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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판 금송아지

by 【고동엽】 2008. 3. 8.
 

         현대판 금송아지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인간들은 불안하다. 그 불안을 떨어내기 위해 인간들은 뭔가 눈에 보이는 것을 원한다. 광야에서 히브리인들은 금송아지를 만들었다. 아론은 백성들의 염원에 따라 그들의 정성어린 헌물을 모아 금으로 송아지상(象)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들은 외쳤다.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로다." 아론이 보고 그 앞에 제단을 쌓은 다음 "내일은 여호와의 절기다"라고 선포하였다. 이튿날 그들은 일찍이 일어나 번제와 화목제를 드린 후, 함께 앉아 먹고 마시며 일어나 뛰놀았다.

 

오늘날 교회는 어떠한가. 예나 지금이나 인간들은 여전히 눈에 보이는 것을 선호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은 멀다. 그래서 그를 대신할 확실한 대상을 찾고 있다. 하지만 광야의 이스라엘처럼 송아지상을 만들지는 않는다. 현대인으로서 미신 따위는 이미 졸업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눈에 보이는 것을 선호하는 인간의 품성을 넘어선 것은 아니다.

 

"우리를 인도할 신을 우리를 위하여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지 못함이니라." 광야에서 그들은 사실 하나님이 아니라 모세를 숭배했다. 모세가 눈에 보이지 않자 그들은 신속히 다른 대상을 요구했다. 그들을 이끌고 있는 지도자는 모세였다. 하나님이 보이지 않으니 그저 모세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을 뿐이다. 오늘날 교회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여전히 눈에 보이는 상대를 원하고 있다. 그 상대 중 1순위는 단연 목사가 차지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우리 목사님이 아니면 안돼요, 우리 교회 무너져요"라는 외침이 생각 없이 흘러나온다.

 

독실한 믿음을 가진 순종파 교인들에게 가장 위험한 우상은 바로 목사다. 돈의 우상화에 대한 경계는 종종 들어 알지만, 목사의 우상화에 대한 경계는 아무래도 듣기가 쉽지 않다. 설교하는 당사자가 스스로를 우상이니 조심하라고 설교하는 경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을 객관화하여 판단하기는 무진장 어려운 일이며, 인간에게는 그게 가장 큰 걸림돌이라는 사실은 그래서 진리일 수밖에 없다.

 

목사의 왕자병, 주의 종님?

우상화된 목사의 특징 중 으뜸 징후로 '왕자병' 증세를 꼽을 수 있다. 왕자병 증세는 '하나님의 택함 받은 종'이라는 별명으로 치장된다. 거기다 '님'자까지 덧붙여졌다면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종이라는 개념은 하찮은 존재임을 나타내는 단어이다. 스스로를 일컬어 종이라 함은 '나는 정말 천한 자이며 내세울 것이 없는 자이니 대접해 줄 필요가 없습니다'라는 고백을 포함한다. 그런데 왕자병에 걸린 사람들은 스스로를 종이라 하면서도 하나님의 종을 잘 대접해야 한다고 외친다. 그래야 복을 받는 것이라며 모 집사님, 모 권사님의 눈물겨운 사례를 줄줄이 늘어놓는다.

 

교인들에게는 자신이 하나님께 특별히 더 사랑 받는 존재라는 사실을 지속적으로 각인시킨다. 자신을 보살피시는 하나님의 손길에 대한 간증을 통해 자신이 가장 하나님의 총애를 받는 자임을 반복 학습하는 것이다. 자신이 누구보다도 하나님과 가깝고, 누구보다도 하나님의 의중을 잘 헤아리고,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위해 애쓰는 종이기에, 하나님의 자녀인 교인들은 하나님의 종인 목사를, 종이 주인집 자녀 섬기듯 잘 대해야 한다고 말한다.

 

성경 속 인물과 나는 동체?

다음으로는 '동일시 착각' 증상을 들 수 있다. 이 증상의 핵심은 자신의 말과 하나님의 말을 혼동한다는 데 있다. 자신을 성경 속에 나오는 인물과 대치하기를 밥먹듯 하여 설교 중에 아브라함으로서, 모세로서, 다윗으로서, 사도로서 자신의 역할과 위치를 바꾸어 간다. 그러다 보면 어느덧 자신의 말씀이 성경의 말씀과 뒤섞여 자신의 말에 이의를 다는 교인을 향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려는 것이라고 윽박지르는 경지까지 나아간다.

 

목사에게 복종하는 것과 하나님께 복종하는 것이 구분되지 않기에 목사의 말에 이의를 다는 행위는 곧 하나님에 대한 불순종 내지는 사단에 사로잡힌 것으로 해석된다. 내 말이 곧 하나님의 말이라고 노골적으로 선언하지는 않지만, 자신은 하나님의 말을 전달하는 것이니 자신이 선포하는 말은 곧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논리로 자신의 말을 하나님의 말로 암암리에 위장한다. 이런 상황에서 목사의 설교가 하나님의 말씀과 어긋난다고 지적하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반역이 된다. 목사가 하나님의 말씀을 잘못 해석할 리가 없기 때문이라는 강한 미신이 그 논리를 강력하게 뒷받침한다.

 

이런 증상의 부수적 현상으로는 목사의 말투 즉 막말 내지 욕, 비어, 무시하는 투의 말 등을 들 수 있다. 마치 점 보러 가면 점쟁이가 반말로 함으로써 상대의 기를 제압하고 자신의 말에 권위를 실으려 하듯이, 설교 중에 교인을 향해 막말 수준의 말을 내뱉음으로써 자신의 우위를 확인하려는 경우도 있다.

 

교회 돈이 내 돈?

