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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교회, 나쁜 교회, 이상한 교회

by 【고동엽】 2008. 8. 29.
 

좋은 교회, 나쁜 교회, 이상한 교회

 

최근 조계사에 헌금봉투를 넣고 지폐에 '예수천국 불신지옥' 이라는 문구를 새긴 모 교회가 논란이 됐습니다. 그리고 한 방송 프로그램에는 귀신을 쫓아낸다며 자기의 친 어머니와 여동생을 구타한 비정한 언니와 그 교회 이야기가 퍼지면서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이를 반영하듯 블로그에 기독교인으로 불교인에 사죄한다는 내용의 글이 포스팅 되기도 했군요.

 

어쨌거나 기독교와 교회, 특히 개신교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극에 달한 듯 싶어 기독교인의 한 사람으로 씁쓸하기도 합니다. 더구나 "일부의 문제일 뿐이다" 라고 변명을 하는 것 또한 전혀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대부분의 비 기독교인들은 언론에 보도된 일부 교회의 부정과 비리에 대해 분노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주변과 이웃 교회들의 행태에 대해 비판하고 있기에 거기다 대고 "일부일 뿐" 이라는 것은 허공의 메아리에 불과하겠지요.

 

아마 한국교회가 최근 몇 년동안 욕 먹은게 한국 기독교역사 200년 동안 먹은 것 이상인듯 싶습니다. 이러니 어디가서 "제가 목사입니다" 라거나 "저 00교회 다녀요" 라는 말을 하려면 탈레반에 포로된 심정으로 하지 않으면 안 될 분위기지요. 그래도 한국에서 개신교와 교회가 전혀 업적이 없는 건 아닙니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마찬가지지요.

 

그래서 요즘 인기를 모은 영화제목에 한 번 붙여서 나눠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런 기준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니 너무 뚫어져라 보지 마시고 흘겨 보시고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1. 좋은 교회 ( 가난하지만 목사가 목사님으로 불리는 교회 ) 아마도 옛날 성탄절이 가까워 오면 누구나 한 번 쯤은 교회에 들러서 어린이들이 펼치는 노래와 연극을 보고, 기독교인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고요한 밤 거룩한 밤.. ' 이라는 찬송을 따라 불렀던 추억은 있을 것입니다.

 

또 남여공학이 드물었던 당시에 유일하게 남여학생들이 어울려 게임하고 노래부르며 은근슬쩍 손도 한 번씩 잡아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던 곳이 바로 '교회' 였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연애당' 이라고도 불렀죠. 특히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여성 중심, 또는 남여평등의 사회로 바뀌도록 일조 했다는 데 교회가 한 몫은 했을 듯 합니다.

 

그 동안 "아무개 엄마" 내지는 "00댁" 이라며 자기의 이름이 불릴 기회가 없었던 여성들이, 교회에서만큼은 "김00 집사님" 이나 "박00 권사님" 이라며 실명이 불렸었죠. 이게 지금은 별거 아닌것 같지만 당시로서는 대단히 파격적인 예우였습니다. 또 많은 여성인권운동가들이 기독교 단체에서 등장했고, 사회운동, 빈민운동, 노동자 운동 등 소위 '사회선교' 라는 명목으로 사람들의 인식을 변화시킨 역할을 했던 것이 기독교였음을 부인 할 수는 없습니다.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한국전쟁 직후에는 세계 각국에서 보내주는 구호물품들을 미군부대를 거쳐 각 지역의 교회를 통해 배급이 되기도 했었고, 오갈데 없는 실향민들과 전쟁고아들에게 안락한 잠자리를 제공하기도 했으며, 상처받은 이웃들을 위해 병원, 학교, 고아원 등을 지어 봉사를 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보다 더 앞서 일제식민지 당시에는 독립운동의 최 전선에 반드시 기독교 지도자들이 포진해 있으면서 교회는 독립운동의 아지트 역할까지 했고, 신사참배에 반대했던 주기철 목사나 이후 손양원 목사와 같은 지도자들이 등장하면서 한국교회는 사회의 모범이었고, 이들은 성경에 있는대로 세상의 빛과 소금이었습니다.

