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8월 03일] 일어나 걸어가라 (요 5:1~9) - 곽선희 목사
https://www.youtube.com/watch?v=neHztRMa_MU
오늘 아침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봉독하겠습니다. 신약성경 요한복음 5장 1절로 9절까지 있는 말씀을 봉독하게 되겠습니다. 신약 성경 149면입니다. 요한복음 5장 1절부터 봉독하게 됩니다. 이 계시의 말씀을 봉독할 때에 다 함께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후에 유대인의 명절이 되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니라.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 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 그 안에 누운 병자, 맹인, 다리 저는 사람, 혈기 마른 사람들이 누워 물이 움직이기를 기다리니, 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움직이게 하는데, 움직인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라.
거기 38해(년) 된 병자가 있더니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기를 원하느냐?" 병자가 대답하여, "주여, 물이 움직일 때 나를 못에 넣어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그 사람이 곧 일어나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이 날은 안식일이니 유대인들이 병 나은 사람에게 이르되, "안식일인데 네가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이 옳지 아니하니라." 대답하되, "나를 낫게 한 그가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더라." 하니, 그들이 묻되, "너에게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한 사람이 누구냐?" 하되, 고침을 받은 사람은 그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니, 이는 거기 사람들이 많으므로 예수께서 이미 피하셨음이라. 아멘.
개어(Kier)라고 하는 교수가 쓰신 저서의 제목이 특별히 마음에 좀 걸려드는 그런 저서가 있습니다. '영원히 살 것처럼 배우고, 내일 죽을 것처럼 생각하라.' 여러분, 영원히 살 것처럼 배우고, 내일 죽을 것처럼 생각하라. 이런 제목의 책이 있습니다. 그 책 중에 여러 가지 귀한 말씀이 많이 있습니다만은 특별히 유대 사람들의 기도 내용, 기도 자세를 많이 연구해서 분석해 주는 그런 내용이 있습니다. 그 유대 사람들이 기도하는 기도를 히트파엘(Hitpael)이라고 딱 한마디로 요약했습니다. 그 히트파엘이란 뭐냐? 하나님 앞에서 저울질하는 것이다. 내가 하나님 앞에 합당한가? 합당하게 살았나? 합당하게 말했나? 합당하게 생각했나?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내놓고 저울질하는 것이다. 그것이 기도다. 이렇게 이스라엘 사람들의 기도를 깊이 연구하고 분석해서 우리에게 평가해 주고 있습니다. 내 소원을 하나님 앞에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자기 자신을 내놓고 하나님이 주신 은혜 앞에 내가 합당하게 살았나?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만한 그런 그릇으로 살아갔는가? 하나님 앞에서 자기 자신을 냉정하게, 아주 경건하게 평가하는 것. 그것이 기도다. 이렇게 독회는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영국의 작가 조지 엘리엇을 여러분이 잘 아실 겁니다. 그가 우리에게 가르쳐 준 교훈, 아주 지혜로운 교훈이 있습니다. '사람은 감옥에 살고 있다.' 한마디로 말하면 자유하지 못하다. 생각이나 행동에 있어서 자유하지 못하고 늘 감옥에 갇힌 것 같은 그런 감옥 생활을 하고 있다. 다섯 가지 감옥을 그는 지적해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가 자기 사랑의 감옥. 자기를 너무 사랑해. 자기 사랑만 하다 보니까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없어요. 