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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속으로 〓/영성 교회 성장 10대 지침등(가나다순)

하나되지 못하는 교회

by 【고동엽】 2008. 6. 10.
 

하나되지 못하는 교회
언약의 역사에서 하나님의 집으로서 성막이 있었고 솔로몬 시대에는 성전으로 변화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옛 언약을 완성하시고 새 성전을 세우시는데, 믿는 사람들 곧 교회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 곧 교회가 새 언약 시대의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교회와 예배당(또는 교회당)은 분명히 다른 개념입니다. 전혀 다른 개념입니다. 교회는 사람들이고 예배당은 그 사람이 모이는 장소로서 건물입니다. 그것은 옛 언약의 시대에 건물이었던 하나님의 성전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예배당은 성전이 아닙니다. 믿는 사람들 곧 교회가 성전입니다.

 

너무나도 당연한 이러한 사실이 오늘날 교회에서는 무시 내지는 혼동되고 있습니다. ‘교회 간다’는 표현이 대표적입니다. ‘예배당에 간다’고 해야 할 표현입니다. 과거에는 예배당에 간다고 하였는데 지금은 ‘교회 간다’는 표현을 당연한 것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신학적인 퇴보라고 하겠습니다. 굳이 교회라는 표현을 사용하려면 교회로서 모인다고 말하여야 합니다. 또 다른 경우는 ‘예배당 건축’을 ‘교회 건축’이라거나 ‘성전 건축’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말하는 이들은 예배당이 교회 또는 성전이 아니라는 사실을 모르지 않습니다. 알면서도 건축이라는 목적을 위하여 성경의 가르침을 왜곡하고 있습니다. 성전 건축이라고 해야 무언가 거룩한 일을 하는 것으로 여겨지고 참여를 이끄는 데에도 유리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악행입니다. 중세 시대에 로마교가 건축을 위하여 면죄부를 판매하기까지 했는데, 오십보백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악행이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지 마음이 답답하기만 합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위의 구절은 독립된 말씀이 아닙니다. 앞뒤의 구절들과 연결하여 함께 생각하여야 합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고전 3:16~17)

 

믿는 사람들 곧 교회가 하나님의 성령께서 거하시는 성전인데, 그 성전을 더럽히는 사람은 누구든지 하나님께서 멸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과 달리 식언을 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은 반드시 실행하십니다(민 23:19).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멸하십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는 누구든지 그 성전으로 세우심을 입은 사람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이 아닌 누군가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는 것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전으로 세우심을 입은 누군가에 의해서 행해지는 것도 함께 포함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땅에서 하나님의 성전의 한 구성원으로서 살아가는 신자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는 것이 무엇인가를 바르게 아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멸하시는 사람이 되지 않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성전을 더럽힌다는 것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힌다는 것은 본문 앞의 내용들을 살피면 알 수 있습니다. 본문 앞에서 바울 사도는 고린도 교회의 여러 파를 언급하였습니다. 바울파·게바파·아볼로파·그리스도파 등입니다. 그러한 파는 나름대로의 근거를 가지고서 형성된 것입니다. 그 파에 소속된 사람들을 하나로 묶는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그런 파에 대해 바울 사도는 아주 강하게 책망합니다. 그 파를 주도한 이들은 나름대로 고린도교회에서 지명도를 지니고 있는 사람들로서 말씀사역자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교회의 그러한 상태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말하면서 불 가운데서 구원을 얻는 것과 같다고 선언하였습니다(고전 3:15).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으로 세우신 교회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모습으로 세워가야 할 말씀사역자가 파를 형성하는 것에 대한 심판입니다. 그들이 자신들과 함께한 신자들을 세워가는 사역을 하고 있기에 불 가운데서 구원을 얻는 것이 가능합니다. 현재의 상태로는 파를 형성한 말씀사역자들은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면 불 가운데서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가 그들의 현재 상태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말씀하는 이유는 그들로 하여금 돌이키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바울 사도의 경고를 들은 고린도교회의 말씀사역자들은 파를 해체하고 주님의 한 몸으로 회복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현실은 정반대로 치달을 수 있습니다. 파의 형성에 그치지 않고 분리되는 것입니다. 각자 자신들의 주장이 정당하다며 고집하다가 결국에는 찢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주님의 한 몸인 교회가 어떤 다른 주장을 근거로 찢어지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는 것입니다. 삼위이시며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한 말씀으로 세우신 한 교회가 사람들에 의해 찢어지는 것이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는 것입니다. 한 말씀을 여러 말씀으로 찢고서는 자신들이 따르는 말씀을 앞세워서는 한 교회를 찢는 것이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에베소서에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고 말했습니다(엡 4:3). 그 근거로 몸이 하나, 성령이 하나, 소망이 하나, 주도 하나, 믿음도 하나, 세례도 하나, 하나님도 하나를 말씀했습니다(엡 4:3~6). 그 방법으로 모든 겸손, 온유, 오래 참음,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는 것을 말씀했습니다. 교회가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심을 지키는 것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서는 그래도 되지 않으면 포기하여도 되는 사안이 아닙니다. 반드시 절대로 지켜야 하는 것이라는 명령입니다. 그 명령을 저버리고 찢어지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는 것입니다.

