 남과 소속된 조직을 위해 희생하는 정신의 소유자들이다. 나보다 남을 먼저 사랑하는 인(仁)과 그 사랑을 남보다 먼저 실천하는 의(義)의 사람들, 질서정연한 자연의 도(道)를 따라 삶을 사는 이들. -석가모니가 정의한 상근기 중생, 공자가 말한 군자, 장자가 서술한 지인들, 다석 유영모 선생이 말한 `얼마'의 사람들이다.
2. 중사(中士): 인간은 정의를 실천하는 힘이 약한 사람들로 진실을 말해줘도 믿는지 안 믿는지 그 태도가 모호하며, 눈치 보기 바쁘고 위선적인 사람들을 말한다.
3. 하사(下士): 인간은 잘난 체하는 소인배, 졸보, 졸부 같은 부류인데 자신의 이익엔 동물 같은 예민한 감각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극히 이기적이다. 그러나 자신의 신변의 이익에만 몰두하는 탓에 주위 변화를 전혀 감지하지 못한다.
32. 삶의 자세
칼 매닝거는 "소유하고 있는 것보다 삶의 자세가 더 중요하다"라고 말했습니다. 현대의 가장 큰 문제는 우리 인간의 존엄성을 비하시켜서 하나님께서 주신 가능성과 창의력마저도 무시해버리는 것이라고 할 것입니다.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인간이 가지고 있는 뇌의 능력은 브리태니커 대영백과사전을 다 외우고도 40개 외국어를 유창하게 할 수 있으며 수십 개 대학의 필수 과정을 다 마칠 수 있다고 합니다. 이와 같은 가능성을 열등의식이나, 죄책감이나, 부정적인 의식구조 때문에 불과 10% 내외밖에 사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33. 불쏘시게
킹 제임스 역(King James Version) 성경이 완성된 후 200여년 후의 일이었다. 독일에 콘스탄틴 티센돌프(Constantin Tischendorf)라는 한 소년이 있었는데, 이 소년은 어려서부터 고대 성경사본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소년은 여러 곳을 자세히 탐색해 보면 고대 성경사본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티센돌프는 옛 수도원의 수도사들이 고대 성경사본을 베꼈으므로 여러 수도원 중 어느 구석방에 든 고이 감춰 든 성경사본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생각 끝에 티센돌프는 성경사본을 찾는 탐험의 길을 떠났다.
어느 날 팔레스타인 지방 시내산 정상에 있는 성 캐더린 수도원에 이르게 되었다. 성 캐더린 수도원은 모세가 십계명을 받았으리라고 추측되는 곳이었다 그 수도원을 찾기는 쉬웠으나 어떻게 들어가느냐 하는 것이 문제였다. 그 수도원은 높이가 33m나 되는 담 안에 자리잡고 있어서 마치 성곽과도 같았기 때문이다. 그 수도원에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밧줄을 타고 올라가 담을 뛰어 넘는 길밖에 없었다. 소년은 마침내 수도원 안에 서고를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
그날 해가 질 무렵 소년은 수도원에서 불쏘시개로 쓰려고 종이뭉치를 담아 놓은 휴지통을 발견했다. 호기심으로 휴지통을 뒤져 보니 그 속에는 4세기경에 사용한 듯한 희랍어로 쓰여진 종이뭉치가 있었다. 이 종이뭉치를 본 소년은 너무도 의아하고 당황해서 그곳 수도사의 의심을 사게 되었다. 그러자 수도사는 보물같이 진귀한 종이뭉치가 들어있는 휴지통을 어디론가 감춰버리고 말았다.
티센돌프가 휴지통에 들어 있던 종이뭉치 중에서 가져 가도 좋다고 허락을 받은 것은 겨우 43매뿐이었다. 티센돌프가 그 종이뭉치를 독일로 가져 가서 감정해 본 결과 그것은 모두 귀중한 성경사본이라는 인정을 받게 되었다.
소년은 그 수도원에는 반드시 그보다 더 진귀한 성경사본이 많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9년 후에 다시 그 수도원을 찾아갔다. 그러나 그곳에 분명히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성경사본은 찾을 길이 없었다. 뜻을 이루지 못한 채 돌아온 그는 성경사본을 찾겠다는 의욕을 굽히지 않고 15년 후에 또 다시 성 캐더린 수도원을 찾아갔다. 그러나 그는 아무것도 얻지 못한 채 돌아오는 수밖에 없었다.
티센돌프는 수도원을 떠나기 전날 밤 수도원 청지기와 함께 수도원정원을 거닐면서 청지기에게 자기의 소원을 이야기했다. 청지기는 침침한 지하실 창고로 그를 데리고 들어가 붉은 천에 쌓인 큰 종이 두루마리를 꺼내 보였다. 청지기가 조심스럽게 풀어 보이는 종이 두루마리는 그 수도원에서 가장 오래된 성경사본이었다. 그것은 희랍어로 쓰여진 진귀한 성경사본이었다.
티센돌프는 청지기가 눈치 챌까봐 대단하지 않은 듯한 표정을 지으려했지만 속으로는 무척 당황했다. 그것은 4세기 초에 기록된 완전한 신약성서사본이었 던 것이었다. 티센돌프는 청지기에게 그것을 자기 방에 가지고 가서 읽어 보아도 괜찮겠느냐고 물어보았다. 청지기는 그래도 좋다고 대답했다. 티센돌프는 종이 두루마리를 자기 방으로 가지고 가서 저녁이 되기를 기다렸다. 저녁이 되자 수도원의 문이 다 닫혔다.
방 안에서 침묵을 지키고 있던 티센돌프는 벌떡 이러나 기쁨에 못이겨 춤을 추었다. 드디어 그는 그때까지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성경사본을 떨리는 손으로 펼쳐 들었다. 그것은 약 325년경에 기록된 것이었다. 티센돌프는 다음날 아침 수도사에게 그 사본을 독일로 가져가겠다는 청을 했으나 거절당하고 말았다.
티센돌프는 힘없이 성 캐더린 수도원을 떠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는 실망하지 않았다. 그로부터 10년 후 진귀한 성경사본은 러시아 정부의 도움으로 페트로그라드(Petrograd)에 있는 국립도서관으로 옮겨져 그곳에서 학자들이 연구할 수 있게 되었다. 후에 그 사본은 로마제국 최초의 기독교도 황제였던 콘스탄틴 대제의 소장품이 되었다고 한다. 콘스탄틴 대제는 콘스탄티노플 교회를 위해서 그 사본을 마련하도록 제시했던 것이다. 성 캐더린 수도원은 로마의 저스티니안 황제의 영에 의해 설립되었으므로 그 사본은 저스티니안 황제가 캐더린 수도원에 기증했으리라 추측된다.
티센돌프의 이 위대한 발견 이후 성 캐더린 수도원에서는 편지, 각종 보고서, 각종 장부 등 많은 문서가 발견되었는데 그 문서들은 예수님 당시의 생활양식, 사상, 언어 등이 어떠했음을 전해 주고 있다. 그리고 신약성서는 그 당시 널리 쓰인 희랍어로 기록되었기 때문에 티센돌프가 이룩한 업적은 오늘날 우리가 성경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34.세상 사람들의 유형
알버트 까뮈는 이 세상의 사람들을 세 가지 형태로 분류했습니다. 즉 사회라는 큰 감방 속에 세 사람이 함께 누워 있는데 첫째 사람은 인간의 힘으로는 될 수 없는 일에 온갖 수단과 방법으로 몸부림치다가 피투성이가 되어 결국은 기진맥진되어 쓰러진 사람이요, 두번째 사람은 애초부터 불평 불만이나 미래의 희망도 없이 숙명론자와 같이 그대로 누워서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세월을 보내는 사람입니다. 마지막 세번째 사람은 자기가 왜 감방 속에 있는지 그 이유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모든 악조건을 잘 참으며 앞으로의 광명한 날을 기다리고 앞으로의 생을 설계하는 사람입니다. 지나가는 사람이 볼 때에는 똑같은 세 사람이 누워있다고 볼런지 모르나 그들의 인생관이 다르기 때문에 인생의 목적지, 방향도 다를 수밖에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35.어리석은 존재
옛날에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파란 주머니와 빨간 주머니를 주셨습니다. 파란 주머니는 자기의 장점을 넣을 수 있게 하고 빨간 주머니는 단점을 넣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인간들은 파란 주머니를 앞에다 걸고 빨간 주머니는 뒤에다 걸었습니다. 그리하여 남의 단점은 잘 보이는데 자기의 단점은 안 보이고 자기는 오로지 장점(파란 주머니)만 보게 되는 어리석은 존재가 되었답니다.