할 수가 없어요. 거기서 나 자신도 무너지는 거예요. 자기 사랑이라고 하는 극단적 감옥에 갇혀 있다. 두 번째는 자기 중심적인 생각에 사로잡혀서 근심의 감옥. 걱정이 많아. 이 생각하면서 걱정에 매어서 근심의 감옥에 있고. 세 번째는 지금은 다 어렵고 옛날 일은 좋았던 것 같아. 자꾸만 옛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지나간 옛날을 그리워하는 향수의 감옥. 네 번째는 다른 사람을 부러워하는 선망의 감옥. 나는 이렇게 수고하고도 잘 못 되는데 다른 사람들은 수고 없이 잘 사는 것 같아. 그래서 다른 사람을 무조건 일단 부러워하는 거죠. 그 선망의 감옥이 있다. 또한 가장 무서운 것은 삶을 사랑하지 못하는 증오의 감옥. 자기 자신의 삶 자체를 증오하고 미워하고 그렇게 사는 건 참 비참한 거죠. 다시 한번 정리하면은 자기 사랑의 감옥, 근심의 감옥, 향수의 감옥, 선망의 감옥, 증오의 감옥, 이런 감옥에 갇혀서 그 심령이 자유하지 못한 가운데서 살아가는 것이 인간이다라고 엘리엇은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성경에는 이 모든 것에 대한 해답을 줄 수 있는 대단히 중요한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 중에 하나, 대표적인 사람이 아니었겠나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병에 걸려서 38년 동안을 누워 있었으니까요. 가끔 우리가 병원에 입원할 때도 며칠, 몇 달, 몇 년 뭐 그런 수 얘기를 합니다마는, 여러분 38년 동안을 환자로 누워 있었다면 인생을 그렇게 다 살아버린 거예요. 아마도 가장 불행한 사람이 아니었겠나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가 있는 곳은 어떤 곳이냐? 베데스다 못가입니다. 베데스다라는 말은 히브리 말로 '집'이란 뜻이고, '에스더'라는 말은 '자비'란 뜻입니다. 베데스다라는 말은 **'자비의 집'**이란 말입니다. 그 자비의 집이라고 하는 그런 이름을 가진 연못가에 많은 환자들이 와서 그저 어찌 생각하면 허황한 기대를 가지고 누워 있습니다. 거기에 있는 지가 38년. 참 생각해 봅시다. 이렇게 문에 사람이 있을까? 이렇게 참 인생을 이렇게 살아도 되나? 감옥 중에 가장 무서운 감옥에서 38년을 고생한 환자의 이야기가 오늘 본문에 있습니다.
자, 그런데 예수님이 이 사람을 방문합니다. 오늘 성경을 자세히 보면요, 참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명절입니다. 이건 축제입니다. 그런고로 시골에서 예루살렘에 올라간 사람들이 올라가서는 축제 분위기에 쌓여 가지고 여기서 손님을 만나고 저기서 친척을 만나고 이거 친구를 만나고 이러느라고 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다 흩어진 것 같아요. 본문에 보면은 다 흩어졌어요. 그래 다 자기 나름대로 축제 분위기 속에 흩어졌는데 예수님은 바로 그 시간 혼자서, 오늘 본문은 언제나 12제자를 수행하고 다녔는데 이 시간만은 혼자서 혼자서 베데스다 연못을 찾아갔습니다. 찾아가서 여기에 환자 38년 된 환자를 만나 주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이 사람에게 인사한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딱 한마디예요. "낫기를 원하느냐?" 다른 말로 조금 주를 달아야 될 것 같습니다. "아직도 낫기를 원하느냐?" 그 말이지요. 낫기를 원하느냐가 아니에요. 38년 됐는데 아직도 소망을 버리지 않고 기대를 가지고 낫기를 원하느냐라고 물었어요. 그럴 때 이 사람이 "예, 낫고 싶습니다. 지금도 낫고 싶습니다." 이렇게 대답하지 못했어요. 이게 정직한 대답인데 그렇지 못하고 "연못에 물이 동할 때 나를 연못에 넣어 줄 사람이 없습니다." 이건 전설이에요. 하늘에서 천사가 내려와서 여기 물을 이렇게 움직이면 그 조용한 연못인데 가끔 물이 움직일 때가 있어요. 그건 천사가 와서 목욕을 하는 거다라고 생각을 해요. 그때 먼저 들어가는 환자는 어떤 병자라도 낫는다. 그런 전설이 있어서 이건 어떻게까지나 미신적이고 전설이에요. 많은 사람들이 이걸 믿고 그런 장기 환자들이 여기 와 있어요. 그리고 물이 동하기를 기다려 하다가 물이 동할 때 다 먼저 들어가려고 하는데 이 38년 된 환자는 도와줄 사람이 없어. 어기적어기적 하다 보면 다른 사람이 다 먼저 들어가고 자기는 못 들어가요. 바로 이런 사람이에요.
