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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심】예화 모음 28편

by 【고동엽】 2017. 8. 18.

1. 간디의 희생

‘쥐가 고양이를 이길 수 있는가’란 질문을 간디가 인도 사람들에게 던졌다. 물론 고양이는 영국이고 쥐는 인도를 빗댄 말이다. 모두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러나 간디는 쥐가 고양이를 이기는 방법이 하나 있다고 했다. 그것은 쥐가 쥐약을 먹고 고양이 앞에서 춤추는 것이다. 고양이는 쥐를 잡아먹을 것이고 그때는 쥐도 고양이 밥이 되지만 고양이도 쥐약 먹은 쥐를 먹기 때문에 죽는다는 얘기다. 쥐약은 희생이다. 그는 수억의 인도 사람이 침 한방울씩만 헌신하면 30만 영국 사람을 떠내려가게 하기에 충분한 강물이 될 것이라고 외쳤다.
앞으로 다가오는 세대는 이기주의가 과학화돼가고 희생은 거세되는 세상으로 전락한 곳에서 살 것이다. 희생 없는 지도자, 십자가 없는 교회는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어도 생명력을 잃게 될 것이다.
/고훈 목사(안산제일교회)

2. 꿀벌같은 사람

이 세상에는 거미 같은 사람, 개미 같은 사람, 꿀벌 같은 사람이 있다. 있어서는 안 될 사람, 있으나마나한 사람, 꼭 필요한 사람을 말함이다. 거미는 좋은 길목에 진득진득한 줄을 쳐놓고 어두운 곳에 숨어 있다가 지나가는 파리 모기 잠자리 매미 등 곤충들을 잡아먹는다. 세상에는 거미 같은 인생이 있다. 살인 절도 강도 강간 사기범 등이다. 개미 같은 인생도 있다. 겨울을 위해 여름에 일하는 지혜가 있고, 동료간 협동심도 뛰어나다. 그러나 자기보다 약한 개미를 무참히 죽인다. 개미는 집단 이기주의의 상징이다. 자기들끼리는 협력하지만, 다른 것은 용납하지 않는다. 꿀벌은 꽃들로부터 자기에게 필요한 꿀을 가진다. 그리고 자기 몸에 꽃가루를 묻혀 열매를 맺게 해준다. 우리는 꿀벌 같은 신자가 돼야 한다. 건강한 그리스도인은 자기 이익만 추구하지 않는다. 남에게 유익을 주면서 산다. 우리 모두 꿀벌 같은 사람이 되자.
/최낙중 목사(해오름교회)

3. 美 명문대 입학조건

미국에 이민해서 살고 있는 한인 2세가 명문 컬럼비아대 의과대학에 지원했다. 공부도 잘해서 SAT 시험에 만점을 받았다. 집안 형편도 부유해서 무난히 합격되리라고 믿었다. 그런데 불합격 통지서가 날라왔다. 불합격 사유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귀하의 성적은 아주 우수합니다. 가정형편이나 여러 조건들도 만족스럽습니다. 그런데 귀하의 서류 어디를 보아도 헌혈했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남을 위해서 헌혈한 경험도 없는 귀하가 어떻게 환자를 돌볼 수 있겠습니까. 귀하는 의사될 자격이 없습니다”

 


우리 교육제도와는 너무나 상이하다. 우리는 오직 공부만 잘하면 합격하지 않는가. 그래서 우리 사회는 이기주의자들만 양산하고 있는 것이다.

4. 인간의 이기심

주일학교 여교사가 하나님의 전능하심에 대하여 가르친 후에 학생들을 시험했다. 그녀는 "하나님이 할 수 없는 일이 있나요?"라고 물었다. 침묵이 흘렀다. 그러나 결국 한 학생이 손을 들었다. 교사는 자신이 가르친 것의 핵심이 빠졌구나 실망하며, 체념의 목소리로 물었다.
"하나님이 할 수 없는 것이 무엇이지?" 학생이 대답했다.
"저,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는 없어요"
인간의 이기심을 단적으로 말해주는 일침이다.