36.사람다운 사람
세계적인 우화작가 이솝이 노예로 있을 때의 일입니다.
어느 날 주인이 심부름을 시켰습니다.
"공중 목욕탕에 가서 사람이 얼마나 모여 있는가 보고 오너라."
주인은 목욕탕에 한가한 틈을 타서 목욕을 하러 갈 생각이었습니다. 이윽고 목욕탕을 둘러보고 온 이솝은 주인께 보고를 드렸습니다.
"사람이 한 명도 없었습니다."
그러자 주인은 서둘러 목욕탕에 갔습니다. 그런데 공중 목욕탕은 대만원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솝을 불러 왜 거짓말을 했냐고 물었습니다.
"목욕탕 가는 길에 위험한 돌이 있었는데 그것을 치우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습니다."
사람다운 사람, 바른 인격을 갖춘 사람들이 그리운 이 시대에 참으로 음미해볼 만한 이야기라 생각됩니다.
37.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미하엘이란 천사가 어떤 여인의 영혼을 데려오라는 신의 명령을 받고 그 여인의 집으로 가 보니 그 여인은 하루 전에 쌍둥이 딸을 낳았습니다. 자기 영혼을 부르러 온 천사를 본 여인은 "천사님, 제 남편은 며칠 전 사고로 죽었고 일가친척도 없는데 제가 죽으면 이 핏덩이들은 누가 키웁니까?"라며 애원하는 것이었습니다. 천사는 사정이 딱한 그 여인을 두고 그만 빈손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신은 그 여인의 영혼을 불러오라고 엄히 명령하자 그는 어쩔 수 없이 그 여인의 영혼을 가지고 올라갔습니다. 그러나 그 일로 인해 미하엘은 지상으로 추방당합니다. 그는 세 가지 과제를 풀어야 다시 하늘로 올라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느 추운 겨울 밤 미하엘은 추위와 굶주림으로 얼어 죽을 지경에 이릅니다. 그러나 도저히 남을 도울 처지가 못된다고 판단되는 가난한 구두방 주인 내외의 뜨거운 사랑을 받게 됩니다. 따뜻한 식사를 대접받으면서 내외의 가슴속에 깃들인 사랑의 실체를 보고 첫번째 과제인 "인간의 가슴 속에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풀었습니다.
미하엘이 그 구두방에서 일한 지 1년이 되던 날 마차를 타고 온 높은 사람의 신발을 주문받게 되었습니다. "1년을 신어도 탈이 없도록 튼튼하게 신을 만들란 말이야!" 하면서 거만을 떠는데 미하엘은 그 사나이의 등뒤에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는 것을 보고 `인간에겐 자기 미래를 내다보는 지혜가 없구나'로 "인간에게 베풀어져 있지 않은 것이 무엇이냐?"는 두번째 과제를 풀었습니다.
어언 6년이 지난 어느 날 중년 여인이 쌍둥이 소녀를 데리고 들어왔습니다. 그 애들을 본 순간 미하엘은 어머니가 없어 죽었거나 불행한 생을 걷고 있을 것이라고 상상했던 두 소녀가 이웃 아주머니의 사랑으로 밝게 자란 것을 보고 자기 염려가 부질없었음을 깨닫고 세번째 과제인 "인간은 무엇으로 사느냐?" 하는 과제를 풀었습니다.
사랑의 힘을 깨닫는 순간 그의 등뒤에는 황금빛 날개가 다시 돋더니 홀연히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이상은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의 단편입니다(신31:8,마10:29-31, 요14:1)
38. 인간의 소음
글을 쓸 일이 있어서 어떤 생각에 잠겨 있었는데 과일 장수나 생선 장수의 시끄러운 마이크 소리가 동네 전체를 가득 메우며 울려올 때가 있다. 그 소리 때문에 생각이 다 흩어지고 시상이 달아날 때면 얼마나 야속한지 모른다. 내 생각에 몰두해 있을 때면 집안 식구들의 일상적인 소리나 이것저것 평범하게 물어오는 물음조차도 성가시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나 자신 역시 오랜만에 먼길을 가는 친구와 버스에 나란히 앉아, 출발할 때부터 도착할 때까지 쉬지도 않고 떠들어댈 때가 있으면서도 옆자리에 앉은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를 듣고 있는 것이 정말로 참기 힘들 때가 있다. 남이 떠드는 것은 소음이지만 내가 이야기 하는 것은 남들이 이해해 주겠지 하고 편한 대로 생각하는 게 우리 인간이다. 살면서 내 처지에 서서 편한대로만 생각하면서 남이 보기 싫어지고 미워지고 한심스럽게 느껴지는 때는 얼마나 많았던가. 며칠 전에 어떤 책에서 이런 글을 읽었다. 장유라는 사람이 쓴 `와명부'라는 고전을 인용한 글이다. 개구리 울음 소리를 들으며 객과 내가 이야기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는 글이다.
"나는 여름날 시끄럽게 울어대는 개구리 울음 소리를 괴롭게 여겨 모두 죽어버렸으면 하는 마음을 갖는다. 이에 대해 객은 만물이 저마다 하늘로부터 받은 본성에 따라 살고 있음을 주지시킨 다음, 인간과 개구리를 비교해 가며 인간의 삶이 얼마나 하늘의 도에서 벗어나 있는지를 낱낱이 지적한다.
그에 의하면 개구리 우는 소리가 시끄럽다고 하지만 인간의 경우 온갖 거짓과 위선에 찬 말로써 진실을 어지럽히며, 요상하거나 음란 괴이한 소리를 지껄여 댐으로써 참된 소리를 사라지게 하고 있을 뿐더러, 모함하고 참소하는 말로써 동류를 해치고 어진 자를 없애며, 간사하고 사악한 말로써 변란을 일으키고 성도를 뒤엎고 있다는 것이다.
만물의 영장이라고 우쭐대는 인간의 실상이 이러한데 반해 개구리는 더러운 연못에 살면서도 하늘이 내린 본성을 충실히 따르면서 동류끼리 다정하게 소리를 주고 받으며, 사람에게 무엇을 구하는 법도 없고 물을 거스리는 법도 없고 자재하게 살아가고 있다."
자기들끼리 소리를 주고 받으며 만물의 이치 그대로 하늘이 주신 본성 그대로 자유자재하게 살아가는 개구리 소리조차 듣기 싫어하면서 정작 인간은 얼마나 어지러운 말과 소음과 궤변과 사악한 말을 지어내며 살아가고 있는가를 비교해 보게 만드는 글이다.
이런 인간의 모순과 오류는 모든 것을 자기 중심적인데 두고 사고하고 행동 하는데서 온다. 상대방의 처지, 다른 사람과 사물의 위치에서 생각해 보지않고 자기 편한대로만 판단하고 생각하는데서 오는 것이다.
39.중요한 사람
"당신이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이 지상에서 마지막 날을 보내고 있다는 생각으로 대하라'는 좌우명을 가진 작가 오그 만디노는 그가 지은 `지상 최고의 세일즈맨'의 홍보를 위해 여행을 떠났다. 먼저 그는 텔레비젼 프로그램에 출연하기 위해 내쉬빌로 가서 택시를 탔다. 이름이 레이몬드 브라이드라고 하는 흑인 택시 운전기사는 자기의 손님이 텔레비젼에 출연하려 간다는 사실을 알고는 몹시 좋아했다. 만디노는 그 운전사를 보며 문득 `오늘밤 안에 죽을지도 모르는 사람을 대하듯 사랑과 관심으로 대하라'는 규칙이 마음속에서 생생하게 살아났다. 그래서 만디노는 운전사에게 `시간이 있으면 방송국 안으로 들어가 녹화하는 것을 보지 않겠느냐'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레이몬드는 매우 기쁜 표정으로 만디노를 따라 방송국 안으로 들어갔다. 만디노가 스튜디오에게 책소개를 하며 대담을 하는 것을 바라보는 레이몬드의 눈은 신기함과 놀라움으로 가득찼다. 방송이 끝나고 잠깐 시간이 난 만디노는 레이몬드에게 점심을 먹자로 청했다. 근처 가게에서 햄버거로 간단한 식사를 마친 이들은 서로 돈을 내겠다며 실랑이를 벌일 정도로 가까워졌다. 공항으로 가는 도중 만디노는 피곤 때문에 깜빡 졸았다.
