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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른이해 〓/조직신학I(서철원교수)

종말에대해 바른이해

by 【고동엽】 2011. 5.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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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말에대해  바른이해(서철원) 
한국 교회는 복음을 받아드릴 때 종말론적 교회로 출발하였다. 국가 민족적 상황이 암담하여 천년기의 소망으로 백성들을 위로하고 소망을 가질 수 있었으므로 천년기를 열렬히 수납하였다. 교회 발생의 초기부터서 한국 교회는 요한계시록을 강해하며 천년기에 대한 소망과 기대를 크게 진작시켰다.

 

 

따라서 한국 교회는 초기부터서 내세의 소망과 그 복된 상태를 그리고 어서 그런 천년왕국이 이르러서 영광과 존귀에 이르기를 열렬히 소망하며 곧 주의 재림이 이루어지기를 고대하였다. 그러다가 계시록 강해가 1970년대 중반에 공식적으로 한국 교회에서 그치므로 천년왕국에 대한 열의와 대망이 그렇게 높지 않게 되었다.


19세기 미국 교회의 종말론은 천년기 였다.

또 당시 한국에 온 미국 선교사들은 미국 교회에서 진행된 1860년 이후에 진행된 부흥운동의 영향으로 천년기의 강조를 많이 받은 세대에 속한 그리스도인들이었다. 1830년대부터서 따알비의 세대론적 천년기가 미국에 널리 퍼지되 부흥운동과 함께 퍼지게 되었으며 우리의 빠른 복음 전파가 주의 재림을 앞당길 수 있다고 믿고 대부흥사 무디도 천년왕국을 그의 전도에 그대로 수납하였다.

 

이렇게 미국 교회의 종말론이 세대론적 천년기가 지배하게 될 때 선교사들이 왔으므로 천년기가 바른 종말도식으로 한국 교회에 전달되었다. 미국 교회가 선교교회이므로 한국 교회는 선교사들이 전하는 천년기 가르침을 정통진리로 받았다.
 
로레인 바크너가 말한대로 신학교에서 천년기를 가르치면 백성들은 다 세대론이 된다는 말은 한국 교회에서는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는 말이 되었다. 천년기가 한국 교회의 신앙고백에 교리로 채택되지 안했지만 신학교에서 계속적으로 천년기를 가르치므로 한국 교회는 다 세대론적 천년왕국 사상으로 가득하게 되었다.


천년왕국 사상은 1, 2 세기 고대 교회에 성하였다.

천년왕국 사상은 미국과 한국 교회에 처음 있은 사상이 아니고 처음 고대 교회에 성하였다. 변증가들 특히 순교자 유스티노스와 타이아노스, 또 최초의 기독교 신학자로 인정된 에이레나이오스와 텔툴리아누스까지도 천년기를 받아드리고 열심히 전하였다.

 

그리하여 주의 재림으로 예루살렘에 수도를 정하고 천년왕국이 세워지면 넘치는 풍요와 생산이 있으며 질병이 없어지고 사람들의 수명이 크게 연장되어 죽음이 거의 없게 된다. 그리고 이방인들은 예루살렘 밖에서 밭을 경작하여 넘치는 생산을 이루어서 그리스도인들을 봉사하는 것으로 믿었다. 그리고 예루살렘에 성전이 세워지고 구약에서 제사하던 피제사가 복귀된다고 보았다.


교회가 천년왕국을 배척하다.

이렇게 천년왕국에 대한 기대가 컸어도 교회는 천년기를 배척하기 시작하였다. 몬타누스의 부흥 운동은 2세기 중엽에 브리기아에 주님이 재림하셔서 천년왕국을 세운다고 열렬히 전파하였지만 그 예언은 성취되지 안했다. 이 때부터 교회는 천년왕국을 배척하는 것을 강화하였다.

 

이 천년왕국 배척으로 요한 계시록도 성경으로 받기를 서방 교회는 거부하였다. 계 20장에 천년이 6번이나 언급되어 있었기 때문에 오래도록 정경으로 받지 않으려고 하였고 오히려 이단들이 자기들의 욕구를 달성하기 위해서 기록한 것으로 여겼다. 핍박과 어려움 속에서 천년왕국을 기다림이 많았지만 교회는 천년왕국을 계속하여 비판하고 배격하였다.

 

그러다가 313년 최초의 그리스도인 황제 콘스탄틴 대제가 로마 제국의 통일 황제가 되므로 공식적으로 천년왕국 사상을 단절하였고 381년 제2 차 에큐메니칼 공회의인 콘스탄티노폴리스 공회의에서 그의 나라는 끝이 없다고 확정하므로 그리스도께서 마지막에 나라를 아버지께서 바치므로 그의 통치가 종국에 이른다는 것을 거부하였다.

 

이로써 그리스도의 왕권이 천년에 국한된다는 천년기를 교리적으로 배척하게 되었다. 천년기의 배척은 아우구스티누스가 가장 강력하게 추진하여 교회에서 천년기를 완전히 추방할 수 있게 되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데 있지 않고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는 말씀에 근거하여 천년기를 배척할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이므로 천년에 국한할 수 없다는 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에 의거해서 천년기를 열렬히 배격하였다.

 

그리하여 431년 3차 에큐메니칼 공회의에서 천년기를 이단으로 공식적으로 정죄하였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 공회의에 참석하지 못하고 바로 전해에 죽었지만 그의 가르침에 의해 펠라기우스 주의와 천년왕국 사상이 431 공회의에서 배척되었다.


