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첸과 한국장로교회
장차남 목사
메이첸(J.Gresham Machen)은 한국장로교회에 널리 알려졌고 영향을 크게 미친 미국의 신학자이다. 그에 대한 평가는 보수냐 진보냐에 따라 긍정과 부정으로 갈린다. 그가 프린스톤 신학교에 재직할 때 메이첸 지지파와 반대파로 나뉘어졌던 경우처럼 말이다.
메이첸이 한국장로교회와 깊은 관련을 가졌음은 1950년대에 분열된 합동, 통합, 기장, 고려파 장로교단의 상징적 인물이랄 수 있는 박형룡, 한경직, 김재준, 박윤선 등이 모두 메이첸의 제자라는 사실이다.
먼저, 예장총회 신학교인 〈총신〉을 상징하는 박형룡은‘한국의 메이첸’이라고 칭할 만큼 양자를 한 묶음으로 생각한다.
솔타우(소열도 선교사)는 메이첸에게 들은 말이라면서, 박형룡은 그 때까지 그의 밑에서 공부한 동양인들 가운데서 가장 명석한 학생이었으며 박형룡의 학업자질에 대해 매우 기쁘게 생각했다는 것이다. 박형룡은 옛 프린스톤의 신학적 정통성을 메이첸이 승계한다고 여겼기에 그가 총회표준성경주석 편집장이 되었을 때 이 책에 들어갈 논문을 메이첸에게 부탁한바 있다.
또 그의 제자 박윤선이 미국으로 유학가려 할 때에도 자기가 졸업한 프린스톤 대신 신설하여 메이첸이 자리한 웨스트민스터에 추천하였으며 스스로를 메이첸이 그랬던 것처럼 근본주의적 개혁주의자라고 꺼리지 않고 표현하였다.
다음, 예장 통합측 총회 신학교인 〈장신〉을 상징하는 한경직은 ‘나의 교우 반세기’(신동아 1974.3)란 글에서,
“당시 프린스톤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면서 잊혀지지 않는 스승을 적어도 두사람을 꼽을 수 있다. 한 분은 메이첸 박사로 그 분으로부터 희랍어와 신약해석학을 배웠다. 그 당시 50세를 넘어선 메이첸 박사는 말 그대로 학문과 결혼한 사람이었다. 그는 독신으로 살며 그저 연구생활에만 몰두했고 우리들을 철저히 가르쳤다. 모범학자인 그 분으로부터 나는 성경을 공부하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 학문적인 견지에서 나는 너무도 큰 부채를 졌다고 생각한다. 그의 신학적 입장은 내가 보기에는 너무도 극단의 보수적 요소를 벗어나지 못한 느낌도 없지 않았으나 한 성실한 학자로서 스승으로 존경해 마지않았다. 그리고 메이첸 박사로부터 언제나 우수한 성적을 받게 되어 그 기쁨 또한 작은 것이 아니었다. 또 한 분의 명교수는 교회사를 강의하는 레쳐 박사였다.”라고 했다.
그 다음, 한신의 기장측 교단을 상징하는 김재준은 프린스톤 유학 시절을 회고하면서,
“나는 주로 메이첸의 강의를 택했다. 그는 근본주의 신학의 투사라는 의미에서 인기가 있었고 강의도 무던히 명석했다. 나는‘아오야마’에서 신신학 일변도로 지냈기에 여기서는 보수신학계열을 주로 택했다. 메이첸의 저서는 다 읽었다. 그의 강의‘바울 종교의 기원’,‘처녀탄생’ 등도 들었다. 그리고 학생 그룹도 있어서 여기 저기 끼어 봤다. 알고 보니 그것이 메이첸 지지파와 반대파로 갈라진 파쟁이었기에 나는 아무데도 참여하지 않기로 했다. 메이첸 박사는 신약전공이고 희랍어 교본도 손수 쓰신 분이다.…한국의 박형룡 교수가 그이를 그대로 본 뜬 제자셨단다. 박형룡씨는 내가 프린스톤 가기 전에 졸업하고 귀국했기에 나하고는 학우로서의 친교가 없다” 라고 했다.
끝으로, 예장고신측을 상징하는 신학자 박윤선은 웨스트민스터 유학시절을 되살리며
“나는 주로 메이첸 박사의 지도를 받았고 그의 강의를 듣게 되었다. 그는 위대한 신학자이면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위대한 신앙가였다. 그는 평생 결혼하지 않고 불철주야 하나님 말씀연구에 집중하면서 살았다. 그는 모든 신학생들을 자기의 친자식과 같이 여기고 신앙적으로 지도했으며 언제나 확신을 지니고 살았던 사람이다. 특별히 그가 교수하는 장면을 생각하면 깊이 있는 연구자이면서도 확신에서 나오는 열심은 그로 하여금 고요히 앉아서 가르치도록 만들지 않았다.…나는 그의 문하에서 신약학을 전공했는데 특별히 주경신학을 배우는 도중에 그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고 했다.
이상의 경우에서 보듯이 메이첸은 훌륭한 학자였으며 매우 성실한 분이었으되 신학적 입장엔 양보가 없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메이첸의 신학과 신앙에 대한 박형룡, 한경직, 김재준, 박윤선의 시각과 입장 차이가 그들이 대표하는 교단 입장과도 맥이 통하는 면이 있지 않을까 싶다. 물론 후대의 사람들은 그를 잘 알지 못하면서 고정관념과 사시로 잘못 평가한 점도 많다고 사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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