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인들이 본문을 정하는 교회"
최재호 기자 작성
“큰 교회에서 1부, 2부, 3부예배를 드리는 것은 하나됨을 확인하는 성례의 의미가 실현될 수 없기에 옳지 않다. 각종 기념예배는 폐지되어야 한다. 헌신예배를 없애야 한다. 찬양대 지휘자나 반주자에게 사례를 지급해선 안 된다. 목사는 성경에 명시된 직분 이외의 기능은 장로와 집사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교회의 회(會) 가운데 가장 권위있는 모임은 공동의회이며, 다음이 제직회이고, 가장 낮은 권위를 가진 회가 당회이다. 목사는 다른 성도들보다 특별히 거룩한 자가 아니다. 설교 후 사례를 주고받는 관행은 옳지 않다. 각종 헌금 종류를 폐지해야 한다. 연보는 무기명으로 해야 하며, 교회는 각 개인의 헌금 내역을 몰라야 한다. 기독교는 타종교와 대화할 수 없다.”([한국교회, 무엇을 개혁할 것인가](이광호 목사), 1998, 예영커뮤니케이션)
대구에 있는 실로암교회(예장고신)는 유별난 교회요 담임목사 이광호 목사는 별스런 목사다. 캐나다한인교회의 후원으로 개척된 지 15년이 다 되어 가지만, 교인수 7~80여 명밖에 안 되는 작은 교회란 것도 이채롭다. 성공주의, 물량주의에 철저하게 길들여진 한국교회적 시각으로 본다면 ‘하나님의 축복을 받지 못한’ 한심한 교회이다.
교회 성장이라는 목표를 위해 특별한 힘을 쓰지 않기도 하지만 교회의 덩치를 키워야 한다는 절박감도 없다. 단지 실로암교회를 포함한 모든 개체교회는, 하나님의 보편교회에 속하므로 (보편)교회가 교회되게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면 되는 것이지 개체교회가 모든 것을 다하려고 생각하는 것은 개교회주의요 잘못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성경을 성경대로 전해 믿게 하고 세상의 풍조에 휩쓸리지 않도록 애쓸 따름이다.
교회 위치도 안 되기 딱 좋다. 촌구석으로 들어가 약도 들고 찾아도 찾기 힘든 곳에 위치해 있다. 그 흔한 교회 안내 표지판 하나 없고 시골길을 꼬불꼬불 한참 들어가 과수원 사이로 교회가 있다.
하지만 이곳엔 분명 이곳 나름의 독특함이 있다. 가을이 되면 교인들은 교회 마당에 있는 과일나무에서 복숭아, 감, 포도를 따다가 옷에 슥 문질러 닦아 먹는다. 형편이 되면 교회 앞마당에서 불을 피워 삼겹살도 굽는다. 그러다 이 목사가 예배실 앞에 매달린 종을 치면 함께 모여 예배를 드린다. 이 교회는 유아세례자 이상만 되면 모두 함께 예배를 드린다. 5살만 되어도 부모와 같이 앉아 예배를 드린다.
이곳의 주일학교 예배시간은 더 별나다. 앞줄에는 아이들이 앉고 뒷줄에는 그 아이들의 부모가 같이 앉아 예배를 드린다. 부모들의 참석은 이곳에선 의무사항이다. 그래야 그날 들은 설교 내용을 설명해 줄 수 있고 성경 읽어오기 등의 숙제를 점검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교회에서는 다른 교회들처럼 목사가 설교 본문을 임의로 결정하지 못한다. 지금은 에스더서를 강해 중이지만 이 책은 교인들의 요구로 선택된 본문이다. 책별로 강해설교를 하되 한 책의 설교가 다 되어 가면 교인들에게 다음 본문을 물어 결정하는 것이다.
독특한 방법으로 설교 본문을 정하는 이 목사는 동일 본문의 설교시 건전한 교회에서는 같은 내용의 설교가 행해져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다. 그는 “목사가 말씀을 짜깁기할 권한이 없다”고 말한다. 행해지는 설교를 들을 때 그 누구라도 말씀의 선포가 바르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하며, 설교자의 성향이나 의도에 따라 말씀에 대한 이해와 선포가 달라서는 안 된다는 것이 이 목사의 확신이다.
