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Comprehensive◑/Seonhee

[2025년 07월 13일]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 (롬 8:18~25)

by 【고동엽】 2025. 1. 19.

https://www.youtube.com/watch?v=_Ck6cdTmJMA&list=PLlSFin9Xi6-9hTNCCHlTlySs8lCgsBrCv&index=17

 

 

 

오늘 아침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봉독하겠습니다. 신약성경 로마서 8장 18절로 25절에 있는 말씀을 봉독하겠습니다. 로마서 8장 18절로부터 25절까지입니다. 신약 성경 250면이 되겠습니다. 이 계시의 말씀을 봉독할 때에 다 같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 피조물이 허무한 데에 굴복하는 것은 자기의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하는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 속으로 탄식하며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음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아멘.


인생을 세 가지 사람으로 분류해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목적 지향적 인간입니다. 선한 목적을 가지고 살면 된다. 항상 선한 목적이면 모든 것이 다 정당화될 수 있다. 선한 목적 가지고 살면 나머지 모든 일은 다 정당화될 수 있다, 이렇게 착각을 하고 삽니다. 그러나 여러분 아시는 대로 목적만 선하다고 선한 것이 아닙니다. 방법도 선해야 됩니다.

우리가 특별히 부모님들이 자녀들을 가르칠 때, 자녀들을 가르치는 목적은 확실합니다. 좋은 사람, 착한 사람, 좋은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마는 방법은 때때로 자녀들이 생각할 때 마음에 안 들어요. 그 방법은 안 되거든요. 그러나 부모님들은 양보할 마음이 없습니다. "내가 낳은 자식이야. 목적이 선하잖아. 바른 목적이 있잖아." 하는 이런 식으로 강요하는 목적 지향적 세계관이 있습니다.

또 한 가지는 방법 지향적 세계관입니다. 최선을 다하면 되는 거야. 목적이 잘못될 수도 있어요. 결과가 잘못될 수도 있어요. 그래도 오늘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을 다하는 거다. 그것이 바르게 사는 길이다, 생각하고 한평생 살아오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저 진실하게 살고 거짓말 안 하고 살고 남의 물건 빼앗지 않고 살고, 착하게 진실하게, 착하게 그렇게 선한 방법으로 인생을 살아가겠다 하는 그런 세계관을 가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세 번째는 종말 지향적 세계관입니다. **'텔레오로지컬 페이스(Teleological Faith)'**입니다. 종말론적, 끝을 먼저 생각합니다. 마지막 끝이 뭐냐 생각하고 오늘을 생각합니다. 조금 고달프고 어렵더라도 끝이 바르게만 되면 된다. 바른 종말 거기에다가 초점을 맞추고 많은 고통을 당하더라도 참고 견뎌 나가는 그러한 종말 지향적 세계관이 있습니다.

유명한 철학자 **틸리히(Tillich)**는 그렇게 말합니다. 과거로부터 현재, 미래를 생각하는 사람이 있고, 미래로부터 현재를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그래서 진실이란 뭐냐, 신앙이란 뭐냐 하면 미래로부터 현재를 생각하는 것이다. 그것도 더 중요한 것은 결정적 미래, 종말론적 미래 생각하고 거기서부터 오늘을 생각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른 인생관이다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신앙인은 언제나 종말을 보여 주시는 하나님께 순종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 종말이 인생의 의지와 우리의 수고와 때로는 공로마저 초월할 때가 많아요. 그래서 우리 인간에게 좌우되지 않고, 애당초 하나님이 시작하시고 하나님이 끝내시고 마지막을 말씀하시면서 "그 마지막이 있으니 오늘 이렇게 살아라"라고 하나님은 말씀하고 계십니다.

