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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02월 06일] 예수를 바라보자(히 12:1~8)

by 【고동엽】 2025. 1. 19.

[2022년 02월 06일] 예수를 바라보자(히 12:1~8) - 곽선희 목사
https://www.youtube.com/watch?v=PfoqFM5mpXo

 


곧 저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봉독하겠습니다. 신약 성경 히브리서 12장 1절로 8절 말씀 드리겠습니다. 신약성경 367면입니다. 367면 히브리서 12장 1절부터 봉독하게 되겠습니다. 이 거룩하신 말씀을 봉독할 때에 다 함께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수치를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기까지는 대항하지 아니하고 또 아들에게 권면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권하시는 말씀도 있도다. 이르시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마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들을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시느니라."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아요 아들이 아니니라. 아멘.

1960년, 그러니까 거의 한 60년 전입니다. 지금 인천 제일교회에서 목사로 시무하고 있을 때에 서울에 있는 저 검암 나루터에 있는 신학대학에 객원교수로 나가고 있었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가서 강의를 했는데, 언제나 그랬듯이 그때는 교통수단이 기차밖에 없으니까 기차를 타고 기차 안에서 책을 읽으면서 그렇게 먼 길을 왕래하며 강의했던 일이 있습니다. 언제가 강의를 다 끝내고 또 밤 강의가 있어서 밤 강의까지 끝내고 나니까 10시가 되었는데, 그때 서울역에 나가서 제 전용 기차표를 사 가지고 기차를 탔습니다. 타고 기차 안에서 타자마자 자리가 비어 있고 해서 앉아서 책을 읽었습니다. 앉아 책을 보다가 차창을 바라보았더니 차창 밖의 경치가 틀려요. 아, 생각해 보니까 내가 지금 인천으로 가고 있는 게 아니라 부산으로 넘어가고 있더라고요. "아, 이거 큰일 났구나." 안양에서 내려 가지고 밤이 깊도록 헤매느라 참 고생을 한 그런 추억이 있습니다. 그 경험에서 얻은 교훈은 딱 한 가지입니다. "아무리 바빠도 기차는 바로 타라." 내가 어디로 가는가? 내 종착지, 내 최종 목적지가 어디냐? 그것만 생각하고 살아야지 오늘 현재 뭘 잘 되고 안 되고 그 중요한 게 아니에요.

최종 목적, 내 종착지, 여기에 대한 궁극적 관심을 잃을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곧 지나갑니다. 아무리 어려운 일도 곧 지나갑니다. 우리가 가고 있는 길이 앞에 있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좀 더 확실하게 최종 목적을 향해서 촛점을 분명히 하고 그렇게 살아가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에 보면 예수를 바라보자 했어요. 바라보는 것, 바라보는 게 뭡니까? 그것이 우리 인간에게 주어진 최상의 덕목입니다. 바라보는 것, 현재에 살면서 미래를 보는 것, 현재 살면서 미래를 생각하는 것, 그다음, 그다음, 그다음을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 우리 인간에게 주어진 소중한 이성적 행위입니다. 그다음을 생각하는 거죠. 우리가 오늘 교회에 나왔습니다. 다음 주일도 생각합니다. 나올 수 있을까 생각합니다. 또 우리가 이렇게 복잡하고 어려운 세상을 살아갑니다마는 이대로 가는 건 아니겠죠. 또 변하겠지요. 깜짝 놀라겠죠. 난 가끔 신문을 보던가 방송을 듣던가 아주 혼자서 싱긋싱긋 빙그레 웃을 때가 있습니다. 그게 뭔지 아십니까? **'전문가'**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전 문외한에게 물어봅시다. "전문가의 말에 의하면" 웃기고 있구먼. 전문가가 어딨어? 기술부 동안 속았습니다. 무역이고, 문명이 아니고 지진이고 뭐 밖에 없어요. 인간의 전문적 지식이 완전히 파도가 나는데 믿고서 지금도 아직도 이러니 "전문가의 말에 의하면" 웃기고 있구먼. 그걸 써요. 아, 그건 안 되세요. 인간의 지식이 철저히 오도한 이 엄청난 사건은 인간의 모든 지식, 인간의 지혜와 과학의 능력을 완전히 비웃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생각을 돌려서 예수를 바라보자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는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부활하셔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었습니다. 열매가 되어 먼저 가 계십니다. 하늘나라에 먼저 가 계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14장에 말씀합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내가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다시 와서 너희를 나 있는 곳에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함께 있으리라." 아주 흔한 말씀입니다. 예수는 말씀합니다. "하늘을 바라보자." 그 예수를 바라보자. 그 속성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세 가지 형상을 입고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첫째는 '로고스' 성경의 말씀이라고 번역이 됩니다. 말씀, 말씀 하지만은 말씀은 헬라어로 로고스입니다. 말씀은 무엇을 말합니까? 세상에 오시기 전 그 예수, 천국에 여러 곳에 계신 예수, 세상에 오시기 전 예수에 대해서, 그리스도로서 오시기 전 그 예수에 대해서 말씀, 요걸 두고서 말씀합니다. 그중에 아브라함이멜기세덱과 더불어 만났던 예수의 모습을 말합니다. 여러 가지로 이렇게 오시기 전의 그 예수, 그다음에 육신을 입어서 세상에 오신 예수, 요것을 앤사르코스라고도 말씀에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실 세상에 오셔서 33년 동안 귀한 역사를 이루었습니다. 그 예수, 33년 동안 세상에 계시면서 전도하시고, 수고하시고, 병 고치시고, 봉사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신 그 예수, 그다음에 세 번째의 예수는 예수께서는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부활하셔서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가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고 계십니다. 얼마나 귀한 것, 그 예수, 우리를 위하여 지금도 중보자의 모습으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고 계실 그 예수, 그리고 다시 오실 예수, 이 세 번째 예수를 생각하게 됩니다.

