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개혁의 주체, 성령 (5)
역대하 34:1-7
요시야가 왕위에 오를 때에 나이가 팔세라 .....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 그의 조상 다윗의 길로 걸
으며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고 ...
그동안 성령의 역사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성령은 참 고마운 하나님의 영이십니다. 성령은 우리의 삶을 일신시키고 부흥시키고 회복시키고 발전하게 하십니다. 특히 성령은 신앙의 개혁을 보이지 않게 주도하십니다. 이스라엘의 왕이 남북왕조를 포함해서 모두 43명입니다. 그 43명의 왕 중에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종교개혁을 단행한 왕은 여호사밧과 히스기야 그리고 요시야왕등 세 명의 왕 뿐입니다. 그래서 이 세 명의 왕을 유다의 3대 성군이라고 부릅니다. 그 셋 중에서도 종교개혁을 철저하게 이룬 왕이 본문에 나오는 요시야 왕입니다.
요시야 왕은 본문 2절을 보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다”고 하나님이 인정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윗이 행함 같이 행하였다“고 증언합니다. 왕상 23장25절을 보면 “요시야와 같이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여호와를 향하여 모세의 모든 율법을 완전히 준행한 임금은 요시야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그와 같은 자가 없었다”고 말씀합니다. 이런 표현은 이스라엘 남북왕조의 전체 왕 43명 중 요시야에게만 표현하였습니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역대기서, 열왕기서, 각종 예언서를 보면 왕이나 백성 모두가 우상숭배를 많이 하였습니다. 요시야 때도 나라가 온통 우상숭배로 가득했었습니다. 그런데 요시야 왕이 된 것이 8살 때입니다. 요시야가 왕이 되자마자 가장 먼저 착수한 것이 종교개혁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요시야에게 그런 은혜를 주셨고 뜻을 주셨고 용기를 주셨고 분별력을 주셨으며 왕으로서 할 일 중에서 가장 먼저 이 일을 하게 하셨을 것입니다. 요시야가 여기서 한 일이 오늘 우리들이 성령의 은혜를 입고 행할 일입니다.
우상 제거
본문 3절을 보면 요시야 왕이 “부어 만든 우상들을 제거하여 버렸다”고 하였고 4절을 보면 “바알의 재단을 헐고 제단위에 높이 달린 태양상을 찍고 각종 우상들을 빻아 가루를 만들어 제사하던 자들의 무덤에 뿌렸다”고 했습니다. 그때 요시야의 나이 16세 때입니다. 요시야가 나이가 어렸지만 왕이 될 때 주변으로부터 왕이 되면 가장 먼저 할일이 무엇인지 누누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당시 우상이 얼마나 극성이었으며 우려스러운 정도인가를 알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이 그에게 그런 영감을 부어 주셨을 것입니다. 그래서 왕이 되자마자 준비에 착수하여 8년 후에 우상부터 찍어냈습니다. 영국의 전쟁영웅 몽고메리는 위대한 지도자의 요건을 믿음, 결단력, 용기라고 하였습니다. 요시야가 종교를 개혁을 할 때 상당한 용기와 결단력과 믿음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그래도 요시야는 그 일을 해냈습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가로막는 벽이 있다면 그것은 우상숭배입니다.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것이 우상숭배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우상숭배를 제거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요시아 왕은 왕이 되자마자 우상들을 부수어서 가루로 빻아 우상 숭배자들과 그 우상에게 제사한 사람들의 무덤에 뿌렸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철저하게 응징해서 종교를 개혁하였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모두 부흥을 앙망하고 은혜받기를 위해서 기도합니다. 그러려면 먼저 우상숭배부터 제거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들도 지독하게 우상을 숭배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도 이 우상을 찍어내야 합니다.