 

하나가 되지 못하는 교회

이 말씀 앞에 오늘날의 교회를 한번 살펴봅시다. 오늘날의 많은 지역 교회는 이 말씀에서 매우 동떨어져 있습니다. 파당의 형성은 예사이고 종국에는 찢어지는 경우도 다반사입니다. 그러한 이야기를 접할 때마다 가슴이 답답해집니다.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신자가 맞이할 종국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또한 이 말씀은 단순히 한 지역 교회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개신교 내의 많은 교단들과 그 안에 자리를 잡고 있는 많은 교파들도 동일하게 해당되는 사안입니다. 교단이나 교파는 지역 교회의 찢어짐이 확장된 것일 뿐입니다. 그것들은 하나님의 섭리에 의한 결과물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과 행하심이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한 몸인 교회가 찢어지는 것에 대해 그 당사자를 멸하시겠다고 하신 하나님께서 오늘날의 교단 또는 교파의 형성을 섭리하셨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교단과 교파는 반드시 절대적으로 지키라고 하신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사람들에 의해 어긴 결과일 뿐입니다. 삼위이시며 한 분이신 하나님을 본받지 않은 결과입니다. 그분께서 교회에게 주신 한 말씀을 벗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각각이 말하는 다양한 믿음이 형성되었기 때문입니다.

 

더더욱 문제는 교회가 이러한 현실에 대해 무감각하거나 알려주어도 요지부동이라는 것입니다. 각각이 서로 자신들의 체계 안에서 잘하면 되지 않느냐는 태도로 일관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교회를 말하면서 말입니다. 각각은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하나님의 말씀을 내세우고서는 현 체제를 유지하고자 할 뿐입니다.

 

삼위일체에 대한 이해, 인간론에 대한 이해, 성령론으로서 교회론과 구원론에 대한 이해, 성령세례와 성령충만에 대한 이해 등입니다. 구원론의 경우에는 칼빈주의와 알미니안주의로 완전히 나누어져서는 각자가 모두 옳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성경을 바르게 해석하면 양자 모두에 옳은 부분도 있고 틀린 부분도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바는 하나인데, 사람들은 엉터리로 이해한 부분에 대해서도 각자 자신들의 생각이 옳다고 주장합니다. 그 엉터리 이해를 고수합니다. 그러면서 교회의 수적 성장만 잘되면 된다는 식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각자 현재의 상태에서 지니고 있는 기득권의 유지에만 관심과 정력을 쏟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지경입니다. 신학자들이나 목사들이나 예외가 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디자인하신 교회는 하늘 영광으로 가득한 영광스러운 교회입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함께하심이 경험되며 그분의 영광을 풍성히 체험하는 교회입니다. 권세자들이 자신들에게 주어진 것을 가지고서는 들어오게 됨을 감사하면서 들어옵니다(계 21:24). 만국을 소성하게 만듭니다(계 22:2). 반면에 현실 교회는 그 맛을 잃어 밖에 버려지고 사람들에게 짓밟히는 것과 같은 상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중병에 걸린 어머니와 같은 모습입니다. 교회가 부흥을 갈망하고 있는데 진정한 부흥은 하나님께서 디자인하신 교회로 회복되는 것입니다. 수적인 성장은 진정한 부흥인 회복이 이루어지면 뒤따를 것입니다.

 

언제쯤이면 하나님과 말씀 앞에서 두려움을 가지고서 한 말씀에 토대를 둔 한 교회의 회복과 하늘 영광으로 가득한 영광스러운 교회로 회복되는 길로 나아가게 될는지…. 듣는 이들이 거의 대부분 개꿈이라고 말하지만 현실로 우리 앞에 나타나기를 소망하며 기도합니다. 함께하는 지체들이 일어나고 함께 하나님께 기도하며 하나님께서 이끌어주시는 길을 간다면 현실이 되리라는 꿈을 꿉니다. 옆에서 아무리 개꿈이라고 말하더라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꿈이기 때문입니다.

박창진/ 부평시민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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