이러한 스데반은 이단이라고 헬라파 유대인들에게 매도받아서 십자가에, 아 돌에 맞아 죽습니다. 헬라파 유대인들, 다시 말해 친구입니다. 뭐 끝에까지 가기 같은 친구요. 가깝고도 큰일을 하던 분들입니다. 이분들에 의해서 그렇게 스데반도 순교를 당합니다. 이렇게 비극이 지상을 끝납니다마는 그렇게 순교하면서 하늘을 쳐다봅니다. 하늘을 바라봅니다. 땅을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자기를 향하여 이를 갈며 돌을 던지는 그 사람들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바로 어제까지 친구였는데 오늘 와서 자기를 향하여 돌을 던지는 그런 사람들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바라보지 않고 하늘을 바라보고 우러러보았더니 거기에 인자가 있어요. 거기에 인자,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 계신 것을 보노라. 인자란 말을 딱 한 마디 하는데요. 사실은 인자라는 말은 참 중요한 겁니다. 중요한 말입니다. 그래서 말이고, 그 의미도 깊습니다. **'사람의 아들'**이라는 말도 있지만은 그 뜻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 인자는 예수님께서 스스로 자기 자신을 말할 때 제자들이 예수님을 향해서 말할 땐 랍비여라고도 하고, 그리스도라고도 하고, 예수님이라고도 하고 아 이렇게 말합니다. 근데 그 하나님의 아들이라고도 하고 그러나 참 귀중한 말을 **'인자'**라 합시다. 인자 뭐냐? 세상 끝에 세상을 심판하실 때 나타날 하나님, 그 하나님이 **'인자'**합니다. 사람의 아들의 모습으로. 그래서 인자란 말은 가장 높은 이름입니다. 님께서는 세상에 계실 때 스스로 말씀하시기를 "인자가, 인자가..." 말씀합니다. 거의 40번 이상이라. 그런데 제자들은 예수님을 향해서 랍비여, 그리스도여, 하나님의 아들이여 라고는 말합니다. 예수님은 자기 자신을 가리킬 때 언제나 "인자가"라고 말하는데 어쩌면 제자들이 한 번이라도 "인자여"라고 말했으면 참 좋았지만 그런 말을 끝까지 못합니다. 딱 한 사람이 하는데 스데반이 순교할 때 하늘을 우러러 쳐다볼 때 "인자가 저기 서 계신 것을 보노라" 딱 한마디 고백을 합니다. 참 귀한 증언입니다. 인자, 그런데 스데반은 인자를 만났습니다. 돌에 맞아 죽이면서 하늘을 쳐다보았더니 거기에 인자가 계십니다. "인자 저기 있다" 하는 순간 아, 고통도 없습니다. 아무 근심도 없습니다. 아무 원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순교하면서 하는 말이 "하나님이여, 이 허물을 저들에게 돌리지 말아주세요" 하고 기도합니다. 그 말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이 해석을 합니다. "이 허물을 저들에게 돌리지 말아주세요." 무슨 말입니까? 그러면 누구에게 돌리란 말입니까? 이 순교하게 돌에 맞아 죽을 이 큰 원인이 누구에게 있다는 겁니까? "이 허물을 저들에게 돌리지 마세요." 그 속사정은 아무도 모르겠죠. 하지만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자, 이 허물을 저들에게 돌리지 말아주세요. 아니, 내게 이 허물이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아, 내가 저들에게 설교할 때 저들의 마음의 아픔을 찔러서 저들 분노케 해서 말입니다. 혹시라도 잘못해서 저들이 단결해 가지고 내게 돌을 던지는지도 모릅니다. 내가 지금 돌에 맞아 죽습니다마는 허물은 내게 있는지도 모릅니다." 라고 고백하는 겁니다. 십자가를 순교한 거니까 답을 허락하건대 관계해 줍니까? 참으로 억울한 말 아닙니까? 그렇지만은 그 일을 맞는 것은 원인은 내게 있어요. 그렇습니다. 근본 원인은 내게 있는 거예요. 참 귀한 하늘의 얼굴로 예수를 바라보는 순간, 이 인자를 보는 순간 아, 모든 정황의 잘못은 내게 있을까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예수를 바라보자는 이 귀한 그 예수를 또뿐만 아니라 오늘 본문의 "십자가를 참으사",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를 바라보자.

