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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메이첸의 바울 신학 이해

by 【고동엽】 2014. 8. 23.

한국성경신학회
제9차 논문 발표회(2002년 2월 18일)
메이첸의 바울 신학 이해
李 鍾 潤(서울교회)

들어가는 말
G. Machen의 바울 연구는 그 시대 상황을 잘 표출하고 있다. 합리주의와 역사 비평주의 특히 종교사학파들이 득세하던 18세기, 19세기의 소위 자유주의 신학에 대한 강한 도전을 하고 있다.

특히 Machen은 19C말 신약학계의 가장 관심의 대상이 되어 왔던 예수와 바울의 문제에 대한 W. Wrede의 입장에 크게 도전을 하면서 성경적 바울 신학을 세우고 방어하는 일에 챔피언이 되었다.

본 논문은 Machen의 바울 신학 이해를 위해 Machen을 촉발시킨 20세기 초 바울 연구의 중심 인물인 Wrede를 살펴본 후 변증적 신학자로 알려진 Machen의 입장을 정리하고 Machen 신학이 오늘에 미치는 신학적 평가를 하고자 한다.

Ⅰ. 20세기초 예수-바울 문제에 대한 폭발

19세기말 신약학계는 기독교의 창시자가 예수냐 바울이냐를 찾는데 논쟁을 모았다. 1905년 W. Wrede의 Paulus가 출판되면서 예수-바울 문제의 토론은 결정적 전환점을 맞게 된다. Wrede는 바울을 신학자로 해석했다. 물론 논리적 체계를 갖춘 신학자는 아니었지만 바울의 사상에는 모순과 불연속성이 있음을 찾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에게서 기독교는 사상적 체계를 이루었다고 본다. Wrede의 주장이 19C 연구들과 구별된 것은 바울의 신학이 그의 신앙과 구별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것이 신앙과 신학의 구별을 부인했다는 말은 아니다. 그가 여기서 말한 것은 교리와 경건을 완전히 분리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Wrede는 기독론을 바울 신학의 중심으로 보았다. 바울은 그의 회심 경험을 통해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분명한 확신을 얻었다.

그의 신학은 여기서부터 출발된다. 바울의 그리스도는 선재하신 하나님으로 신성을 버리시고 인간이 되시어 죽음과 부활로 하늘의 영광에로 가신 분이시다. 그는 사탄의 노예로 잡혀있던 인간을 구원하셨다. 그러나 Wrede에 의하면 이 모든 것은 복음서에서 우리에게 알려진 예수의 생애와 품성과는 무관하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인성은 바울에게는 순전히 형식적이다. 바울에게는 성품이나 개성의 개념은 결여되어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인성은 쉽게 알 수 없는 유령과 같은 것이다.

Wrede에 의하면 기독론에서 나온 구원론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와 부활에서 승리하심으로 모든 인간이 그와 함께 모든 원수를 이기고 새로운 존재로 들어가게 한 것이다. 따라서 모든 신자는 그리스도와 함께 이미 죽었고 그리고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았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 시작된 종말의 마지막에 이 구원이 실현된다. 그러나 초자연적 힘이신 성령이 인간에게 임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바울의 구원론은 브레데에 의하면 인간 내면 세계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개인 밖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윤리적 변화는 이차적이다. 이 같은 구원론은 개인적이기보다 종족 또는 인류전체의 구원을 말한다.

브레데에 의하면 바울의 신학은 그의 회심 경험에서부터 설명된다. 바울이 예수에 대한 지식이 어떠하든 바울은 그것을 12사도로부터 받았다고 본다. 그러므로 그것은 별의미가 없다. 바울이 관심을 가진 역사적 사건은 십자가다. 사실 바울에게 이것은 역사적 사건이라기 보다 초역사적 사건이었다. 감각의 세상 너머에서 일어난 사건이었다.