 

특히 한국의 슈바이처라고 불리던 장기려 박사는 병원비가 없어 치료를 못 받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평생을 무료의술에 헌신했고, 심지어 돈이 없어 수술받고 퇴원을 못하는 환자를 위해 일부러 밤에 병원문을 열어둔 일화는 지금까지 회자되고 있습니다. 더욱이 당시 목사와 장로들은 민족의 지도자였고, 그 고을의 존경받는 지도자였습니다. 그래서 신학교에 입학하는 목사후보생들은 마음으로 '희생과 고생'을 각오하지 않으면 안 될만큼 고생길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예수의 십자가를 따르는 고난의 길이었던 것입니다. 그 결과로 목사와 결혼하려는 처녀들은 곧 "나도 골고다 언덕을 당신과 함께 올라 가리다" 라는 거의 순교의 정신이 아니면 엄두를 못 냈습니다. 심지어, 교회를 열심히 다니던 마을 처녀가 총각 전도사한테 프로포즈를 받은 다음 날 머리깎고 절에 들어가버렸다는 우스갯소리가 유행했을 정도였습니다. 한마디로 좋은 교회란, 그 스스를 위해 존재하지 않고 이웃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교회라고 할 수 있겠군요.

 

민족을 위한 희생, 이웃을 위한 희생, 그러면서 교회 안다니는 사람들로부터 "목사님" 이라는 소리를 듣기에 충분했던 교회, 그리고 마을 사람들이 '거룩한 곳' 이라며 흙묻은 신발을 신고 교회 예배당에 들어서기조차 어려워 했던 그런 교회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언급하고 보니 '좋은 교회' 는 '옛날 교회' 라는 도식이 성립되는 듯 하네요. 뭐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지금도 찾아보면 이런 교회들이 많이 있습니다. 언론에 알려지는 교회들이 워낙 엉망인지라 가려진 것 뿐이지요.

 

한 번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2. 나쁜교회 (교회라는 이름으로 교주를 받들게 하는 교회) 이런 교회에 대해서는 말이 필요없는 교회입니다. 굳이 따지면 '교회' 라는 이름을 이용한 '사교(私敎)집단'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사이비' 라고 불리는 집단들인데, 이들의 특징은 대부분 '성경' 이나 '예수' 와 같은 이름을 내세우지만 결국 '교주'의 가르침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며, '성경' 외에 또 다른 '교리'가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들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교인들의 '돈'과 '충성' 입니다. 또한 상식을 벗어난 행동들을 많이 하며 교주의 독재적인 지위를 이용해 교인들의 가정을 파괴하거나 여성들을 성폭행하고, 심지어 그 단체를 이탈하려는 사람들에게 테러를 가하기도 합니다. 처음에 접근할 때는 '집안에 우환을 없애준다' 거나 '축복을 받게 해준다' 든지, 또는 성경적인 지식이 별로 없는 기독교인들에게는 '성경을 제대로 가르쳐 준다' 며 유혹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마 기독교인들이라면 이런 단체들에 대해서 들어본 경험이 있을테지만 많은 일반인들은 어떤 단체인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3. 이상한 교회 (좋은교회와 나쁜교회를 섞어놓은 교회 - 헌금과 설교) 안타깝게도 본인이 판단하기에는 세 번째의 경우가 가장 많은 숫자를 차지하지 않나 싶습니다. 이들은 교주를 우상화 하지는 않지만 은근히 목사를 우상화 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또 '성경'을 토대로 설교는 하는데 듣고보면 성경내용은 별로 없습니다. 또 '가정의 축복'과 '건강' 등을 강조하지만 끝까지 듣고보면 결국 '헌금을 많이 하면 하늘에서 많이 준다' 입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헌금' 문제입니다. 이상한 교회의 특징은 '헌금'을 모으기만 할 뿐 그 '사용처'를 공개하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이런 행태는 소위 '사이비'들이 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 바쳤으면 됐지 뭘 따지느냐" 고 주장합니다. 그러면 일반 교인들은 감히 '하나님' 께 드린것에 대해 믿음이 없이 따진다는 죄책감을 가지게 되고, 결국 포기합니다. 그러나 정작 "하나님께 바친" 것에 대해 지나치게 따지는 사람들은 교인이 아니라 따지지 말라는 목사와 장로들입니다.