그리고 오늘 성경에 말합니다. "허다한 증인들이 있다." 내가 경주하고 있고 이렇게 열심히 신앙생활 하는데 나를 지켜보는 모든 구름 같이 둘러싼 증인이 있다. 그렇습니다.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영적으로 나를 위해 기도하는 분이 있습니까? 나를 고통하는 분이 있습니다. 내가 섬기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모든 사람들이 바로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입니다. 그걸 영적으로 잊지 않아요. 나는 고독하지 않아요. 난 혼자가 아니에요. 거룩한 성도의 가던 길을 함께 가고 있는 거예요.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 그 속에 내가 있어야 한다는 이 중요한 말씀입니다. 1984년 LA 올림픽이 열릴 때 아시아인으로서는 처음 다이빙에서 금메달을 딴 아가씨가 있습니다. 저우 지홍이라는 중국 아가씨인데 아시아인으로서는 다이빙에서 처음으로 올림픽에서 처음으로 금메달을 땄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깜짝 놀라서 물어보았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우아한 다이빙을 잘할 수 있게 되었나요?" 그런 빙그레 웃으면서 말합니다. "내가 어렸을 때 100m 경주를 나가는데 중간에 넘어져 가지고 꼴찌를 했습니다. 우리 어머니가 나를 일으키면서 '걱정하지 마라. 너는 될 사람이다'라고 했대요. 그때부터 달리기를 시작했는데 지금도 내가 다이빙대 위에 섰을 때 저 앞에 어머니가 서 있습니다. 어머니가 서서 빙글빙글 웃고 계십니다. 어머니 얼굴을 보면서 뛰어내렸다는 거예요. 그 금메달을 땄습니다. 참 중요한 얘기입니다. 결정적 시간에 내가 누구를 보느냐 하는 겁니다. 결정적 시간에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느냐? 누구를 생각하느냐가 중요합니다. 내가 이 세상을 떠날 때 마지막에 누구를 생각해야겠습니까? 초점을 분명히 해야 됩니다. 그래서 인자를 바라보자. 구름같이 허다한 증인들이 그 속에서 예수님을 바라봅니다.