5. 이기심의 함정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눅 6:38) 우리는 이 말씀을 주면 다시 엄청나게 돌려받는다는 측면에서 이해한다. 그러나 주는 삶,베푸는 삶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품위 문제,속성의 문제이다. 우리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은 주는 분(Giver)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도 주는 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의 역할 중에 가장 하나님을 닮은 역할이 부모 역할이다. 부모는 자식들을 무조건적으로 사랑한다. 아무런 대가 없이 모든 것을 준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가는 방법은 아비의 마음,어미의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다.누구를 만나든 이 마음으로 살아가면 하나님 같은 태도로 살게 될 것이다. 사실 이기심을 버리고 이타적인 삶을 산다는 것은 구호로 될 만큼 쉬운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자꾸 주다보면 이기심의 문제를 극복케 되고 하나님의 마인드를 갖게 된다. 그런 점에서 주는 행동은 이기심을 극복하고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는 첫 관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기주의는 강해보이지만 이기주의보다 약한 처세는 없다. 이기주의는 항상 자기 중심적이다. 그래서 어떤 일을 할 때 힘들면 중단한다. 그러므로 항상 패배한 상태에서 끝난다. 반면에 이타주의는 항상 남들을 배려한다. 그래서 상대가 지쳐 있을 때 중단한다. 이 때문에 항상 자신은 힘이 남아 있거나 승리자의 모습으로 끝나게 되어 있다. 이기주의자들은 항상 지쳐 있고 이타주의자들은 항상 승리하거나 여유있는 모습을 보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처세는 남을 섬기고 배려하는 이타주의적 삶을 사는 것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은사로 자기 자신을 세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자꾸 자기 자신을 세우면 교만한 사람,자랑만 하는 사람이라고 배척 당한다. 그런데 자신의 은사와 기회로 다른 사람을 세우면 위로부터 새로운 능력을 부여받지 않더라도 당장 10배,100배의 열매를 경험할 수 있다. 내가 1등 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1등 되는 것을 돕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섬기며 사는 삶,이타주의적인 삶은 나의 삶의 영향력을 극대화시키는 하나님의 지혜이다. 이타주의적인 삶은 단순한 희생의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지혜로 살아가는 천국의 삶인 것이다.
/전병욱 (삼일교회 목사)

6. 나 중심에서 우리로

심리학자들이 사람의 심리상태를 점검하는 방법 가운데 측정 대상자가 일정한 시간의 연설이나 대화 또는 일정한 길이의 문장에서 ‘나’라는 단어를 얼마나 자주 쓰는가를 조사하는 방법이 있다. 물론 ‘나’라는 단어를 자주 쓰는 사람일수록 그 사람의 심리상태는 건전하지 못하다는 결과가 나온다.
1940년 미국의 한 언어학자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히틀러는 ‘나’라는 단어를 53단어에 한 번씩 썼고 뭇솔리니는 83단어에 한 번씩 썼다. 누가복음 12장에 나오는 어리석은 부자는 그에 대한 기사 6줄 중에서 나라는 말을 6번이나 사용했다. 그러나 예수님의 공생애나 기도 중에는 자기 중심적인 내용이 하나도 없다. 예수님은 철저하게 자기를 비우고 이웃을 위하여 사신 분이다. 나 대신 우리에 대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것이 기독교인의 자세이다.

7. 이기심의 결과

아주 오래 전 이집트에 한 노인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땅에 엄청난 기근이 찾아왔습니다. 하지만 그 노인은 많은 곡식을 창고에 저장해 두었던 터라 아무런 걱정이 없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먹을 것이 궁해지자 그 노인에게 찾아와서 식량을 팔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노인은 마을의 모든 식량이 다 바닥나기 전에는 결코 팔 수 없다며 한마디로 거절했습니다. 나중에 더 많은 돈을 받고 팔 속셈이었던 것입니다. 마침내 많은 사람이 기아로 죽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그 노인은 그때까지도 곡식을 팔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요구하는 금액을 들어주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마침내 굶주림에 지친 사람들은 그 노인이 요구하는 대로 비싼 값을 지불하기로 하고 식량을 달라고 애원했습니다. 이 때 잔인하고 이기적인 그 노인은 비로소 입가에 웃음을 지으면서 창고문을 열고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 노인의 이기적인 꿈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벌레들이 창고 안에 가득 쌓여 있던 모든 곡식을 다 망쳐놓았던 것입니다. 노인은 너무나 충격을 받은 나머지 그만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8. 이기심의 결과

말과 나귀가 주인과 함께 여행길을 나섰습니다. 무거운 짐이 너무나 힘에 부치는 나귀가 말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내 목숨을 구해 주려면 내 짐을 좀 덜어 가게나.” 그러나 말은 들은 척도 않했습니다. 얼마 가지 않아 나귀는 탈진하여 쓰러져 죽었습니다. 그러자 주인은 짐 전부를 말에게 지웠고, 나귀의 죽은 시체의 가죽까지 얹었습니다. 말이 신음을 하면서 처량하게 탄식했습니다. “아이고! 나의 이기심이 나를 이런 참담한 지경으로 빠뜨렸도다. 나귀의 가벼운 짐을 마다했더니 이 꼴이 되었구나. 아뿔사! 내가 이젠 죽을 노릇이다!”

