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목차 돌아가기] |
지울 수 없는 기억
이스라엘이 치른 다섯 번의 전쟁 중에서도 세계를 놀라게 하고 큰 충격을 준 것은 6일전
쟁이다. 1967년 6월 당시 250만(이스라엘) 대 1억(아랍 국가들)의 대결은 그 숫자만으로는
이미 끝난 싸움이었다. 그러나 그 전쟁은 상식을 부수어 버린 전쟁이었다. 250만이 1억을 상
대해서 싸운 6일전쟁이 승리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
유대인이 어째서 250만 명뿐입니까? 우리에게는 나치에게 살해된 600만 명이 더 있습니다."
600만 명은 이미 죽었다. 그들은 죽은 자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유대인들과 더불어
살며 살아 있는 자들에게 계속 영향을 끼친다. 살아 있는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 죽은 자
들은 살아 있는 유대인들에게 아픈 상처인 동시에 지울 수 없는 기억이다.
예루살렘 서쪽에 위치한 `기억의 산'위에 600만 나치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는 기념관이
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 기념관 이름을 `야드바셈'(손과 이름)이라고 부른다. 희생자들
의 이름들을 영원히 기억하고 기념해야 한다는 뜻이다. `야드바셈' 출구에는 `욥'이라 이름
붙은 동상이 있고 그 동상 받침대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쓰여 있다.
"망각은 우리로 하여금 다시 포로가 되게 하고 기억은 우리로 자유민이 되게 할 것이
다."
600만은 지울 수 없는 기억이다. 그러기에 그들은 지금도 유대인들의 삶의 크나큰 한 부
분으로 살아 있으면서 유대인들을 가르치고 고무하고 격려하고 꾸짖고 있는 것이다.
예루살렘에는 독일 나치에 의하여 희생된 600만 유대인을 추모하는 기념관이 있다.그 이름은 ‘야드바심’이다.야드바심이란 ‘기억’을 의미한다고 한다.유대인들은 민족이 참혹한 학살을 당한 것을 기억하고 절대 잊지 말자는 뜻으로 이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는 독립기념관이 있다.일제 치하에서의 참혹한 상황들을 재연하고 소름 끼치는 일제 시대의 형무소와 고문 도구들도 전시되어 있다.그러나 우리는 이전의 일을 기억하는 것보다 이후의 독립을 기념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어 그 이름부터 기념관이다.기억하지 못하고 기념하는 것은 같은 고통을 반복하는 잘못을 범할 수 있다.기억하지 못하고 기념하는 것은 감사를 상실할 수도 있다.
물고기의 지능은 0.4밖에 되지 않고 기억은 3초밖에 가지 않는다고 한다.그래서 불과 수초 전에 물고 혼났던 미끼를 또 다시 물어 낚시에 걸린다고 한다.기억하지 못하는 것의 결국은 죽음인 것이다.
잊지 말아야 할 것1
지난해 9월11일 테러로 사라진 세계무역센터 자리에는 지금도 “우리는 결코 잊지 않을 것입니다(We will never forget)”라는 큰 현수막을 걸어놓았습니다. 이를 갈면서 복수를 벼르는 문구가 아니라 용서와 화해의 문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예루살렘에는 독일 나치에 의해 희생된 600만 유대인을 추모하는 기념관이 있습니다. 그곳의 이름을 ‘야드바심’이라고 합니다. 야드바심이란 기억이란 말입니다. 그들이 독일 사람들에게 당한 것을 절대로 잊지 말자는 뜻입니다. 아마 절대로 잊지 않을 것이고 잊고 싶지도 않을 것입니다.
성경에는 잊을 것과 잊지 말 것을 명확하게 구분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잊을 것은 잊지 않고 잊지 않을 것은 잊고 살아갑니다. 여기에 인간의 약함과 악함이 드러납니다. 진정 복 있는 자는 준 것을 기억하지 않는 자와 받은 것을 잊어버리지 않는 자입니다.
잊지 말아야 할 것2
지난해 9월11일 테러로 사라진 세계무역센터 자리에는 지금도 “우리는 결코 잊지 않을 것입니다(We will never forget)”라는 큰 현수막을 걸어놓았습니다. 이를 갈면서 복수를 벼르는 문구가 아니라 용서와 화해의 문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예루살렘에는 독일 나치에 의해 희생된 600만 유대인을 추모하는 기념관이 있습니다.
그곳의 이름을 ‘야드바심’이라고 합니다. 야드바심이란 기억이란 말입니다. 그들이 독일 사람들에게 당한 것을 절대로 잊지 말자는 뜻입니다. 아마 절대로 잊지 않을 것이고 잊고 싶지도 않을 것입니다. 성경에는 잊을 것과 잊지 말 것을 명확하게 구분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잊을 것은 잊지 않고 잊지 않을 것은 잊고 살아갑니다. 여기에 인간의 약함과 악함이 드러납니다. 진정 복 있는 자는 준 것을 기억하지 않는 자와 받은 것을 잊어버리지 않는 자입니다. |
배나무가 있는 초가집
교실 창문틀에 앉아 두 다리 쭉 뻗고 양손에 걸레를 들고
창문을 닦던 4학년 단발머리 소녀.
그날은 아마 토요일 이었을 것이다.
한가롭게 교실청소와 창문청소로 재잘대며 즐겁던 그때.
동네 한가운데로 불길이 솟아 올랐다.
6학년 언니의 말에 난 정신이 아득했다.
"○○아, 저기 배나무 있는 집인걸 보니 너네 집인가봐."
난 그길로 확인도 않고 엄마가 나무 하러간 산등성이로 뛰어올랐다.
"엄마-엄마- 우리집 불났어"
엄마는 무조건 달음박질로 동네 아래로 내려왔고,난 그뒤를 따라 정신없이 뛰었다. 엄마를 따라 뛰던 나는 숨이 턱에 찼고 어떻게 집에 와 보니 우리집.....
초가집 우리집은 지붕이 다 탔고 엄마는 기절해 있었다.
난 집이 탄 것보다 엄마의 기절이 더 무서웠고, 사람들의 웅성거림에 뭔가를 조금씩 눈치채 갔다.
이웃의 꼬마 아이들이 우리집 짚단 옆에서 놀더란 말.
그 짚단 쪽에서 부터 불길이 솟았단 말.
엄마는 정신을 차렸고
사람들의 웅성거림은 거기서 그쳤다.
정확히 보지도 않고, 설령 그렇다 해도 타버린 집.
그 조그만 아이들을 어떻게 할거냐 고.
다시는 그런소리 말라고
웅성거림은 거기서 끝났고
동네사람 모두 모여 지붕을 얹어주고 까맣게 그을은 기둥과 문들은
아주머니들의 손에 의해 닦여졌고
사람들은 한마디씩 했다.