그때 레이몬드의 굵은 목소리가 들려였다.
"선생님, 전 죽을 때까지 오늘을 잊지 못할 겁니다. 오늘 제 인생에서 처음으로 제가 중요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목소리에 잠이 깬 만디노는 백미러로 레이몬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선생님께선 저에게 중요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갖게 해주셨습니다."
40.인생의 목적
양국의 어느 묘지에 이런 비문이 새겨져 있다.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아! 기억하라. 당신들이 지금 존재하듯 나도 그러했노라. 그러니 이제 내가 죽어 있듯이 당신들도 죽어야 할 것이다. 나를 따를 준비를 스스로 하여라."
예리한 식별력을 가진 방문가가 이 비문을 읽고 난 후 그 아래에 이런 문구를 덧붙였다.
"당신이 어떤 길로 갔는 지를 알지 못하는 한, 나는 당신의 뒤를 따를 의사가 없느라."
이 세상에서 인생의 목적지도 없이 그저 사라져가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궁극적으로 목적지가 천국이냐, 지옥이냐는 염두에도 두지 않고 그저 인생이라는 열차에 실려가고 있다.
우리의 목적은 "어디로 가고 싶으냐?"에 달려 있다. 영원한 목적지는 이 세상에서의 삶의 방법 여하에 달려 있다.
41.인류에게 가장 필요한 것
인류에게 가장 절실한 것이 지식이요 정보였다면 하나님은 메시아를 위대한 교육자로 보냈을 것이다.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기술이라면 하나님은 구세주를 위대한 과학자로서 보냈을 것이다. 우리가 최고로 바라는 것이 쾌락이라면 하나님은 우리의 소원을 풀어줄 자를 가수나 연주자나 코미디언 같은 위대한 연예인으로 보냈을 것이다.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돈이라면 하나님은 메시아를 위대한 경제학자로 보냈을 것이다.
그러나 인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용서이다. 인간이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용서해 주실 자비뿐이므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건져주실 자, 우리의 허물을 대신 짊어지실 자, 그리스도를 보내주셨다.
42.인간의 뇌세포
인간의 뇌세포는 약 백40억 개 정도라고 추정하고 있는데, 뇌세포 한 개는 1초당 2천2백 가지의 일을 처리할 수 있는 초정밀 컴퓨터에 해당된다고 합니다. 이렇듯 어마어마한 능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일생 동안 뇌세포의 3% 정도만 사용할 뿐이라고 합니다. 97%의 능력을 고이 묻어 버린 채 일생을 산다는 것입니다.
43.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
금 1만달란트는 노동자 한 사람이 9만 일 즉 250년을 꼬박 일해야 벌 수 있는 분량의돈에 해당된다고 합니다. 따라서 금 1만 달란트의 빚은 250만 년간 꼬박 일해야 벌 수 있는 돈으로 우리 인간은 250년 살기도 불가능한 사실로 미루어 볼 때 금 1만 달란트 빚을 졌다고 하는 것은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갚을 수 없는 빚이라 하겠습니다.
1데나리온이란 당시 노동자의 하루 품삯이니 100데나리온 빚을 졌다 함은 네 달치 정도의 봉급에 해당되는 돈입니다.
하나님과 인간인 나의 관계는 이 비유 속에 등장하는 임금과 금1만 달란트 빚진 종과의 관계로 볼 수 있습니다. 천 번, 만 번을 죽었다 살아난다 하더라도 도저히 갚을 길이 없는 죄의 빚을 하나님의 긍휼하심에 힘입어 탕감을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그 큰 긍휼의 은혜를 덧입은 종은 100데나리온 빚진 동료 친구를 감당하지 못하고 쏟아버리고 맙니다.
44.인생의 요새
다람쥐는 작고 연약한 짐승이지만 결코 맹수에게 잡히지 않는다.
사나운 짐승이나 몸집이 큰 동물이 습격해오면
다람쥐는 큰 바위틈으로 들어가버린다.
아무리 사납고 강한 동물이라도 바위틈에 몸을 숨긴 다람쥐를
잡아낼 도리가 없다.
작고 나약한 다람쥐에게는 거대한 바위산이 천연의 요새인 셈이다.
세파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에게는 맹수의 공격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거대한 바위산을 찾는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품안'이 아닐까.
45. 나는 어떤 부류
옛날에 `모든 사람'(everybody), `어떤 사람'(somebody), `누구라도' (anybody), `아무도'(nobody)라는 특이한 이름의 네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런데 무척이나 중요한 그리고 반드시 해야 할 중요한 일이 생겼다. 게다가 그 일을 `모든 사람'이 하도록 요청받았다. 하지만 `모든 사람'은 `어떤 사람' 이 그 일을 할 거라고 생각하고 그 일을 소홀히 했으며, 그 일은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결국엔 `아무도' 그 일을 하지 않았다.
`어떤 사람'은 매우 화가 났다. 왜냐하면 그 일은 `모든 사람'의 일이었기 때문이다. `아무도' 역시 `모든 사람'이 그 일을 하지 않은 것이라곤 전혀 생각지 않았다. 중요한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엔 이일은 `모든 사람'이 `어떤 사람'을 비난하고 애초에 `누구라도'할 수 있었던 일은 `아무도'하지 않음으로써 끝이 났다.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일인가?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공동체로 부르셨고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하나로 묶으셨다. 그리고 공동체 속에서 각자에게 알맞은 권위와 역할들을 나누어 주었다. 어떤 이는 찬양하는 자로, 어떤 이는 섬기는 자로, 어떤 이는 가르치는 자로 부르심을 받았다. 그러기에 이 세상은 `어떤 사람'만의 노력 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누구라도'할 수 있는 일로 이루어진 곳이며, 때문에 `아무도' 자신의 것을 게을리해서는 안되는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때로는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누구라도'할 수 있는 일도 `어떤 사람'이 하겠지 하는 생각에 `아무도' 하지 않게 되는 경우를 본다.
46.큰 사람 작은 사람
子曰 君子 不可小知而可大受也 小人 不可大受而可小知也(논어15:33)
자왈 군자 불가소지이가대수야 소인 불가대수이가소지야
공자가 말하기를 군자는 사소한 것은 잘몰라도 큰 일은 맡을 수 있고, 소인은 큰 일은 맡을 수 없어도 사소한 것은 잘아느니라.
사람마다 각기 타고난 역량이 다르다. 그래서 큰역량을 가진 인물은 큰 일은 맡고 작은 역량을 가진 인물은 작은 일을 맡아야 한다.
6톤 트럭을 몰고 좁은 시장길로 가서 저녁 반찬꺼리를 사려고 한다면 이는 어려운 일이니 차라리 작은 손수레를 이용함이 좋다. 반대로 작은 손수레를 끌고 산더미처럼 쌓인 이삿짐을 옮기려고 한다면 이 역시 불가능하다. 이처럼 군자는 사소한 일에 매달릴 것이 아니라 큰 일에 매달려야 한다.
큰교회의 당회장이 교회의 큰일을 염려하지 못하고 사소한 일에 매달린다면 이런 사람은 큰 일꾼이 못된다. 각기 적합한 일꾼들을 세워 분담하여 일하게 하고 당회장은 목자로서의 본 일에 전념해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47.위대한 명인
미켈란젤로가 눈이 멀었을 때 로마 시의 사람들은 퇴적더미에 묻혀있던 조각을 발견하고는 “이것은 그리이스 시대의 것이 틀림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것을 미켈란젤로에게 가지고 왔습니다. 미켈란젤로는 눈은 멀었지만 그의 예민한 손으로 그 조각을 만졌습니다. 눈썹과 이마, 코, 얼굴의 윤곽, 어깨를 만지고 나서 눈먼 미켈란젤로가 말했습니다. “이것은 위대한 장인의 작품입니다. 틀림없이 피디아가 만들었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에게도 해당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비할 바 없이 경이로운 피조물의 윤곽을 더듬습니다. 그것은 틀림없이 명인이 만든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손처럼 보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화로운 피조물의 옷을 입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영화로운 피조물 안에 숨어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그 영화로운 피조물 안에서 자신을 표현합니다. 그는 한 손으로는 토성 주위를 도는 직경 칠만 육백 마일의 황금 고리를 만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미세한 곤충 다리의 끝을 만드십니다. 이런 분이 하나님 이십니다.