참 행복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이기주의를 버릴 때 비로소 체험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이 없는 곳에는 오직 이용하고 이용당하는 배신감의 쓰디쓴 고통만이 있을 뿐입니다. 모든 사람이 영혼 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영을 받아들이고 이기주의를 버린 후 진실로 서로 사랑할 때 이 땅에서의 하늘나라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한태완 목사

9. 이기적인 마음

해외 토픽에 실렸던 이야기입니다. 시카고에 사는 두 형제가 어머니에게 꾸지람을 듣고 가출을 했습니다. 그들은 쪽지를 한 장 써놓고 집에 있던 통조림을 한 가방 싸들고 나갔습니다. 이 사실을 안 부모님이 놀라서 경찰에 신고를 하려 했습니다. 그때 아이들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왔습니다. 화가 난 아버지가 어떻게 된 거냐고 따져 물었습니다. 그러자 아이들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깡통 따개를 깜빡 잊고 안 가져갔어요."
우리도 깡통 따개를 찾으러 집으로 돌아온 아이들처럼 자기 본위적이고 이기적인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아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참 진리인 말씀으로 성화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계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진리로 거룩해진 것이 아니라 나의 필요에 따라 거룩해진 척 할 때가 많습니다. 아이의 진학을 위해, 사업의 성공을 위해, 혹시 안 좋은 일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에서 예배나 기도회에 참석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시련이 오면 간절해지고 채워 주시면 나태해지는 우리의 이기적인 신앙 생활을 점검해야 합니다.

10. 무서운 이기심

한 무리의 사람들이 배를 타고 강을 건너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광주리에는 과일과 채소가 담겨 있었습니다. 그때 한 여인이 발을 헛디뎌 강물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여인은 배의 모퉁이를 붙잡고 간신히 버텼습니다. 그녀는 살려달라고 애원했으나 승객들은 그저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었습니다. 몸을 움직여 손을 잡아주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결국 여인은 한참을 버티다가 힘이 빠져 물 속에 가라앉고 말았습니다. 그때 선장이 달려왔습니다. 선장은 자초지종을 듣고 난 후 분노에 몸을 떨었습니다. "손을 내밀어 여인을 도와주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단 말이지요" 그러자 승객들이 이구동성으로 투덜거렸습니다. "만약 그렇게 하면 우리의 과일과 채소는 어떻게 하구요" 선장은 타인의 '생명'을 자신의 '야채'보다 가볍게 여기는 무서운 이기심에 전율했습니다. 희생이 없는 사랑은 울리는 꽹과리일 뿐입니다. 사랑은 움직이는 것입니다.

11. 자기만을 사랑

사막을 오가며 장사하는 아라비아 상인이 사막에서 길을 잘못 들었다가 오아시스를 발견했습니다. 알고 보니 그 길은 사막을 가로지르는 지름길이었습니다. 너무나 기뻤지만 오아시스가 있는 지름길을 알아냈다는 사실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면 언젠가는 그 물이 다 바닥날지도 모른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이후로 이 상인은 혼자서만 그 길로 사막을 횡단하기 시작했습니다.
오아시스 옆에는 키 큰 야자수 한 그루가 서 있어서, 상인은 사막을 횡단하다가 지칠 때면 거기서 쉬어 가곤 했습니다. 하루는 문득 누군가가 멀리서 야자수를 보고 이 쪽으로 오다가 오아시스를 발견하며 어떡하나 불안한 생각에 사로잡히기 시작했습니다.

 


'이 나무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오아시스를 찾아낼지 몰라. 더구나 이 커다란 야자수 뿌리가 어느 날엔가는 귀한 샘물을 다 빨아 들여 버린다면?'
상인은 자신만의 오아시스를 들키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야자수를 없애 버리기로 결정을 내렸습니다. 결국 그는 야자수를 잘라 버리고 나서야 마음놓고 길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며칠 뒤 장사를 끝내고 돌아오다가 오아시스가 감쪽같이 사라져 버린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곳에는 나무 그늘을 잃어 바싹 말라버린 물의 흔적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습니다.

12. 이기심 때문에

미국에서는 C.B.라디오라는 것이 있어서 일반승용차에도 무전기를 부착하면 서로 다른 차량과 자유롭게 교신하며 연락을 취할 수가 있다. 그런데 이 장치는 누군가가 회로를 사용하고 있으면 다른 차량은 그 회로를 통해 교신을 못하게 되어 있었다. 몇 년전 콜로라도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어느 날 트럭운전사가 C.B.라디오의 회로를 사용하고 있었는데 계속해서 다른 차량으로부터 그 회로를 양보해 달라는 신호를 받고도 양보를 해 주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다른 차량에서는 지금 급한 상황이라는 제보를 보내왔으나 이를 보고도 트럭운전사는 심술을 부렸습니다. 그 다른 차량의 운전사는 교통사고를 목격하고 구조요청이 절실해서 그 회로를 사용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어느 큰 쇠 파이프를 운반해 가던 트럭 뒤를 어떤 여자 운전자가 따라가고 있었는데 그만 차끼리 충돌하는 바람에 그 쇠파이프가 그녀의 자동차 유리를 뚫고 그녀의 몸을 찔러 구조가 절박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트럭운전사는 끝까지 회로를 양보하지 않았습니다. 한참 지난 뒤 그 트럭운전사가 마침 사고현장을 지나치게 되었는데 가만히 살펴보니 그 사고를 당한 사람은 다름 아닌 자기 부인이었습니다. 잠시 후에 소식을 듣고 뒤 늦게야 현장에 도착한 의사는 만일 자신에게 좀더 일찍 연락을 취하여 자기가 5분전에만 당도하였더라면 그 부인은 생명을 잃지 않았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기주의가 자기 가정을 불행하게 만든 것입니다.