" 이 집은 앞으로 부자 될거야.
불 한번 나면 살림이 불같이 인다고 하잖우"
올해로 팔순이 된 엄마는 그 집에서
지금은 계량한 그 집에서 아들, 며느리, 손자와 살고 계시다.
난 가끔씩 들르는 그집이 정겹다.
항상 엄마의 건강이 염려 되면서.
-남옥선의 어린 날의 기억-
잊혀지지 않는 기억
인덕원 전철역 지하도 계단에서 오도 가도 못하고 쩔쩔매고 있는 휠체어를 탄 아가씨가 있었습니다. 청년 몇이서 그 휠체어를 번쩍 들어 큰 길 까지 옮겨 주고 말없이 웃으며 눈인사를 주고받던 모습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서대문 학원가에서 청소부 아저씨의 리어카 쓰레기 더미 위에 책가방을 얹어놓고 가파른 언덕길 위로 리어카를 밀어주고 학원으로 향하던 재수생의 이마에 흐르던 땀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언젠가 젊은 아기 엄마가 버스 한 구석 자리에서 보채는 아기에게 살포시 가슴을 열고 젖꼭지를 물리며 부끄러워 시선을 들지 못하던 그 보기 드문 순수한 모성의 모습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유난이 말이 없던 어느 여집사님이 누군가 볼 새라 살짝 교회에 들어가 길게 기도하고 나오던 모습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그 집사님을 생각하면 마음이 참 좋아집니다.
깊은 산 속의 나무는 누가 보지 않아도 때가 되면 꽃이 피고 열매를 떨어뜨려 다시 새싹을 돋게 합니다. 누군가가 베푼 행위에 대해 대가를 계산하지 않는 것이 순수한 마음이고, 순수한 행위야말로 누군가의 머리 속에 오래오래 잊혀지지 않는 기억으로 남는 것 아닐까요?
손에 들고서
몇일전에 나는 자동차 앞에 와서 차 문을 열려고 늘 열쇠를 넣어두는 오른 쪽 주머보니에 손을 넣어보니 차 열쇠가 없었다. 아무리 주머니들을 다 점검해 보았지만 차 열쇠가 없는것이다
그런데 한참후에 나의 왼손을 보니 왼손에 자동차 열쇠가 들려 있지 않는가 ! 집에서 나올때 벌써 차열쇠를 꺼내 왼손에 들고 차에 와서는 주머니에서 차 키를 찾았던 것이다 벌써 치매가 들릴 나이는 아닌데 때로 어떤 일을 깜박 잊어먹을 때가 있다. 그로 인해 나는 때로 내가 이미 가지고 있는것을 다른 곳에서 찾으려고 한적은 없는가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주님은 우리에게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복주셨지만 우리는 이미 그러한 복을 가지고서 다른 곳에서 복을 찾으려고 한적이 얼마나 많은가 ! |
잊지 않으시는 하나님
지난해 2월 직장을 그만두게 되었다. 새로운 일을 찾아 낯선 역에서 내려 버스를 타러가는 도중 한 건물이 유난히 눈에 띄었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건물에 온기 같은 게 느껴졌다. 한참 동안 그 건물을 바라보던 난 어느새 기도하고 있었다. “하나님 제가 저 건물 안에서 일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동안 하고 싶었던 공부도 하고 일자리도 구해야 겠지만 언제나 면접 후 내게 돌아온 말은 다음에 연락드리겠다는 소리뿐이었다. 그렇게 1년이 끝나갈 무렵 12월 말에 우연히 선배로부터 전해들은 전화번호 하나로 한 회사에 전화를 했다. 이력서를 가지고 오라는 말에 그날 당장 찾아갔다. 그곳은 놀랍게도 10개월 전 내가 멈춰서서 잠시 기도드렸던 바로 그 건물이었다.
그러나 면접을 마친 내게 돌아온 말은 다음에 연락드리겠다는 내용이었다. 이번에도 안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잠시 스쳤지만 10개월 전의 그 기도에 이제는 응답해 주시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다음날 다시 한번 사장님과의 면접이 있었고 나는 그 곳에 취직이 되었다. 더욱 기쁜 건 사내에서 예배도 드릴 수 있다는 것이다.
십일조와 감사헌금을 다시 드리면서 흘렸던 눈물, 그 눈물은 찬양처럼 나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는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감사의 고백이었다.
하나님을 기억하며 사는 삶
전도서 12:1-12
<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
지난 4월, 폐암 수술하신 아버님을 마지막으로 뵈러 온 가족이 LA에 갔습니다. 암 중에서도 폐암이 가장 힘들고, 수술 후에도 6개월밖에 살지 못한다고 들었기에 착잡한 심정으로 아버님을 뵈러 갔는데 80이 넘으신 아버님이 힘들어 하셨습니다. 특히 큰 병에 걸리고 너무 고통스러우니까 자신감도 많이 없어지신 듯했습니다. 가족회의를 통해서 아버님이 힘드신 것 같으니까 아버님을 위로해 드리기 위해서 7남매가 한 달에 한번씩 돌아가면서 아버님을 찾아 뵙자는 얘기가 나왔습니다. 제가 없을 때 다른 형제들이 그런 얘기를 한 것을 듣고 좋은 얘기라고 여겼지만 저는 가슴이 덜컹 했습니다.
LA에 한번 가려면 거의 백만 원 가까운 비용이 듭니다. 다른 형제들이야 전혀 문제될 것 없지만 목회자에게 그 비용은 정말 만만찮습니다. 전화만 하면 됐지 무슨 대단한 효자라고 그런 일에 비용을 들일 필요가 있습니까?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낭비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렇게 생각하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정말로 부모님 뵐 날이 얼마 없다면 그 일은 결코 낭비만은 아닐 것입니다. 부모님은 우리의 뿌리입니다. 그리고 이 땅에서는 자녀에게 하나님의 대리자입니다. 그래서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은 이 땅에서 해야 할 어떤 일보다도 중요한 일입니다. 십계명은 두 부분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첫 번째 계명에서 네 번째 계명까지는 하나님 앞에서 지켜야 할 계명이 나오고, 다섯 번째 계명에서 열 번째 계명까지는 사람 앞에서 지켜야 할 계명이 나옵니다.
그 사람 앞에서 지켜야 할 첫 번째 계명이 바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입니다. 그 다음에 여섯 번째 계명인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이 나옵니다. 이 순서에는 심각한 하나님의 메시지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금방 느끼지 않습니까?