이들에게 나타나는 또 다른 특징은 '공(짜)돈 의식' 이다. '교회 돈은 내 돈'이라는 공식이 이들에게 무의식적으로 깔려있다. 물론 공식적으로 그렇게 선언하는 것은 아니다. 본인 역시 그렇게 의식하지 않는다. 하지만 돈을 사용하는 방식을 보면 교인의 돈이라는 생각이 없다는 판단을 한다. 이들이 신봉하는 원칙은 '교회 돈은 하나님의 사업을 위해 목사 의도대로 쓴다'로 정리할 수 있다.

 

교회 돈은 목사의 돈이 아니다. 교인의 돈이다. 이렇게 얘기하면 발끈하는 사람도 꽤 있을 것이다. '어떻게 교인의 돈이냐. 하나님의 돈이지. 그런 불경스런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으니'라며 분노할 사람이 많다. 그런 사람에게는 이런 질문을 해보자. 교인이 집에서 가지고 있는 돈은 하나님의 돈이 아니라는 말인가. 모든 게 다 하나님의 것이다. 집에 있으나 교회에 있으나 은행에 있으나 상관없이 말이다. 따라서 교회 돈은 하나님의 것이라는 말 자체가 의미 없는 얘기다. 교회에 낸 돈이건 자신이 갖고 있는 돈이건 간에 상관없이 모두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써야 할 하나님의 돈이다.

 

개인이 가진 돈은 개인이 책임질 문제지만, 교회에 모인 돈은 교인이 공동으로 책임질 문제다. 그렇다면 교회 돈은 교회 구성원의 의사에 따라 사용 여부를 묻고 과연 제대로 사용했는지에 대해 지속적인 감시와 추궁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그런데 자신만이 하나님의 뜻을 가장 잘 안다는 전제 아래 목사가 제 뜻대로 돈을 사용하고, 이에 대해 구체적인 내역 공개를 요구하거나 사용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면 은혜롭지 못하다며 질책한다. 교회의 돈사용에 대해 교인은 입다물고 있어야 한다고 하나님이 정해 놓으셨던가? 하나님의 것을 사용할 권리는 목사나 평신도나 동등하게 갖고 있다. 다 같은 하나임의 자녀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것이라고 명명하는 순간, 목사에게만 특별히 사용권이 주어지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내 말 거역하더니?

이들에게 나타나는 증상 중 마지막으로 음미해 볼 것은 '권력의지'이다. 어떤 목사는 이런 말을 한다. 내 말이라면 속옷도 벗고 집문서도 가져올 정도가 되어야 내 교인이다. 정말 대단한 권력이다. 설교는 종종 목사들이 교인에 대한 지배력(?)을 키우는 수단으로 이용된다. 신앙 간증이라고 제시하는 내용 중 목사 얘기 잘 들어서 성공한 집사님의 일화는 감동과 더불어 교인들에게 복종을 세뇌한다. 더 나아가 목사가 말한 '하나님의 충고'를 따르지 않다가 사업 망하고, 사고 당하고, 병든 얘기를 종종 흘림으로써 두려움을 심어주기도 한다. 목사에게 이의를 제기하고 따지며 괴롭히다가 결국은 몹쓸 병에 걸리고 만 아무개 권사의 얘기를 듣고 '아멘'하는 순간 나는 없어지고 노예만이 남는다.

 

두려움은 사람의 자율성을 마비시킨다. 목사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끝이 좋은 사람 못 봤다는 말을 자주 들은 사람은 목사의 불의를 보고도 감히 이의를 제기하지 못 한다. 그냥 용서하고 덮어두는 게 미덕이라고 여기며 자신을 합리화한다. 어떤 경우는 오히려 그 불의를 감싸고 옹호함으로써 목사가 진정으로 회개할 기회를 빼앗고 목사를 악의 수렁으로 몰아가기도 한다. 그러면서 자신이야말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순종하며 힘겨운 십자가를 감당하고 있다고 철석같이 믿는 데 우상화의 마력이 있다.

 

다음 몇 가지 질문을 잘 읽고 확인해 보자.(우상화 테스트) 1. 담임목사 잘 대접해야 복 받는다.
① 그렇다 ② 어느 정도 그렇다 ③ 모르겠다. ④ 별로 그렇지 않다. ⑤ 그렇지 않다. 2. 담임목사의 말을 의심하면 못쓴다.
① 그렇다 ② 어느 정도 그렇다 ③ 모르겠다. ④ 별로 그렇지 않다. ⑤ 그렇지 않다. 3. 교회 재정 문제에 대해 따지면 은혜롭지 못하다.
① 그렇다 ② 어느 정도 그렇다 ③ 모르겠다. ④ 별로 그렇지 않다. ⑤ 그렇지 않다. 4. 담임목사에게 대적하면 결국에는 불행한 일을 겪게 된다.
① 그렇다 ② 어느 정도 그렇다 ③ 모르겠다. ④ 별로 그렇지 않다. ⑤ 그렇지 않다. 8점 미만이면 중증. 12점 미만이면 경증. 12점 이상이면 건강.

 

17점 이상인 사람 중에 간혹 주의를 요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목사의 행태에 대한 배신감으로 상처를 받아 스스로 증오심을 키우는 사람이다. 결국 자신이 품고 있는 분노와 원망 때문에 사업을 망치거나 병에 걸림으로써, 목사에게 대적하더니 결국 그 꼴 났다는 말을 들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명령을 기억하자. 목사가 그런 게 아니라 인간이 그런 거다. 세상에 그런 인간 널렸다. 다만 그 인간의 직업이 목사일 뿐이다. 인간은 믿을 대상이 아니라 이해해야 할 대상이다. 그의 잘못은 명확히 지적하되, 하나님의 사랑으로 불쌍히 여겨주시라. 당신의 건강을 위해서.(유성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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