13. 이기적인 욕심

이기적인 욕심 때문에 큰 손해를 본 이야기입니다. 할 일을 모두 끝낸 농부가 흔들 의자에 느긋하게 앉은 채 저녁에 배달된 신문을 읽고 있었습니다. 신문을 읽던 농부의 시선이 한 곳에서 멈췄습니다. 그곳에는 새로운 옥수수 종자가 개발되었다는 기사가 실려 있었습니다. 농부는 다음날 날이 밝기가 무섭게 종묘 가게로 달려가서 그 씨앗을 구입했습니다. 씨앗을 밭에 뿌리고는 한 해 동안 정성을 다해서 재배했고, 결과는 대풍작이었습니다. 그것을 본 이웃의 농부가 찾아와서 새로운 옥수수 종자를 조금만 팔라고 사정했습니다. 그러나 농부는 경쟁력을 잃을까봐 한마디로 거절했습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웃집 농부가 찾아와서 부탁을 했지만 대답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다음해가 되어 수확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수확이 별로 좋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해에도 수확은 더욱 더 줄어들었습니다. 농부는 옥수수의 수확이 줄어드는 원인을 밝혀 내려고 온갖 노력을 다 기울였습니다. 비싼 값을 치르고 구입한 종자가 한 해밖에 효과를 내지 못한 게 너무 억울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수소문을 하던 농부는 결국 그 원인을 찾아냈습니다. 새로운 옥수수 종자는 이웃에 있는 옥수수 밭에서 바람을 타고 날아온 나쁜 옥수수 종자의 꽃가루 때문에 본래의 열등한 종자로 바뀌어 버렸던 것이었습니다.
사랑을 줄 수 있는 자도 행복하고 아름다운 자이며,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자도 행복하고 아름다운 자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인간은 자기밖에 모르는 인간입니다. 자기밖에 모르는 인간은 사랑을 느낄 수 없으며 사랑을 느낄 수 없는 인간은 행복도 느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돌아보면 안타까운 일도 많습니다. 넘치는 풍요 속에 살고 있으면서도 내가 가진 것에 대한 고마움보다 못가진 것에 대한 불평으로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부끄러워질 때가 많습니다. 진정 아름다운 자는 함께 나누며 사는 사람이며, 사랑을 나누는 사람이어야 진정 행복한 자입니다.

14. 자기 행복만 추구하다가

누가복음 12장에 보면 어리석은 부자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부자는 가난한 자를 생각지 않고 오직 자기를 위하여 많은 물건을 창고에 쌓을 생각만을 했습니다. 또 누가복음 16장에 나오는 부자는 고운 옷을 입고 날마다 잔치하며 거지 나사로를 외면하다가 결국 지옥에 갔습니다.
"또 비유로 저희에게 일러 가라사대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심중에 생각하여 가로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꼬 하고 또 가로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누가복음12: 16- 21)

15. 이기주의에 빠지면

가인은 시기심으로 자기 동생 아벨을 죽이고도 여호와 앞에서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창4:9) 합니다. 여리고에서 강도 만나 죽게 된 사람을 보고도 당시에 가장 하나님을 잘 섬긴다고 하는 제사장과 레위인은 보고 피하여 지나갑니다.(눅10:31,32)
또 이기주의에 빠지면 다섯 가지 병적인 결과로 나타납니다.
(1) 어떤 사람은 유별나게 주관적인 사람이 됩니다. 그러다가 누가 자기의 생각이나 주장을 반대를 하면 도무지 참지를 못합니다. 자기가 내세운 주장은 반드시 통과되어야 하고 실행되어야 직성이 풀리지, 그렇지 않으면 대단히 화를 내게 됩니다.
(2) 어떤 사람은 지나치게 우월주의에 빠집니다.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우러러보고 존경하고 칭찬하기를 바랍니다. 그러다가 누가 자기를 알아주지 않거나 칭찬해 주지 않으면 대단히 화를 내고 혹은 좌절에 빠집니다.

 