이후로는 천년기 사상은 교회에서는 떠나고 소수의 분파들에게 남아있는 정도였다. 그후 16세기 종교개혁 때 이 천년기 사상이 다시 살아나서 종교개혁 과격파들에 의해 수납되어 뮌스터에서는 이들이 주교를 쫓아내고 자기들이 천년왕국을 세운다고 어떤 사람을 왕으로 추대하고 밤마다 횃불을 켜고 모여서 나체로 축제를 즐기므로 주교의 군대에 의해 다시 추방당하고 무섭게 핍박받았다.
 
로마교회뿐만 아니라 종교개혁도 과격파 종교개혁을 반대하였다. 이들은 특히 재세례파에 의해서 주도되었다. 그러므로 이들은 로마교회와 종교개혁으로부터 반대와 저항을 많이 받게 되었다.


그러다가 17세기 이 천년기 사상이 영국에서 일어난 내적 조명을 강조하는 퀘이커파들에 전달되었다. 그러다가 19세기 초엽 플리머쓰 형제단에 이 주장이 전달되어 모든 성경 해석을 이 천년기에 따라 해석하는 새로운 천년기론 곧 세대론적 천년기가 생겨났고 그 파의 대표인 죤 딸비에 의해 미국에 여러 차례 전파되어 지금 미국 복음주의자들의 종말론이 되었다.

교회의 종말도식

고대 교회에서 천년기 사상이 배척된 이래 교회들이 분열되었어도 종말도식에 관하여는 다 천년기를 배척하고 성경적인 종말도식을 채택하였다. 희랍 정교회 로마교회 루터교회 개혁교회가 다 천년기를 배격하고 주의 재림, 보편 부활, 심판을 바른 종말도식으로 삼게 되었다.

 

루터교회는 천년왕국 사상을 유대주의자들의 꿈으로 정죄하였고 칼빈은 길게 논할 가치도 없는 주제로 여겼다. 그러므로 모든 종교개혁 교회들은 다 천년기를 빼고 재림과 부활 심판의 도식을 취하였다. 우리 한국 장로교회도 칼빈의 가르침을 잘 반영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를 우리의 교리로 삼았기 때문에 천년기가 우리의 신앙고백에 없다.

 

다른 복음주의 교회들도 다 종말도식에 있어서는 동일하나 미국의 성결부흥운동에서 나온 교회들은 긴박한 재림을 기본 교리의 하나로 주장하고 강조하나 교리로 공식 채택되었다고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19세기 프린스톤의 신학자인 챨스 핫지는 초림때 사람들의 기대가 전혀 성취되지 안해서 즉 정치적인 메시야 왕국이 이루어지지 않으므로 실망했던 것처럼 재림 때도 마찬가지로 실망할 것이라고 제시하였다. 즉 천년왕국이 수립되지 않으므로 실망할 것을 예견하였다. 공교회의 종말 도식은 그러므로 주의 재림 부할과 심판으로 구성되어있다.


재림 징후문제

통상 주의 재림을 알리는 여러가지 징후들이 제시되어 왔다. 그 중에 가장 강력한 재림 징후로 적그리스도의 출현이었다. 그런 대표가 2차 세계 대전 중에 나타난 히틀러와 무쏘리니 였다. 모든 면에서 그들은 가장 적합한 적그리스도였다. 그러나 전쟁이 지나고 나서 이들이 다 죽고 나서인지 이들을 적그리스도로 보는 경우는 다 없어졌다.

 

그 후에도 여러 인물들을 적그리스도의 후보로 찾았지만 다 실패하였다. 고대 신학자인 이레네이우스는 권하기를 역사상 적그리스도로 지목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실재로 나타나기 까지는 어떤 사람을 적그리스도로 지목하는 것을 조심해야 한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앞으로 어떤 사람이 적그리스도로 출현할지 모르지만 함부로 어떤 사람을 적그리스도로 지목하는 것은 조심해야 한다.

 

또 지진과 기근 등도 주의 재림 직전의 징후로 언급되어 왔다. 최근에는 지진이 더 빈번하게 발생하여 지진을 그런 징후로 말할 수 있을만 하다. 그러나 큰 지진은 지금 말고도 여러 시대마다 있었다. 그러므로 지진의 빈번한 발생으로 지금 주님이 문앞에 곧 오시는 것으로 말하기 힘들다. 그외에 전쟁을 주님 재림 직전의 징후로 여겨왔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와서 큰 전쟁은 두번이나 있었고 국지 전쟁들도 빈번하였다. 특히 식민지들에서 독립을 위해 투쟁이 끊임없이 계속되었다.

 

지금도 국지 전쟁이 완전히 끝이지 않고 있다. 인류 역사는 전쟁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서구 국가들은 19세기부터 전쟁을 끊임없이 진행하여 영토확장을 추구하였다. 19세기는 20세기처럼 큰 전쟁은 아니었어도 전쟁의 세기라고 할만 하였다.
 
또 2차 대전 중에는 많은 사람들이 주님이 곧 오실 것을 믿었고 한국에서도 6.25 동란을 기하여 주님의 재림이 곧 올 것으로 믿는 믿음이 강하였으나 지금은 경제적인 위기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재림과 긴박한 종말에 대한 기대가 별로 없다.

 

그러므로 전쟁으로도 주님 재림 직전 상태로 예측할 수 없다. 유대인들의 대대적인 회심을 주님 재림 직전의 표로 말하지만 언제 그런 대대적인 회심이 유대인들에게 일어날지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팔레스타인에 사는 유대인들처럼 철저히 예수 믿음을 외면한 사람들도 없다. 아직도 구라파에 남아있는 유대인들 중에 소수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었으나 대부분은 가장 반기독교적이고 예수를 가장 조롱하는 자들이다.

그러므로 주님의 재림의 날을 단정적으로 확정적으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주님이 오시는 것은 밤에 도적이 드는 것처럼 오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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