아마 하나님은 부모님 공경하지 않는 것을 살인하는 것보다 더 나쁘게 보실 것입니다. 우리는 부모님께 최대한 잘 해 드려야 합니다. 그러나 잘 해 드릴 기회가 얼마나 있겠습니까? 되돌아보면 온통 받은 것뿐입니다. 이번에 가서도 부모님께 해 드린 것은 하나도 없이 그냥 받기만 하고 돌아왔습니다.
여러분! 이제부터는 부모님께 받을 생각은 하지 말고 드릴 생각만 하십시오. 부모님이 자녀에게 무엇인가를 줄 때에는 본능적으로 주지만 자녀는 그렇지 않기에 의지적으로 드릴 각오를 하지 않으면 부모님께 드릴 기회를 어느새 뺏기게 됩니다.
부모님께 받기만을 바라지 않고, 드리려고 하는 데에만 신경을 바짝 써도 어느새 보면 부모님께 드린 것보다 받은 것이 훨씬 많은 인생이 우리 인생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힘써 부모님을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해야 합니다.
이번에는 감사하게도 교단 총회가 LA에서 열렸기에 아버님을 찾아뵐 수 있었습니다. 금년 4월에 6개월밖에 못 사신다는 그 6개월이 지나 이번에 아버님을 찾아뵈었는데 하나님이 도우심으로 인해서 폐 하나를 가지고도 지금 얼마나 정정하신 지 모릅니다. 요새는 시속 110킬로로 운전하며 다니시고, 내년에는 다시 학교도 가시겠다고 합니다. 활력이 넘치셨고 지금 상태로 보면 6개월은커녕 100살까지도 사실 것 같아 보입니다.
사람에게 건강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모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건강을 가지고 힘써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이미 늦은 인생은 없습니다. 모세는 80세부터 멋있게 하나님의 쓰임을 받았습니다. 지금부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산다면 어느 누구나 멋진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그런 꿈을 꾸어야 합니다. 남은 생애로 거룩한 작품을 남겨야 합니다. 나이가 들어서 이미 늦은 인생도 없지만, 젊다고 시간을 흘려보낼 인생도 없습니다.
얼마나 시간이 빨리 가는지 모릅니다. 우리도 항상 건강하게 사는 것만은 아닙니다. 제가 작년에 눈이 침침하고 성경이 잘 보이지 않아 큰 글자 성경으로 바꿨습니다.
그래도 글자를 볼 때마다 무엇인가 초점이 안 맞는 것 같아서
그저 잠을 많이 자지 않고 컴퓨터 앞에 있는 시간이 많아서 그런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우연히 아버님 안경을 한번 껴보고 참 잘 보이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제 저도 노안에 접어든 것입니다. 비로소 저도 나이가 드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우리의 건강이란 것이 그렇습니다. 언제 건강이 나빠질지 모릅니다. 본문 1절 말씀대로 언제 곤고한 날, 아무 낙이 없다고 말할 날이 올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건강할 때 힘써 예수님의 제자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시간, 우리의 만남, 우리의 헌신, 우리의 우정, 우리의 사랑이 다 중요합니다. 우리는 시간을 소중히 여기고, 서로를 소중히 여기며 사명자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 평소에 느끼지 못한 사랑의 발견으로 인한 경이 >
이번에 10여일 간 한국을 떠나 있으면서 가족과 교인들이 참 보고 싶었습니다. 3분 전도사님과 2분의 안수집사님, 기관장들, 지역장들과 구역장들, 지금은 교회 일에 많이 참여하지 못하고 웅크리고 있지만 앞으로 잘 헌신할 분들, 그리고 최근에 새롭게 등록한 성도들, 인터넷 식구들이 다 그립게 느껴졌습니다. 이곳에서 주일 예배를 드리는 같은 시간에는 저도 똑같이 이곳을 생각하면서 사회 보시는 김건환 집사님과 성가대원들, 그리고 모든 성도들을 마음속에 그렸고, 또한 예배 광고 시간에 재미있게 체육대회 광고를 하실 남주희 집사님을 생각하면서 미국에서 혼자 정신 나간 사람처럼 좋아서 웃었습니다. 하나님도 웃으셨을 것입니다. 평소에 잘 느끼지 못한 사랑을 발견한다는 것이 얼마나 경이로운 일인지 모릅니다.
그래서 목회자에게 교회를 잠깐 떠나 있는 안식년이 중요한 것도 새삼 깨달았습니다. 사람은 대개 그 자리를 떠나보아야 그 자리가 주는 은혜와 감동을 새롭게 깨닫습니다. 교회를 한 주간 빠졌는데도 그리움이 컸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귀국하고 싶었습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허겁지겁 김치찌개, 고추장, 라면을 먹고 나니 살 것 같았습니다. 한국을 떠나니 김치도 그리운데, 교회가 얼마나 그리운지는 더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한편으로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성도님들이 한 주간 주일예배를 빠지면 이런 그리움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여러분들은 한 주간 주일예배를 빠지면 이런 그리움이 있습니까?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서로를 잠깐 못 만나 그리워할 때 그 그리움 안에는 참 사랑이 담겨있습니다. 그러한 그리움으로 어떤 분들은 매주 2시간이 넘는 거리를 초월해 교회를 다닙니다. 이 근처에 제가 지금 알고 있는 분들 중에서도 그런 분들이 몇 분이나 있습니다.
거리가 멀면 대개 신앙생활에 손해가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 육체는 피곤해집니다. 그러나 그 먼 거리까지 초월할 수 있다면 그 신앙은 한 단계 업그레이드가 됩니다. 그때에는 육체는 피곤을 느끼지만 마음은 하늘 높이 올라가는 기쁨을 느끼게 됩니다. 그런 기쁨이 있기에 어떤 분은 몇 년을 그렇게 하다가 결국 교회 근처로 이사옵니다. 그런 신앙은 "다 똑같은 교회지!"하며 금방 교회를 바꾸는 신앙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나에게 오만 정을 준 교회에 대한 그리움이 그렇게 만든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이 다니는 교회가 떠나 있으면 그리워지는 교회가 되길 바랍니다.
한 주일을 빠지면 교회가 궁금하고, 성도가 보고싶은 마음이 있는 교회가 아니라면 '내가 다니는 교회'가 그저 '내가 다니는 교회'이지 아직까지는 '내 교회'가 아닙니다. 아직 '내 교회'가 없다면 빨리 내가 땀과 눈물을 흘릴 '내 교회'를 찾아야 합니다. 지나고 나면 큰 영상을 남기는 그런 그리움이 넘치는 교회가 있는 것이 행복입니다. 많은 군중 틈에서 교제하고 즐기는 교회가 아닌 내 땀과 눈물의 흔적이 있어야 합니다.