(3) 어떤 사람은 자기 도취에 빠집니다. 다른 사람이 자기보다 높아지는 것을 원하지 않고 자기만 더 높이 올라가기를 원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누가 실패하면 즐거워하고 누가 성공하면 못 마땅해서 우울해 하고 화가 나서 견디지를 못합니다.
(4) 어떤 사람은 자기애(self-love)에 빠집니다. 자기나 자기 일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거기에만 빠질 뿐, 다른 사람들의 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도우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누가 자기의 고통을 하소연하면 별로 들으려고 하지 않고 자기의 이야기만 합니다.
(5) 비만과 질병이 됩니다. 우리 몸의 지방세포는 추위를 막아주고 피부의 윤곽을 잡아줄 뿐 아니라 영양분을 저장했다가 우리 몸이 필요로 할 때 이를 방출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어느 날 이 지방세포가 영양분을 내주기를 거부하고 계속 자신만 번식하고 지방을 쌓아놓기만 하게 되면 지방종이 됩니다. 지방종은 신체 어느 부분에도 생길 수 있는데 눈에 생기면 눈을 밀어내고 심장벽에 생기면 심장 기능을 떨어뜨리기도 합니다. 또한 복부에 쌓이면 복부비만이 되어 각종 성인병을 유발합니다. 돈은 잘 쓰기 위해 버는 것이며 지식도 남을 위해 사용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필요한 것을 보고도 나만을 위해 축적하면 비만과 지방종이 자라게 됩니다. 나만 잘되겠다는 생각, 내 돈이니까 내 마음대로 해도 되고 우리집과 우리 교회만 커지기를 바라는 생각이야말로 도려내야 할 지방종입니다.
(6) 어떤 사람들은 자기 사랑에 빠질 뿐 아니라, 세상의 물질을 지나치게 사랑합니다. 무슨 영적으로나 윤리적인 문제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런 이야기에는 거의 졸다시피 합니다. 그러나 물질 이야기만 나오면 열을 올립니다. 다른 것에는 크게 화를 내지 않아도 물질의 손해만 입으면 얼마나 흥분하고 화를 내는지 아주 병적입니다.

16. 이기주의자들의 결과

한 사람이 죽어서 천국에 도착했습니다. 그 사람은 베드로에게 지옥의 모습을 한번 보여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베드로는 그를 데리고 지옥으로 갔습니다. 마침 그때가 점심시간이었는데 끝이 보이지 않는 긴 식탁에 진수성찬이 가득 차려져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뼈만 앙상한 모습이었습니다. 지옥사람들의 손에는 모두 1미터가 넘는 긴 젓가락이 들려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것으로 음식을 집어 자신의 입에 넣으려고 아우성이었습니다. 그러나 긴 젓가락에 매달린 음식은 자신들의 입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지옥은 굶주림에 지친 사람들로 아비규환을 연출하고 있었습니다. 천국에 와보니 그곳에서도 똑같은 식탁에 1미터가 넘는 긴 젓가락이 들려 있었습니다. 그러나 천국사람들은 질서정연하게 음식을 먹고 있었습니다. 천국사람들은 긴 젓가락으로 음식을 집어 상대방에게 먼저 먹여주고 있었습니다. 지옥은 '남' 보다 '나'를 먼저 생각하는 곳입니다. 천국은 '나' 보다 '남'을 먼저 배려하는 곳입니다. 당신의 식습관은 어떻습니까? 당신이 하루에 남기는 음식물의 양은 어느 정도나 되는지요? 우리는 양심에 아무런 가책도 느끼지 않고 엄청난 양의 음식물을 버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에도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2초에 한 명씩 죽어가고 있습니다. 대중매체를 통해 뼈만 앙상하게 남은 아프리카 사람들을 보면서 당신은 어떤 생각을 하십니까? 혹, "하나님, 하나님이 계신다면 어떻게 저들을 저토록 비참하게 내버려두실 수 있습니까?"하고 원망 섞인 말을 내뱉고 계시지는 않는지요?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세계 모든 사람들이 충분히 먹고도 남을 만한 식량을 주셨습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한 사람이 하루에 필요한 칼로리는 평균 2,500-2,600칼로리 정도입니다. 그러나 현재 세계에서는 한 사람 당 약 3,000칼로리 정도 섭취할 수 있을 만큼의 식량이 생산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문제는 우리의 이기심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언젠가 우리의 이기심에 대한 책임을 반드시 물으실 것입니다.
따라서 이기주의자들의 결과는 (1) 멸망을 당합니다(시52:5-7) (2) 하나님의 심판을 받습니다.(겔34:18-20) (3) 저주를 받습니다(잠11:26, 잠28:27) (4) 만족이 없습니다.(전5:10) (5) 화가 미칩니다.(사5:8) (6) 자연의 재앙(학1:9,10)과 근심이 임합니다(딤전6:10)

 


그러므로 우리는 이기주의를 버리고 그리스도를 위해 살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선대하며 남의 유익을 구하고 다른 사람의 일을 돌아보며 심지어 자기를 희생하고 양보하는 마음과 정신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 기도: 사랑의 주님, 우리 속에 있는 이기심을 없이 하여 주사 굶어 죽어 가는 사람들을 가엾게 여기고, 그들을 한 형제처럼 생각하는 사랑이 저희에게 있기를 원합니다. 주님,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 설교중에서

17. 받을 빚과 줄 빚

한 노인이 임종을 맞기 전 이렇게 말했다.
"사라, 내가 죽기 전에 당신에게 알릴 것이 있소. 양복장이 긴즈버그는 나에게 200달러를 빚졌고, 푸주간 주인 모리스는 50달러를 빚졌고, 이웃집 클레인에게도 300달러 받을 돈이 있소."
그 노인의 아내는 자식들에게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너희 아버지는 얼마나 놀라운 양반이냐. 죽어가면서까지 누가 얼마의 돈을 빚지고 있는지 생각할 수 있으니 말이다."
노인이 계속해서 말했다.
"그리고 사라, 내가 지주에게 100달러를 빚지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기 바라오." 그 말에 아내가 외쳤다.
"오오! 이제 너희 아버지가 헛소리를 하시는구나."
사람들은 자기가 듣고 싶은 말이면 옳고, 그렇지 않으면 그것과 무관해지고 싶어한다. 이것이 바로 이기적인 인간의 모습이다.