어느 날은 이글거리는 태양을 구천 삼백만 마일 떨어진 우주에 위치하게 하시고, 다음 날은 그의 무지개 빛깔로 작은 꽃잎을 칠하시고, 그리고 난자가 수정되도록 곤충을 매력으로써 유인키 위하여 약간의 방향을 그 잔처럼 생긴 가슴에 떨어뜨리십니다. 이런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명인으로서의 그분의 손은 어느 곳에나 비치며. 경이로운 우주의 옷을 입고 계십니다.
48.하나님의 계산법
하나님은 수십억 인구 중에서 ‘나’하나를 중요한 사람으로 대해주신다.
인간은 대량생산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얼마 전까지 고아(인간)를 대량으로 생산해서 외국으로 수출하거나 독재자의 친위대 사병으로 길렀던 루마니아는 기독교의 눈으로 볼 때는 하나의 국가라기보다는 괴물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국가가 망한 것은 사필귀정의 일이요, 또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른다. 우리가 32,500쌍을 집단 결혼시킨 문선명에 대하여 코웃음을 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독특성이나 존귀성이 없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인류 역사 가운데 인간의 가치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신 분이다.
그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어떤 목자가 100마리의 양을 가졌는데 한 마리를 잃었다. 목자는 99마리를 들에 그냥 남겨두고 그 한 마리를 찾으러 들로 산으로 애써 다니다가 찾아서 어깨에 메고 즐겁게 집으로 왔다. 하나님은 이처럼 생명 하나를 귀하게 여기시는 분이다. 99=1 또는 99<1의 계산법이 기독교적인 것이다. 하나쯤은 있으나마나 하다는 생각은 기독교의 정통성과는 전혀 상관없는 것이다. “내가 너를 누구와 바꾸겠느냐? 내 눈에는 네가 진주보다 더 귀하다”고 하시며 하나님은 우리 개개인에게 가치를 부여하셨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들 각 개인의 머리카락을 다 세고 계실 만큼 우리를 사랑하시고 결국 그 사랑의 표시로 자기 독생자까지 주셨다. 예수님께서 개개인에게 사랑과 긍휼을 베푸셨던 것처럼 우리도 그분의 삶을 본받아야겠다.
49.인간의 수명
신은 맨 처음 모든 동물의 수명을 30년으로 평준화했습니다. 그런데 당나귀가 찾아와서 매일 아침부터 밤까지 사람들에 의해 일만하고 잠만 자는 지겨운 일들을 어떻게 30년이나 할 수 있느냐, 10년으로 만들어 주십사고 간청하자 신은 허락했습니다.
이번에는 개가 찾아왔습니다. 밤을 새우며 도둑을 지킬 뿐만 아니라, 주인으로부터 겨우 먹다남은 찌꺼기와 뼈다귀로 배불리는 견생을 30년이나 살 생각을 하니 아찔하여 20년은 제하고 10년으로 정해달라고 애원하자 신은 허락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인간이 찾아왔습니다. 그는 신에게 "신이여, 당신이 인간을 만물의 영장으로 창조하시고는 다른 동물과 동일한 수명인 30년으로 제한한다면 인간의 체면문제이니 수명을 더 주셔야 합니다. 하면서 애걸합니다.
신은 그리하여 당나귀로부터 남은 20년과 개로부터 유보한 20년, 원숭이로부터 얻은 20년, 도합 60년을 인간에게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인간은 90까지 살 수 있는 수명으로 연장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인간 1살부터 30여세까지 순전히 인간의 수명임으로 인간다움이 있고, 순진하지만 30세부터 50세까지는 당나귀의 수명을 대신 받았기에 당나귀 같이 죽도록 일만 하며 인생을 보내고, 50세부터 70세까지는 개의 수명이기에 개처럼 잠도 오질 않고 냄새만 맡으면서 남의 이야기로 보내며, 70-90세까는 원숭이 같이 노망으로 여러 사람의 구경거리로 인생으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수명이 복이라지만 확실히 잘못 장수한다는 것은 당나귀, 개 아니면 원숭이 꼴이 되기 십상일 것입니다. 아니 때때로 우리는 `개보다 못한 자식,`원숭이 보다 못한 영감'이라는 이야기를 들을 때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장수는 복이 아니라, 욕이 될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50.생자필멸
옛날 아름드리 우거진 숲속을 한 선생과 그의 제자들이 한가롭게 걸어가고 있었다. 그때 한 과부가 애통해하는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 과부는 단 한뿐인 외아들이 죽어서 너무나 처절하게 울고 있었다. 선생은 그 여인에 울지 말라며 위로했으나 여인은 더욱 서럽게 울며, "제발 내 아들을 좀 살려 주십시오"라며 애원하는 것이었다. 선생은 여인을 측은히 여겨 "지금 곧 일어나서 마을로 가, 아직까지 한번도 사람이 죽은 일이 업슨 집의 쌀을 한 줌 얻어다가 죽을 끓여 먹이십시오. 그러면 당신의 아들은 살아날 것입니다"라고 일러주었다. 과부는 기뻐하며 마을을 향해 힘있게 걸어갔다.
해가 저물어갈 무렵, 그 젊은 과부는 힘없는 모습으로 다시 찾아와 한탄하듯 말하는 것이었다. "하루 종일 찾아다녀도 사람이 죽은 일이 없는 집은 없습니다." 이때 선생이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생자필멸이라는 말이 있듯 사람은 나면 반드시 죽는 것이니 너무 슬퍼하지 마십시오."
51.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말라
미국의 남북 전쟁이 나기 바로 전 어느 봄날이었다. 한 소년이 일터를 구하다가 오하이오주에 있는 어느 농장을 찾아가게 되었다. 농장 주인은 튼튼하게 생긴 소년의 모습에 만족하여 아무것도 묻지 않고 그 소년을 채용했다. 단지 그 이름이 짐이라는 것밖에는 몰랐다. 짐은 난로에 땔 나
무를 장만하고 젖소를 돌보고 이것저것 허드렛일을 하면서 밥은 부엌에서 먹고 잠은 건초 창고에서 잤다. 그 여름이 지나기 전에 짐과 주인의 딸은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다. 그러나 돈도 없고 장래도 없다는 이유로 주인에게 거칠게 거절당하자 짐은 조용히 종적을 감추어버렸다. 35년이 지난 후 어느 날이었다. 농장 주인은 창고를 새로 지으려고 헌 건초 창고를 헐다가 그 옛날 자기 집의 하인이었던 짐이 주머니칼로 서까래에 새겨놓은 이름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James A. Garfield라는 이름 밑에 날짜와 함께 그의 예명 짐이 새겨져 있었던 것이다. 이때에 그는 제 20대 미국 대통령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대통령의 장인이 될 수있었던 기회를 놓친 목장 주인의 이야기는 한낱 웃음거리로 지나쳐버리기에는 너무 교훈적이다. 사람을 외모로 평가할 수는 없으며 사람을 지금의 모습만으로는 평가할 수 없음을 우리에게 다시 한번 일깨워 준다. 물론 이러한 극적인 사건은 그리 흔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인간 관계는 너무도 흔하지 않는가. 사람이 사람을 사람으로 보아주지 않고 숫자나 노동력이나 경쟁의 대상으로만 여기는 경우가 얼마나 허다한가 우리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말고 우리가 대하는 그 누구에게라도 동일하게 깊은 관심과 사랑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52.하나님께 깨어 있는 자
어느 친구와 파리 시가를 산책하고 있을 때였다. 우리는 7층짜리 낡은 건물에다 8층을 새로 올리는 공사 현장을 보게 되었다. “사람들은 영적 생활에 대해서도 저런 식으로 오해하는 것이 아닐까? 영적 생활이라는 것이 일상 생활 위에다 8층을 얹어올리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는 8층에 성령께서 거하신다고 믿겠지, 얼토당토 않은 생각이지, 성령께서는 그 집의 전체에 살고 계시거나 아예 살고 계시지 않을 거야. 우리 삶은 성령께서 온전히 주인이시며 활동하시는 삶 하나뿐이네.” “자네의 말대로라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나님과 자신에게 깨어 있는 사람이 되게 해주시도록 성령께 끊임없이 기도해야 하네.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의식과 하나님의 현존에 대한 의식을 키워야 하네. 우리가 실제로 존재하듯 하나님께서도 실제로 존재하시네, 그런데도 우리는 자기 자신과 하나님께로 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살고 있네. 현실을 도피하면서. 중압감에 쌓여. 쾌락에 탐닉하며 살고 있지 않은가.” “쉬지 않고 기도해야 한단 말인가.” “물론이지, 기도할 때야말로 하나님의 현존에 최대한으로 깨어 있는 상태이네, 성령이 함께 하지 않는 삶은 잠든 삶이라네.” 비탄의 시간에 예수님 곁에는 졸고 있는 제자들밖에 없었던 것이다. 우리도 자주 몸이 무겁고 졸음과 어둠에 잠긴다. 우리는 어떤 행동이나 공부 또는 선행 등 자기 성격에 맞는 수단을 동원하여 그 상태를 벗어나고자 한다. 그러나 더 깊은 세계에서 출발해야 한다. 우리 생명의 중심부(마음)로 침잠하여 그곳에 거하시는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 우리의 인간다운 행동도 그곳에서 우러나오는 행동이어야 한다.