그러나 브레데에게서 바울의 기독론은 예수의 실존은 거부되고 예수의 이상화 또는 신격화를 말한다. 윤리적 성품들 즉 순종, 사랑, 겸손은 예수의 윤리적 성품에서 온 것이 아니고 사도 바울의 구원 교리에서 온 것이라 한다. 브레데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하늘 존재 양식으로부터 논리적 결론으로 그리스도의 선재를 도출해 내지 못하였다. 인간 메시야로서 예수의 위엄을 강화하기 위한 그리스도의 신성을 주장하지도 못했다.

브레데의 설명에 의하면 바울은 예수를 믿기 전 이미 신적 그리스도를 믿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회심경험을 할 때 나타난 그분을 자신이 갖고 있던 그리스도와 동일시 한 것이라는 것이다. 바울은 자기가 갖고 있던 유대 묵시 문학적 그리스도를 그가 만난 그리스도 예수라는 이와 동일시 했고 그 예수는 지상에서 살던 나사렛 예수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바울이 회심하기 전에 신적 그리스도를 알고 있었다면 그것은 유대교 안에 있던 메시야 신앙일 것이다.

브레데는 그의 책 마지막 장에서 기독교 기원 문제를 다루면서 바울의 위치를 묻고 있다. 즉 예수-바울 문제를 논한 것이다. 브레데에 의하면 예수와 바울은 유대교의 서로 다른 계층에 속했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예수의 단순성과 바울의 사변적 복잡성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브레데는 바울이 예수의 복음을 이해한 사람이라는 Welhausen이나 Harnack이 주장한 의견에 동의하지 않았다. 바울과 예수는 여러 면에서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그것이 바울이 예수의 영향을 받은 증거라고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들은 같은 시대에 유대교에 속해 있었다는 이유만으로는 그에 대한 설명은 충분하다고 보았다.

예수와 바울을 비교한 후 브레데가 내린 결론은 하나님께 대한 책임 있는 개인적 품성 즉 윤리적 신앙이 바울에게서 구원사의 객관적 사건에 중심을 둔 구원의 종교로 바뀌게 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브레데에 의하면 바울은 기독교의 창시자요 그리스도의 성육신, 죽으심, 부활과 같은 종교의 근본이 되는 구원 행위를 만든 기독교 신학의 창설자라는 것이다. 신화적 구원론의 개념을 Graeco-Roman세계의 토양에 이식 시켰고 이 신학으로 유대교의 한계를 넘어서 역사를 구원하는 새 종교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바울은 아직도 기독교의 제2창설자로 남아 있다.

결국 브레데에게 예수-바울 문제는 예수냐 바울이냐 하는 선택의 문제로 등장한다. 이 같은 브레데의 바울전은 복음주의적 입장의 신학자들뿐 아니라 자유주의적 입장을 견지하는 신학자들에게도 커다란 도전이 되었다. 브레데의 주장이 옳았다면 바울의 그리스도는 예수와 단절을 해야 하고 역사적 근거를 상실한 기독교를 세워야 할 것이다.


Ⅱ. 변증적 신학자 J. G. Machen의 출현


문제의 심각성에 비추어 보수 신학자들의 반응은 즉각적으로 나타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이나 미국에 있는 보수 신학자들은 논쟁에 뛰어들어 점차 신학적 토론이 깊어갔다.

J. G. Machen은 문제 속에서 신학적 전제(theological presuppositions)의 중요성을 보았다. 그리고 Wrede는 19세기 자유주의 신학 발전의 논리적 결과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Machen은 예수-바울 문제를 자연주의(naturalism)와 초자연주의(supernaturalism) 사이의 선택 문제로 풀었다.

