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트 클럽교회
오늘 날 한국교회의 위기는 복음의 원형이 실종되고 경영학적, 관료적, 귀족교회로 자리 잡고 목사는 CEO로 인식되고 있으며 장로, 권사, 집사들은 체면치례 명목상의 그리스도인으로 사회 인맥을 쌓기 위한 동호회 수준으로 전락하고 있는데 있습니다. 정치적, 사회적, 생태적 엔트로피가 증대되어 종말론적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면 복음 역시 영적 엔트로피의 증대로 복음의 원형이 무너져 인간의 죄성이 가득 찬 위장된 복음이 주님의 말씀인냥 거짓행세를 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짝퉁 복음이 활개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짝퉁 복음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증세는 목회성공, 야베스 기도, 일천번제, 부자되기, 등등의 아이템들이 우후죽순격으로 고안되어 교회안에 유통되고 있는 것이지요. 진짜는 팔리지 않기에 짝퉁을 만들어 바겐세일하고 있는 것이 한국교회 성장의 단면이기도 합니다. 짝퉁복음은 달콤하고, 보기 좋고, 포장이 잘되어 있어 영적 소비자들이 선호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런 영적 수요공급법칙에 따라 교회 안에서 진짜복음이 우선되기 보다는 짝퉁복음인 잘 먹고, 잘 사는, 부자가 되고, 병고치고, 가시적인 욕구의 만족 메뉴들이 성경의 구절로 합리화하면서 목사의 목회방침이 우선되고 세상적인 논리와 처세술이 교회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예배 또한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기 보다는 형식적이고 의전적인 예배로 한바탕 굿거리 마당극이나 쇼를 보는 듯한 즐기기 위한 예배로 전락하면서 나이트클럽의 사교적 각종 프로그램이 신앙의 옷을 입은 채 진행되고 있습니다.
육성으로 해도 들리는 조그만 교회도 유행을 타서 음향시설이 다 되어 있습니다. 과다한 음향시설과 조명시설은 눈을 어둡게 하고 청각에도 영향을 끼치게 되고 더군다나 밀집된 채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집회를 하게 되면 산소농도가 떨어질 뿐만 아니라 미세먼지로 인해 폐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됨을 알아야 합니다. 목사들이 폐암에 많이 걸리는 원인 중에 속합니다. 음향기기와 영상기기의 발달로 예배는 마음으로 드리는 예배이기 보다는 음향기기와 컴퓨터와 영상 프로젝트가 제공해주는 청각적 시각적 재미와 흥미에 더 신경을 곤두세우로 기독교적인 연예오락의 순서로 인식하며 빠지고 있습니다.
신나는 빠른 템포의 음악과 감정을 자극하는 서정적인 분위기의 대중가요 같은 노래들은 우리 인간 스스로 감동되도록 만들어 강권하시는 성령님의 조용한 임재를 불가능하게 하고 있습니다. 이런 종교적 연예오락적인 예배의 풍토는 시대적 문화의 흐름으로 교회를 타락시키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복음은 문화의 옷을 입어야 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문화의 죄성에 매몰되어서도 안 되기 때문에 우리는 취사선택을 잘 하여야 합니다.
인간적이고 인기위주의 종교적 쇼는 종말론적 시대의 죄성의 악취가 들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진실한 목사이기 보다는 쇼 진행자로서의 목사, 정치 선동자로서의 목사, 개그맨으로서의 목사, 마술쇼를 하는 종교적 사기를 치는 목사, 사이비 교주를 흉내 내는 목사, 교회를 자신의 사적 성공무대로 삼으려는 목사들은 하느님의 진실 된 청지기로서의 종의 모습은 아니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명목상 하느님을 위해서 교회를 위해서라고 하지만 그 속내는 자신들의 육신적, 명예적, 목회성공의 야망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교묘히 이용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시대는 연예인들의 전성시대이고 그들은 이시대의 영웅적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청소년들의 우상이 바로 그들이기 때문에 그들은 인간, 사회, 교회, 복음, 형이상학적인 골치아픈 인문학적 지식은 내팽개치고 감각적이고 흥미진진한 말초적인 노래와 댄스에 그들의 인생을 걸만큼 심취되어 있습니다. 그들의 꿈은 인기 연예인이 되는 것입니다. 천기 즉 하느님의 사랑을 받기 보다는 인간의 사랑을 받는 것을 더 기뻐하는 것은 비단 청소년뿐만 아니라 목사도 그러합니다. 인기위주의 목회는 인간위주의 목회입니다.
이전에는 꿈나무인 아이들이 장래의 꿈이 장군 혹은 대통령이 되는 것이라면 지금은 인기 탈렌트와, 가수가 되는 것이 꿈으로 각인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공부는 하지 않아도 되지만 연예, 춤, 오락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마치 마약 중독자처럼 그들은 개그맨, 탈랜트, 가수등의 연예인이 주는 심리적 즐거움이라는 중독에 빠져 있습니다. 한시라도 그들의 정보가 차단되면 금단증세가 나타날 만큼 그들의 주위에는 연예 오락의 정보가 언제나 우선순위에 있습니다,
이러한 문화적 배경의 영향으로 웬만한 교회는 보컬 벤드의 악기를 구비하고 그것들을 이용해서 찬양하고 있습니다. 시대적 문화의 흐름이 그리하기 때문에 문화의 대세를 거스리기는 어렵습니다. 물론 교회가 문화의 흐름을 잘 이용해야 하는 지혜를 가지고 있다면 괜찮다고 보는 것이 필자의 견해입니다. 교회가 문화를 외면하면 사회로부터 고립되는 폐쇄적인 집단으로 인식되기 때문에 취사선택의 지혜를 발휘하여야 합니다. 한 가지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은 문화를 지배하더라도 문화에 지배당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최종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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