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8월 31일] 내게 배우라 (마 11:28~30) - 곽선희 목사
https://www.youtube.com/watch?v=AzgyUqFAJZo
오늘 아침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봉독해 드리겠습니다. 신약 성경 마태복음 11장 28절부터 30절 말씀입니다. 신약 성경 18면이 되겠습니다. 마태복음 11장 28절입니다. 이 계시의 말씀을 봉독할 때 다 함께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신지라." 아멘.
사람이 세상을 떠날 때 마지막에 맨 마지막으로 하는 말, 이걸 임종어라고 합니다. 마지막 말 여러분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한평생 말을 많이 했지만은 맨 마지막에 하는 말 중요합니다. 숨 넘어가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하는 딱 한마디 말. 그것이 그 인생의 결론이요 목적이요 목표요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 그 모진 고난, 그 십자가의 아픔과 고난을 다 당하는 그 순간 맨 마지막에 하신 말씀이 뭡니까? 놀랍게도 "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놀라운 말씀입니다.
십자가에서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이 "저들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마음 깊은 곳에 있었던 그 귀한 복음이 여기서 이렇게 나타나게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겁니다. "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그런데 이유는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불쌍히 여기는 겁니다. 몰라서 그래요. 다 모르기 때문이야. 다 모르기 때문에 이 같은 큰 죄를 저지르고 있고 하나님 앞에 잘못 가고 있다. 모르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귀중한 말씀입니까? 알면 됩니다. 알아야 됩니다. 알게 해야 됩니다. 그리고 증거해야 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예수님 말씀이 모든 사람의 죄를 용서하소서. 왜요? 모르기 때문입니다. 몰라서, 무식해서 그 같은 큰 죄를 범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십자가상에서 말입니다.
그런데 이와는 좀 반대로 대제사장 가야바가 예수님을 재판할 때, 예수님을 심판할 때,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야 되느냐 말아야 되느냐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대제사장 가야바가 하는 말입니다. "너희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구나. 너희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구나. 한 사람이 죽어서 온 백성이 평안할 수 있다면 죽어야지. 그게 무슨 이익이 있느냐?" 이런 말을 합니다. 이것이 얼마나 무서운 죄입니까? 오늘 이 세상을 혼란하게 만드는 엄청난 유물론의 철학의 근본이 여기 있는 겁니다. 죽어서 편안할 수 있다면 죽어야지. 죽여서 편안할 수 있다면 죽여야지. 그것이 유물사관의 철학입니다. 가야바가 그 말을 합니다. 예수님이 의인인지 아닌지, 하나님의 아들인지 아닌지, 메시아인지 아닌지 알 바가 아니야. 예수가 죽어서 온 백성이 정치적으로 편안할 수 있다면 죽어. 이것이 가야바의 철학이며 오늘의 유물사관의 철학입니다. 대단히 무서운 말씀입니다.
결국은 모른다는 것입니다. 가야바는 안다고 자부했습니다마는 모르는 중에도 가장 모르는 사람이 됐습니다. 모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그릇된 지식, 잘못된 지식처럼 인간을 파괴하는 일이 없습니다. 인간을 불행하게 하는 일이 없습니다. 여러분, 나이 많은 분들 이제 지난 일생을 돌아보면서 하는 생각이 뭡니까? 그때 그러지 말았어야 되는데. 그것이 불행입니다. 모르기 때문이야. 몰랐기 때문이에요. 모든 불행의 원인, 죄의 원인 그것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 모르는 것을 알게 하는 것이 전도요 복음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게로 오라.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게 와서 쉬라. 내게 배우라." "내게 배우라" 하는 말을 헬라어로는 '마데 아포무' 원래는 제자 되라는 뜻입니다. 그냥 배우라는 말이 아닙니다. **'마데테스'**라는 말이 제자란 뜻입니다. 내 제자가 되라. 내게 배우라. 예수님 앞으로 가시면서 내게 배우라 말씀하십니다. 옛날에 중요한 말입니다. "내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여러분 오늘 대단히 중요한 말씀을 한 말씀 드립니다.