Machen은 바울에 대하여 Wrede와 두 가지 면에서 공감을 표시했다. 즉 바울을 신학자로서 해석한 점과 바울의 신학과 종교는 분리할 수 없다는 점에서 Wrede와 일치한다. 그러나 Wrede와 달리 Machen은 바울의 신학이 예수의 교훈과 같은 초대교회 가르침과 조화를 유지한다는 것이다. 바울이 초대교회와 일치한다는 Machen의 견해는 교리적 비교에 근거한 것이 아니고 예수의 12 사도들이 바울의 신학과 본질적으로 차이가 있다는 증거가 없다는 사실에 근거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바울과 예수사이에 일치는 바울의 회심이 초자연적 성격으로 마침내 보증되었다는 것이다.

"만일 바울이 자기 가르침과 나사렛 예수의 교훈사이에 근본적 차이가 있음을 발견했다면 그는 예수의 제자로 남아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의 회심은 초자연적이었음이 틀림없다. 반면에 바울이 예수와 불협화음을 내었다면 그의 회심은 초자연적이 아닐 것이다. 그의 회심은 예수 자신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초자연적 사건이었다면 회심은 바울을 지상의 예수와 불일치하게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것은 예수의 현현으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초자연적 사건이 아니었다면 바울은 자기가 동의하지 않은 이의 제자로 자신을 간주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일 것이다.

바울은 예수의 참 제자였다 라는 가정은 Machen에 의하면 복음서 전체 속에 비쳐진 예수의 모습으로 실증되었다고 한다. 이 점에서 그는 소위 역사적 예수를 재건하려는 역사 비평주의의 시도를 거부한다. 그리고 초대 교회(바울)의 초자연적 그리스도관을 주장한다.

바울은 그리스도가 수년 전에 사셨던 예수와 완전히 일치하는 분으로 동일시 한다. 갈릴리에 사시던 예수가 부활하신 주로 믿은 바울은 예수와 그리스도가 다른 분이 아닌 동일한 분임을 그의 서신에서 강조한다.

따라서 Machen은 바울을 예수의 제자로 변증한다. 그는 역사적 예수의 교훈과 모범으로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Machen은 바울 신학의 핵심은 지상의 예수를 모방한 것뿐 아니라,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교제(communion)하는데 있다고 한다. 이 교제는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로 말미암아 인격적 신앙적 관계로 이해되는 것이다. 여기서 Machen은 예수의 십자가 교리를 뛰어넘는 바울을 본다. 그러나 Machen에 의하면 예수는 그가 가르치고 행한 것으로 기독교를 세우지 않았다고 본다: "교회가 그에게 경배를 드리는 것은 그의 죽음을 우주적 의미가 있는 사건으로 해석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예수가 인간 구원을 위하여 지상에 오신 하나님이실 때만 그 같은 해석이 가능한 것이다." 그리스도의 초자연적 인격의 인식은 바울 이해의 열쇠가 된다. 그리고 예수-바울의 문제의 해결도 여기서 찾아진다.

Machen에 의하면 예수와 바울 사상의 일치는 근본적으로 그리스도의 초자연적 인격과 바울의 초자연적 회심을 근거로 한 전제(presupposition)에 있다. 그러므로 예수와 바울의 차이점의 개연성은 배제된다. 결론적으로 예수와 바울 사이에 역사적 차이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Machen의 입장이다.

사실 이 문제에 대한 Machen의 입장은 역사적인 연구보다는 신학적이고 따라서 초자연주의(supernaturalism)와 자연주의(naturalism)의 대결문제로 분석하고 있다. 결국 이 문제는 계시와 역사의 관계 문제로 대두되게 된다. Machen은 계시 속에 있는 역사적 요소를 배제하고 초자연주의적 경향만을 강조한 것은 J. Weiss가 역사성만을 강조한 것처럼 균형을 깨뜨린 점이 있어 아쉬움으로 남지만 Machen은 복음서의 역사적 당위성을 강조함으로 그의 신학에 큰 오점을 만들지는 않았다고 본다.

