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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핍박 예화모음

by 【고동엽】 2023. 3.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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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전박대 당한 간디
 
인도의 영원한 지도자 간디(Mohandas Karamchand Gandhi, 1869-1948)가 젊었을 때 영국으로 유학을 갔습니다. 온갖 차별과 편견과 냉대에 시달리면서 어려운 유학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성경책을 발견하고 이를 읽기 시작하였습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간디는 참으로 많은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특히 예수님이 산상수훈의 말씀은 그에게 큰 감명을 더하여 주었습니다.

성경을 읽은 간디는 하나님을 위해 그의 일생을 바쳐야겠다는 결심하고는 교회의 문을 두드리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인도가 영국의 식민지에 지나지 않는 미개한 나라이었고 인종차별이 심한 때이었기 때문에 그의 결심은 빛을 볼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교회를 찾아다니며 예수를 잘 믿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여러 차례 청원을 해 보았으나 교회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붸겨 나기가 일쑤이었기 때문입니다.

교회에서 쫓겨나면서 한 그의 마지막 말은 너무나 유명합니다. "나는 그리스도는 존경하지만 그리스도인은 경멸한다.” 그는 결국 기독교에 대한 신앙을 버리고 교회를 떠나고 말았습니다. 인도로 돌아온 그는 10억 인구의 인도를 움직이는 위대한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만약 그 때 교회가 간디의 간절한 소망을 외면하지 않았다면 인도의 역사는 전혀 달라졌을지 모릅니다. 간디가 기독교의 영향을 인도에 끼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인도 컬컷트에서 만나는 인간 이하의 삶을 사는 그 수많은 거지떼들은 인도가 아직도 어두움 속에 헤매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만나는 젊은이들에게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 가능성을 볼 수 있고 그 가능성을 영글게 하는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이라 할 것입니다 
 

 

 

 
 
 

 

 

핍박을 기뻐하라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롬 8:33-34



"의를 아는 자들아, 마음에 내 율법이 있는 백성들아, 너희는 나를 듣고 사람의 훼방을 두려워 말라 사람의 비방에 놀라지 말라 그들은 옷같이 좀에게 먹힐 것이며 그들은 양털같이 벌레에게 먹힐 것이로되 나의 의는 영원히 있겠고 나의 구원은 세세에 미치리라"-사 51:7-8




"인자를 인하여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며 멀리하고 욕하고 너희 이름을 악하다 하여 버릴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도다 그 날에 기뻐하고 뛰놀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 저희 조상들이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눅 6:22-23




당신은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것 때문에 불신자들에게 핍박을 받은 적은 없으십니까 ?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핍박을 받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유명한 노방 전도자 헨리 G. 보쉬도 21년 이상 노방 전도를 하면서 많은 핍박을 받아 왔습니다. 비싼 음향기기를 도난 당하고, 오토바이 깡패들에게 전도 집회를 방해받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절대로 집

회를 중단하지는 않았습니다. 자주 좌절하기는 했지만, 하나님의 사역이 번성할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오히려 기뻐했습니다.

주님께서는 주님의 사역을 하는 사람들이 불신자들로부터 핍박받을 것이라는 사실을 미리 알고 계셨습니다. 그렇기에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는 말씀으로 핍박에 결코 굴하지 말 것을 촉구하셨습니다.

"주님, 저희로 불신자들의 핍박을 지혜롭게 받아넘길 수 있도록 도우시고, 어떤 형태로든 불신자들의 핍박에 굴하지 않도록 지켜 주시옵소서."

당신을 핍박하는 자들이 있다면, 간절하게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박해자들의 험악하게 일그러진 얼굴을 두려워하지 말라. 

 

 

 
 
 

 

 

핍박을 두려워 말라
 
베드로가 물고기를 못 잡아 허탈한 마음으로 해변에서 그물을 씻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배에 오르사 말씀을 증거 하셨습니다.



말씀을 마친 예수님께서는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누가복음 5:4)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 배를 내어 드렸던 베드로는 이에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라고 대답하고 그대로 했습니다.