< 시간이 지나면 그리워지는 교회 >
이번에 돌아오는 길에 샌프란시스코에 하루 들렸다가 왔습니다. 오직 한 가지 목적이 있었습니다. 그 유명하다는 금문교를 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샌프란시스코에 아는 분들이 몇 분 있었지만 아무에게도 연락하지 않았습니다. 잠깐 들리는 것이고, 아름다운 금문교만은 혼자 음미하며 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도대체 얼마나 아름답기에 죽어도 그곳에서 죽고 싶다고 그곳까지 가서 자살할까?"
공항에서 4시에 차를 렌트하고 5시쯤에 금문교를 통과했습니다. 통과하자마자 조망지점(vista point)로 가서 약 20분 동안 금문교를 감상했습니다. 그저 그랬습니다. 혼자 보니까 아름답다기보다는 쓸쓸하고 처량한 느낌이었습니다. 교인들이 같이 있는 것도 아니고, 가족들도 없으니까 하나도 재미가 없었습니다.
"내가 이것을 보려고 호텔비와 렌트카 비용으로 200불을 들였다니 정말 아깝다!"
다음 날 아침, 한국으로 돌아오기 위해 아침 8시 30분에 공항으로 출발했습니다. 공항으로 들어올 때 돈 아까운 생각에 괜히 샌프란시스코에 들렸다고 생각했습니다. 허전한 마음으로 비행기를 탔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신기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비행기 안에서 계속 저의 머리 속에 깊은 영상을 남기고 지나가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금문교였습니다. 볼 때는 그저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지나고 나니까 그 영상이 계속 남아 있었습니다. 비행기가 미국에서 멀어질수록 그 영상은 더 남았습니다. 그 뒷맛이 정말 좋았습니다. 확실히 금문교는 사람들로 가득한 디즈니랜드나 유니버셜 스튜디오와 달랐습니다. 그 당시에는 그저 그런 것 같았지만 더 영상에 오래 남아있는 것은 금문교였습니다.
그러면서 그때 생각했습니다.
"교회도 시간이 지나면서 이렇게 오래 영상에 남는 금문교와 같은 교회여야 한다!"
많은 분들이 교회생활도 디즈니랜드나 유니버셜 스튜디오에서 하는 것 같이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교회생활은 많은 군중 속에서 휩쓸려 즐기는 생활이 되서는 안됩니다.
여러분의 교회생활은 어떻습니까? 시간이 지나면서 더 영상에 남게 될 생활입니까?
< 창조자 하나님을 기억하며 사십시오 >
우리의 기억 속에는 항상 그런 아름다운 영상들이 남아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건강할 때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며 산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입니까? 그래서 오늘 본문 1절에서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고 합니다.
청년의 때가 언제입니까? 20대와 30대입니까? 아닙니다. 지금이 청년의 때입니다. 뚜렷한 삶의 목표가 없는 20대보다 삶의 목표가 분명한 때는 다 청년의 때입니다. 지금 우리가 나의 사명을 인식하고 살면 우리는 언제나 청년의 때를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처럼 하나님을 기억하며 살면 얼마나 많은 은혜 체험이 있는지 모릅니다.
제가 미국에서 공부할 때 미리 준비한 돈이 한 푼도 없었습니다. 그래도 신기하게 하나님께서 필요한 때마다 도와주셨고, 나중에는 돈이 남았습니다. 그런 믿음의 체험이 있으니 어떤 상황도 겁나지 않습니다. 믿음의 체험이 중요합니다.
이번에 미국에서 총회를 마친 다음날 식당에서 한 목사님과 식사를 마치고 나왔는데 누군가 제가 몰고 간 아버님 차의 유리창을 깨고 제 서류가방을 들고 가버렸습니다. 그래서 여권, 국제운전면허증, 휴대폰, 총회회의록과 성경 등을 다 잃어버렸습니다. 그런데 돈도 안 되는 것을 훔쳐간 도둑이 밉기보다는 오히려 불쌍한 마음이 들어서 하나님께 도둑이 성경까지 훔쳐갔는데 성경 보고 회개하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때 식당 주인은 자기 주차장에서 도둑 맞아 안절부절못하는데 저는 마음이 편했고, 또한 이런 경미한 사건으로 나 자신을 돌아볼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때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어렵고 불편한 상황이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모릅니다. 그런 인생의 브레이크가 없다면 우리는 교만해져서 얼마나 파괴적으로 살겠습니까?
저는 이번 주에 감기몸살을 창조하신 하나님께 진실로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감기 몸살이 창조하셨기에 자기 몸을 학대하다가 잠시 쉬지 않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감기 몸살이 얼마나 인생에 큰 도움이 됩니까? 그처럼 모든 상황과 어려움 중에도 하나님의 손길을 발견하는 믿음으로 사십시오. 우리가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며 산다는 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께서 반드시 선한 길로 인도하심을 믿으며 사는 것입니다.
< 하나님의 뜻과 비전을 생각하며 사십시오 >
그리고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며 산다는 것은 항상 하나님을 머리 속에 그리며 하나님의 뜻과 비전을 생각하며 산다는 것이고, 항상 하나님 말씀을 열린 마음으로 받으며 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살면서 30배, 60배, 100배의 열매 맺는 삶을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돈이 필요하고, 학력이 필요하고, 노력이 필요하고, 그와 함께 운도 따라야 합니까?
아닙니다. 마태복음 13장에 의하면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이 옥토밭이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받는 마음에 따라 열매가 달라지고, 축복도 달라지고, 행복도 달라집니다.
오늘 전하는 말씀도 길가밭, 돌밭, 가시밭, 옥토밭 등의 여러 밭에 떨어질 것입니다. 이 말씀을 오늘도 옥토밭 마음으로 받으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축복해주실 것입니다. 실패는 환경 탓도 아니고, 건강 탓도 아니고, 사람 탓도 아니고, 내 마음 탓입니다.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의 비전이 회복되고, 말씀에 열린 마음이 되면 길은 열립니다. 오늘날 교회의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예배하는 사람과 설교를 듣는 사람도 많고, 교회 일을 하는 사람은 많은 것 같아도
하나님을 생각하기보다 다른 것을 더 생각하며 사는 사람이 많은 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을 1순위에 두기보다, 돈, 자녀, 출세에 밀려 4-5순위쯤에 두지는 않습니까?
인간의 생사화복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습니다. 자녀의 앞날도 그렇습니다. 그것을 인식하며 항상 하나님을 삶의 1순위에 두고 사는 분이 예수님의 제자이고, 하나님께서는 그런 제자에게 축복의 길을 여시고 좋은 사람도 붙여주실 것입니다.