이 사람의 마음속에 한 가지 소원이 있어요. 물속에 내가 먼저 들어갔으면 좋겠다. 물이 동할 때 내가 들어갔으면 좋겠다. 그러려면은 나를 도와줘야 될 사람이 있는데 나를 도와줄 사람이 없어. "나를 도와주는 사람이 없습니다."라고 말하는데 헬라 원문대로 보면요. 안트로폰 우케코(anthropon ouk echo)라는 말이에요. 안트로포스(anthropos)란 말은 '사람'이란 말이고요. 에코(echo)란 말은 'have' 동사입니다. '가졌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직역을 하면은 '한 사람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나를 도와줄 한 사람이 없습니다.' 내가 누워 있다는 사실만 비참한 게 아니고 내 뜻을 알고 혹이라도 나를 좀 도와줄 사람 한 사람이 없습니다. 나를 이해하고 나를 위해서 수고해 줄 한 사람이 없다고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님이 이 말씀을 듣습니다. "나는 한 사람을 헬라 원문대로 보면 가지 못했습니다." 해요. 영어로 번역하면은 "I have not a man." 한 사람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세상의 사람이 이렇게 많아도 나를 도와줄 사람 한 사람을 내가 가지지 못했습니다. 당신이 그 한 사람이 되시길 바랍니다. 이 사람의 소원입니다. 예수님을 향해서 당신이 물이 동할 때 내가 좀 먼저 들어가도록 나를 도와줄 그 한 사람이 돼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이 말씀을 듣고 전혀 관계없이 이 사람을 향해서 명령을 합니다. "일어나 걸어가라. 일어나 걸어가라." 이거는 쓸 수 없는 얘기입니다. 상상도 못 할 얘기입니다. "일어나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이 사람이 벌떡 일어납니다. 놀라운 기적을 경험하게 됩니다. 여기에 누워 있던 이 장기 환자 한번 상상을 해 보세요. 자, 건강을 잃어버렸죠. 38년 동안 누워 있다 보니 아무것도 가진 게 없어요. 가족도 없고 친구도 없고.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의식적으로 보면 기대감도 없어요. 뭐 물이 동할 때 들어가면 꼭 낫는다 그 생각도 아니에요. 못 낫거나 안 낫는 게 중요하지 않아. 내가 먼저 들어가 보았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 그 정도입니다. 다시 말하면 소원마저 병들었어요. 세계관도 병들었어요. 신앙도 미신화됐어요. 정상적 신앙이 아니에요. 미신적 신앙이에요. 잘못된 신앙이에요.
그러나 오늘 성경을 깊이 읽어야 됩니다. 예수님께서 이 사람을 향해서 "이 사람아 정신 차려! 38년 동안 누워 있다 보니까 정신도 병들었구만. 당신의 세계관, 당신의 가치관, 당신의 신앙관, 당신이 가진 감정 그 자체가 벌써 병들었어. 몸만 병든 게 아니야. 네 정신도 병들었어."라고 지적하실 수도 있는데 예수님은 이 사람의 이 미신적인 잘못된 신앙에 대해서 비판하지 않았습니다. 참 비판하지 않았습니다. 너무 귀한 얘기입니다.
저는 이 성경을 특별한 각도에서 봅니다. 제가 인천에서 목회할 때 심방을 많이 합니다. 이 집 저 집 다니면서 심방하다 보면은 뭐 참 특별히 특별히 제 마음에 괴로운 것이 뭐냐면 집집마다 이렇게 부적이 많아요. 그냥 여기저기 울긋불긋한 거 뭐 부엉이 대가리 뭐 이런 거다. 아, 자 어떡하면 좋겠습니까? 죄송하지만 우리 여전도사님은 못마땅해 가지고 다 치워버려! 막 이럽니다. 그러면 제가 얘기합니다. "그대로 두세요. 저 사람은 저걸 믿고서 오늘까지 살아왔는데." 치우라 하지 말라고. 오늘 예수님께서 이 불쌍한 사람, 물이 동할 때 나를 넣어 줄 사람이 없습니다라고 하는 이 미신적이고 잘못된 세계관, 잘못된 신앙에 붙들려 있는 걸 보면서 책망하지 않았어요. 그것도 병이니까. 몸만 병이 아니에요. 정신도 병이야. 세계관도 병이요. 철학도 병이요. 인생관도 병이거든요. 이 병리적인 상태에 병들어 있는데 예수님 꾸짖지 않았습니다. 아무 말씀도 하지 않았습니다. "야, 이 정신 차려라."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쓸데없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네." 하시지 않았습니다. 딱 한마디 말합니다. "일어나 걸어라." 여러분, 대단히 귀중한 말씀입니다. 모든 것을 극복하고 이제는 내 믿음이 아니고, 내 세계관이 아니고, 내가 명령을 한다. 말씀이 명령하고 계시다. 말씀에 따르라. 일어나라. 걸으라. 벌떡 일어납니다.