18. 내면의 거울

자기밖에 모르던 인색한 부자가 유대인 교수인 랍비를 만났다. 부자는 랍비에게 인생에 교훈이 될만한 가르침을 부탁하였다. 그러자 랍비는 그를 창가로 데리고 가서 다음과 같이 물었다. "무엇이 보입니까?" 부자는 눈에 보이는 대로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이번에는 그 부자를 커다란 거울 앞으로 데리고 가서 똑같은 질문을 하였다. "무엇이 보입니까?" "제 얼굴이 보입니다." 부자의 대답이었다. 랍비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부자에게 말하였다. "창문과 거울은 모두 유리로 돼 있으니 거울 뒤에는 수은이 칠해져 있어 밖이 안보이고 자신만 보게 되는 거지요. 마찬가지로 내면이 탐욕으로 칠해진 사람은 자기 밖에 모르는 불행한 존재지요."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보며 그 뜻을 분명히 알기 위해서는 맑고 깨끗한 영안이 필요하다. 그러나 내 개인적 욕심을 버리지 않고 내 삶의 주도권을 내가 쥐고 살아 갈 때에는 주를 바라볼 수 있는 영안을 소유할 수 없다. 내 눈을 가리고 있는 욕심, 자만, 이기심 등을 버릴 때, 내 눈에 내가 보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님을 볼 수 있을 것이다.

19. 통 안의 물을 마시지 말라

사하라 사막을 여행하던 한 사람이 목이 말라 고통스러워하다가 펌프 하나를 발견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펌프 속에는 물이 한 방울도 없었다. 실망하면서 돌아서려다 펌프에 적혀 있는 글을 읽게 되었다. “펌프에서 동쪽으로 2m쯤 되는 곳의 모래를 파헤치면 큰 돌이 나올 것입니다. 그 돌을 들면 플라스틱 통이 있습니다. 통 안에는 물이 가득 있으나 절대로 마셔서는 안 됩니다. 먼저 물을 4분의 1쯤 펌프에 부어서 메마른 가죽을 축이십시오. 약 15분 정도 지나면 가죽이 다 불어나게 되는데, 이때 통의 물을 서서히 부으면서 계속 펌프질을 하십시오. 그러면 당신은 넘치는 물을 얻을 것입니다. 그리고 처음 있던 물통에 물을 넣어서 마개를 꼭 막아 다시 제자리에 놓은 후 돌을 덮고 그 뒤에 모래를 덮어 두십시오.”
누구든지 돌 밑에 있는 통의 물을 발견했을 때 유혹이 생겼을 것이다. ‘이 물을 조금 마시면 안 될까? 만일 펌프에 물을 다 부어도 샘물이 나오지 않으면 어떡하지?’ 하지만 통에 있는 물은 한없이 많이 흘러가는 지하수를 끌어올리는 데 꼭 필요한 것이다. 만일 그 물이 없으면 지하수도, 펌프도 아무 소용이 없다. 다행히 그 펌프가 계속해서 사막을 지나는 사람들의 목을 시원하게 해 주는 생명수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많은 사람의 유익을 위해 자신의 욕구를 절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 한 사람이라도 자기만을 위해 통 속에 있는 물을 마셔 버렸다면 뒷사람들은 모두 목이 말라 고통 속에서 사막을 건넜거나 죽고 말았을 것이다.
성경: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마22:39)

20. 자기본위의 생각

“남이 타협하면 야합, 내가 타협하면 양보하는 것. 남이 가난하면 게으른 탓, 내가 가난하면 사회구조의 모순 탓. 남이 한 우물을 파면 우물안 개구리, 내가 한 우물을 파면 전문가. 남이 좀 검은 피부면 야만적, 내가 좀 검은 피부면 야성적. 남이 빗나간 사랑을 하면 스캔들, 내가 빗나간 사랑을 하면 로맨스. 남이 말을 많이 하면 지성이 없는 수다, 내가 말을 많이 하면 다양한 화술. 남이 나서면 교만, 내가 나서면 개성.”