성도와 믿는 사람, 우리 말하면 신자죠. 예수를 믿는다 하는 것과 예수의 제자라 하는 것은 다릅니다. 많은 사람들이 신자 됨을 생각하고 그것으로 만족하려고 합니다. 아니요. 신자는 되는데 제자는 아닙니다. 이걸 알아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마음속 깊은 곳에 알게 모르게 기복적 신앙의 욕구가 있습니다. 예수를 믿어서 복 받아야지. 예수를 믿어서 사업도 잘돼야지. 예수를 믿어서 건강해야지. 예수를 믿어서 복 받은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런 마음이 있어요. 예수님 당시에도 마찬가지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 앞에 나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전부 다 기복적 신앙이 있어요. 그래서 시각장애인은 예수님을 만나서 눈을 뜨기 원하고 나병환자는 예수님을 만나서 깨끗하기 원하고 배고픈 자는 예수님을 만나서 배부르길 원하고. 여러분 그것이 예수님을 따라다니는 사람들의 그 군중의 기본 욕구예요. 이건 기복적인 욕구입니다. 또 그 욕구가 채워지기도 했습니다. 예. 시각장애인이 예수님 만나서 눈을 떴습니다. 나병환자가 깨끗해졌습니다. 그렇죠? 거기까지. 그러면 이제 묻습니다. 눈을 떴습니다. 그 사람이 교인이냐? 그 사람이 예수를 믿는 사람이냐 이겁니다. 거기까지 예수님이 내 눈을 뜨게 했습니다. 예수님이 내 몸을 깨끗하게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신자예요. 믿는 사람이 분명해요. 은혜 받아서요. 예수님의 능력을 체험해서요. 예수님의 신비로운 능력을 몸으로 경험했어요. 거기까지는 신자예요. 믿는 사람이 틀림없어요. 그걸 부정하고 싶지 않아요. 그러나 그가 예수님의 제자는 아니에요.
예수님께서 언젠가 좀 서글픈 말씀을 하셨죠. 나병환자 열 명이 있었는데 "우리를 고쳐 주세요." 예수님께서 "그래 내가 고쳐 줄 테니까 너희들이 제사장에게 가서 보여라." 그래서 그 말을 믿고 세상을 향해서 가는데 몸이 나은 것을 느꼈어요. 아, 나병이 깨끗해진 것을 느끼고 감동해서 사마리아 사람 하나만은 예수님께 와서 "예수님, 제 나병을 고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고 사례를 했어요. 그때 예수님이 하신 한 말씀이 아주 서글퍼요.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여러분 그 아홉이 나병 고침 받지 못했습니까? 그건 아니에요. 분명히 고침 받았는데 저희들이 가고 싶은 대로 먼저 가 버렸어요. 예수님 앞에 오질 않았어요, 여러분. 신자도 많아요. 성도 많아요. 믿는 사람이라고 하는 사람 많아요. 예수를 믿어서 기적을 체험한 사람도 많아요.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는 많지 않아요. 여러분 신자와 예수를 믿는 사람과 제자는 다릅니다. 여러분 어느 쪽에 속했습니까? 오늘 예수님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내게 와서 배우라. 나를 따르라. 내게 배우라.
여러분 배운다는 말은 뭡니까? 물론 믿음이죠. 믿고야 배울 수 있으니까. 신앙을 강조하는 건 틀림없어요. 그러나 신앙만이 아니에요. 신앙에 따르는 행동이 오죠. 신앙에 따른 행동이 있어야지 믿기는 하는데 아멘 아멘은 하는데 행동이 없어. 감성에도 없고 지성에도 없고 행동에도 없어요. 윤리에도 없어. 사회생활에도 없어. 그러면 예수의 제자는 아니죠. 예수님 말씀하십니다. "내게 와서 배우라. 나를 따르라. 나를 배우라. 내 제자가 되라."
여러분 교육이란 교과 과정이 필요합니다.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니에요. 여러분 다 공부했었죠. 유치원서부터 시작해서 대학까지 공부하는 동안에 얼마나 많은 세월이 갔어요. 얼마나 많은 시간이 있어야 했어요. 얼마나 많이 마음에 갈등이 있었어요. 버려야 하고, 이겨야 하고, 극복해야 하고, 게으름을 참아야 하고, 부지런해야 합니다. 아, 그 공부라는 거. 그 쉽지 않은 거예요. 그거요. 저도 하느라고 많이 해 보았습니다마는 아, 공부하려면 얼마나 많은 절제가 필요합니까? 마음대로 잡니까? 마음대로 먹습니까? 마음대로 갑니까? 말이에요. 공부에 필요한 만큼만 자고 공부하는 데 필요한 만큼만 먹고 공부하는 데 필요한 만큼만 쉬고 절제해야지. 그게 바로 우등생 아닙니까? 그게 제자 아닙니까? 예수님을 따른다 하면 예수님을 본받아야죠. 예수님을 스승으로 그리고 예수님처럼 생각하고 예수님처럼 행동하고 예수님처럼 마음먹고 예수님처럼 사람을 대하고 배워야죠. 한평생 공부하는 거예요. 예수님의 제자, 예수님의 제자로서 교육을 받아 나가는 과정에 있어서 교과 과정 커리큘럼이 필요한 거예요. 커리큘럼이.