여기서 엄청난 역사가 나타납니다. 놀라운 것은 이 38년 된 이 병리적인 환자에게 꾸짖지 않으셨다는 겁니다. 그리고 명령하십니다. 선포하십니다. "일어나 걸어라." 그때 이 사람이 지금까지 가졌던 생각 다 버리고, 예를 들면 "헛소리 하지 말고 나 물에 들어가도록 좀 도와주세요."라고 자기 고집을 부리지 않고 "일어나!" 하시니 일어났습니다. 지금까지 가졌던 모든 생각 싹 버리고 일어나 일어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고향을 떠나라. 떠났습니다. "왜 떠나라? 어디로 가느냐?" 묻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신앙입니다.
우리가 가졌던 모든 잘못된 생각, 불안과 공포와 근심과 걱정과 잘못된 세계관, 가치관 다 잊어버리고 주님이 하시는 말씀에만 초점을 맞춰요. "일어나라! 일어나 가라!" 가는 거예요. 주저앉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성경을 좀 더 계속해 읽으면 재밌는 장면이 나와요. 바로 이 날이 안식일이었어요.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까 사람들이 "저 사람이 안식일 범한다."고 또 시비를 거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 대답하는 말 보세요. "날더러 일어나 걸어라 말씀하시는 분이 걸어라 하니까 걷는 거예요." 안식일인지 뭔지 알 바가 아니야. 나는 대답합니다. 담대하게 대답합니다. 이것이 얼마나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큰 잘못도 되고 죄가 된다는 것도 모릅니다. 알 바가 아닙니다. 예수님이 일어나 걸어라 하신 고로 걷습니다. 끝. 주님의 말씀에 대해서 깨끗한 순종을 합니다. 뭐 사람들이 어떻게 말할까? 어떻게 비평할까? 그 뒤가 어떻게 되나?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이거를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건강한 사람에게 말씀하시듯이 말씀하십니다. "일어나 걸으라." 이 예수님은 이 환자를 건강한 사람으로 대하고 있습니다. 건강한 사람으로 대하듯이 명령하고 계십니다.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 환자 역시 건강한 사람처럼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직선적으로 순종하고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자기가 가졌던 생각 싹 버리고 불안과 공포와 그 세상적인 근심 상관없어요. 그리고 남들이 뭐라고 하느냐 상관없어요. 오직 주님의 말씀에만 직선적으로 응답합니다. "날더러 일어나 걸어가라 하신 분이 가라 하기 때문에 가는 겁니다. 안식일인지 아닌지 알 바가 아니요. 그건 문제가 아닙니다. 내게 말씀하신 대로 내가 순종합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오늘 이 베데스다 연못가에 있었던 38년 된 환자가 새 생명을 얻었습니다. 새 소망을 얻었습니다. 새 능력을 얻었습니다. 그것은 엄청난 믿음이요 순종이요 믿음의 열매였습니다.
기도하십시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을 오늘도 주 앞으로 불러 주심을 감사합니다. 우리가 오랫동안 세상에 살며 세상에 휩쓸려서 알게 모르게 우리의 가치관, 우리의 생각, 우리의 세계관 다 병들 때가 많았습니다. 온전하게 병들지 않은 것이 없는 상처 난 심령을 가지고 주님 앞에 섰습니다. 주여, 이제는 주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일어나 걸으라." 할 때 아무 의심도 없이 깨끗한 마음으로 순종해서 주의 영광을 드러내게 하시고, 주의 생명력을 체험하게 하시고, 주의 능력의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하옵소서. 38년 된 저 환자가 새 생명을 얻은 것처럼 우리가 항상 새 생명으로 살고 새로운 능력으로 승리 생활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설교 내용 구체적 요약
본 설교는 요한복음 5장 1절로 9절에 기록된 베데스다 연못가의 38년 된 병자 치유 사건을 중심으로, 인간의 불행과 구원에 대한 해답을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과 순종의 중요성에서 찾고 있습니다.
1. 🔍 성경 본문 요약: 베데스다 연못가의 병자 (요한복음 5:1-9)
- 배경: 유대인의 명절에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셨고, 양문 곁의 베데스다(**'자비의 집'**이라는 뜻)라는 이름의 연못을 방문하셨습니다.