그 결과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많은 고기를 잡게 되었습니다. 그는 얼마나 많은 고기를 잡았던지 동료를 불러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천국을 위해 희생한 성도에게 백 배의 보상을 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핍박을 겸하여 받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도가 하늘나라를 위해 희생하면 불신자인 가족이나 친척, 동료들은 [저 사람 미쳤군. 제정신으로는 저렇게 될 수가 없어]라고 비난하며 핍박할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사탄의 사주를 받고 그리스도인을 핍박합니다. 사탄은 그리스도인이 자꾸 늘어나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도적질한 것을 백 배나 빼앗기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초대교회 때부터 핍박을 받았습니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순교를 당하기까지 했습니다.예수님을 위해 의롭게 살려고 하다 보면 핍박을 많이 받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성도는 핍박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의를 위해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겠다고 말씀하셨으며(마태복음 5:10) 핍박이 성도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고 말씀하셨고(로마서 8:35), 성도는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고린도후서 4:9).




이러므로 성도 여러분, 주를 위해 핍박을 받으면 오히려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핍박을 두려워하거나 피하지 마십시오. 핍박으로 인해 여러분의 믿음과 상급은 더 커질 것입니다. 

 

 

 

 
 
 

 

 

박해의 낱말 뜻
 
1. 히브리어
라다프 - 뒤쫓다, 추적하다, 쫓아가다, 박해하다, 학대하다.
사탐 - 미워하다, 증오하다, -에게 악의를 품다, 반대하다, 대항하다.
짜라르 - 초조하게하다, 괴롭히다, 고민시키다, 제한하다.

2. 헬라어
디오그모스 - 핍박 디오코 - 핍박하다, 빼앗다.
에크디오코 - 핍박하다, 쫓아내다.
라크티조오 - 핍박하는, 발길질하는. 

 

 
 
 

 

 

 

자, 은혜의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인도의 선교사로 있던 이스테니 존슨이라고 하는 분이 있다. 1884년부터 1973년까지 성공적으로 일하신 대표적인 선교사이다. 그는 성경을 연구하고 깊이 상고하는 중에 이런 것을 깨달았다. 특별히 교회사를 또 읽어 보고 '그 당시에 초대교회 교인들이 어떻게 살았는가?'하는 것을 상고해 가는 중에 이런 글을발견하게 된다.


초대교회 교인들은 박해가 다가오고 있을 때에(이 박해라는 것은 곧 고난과 죽음을 의미하는 것) 이것을 알고 저들은 서로 말하기를 "자, 은혜의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 이렇게들 생각하고 하나님 앞에 모여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는 것이다. 이런 기록들을 읽으면서 존슨 선교사는 자기 일기장에 이렇게 적어 놓았다고 한다. "초대교회 교인들은 폐허를 보지 않고 그 폐허 속에서 재건하시는 하나님을 보았고, 죄악이 팽배해가는 세상을 보지 않고 그 흑암 속에서 활동하시는 하나님을 보았고, 어두움 속에서 이미 아침을 보고 있었다." 

 

 

 
 
 

 

 

예수의 흔적이 있는가
 
●“저희가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도 더욱 그러하
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 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감한 매를 다섯 번 맞
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 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고후 11:23∼25.


당신 몸에 “예수의 흔적”이 있습니까 ? “흔적”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스
티그마타』입니다. 이는 종이 주인에게 예속되었음을 입증해 주는 낙인(烙
印)을 뜻하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예수의 흔적이라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다가 입은 핍박과 고난의 흔적을 가리킵니다. 우리가 진실로 예수님
의 말씀대로 살다보면 오해를 받고, 반대에 부딪치고, 심한 경우에는 거절을
당해 마음의 상처를 입을 때가 있습니다. 이때 슬퍼하거나 괴로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나도 예수님의 종으로 인정을 받는구나'라고 생각하며 기
뻐하시기 바랍니다. 핍박은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고, 예수님을 전하지 않는
사람은 결코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핍박은 예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자만이 받는 특권입니다.
“주님, 주님을 위해 핍박받는 것을 기뻐할 수 있을 정도로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기 원합니다.”