어느 날, 인도의 고든 맥스웰 선교사가 유학 경험이 있어 영어를 아는 수도승에게 언어를 가르쳐달라니까 수도승은 전도하려고 접근하는 줄 알고 응하지 않았습니다. 선교사가 "절대 전도하지 않을 테니까 꼭 가르쳐달라"고 부탁해도 소용없었습니다. 그러면서 "당신과 가까이 지내며 믿지 않은 사람 있습니까?"하고 말했다고 합니다. 얼마나 가슴 벅찬 말입니까? 모두 이런 말을 들을 수 있는 분들이 되길 바랍니다.
< 항상 교회를 기억하며 사십시오 >
그리고 또 한 가지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는 삶의 구체적인 내용이 있습니다. 그것은 교회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억하는 사람은 교회를 사랑합니다.
그런데 교회를 사랑한다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교회를 사랑한다는 것은 교회를 위해서 구체적인 사랑의 손길을 베푸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이렇게 예배를 드리는 데에는 많은 숨은 손길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제 저도 열심히 말씀을 준비했지만, 어떤 분은 힘써 청소하며 예배를 준비했습니다. 오늘 체육대회도 보이지 않는 수고의 손길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교회의 비전은 저절로 성취되지 않습니다. 누군가 수고해야 그 비전이 성취됩니다.
이제 여러분들의 손길도 교회를 위해 수고하는 주인의 손길이 되기를 바랍니다. 교회에는 대접받는 손님도 필요하지만 손님보다는 주인이 되기를 더욱 힘쓰십시오. 우리가 주는 삶보다 받는 삶에 익숙하다는 것은 가장 큰 반성 제목일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받는 삶에 익숙합니다. 그러나 은혜를 받으면 그 삶이 달라집니다. 은혜 받은 삶이란 받는 삶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주는 삶을 실천하는 삶을 말합니다.
왜 교회가 중요합니까? 주는 삶을 실천할 수 있는 소중한 터전이기 때문입니다. 교회에서 주는 삶을 실천하면 우리의 삶에는 주고받는 삶의 균형이 생길 것입니다. 익숙했던 받는 삶을 줄이고, 낯선 주는 삶을 늘리면 삶의 지평은 반드시 넓어집니다. 교회는 주는 공동체입니다. 우리는 주는 삶, 섬기는 삶, 나누는 삶을 실천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복음을 나눠주고 사람을 구원하는 구원의 방주 역할에 더욱 힘써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왜 이 분당 지역에 세워졌습니까? 그 목적을 항상 분명히 해야 합니다. 성남과 용인 지역을 중심으로 구원받을 사람을 찾고 주님 제자를 만들라는 뜻입니다.
교회가 크든 작든 상관없이 우리 교회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가 되면 됩니다. 우리는 그런 교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그런 교회의 주역이 되어야 합니다.
사실상 교회는 건물이 아닙니다. 사람이 교회입니다. 바로 여러분들이 교회입니다. 우리는 아름다운 교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기도하며 섬기는 교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하나님 일을 하는 것을 즐거워하는 영적 순례자들로 가득한 교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오늘 새벽에 저는 초대교회 교인들을 생각하며 충격 받은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도대체 그들은 어떤 교인들이었기에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30년만에 당시 고린도, 에베소, 로마와 같은 유력한 도시들을 복음으로 정복할 수 있었습니까? 그들의 숫자는 적었습니다. 그들에겐 돈도 없었고, 학력도 없었고, 지위도 없었습니다. 또한 큰 예배당도 없었고, 좋은 프로그램도 없었고, 교회성장 세미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한 가지가 있었습니다. 바로 '영향력'이 있었습니다. 그 영향력이 어디에서 왔습니까? "나는 순례자다"라는 철저한 신분의식에서 왔습니다. 우리도 그런 철저한 신분의식을 가지고 우리 주변에 영향력을 미치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영원히 정착할 자가 아니라 사명 받아 잠시 와서 사는 순례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예수님의 제자로서 복음을 전파하고 오라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 사명을 가지고 힘써 일한 후에, 하나님 품에 안긴다면 얼마나 축복 받은 삶입니까? 세월이 참 빠릅니다. 금방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때가 우리에게도 올 것입니다. 그렇게 되기 전에 우리는 항상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며 살아야 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손길이 있음을 기억하며 사시고, 항상 하나님의 뜻과 비전을 가슴에 품고, 더욱 교회를 사랑하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어느 봄날의 기억
그해 뉴욕시의 겨울은 4월이 돼도 추위가 누그러들 줄 몰랐다. 혼자 사는 데다 앞을 보지 못하는 장님인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집안에서 보냈다 .마침내 추위가 가시고 봄이 성큼 다가온 어느날, 나는 지팡이를 들고 산책을 나왔다. 얼굴에 내리쬐는 햇볕이 한없이 따사로웠다. 조용히 길을 걷고 있는데 이웃사람이 날 불렀다. 그는 내가 가는 곳까지 차로 태워주겠다고 했지만, 나는 정중히 거절하고 혼자 걸었다. 모퉁이에 도착하자 습관대로 걸음을 멈췄다.파란 신호등이 들어올 때 사람들과 같이 길을 건너기 위해서였다. 차 소리가 멈춘지 오래 됐는데도 주위에는 사람들이 없었다. 나는 참을성있게 기다리며 어릴 적 학교에서 배운 봄 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때 갑자기 강하면서도 듣기좋은 남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굉장히 쾌활한 분이신것 같군요. 제가 함께 길을 걸어도 될까요?"
그의 정중한 물음에 나는 기분이 좋아져 고개를 끄덕이며 "네"라고 들릴 들 말듯한 소리로 대답했다.그는 내 팔을 가볍게 잡았다. 우리는 함께 천천히 길을 건너면서 날씨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처럼 아름다운 날씨를 즐길 수 있어 얼마나 좋으냐는 얘기도 나누었다. 이처럼 아름다운 날씨를 즐길 수 있어 얼마나 좋으냐는 얘기도 했다. 길을 거의 다 건넜을 때쯤 자동차 경적이 사방에서 울리기 시작했다. 분명 신호가 바뀐 모양이었다. 우리는 간신히 길을 건널 수 있었다. 나는 그사람 쪽으로 돌아서서 감사 인사를 할 참이었다. 그런데 내가 말하기 전에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
"부인께선 제가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실 겁니다. 저같은 장님을 도와 길을 건너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그 봄날의 기억은 내 마음속에 영원히 남아 있다.
