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멘'은 많은데 예수가 없는 한국교회 [주장] 한기총, MBC 뉴스후의 보도에 귀를 기울이라 지난주 금요일(15일) MBC-TV <100분 토론> <뉴스 후>에서 개신교와 관련된 프로그램을 잇달아 내자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에서는 주요일간지에 'MBC <뉴스 후>는 한국교회를 폄훼하지 말라!'는 광고를 실었다.
광고내용에는 '재탕 삼탕'하며 한국교회를 의도적으로 깎아내리려고 한다고 주장하면서 자신들의 요구가 관철되지 않으면 다양한 행동을 실행에 옮기겠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6일(토) 밤 <뉴스 후>에서는 대형교회의 세습 문제에 대해서 방송을 했다. 돌들이 소리치는 시대 예수께서 십자가의 죽음을 앞두고 예루살렘성전을 정화하기 위해 올라가실 때 하신 말씀이다. '저들이 소리치지 않으면 돌들이 소리칠 것이다!'
한국 대형교회의 세습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한기총에서 밝힌 대로 이미 이전에도 이와 유사한 내용이 방송되었다. 그런데, 그 이후 과연 대형교회의 세습문제는 다시금 재탕 삼탕하지 않아도 될만큼 깨끗졌는가? 왜 한국교회는 여전히 재탕삼탕하지 않으면 안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이어가고 있는가?
이에 대한 회개없이 대형교회의 여러가지 치부를 드러낸다고 해서 주요일간지에 마치 한기총이 한국교회의 대표라도 되는 듯이 '한국교회' 운운하며 광고를 할 수 있는가? 착각하지 마시라. 한기총은 한국교회 전체적인 입장을 대변할 수 있는 대변인이 아니다. 누가 그런 대표성을 부여하였는가? 보수적인 입장을 가진 목사들과 대형교회의 막대한 헌금에 힘입어 양적으로는 다른 연합체보다 클지 몰라도 당신들의 목소리가 한국교회의 목소리가 아니라는 점은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이제 더이상 정화능력을 잃어버린 한국의 대형교회를 향해서 내부적으로는 도저히 쓴소리가 나올 수 없으니 돌들이 소리치는 현상이 아닌가 돌아보고 회개할 일이지 '한국교회 폄훼' 운운하는 것은 오히려 한기총이 '한국교회를 폄훼'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대형교회 세습, 아무 문제 없다고? 내 귀가 어두워서 아직 듣지 못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작은 농어촌교회를 자식이나 친인척에게 세습시켜주었다는 이야기는 들은 바 없다.
대형교회 세습에 문제가 없다고 이야기하는 이들이 목회자를 청빙할 수조차 없는 어려운 교회에 자기의 자녀를 보내 목회를 하게 한다는 이야기도 들은 바가 없다. 정말 양심이 있는 목회자라면 자신의 자녀나 혹은 친인척 중에서 정말 능력있는 후임자가 있다고 하더라도 혹시라도 교인들 중에서 오해하고 시험에 들 수도 있으니, 그래서 '세습'이니 뭐니 이야기가 나올 수 있으니 다른 곳으로 임지를 정해줄 것이라고 본다.
목회자 청빙은 물론 목회자의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교회법의 절차에 따라서 진행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는 목회자의 의중이 많이 개입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있으며, 장로교의 경우 당회(담임목사와 시무장로의 회의 의결기구)에서 후임자를 추천할 경우 제직회의나 공동의회에서 대부분 받아들여진다는 점이다. 당회에서 결정된 내용이 제직회의나 공동의회에서 부결되는 경우는 당회원들에 대한 불신임과 동일하게 여겨지기에 교회분규가 생길 여지도 있어 당회의 결정은 신중하게 진행될 수밖에 없다. 무리수를 두는 경우 교회가 분규에 휩싸이게 되는 것이다.
분규에 휩싸이지 않는다 해도 대형교회의 목회자세습 문제는 동일 교단에 있는 수많은 목회자들의 기회를 빼앗는 일과 다르지 않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는 일이다. 정말 어려운 교회, 작은 교회, 농어촌교회, 사례비조차도 받기 힘든 교회를 자식에게 세습해야겠다고 한다면 귀감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대형교회 세습, 그것은 비난받아 마땅한 일이다. 교회가 그 목소리를 내지 않으니 '돌들이 소리친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가? 왜 문제를 알면서도 침묵하는 것일까? 대형교회들의 교계위치, 대형교회 목사들의 교계위치는 작은 교회와 소형교회 목사들의 위치와는 확연하게 다르다.
서글픈 현실이지만 교계정치의 힘을 얼만큼 가지는가는 교회의 크기와 비례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한기총이 이번 광고를 낸 맥락도 이런 점에서 비판하는 것이다. 아마 작은 교회들의 문제들에 대해서 이런 방송이 나갔어도 그들은 주요 일간지에 광고비를 뿌려댔을까? 교단마다 조금씩의 차이는 있지만 신학교를 졸업하면 부교역자를 거쳐 담임목회자로 청빙을 받거나 교회를 개척한다. 담임목회자로 청빙을 받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추천이 있어야 한다.