53.하나님과의 대화
내가 새로운 목회지 때문에 몸부림치며 기다리고 있을 때, 바로 하나님과의 대화가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나의 목회지가 나타나지 않고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그일을 막고 계셨기 때문이었던 것같다. 그런데 어느날 하나님께서 그동안 내 인생 가운데 있었던 모든 변화 과정들을 청사진처럼 보여주기 시작하셨다. 나는 열세 살 때 처음으로 담배를 피우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나는 계속해서 대중음악에도 깊이 심취하였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인생을 살며, 여러 사람들의 모임에 가입하여 그들과 긴밀한 교제도 가져보는 등 야심에 찬 삶을 살았다. 내가 이처럼 삶의 방향을 여러 번 바꾼 것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그것은 내가 성공하고. 유명해지며. 대단한 인물이 되기 위해서였다. 그 순간 내 머리 속에는 대단히 무서운 생각이 떠올랐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께 나간 것은 바로 그런 목적, 즉 인간적으로 성공하기 위해서가 아닌가.”그때 주님께서 내게 이렇게 말씀해주셨다. “존, 너는 언제 네가 대단한 인물이라는 것을 믿겠느냐? 나는 이미 너를 매우 중요한 사람으로 만들어 놓았느니라. 나는 내 피로 값주고 너를 산 것이다. 따라서 너는 지금 내 안에 있다. 너는 세상에서 가장 귀중한 사람이다. 그러니 그 외의 다른 방법으로 훌륭한 사람이 되려고 하는 어리석은 생각을 이제 버리도록 하여라.” 하나님께서는 내가 그를 위해 한 일이 아무것도 없을지라도 이미 기뻐하시며 나의 존재 자체를 소중히 여기시는 분이시다.
54.주파수 공용 통신
하나의 주파수를 갖고 한 사람이 통화를 할 수 있는 이동전화와는 달리 하나의 주파수를 여러 사람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차세대 무전기나 워키토키 시스 템. 통화범위가 30∼50㎞ 기존 무전기보다 넓고 3백80㎒·8백㎒대역의 주파수 를 사용해 기존 무선통신에 비해 통화품질이 훨씬 깨끗한 것은 물론 이용요금 도 이동전화의 30% 수준으로 저렴하다.
1996. 6. 11 중앙일보 / 통신
55.인간 생산
미국 필라델피아주의 한 代理母회사는 발족한지 1년 여만에 12개의 "제품생산"에 들어갔다. 이미 각 처로부터 20개의 제품을 만들어 달라고 주문을 받은 바 있는 이 회사의 제품이란 물론 귀여운
어린아이를 말한다.
81년 9월 미국에서는 대리모회사가 처음 합법적인 절차를 밟아 설립됐다. 까다로운 양자 수속에 골머리를 앓아오던 불임주부들에게 이 회사는 커다란 새로운 희망이었다. 이 회사들은 대리 출산 외에도 의학적, 법적, 심리적인 문제와 종교적인 문제까지 상담해 주면서 카운셀링에 응하기도 한다.
일단 계약이 되면 각종 법적인 절차와 병원비용, 대리모의 여행비용들으로 1만 달러를 회사 측에 지불한다. 이와는 별도로 1만2천 달러 정도를 대리모에게 지불해야 한다. 물론 대리모에게 가는 돈은 그녀가 아기를 낳은 뒤 친권을 포기한 후에 받을 수 있다는 조건이 붙는다.
유태인 철학자 마틴 부버는 이 시대가 점차 I and Thou(인간의 인격과 영혼을 사랑하는 풍조)에서 I and It(인간을 상품과 물질로 보는 풍조)의 세상으로 흘러갈 것이라고 예고한 바 있다. 상품을 주문하 듯 자식을 주문해서라도 대를 잇고자 하는 육신의 계대에는 이처럼 관심이 지대한 사람도, 그들의 자녀에게 신앙을 계대하여 주는 일에는 결코 관심을 갖지 않고 있음은 실로 안타까운 일이 아닌가?
56. 폼페이우스
한 때 로마의 삼두 정치의 한 사람이었던 폼페이우스는 씨이저와의 대결에서 패 한 후 그가 지배하던 로마 판도 안에서는 숨을 장소가 없었다. 부하 몇을 데리고 낮이면 숨고 밤이면 도망가서 소아시아에 있는 애인 코네리를 데리고 그는 이집트로 다시 향했다.
생각해 보면 억울하고 서럽기 그지없었다. 대 정치가요 대장군이던 자신이 도망가는 신세가 되다니. 스파르타쿠스의 노예 반란을 진압했고 지중해의 해적을 소탕한 자신이 아니가? 대 로마
제국을 지배하던 종신 집정관이 아닌가? 전날 이스파니아, 시리아를 정복했고 개선장군으로 입성하던 때의 만세 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것이 아닌가?
과거 이집트를 도와준 일이 있으므로 그 인연을 믿고 이집트로 가는 길이었다. 거기서 다시 기회를 보자는 속셈이었다. 그는 베르샴에 배를 세우고 이집트 정부에 자기가 왔음을 통지하였다.
이집트 정부에서는 만약 그를 환영하면 씨이자 의적이 되고, 만일 그를 환영하지 않는다면 후에 그가 다시 세력을 얻을 때는 불리할 것으로 판단한 그를 거짓으로 환영하여 죽이는 것이 상책이라고 생각했다.
폼베이우스 일행을 맞으려오는 배에 탄 사람들이 무장을 하고 있었다. 아기를 안고 불안스럽게 바라보던 아내 코네리는 남편의 소매를 당기며 이집트 배로 내려가지 말라고 만류했다. 그러나 그는 작별의 키스를 하고 이집트 배로 내렸다. 거기에는 옛날 자기의 부하였던 한 로마의 사관이 타고 있는 것을 보고 반가와서 "자네는 옛날 나를 따르던 부하가 아닌가?" 하니 그 사관은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관은 해안에 상륙하자 번개같이 폼베이우스를 찔려 죽이고 그 부하도 죽였다. 그는 폼베이우스의 목을 잘랐다. 가족들은 해안으로 가서 목없는 시체를 안고 통곡하다가 화장하여 유골만 가지고 돌아왔으니 BC48년 9월 28일, 그의 나이 59세였다.
뒤를 쫓아 알렉산드리아에 상륙한 씨이자 앞에는 폼베이우스의 머리와 원수의 도장인 반지가 운반되었다. 씨이자는 눈물을 흘렸다. 옛날의 동지요, 사랑하던 사위였기 때문이다.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약4:14
57.인생은 꿈과 같다
濊袒塡에 나오는 가鋸사람 순우분 (赴鮟麓) 꾼 꿈을 가리커서 남가일몽(家가屋雷)이라고 합니다.