보세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합니다. "고향을 떠나라. 약속의 땅을 보여 주마. 약속의 땅을 내가 네게 확실하게 보여 준다. 그러나 너는 그 내 말을 믿고 따르라." 잘 보세요. 아브라함이 하나님이 주시는 하나님이 지시하시는 종말, 그 결말만 바라보고 갈 바를 알지 못하고 고향을 떠납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의 믿음입니다. "어디로 가라시느냐? 얼마나 기다려야 되느냐?" 묻지 않습니다. 이것은 다 사람의 생각입니다. 하나님은 단호하게 말씀합니다. "내 약속을 믿어. 하늘의 별처럼, 바다의 모래처럼 자식을 주마" 약속하십니다.

자 보세요. 자식을 주신다고 했는데 아내가 단산을 해 버립니다. 나이가 많아서 벌써 단산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약속을 굽히지 않습니다. 그리고 단산한 후에 25년 후에, 하나님이 약속하신 다음에 25년 후에 이삭을 주십니다. 아, 이건 참 인간으로서는 참 감당하기 어려운 기다림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제시하시는 종말에 응답하는 신앙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약속 **'프라미스 오브 갓(Promise of God)'**은 그 자체가 종말론적입니다. 창조주 하나님 그리고 역사의 주관자 되신 하나님, 역사의 종말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그 믿음이란 하나님의 종말론적 약속을 현실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셨으니까 이제는 가부를 말할 필요가 없어요. 그냥 믿고 따라갈 뿐입니다. 말씀대로 될 줄로 믿고 말입니다. 오늘을 사는 것이 그것이 그리스도인입니다.

하나님의 세계는 너무 크고 너무 위대합니다. 너무 놀랍습니다. 우리 사람이 그 말씀을 듣고 따라가기가 좀 힘들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세요. 오늘 본문에 있는 말씀 너무나 잘 아는 말씀이지요.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현재의 고난, 장차 나타날 영광 비교할 수 없다. 아주 귀한 요절입니다. 이 본문 말씀에 대해서는 아주 중요한 잊을 수 없는 일화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종교 개혁자 **장 칼뱅(John Calvin)**입니다.

칼뱅 선생이 한평생 교회를 위해서 몸 바쳐 일하고 이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세상을 떠나게 될 때 그는 임종이 가까운 걸 알면서 이 본문 말씀을 외웠습니다.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계속 이 말씀을 외웁니다. 전설에 의하면 일곱 번을 외웠답니다. 마지막을 다 못 외우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러한 역사적인 일화가 있는 중요한 말씀입니다.

보세요. 현재의 고난, 나타날 영광. 현재의 고난, 나타날 영광 비교할 수가 없다. 우리는 현재의 고난에 매여서 나타날 영광을 못 봐요. 보이지 않아요. 아니 믿어지지도 않아요. 그러나 성경은 말합니다. 현재의 고난 아무것도 아니에요. 나타날 영광에다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에요. 우리가 나타날 영광을 바라본다면 이것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것이 믿음입니다. 그런 믿음입니다.

여러분 순교자를 보세요. 순교하는 자가 순교하게 될 때 고통이 없겠습니까? 두려움이 없겠습니까? 그러나 현재의 고난, 순교라는 단계를 딱 넘어서면 앞에 있는 영광 바라보며 현재의 고난을 조용하게 이길 수 있다고. 그것이 신앙입니다. 여러분, 아무리 어려운 고통이더라도 앞에 있는 영광을 바라볼 수만 있다면, 그것이 눈에 환하게만 보인다면, 아니 그것이 믿어진다면 오늘의 고난은 문제가 안 됩니다. 문제가 안 돼요. 그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현재의 고난과 앞에 있는 영광을 한번 이렇게 비교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앞에 있는 영광이 크게 보이면 현재의 고난은 작게 보이는 거죠. 그렇지 않습니까?

겸비할 얘기입니다만은 제가 5년 동안 가족을 두고 유학을 했거든요. 그래야 아이들이 고생 많이 했죠. 집사람 고생하는 건 말도 못 해요. 정말 어렵고 아이 셋 키우면서 얼마나 고생한다는 거 짐작해요. 때때로 편지가 와요. "이렇게 어렵고 이렇게 어렵고요." 편지를 보면서 생각합니다. "조금만 참아라. 조금만 더 참아라. 다 보상해 줄게."