 

그들만의 '회의'를 들여다보면 "이번주 헌금이 얼만데, 왜 자꾸 줄어드느냐" 또는 "목사님이 헌금을 강조해야 되지 않느냐", 그리고 "교회 건축하느라고 갚아야 할 빚이 얼만데 이렇게 헌금을 적게 거둬서 안되겠다" 는 등의 '거룩한(?)' 회의를 합니다. 안타깝게도 교회 규모가 클 수록 '구제헌금' 이나, '복지단체에 기부금' 또는 '이웃 주민들을 위한 봉사 기금' 등의 항목은 없거나, 전체 헌금 액수의 기껏 1% 내외에 불과합니다. 한마디로 하나님께 바친 헌금이 정작 하나님의 일에는 사용되지 못한 채 교회건물 유지비로 몽땅 허비되고 있는것입니다.

 

그래서 이들 목사들은 "헌금을 많이하고, 일단 바쳤으면 따지지 마라" 고 강조합니다. 그나마 매월 월례회 등을 통해서 월별 결산을 하는 교회는 정직한 교회입니다. 또한 이런 교회의 목사들이 주장하는 "헌금 많이하면 축복을 받는다"는 말이 사실인지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즉 설문조사를 해 볼 필요가 있을 듯 합니다. 10년 이상 교회를 다닌 교인들을 대상으로 "지난 10년 동안 '십일조'와 '헌금'을 얼마나 했으며, 그 결과로 지난 10년 간 재산은 얼마나 증가했는가" 라는 내용으로 말입니다.

 

당신이 낸 십일조와 헌금, 하늘의 축복으로 되돌려 받은 증거가 있나? 이런 얘길 하면 또 "믿음이 없구만, 헌금을 꼭 재산으로 따져야 되나?" 고 반론하겠지요. 그러나 많은 교인들은 하나님께 헌금할때는 "하나님이 물질의 복을 주시겠지" 라고 기대하지 않나요? 그러니 한 번 따져보자는 겁니다. 아마도 재산이 증가했다면, '부동산 가격' 내지 '아파트값 상승' 또는 '주식의 증가' 등 교회를 다니건 다니지 않건 재산증가의 요인은 차이가 없을 것입니다.

 