 

 

 
 
 

 

 

핍박을 당할 때 기뻐하라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
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
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
시니라"-롬 8:33,34.


"의를 아는 자들아, 마음에 내 율법이 있는 백성들아, 너희는 나를 듣
고 사람의 훼방을 두려워 말라 사람의 비방에 놀라지 말라 그들은 옷같이
좀에게 먹힐 것이며 그들은 양털같이 벌레에게 먹힐 것이로되 나의 의는
영원히 있겠고 나의 구원은 세세에 미치리라"-사 51:7,8.


"인자를 인하여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며 멀리하고 욕하고 너희 이름
을 악하다 하여 버릴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도다 그 날에 기뻐하고 뛰
놀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 저희 조상들이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눅 6:22,23.

당신은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것 때문에 불신자들에게 핍박을 받은 적은
없으십니까 ?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핍박을 받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유명한 노방 전도자 헨리 G. 보쉬도 21년 이상 노방 전도를
하면서 많은 핍박을 받아 왔습니다. 비싼 음향기기를 도난 당하고, 오토
바이 깡패들에게 전도 집회를 방해받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절대로 집
회를 중단하지는 않았습니다. 자주 좌절하기는 했지만, 하나님의 사역이
번성할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오히려 기뻐했습니다.


주님께서는 주님의 사역을 하는 사람들이 불신자들로부터 핍박받을 것이
라는 사실을 미리 알고 계셨습니다. 그렇기에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
이라"는 말씀으로 핍박에 결코 굴하지 말 것을 촉구하셨습니다.
"주님, 저희로 불신자들의 핍박을 지혜롭게 받아넘길 수 있도록 도우시고
, 어떤 형태로든 불신자들의 핍박에 굴하지 않도록 지켜 주시옵소서."

 

 

 
 
 

 

 

의를 위한 핍박과 고난
 
종교 개혁 이전의 개혁자였던 이탈리아의 설교자 기롤라모 사보나롤라는 14세기에 접어든 후 더욱 부패해진 로마 교회 아래서 온갖 향락을 즐기며 타락해가는 조국 이탈리아를 향하여 설교했습니다. 멸망을 향해 치닫는 조국 이탈리아 역사의 비탈길에 서서 그는 플로렌스를 향해 외쳤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라. 죄악의 도성 플로렌스를 하나님이 멸하시리니 회개하라"

그는 추기경의 자리를 주겠노라고 제의하던 로마 교황을 향해 추기경의 붉은 모자보다는 차라리 순교의 피로 물든 붉은 모자를 쓰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던 그는 결국 1498년 어느 날, 적들에게 체포되어 목졸려 죽은 뒤 화형당하고 한줌의 재가 되어 아르노 강물 위에 뿌려졌습니다. 1485년부터 그가 설교하였던 두오모 교회당에서는 매시간 불같은 메시지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목숨을 건 용기와 도전 속에서 외친 그의 선포는 정치 지도자들과 성직자들과 시민들의 부패한 삶을 하나님 앞에 눈물로 고발하고 있었습니다. 수많은 청중들이 입추의 여지없이 모여들고 각성된 그리스도인들이 한밤중부터 교회 문 앞에서 줄을 서서 예배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사보나롤라는 한줌의 재가 되어 강물을 따라 흩어져 버렸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에 대한 각성을 외친 그의 설교는 다음 세대에 도래할 종교 개혁을 알리는 횃불이 되어 칠흑 같은 중세 교회사에 찬연히 타올랐던 것입니다.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모든 위대했던 하나님의 사람들을 살펴보면 그들이 살았던 그 당대에는 조롱과 비방을 당했었습니다. 그런 사람 중의 한 사람이 요한 웨슬레입니다. 그와 그의 동생 찰스와 조지 휫필드는 영국에서의 피비린내 나는 혁명을 막은 사람들로 현대 역사학자들에 의해 평가되고 있습니다.