또 이곳 실로암교회에서는 예배 시간에 피아노나 오르간을 포함해 어떤 악기도 사용하지 않는다. 화려한 오케스트라 반주에 커다란 사운드의 찬양팀에 익숙한 한국교회에 육성으로만 드려지는 실로암교회의 예배는 낯설기만 하다.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하는 촌스러움이요 외골수란 비난에도 이 목사는 당당하다.
이광호 목사는 칼빈, 쯔빙글리 등 종교개혁자들이 음악에 대해 취했던 입장을 설명한다. “종교개혁자들은 악기를 사용하거나 4부 화음의 합창에 대해 단호한 입장을 견지했다. 칼빈은 4부 합창을 ‘사탄의 휘파람’이라고 비난했고 쯔빙글리는 교회 안의 피아노를 부쉈다. 그 이유는 화려한 음악이 예배의 핵심인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매력적으로 부각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이다.
아름다운 반주와 기교있는 합창에 마음을 빼앗기고 심지어 하나님의 말씀이 부수적인 것으로까지 받아들여지는 오늘날의 현실은 심히 우려된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성경말씀에만 집중하기 위해서 피아노 반주를 하지 않는다. 대신에 칼빈이 그랬던 것처럼 예배시간에 시편을 매주 한편씩 교독한다.”
이 같은 교회를 목회하는 이광호 목사의 목회관도 별나다. 그는 자신의 목회를 ‘생목회(生牧會)’라고 표현한다. 특별히 어떤 목표를 가지고 어떻게 하겠다는 것보다, 성도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목사의 역할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는 대심방이나 절기심방을 하지 않는다. 그저 기회가 되고 일이 있으면 교인들에게 ‘놀러간다’. 아니 100% 개방된 사택에서 교인들의 심방을 받는 경우가 더 많다.
“목회는 교인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만약 목회가 일이 되면 교인들을 이용하기 쉽다. 교인들을 목적을 이루기 위한 도구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는 것이 이 목사의 생각이다.
“한국교회가 연보를 강조하면서 교인들에게 믿음과 액수가 비례하는 것처럼 가르치고 있는 것도 명백한 잘못이다. 만약 우리 교회에서 한 가정이 경제적 파탄에 처한다면 우린 교회를 처분하자고 해서라도 그를 도와줄 것이다. 평균케 하는 삶의 관점에서 본다면 경제적 여유가 있는 성도에게 연보를 걷는다면 동시에 경제적으로 어려운 교인들에게는 연보 내지 말라고 하고 오히려 교회가 물질적인 도움을 줄 수도 있어야 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말이 나온 김에 이 목사는 헌금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다. 실로암 교인들은 모두 무명으로 헌금을 한다. 누가 얼마를 했는지는 담임목사나 재정부 집사를 통틀어 아무도 모른다. 십일조를 해도 본인 외에는 아무도 모른다. 이 일을 전담하는 재정부 집사도 무명의 헌금봉투를 번호를 붙여가며 얼마가 들어왔는지만 기록할 뿐이다.
한국교회에서 수십가지에 달하는 각종 명목의 감사헌금 봉투는 하나도 없고 각종 목적헌금도 없다. 이곳엔 그냥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만 있을 뿐이다. 그저 주일헌금 들어온 것에서 각종 재정을 집행할 뿐이다. 당연히 교회 재정이 얼마이며 어떻게 쓰여지는지 담임목사는 전혀 모른다.
당회가 없는 이곳에는 ‘집사회’가 있어 교회 살림과 교회의 사역에 관한 재정을 의논하고 집행할 뿐이다.
기자가 이곳을 취재하는 것에 대해서 이 목사는 불만이다. 이것이 당연한 것인데, 이것이 성경적 원리를 따른 교회인데 왜 정상적인 것을 비정상적인 것처럼 다루느냐는 것이다. 그저 “차 한잔하고 놀다 가라”고 말한다. 정상이 비정상으로 보이는 한국교회에서 실로암교회와 이광호 목사는 그래서 유별난 교회요 목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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