여러분 이걸 아셔야 돼요. 현재의 고난 이거 확실해요. 어려운 건 사실이요. 그러나 현재의 고난 때문에 미래를 망칠 수는 없잖아요. 저와 같이 공부했던 제 친구들 유학을 한 사람들 많아요. 미국에서 다 만나고 그래요. 옛날 얘기를 하면서들 그런 얘기를 해요. 자기들은 자식을 데리고 유학을 왔대요. "아이들 공부시켜야지, 합해야지 뭐" 이랬다가 보니까 공부가 돼요? 애들 시중해야지, 가정도 봐야지, 돈 벌어야지, 어쩌다가 이렇게 돼 가지고 그만 화려한 좋은 목적으로 유학을 했지만은 다 망쳐 버리고 말았어요.

뒤에 이 이야기를 서로 주고받으면서 얼마나 기가 막힌 얘기를 해요. 사모님이 예뻐요. 그 사모님을 바라보며 "난 이 여자 때문에 망쳤다"고 그러잖아요. 아 그래서 깜짝 놀라 가지고 "여보세요. 적어도 이만큼 예쁜 여자하고 살려면 그만한 희생은 있어야지" 했더니 "목사님 잘 보세요. 어디가 예쁜가? 예쁘지도 않아요. 왜요? 사모님 때문에 내가 망쳤다" 이거예요.

여러분 깊이 생각하세요. 미래를 크게 보고 현재를 작게 보고 살아야지. 현재를 크게 보다 보니까 미래가 없어지고 말아요. 이걸 잊지 말아야 돼요.

사도 바울은 디모데후서 4장에서 결정적인 얘기를 합니다. "나의 달려갈 길을 다 가고 믿음을 지켰다." 아, 얼마나 힘든 얘기입니까? 달려갈 길을 다 가고 믿음을 지켰다. 지금 감옥에 있습니다. 그런데 앞에 순교라는 것이 있다. 앞에 죽음이라는 것이 있어. 순교가 있지만은 저 앞에 면류관이 있다. 면류관이 눈앞에 보인다. 사도 바울은 면류관을 바라보며 오늘의 순교라고 하는 이 아픔, 이 고통을 깨끗하게 잊어버리고 있어요. 이것이 신앙입니다. 이런 신앙입니다. 면류관을 바라보며 순교라고 하는 현재의 고난을 쉽게 넘겨볼 수 있는, 초월할 수 있는 그런 신앙 말입니다. 면류관을 바라보며 순교라는 현재의 고난을 초월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참 신앙 고백이요, 신앙인의 현실적 모습입니다.

여러분 스데반을 보죠. 스데반이 순교합니다. 돌에 맞아 죽습니다. 그러나 그는 쳐다봅니다. 자기가 가야 할 곳을 쳐다봅니다. 저 보좌 위에 인자가 계신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스도가 계신 것을 보았습니다. 돌에 맞아 쓰러지면서 말합니다. "내가 하나님 우편에 인자가 서신 것을 보노라." 그 순간 얼굴이 환하게 밝아집니다. 천사의 얼굴, 천사의 얼굴을 하고 종말을 향해서 가고 있습니다. 이게 스데반의 믿음입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에서 피조물의 탄식을 봅니다. 모든 것이 어려워요. 모순되고 부조리하고, 피조물의 탄식을 다 함께 느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넘어서서 저 앞에 있는, 앞에 나타나는 영광을 바라볼 수 있는 영적 안목이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믿음의 사람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그 약속의 세계를 바라보며 25년을 기다려서 약속을 받았습니다. 모세는 40년 동안을 기다려서 가나안을 내다보게 됩니다. 노아는 120년 동안을 기다려서 하나님이 구속하시는 역사를 경험하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70년을 기다려서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오게 됩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좀 멀고 좀 고달프고 좀 힘들게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약속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확실함이 있습니다. 이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 약속을 보고 약속에 따라 오늘을 사는 것입니다. 어떤 환경에 처했든지 눈을 들어 우리는 하늘을 쳐다보아야 합니다.