웨슬레의 설교는 영국의 거리와 뒷골목의 압제를 받으며 살고 있던 사람에게 사람들에게 소망을 가져다주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당시의 성직자들은 그를 이단이라 불렀고 때로는 교회 밖으로 내쫓기도 했습니다. 그에 대한 온갖 소문이 나도는가 하면 그는 온갖 죄목이 붙여진 고소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그는 수십 번이나 그를 반대해서 일어난 폭도들에 의해서 죽을 뻔하였습니다. 웨슬레는 이와 같은 것을 지극히 정상적인 것으로, 즉 자신이 그 사역 안에서 하나님을 순종하고 있는 것의 증거로 받아들였습니다. 하루는 웨슬레가 말을 타고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즈음의 지난3일 동안, 어느 한 사람도 벽돌이나 계란을 자신에게 던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그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때 그는 그의 말을 멈추고 내려와 무릎을 꿇고 엎드려 '내가 죄를 짓고 타락한 것은 아닌가'하고 부르짖으며 하나님께 혹시 그가 잘못한 것이 있으면 보여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 반대쪽 울타리 한쪽 끝에서 그의 기도를 듣고 있던 한 사나이가 그가 바로 웨슬레임을 알아보고는 "잘됐다. 저 감리교 목사를 내가 이번에는 손 좀 봐야겠군" 하고는 벽돌 하나를 집어 그에게 던졌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살짝 빗나갔습니다. 그때 웨슬레는 "하나님 감사합니다. 아 괜찮았군요. 제가 아직도 당신의 임재하심 가운데 있었군요"라며 펄쩍 뛰며 좋아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예수 님을 믿고 전한다고 당신에게 욕하고 핍박을 당한지 얼마나 되었습니까? 만일 모든 사람이 당신을 좋아한다고 해서 당신이 그리스도를 올바르게 따르고 있다고 확신할 수 있겠습니까?


기독교는 순교자의 피와 고난의 박해 속에서 성장했습니다. 성경에 보면 흰 옷을 입은 큰 무리를 설명할 때 "이는 큰 환란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계7:14)하였고, 또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마5:10-12)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인이 핍박을 당하지 아니하면 그것이 오히려 기이한 것입니다. 고난과 역경을 거쳐야 하늘의 시민권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막10: 29-30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자신만을 위한 감옥을 만들라
 
중국 지하교회 지도자 가운데 왕 밍 다오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1967년 문화혁명당시 체포되었습니다. 그리고 23년간의 감옥생활 동안 믿음을 지키다가 1991년에 소천했습니다.

그가 주님의 품으로 가기 전에 서구의 그리스도인들이 감옥에서의 경험 중에 도움이 될만한 것을 한가지 말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러자 왕 밍 다오는 몇가지 질문을 했습니다. '당신은 집에 가면, 얼마나 많은 책을 이번 달에 읽어야 합니까? 또 얼마나 많은 편지를 써야합니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설교해야 합니까?'


왕 밍 다오는 잠시 멈추었다가 계속 말을 이었다. '당신은 스스로를 위해 감옥을 만들어야 합니다. 제가 감옥에 들어갔을 때 저는 낙심을 했습니다. 저는 전도자였습니다. 그래서 중국 전역을 다니며 집회를 인도하고 싶었습니다. 저는 작가였습니다. 그래서 책을 쓰고 싶었습니다. 저는 설교자였습니다. 그래서 설교를 작성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성경책도, 강단도, 집회도, 펜도, 종이도 없었습니다. 저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20여 년의 세월은 제가 그 동안 알지 못했던 하나님과의 가장 친밀한 관계를 갖게 했습니다.'


그는 이러한 충고를 덧붙었다. '저는 감옥에 넣어졌지만 당신은 스스로를 위해 자신만의 감옥을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당신의 삶을 간소하게 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러브조이의 마지막 연설
 
노예 폐지론자이자 편집장인 러브조이는 무엇이든 거리낌없이 말하는 사람이었다. 일단의 흥분한 단체들이 편집장 러브조이에게 항의하는 표시로 앨톤 시의 인쇄기 여러 대를 파괴하였다.