기억과 망각의 카페
『 Cafe'M&F (Memory & Forget)- 기억과 망각의 카페 』
1. 한 젊은 남자가 어두운 얼굴색을 가진 채 길을 가고 있었다. 그 남자가 걸어가는 길 양옆에는 아직 채 상가가 들어서지 않아 썰렁한 건물들만이 조용하게 서있었다. 또, 그가 걷고 있는 길 중간 중간에는 아직 공사가 끝나지 않은 것처럼 나무 토막이며 벽돌들이 그의 발끝을 건딜고 있었다. 별로 어둡지 않은 초저녁의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그 남자의 어두운 얼굴색과 주위의 썰렁한 분위기가 마치 한 밤중인양 하였다. 그 남자의 어두운 마음도 그리고 그 어두운 길도 그 남자에게는 영원히 끝이 보이지 않을 것같은 불안감을 주었다. 그렇게 한참을 걷던중 그 남자는 은근한 빛을 받았다. 고개를 숙이며 걷고 있던 그 남자는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그의 앞쪽에 커다란 건물 한채에서 나오는 불빛이였다. 건물 2층.. 그 5층으로 된 건물에 2층을 제외하고는 모두 불빛이 없었으며 아예 어떠한 것도 들어서지 않았다. 단지 2층에서만 불빛이 흘러 나오고 있었으며, 조그마한 간판 하나가 빛나고 있었다. ┏━━━━━━━━━━━━━━━━━━━━━━━━━┓ ┃기억과 망각의 카페 『 Cafe' M&F (Memory&Forget) 』┃ ┗━━━━━━━━━━━━━━━━━━━━━━━━━┛ 그렇게 쓰여진 노오란 불빛이 그의 눈을 자극했다. 그리고 가슴을 자극했으며 그의 머리를 자극했다. 그는 오래전 부터 자주 왔던 곳처럼 자연스레 그 건물 2층으로 올라갔다. 그리고는 투명한 가운데 '기억과 망각의 카페- 어서 오십시오 ' 라고 써져있는 문을 밀자, '딸랑' 거리며 문에 붙은 종소리가 울렸다. 그리고는 그 안으로 그 남자는 들어갔다. 2. 안으로 들어가서 그는 잠시 문앞에서 멈칫했다. 그리고는 카페 안을 천천히 둘러 보았다. 그가 서있는 곳에서 왼쪽벽은 온통 유리로 되어 있어 밖이 쉽사리 보였으며, 조명은 오렌지색으로 은은한 초저녁의 분위기를 띄었다. 그리고 그 남자의 오른쪽 바로 옆에는 카운터가 있었으며, 그남자의 나이또래로 보이는 한 남자가 주인인양 서 있으며 그 남자를 반겼다. 아직 상가들이 다 들어서지 않은 골목에 처음 들어선 곳이여선지 그 카페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흘러나오는 음악도 없었다. 그 남자는 창가쪽으로 자리를 잡으려다가 다시 발길을돌려 제일로 구석지고 조명불이 약한 곳으로 가서 앉았다. 잠시 후에 카운터에 있던 젊은 남자가 메뉴판을 들고 걸어 왔다. 자세히 보니 검은 색과 흰 색으로 된 메뉴판 두 개를 들고 왔다. 그리고는 그 남자의 테이블 위에 조심스레 올려 놓았다. "어느 메뉴판으로 하시겠습니까?" 그 남자는 잠시 무슨 말뜻인지 몰라, 주인의 얼굴과 메뉴판 두개를 번갈아 쳐다 보았다. "네? 어느... 메뉴판이라니요?" 주인 남자는 가볍게 웃음을 띄며 말했다. "흰색의 메뉴판과 검은 색의 메뉴판 둘 중에 어느 것으로 드실건지 물은 겁니다." 그 남자는 주인이 장난을 치는 줄 알고, 애써 웃는 얼굴을 하며 말했다. "하, 아무거나 주시면 되지 어느 메뉴판이라니요. 후.." 그러자 주인은 다시 웃으면서 말했다. "손님이 혼자 들어올때 얼굴색이 심상치 않아, 이렇게 조금 색다른 메뉴판을 가져 나왔습니다. 자세히 두 메뉴판을 보시지요." 그 남자는 의아하게 주인을 쳐다 보다, 다시 테이블 위에 놓여진 흰색과 검은색의 메뉴판을 자세히 들여다 보았다. 한참을 자세히 들여다 보고나자 그는 두 메뉴판의 다른 점을 찾아 낼 수 있었다. 흰색의 메뉴판에는 '기억의 카페' 라고 세로로 크게 쓰여져 있었고, 반대로 검은색 메뉴판에는 '망각의 카페' 라고 크게 쓰여져 있었다. "기..억 과 망..각....이라....? " 혼잣말로 이렇게 그 남자가 중얼거리자, 주인은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저희 카페의 이름이 '기억과 망각의 카페' 인거 처럼 좀 특별 나지요. 보통은 그냥 메뉴판을 가져 오는데, 손님과 같은 분이 올때는 이렇게 두개의 메뉴판을 내 놓습니다. 하나는 기억, 또 하나는 망각. 우리 카페는 이름처럼 특이한 구석이 있지요. 기억, 즉 흰색 메뉴판에서 골라주문하시면 그 주문하신 걸 드실때 자신이 원하는 어떠한 것을 자세히 기억할 수 있지요. 그리고 반대로 망각, 검은색 메뉴판에서 어떠한 것을 주문하셔 드시면 원하시는 것을 잊어 버릴 수 있답니다. 그러나 단 사랑에 관해서만 말입니다. 손님에게 오늘 필요하실꺼 같아서 이렇게 가져 나왔습니다." 주인은 그렇게 설명을 마치고 또 다시 미소를 띄웠다. 그러자 그 남자는 더욱 더 알 수 없다는 듯이 그 주인을 쳐다 보았다. 하지만 여전히 웃음을 띄고 있는 주인의 얼굴에게서 주인이 한 말이 전혀 농담같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래서 그 남자는 심각한 얼굴로 물었다. "정말 어떤 걸 잊을수도 그리고 기억할 수도 있는 겁니까?" "네, 그렇습니다. 기억을 할 경우 사랑에 용기를 얻고, 망각을 할 경우 사랑에 대해 포기를 하지요." 그렇게 유창히 말하는 주인의 얼굴과 목소리에선 거짓과 농섞임을 느낄수가 없었다. 아니, 그 말이 농담이라도 그 남자의 지금 심정으로는 주인의 말을 믿고 싶었다. 그 남자는 주인의 얼굴을 다시 한번 쳐다 본 후 검은색 메뉴판을 들었다. 이 때 주인으로 보이는 남자가 약간 얼굴색을 바꾸면서 말을 꺼냈다. "왜, 검은색을.. 흰색으로 하시는게....?" 그러자 그 남자는 고개를 설레 설레 흔들고는, "아뇨, 검은색으로 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주인은 알듯 모를듯한 표정으로 다시 말을 했다. "잊는 거보다 기억해서 지금 사랑에 용기를 얻어 보시는게 어떻겠습니까?" 