순우분의 집 남쪽에는 커다란 느티나무 고목이 있었습니다.. 우분이 술에 취해 그 밑에서 잠이 들었는데 두 사람의 사신이 나타나서 말하였습니다.
"가蓑(괴안)국왕이 당신을 부르십니다." 그래서 우분은 사신을 따라 느티나무 굴속으로 들어갔다. 국왕은 우분을 보고 "남가군(家가가) 의 정사가 어지러우니 제발 그곳의 태수가 되어 주기 바라네." 20년 만에 국왕은 비로소 그의 귀향을 허락했습니다.. 깨어보니 꿈이었습니다. 이때부터 남가의 꿈이란 다만 일장춘몽이라는 뜻으로 쓰여지게 되었습니다.
58.인간이 되어라.
오래 전에 어떤 코미디언이 '먼저 인간이 되어라~' 하는 말을 유행시킨 적이 있습니다. 사람은 먼저 인간이 되어야 합니다.
인간(人間)이라는 뜻은 사람인(人) 사이간(間) 사람과 사람의 사이라는 뜻입니다. 즉 '너와 나의 관계' 를 인간이라 하는 것이지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원만(圓滿)한 관계를 맺고 살아야 인간입니다.
누구에게나 통하고 열려있고 어디나 오고 갈 수 있고 거침이 없는 동그라미(원) 같은 사람을 원만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원만한 사람이 되려면 사람에 대한 편견을 버려야 하지요.
말이 좀 복잡해졌습니까?
사람이라고 해서 다 인간(人間)이 아니라 원만한 관계를 맺고 사는 사람만 인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인간도 아닌 사람이 참 많아요. ⓒ최용우
59. 인간의 다섯 가지 욕구
아브라함 머즐로라는 사람은 인간의 욕구를 다섯 단계로 나누고 아래에서부터 점차 위로 발전해 나간다고 하였습니다.
1.생존을 위한 생리적 기본욕구단계 - 먹고 입고 사는 인간의 가장 기초적인 삶의 조건들을 해결하기 위한 목구멍이 포도청 단계.
2.안정 욕구단계 - 기본욕구가 충족되면 그것이 지속적으로 보장되길 바라는 안정욕구가 생겨서 남보다 더 좋은 집, 더 좋은 차, 더 사치스런 물건을 소유하고 싶은 욕망으로 충분히 가졌겠다 싶은 사람도 더 가지려고 발버둥을 치는 돈 귀신에 사로잡힌 단계.
3.존재를 되새기는 삶의 욕구단계 - 배부르고 가질 것 충분히 소유한 후 그 때에서야 나는 누구인가? 무엇 때문에 사는가? 즉 존재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단계입니다. 초기에는 취미생활이나 여행 같은 외적인 행태로 나타나고 후기에는 예술이나 학문적인 행태로 나타납니다.
4.명예욕구 단계- 남에게 존경받고 싶은 욕망, 명예를 얻고 싶고, 유명해져서 남에게 우러름을 받으려는 것. 남을 통해 확인을 받아 우월감을 느끼려는 일종의 인간의 속물 속성이 가장 극명하게 나타나는 단계로 봐야 합니다. 그래서 고위층에 가짜학력위조자들이 많은 것입니다.
5.자기실현의 욕구단계 - 부와 명예, 그리고 나의 존재, 모두 하잘 것 없음을 깨닫고 겸손해 지며 이제는 남을 위해 베푸는, 즉 대가없는 봉사의 마음이 생기는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마지막 단계입니다. 남에게서 바라지 않고 주기만 하는 사랑은 아가페적 사랑입니다.
우리나라 대한민국은 1단계 생존을 위한 기본적 욕구가 워낙 강했던 탓에 먹고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지금은 두 번째 단계에 와 있는데, 선진국에 진입하려면 세 번째 단계로 올라가야 합니다. 즉, 생각하는 백성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은 모든 단계를 뛰어넘어 곧바로 5번째 자기실현의 욕구단계를 사는 사람들입니다.(다 그건 것은 아니지만) 잘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아가페'거든요.
기독교인들이 얼마나 고차원적인 삶을 살아야 하는 사람들인지 아시겠지요? ⓒ최용우
60. 인간의 가치
인간은 '육체'와 '영체'로 되어 있는데
육체는 건강한 성인 남자를 기준으로 했을 때 약 35리터의 물과 약 30kg의 탄소화합물, 그 외 잡다한 여러 가지 성분의 원소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정도의 물질을 돈을 주고 구입한다면 10만원이면 넉넉합니다. 그래서 육체적 본능과 욕정에 따라 동물적 삶을 산다면 그 인간의 가치는 10만원이 채 안됩니다.
하지만 인간은 육체가 중심이 아니라 '영체'가 중심입니다. 인간은 영적인 측면의 마음, 정신, 얼, 혼, 초자연, 신비, 거룩, 영원성, 존엄성, 무한성을 가진 존재이기에 돈으로 환산 할 수 없는 비싼 가치를 지니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이 점점 더 복잡해져 가면서 인간의 "영"적인 요소는 무시되어지고 마치 기계의 부속품의 하나처럼 "육체적"인 기능이 강조되어 갑니다. 사단은 '돈'이라는 미끼를 던져서 사람들의 관심을 '영'에서 '육'으로 완전히 돌려 놓아버린 듯 합니다.
겨우 10만원짜리 "육체"에 수 천만원짜리 밍크코트를 두르고 다이아몬드 반지를 끼운다고 해서 10만원짜리가 수 천만원짜리로 변하지는 않습니다. 그 인간의 가치는 육체가 아니라 그의 "영혼"이 깨어나느냐 아니냐로 판가름납니다. ⓒ최용우
61.고등인간
광물 식물 동물 인간 순으로 고등 생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1.식물 중에도 고사리, 버섯, 양치류 같은 것들은 하등식물이고
버들, 벚꽃, 장미 같은 것들은 고등식물이라고 합니다.
2.동물 중에도 해파리, 산호초, 지렁이 같은 것들은 하등동물이고
소, 호랑이, 말, 강아지 같은 것들은 고등동물이라고 합니다.
3.인간 중에도 하등인간이 있고 고등인간이 있는데,
땅을 바라보고 사는 사람들은 하등인간이고
하늘을 바라보고 사는 사람들은 고등인간입니다.
지식이나 돈이나 권세나 지위가 높다고 고등인간이 아니라
하늘 명령을 받들어 순종하는 사람이 고등인간입니다. ⓒ최용우
62.인간적인
한국인의 의식구조는 감성적이고 가족적입니다.
서구인들의 의식구조는 이성적이며 규범적입니다.
서점에 나와 있는 온갖 '성공'관련 서적들은 '이성적이며 규범적인' 서구인들의 시각에 맞추어 쓰여졌습니다. '감성적이고 가족적인'사람들에게는 없거나 부족한 '이성적이거나 규범적인'요인들을 슬쩍 슬쩍 말해주니 아! 그렇구나 하고 귀에 쏙쏙 들어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성공서적을 읽고 그대로 실천해서 성공했다는 사람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남자는 여자가 관심의 대상이고, 여자는 남자가 관심의 대상이듯이, 감성적인 사람에게는 이성적인 사람이 호감이 가고, 가족적인 사람들은 규범적인 사람들에게 호감이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남자가 여자가 될 수 없고, 여자가 남자는 될 수 없듯이, 감성적인 사람은 감성적이어야 가장 어울리고 가족적인 사람은 가족적이어야 가장 편안함을 느낍니다.