마침내 공개적으로 소집된 모임에서 러브조이를 앨톤지의 편집장직에서 사임토록 하는 결정이 내려졌다. 러브조이는 1837년 11월 3일 군중들에게 이렇게 연설하였다.


"여러분, 제게 어떤 법류이라도 어긴 혐의가 있다는 겁니까? 만약 그렇다면 그 부분을 지적해 보십시오. 나는 기꺼이 그 부분에 대해 답변할 용의가 있습니다.


제가 만일 어떤 법률이라도 어겼다면, 여러분은 쉽사리 저를 고발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어떠한 법률도 어긴 적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왜 제가 산 위의 패트리지처럼 계속해서 위 아래로 불려다녀야 합니까?


만약 시 당국이 나를 보호해주지 않는다면, 나는 하나님을 바라보겠습니다. 그리고 만일 제가 죽는다 할지라도, 나는 앨톤 시를 나의 무덤으로 삼을 작정입니다. 나는 맹세코 노예제도에 대해 변함 없이 반대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축복 속에서 나는 결코 결심을 바꾸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과 함께 기쁘게 이 운동을 계속해 나갈 것입니다. 나는 이 편집장직에서 죽을 수 있어도 이 사명을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크리소스톰을 어쩌랴
 
교부중에 크리소스톰 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설교를 매우 잘 했기 때문에 '황금의 입을 가진자'라는 별명이 붙은 사람 입니다. 그런데 하루는 로마 황제가 그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포기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그는 죽어도 그리스도를 포기하지 못한다고 맞섰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로마 황제의 명령으로 체포 되었고 로마 황제는 신하에게 크리소스톰이 아무도 대화하지 못하게 고독한 개인 감방에 집어 넣으라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때 신하는 안타까운듯이 황제에게 말을 합니다. "황제님 모르십니까? 예수 믿는 사람은 혼자 있기를 좋아 합니다. 만일 그 사람을 감옥에 혼자 가두어 놓으면 기도를 많이하게 됩니다. 우리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예수 믿는 사람은 하나님이 와서 같이 이야기 한답니다"


이에 더욱 화가난 황제는 "그러면 그를 극악 무도한 죄인들이 있는 감옥에 집어 넣으라"고 명령했습니다.
신하는 다시 고개를 흔들면서 "황제님 그것은 안됩니다. 그 사람은 오히려 전도할 기회를 얻었다고 뛰면서 좋아할 것입니다. 그리고 얼마 있지 않아 감옥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크리스찬이 되고말 것입니다. 그 사람에게는 이상한 힘이 있어 극악 무도한 죄인도 변화를 시킴으로 오히려 그에게 상급을 받게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놈을 내어다 목을 쳐라"고 황제가 노여워서 말합니다.
"황제님 모르시는 말씀 입니다. 저 자들의 제일 큰 상급은 순교 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 자들중에 목 베임을 당하러 나올때 우는 사람을 볼 수 없지요.
오히려 얼굴에 광채가 나고 기뻐 합니다"
그러자 황제는 "그러면 이놈을 어떻게 해야 좋단 말이냐?"하면서 탄식을 했다고 합니다. 

 

 

 
 
 

 

 

천로역정의 존 번연
 
“나는 가끔씩 밧줄을 목에 두른 채 사다리 위에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것은 1660년대를 싸늘한 감방에 앉아 보내던 존 번연이 자신이 교수형으로 죽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그 기억을 후에 다시 떠올리며 했던 말이다. 번연은 하나님께서 주신 복음전도자와 설교자로서의 소명을 포기할 것을 거절한 연고로 투옥되어 12년이라는 긴 세월을 수감자 신세로 보낸다.