골로새서에서 사도 바울은 다시 말합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마라.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엣 것을 바라보며 종말을 바라보며 오늘을 사는 것입니다.

사실은 좀 이름을 대고 구체적으로 말하고 싶습니다마는 본인들에게 실례가 될까 봐 말씀을 못 드립니다. 한국에 이름이 있는 재벌입니다. 그런데 온 가족이 다 교회에 나가고 있지만은 이상하게 그 회장님은 교회를 안 나갔습니다. 끝까지 안 나가셨어요. 그리고 그 이유는 가정 불화가 있었어요. 부부 사이가 좋지 않아 가지고 그래서 교회 나가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그만 가정불화 때문에 신앙도 가질 수가 없었어요. 그러나 착한 분이에요. 그래서 학교도 세우고 병원도 세우고 장학금도 많이 주고 좋은 일 많이 했어요.

그런데 마지막에 세상을 떠나게 돼요. 임종이 가까웠을 때 자녀들이 쭉 둘러앉았는데, 맏아들을 딱 손을 잡고 **"이 사람아, 내가 교회에 나가야 될 줄을 알았으나 나갈 수가 없었어. 나는 가정을 바로 시키지 못했기 때문에 그래서 부끄러워서 교회 나가지는 못했어. 이제 내가 하나님 앞에 바로만 가야 될 거 같아. 그래서 내가 하나님 앞에 죄송스러워. 그러니까 내 대신 내 이름으로 네가 교회를 세우라. 내가 교회를 부탁하네"**라고 했어요. 그래서 "알았습니다" 아들이 약속을 했어요. 세상 떠난 다음에 교회를 세워요. 그 교회 큰 교회인데 제가 이름을 대고 말하지는 못합니다. 그 주님 앞에 갈 때가 되니까 주님 앞에 내놓을 것이 없어요. 세상 아들에게 부탁해서 그 아들의 이름으로 교회를 세워서 그렇게 한 것을 제가 잘 알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도 이름을 대면 다 알 만한 분들은 알 수 있습니다.

왜요? 주님 앞에 갈 때 내가 돈을 벌었다고 의미가 있나요? 사업을 했다고 의미가 있나요? 큰일을 했다고 그 의미가 있을까요? 주님을 만날 때 어떤 모습으로 대하게 될까? 그걸 생각해야죠. 그래서 오늘 성경 말씀은 우리를 가르쳤습니다. 예. 주님 앞에 갈 때 임종이 가까운데 한 번 더 다짐을 해 봐야 될 것입니다. 반성해야 될 것입니다. 오늘 성경 말씀에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장차 나타날 큰 영광 그걸 지금 바라보며 그 앞에 가서 우리가 어떻게 설 것인가? 부끄러움 없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그 영광에 휩싸여서 현재의 고난을 다 이겨 나갈 수 있고 원수를 사랑할 수도 있고 모든 속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는 초월한 종말론적 신앙 그것이 바로 우리가 지향해야 될 신앙의 세계입니다.

기도하십시다. 하나님 아버지 주께서 부르셨기에 저희들이 주님 앞에 있습니다. 많은 부끄러움이 있습니다마는 마다하지 아니하시고 우리를 오늘도 불러 주시고 말씀으로 일깨워 주심을 감사합니다. 주여, 없는 것은 장차 나타날 영광이 우리 눈앞에 보이게 하옵소서. 우리 가슴을 지배하게 하시고 우리의 생각을 온전히 사로잡아 그 영광의 날을 바라보며 오늘의 모든 고난과 어려움을 잘 참고 견딜 수도 있고 또한 고난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는 귀한 성도들의 남은 생애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설교 내용 구체적 요약: 현재의 고난과 장차 나타날 영광 (로마서 8:18-25)

1. 성경 본문 봉독 (로마서 8:18-25)의 핵심

  • 주제 구절 (18절):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다.
  • 피조물의 탄식과 소망 (19-22절):
    • 모든 피조물은 허무한 데 굴복하며 함께 탄식하고 고통을 겪고 있다.
    • 피조물은 썩어짐의 종노릇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기를 고대하고 소망한다.
  • 성도의 탄식과 기다림 (23-25절):
    • 성령의 첫 열매를 받은 우리 성도들까지도 속으로 탄식하며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린다.
    • 우리는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며,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기에 참음으로 기다려야 한다.