가끔 그런 경우가 있어요. 어떤 여학교 선생들이 그런 말을 많이 해요. 여학교, 고등학교 학생들 보면 수학을 잘 못 해요. 여자들이 아주 화장품 같은 거 얼굴 만지는 데는 선수지만 수학하는 데는 남학생들은 그래도 이거 수학을 해야 앞으로 출세도 하고 대학도 가고 할 텐데 생각하지만 여학생들은 그렇지 않대요. 얼굴만 예쁘면 되는 거야. 그게 무슨 필요하냐? 그래서 전반적으로 여자 학교 학생들은 수학을 잘 못 해요. 그러나 아시는 대로 수학은 필요한 것이거든요. 그 수학이라는 과정을 거쳐야 모든 학문이 통하는 거예요. 그런데 그와 같이 때때로는 우리가 볼 때는 이런 시험, 이런 과정은 내게 없었으면 좋겠다 싶어요. 그러나 예수의 제자로서 성장해 나가는데 있어서는 그 커리큘럼에 그 교과 과정에 이게 필요해요. 그걸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셨어요.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워 나가는데 25년 걸렸어요. 이걸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에서 인도해서 애굽에서 인도해 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 되는 데까지 40년, 40년이 걸렸어요. 이걸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 예수의 제자가 된 다음에 이런 시험도 당해요. 저런 것도 당합니다. 예수 믿으면 복 받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병들었어요. 성공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실패했어요. 왜? 그 과정이 필요하니까. 그게 하나의 커리큘럼이요. 이걸 통해서 주님 앞에 나아가고 주의 제자가 될 수 있고 주의 제자가 돼야 주의 마음을 알게 되고 주의 뜻을 알게 되고 주의 뜻을 따르게 되거든요. 이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주께서 보여 주신 모델링(Modeling), 표본을 따라야 됩니다. 주님이 기도하신 것 기도하고 주님이 사랑하신 것처럼 사랑하고 주님이 38년 된 환자를 찾아간 것처럼 외로운 자를 찾아 만나기도 하고 예수님의 마음 예수님의 행위 하나하나 본받아 나가는 것이 본받아서 배우는 거예요. 예수님은 앉아서 가르치지 않았어요. 회당에서 가르친 게 아니에요. 예수님 말씀이 "날 따르라." 끝. 나처럼 살고 내가 가는 곳에 가고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생각하고 내가 만나는 것처럼 만나고 내가 행하는 것처럼 행하라. 아니 내가 죽는 것처럼 죽어라. 그래야 내 제자라. 여러분 이것이 예수님의 제자 된 모습이요. 예수님을 배워가는 길이에요. 아, 깊이 배워야 됩니다. 예수님 말씀합니다. "오라. 내게 와서 내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이 말씀에는 아주 재미있는 일화가 따릅니다. "내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고맙게도 이스라엘 사람이나 한국 사람이나 밭갈이 하는 모습이 같아요. 밭이 갈 때 보습 쟁기를 들고 밭을 갈지만은 소를 두 마리를 써요. 두 마리가 함께 걸어요. 한 멍에를 두 마리가 메고 가는 거예요. 암소, 황소 같이 가요. 제가 그런 장면을 많이 보았습니다. 두 마리가 두 마리 소가 한 보습 쟁기를 멍에를 메고 끌고 갑니다. 그러면은 꼭 같이 갑니다. 이쪽 소가 가는 대로 같이 갑니다. 이쪽 소와 함께 갑니다. 박자를 맞추어서 발을 맞추어서 똑같은 방향으로 함께 가는 거예요. 그게 바로 예수님 말씀이요. "내 멍에를 메고 함께 매자. 내가 이쪽을 멜 테니까 네가 그쪽을 매라. 함께 가자." 얼마나 귀중한 말씀입니까? 그런고로 어디 가느냐 걱정할 것도 없어. 결과가 어떻게 되느냐도 걱정하지 마라. 내가 이쪽을 멨잖아. 이쪽은 내가 있잖아. 너는 따라오기만 하면 돼. 이것이 주님의 말씀입니다. "내 멍에를 메고 함께 매고 내게 배우라." 그렇습니다. 함께 매야 배우게 됩니다. 함께 생활해야 배우게 됩니다. 잊지 말아야 합니다. "내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아, 얼마나 위로가 되고 힘이 되고 안심스러운 말씀입니까? 함께 가면 이제는 그리스도께서 책임을 집니다. 내 책임 없습니다. 그냥 따라만 가면 됩니다. 주님 말씀하신 대로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따라가면 됩니다.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내가 어디로 가느냐? 이 운명이 어떻게 되느냐? 쓸데없는 걱정하지 마세요. 그냥 따라가세요. 아무 말도 하지 말고 아무 근심도 하지 말고 그리스도와 함께 멍에를 메고 같은 목적, 같은 방향으로 같이 박자를 맞추어서 갑니다. 예수님이 말씀을 짧게 한 말씀으로 하십니다. "I am the way." 