21. 작은 여우

꽃이 피는 포도원은 사랑의 동산입니다. 사랑의 가정입니다. 사랑의 공동체인 교회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허무는 작은 여우가 있습니다. 여우는 야행성 동물입니다. 간교한 작은 여우는 숨기를 잘합니다. 그래서 세심히 관찰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 때문에 하나님은 포도원을 허무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고 하십니다. 무엇이 작은 여우입니까? 헌신을 막는 이기심이 작은 여우입니다. 사랑을 잴 수 있는 자가 있다면 그것은 희생일 것입니다. 얼마나 희생했는가를 보면 얼마나 사랑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행복한 사랑의 관계는 소속감이 분명할 때 안정감이 있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속했다는 확고한 사랑이 아름답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게 합니다. 분명한 소속감은 헌신과 충성과 진실 속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오직 사랑하는 상대로 나의 사랑의 종지부를 찍겠다는 헌신이 필요합니다. 마침표의 사랑이 필요합니다. 또 다른 선택의 여지를 갖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실 때 이런 헌신과 충성과 진실을 가지고 오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초청하십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 15:5). 이것이 연합하는 사랑, 소속된 사랑, 친밀한 사랑입니다. 아름다운 사랑을 위해 헌신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그렇게 사랑하셨습니다. 혹시 사랑의 실패를 경험했습니까? 낙심하지 마십시오. 아가서를 통해 배우는 주님의 사랑으로 전화위복할 수 있습니다.
-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강준민

22. 이기적 마음을 방치한다면...

수레 만드는 사람은 모든 사람들이 부귀해지기를 바라고, 관을 만드는 사람은 타인들이 일찍 죽고 많이 죽기를 바란다. 사람들이 부귀해지기를 바라는 전자의 마음은 선량한 마음이다. 이와는 반대로 사람들이 일찍 죽기를 바라는 후자의 마음은 악한 마음인 것만은 틀림없다. 그렇다면 수레 만드는 사람은 마음은 본디 착하고, 관을 만드는 사람의 마음은 본디 악하단 말인가! 그런 것은 아니다. 수레 만드는 사람은 사람들이 부귀해져야 수레를 많이 팔 수 있고, 관을 만드는 사람은 사람들이 많이 죽고 빨리 죽어야 관을 팔 수 있다. 이렇듯 사람들은 자기의 이해 관계에 따라 그 마음이 달라진다. 때문에 이기적인 그 마음들을 그냥 놓아두면 필연적으로 사회는 혼란해진다고 믿은 것이다. 한비자는 모든 인간 관계가 이기적 목적에서 무엇인가를 주고받는다고 보았다. 심지어는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에도 이기적 목적이 적용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이해 관계가 부합된다면 서로 낯선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화합하고, 이해 관계가 맞지 않으면 부자지간이라 할지라도 서로 투쟁하게 될 것이라고 단정지었다.

* 기도: 하나님, 너무나 이기적인 제 삶을 고백합니다. 저를 통해 이 땅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에 따르는 삶을 살게 하소서.

23. 잘 보여?(유머)

어떤 부부가 아주 오랜만에 영화관을 찾았다. 자리에 앉아 영화를 감상하는데 남편이 아내에게 "당신, 잘 보여?"라고 물었다. 아내는 남편의 세심한 배려에 감사함을 느끼며 "네, 아주 잘 보여요"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남편이 "그럼 자리 바꾸자. 내 자리에서는 안 보여"라고 말했다.

 

24. 소경의 이기심

아주 먼 옛날, 앞을 못 보는 남자가 살고 있었습니다. “한 번이라도 좋으니 눈을 뜰 수만 있다면…” 이것이 그 소경의 소원이었습니다. 이 소문을 들은 부엉이 한 마리가 어느 날 밤 소경을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말하였습니다. “아저씨, 난 아저씨의 소문을 듣고 아저씨를 도울 수 있을 것 같아서 찾아왔어요. 나는 밤에만 활동하니까 낮에는 눈이 필요 없거든요. 그러니까 낮 동안에는 내 눈을 빌려 드릴께요. 그러나 밤에는 꼭 돌려주셔야 돼요.”
다음날 아침 소경이 깨어보니 환한 세상이 그의 눈에 보였습니다. 소경이 뛸 듯이 기뻐하며 눈을 빌려준 부엉이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그 날부터 부엉이와 생활을 하며 낮에는 소경이, 밤에는 부엉이가 눈을 달고 먹이를 찾았습니다. 이렇게 며칠이 지나자 소경의 마음에 은근히 욕심이 생겨났습니다. “부엉이와 눈을 함께 쓰는 바보가 어디있담.”
소경은 부엉이가 잠든 낮에 먼 곳으로 도망쳤습니다. 그리고 밤하늘의 별을 보며 기뻐하였습니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눈이 희미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아무것도 보이지를 않았습니다. 소경은 다시 더듬거리며 부엉이가 있는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왜 나를 버리고 도망을 가셨어요. 난 밤에 먹이를 찾지 못해서 굶고 있었어요. 그러니까 내 눈도 기운을 잃은 것이예요.”
가엾은 부엉이는 이 말을 마치고는 그만 죽고 말았습니다. 소경은 자기의 잘못을 후회하며 엉엉 울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우리는 함께 가야 합니다. 서로 도와야만 합니다.