이 주인의 말에 그 남자는 자신의 마음을 보인거 같아 흠칫 놀랐으나, 여태까지 주인의 이상스런 말이며 카페의 분위기로 봐서 그럴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는 이내 표정을 굳히고는 다시 한번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는 검은색 메뉴판에서 헤이즐넛 커피를 시켰다. 주인은 '흠..' 하는 신음소리를 한번 낸 뒤 두 메뉴판을 집어 들고 돌아 갔다. 3. 남자는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어서 불을 붙였다. 그리고 한 모금 깊이빨아 내뱉은 후, 속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어 사진 하나를 꺼내였다. 그사진에 한 여자가 서 있었는데, 그 여자는 웃는 얼굴로 아이보리색 롱코트를 입고 긴생머리를 하고 있었다. 그렇게 뚫어져라 그 남자는 그 사진을 계속 보고 있었다. 잠시 후 주인이 검은색 쟁반에 검은색 커피잔을 들고 그 남자의 테이블로 왔다. 그리고는 커피를 내려 놓으면서 그 남자가 보고 있는 사진을 쳐다 보았다. "이쁘네요? 애인이신가보죠?" "후, 글쎄요...." 서글픈 눈동자로 그 남자는 애매하게 대답을 했다. 그러자 주인이 제차 물었다. "애인인거 같은데, 아니예요?" 그러자 그 남자는 피식하고 웃으면서, 사랑하는 여자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커피에 입을 가져다 될려는 순간, 다시 주인이 말했다. "잠깐만요, 그걸 지금 드시는 순간부터 서서히 손님께서 잊고 싶은 것을 잊게 될텐데,정말 드실껍니까?" 그러자 아무말 하지 않고 그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 보고 주인은다시 말을 꺼냈다. "그럼 손님도 없는데 제가 여기 앉아서 무엇을 잊을려는 지 알아도 될까요?" 그 남자는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요, 까짓거 이제 잊는 마당인데요.." 주인은 그 남자의 앞에 앉아서 조심스레 그 남자를 쳐다 보았다. 그리고 는 잠시 후 그 남자가 말을 하기 시작했다. 4. 그 남자는 헤이즐넛이 담긴 커피잔을 살며시 들어 보이면서 말했다. "그녀는 헤이즐넛을 즐겨 마셨지요. 그러다 보니 나도 이렇게 즐겨 마시게 되었어요." 주인은 '아..네' 라고 말하면서 묵묵히 그 남자가 이어나가는 말을 들었다. "5년을 만나던 여자가 있었지요. 그러니깐 대학 1학년때 같은 동아리내 친구로서 만나서 정말 친하게 지냈지요. 하지만 본디 나는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그녀에게 접근한게 아니였지요. 그녀를 보는 순간 좋아하는 마음에 이끌여 어떻게든 그녀와 잘지내 보자는 속에서 그런거였지요. 하지만 나의 그런 속도 모른 체 그녀는 참으로 나와 정말 동성 친구처럼 잘지냈지요. 서로의 고민도 들어주고, 힘들때는 옆에 있어주기도 하고 말입니다. 하지만 한번도 그녀에게 고백할 용기를 내지 못했지요. 아니요, 사실 기회가 없었지요. 그녀를 한 1년쯤 만났을때쯤 난 그녀에게 시간도 이렇게 지나고 했으니, 나의 마음을 어느 정도는 느끼고 있으리라 생각해 그녀에게 고백할 마음을 먹고 그녀에게 평소처럼 만나자고 했지요. 그리고는 그녀가 나왔어요. 이런 저런 평소의 이야기를 하면서 웃고 즐기다가 갑자기 그녀가 조금 심각한 표정을 띄더니 고백할게 있다는 거였어요. 난 속으로 어쩌면 먼저 그녀가 나에게 고백을 할거라고 생각을 했지요. 그리고는 떨리는 마음으로 그녀에게 뭐냐고 묻자, 그녀는 쑥쓰러운 듯 나에게 말을 했어요. '나, 애.인 생겼어.'라고요. 난 아직도 그녀가 그 말을 할때 입술 모양을 기억해요. 입술에 발랐던 그 립스틱색도...... 잠시 그 남자는 말을 멈추고 주인이 가져온 커피를 한모금 마셨다. 그리고는 그 남자가 지금까지 손에 쥐고 있던 그녀의 사진을 테이블에 살짝내려 놓았다. 잠시 가만히 있다가 그 남자는 말을 다시 이었다. "훌. 그 립스틱색깔이....음...? 거 정말 커피가 효과가 있나봐요? 생각이...훌.....여하튼 그때 그녀는 넌 정말 편한 친구니깐 나에게 말하는 거라고 했지요. 전 애써 기쁜 표정을 지으면서 잘되었다고, 정말 잘되었다고 잘해보라고 했지요. '하긴, 내 주제에 그런 그녀를 어찌 사귀겠냐..' 하는 생각을 먹고 그녀가 진심으로 잘되기를 바랬지요. 종종 그녀의 남자친구와도 같이 만나서 놀기도 했지요. 참 잘생긴 사람이였지요. 하지만 좀 더 시간이 흐른 뒤 그 둘 사이가 안좋아 지기 시작했지요. 그녀는 매일 나에게 울면서 이야기를 했어요. 그리고는 좀 이따가 그 둘은 헤어졌지요. 그렇게 6개월 동안 사귀다가 헤어지니 그녀의 아픔이 무척이나 컸지요. 그녀는 또 6개월을 그아픔으로 보냈고, 난 그녀의 옆에서 아무 말 못하고 쓰다듬어 줄 수 밖에 없었지요. 하지만 시간이 약인 듯 그녀는 6개월이 지나자 다시 예전의 모습을 찾기 시작했고 우리는 더더욱 친하게 지냈지요. 종종 그녀가 말했어요. '네가 차라리 남자 친구였으면 좋겠다. 애인이였으면 좋겠다..' 이런 말을 들을때마다 가슴이 얼마다 콩쾅콩쾅 했는지...훌........" 그 남자는 말하는 중간 중간에도 커피를 조금씩 조금씩 마셨다. 주인은 조용한 표정으로 그 남자의 눈과 입을 쳐다 봤다. "그래서 사귀자는 말을 했나요?" 후, 하는 한숨을 쉬더니 그는 다시 말을 하기 시작했다. "아니요. 또 기회를 놓쳤지요. 그렇게 시간을 보낸 후 난 최대한 그녀의 상처가 아물때 고백을 할려고 마음을 먹었었지요. 하지만 그 중간에 또 다른 남자가 생긴거였어요. 난 다시 축복을 해주었지요. 하지만 너무 가슴이 아파 그녀를 보기도 싫었지요. 하지만 또 시간이 흘러서 그녀는 혼자가 되었지요. 그런 일이 그 후로도 한번 더 있었지요. 그녀는 그렇게 또 얼마 못가서 깨어지고 말았어요." "그럼 깨어진 후에 다시 고백을 했나요?" "아니요. 