내가 길이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귀한 말씀입니다. "I am the way." 내가 그 길이다. 내가 가는 길. 그게 거기 길이다. 그게 영생으로 가는 길이다. 그것이 마땅한 예수의 제자가 가야 할 길이다.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예수님 말씀합니다. "나는 온유하고 겸손하다." 여러분 제자도의 기본이 뭡니까? 온유 겸손이에요. 공부 잘하는 학생이 어떤 마음입니까? 온유 겸손한 사람이에요. 교만해 가지고 건방져 가지고 심지어 선생님의 말까지도 비판하고 반항하고 이런 학생은 우등생이 될 수가 없어요. 좋은 제자가 될 수가 없어요. 예수님 말씀합니다. "나는 온유하고 겸손하다." 얼마나 겸손해야 되느냐. 여러분 빌립보서 2장 5절에 보면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자기를 비워" 자기를 비워서 종의 형체를 가져 십자가에 죽으셨느니라. 온유와 겸손을 배우라. 여러분 온유와 겸손이 어디까지 왔습니까? 주님을 바라보며 온유하고 겸손한 우등생이요. 좋은 제자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능력을 체험하게 되고 예수님의 영광도 함께 얻을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몇 번 생각해도 놀랍습니다. 어떤 유명한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생애에 대해서 연구를 하면서 예수님의 **인간적인 면(Human)**을 연구했습니다. 네. 연구하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마지막에 큰 감동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온유와 겸손. 그리고 끝에 가서 놀랍게도 예수님의 12제자가 다 순교했습니다. 그 제자를 보고 그 스승으로 아는 겁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다 그렇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 십자가에 죽으셨는데 내가 어떻게 예수님처럼 십자가에 죽을 수 있느냐? 거꾸로 해 달라. 베드로는 거꾸로 십자가에 죽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제자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의 12제자가 다 순교를 합니다. 이제 예수님을 보아야 됩니다. 그 제자의 그 스승입니다. 그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 예수님 말씀하시기를 "내게 오라. 나는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게 배우라. 내 멍에를 함께 메고 가자. 같은 방향으로 말입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기도하십시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아침도 주님 전으로 저희를 불러 주심을 감사합니다. 이미 저희들을 만나 주셨고 저희들을 통하여 주님을 알게 해 주셨고 주의 사람 되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아직도 주의 제자로서는 너무 미흡한 것이 많은 것을 생각하며 부끄러운 마음으로 주님 앞에 기도합니다. 원컨대 착실한 주의 제자가 되어서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를 따라서 예수님의 12제자처럼 확실한 주의 제자가 되어 본인도 하나님께 영광될 뿐만 아니라 우리의 스승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 큰 기쁨과 영광을 드리는 그러한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의 사람 그리고 예수의 제자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마태복음 11:28-30 말씀에 근거한 설교 요약
본문은 마태복음 11장 28-30절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신지라.")**을 바탕으로, '신자'와 '제자'의 차이를 강조하며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배우고 따를 것을 권면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1. 💬 임종어(臨終語)와 '앎'의 중요성
- 예수님의 임종어: 십자가에서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은 **"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이는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입니다.
