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렇지 아니하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그를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죽임을 면하게 하시니라" 창4:15
가인을 생각할 때 참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이 있어요
<가인의 이마에 표> 입니다!
가인이 '사람들이 나를 죽일겁니다' 그랬더니요
사람들이 죽이지 못하도록 내가 표를 주마
그리고 뜻밖에 하나님이 가인을 지켜주십니다
왜 하나님은 범죄한 가인을
표까지 이마에 주셔서 보호하셨을까요?
그것은 여러분 가인을 보호하려 하심이 아닙니다
가인을 함부로 심판하고,
가인에게 함부로 복수하고,
하려다가 실수하고 하는,
많은 사람들을 보호하려고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에는 "원수 갚지 말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복수하지 말라" 왜 그랬을까요?
원수 갚고 복수할 능력이 우리에게는 없기 때문입니다
심판의 가장 중요한 능력은 '공정함'입니다
우리는 공정함의 능력이 없습니다
'베니스의 상인'이라는 소설이 있잖아요
재판관이 명판례를 읽지 않습니까?
"도려내라 그러데 정확하게 살 1파운드만, 피도 흘리지 말고" 하며 못을 박습니다
그는 공정한 심판을 했지만, 우리는 그럴만한 능력을 갖기가 쉽지 않습니다.
여러분 로미오와 줄리엣 이야기가 있지 않습니까?
두 가문이 철천지 원수였더라고요
그런데 여러분 혹 아세요?
누가 먼저 잘못 했는지요?
로미오의 가정이 먼저 잘못 했을까요?
아니면 줄리엣의 가정이?
그것은 아무도 모르지요
누군가 먼저 잘못한 사람이 있었을 것입니다
잘못을 당하니까 화가 나서 복수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보니까 복수가 공정하지 않습니다
이 보복의 악순환이 왔다 갔다, 갔다 왔다 하니까
점점 커지고 나중에 철천지 원수가 되어서 불행의 씨앗이 된것입니다
"공정한 심판은 하나님만이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고백 중 하나는
"저리로서 죽은자와 산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하나님은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공정하신 심판은 하나님만 하십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임해야만
어느 사람도 억울하지 않게,
지나치거나 과하지 않게 하시므로
원수 갚는 것은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그리고 심판하시는 공정하신 하나님을 믿으면
억울할 것도 없습니다
"과하게 보복하고자 하는 죄가 갑자기 내게 옵니다"
원수 갚는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가인의 이마에 표을 주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 살다보면 가장 힘든게 뭡니까?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입니다
누가 나를 표적으로 삼아서 괴롭히면..
그런 사람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것.. 정말 힘듭니다
그런데 누구에게나 이런 사람이 있을 수있습니다
자기를 끊임 없이 괴롭히는 사람!
그래서 함께 지내기 힘든 사람이 있고 심지어 원수도 있습니다
가만 두고 싶지 않아요
응징해 주고 싶을 사람이 있습니다
저에게도 있었습니다
당연히 있지요
정말 힘든 사람이 있어서
제가 어느날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저런 사람도 솔직히 사랑하실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나는 하나님이 '나도 아니다, 나도 그런 사람은 제껴 놓았다'
그러실 줄 알았습니다
제 편을 들어주실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1초도 안 걸리데요
하나님이 이런 내적 감동을 주셨습니다
'그럼 내가 그런 사람도 사랑하지!'
그 때 문득 십자가가 뜬금없이 생각이 났습니다
'그러니까 십자가까지 졌지!'
그러니까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신 것을 보면
'저 사람도 하나님이 사랑하신 것은 틀림없지'
그랬더니 요한 복음의 말씀이 생각났어요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내 원수)을 내가 미워한다'는 것은
제게 좋은게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다음 말이 가장 멋있습니다
'그 사람 때문에 마음 상하는 너는, 좀 더 나은 사람이냐?'
그 내적 음성에 제가 숨이 턱 멎었습니다.