이젠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지요. 그래서 그녀와 여행을 가기 로 마음 먹었어요. 예전에도 둘이서 여행을 자주 다니던 터라, 아무런 어색함 없이 그녀도 나를 따라 나섰지요. 우리는 겨울 바다로 갔어요.동해로.. 그리고는 그 추운 겨울 바다에서 그녀는 자연스레 나의 팔짱을 끼었지요. 그녀는 아무런 느낌없이 그냥 친구로써 낀거지요. 그리고는 가까운 음식점을 찾아 들어가서 추위를 녹인답시고 소주를 시켜서 둘이 마셨지요. 얼마나 마셨는지는 모르겠어요. 아니 사실 술기운이 없이는 말을 못할꺼 같아 많이 마셨지요. 그녀가 의아해 했으니깐요. 술도 못마시는 내가..훗.. 그리고는 다시 바다로 나갔어요. 추위는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녀가 옆에 있어서 떨렸어요. 그녀는 추웠는지 다시 나의 팔짱을 끼었지요. 난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지금이라고 그래서 그녀에게 고개를 돌리고 그녀를 내려다 보았지요. 하지만 입이 떨어지질 않았어요. 그때 그녀도 나를 뚫어지게 쳐다 보다가 갑자기 나의 팔짱을 빼고 물러 서더군요. 훗. 그리고는 혼자 길을 마악 걸어갔어요. 그녀는 내가 키스를 할려고 했는 줄 아나봐요. 난 당혹스럽고 쑥쓰러워서 도저히 그녀의 뒤를 따라 갈 수 없었지요. 그녀의 얼굴은 분명 친구이상은 안된다고 써있었지요. 더이상 난 거기에 있을 수가 없었어요. 그 길로 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왔지요. 그 후론 그녀에게 연락도 하지 않았지요. 아니, 그녀에게 연락이 오길 바랬지만...후... 그녀에겐 난 그저 남자 친구 일뿐이예요. 아무 감정 없는.. 어쩌면 내가 잘못한 걸지도 몰라요. 차라리 차라리.... 그녀에게 처음부터 내 마음을 나타내었다면 이런 고통은 없었을지도요.. 그래서 그냥 그녀가 사귄 남자중에 하나로 남았다면.. 난 잊고 다른 여자를 만날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데...후........ 그냥 이렇게 그녀에게 영원히 남을 수 있는 사람으로만 만족해야 하나....... 더 이상 이 아픈 마음을 주체할 수 없어요. 사실 여기 들어오기 전까지 그냥 미쳐서 모든 걸 까먹어 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런 이런 망각의 기회가 주어지다니...후후............................." 주인은 아무말도 하지 않고 그 자리에 그냥 앉아만 있었고, 그 남자는 반이상 남아 있던 커피를 이젠 싸그리 잊고 싶다는 것처럼 생수 마시듯이 꿀꺽 꿀꺽 다 마셔 버렸다. 그리고 잔을 내려 놓고는 멍하니 테이블만 쳐다 보았다. 그리고는 눈에서 한방울의 눈물이 그 남자의 뺨을 타고 턱선을 타고 테이블 위에 떨어졌다. "똑!" 그 소리가 음악도 없는 그 카페에 메아리 치듯 크게 울려 퍼지는 것 같음을 주인은 느꼈다. 그리고는 말했다. "당신의 그녀는 이제 당신이 지금 흘린 마지막 눈물 한방울로 망각 되었어요.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그 말을 남긴 체 주인은 자리에서 일어나 카운터로 돌아 갔다. 한참을 그 남자는 고개를 숙인 채 앉아 있었다. 아무 미동도 없이. 그러다가 그남자는 고개를 들고 멍하니 주위를 둘러 보았다. 눈에는 아까 처음 들어 왔을때의 슬픈 기운은 없었다. 그냥 단지 멍해졌을뿐.... 그 남자는 커피잔이 빈 것을 알고 자리에서 일어나 카운터로 와서 아무일 없었던 것처럼 말했다. "얼마지요?" "그냥 가세요. 서비스입니다." 이렇게 주인이 말하자 그 남자는 이상하다는듯 고개를 갸우뚱 하더니 고맙다면서 문을 열고 나갔다. 나가면서 그 남자는 이상하게 무언가가 텅하니 빈 것 같은 느낌을 받았으나. 그냥 그러려니 하고 생각 했다. 마침한 여자가 급하게 자신이 나온 카페로 들어가는 모습을 뒤에서 얼핏보고가슴이 징~해지는 것을 느꼈으나. 개연치 않고 가던 길을 계속 갔다. 5. 주인은 잠시 후 아이보리색 롱코트를 입은 긴생머리의 여자 손님을 맞이 하였다. 그 여자 손님은 아까 그 남자 손님이 앉았던 곳에 앉았다. 그것을 본 주인은 다시 흰색 메뉴판과 검은색 메뉴판을 들고 갔다. 그리고는어두운 얼굴로 말했다. "어떤 메뉴판으로 하시겠습니까?" 그녀 또한 의아하게 생각하고 물었다. 그러자 주인은 아까 그 남자에게 설명해주었던 말을 다시 설명해 주었다. 그러자 그녀는 재미있다는듯이 힘껏 웃음을 지으면서, 흰색 메뉴판을 들었다. "헤이즐넛으로 주세요. 전 용기를 얻어 5년간 저를 지켜준 남자에게 사랑을 고백해야 되거든요? 그는 숱기가 없어요..후훗 " 주인은 가슴이 저며 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는 묵묵히 메뉴판을 들고 돌아 갔다. 그 여자 손님은 설레이는 듯 기쁜 눈을 뜨고 있었다. 그 때..... 그녀가 신은 신발의 힐 밑에는 아까 그 남자 손님이 놓고간 여자 사진이 떨어져 밟혀 있었다.................. Epilog 그렇게 그 남자 손님이 검은색 메뉴판의 헤이즐넛을 먹고가고, 그렇게 그 여자 손님이 흰색 메뉴판의 헤이즐넛을 먹고 간 후의 아침 그 카페는 철거되고 있었다. 옆에서 안타까운 주인의 눈빛을 받으면서........... 무엇을 잊는다는 것도 무엇을 기억한다는 것도 다 때가 있는 법. 자연스레 잊혀지고 기억될때 그것은 사랑이 된다고 믿습니다. 애써 잊으려고도 기억하려고도 하지말기를....................... 그런데 도대체 어떤 분이 쓰신건지 알수가 없군요..... 또 펀글이란 말을 붙여야겠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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