다음 세기 복음전도자의 선두에 섰던 존 뉴톤은 그의 생애를 생각하며 ‘주께서 유능한 설교자의 입을 다물게 하시면서 넓은 문을 여시는 데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이유들이 있다. 만약 존 번연이 베드포드 감옥에 갇혀 있지 않고 설교를 계속했었다면 그는 자신의 했던 일의 절반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라고 적었다. 그가 그곳에서 쓴 ‘천로역정’은 수세기 동안 그리스도인으로서 순례자의 길을 걸어가는 데 큰 힘이 되어 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한때 죽음에 대해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내가 이해하지 못했던 두 가지가 있었다. 첫째 노인들이 마치 이곳에서 영원히 살 것처럼 이생의 일들을 추구하는 것을 보았을 때였고 두 번째는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남편, 아내, 자녀의 죽음 등과 같은 손실들을 겪을 때 너무 번민하고 낙담하는 것을 발견했을 때였다.” 이 말을 그가 하늘나라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었는지에 대해 말해준다.


그는 감옥에서 나와 유명한 설교자로서 일하다가 60세에 그가 쓴 천로역경처럼 ‘멸망의 도시’를 떠나 오랫동안 소망해왔던 ‘새 예루살렘’을 향해 떠났다. 

 

 

 

 
 
 

 

 

마지막 설교
 
주기철 목사님은 일제하에 신사참배를 거부하여 1938년 이후 4차 검속에 전후 7년 간의 옥고를 겪다가 1944년 4월 21일 평양감옥에서 순교하신 분이다.
일본 경찰이 그를 회유하려 잠시 가출옥시켰을 때 그는 자기가 시무하던 산정현교회에서 최후의 설교를 했다. 다음은 그 설교의 일부분이다.


".....사랑하는 나의 어머님, 80이 넘으신 내 어머님을 자비하신 주님께 부탁드립니다. 나의 병든 아내와 어린 자식들과 나의 사랑하는 교우님들을 주님께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나는 이 산정현교회의 강단을 떠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는 주님을 따라, 주님의 발자취를 따라 가려합니다(말씀이 여기에 이르렀을 때에 주목사님의 음성도 비장하여졌고 만당의 교우들은 모두 눈물로 성경책을 적시며 흐느껴 울었다. 독사의 눈 같은 일본 형사들의 눈에도 눈물이 어리었다).


여러분! 사람이 제 몸의 고통은 견딜 수 있으나 부모와 처자를 생각하여 철석같은 마음이 변절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린 자식의 울음소리 때문에 순교의 길에서 돌아선 신자도 허다합니다.
인간의 얽히고 설킨 인정의 줄 때문에 주님 따라 가는 길이 방해를 받는다면 성경 말씀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부모나 처자를 사랑하고 아끼되 예수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예수님의 말씀에 어긋납니다."
주기철 목사님의 이 마지막 설교 속에는 참된 순교자의 의연한 모습이 역력히 드러나고 있다.

 

 

 

 
 
 

 

 

5분내로 결정해
 
전 세계의 크리스챤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할머니인 코리텐 붐(Corrie Ten Boom)이 다음과 같은 사실을 말했다.
소련의 어느 지하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려하는데 어떻게 알아냈는지 두명의 소련 군인이 문을 걷어차면서 들이 닥쳤다.
기관단총의 총부리를 겨누며 군인들이 소리쳤다.


"5분간의 시간을 준다. 예수를 버리고 살 사람은 5분내로 밖으로 나가라. 남아있는 자들은 5분후에 죽음을 맛볼 것이다!"
모든 신자들이 이 무서운 시험에서 이길 수 있는 용기의 믿음을위해 조용히 기도하며 견디고 있는 그시각, 몇사람이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시계를 바라보던 군인들이 다시 소리쳤다.
"마지막 50초다! 또 나갈 사람 없어?"
남아있는 성도들의 얼굴은 모두 거룩한 표정으로 자기들의 주님을위해 죽을 각오가 되어있는 결단적인 모습들이었다.
"5초, 4초, 3초, 2초..." 성도들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군인들이 "1초!"하고 외치더니 안으로 문을 걸어 잠궜다.
그런데 총들 땅에 내려놓고는 군인들이 말했다.
"모두 눈을 뜨시오, 형제들이여! 우리 두사람은 크리스챤이오.
그러나 우리는, 주님께 진정으로 헌신하고 주님 위해서 죽을 각오가 되어있는 진정한 크리스챤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고 싶었다오. 자, 이제 우리 주님께 함게 경배드릴까요?" 