25. 이기심

어느 병실에 두 사람의 환자가 한 사람은 창쪽에, 한 사람은 벽쪽에 나란히 누워 있었습니다. 벽만 보이는 쪽의 환자가 답답해 할 때면 창쪽의 환자는 바깥 풍경을 열심히 이야기해 주곤 했습니다. 막 꽃봉오리를 터트린 꽃나무의 이야기, 아장아장 걸어가는 아기와 젊은 엄마의 이야기…. 그러던 어느 날 벽쪽의 환자는 창쪽의 환자의 위급함을 알았지만 창쪽자리를 탐내어 간호사를 부르지 않았습니다. 창쪽의 환자가 죽자 그는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창밖으로 보게 된 것은 높다란 붉은 담뿐이었습니다. 이웃의 사랑과 친절을 우리는 때로 이기심과 시기심으로 받고 있지는 않는지요?

26. 가난한 자들의 이기심

프랑스의 어느 조그만 시골 마을에서 낙후된 마을 발전을 위한 주민총회가 열렸는데 좋은 착상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그 중 결정된 사항은, 자기 집에 두 대 이상의 마차를 가지고 있는 주민은 한 대씩 마을을 위해 기부하자는 것과, 말과 마차를 보관할 창고가 있어야 하니까 헛간을 둘 이상 가진 사람은 그 중 하나를 마을에 내놓자는 제안이었는데 만장일치로 가결되었습니다. 이렇게 일사천리로 마을 공동재산이 불어나고 있던 중 그 마을에서 가장 가난한 주민이 머뭇거리면서 부끄러운 낯으로 일어나 "나는 마을을 위해 바칠 거라고는 아무 것도 없고, 닭 두 마리가 있을 뿐인데 그 중 한 마리를 내놓아 마을 발전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 싶은데 닭 두 마리 이상 있는 주민들은 한 마리씩 내놓기로 하면 어떻겠는가?"라고 제의했습니다. 막상 표결에 붙이자 만장일치로 찬성하던 사람들이 닭 두 마리 이상 가진 사람은 한 마리 씩 내자는 제안에 대해서는 반대 입장을 나타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 마을 주민들 중에 말이나 마차를 내놓아야 할 만큼 많이 가진 사람은 몇 안 되었지만 닭은 누구나 한 마리 이상 다 갖고 있었던 때문이었습니다.

27. 자기만 사랑

성경: 딤후3:1-2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희랍의 신화 나르시스 이야기는 극도의 자기에가 가져온 비극에 관한 것입니다. 나르시스신화의 아이러니는 자기 자신에 대한 지나친 탐닉은 결과적으로 자기 파괴의 지름길이었다는데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나르시스는 자기 외에는 아무도 사랑할 수도 사랑을 받을 수도 없는 존재였습니다. 그러므로 그의 죽음은 그러한 자신의 상황에 대한 절망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보여집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대로 기독교는 자기 사랑을 죄의 근본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자기 사랑의 죄가 파괴적이라는 이유는 그것이 진정한 의미에서 자신이나 이웃을 사랑할 수 없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며, 더 나아가 그것은 인간을 하나님 위에 군림하게 하여 결과적으로 하나님 과 인간, 인간과 인간 사이의 질서를 근본부터 뒤흔들어놓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지니고 있는 나르시스적 경향은 인간이 본질적 속성으로서 누구도 이로부터 완전히 자유할 수 없음도 기독교는 일찌기 인류에게 일깨워 주었습니다. 이렇듯 인간의 본질적 속성으로서의 자기 중심성 혹은 자기애는 우리의 존재성 속에 자리하고 있으므로 그것은 학습되어 이루어졌다기보다는 오히려 인간이 소유하고 있는 존재론적인 특징으로 이해해야함이 옳을 듯 합니다.

 


오늘도 나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통하여 나를 사랑하는 아름다움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송태승 목사

28. 거울 속의 나

옛날, 어떤 왕이 매일 여러 장식이 주렁주렁 달린 눈부신 의복을 입고 거울 앞에서 자신의 자랑스러운 모습을 보며 뽐냈습니다. 백 성은 어떻게 살든지 왕은 자기만을 생각했습니다. 어느 날 시종이 왕이 매일 들여다보던 거울을 치워버렸습니다. 다음날 왕이 자기의 모습을 보려고 거울을 찾았으나 거울은 보이지 않고, 거울이 있던 자리의 창문을 통하여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은 지치고 굶주린 모습이었습니다. 창백한 여인과 굶주린 아이를 보았고, 먹을 것을 찾으며 쓰레기통을 뒤지는 아이들과 허리가 구부러진 노인들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왕은 자기의 화려한 의복을 벗어버리고 평민들이 입는 소박한 옷으 로 갈아입고 백성들 가운데로 나아가 그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그들의 아픔을 함께 나누었다고 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오직 자기만을 바라보며 살고 있습니다. 사람이 오직 자신만을 바라보고 관심을 쏟고 있는 동안은 그 무엇도 볼 수 없고 어떤 소리도 들을 수 없습니다. 사람에게는 언제까지나 기회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도 자신만을 보느라 정신 없는 삶을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자신만 보고 있을 때는 예수님도 이웃도 결코 볼 수 없음을 명심하십 시오.
/전도 예화 다이제스트(배창돈 엮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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