즉 동일한 지역, 동일한 직업군, 동일한 학력 으로 따지면 교회를 다니거나 안 다니거나 재산의 증감에는 차이가 없을거라는 게 본인의 주장입니다. 그렇지 않나요? 따라서 "교회를 다니기 때문에 부자가 될 확률이 높은 것" 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차라리 부자가 되고싶으면 헌금보다는 '펀드'가 더 빠르다는 말입니다. 이 쯤 되면 일각에서는 또 반박할 겁니다. "눈에 안 보이게 축복받았다. 교통사고 안나게 지켜줬고, 병 안걸리게 지켜주셨고... 그게 어디냐" 라고요. 물론 인정합니다. 하나님의 보호와 섭리, 그리고 그 분의 인도하심을 말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따지기 시작하면 끝이 없겠죠. 어디 교인들만 그렇게 지켜주나요... 다시말하면 "교회를 다니기 때문에 불신자들과는 다른 특혜를 얻는다" 는 생각은 버려야할 것이라는 말입니다. 차라리 '마음의 안식' 이라거나 '구원의 확신을 갖는것' 또는 '예수의 제자로 살아가는 보람' 등과 같은 차이라면 얼마든지 인정합니다. 그러나 이상한 교회들은 마치 "교회를 다니면 이 땅 위에서도 불신자들과는 다른 특혜가 있다" 고 주장하기에 그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오히려 성경에는 "너희가 나로 인해 핍박을 받게 될 것" 이라고 가르칩니다. 뭔가 대단히 착각하는 것입니다. 쉽게말하면 교회를 다닌다는 것은 이 세상의 축복과 권리, 그리고 명예 등을 다 포기하고 오직 예수의 가르침만 따라 살겠다는 표현입니다. 그렇게 하기 싫으면 교회를 다녀서는 안 됩니다. 이상한 교회의 잘못된 설교가 잘못된 신앙인을 양성해 필자가 이상한교회에 대해서 딱 두 가지 '헌금과 설교' 만을 꼬집는 것은 그 밖의 수많은 주제들 중에서도 가장 크게 잘못되고 있는 분야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구약성경의 십일조는 고아와 과부들을 위한 일종의 복지기금이었고, 헌금은 이웃의 가난을 해결해 주기 위한 공동모금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교회들이 이런 명목을 악용해 수많은 십일조와 헌금을 거두면서도 정작 제대로 사용하지 않는데 그 심각성이 있습니다. 순진한 교인들의 호주머니를 털어서 수 백억원짜리 건물 융자금 갚는데 탕진하고, 목사의 고급 승용차 기름값으로 허비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배곪고 가난한 이웃들이 있고, 일반 사회와 정부에서도 이들을 구제하기 위해 각종 세금을 거둬서 복지예산에 편성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턱없이 모자라는 예산 때문에 여전히 저소득층 아이들과 노인들, 노숙자들과 장애인들은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지도 못하는 형편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자기들의 배만 불리면서 단추가 터지기 직전으로 축복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개탄스런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조만간 엄청난 규모의 교회건물이 텅텅 비어서 나이트클럽에 매각되는 일이 생길 것입니다. 과거 영국교회가 그랬듯이 말입니다.

 

지금도 교회에는 젊은이들이 별로 없습니다. 올바른 성경과 가치관을 가르치지 않기 때문에 실망한 젊은이들이 떠나기 때문입니다. 이상한 교회 천 개가 문 닫아도, 좋은 교회 한 개가 있다면 세상은 변할 것 필자는 확신합니다. 큰 건물의 교회가 모두 '이상한 교회'는 아닐것입니다. 다만 그렇게 될 위험이 많다는 것입니다. 또 한국의 대표적인 교회인 조용기목사의 교회가 보여준 행태를 보면 철저히 세속적인 축복과 물질의 풍요만을 강조하면서 살아서도 죽어서도 '행복'만을 강조하면서 정작 교인이 가져야 할 세상에 대한 책임이나 교회의 희생, 그리고 일상생활에서의 교인들의 순교정신 등은 외면했습니다.

 

교회만 열심히 다닐 뿐 생각하는 사고방식이나 습관이나 자식키우는 것이나 돈 욕심이 많은 것이나 어느것 하나 일반인과 전혀 다르지 않은, 어쩌면 그보다 더 탐욕이 심한 교인으로 만드는 교회가 결코 정상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차라리 이런 교회 천 개가 문을닫는 한이 있어도 제대로 된 좋은 교회 단 하나만 있다면 이 세상은 밝아 질 것입니다.

 

불 꺼진 초 천 개 보다는 불 붙은 한 개의 촛불이 산을 태우는 법입니다. 생명없이 떠드는 설교보다는 가슴을 울려주는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게 더 생산적입니다. 여러분 주변의 수많은 '이상한 교회'를 피해서 '좋은교회'를 찾는 눈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청소년들과 청년들에게 올바른 가치관과 민족정신, 그리고 삶의 지표를 알려주셨던 김교신 선생과 함석헌 선생과 같은 지도자들이 있는 교회를 추천해 드리고 싶습니다. 출처 :진민용의 시사 놀이터 원문보기 글쓴이 : 진민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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