가장 큰 우상은 인본주의입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보다 우리들이 영광받기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고급 직분을 탐내는 분들이 많습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일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직분 그 자체를 가지려고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우리교회는 그렇지 않지만 다른 교회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 직분에 연연하는 분들이 많다고 합니다. 이것이 인본주의입니다. 그것은 주님보다 나를 더 사랑하는 일입니다. 진심으로 주님을 사랑하는 믿음은 내 유익보다 교회의 유익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 자랑도 내 자랑보다 먼저 해야 합니다. 천국도 나를 위해 가려고 하지 말고 내가 천국 가는 것이 하나님이 좋아하시니까 간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나 때문에 천국에 가야 한다고 말한다면 그것도 인본주의 신앙입니다. 내가 천국 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그래서 나는 천국에 가야 한다고 생각해야 그것이 신본주의 신앙입니다. 내가 주일을 지키고 11조를 드리는 것이 내가 복을 받으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그런 마음도 있어야 합니다. 복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도 중요하지만 주님의 은혜가 너무 크기 때문에 주일을 지키고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께 11조 헌금을 드리고 하나님을 경배해야 합니다. 우리는 신앙의 목적과 주체를 잘 알아야 합니다.
우리 삶을 깊이 들여다보면 알게 모르게 우리 마음에도 우상이 많습니다. 우쭐해지고 싶은 마음, 나타내고 싶은 마음, 교만한 마음 모두 우상입니다. 생활의 우상도 많습니다. 더 소유하고 싶고 더 큰 집에 욕심이 나고 더 넓은 땅, 더 많이 소유하고 싶은 욕망에 시달립니다. 그러는 동안 내 신앙, 내 믿음, 내 기도, 내 영성의 깊이가 얼마나 되는지 개념조차 없어진 채 살아가게 됩니다. 그래서 마땅히 보여야 할 죄가 보이질 않습니다. 그래서 언제나 평안하고 잠도 잘 잡니다. 그 평안함과 깊은 잠은 하늘이 준 평안 때문이 아니고 우상에 취해서 오는 잠입니다. 그러는 동안 나는 점점 하나님과 더 멀어져 가게 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도 모른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상을 제거하라는 것입니다.
신앙의 개혁은 죄를 더 크게 보이게 하는 작업입니다. 신앙을 개혁하여야 죄가 더 크게 보이고 더 겁나고 더 두려움이 엄습해 옵니다. 그래야 죄에 대해서 더 강하게 저항하게 됩니다. 그것이 오늘도 역사하시는 성령이 하시는 신앙개혁입니다. 성령은 자기를 진단하게 합니다. 자기를 느끼고 알게 합니다. 그래서 회개하게 하고 돌아서게 하고 각성을 일으키게 합니다. 그 결과 새 길을 가게하고 끊고 버리고 포기하고 새 길을 가게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마음의 우상을 버리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욕망을 버리고, 욕심을 버리고, 탐심을 버리고, 내 마음의 모든 우상을 버리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요시야 왕은 왕이 되자마자 신앙개혁에 나섰습니다.
예배 회복
요시야 왕이 우상들을 부수고 척결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성전을 새롭게 수리하게 되었습니다. 본문 8절을 보면 “요시야가 왕위에 오른지 열여덟째 해에 전을 수리하였다”고 했습니다. 먼지 쌓인 성전을 수리한다는 말은 예배를 회복시킨다는 말입니다. 예배는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을 이루는 시간입니다. 예배는 나를 하나님께 드리고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입는 시간입니다. 어느 시대나 부흥하는 시기는 하나님께 진정으로 예배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배가 경시되던 시기는 한결같이 쇠퇴기였습니다. 이 땅의 독재 권세 자들은 한결같이 예배를 경시했고 방해하고 금지시켰습니다. 그러니까 심판을 받았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점을 역사를 통해서 보고 배우게 됩니다.
오늘 이 시대는 예배가 경시되는 시대입니다. 그것은 독재 권세에 의해서가 아니고 무한한 자유와 풍요로움 때문입니다. 무한한 자유가 좋기도 하지만 동시에 신앙의 영적생명을 말라버리게 하는 풍조이기도 합니다. 풍성한 물질도 좋은 점도 있지만 영적으로는 고갈되게 하는 악영향도 미칩니다. 그래서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예배를 위해서 시간을 할애하는데 아주 인색합니다. 그리고 예배도 너무 세속적입니다. 간단히 때워버리는 식입니다. 또 모이기를 폐하는 풍조가 강합니다. 예배에 왔어도 딴생각을 하고 앉아 있습니다. 기독교 포털 사이트인 갓 피플이 기독교인 1,336명을 조사해 보았더니 예배시간에 딴 생각을 하고 앉아있다고 대답한 사람이 31.5%, 주보를 탐독하고 앉아 있는 분이 14.1%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예배회복이 신앙개혁운동입니다. 예배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주일날 예배를 경시하면서 일하는 사람들이 더 잘사는 법이 없습니다. 예배를 우습게 여기는 신자가 잘 되는 법이 없습니다. 신앙생활에서 가장 먼저는 예배생활입니다. 예배는 먼저 하나님께 경배하고 영광 돌리는 일입니다. 그러면 내가 하나님 안에 깊숙이 들어가게 되고 그 안에서 내가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예배를 소중히 해야 합니다. 록펠러는 예배를 소중하게 여겼다고 합니다. 그것은 그의 어머니의 강력한 교훈 때문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가는 곳 마다 제단을 쌓았습니다. 그래서 복을 받았습니다. 요시야는 왕이 되자마자 우상을 제거하고 다음에는 성전을 수리하였습니다. 그 말은 예배를 회복시켰다 그 말입니다.
