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1장23절]"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마1장23절]
הִנֵּה הָעַלְמָה הָרָה וְיֹלֶדֶת בֵּן וְקָרְאוּ שְׁמוֹ עִמָּנוּאֵל אֲשֶׁר יֵאָמֵר אֵל עִמָּנוּ׃
23 | ιδου η παρθενος εν γαστρι εξει και τεξεται υιον και καλεσουσιν το ονομα αυτου εμμανουηλ ο εστιν μεθερμηνευομενον μεθ ημων ο θεος |
[사7:14] לָכֵן יִתֵּן אֲדֹנָי הוּא לָכֶם אֹות הִנֵּה הָעַלְמָה הָרָה וְיֹלֶדֶת בֵּן וְקָרָאת שְׁמֹו עִמָּנוּ אֵל׃
7:14 δια τουτο δωσει κυριος αυτος υμιν σημειον ιδου η παρθενος εν γαστρι εξει και τεξεται υιον και καλεσεις το ονομα αυτου εμμανουηλ
이곳은 처녀"는 '(베툴라)'가 아니고 '(알마)'로 되어있다.
70인역(LXX)의 번역을 그대로 채택은 문제가 발생할수 있다.
"젊은여인"의 히브리어 원문은 알마"{עלמה}이다. 그 뜻은 결혼의 유무성 관계없이(결혼한적도 있을수 있는) 약 20~40세의 젊은 여성을 의미하며 헬라어로는 "네아니스"{νεανις}가 분명하데,
그러나 70인역(LXX)에서는 젊은여자인 히브리어 "알마"{עלמה}를 헬라어 네아니스"{νεανις}로 번역치 않고,
동정녀 처녀인 "파르데노스{ παρθενος -히브리어로는 "베툴라"{ בתולה} 로 번역했다. 이렇게되면 어떻게 될수 있을까?
그러나 알마"{עלמה}의 경우 사전적으로 젊은 여자를 가리키지만, 흔히 사용된 문맥상에서도 결혼하지 아니한 여자를 가리키고 있는곳도 있을수 있는 것이다.
예를들면,
(창24:43 = 내가 이 우물 곁에 서 있다가 젊은 여자{알마 עלמה}가 물을 길으러 오거든 내가 그에게 청하기를 너는 물동이의 물을 내게 조금 마시게 하라 하여 )
(출2:8 = 바로의 딸이 그에게 이르되 가라 하매 그 소녀가{ 알마 עלמה} 가서 그 아기의 어머니를 불러오니 )
(시68:25 = 소고 치는 처녀들 알마{ עלמה } 중에서 노래 부르는 자들은 앞서고 악기를 연주하는 자들은 뒤따르나이다 )
이런 곳에서 보는것 같이 알마가 결혼유무 상솬없이 젊은 여자를 가리키지만, 그러나 여기서는 결혼하지 아니한 처녀를 가리킴을 볼수가 있는 것이다.
또한 한편으로는 "베툴라" { בתולה } 역시 처녀(동정녀)를 의미하지만 때로는 남편이 없는 과부를 뜻하기도 하는 곳도 있다.
(욜1:8 = 너희는 처녀가 (베툴라){ בתולה }어렸을 때에 약혼한 남자로 말미암아 굵은 베로 동이고 애곡함 같이 할지어다)
따라서 문맥에 따라 이해 해야하며 사7:14의 "알마"{ עלמה }를 "파르테노스"{ παρθενος }로 번역하는것은 충분히 가능하며 마태가 인용한 단어는 전후 문맥에 비추어 "처녀"임이 분명해지는 것이다.
그러나 '알마'는 일반적으로 '젊은 여자'를 뜻하지만, 구약 성경에 기술된 용례를 자세히 살펴보면 (창 24:43 출 2:8 시 68:25 잠 30:19 아 1:3;6:8) 관용적으로 '처녀'를 뜻하는 경우가 많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마태복음의 문맥의 전후 관계를 살펴 볼 때에 '처녀'인 마리아가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눅 1:34)라고 한 것처럼 '동정녀'를 의미하는 것이다.
임마누엘 - 이 단어는 '예수'를 가리키는 고유명사로 사용되기보다 성부 하나님에 대한 성자 하나님으로서의 그분의 위격(位格)과 그분의 사역의 한 단면을 암시한 용어이다(사 7:14).
한편'임마누엘'(*εμμανουηλ )은
'함께'(with)라는 뜻의 히브리어 '임'(*εμ )과,
'우리와'(us)라는 뜻의 '마누'(*εμμανου ),
'하나님'(God)이란 뜻의 '엘'(*ηλ )이 결합된 형태이다.
즉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가 메시야와 예수가 되실 뿐 아니라 그분이 곧 죄악으로 인해 절망가운데 있는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친히 이땅에 내림(來臨)하신 하나님, 곧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God with us)분이심을 강조한 호칭이다.
실로 죄로 인해 원수되었던 하나님과 인간들을 화해시키기 위해 십자가에서 화목제물이 되어 주실(요일 4:10) 중보자(中保者)이신 예수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다가(요 1:14)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항상 함께 계시는(마 28:20) 영원한 하나님 그자체이시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죄사함을 받고 그분의 실존(existence)을 날마다 인정하는 백성들은(21절) 모두가 하나님과 더불어 살고 있음을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δεδομένα 18,185편 ◑ > उपदेश सामग्री 16,731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롬 8:38) '내가 확신하노니' 아니고 '확신되어졌나니' 가 바르다. (0) | 2010.06.18 |
---|---|
【 형통】예화 모음 13편 (0) | 2010.06.10 |
*예정론 바른이해 (0) | 2010.06.06 |
(시8장5절) '천사' 가 아니고 '하나님'이 바른 번역이다 (0) | 2010.06.05 |
십일조와 직분 없는 새들녘교회 (0) | 2010.05.29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