그리스도의 죽으심이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기독교 공동체의 근본을 이루고 있다고 본 것은 바울을 기독교의 제2의 창설자로 보려는 Wrede의 입장에 커다란 도전이 아닐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는 기독교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교리에서 출발한다는 바울의 입장을 강조했다. 결국 바울 종교의 기원은 Wrede의 주장처럼 구약 묵시문학적 기독론이 아닌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라는 것이다. 33년간 지상에서 사시던 그 예수와 부활·승천하신 예수는 같은 예수로 바울이 그 예수를 만났기 때문에 바울의 사도권은 인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Machen은 바울의 종교(신앙)와 신학은 분리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예수가 "나를 사랑하시고 … 나를 위해 죽으셨다"는 것은 단순한 신학적 사변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종교였고 산 신앙이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바울에게 종교는 신학을 떠나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신학도 종교를 떠나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바울에게 기독교는 생활인 동시에 교리다. 논리적으로는 교리가 앞선다. 생활은 교리의 표현이지만 교리는 생활의 표현은 아니다. 바울 안에 나타나 있는 신학은 기독교 체험의 산물은 아니다. 오히려 기독교 체험이 그것으로 산출되는 바 모든 사실의 제시이다.

예수가 하나님의 부성의 단순한 계시자에 불과하다면 바울은 예수의 참제자는 아니었다. 예수가 인간의 죄를 지고 죽기 위해 하늘에서 내려온 속죄주인 이상 바울은 예수의 참 추종자가 된다.

Machen의 가장 큰 공헌은 종교사학파에 대한 비판이다. 기독교가 헬라주의, 유대주의, 이교주의의 영향을 받았고 거기서 파생되어 왔다는 종교 사학파의 주장에 쐐기를 박은 것이다. 우선 바울이 유대적 환경의 영향을 받아 기독교를 창설했다고 주장한 W. Wrede의 이론에 정면 도전을 한 것이다. Wrede의 가설은 바울의 구원론 보다 그리스도론을 설명한 것이다. 기독교 이전의 유대 묵시문학적 메시야 사상을 바울이 다메섹에서 만난 그리스도와 일치시키려는 주장이다. 그러나 바울의 기독론은 시종일관 나사렛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이 Machen의 주장이다. 그러나 그 예수는 구약에 예언된 인자로 본다. 갈릴리 나사렛 예수가 영광을 받으실 구원주라는 것이 바울 사상임을 Machen은 갈파한다.

바울 종교가 이처럼 기독교 이전의 유대교의 메시야 교리에서 온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분명해지자 사람들은 바울 종교의 기원을 헬레니즘 시대의 혼합적 이교 종교에서 찾으려 했다. 특히 메시야의 죽음과 부활을 이교 신화와 결합시켜 해석하려는 이들이 있었다. Machen은 이 같은 주장을 하는 Bruckner를 비판한다. Gnosticism을 비롯한 헬라적 동방종교에 관한 제반 이론들은 Machen에 의하면 바울 이후 시대에 속하는 것으로 바울 종교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배격한다. 또한 헬라적 용어를 바울이 사용했다해서 반드시 바울이 헬라사상의 영향을 받았다는 증거로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Machen은 예수의 주 되심을 바울이 강조한 것을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그의 바울 종교의 기원 마지막 장(8장)을 '예수의 구주성'으로 잡고 채우고 있다. 여기서는 W. Bousset의 주 그리스도 사상에 도전을 한다.

Bousset에 의하면 ?????? 칭호는 일찍이 헬레니스틱 영향과 환경하에서 사용되고 있었던 개념을 신약의 저자들이 취해온 것이라 한다. Bousset는 ①예수의 생애 동안 예수는 ??????칭호를 사용치 않았고 예루살렘 모 교회에서는 그 같은 칭호는 사용된바 없다는 것이다. ② 바울은 ??????를 ??????개념과 동일하게 사용하면서 일반적인 주인·소유주하는 뜻으로도 사용했다 한다.

Machen은 G. Vos의 입장에 서서 ① ??????칭호가 수리아 나 애굽 이방종교나 밀의 종교 또는 노스틱주의에서 예배 대상과 동일시되었다는 이론은 증거가 없다는 것과 ② ??????와 ??????를 동일시한 점을 비판하고 ③ 로마 황제에게 붙여진 ??????가 신약의 개념과 일치한다는 주장을 배격했다.