말씀회복
요시야 왕이 우상을 척결하고 성전을 수리하였습니다. 수리하다가 성전 벽안에 숨겨져 있던 율법 책을 발견하게 됩니다. 본문 14절을 보면 “연보궤 뒤에서 율법 책이 발견되었다”고 했습니다. 그 율법 책은 모세 5경일 것이라고 보는 학자들이 많습니다. 이 율법 책은 당시 법이었고 생활의 규범이었고 하나님의 말씀의 잣대였습니다. 그런데 이 율법 책이 없으니까 마음대로 우상을 섬기고 생활의 기준이 없이 살았습니다. 이 율법 책이 숨겨져 있던 것은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당시 외침이 많고 전쟁이 많으니까 소중한 책을 조상들이 성전벽 속에 숨겨 감추어 두었을 것이라고 보는 견해가 있는가 하면 선왕 므낫세왕과 아몬왕이 우상을 섬기게 하기 위해서 일부러 율법 책을 숨겨 놓았을 것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그래서 한동안 이 율법 책을 잊은 채 살아가는 동안 나라에 말씀을 사라지고 우상이 전국에 자리 잡았고 백성들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모르고 우상을 섬기며 살아가다가 요시야 왕의 명령으로 성전을 수리하다가 이 책을 발견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율법서를 제사장에게 읽어보라고 했습니다. 읽어보니까 그 내용이 율법으로 된 하나님의 준엄하신 말씀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그 하나님의 말씀을 모르고 무시하고 제멋대로 살아온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생활한 내용들이 모두 하나님의 뜻에 반한 것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본문 19절 말씀을 보면 “왕이 율법의 말씀을 듣자 자기 옷을 찢었더라"고 했습니다. 율법 책에 기록된 말씀에 비추어 보니까 그동안 삶이 너무나 큰 죄를 지은 삶을 발견하고 큰 충격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구약성경에 보면 큰 충격이 주어졌을 때, 죄를 깨달았을 때 옷을 찢었습니다. 그래서 요시야 왕은 제사장을 통해 이 율법의 말씀을 백성들에게 잘 가르치라고 부탁했습니다. 그 말은 말씀을 회복하였다는 말입니다.
진정한 부흥은 말씀이 회복될 때 일어납니다. 말씀이 있는 곳에 회개운동이 일어납니다. 회개운동이 일어나는 곳에 하나님의 영이 임하십니다. 성령이 임하심도, 부흥이 일어남도, 열망이 일어나는 것도 말씀이 있는 곳에 나타납니다. 말씀은 씨의 핵과 같은 것입니다. 모든 씨에는 핵이 있습니다. 그 핵이 생명입니다. 그 핵이 있으면 다시 새싹이 납니다. 그 핵이 생명이고 능력입니다. 내안에 이 말씀이 있으면 내 안에서, 내 가정에서, 이 세상에서 무서운 회복운동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이 말씀이 자기를 살피게 합니다. 살펴서 자신의 한심함을 보게 하고 메마름을 발견하게 합니다. 그것은 성령이 자신을 보게 하고 알게 하시는 역사 때문입니다.