- 이는 예수님의 깊은 마음속에 있던 복음이 드러난 것으로, 인간에 대한 불쌍히 여기는 마음과 '모르기 때문에' 죄를 짓는다는 통찰을 보여줍니다.
- **모르는 것(무지)**이 모든 불행과 죄의 근본 원인이며, 이 모르는 것을 **알게 하는 것이 곧 복음(전도)**입니다.
- 대제사장 가야바의 철학: 예수님을 재판할 때 가야바는 **"너희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구나. 한 사람이 죽어서 온 백성이 평안할 수 있다면 죽어야지"**라고 말했습니다.
- 이것은 오늘날 유물론적 사관의 근본이며, 개인의 의로움이나 진리보다 정치적 안정과 이익을 우선하는 무서운 죄악입니다.
- 가야바는 안다고 자부했지만, 가장 모르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잘못된 지식은 인간을 파괴하고 불행하게 만듭니다.
2. 🚶♂️ 신자(信者)와 제자(弟子)의 차이
- 예수님은 **"내게로 오라. 내게 와서 쉬라. 내게 배우라"**고 말씀하시며, 헬라어 **'마데 아포무'(배우라)**는 원래 **'제자가 되라'(마데테스)**는 의미입니다.
- 신자(믿는 사람): 예수님을 믿어 기복적인 욕구를 채우고, 은혜와 기적, 능력을 체험한 사람입니다.
- (예: 눈을 뜬 시각장애인, 깨끗해진 나병환자)
- 나병 고침 받은 열 명 중 아홉 명은 고침 받았음에도 예수님께 돌아와 감사하지 않고 자기 길로 가버렸듯이, 기적을 체험한 사람이 모두 예수님의 제자는 아닙니다.
- 제자(弟子): 신앙에 따르는 행동이 있으며, 예수님께 배우고 따르는 사람입니다.
- 단순히 믿음만 있는 것이 아니라, 믿음에 따른 윤리적, 사회적 행동과 실천이 있어야 합니다.
3. 🎓 제자도의 핵심: 배우는 과정과 멍에
- 교육(커리큘럼): 제자가 되는 것은 하루아침에 되지 않습니다. 교육 과정(커리큘럼)이 필요하며, 우등생이 되려면 절제, 극복, 인내가 필요하듯이 제자에게도 이러한 과정이 필요합니다.
-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25년, 이스라엘 백성을 40년 동안 훈련시키셨습니다.
- 예수님을 믿어도 병들거나 실패하는 것은 제자로서의 성장에 필요한 **교과 과정(커리큘럼)**일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주님의 마음과 뜻을 알게 됩니다.
- 본받음(Modeling): 예수님처럼 생각하고, 행동하고, 사람을 대하고, 기도하는 등 예수님의 삶 전체를 본받아 배우는 것이 제자도입니다.
- 예수님은 **"날 따르라"**고 말씀하시며, 자신의 삶 자체가 본이 되어야 함을 강조하셨습니다.
- 멍에를 메고 배우라: 두 마리 소가 한 멍에를 함께 메고 발을 맞추어 같은 방향으로 가듯이, 주님과 함께 멍에를 메는 것은 주님을 따라 같은 목적과 방향으로 함께 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 이것은 제자의 책임이 경감되고, 주님께서 책임을 지시는 위로와 안심을 줍니다. 걱정하지 말고 주님이 가시는 대로 따라가기만 하면 됩니다.
-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고 하셨습니다.
- 온유와 겸손: 제자도의 기본 조건은 온유와 겸손입니다.
- 교만하고 반항적인 학생이 우등생이 될 수 없듯이, 제자도에도 온유와 겸손이 필수입니다.
- 예수님은 하나님의 본체이시면서도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져 십자가에 죽으신 극도의 온유와 겸손을 보이셨습니다 (빌립보서 2:5).
- 온유하고 겸손한 제자들은 결국 스승인 예수님처럼 순교의 영광을 얻게 될 것입니다.
🌟 결론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자는 예수님께 나아와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그분의 멍에를 함께 메고 배우는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그분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며, 확실한 제자가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스승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 기쁨과 영광을 드려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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