이처럼 Machen은 바울 신학에는 헬레니즘이나 유대교 또는 동방 밀의 종교의 영향은 없으며 브레데가 생각한 것처럼 유대 묵시 문학적 메시야 개념에서 찾아서도 안된다는 것이다. 묵시 문학적 메시야는 예배의 대상이 아니고 사랑을 받아 마땅한 인격은 아니기 때문이라 한다.

바울의 예수에 대한 관계는 사랑의 관계이고 사랑은 인격 대 인격사이에 존재한다. "그는 나를 사랑하고, 나를 위해서 자기를 주셨다"는 여기에 바울 종교의 근거가 있다는 것이다.


Ⅲ. Machen 신학에 대한 평가


"기독교의 창시자는 누구인가? 바울인가 예수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서 Machen은 바울을 통해 접근할 수는 있으나 예수가 기독교의 창시자임을 분명히 한다. 그리고 바울의 종교와 동방의 제 종교와의 차이는 아주 명백하다고 주장한다. 뿐만 아니라 유대교와의 고리도 완전히 끊어 놓았다. 그리하여 종교사학파의 도전에 정면 선전 포고를 한 것이다.

바울 종교가 무엇인지에 대한 대답도 분명하게 한다. 한 마디로 구원의 종교라는 것이다. 그것은 언제나 진리였던 사실 뒤에 서지 않고 최근 일어난 사건 위에 세워졌다고 한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세계에 대한 관계와의 다른 관념이 아니고 하나님이 하신 하나의 행위 위에 세워졌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부성이라는 영원한 진리 위가 아니고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해 제공한 구원을 받아들이는 자의 아버지가 되는 사실 위에다 세우셨다고 본다. Machen은 바울 종교는 철저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사실 위에 기초를 두었다고 한다. 예수는 바울에게 있어서 실제적으로는 계시자가 아니라 구주였다.

이 같은 Machen의 기독론은 당시 신학자나 역사 비평주의자들의 눈에는 이상하게 보였다. 얼마 전까지 살아 있어 굴욕의 죽음을 당한 하나의 인간 예수를 바울이 신격화한 것으로 밖에 생각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는 바울에게 단순한 사제관계가 아니라 언제나 종교적 신앙의 대상이었다.

동양의 군주나 황제의 신격화는 예수에 대한 바울의 태도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군주가 주가 되는 것은 다른 신들도 주가 되는 것을 인정할 수 있지만 예수가 주가되는 것은 절대적이고 배타적인 것이다. 바울에게 있어서는 유일의 주만 있었다.

바울의 예수 이해는 초자연주의적이었다. 예수는 진실로 환상적 존재라는 것이다. 따라서 바울은 예수를 신격화 한 것이 아니라 참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지한 것이라 한다. 따라서 Machen은 바울 이해에 대한 자연주의적 해석 방법을 배제한다.

또한 Machen은 바울 연구의 자료로 논쟁이 있는 문제를 인식하면서도 비평주의 입장을 배격한다. 튜빙겐 학파에서 제기한 사도행전의 진정성과 비평학자들의 목회서신에 관한 이론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처리한다. 성경을 문학작품 또는 전승된 얘기책 정도로 보고 연구하려는 당대 신학풍토에 복음주의적 방어벽으로 Machen은 우뚝 섯던 것이다.

그를 편협한 근본주의자라고 몰아 부치는 이들도 있으나 Machen은 그의 동료 교수였던 코넬리우스 반틸의 주저인 Defence of Faith와 같이, 기독교 신앙을 방어한 가장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 중 하나였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 이종윤 목사

출처: http://gumsaram.com/bbs/view.php?id=sinhak&page=2&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106&PHPSESSID=ece419f37135398e72bbf6537b770c3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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