신앙인은 자기진단이 필요합니다. 자기 모습을 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애통하는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농부는 가뭄을 느껴야 대책을 세우고 샘을 팝니다. 자신의 몸에 병이 있음을 느껴야 고칠 수 있습니다. 자각증세를 느낄 수 있어야 고칠 수 있습니다. 암이 무서운 것은 자각증세가 없어서 무서운 것입니다. 내 영혼이 메마름을 알아야 내 병을 고칠 수 있고 고치려고 산을 찾게 됩니다. 그때 성령이 내 안에 열망을 주십니다. 마음에 부흥이 일어나게 하삽니다. 예배에 깊이 빠지게 합니다. 감격과 떨림이 주어집니다. 속죄의 구원의 맛을 느끼게 합니다. 속죄의 은혜에서 억누를 수 없는 감사와 기쁨을 맛보게 하십니다.
이스라엘이 타락해서 징계를 받을 때가 많았는데 그때는 대부분 말씀과 율법에서 외면하고 살아갈 때였습니다. 중세기를 암흑시대라고 부르는데 그 이유는 그 시대가 말씀을 도외시했던 시기였기 때문입니다. 말씀회복 운동이 일어나야 합니다. 사탄은 말씀과 멀어지게 우리의 환경을 조성합니다. 그리고 말씀을 읽으면 곧 잠이 오게 합니다. 또 사탄은 신 신학자들을 통해서 말씀을 오도하게 하고 거짓 교리로 둔갑하게 합니다. 그래서 교묘하게 영적 혼란을 일으키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쓰였기 때문에 읽기만 해도 은혜가 되고 능력이 나타나게 됩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4장12절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은 찔러 쪼개기까지 한다고 했습니다. 요시야 왕은 말씀을 듣고 그대로 살기로 작정했습니다. 그리고 백성들에게 말씀 그대로 지키도록 명령하였습니다. (역대하 34:30-33, 열왕기하 23:1-3) 말씀은 생명입니다. 그래서 말씀이 있는 곳에 변화가 일어나고 기적이 일어나고 성령의 임재가 일어납니다. 그것은 말씀이 가지는 생명력 때문입니다. 생명력이 있으면 성장하게 되어 있습니다. 진정한 부흥은 말씀이 부흥해야 일어납니다.
언약의 갱신
본문 31절을 보면 요시야 왕이 백성들을 모으고 강조했습니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여호와를 순종하고 하나님의 계명과 법도와 율례를 지켜 이 책에 기록된 언약의 말씀을 지키라”. 그랬더니 32절을 보면 “백성이 다 하나님 곧 그의 조상의 하나님의 언약을 따랐다”고 했습니다. 그 말은 백성이 왕의 명령을 듣고 그대로 말씀을 지켰다는 말씀입니다. 그 결과 33절을 보면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게 하였으므로 요시야가 사는 날에 백성이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께 복종하고 떠나지 아니하였다”고 했습니다. 그동안 잃어버렸던 삶의 기준, 예배의 회복, 말씀의 회복이 이루어져 나라가 든든하고 도덕이 세워졌다는 말입니다.
지도자 한사람 잘 만나는 것이 참 큰 복입니다. 그러니까 33절을 보면 요시야 왕이 통치하던 31년 동안 그 나라가 든든하였고 흔들림이 없이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든든한 지도자를 만나는 것이 큰 복입니다. 지도자 한사람이 바로 서니까 온 나라가 도덕이 건강해지고 회복운동이 일어나고 세상이 건강해 졌습니다. 신앙의 개혁이 일어나야 합니다. 그 개혁은 나부터 일어나야 합니다. 그때 이 세상에서도 도덕운동이 동반하게 됩니다. 그러면 그 시대에 삶에 변화가 일어납니다. 웨슬리 한사람의 변화는 그 시대 세상의 변화로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영국에 도덕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절제운동이 일어났고 실천운동이 일어났고 도덕운동이 일어났고 생명운동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죽어가던 교회들이 살아났습니다.
요시야 왕은 8살에 왕이 되었습니다. 왕이 되자마자 먼저 할일 먼저하고 해야 할 일을 바로 알고 온 나라를 바로 잡았습니다. 그것이 신앙을 개혁하는 일이었습니다. 먼저 우상부터 제거하였습니다. 그리고 말씀을 회복시켰습니다. 또 예배를 회복시켰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 힘으로 세상의 변화를 이루는 계기로 삼았습니다. 그때 그 나라가 든든했고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나지 않고 건강한 나라를 이루었다고 했습니다. 모두가 요시야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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