간혹 탁월한 목회를 해서 전격적으로 청빙을 받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교계의 어른들(?)의 추천을 받은 이들이 달랑 이력서 한 장 내는 것보다 훨씬 유리한 입장에 서는 것은 분명한 일이다. 그런데 교계의 어른들(?)은 주로 대형교회 목사들이다. 목사를 청빙하는 교회로서는 자기들의 교회도 부흥시키고 싶으니 작은 교회 목사들에게 추천을 구하지 않고, 대형교회 목사들에게 추천을 해달라고 부탁을 한다. 대형교회 목사들은 자기가 잘 알고 있는 목사나 부교역자들 중에서 추천해 주기 마련이고 자연히 인맥이 형성되는 것이다. 교단내의 정치세력화를 위해서 자기 사람을 대형교회에 심는 것만큼 좋은 일은 없으니 대형교회 목사들 중에서는 큰 교회에 자리만 나면 자기 사람을 심으려고 혈안된 이들도 있는 것이다. 이런 풍토에서 대형교회에 대해서 삿대질을 해댈 수 있는 용기를 가진 목회자가 얼마나 될까?
그런 경우가 있지만 대형교회 목회자들이 보기에는 대형교회 청빙을 받지 못하는 못난 목사의 한풀이 정도로밖에는 보이지 않을지도 모른다. 결국 눈밖에 나게 되고, 속된 말로 교계에서 찍히면 앞으로의 목회에 지장이 생길 수도 있다. 게다가 그런 문제의식도 없이 대형교회에만 목을 매는 젊은 목회자들도 많으니 과연 희망이 있을까 싶다. 현재의 목회자 청빙시스템을 바꾸지 않는 한 이 문제는 앞으로도 계속 한국교회의 발목을 잡게 될 것이다. 현재 한국교회의 문제는 목사와 교인들의 합작품 물론 이 문제는 양비론으로 몰아갈 문제는 아니다. 현재 한국교회의 문제는 목사와 교인들의 합작품이기 때문이다. '왜곡'이라는 말은 참 무서운 말이다. 그것이 종교라는 영역에 들어오면 더더욱 그렇다.
예수의 십자가 사건, 그를 죽인 사람도 십자가형을 당한 예수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였다는 사실을 우리는 상기할 필요가 있다. 예수를 죽인 사람들의 복잡한 속내는 오늘 날 기독교인들에게 부정적인 것으로 각인되었지만 산헤드린(예수의 십자가형을 확정한 당시 종교지도자들의 재판 의결기구)의 구성원들은 예수를 '신성모독죄'로 사형선고를 내린 것이요, 빌라도는 당시 로마제국의 식민지 총독으로서 정치적인 죽음으로 내몰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당시 십자가형은 정치범들에게 내려지던 형벌이었던 것이다. 오늘 한국교회의 문제의 현실도 이와 다르지 않다고 본다. 세금문제나 대형교회의 세습문제, 교회재정의 투명성 문제 등 다양한 문제들 앞에서 솔직하게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용기를 내기보다는 그 문제를 덮어두고, 심지어는 그런 문제는 건드리지 않는 것이 미덕인 것처럼, 신앙적인 것처럼 착각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의도를 가지고 자신들의 불의함을 감추려고 하면 언제든지 맹신적인 신자들을 만들어낼 수도 있고, 동원할 수도 있는 구조가 종교 안에는 있다.
그래서 종교지도자 한 사람이 올바로 서는 일은 참으로 중요한 것이다.인터넷을 통해서 대형교회 목사들의 설교도 쉽게 들을 수 있는 세상이다보니 간혹 들을 기회가 있다. '설교를 참 잘한다. 대형교회 목사답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그러나 어떤 순간에는 전혀 '아멘!'해야 하는 상황이 아닌데, 비성서적인 내용인데도 뜨거운 '아멘!'으로 화답되는 모습을 보면 전율을 하기도 한다. 집단최면에 걸린 듯 설교가 아닌 무슨 극우익보수연합집회에서나 들을 법한 내용인데도 '아멘!'과 '할렐루야!'가 난무한다. 교인들이 대단한 것일까, 목사가 대단한 것일까?
그래서 한국교회 희망 없는가? 언론을 통해서 본 한국교회의 문제, 나는 그것을 일부 극소수의 대형교회 문제라고 보지 않는다. 거꾸로 대형교회뿐 아니라 대다수 한국교회의 문제라고 본다. 크기만 다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희망을 본다. 지금 한국에 제대로된 교회도 있고, 제대로된 목사도 있고, 제대로된 교인들도 있으니까. 한기총은 출범 이후 자신들의 입장을 표명할 때 마치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것처럼 행세고 있다. 새가 비상하기 위해서는 두 날개가 필요하다. 한 날개만 고집하는 우를 범하지 말고, 한 날개가 전체라고 생각하는 우를 범하지 말길 바란다. 당신들만의 날개를 전부인 것처럼 주장하는 한 한국교회는 추락의 추락을 거듭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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