- 연못의 상황: 이 연못가에는 행각 다섯이 있었고, 수많은 병자(맹인, 다리 저는 사람, 혈기 마른 사람 등)들이 누워 있었습니다.
- 전설: 이들은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움직일 때, 가장 먼저 들어가는 사람은 어떤 병이든 낫는다는 미신적 전설을 믿고 물이 움직이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 38년 된 병자: 예수께서 그곳에서 38년 동안 병으로 누워있던 환자를 보시고 그의 상태를 아신 후, **"네가 낫기를 원하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 병자의 대답: 병자는 '낫고 싶다'는 직접적인 대답 대신, **"주여, 물이 움직일 때 나를 못에 넣어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헬라어 원문: $anthropon$ $ouk$ $echo$, '한 사람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 자신을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음을 호소함). 그는 예수님을 자신을 물에 넣어줄 '그 한 사람'이 되어주기를 바랐습니다.
- 예수님의 명령과 결과: 예수께서는 그의 미신적 소원과 관계없이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라고 명령하셨고, 그 사람은 즉시 순종하여 자리를 들고 걸었습니다.
- 안식일 문제: 이날은 안식일이었기에, 유대인들은 병 나은 사람에게 안식일에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은 옳지 않다고 지적했습니다. 병자는 **"나를 낫게 한 그가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더라."**라고 대답하며, 예수님의 명령에 대한 직선적인 순종을 강조했습니다.
2. 📚 설교 중 인용된 교훈 및 분석
가. 히트파엘(Hitpael)로서의 기도
- 인용 저서: 케어(Kier) 교수의 '영원히 살 것처럼 배우고, 내일 죽을 것처럼 생각하라.'
- 유대인의 기도: 유대인의 기도 자세인 **히트파엘(Hitpael)**은 하나님 앞에서 저울질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 기도의 본질: 내 소원을 아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내가 합당하게 살았는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만한 그릇이었는지를 냉정하고 경건하게 평가하는 것이 참된 기도라고 분석합니다.
나. 인간이 갇힌 다섯 가지 감옥 (조지 엘리엇)
- 주제: 영국의 작가 조지 엘리엇은 인간이 생각이나 행동에 있어 자유롭지 못한 **'감옥 생활'**을 하고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 다섯 가지 감옥:
- 자기 사랑의 감옥: 자신만을 극단적으로 사랑하여 타인을 사랑하지 못함.
- 근심의 감옥: 자기 중심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걱정과 근심에 매여 있음.
- 향수의 감옥: 지나간 옛날을 그리워하며 현실을 직시하지 못함.
- 선망의 감옥: 다른 사람을 무조건 부러워하고 시기함.
- 증오의 감옥: 자기 자신의 삶 자체를 미워하고 증오함.
3. ✨ 설교의 핵심 메시지: 순종과 새 생명
- 38년 병자의 비참함: 38년 동안 누워있던 병자는 건강, 가족, 친구뿐만 아니라, 그의 소원마저 병든 (미신적 세계관과 신앙에 갇힌) 가장 불행한 사람이었습니다.
- 예수님의 태도: 예수님은 병자의 미신적이고 잘못된 신앙 (물이 동하면 낫는다는 생각, 도와줄 사람이 없다는 절망감)에 대해 꾸짖거나 책망하지 않으셨습니다. (마치 부적을 믿는 사람들을 함부로 치우지 못하게 한 목회자의 예시와 같이, 병리적인 상태를 인정하고 비판을 유보하심.)
- 예수님의 명령: 예수님은 병든 정신 상태에 대해 비판 대신, 건강한 사람에게 명령하듯이 단호하게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라고 선포하셨습니다.
- 순종의 중요성: 이 병자는 자신의 모든 기존 생각, 불안, 공포, 남들의 시선(안식일 법 위반 지적)을 싹 버리고 오직 예수님의 **말씀(명령)**에만 직선적으로 응답하고 순종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 결론: 베데스다 병자가 새 생명, 새 소망, 새 능력을 얻은 것은 자신의 믿음이나 세계관이 아닌, 주님의 명령에 대한 깨끗한 순종의 열매였습니다. 설교자는 성도들 역시 병든 가치관과 세계관을 버리고 "일어나 걸으라"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새 생명과 능력으로 살아가기를 촉구하며 기도를 마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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