2. 세 가지 인생 지향적 세계관 (신앙인의 바른 자세)

인생을 사는 태도를 세 가지로 분류하며, 신앙인은 '종말 지향적 세계관'을 가져야 함을 강조합니다.

분류 특징 문제점
첫째: 목적 지향적 인간 선한 목적(결과)만 가지고 살면 모든 것이 정당화된다고 착각. 방법도 선해야 한다. 부모가 자녀 교육 시 목적만 내세우고 강요하는 것과 같음.
둘째: 방법 지향적 인간 목적이나 결과가 잘못되더라도 오늘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바르게 사는 길이라고 생각. 최선만 다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방법의 선함에만 집중함.
셋째: 종말 지향적 세계관 (Teleological Faith) 끝(종말)을 먼저 생각하고 오늘을 산다. 마지막 끝이 바르게 되기 위해 현재의 고난을 참고 견딘다. 미래(결정적 미래, 종말론적 미래)로부터 현재를 생각하는 것이 바른 인생관이며 신앙이다 (철학자 틸리히의 관점 인용).

3. 종말론적 신앙의 특징과 사례

신앙인은 종말을 보여주시는 하나님께 순종해야 하며, 하나님의 약속('Promise of God')은 그 자체가 종말론적입니다.

  • 아브라함의 믿음:
    • 하나님이 지시하시는 **종말(약속의 땅, 자손)**만 바라보고 갈 바를 알지 못하고 고향을 떠남.
    • 아내가 단산했음에도 불구하고, 약속 후 25년 만에 이삭을 주신 하나님의 종말적 약속에 응답함.
    • 믿음이란 하나님의 종말론적 약속을 현재의 현실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 현재의 고난 vs. 장차 나타날 영광:
    • 우리는 현재의 고난에 매여 나타날 영광을 보지 못하고 믿지 못하지만, 성경은 현재의 고난은 영광에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님을 강조한다.
    • 종교개혁자 장 칼뱅의 일화: 임종 시 로마서 8장 18절("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을 일곱 번 외우려다 마지막에 다 못 외우고 세상을 떠남.
  • 순교자와 성도의 모습:
    • 사도 바울: 감옥에서 순교(현재의 고난)를 앞두고도 **면류관(장차 나타날 영광)**을 바라보며 오늘의 고통을 잊고 초월함.
    • 스데반: 돌에 맞아 순교할 때 하늘을 쳐다보아 하나님 우편에 인자가 서신 것을 보았고, 얼굴이 천사처럼 밝아지며 종말을 향해 나아감.

4. 결론: 영적 안목과 초월적 신앙

  • 영적 안목: 피조물의 탄식과 모순을 넘어서서, 앞에 있는 영광을 바라볼 수 있는 영적 안목이 있어야 한다.
  • 성도의 인내의 시간: 하나님의 약속은 멀고 힘들게 보일 수 있지만(아브라함 25년, 모세 40년, 노아 120년, 이스라엘 70년), 그 약속은 변함이 없고 확실하다. 그 약속을 보고 오늘을 사는 것이다.
  • 하늘의 것을 찾으라 (골로새서):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마라." 위엣 것(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 그리스도)을 바라보며 종말을 바라보며 오늘을 살아야 한다.
  • 임종의 순간: 한국 재벌 회장의 마지막 고백처럼, 주님 앞에 설 때 돈이나 사업의 성과가 아닌, 부끄러움 없는 모습으로 설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5. 핵심 결론 (신앙의 지향점)

우리가 지향해야 할 신앙은, 장차 나타날 큰 영광을 바라보며 그 앞에 부끄러움 없이 설 것을 생각하고, 현재의 모든 고난과 어려움을 이겨나갈 수 있는 초월한 종말론적 신앙이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