그런가 하면 모든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벗어 버리고 그걸 버려요. 다 버려야 돼요. 그리고 깨끗한 심령으로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깨끗한 마음으로 주님을 바라본다 말입니다. 잭 니클라우스라고 하는 유명한 골프 선수가 있습니다. 골프를 아주 여러 번 금메달을 딴 그런 유명한 선수이지요. 골프 선수에게 물어보았습니다. 그는 이상하게 골프 대회에 나갈 때마다 골프 공을 칠 결정적인 시간에 가서 잠깐 기도를 하고 간다 말이에요. 많은 사람들이 궁금했어요. 기도하는 걸 알겠는데, 뭐라고 기도하는지, 무릎 기도하는지 물어보았습니다. "제발 우승하게 해주세요." 금메달 따게 해 주세요 라고 기도 하는가 해서 물어보았더니 그는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하나님이여, 저 트로피를 잊어버리게 해 주세요. 금메달을 생각하지 않도록 잊어버리게 해 주세요." 아멘 하고 친다는 거예요. 상급을 생각하고, 금메달을 생각하고, 트로피를 생각하면 벌써 운동은 빗나가는 거예요. 잊지 말아야 합니다. 모든 시험 벗어 버리고 벗어 버리고 참으사 인내로써 경주하며 십자가를 참으사. 십자가를 참으신 주님을 생각하라. 십자가를 참으시는 주님, 여러분, 십자가 참 억울하고 말도 안 되고 부조리한, 또 잔혹한 역사상 없는 일입니다. 그와 같은 고통은 없습니다. 지금 역사학자들은 말합니다. "인류 역사의 사람 처형하는 데 가장 큰 고통스러운 처참한 것이 십자가였다." 그래야 말입니다. 로마 사람들, 로마 황제들이 십자가를 처형하다가도 누가 어쩌 십자가 하는 말, 말 한마디 하게 되면 십자가란 말 한 사람을 처형했어. 왜? '위엄'이 떨어진다고. 끔찍한 얘기를 잠깐이라도 십자가를 생각하고 싶지도 않아요. 그 무서운 십자가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가장 사랑스러운 십자가입니다. 그 십자가를 바라보자. 십자가를 참으사. 그리스도론을 연구해 볼 것 같으면 주님의 십자가를 인내로 표현한 것은 여기 히브리서 밖에 없습니다. 십자가는 사랑이요, 십자가는 희생이에요. 오늘 히브리서에서는 인내요, 참으사라고 잊지 말아야 합니다. 여러분의 인내의 도수는 어느 정도입니까? 얼마까지 참을 수 있습니까? 얼마까지 여러분의 감정의 어두운 그림자가 끼지 않도록 깨끗한 마음으로 깨끗이 인내할 수 있습니까? 예수는 십자가를 참으사. 십자가를 인내로 설명하는 것이 히브리서의 특징입니다. 그래요. 예수님은 십자가를 졌지만 생각합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않겠느냐?" 십자가를 지우는 사람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이 일은 하나님의 뜻이요, 하나님이 내게 원하시는 것이라고 생각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않겠느냐?" 하면서 기쁜 마음으로 자원하는 마음으로 십자가를 지게 됩니다. 이것이 인내입니다. 보복이 아닙니다. 이갈이 하면서 참고 나가는 그러한 인내가 아닙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잔, 감사한 마음으로 지는 그런 인내, 그 다음 순종하시는 하나님 아버지를 생각하며 떠오르는 것은 그 하나님의 뜻 안에서 다 소화하고 참아나가는 그러한 인내라. 십자가를 참으신 그 예수를 바라보자. 이게 뭘 의미하고 있을까? 십자가를 참으신 예수를 바라보면 내가 참지 못할 일이 없다는 말입니다.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여러분 많이 보셨지만 요새 와서 그 여러분 같은 귀한 영화이니까 자꾸 보여주는 모양이에요. **<벤허>**라고 하는 것 요새도 몇 번 보고 또 보고 또 보아도 좋습니다. 구세군에서도 **<벤허>**를 성경 다음가는 책이라고까지 말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만큼 깊은 의미가 있어요. 그 줄거리가 뭡니까? 처음에서부터 끝까지 미움입니다. 속의 미움이 있어요. 억울함이 있어요. 감각이 있어요. 분노가 있어요. 억울함이 이걸 참을 수가 없어요. 끝까지 그렇죠. 참으면서도 참을 수가 없어요. 그러나 벤허의 마지막 장면이 기억이 납니다. 벤허가 말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 내가 옆에 있었는데 예수님 그 억울한 십자가를 지면서 '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사하소서. 저들이 하는 것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는 소리가 내 귀에 들려올 때 내 손에서 검이 떠나가는 것을 느꼈노라." 한마디가 중요합니다. 각인됩니다. 십자가를 바라볼 때 모든 미움이 사라집니다. 모든 억울함도 사라집니다. 모든 분노와 감도 사라집니다. 잊지 말아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무엇을 바라보고 삽니까? 이제 남은 시간에 무엇을 또 바라보아야 하겠습니까? 호화한 것, 무서운 것, 공허한 것만 합니다. 예수를 바라보자. 그로부터 생명력이 나오며 용기가 생깁니다. 바라보면 소망이 보입니다. 바라보면 약속이 보입니다. 그리고 오늘의 모든 문제가 합력하여 선을 이룰 것을 알고 확신하게 됩니다. 예수를 바라보자.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저희들 교회적으로 불러 주심을 감사합니다. 우리는 이 땅에 살면서 예수를 믿고 예수님의 마음을 따라간다고 하면서도 늘 세상을 바라보았고, 세상일을 생각했고, 세상에 미련해서 희원하지 못하고 있었기에 항상 비굴하기도 하고 두려워하기도 하고 초라한 가운데 살아왔습니다. 주요, 간구하나니 다시 새로운 마음을 써서 주님을 바라보게 하시고 십자가를 참으신 자를 생각하며 그로부터 용기를 얻고 지혜를 얻고 능력을 얻고 생명력을 얻어서 넉넉하게 이기고 승리할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람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 능력으로 함께 하시고 그 생명력으로 오늘 우리를 지켜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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