한국인의 의식은 감성적이고 가족적인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구조를 뜯어 고치려고 노력하는 것보다는 더욱 좋은 방향으로 개선하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입니다. ⓒ최용우
63.인간다운 삶
어려서부터 험하게 살았던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주먹으로 뒷골목을 평정하였고, 그의 이름만으로도 그에게는 평생 살아갈 걱정 없을 만큼 힘이 있었습니다. 그러던 그가 어느날 그의 삶에 회의를 느끼고 이렇게 뒷골목의 대부로 살기 보다는 보다 인간다운 삶을 살고 싶은 강한 욕구를 느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우선 공자의 논어(論語)를 새겨 읽었습니다. 공자님의 말씀은 어느 하나 그른 것이 없었고 어느 하나 명언이 아닌 것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공자님의 말씀을 한가지 한가지 실천하는 삶을 살려고 애를 썼습니다. 약한 사람들을 도와주고, 손해보더라도 정직하게 살아보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금 인간다운 삶을 살고 있다는 만족스러운 생각이 안들었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성경'을 읽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음속에 있는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절대로 '인간다운 삶'이라는 것은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만난 후 주먹세계에서 발을 빼는 것은 '죽음'을 의미하는 것인줄 알면서도 많은 대가를 지불하고 그 삶을 청산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전에 누리던 힘과 영화는 없어졌지만, 예수님이 주시는 신비스런 마음속의 자유함을 통해 진정 인간다운 삶을 살게 되었노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최용우
64.컴퓨터와 인간의 대결
우리교회에는 피아노는 있는데 치는 반주자는 없습니다. 그래서 예배를 드릴 때도 무반주로 찬송을 부릅니다. 앞에서 인도하는 사람이 하는 대로 모두 따라 합니다. 틀리면 틀리는 대로 느리면 느린 대로 빠르면 빠른 대로 흥겨웁게 잘도 따라서 합니다. (가끔 다른 교회에서 오신 분들이 우리의 이런 찬송하는 모습을 보고는 푸하하하 웃습니다)
한번은 찬송가자동반주기를 켜놓고 맞춰 부르는데 아무리 해도 안 되는 겁니다. 처음 시작은 똑같이 하는데 끝날 때는 자동반주기가 먼저 끝나거나 사람들이 먼저 끝납니다. 아무리 맞춰보려고 해도 안되어서 "에이, 그냥 우리 맘대로 부릅시다" 하고 자동 반주기를 꺼 버렸습니다.
1995년 런던에서 열린 국제작곡가페스티벌에서 재미있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컴퓨터와 인간의 피아노연주 대결이 벌어진 것입니다. 컴퓨터 프로그램은 인간의 손으로 연주하기가 너무 어렵다는 헝가리 작곡가 기엘기 리제트의 '시벨리우스 7 '을 한번의 실수도 없이 정확하게 연주하였습니다. 그런데 사람은 여러번 실수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심사위원들은 인간의 승리를 선언하였습니다. 컴퓨터의 연주는 정확한 계산으로 틀에 박힌 기계음이었지만 인간의 연주에는 감정이 개입되어 생생하게 살아있는 연주였기 때문입니다.
음정 박자 완전 무시하고 부르는 아카펠라와 비슷한 우리교회 무반주 찬송을 비웃지 마십시오. 우리들의 마음이 듬뿍 듬뿍 듬뿍 담긴 마음의 찬송이니까요.ⓒ최용우
65 인간의 신비
성경: 시139:14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신묘막측(神妙莫測)하심이라 주의 행사가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
사람의 뇌네 대하여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사람의 뇌에는 약 1천만개의 신경세포가 있습니다. 이 신경세포는 0.07볼트의 전기를 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뇌는 성인 몸무게의 2-2.5%에 불과하지만 많은 혈관을 통하여 우리 몸에 순환중인혈액의 25%를 수용하고 있습니다. 즉 뇌는 전체혈당과 산소의 25%를 소모하는 것입니다. 뇌는 이처럼 많은 양의 에너지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7-8초만 산소공급이 끊겨도 의식을 잃게 되고 1분만 경과하면 뇌신경이 죽게 됩니다. 사람의 뇌세포는 120억쯤 되는데 평균15%밖에 사용 안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신묘막측하게 창조하신 하나님을 경외하며 아름답게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송태승 목사
66.인간의 모습으로
어린 시절, 주일 오후마다 아버지가 집에 오시면 우리는 뒷산에 등산을 하러 갔다. 오후마다 즐기던 등산은 이제 소중한 옛일이 되었지만 집에 가면 나는 여전히 아버지와 산책하는 것을 즐긴다. 언젠가는 함께 산을 오르다가 아버지가 무심결에 개미탑을 밟으셨다. 아버지는 부드러운 진흙에 찍한 커다란 발자국과 당신이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버린 개미집을 물끄러미 보셨다. 개미들은 자기들이 살던 세상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혼비백산하여 여기저기 흩어졌다. 아버지는 허리를 굽혀 무너진 흙더미를 한쪽으로 치워내시며 개미탑을 다시 세워보려고 하셨지만 소용이 없었다. 아버지 손가락은 너무 컸고 개미는 그 손가락에 비해 너무나도 작았다. 아버지는 당신이 아주 잠깐이라도 개미가 될 수만 있다면 개미들을 찾아가 잘못된 것은 무엇이고 어떻게 하면 고칠 수 있는지 알려주고 싶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아버지는 어른이고 개미는 보잘것없는 벌레에 불과했다. 아버지와 이 작은 피조물 사이에는 결코 넘을 수 없는 장벽이 있었다. 하나님이 하늘에서 내려다보실 때, 우리 인간들은 인생의 혼란과 갈등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 몰라 겁에 질려 허둥거릴때가 있을 것이다. 그러했기에 하나님께서 인간이 되셨다. 뒤죽박죽인 세상을 정리하시고 무너진 세상을 다시 세우실 뿐 아니라 우리에게 완전히 새로운 삶을 제공해주시기 위해 인간으로 오신 것이다.
67.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것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지식이었다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선생을 보내 주셨을 것이다.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돈이었다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사업가를 보내 주셨을 것이다.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건강이었다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의사를 보내 주셨을 것이다.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오락이었다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연예인을 보내 주셨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용서였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구세주를 보내 주셨다.
68.사람과 샤타
사람과 샤타가 친해져서 함께 앉아 식사를 하려고 했다. 그 날은 겨울다운 추운 날이어서, 사람이 손가락을 입에 대고 입김을 불어대자 샤타가 물었다.
"여보게 그건 뭐하는 건가?"
"내 손이 너무 차서 그래."
조금 있다가 뜨거운 음식이 그들 앞에 놓여지자, 사람은 그릇을 입 언저리로 들어올려 역시 또 푸우 하고 입김을 불어댔다.
샤타가 또 물었다.
"그런데 이번엔 또 뭐하는 건가?"
"응, 내 죽이 뜨거워서 식히려고 하는 거야."
그러자 샤타는 말했다.
"지금부터 자네와 친구로 지내는 걸 그만 두겠네. 왜냐하면 나는 뜨거운 것도 찬 것도 똑같은 입으로 불어대는 그런 사람과는 일체 관계하고 싶지 않으니까 말이야."
* 인간은 무능하지도 않고 전능하지도 않다. 인간에게는 갖가지의 힘이 있고 또 그 힘은 놀랄 만큼 큰 것이기는 하지만, 그것들은 인간이 바라는 만큼 큰 것은 아니다.
69.나약한 인간
미국 컬럼비아대학에 한 심리학 교수가 있었다. 그는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목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지만 목사인 아버지가 이사를 많이 다니는 것을 보고 그 꿈을 접고 심리학 교수가 되었다. 그는 매일같이 죽은 남편이 칼을 물고 달려드는 꿈을 꾸는 사람, 꿈에 귀신이 자꾸 나타나서 잠을 못이루는 사람, 꿈에 피를 토하고 나타나는 귀신들로부터 시달리는 사람 등 악몽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상담을 통해 치료해 주었다.
그렇게 상담해주다 보면 그 역시 악몽에 시달리게 된다고 한다. 그래서 또 다른 심리학 교수에게 가서 상담함으로써 치료를 받는다고 했다. 인간은 인간학으로는 치유될 수 없다. 결국 인간의 문제는 영적으로만 해결이 가능하다. 인간의 문제, 가정의 문제는 모두 영적으로만 치유가 가능하다.
70.인간의 약함과 강함
인생에 대해서 연구했다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 보면 천태만상의 견해를 말한다. 황산덕씨는“인생은 미꾸라지다”하였고, 파스칼은“인생은 생각하는 갈대다”하였으며, 뉴톤은“인생은 기계다”하였다. 니체는“인생은 배우다”라고 말했고, 세익스피어는“인생은 불확실한 항해다”라고 말했다. 과연 인간이이란 무엇인가?