일견 보기에는, 제가 그보다 좀 나아보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기준으로 보니까
그나 나나 '도진 개진' (비슷한 수준) 이었습니다
그와 비교해서 내가 결코 더 의롭다고 할 수 없었습니다
십자가를 통해서 그를 보니
그도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사람이고
십자가를 통해서 나를 보니
나도 그와 똑같은 죄인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원수를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을까요?
제가 과거에 교회에서 어느 장로님과 심하게 다퉜던 적이 있었습니다
아주 심하게 다퉜습니다
흥분이 가라 않지 않아서 도저히 설교를 준비할 수 없었습니다
제가 그 때 고등부 설교할 때인데
설교 시간이 다가오는데
주일 새벽까지 설교 준비가 안 돼서
피가 마르는 고통이 있었습니다
힘들어서 잠시 침대에 와서 쉬고 있는데
그 때 제 마음속에서
제가 좋아하는 찬송이 다가왔습니다
'나의 갈 길 다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어려운 일 당할때도 족한 은혜주시네'
그런 찬송인데 찬송이 그렇게 은혜가 됐어요
속으로 눈물을 철~철 흘리면서
찬송을 부르고, 부르고,
또 부르고, 또 부르고 했습니다
영적인 체험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순간 체험을 했습니다
에스겔서에 보면 "예루살렘 성에서 물이 흘러 나와
물이 흘러가는 곳마다 죽은 것들이 살아 난다"
하는 말씀이 있지 않습니까?
내가 발목에 찰 수 있지 않습니까?
그 물이 무릎에 차고, 허리에 차고, 가슴에 차고,
드디어 헤엄칠 만한 물이 되었을 때
아! 모든 것이 살아날 수 있었습니다
그때 장로님이 이해 됐습니다
'장로님 입장에서는 그랬겠지!'
그것은 다 교회에서 일어나는 일이지
그러면서 제 마음이 서서히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은혜가 꼭대기에 차니까
그를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이
북받치기 시작했습니다"
설교 준비는, 은혜가 넘치니까 금방 잘 되었습니다
설교 마치고 장로님을 찾았습니다
제가 꽉 안아 드렸습니다
장로님이 당황하셨어요
이제 내 진심을 아니까 장로님이 저를 꽉 안아 주셨어요
꼭 다 갚아주고 다 응징해야만 풀리는 것 아니돼요
(원수를) 안으니까 풀리돼요
그게 말이 쉽지
어제 밤새도록 잠 못자고 가슴에 응어리진 그런 사람을
어떻게 안을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은혜에 있었습니다
"은혜를 받으니까 사랑할 수 있었고
은혜를 받으니까 용서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다 자기 빚진 달란트 있지 않습니까?
1만 달란트 빚진 자를 탕감해 주셨는데
1백 데나리온 빚진 자를 용서해 주지 않으니까
하나님이 노하시지 않습니까?
네 정말 내가 만달란트 탕감 받은것에 대한
은혜를 아는 자라면
원수들도, 다 이해 해주고. 덮어주고,
용서하고, 사랑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결국은 은혜의 문제입니다"
우리를 괴롭히는, 마음을 아프게 하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그래서 내가 홧병까지도 들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을 용서하며 사랑하면서 살려면
은혜가 내게 차고 넘쳐야 합니다.
1만 달란트 빚을 탕감받은 은혜!
세상이 살기 어려운 것은 다른 문제가 아닙니다.
사실은 사랑이 없어서, 용서가 없어서,
미움, 증오, 시기, 다툼 때문에 참 살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삶이 고통스럽습니다
그런데 그 고통이, 바로 (은혜가 고갈된) 나의 문제일 수 있습니다.
그의 문제가 아니라요!
"하나님이 가인의 이마에 표를 주신 것은"
그건 "가인을 보호하시기 위함"도 있겠지만
그보다 더욱 "저와 여러분을 보호하시기 위해서"
라고 말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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