달면 입에 넣었다가 쓰면 버리는 속성이 있는 인간, 이것이 인간인가? 필요할 때는 온갖 아양을 떨다가도 때가 지나면 발길로 차 버리는 것이 인간인가? 어떤이들은 이와 같이 낮은 차원의 인간관을 주장한다. 인간을 완전히 물질적인 존재로 간주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인간을 고상한 존재로 보는 사람들도 없지 않다. 인간에게는 선한 속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 선한 속성 때문에 인간은 스스로 자신의 성품을 성장시켜 자기 구원을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인간도 도덕적인 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인간중심적 사고이다.
그러면 우리 기독교에서는 인간을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우리 기독교는 육적인 요소와 영적인 요소를 인정한다. 인간은 한 없이 추하고 더러우면서도, 또한 한 없이 고상한 신의 성품인 하나님의 형상을 받았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지으신 이 거대한 우주안에 있는 한 인간은 정말로 보잘것 없는 존재이다. 인간은 무력하고 허약하다는 것이다. 추우면 춥다고 아우성이고, 더우면 덥다고 아우성이며, 가뭄만 계속되어도 못살겠다고 아우성만 치는 보잘 것 없는 존재이나 하나님의 형상인 영혼이 있기에 우리는 거룩해 질 수 있으며, 신의 성품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은 어찌보면 참으로 보잘것 없는 질그릇 같은 존재이지만 인간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귀한 존재인 것도 사실이다.
71.두 종류의 인간
카를 힐티는 ‘잠 못 이루는 밤을 위하여’라는 그의 일기 11월4일자에서 세상엔 두 종류의 인간이 있다고 했다.
“하나는 우리들이 행복할 때 애교를 떨고 다정하다가도 우리가 불운에 처하게 되면 슬그머니 몸을 숨기는 사람이 있고 또 한사람은 애교는 적으나 내가 불운에 처했을 때 우리를 버리지 않는 사람이 있다. 당신은 어느 쪽에 속하는 사람인가 생각해 보라. 그리고 어느 쪽이 더 아름다운가 판단해 보라”
너무나 부끄러운 질문이라서 나를 솔직하게 돌아보면 잠을 못 이룰 것 같다. 세상에 완전한 사람은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 겸손해야 한다. 교만은 곧 죄악이다. /이정익 목사(신촌성결교회)
72.세 종류의 인간
미국 컬럼비아대 총장을 지낸 니콜러스 머레이는 세상에는 세 부류의 사람이 있다고 했다.
하나는 개선하려고 노력하는 소수의 사람이다.세상의 중요한 일은 언제나 이 소수 몇 사람이 하게 된다. 그래서 빌리 그레이엄 목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미국을 이끌어갈 700명을 달라고 기도했다.
둘째는 일을 그르치는 부류의 사람들이다. 어느 사회나 일을 그르치는 부류가 존재한다. 토인비 교수는 몇 사람의 정신병자 때문에 온 인류가 망한다고 했다. 몇 사람의 독재자, 사기꾼, 아첨자, 이기주의자들이 그 부류이다.
세 번째 사람은 잘못된 것을 보고도 수수방관하는 부류다. 분명히 잘못된 것을 알고도 강 건너 불구경하듯 방관하는 사람, 나 몰라라 하는 이기주의자들 때문에 세상이 망가지고 있다. 그러면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도 이 세 부류중 한 사람일 것이다. /이정익 목사
73.인간의 인권
미국에서 가장 긴 역사를 가진 코네티컷주의 한 신문이 최근 200여년 전의 광고에 대한 사죄문을 게재했다. 당시 이 신문은 회사의 수입을 위해 사람의 인권을 짓밟는 다음과 같은 광고를 실었다.
"건강하고 잘 생긴 15세 흑인소년을 싸게 팝니다." "도망간 흑인 노예를 찾아주는 사람에게 포상금 5달러를 드립니다. 키는 5피트, 나이는 15살"
이 신문은 당시 노예매매 광고를 게재하고 광고료를 받았다. 그런데 이 노예광고는 놀랍게도 돼지나 식료품 등을 판매하는 광고와 함께 실렸다. 이 신문사의 대변인은 당시의 잘못을 이렇게 고백했다.
"지난 세기에 발생한 끔찍한 인신매매 광고 등 우리의 선대들이 저지른 범행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한다."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유일한 존재가 바로 인간이다.
74.호모 하빌리스
인간을 정의할 때 여러 가지 표현이 있습니다. 호모 사피엔스(생각하는 사람), 호모 파베르(도구를 만드는 사람), 호모 에렉투스(서서 걷는 사람), 호모 루덴스(놀이하는 사람) 등.
그중 호모 하빌리스(homo habilis) 즉 손을 쓰는 사람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사람이 손을 쓰는 능력이 다른 동물과 비교할 때 뛰어나기 때문입니다. 포유류 파충류 양서류 조류 가운데 그 무엇도 손가락을 5개 이상 활용하는 동물은 없습니다.
특히 한국인들은 손이 발달한 민족입니다. 젓가락을 쓰는 것도 손이 발달한 이유 가운데 하나입니다. 한국인은 손에 대한 은유가 많습니다. ‘손 좀 빌려다오’ ‘손이 모자란다’ ‘손 끊었다’ ‘저 사람 손 좀 봐야겠다’ ‘내 손안에 있소이다’ 등입니다. 그리스도인도 손이 발달해야 합니다. 기도하는 손, 봉사하는 손, 교제의 악수를 하는 손이 발달돼야 합니다. 한국 그리스도인들은 가장 손이 발달한 그리스도인이기를 바랍니다. /이성희 목사<연동교회>
75.인간의 구조
계란의 구조를보면 껍질과 흰자위와 노란 자위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듯이 사람도 육신(sarks), 혼(pshicke), 영(pneuma)세 가지로 분류할 수가 있습니다.(살전5:23) 각 부분의 기능을 보면 육신은 세상을 의식(world-conciousness)합니다. 혼은 자아(self)를 의식합니다. 영은 신(God)을 의식합니다. 육신이 아픈 것이 질병이라고 합니다. 혼이 문제이면 정신이 나간 사람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없는 사람을 영이 죽었다고 합니다. 영이 죽은 상태에 있는 사람은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 영이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합니다. 이것이 거듭남이며 born again이라고 합니다. 영이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불기둥, 김홍도목사
76.인간경영
일본의 도쿠가와 이에아쓰의 인간 경영이라고 하는 책에서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싸움에서 이긴다는 것은 매우 통쾌한 일이다. 그러나 한 사람이 이겼으니 한 사람은 졌는데 그 진 사람의 고통만큼의 그림자가 남는 것이다. 그런고로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 싸워서 내가 이기고, 진 사람이 있고 그리고 저가 나를 미워하고 있다면, 원수·대립관계에 있다고 한다면 그건 절대로 승리가 아니다.
77.성공과 인간관계
미국에 C.I.T 대학이라고 있습니다. 카네기 공과대학입니다. 여기에서 인생살이에 실패한 사람들, 직장생활에, 가정생활에, 그리고 사회생활에 실패한 사람들만 만명을 표본조사해서 철저하게 연구해 보았습니다. 실패한 이유가 무엇일까? 연구하기 전에 일반적으로 생각하기는 지식이 없어서, 기술이 부족해서, 혹은 무능해서, 능력이 없어서 실패할 거라고 생각을 하고 조사했는데 아니오. 전혀 의외의 결과가 나왔습니다. 전문적 기술과 지식이 결여되어서 실패한 사람은 15%밖에 없고, 85%가 인간관계에서 실패한 것입니다. 이런 통계를 얻고 연구한 사람들도 깜짝 놀랐습니다. 여러분 지식이 부족해서, 자본이 부족해서, 뭐 그래그래 잘못되는 줄 알지만 아니오. 85%가 인간관계에 잘못이 있었어요. 이 때문에 실패한 것이라는 겁니다. 그러면 도대체 인간관계란 또 무엇이냐? 그 무슨 관계에서 실패했다는 거냐, 하고 추적해서 심층 연구해 보니까 이 사람들은 한결같이 Negative Mental Attitude, 부정적 의식, 부정적 생활자세를 가지고 있어요. 성공한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가지는 것이 긍정적으로 생각할 줄을 알고, 실패한 사람들은 항상 부정적이요. 인간관계가 그렇고, 사물에 대한 생각이 그렇고, 사건에 대한 이해가 그렇고, 언제나, 역사에 대한 이해도 항상 부정적이요. 그 사람은 성공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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