 

 

 

 
 
 

 

 

귀머거리가 들은 소리
 
황해도 장연군 속달면 대탄동 윤경활 씨는 본래 옹진군 사람으로 소리를 듣지 못할 뿐 아니라 의지할 처자가 없어서 오촌 조카와 살고 있었다.
하루는 주님을 믿다가 이젠 믿지 않는 사람을 만났는데 윤씨를 보자 그만 불쌍한 생각이 들어 "기도를 열심히 하는 것이 제일 필요한 일입니다"라고 하며 자기가 보던 성경, 찬송가를 주었다.
귀가 들리지 않는 윤씨는 이상하게도 이 말은 알아듣고 성경, 찬송가를 받아 가지고 와서 예수를 믿기로 결심하였다. 윤씨는 멀지 않은 산에 기도할 처소를 마련하고는 매일 밤마다 그곳에서 열심히 기도하였다.
그런데 동네 아이들이 와서는 똥을 누고 방해하는가 하면 어른들과 함께 기도하며 내려오면 산 으슥한 곳에서 숨었다가 깜짝 놀라게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윤씨는 낙심하지 않고 열심히 기도하였으나 함께 사는 오촌조카도 그를 미워하는 핍박이 몹시 심하였다.


할 수 없이 그 집에서 내쫓긴 윤씨는 남의 집 종으로 들어가 살면서도 그 신앙이 매우 돈독하였다.
매주일마다 빠지지 않고 먼 곳에 있는 교회에 나가 예배드릴뿐 아니라 적은 돈이라도 모았다가 형편이 어려운 형제를 돕기도 하고 사경회나 부흥회에 감사로 왔던 목사님에게 여비도 드리곤 하였다. 

 

 

 
 
 

 

 

모래사장 위의 기도
 
1938년 평양 숭실전문학교는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를 반대하여 폐교당했고, 일제는 차츰 교회에 대한 간섭과 탄압을 가속화하였다.
이에 1939년 8월 한상동 목사, 이인재 전도사, 윤술용 목사 등이 수영해수욕장에 모여 낮에는 수영을 하고 밤이면 모래사장 위에 앉아 기도하는 이상한 집회를 갖기 시작했다.
그들이 그러한 행동을 하게 된 배경은 첫째, 기존 교회는 예배 전에 궁성요배를 하는 실정이니 그 예배에는 참석할 수가 없고, 둘째, 신사참배를 하는 목사들의 축도를 받을 수 없으며, 셋째, 이렇게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교회에 헌금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주일마다 모래사장에 모여 예배를 드린 것이다. 

 

 

 
 
 

 

 

뺨 맞은 어느 집사님
 
우리 교회 이모 집사님은 직장전도훈련(BBS)에 열심이신데, 그 BBS 동료인 A 라고 하는 어느 집사님의 실제 얘기입니다.
A 집사님은 어느날, 직장 회식 자리에서, 자꾸 권하는 술을 그리스도인의 양심으로써, 계속 거절하다가, 세상에! 화가 난 직장 상급자에게서 빰을 맞게 되었답니다.


처자식이 있고, 나이도 있는 사람이 여러 사람 앞에서 뺨을 맞았으니, 얼마나 창피하고, 분하겠습니까?
집에 와서, 며칠 동안 회사도 무단결근하며, 분을 삭이다가, 결국 회사를 그만 두려고 결심하고,
사표를 내기 전, 산으로 올라가서 기도드렸답니다.


뺨 맞은 서러운 생각, 분한 마음, 막상 직장을 그만 두려니 막막한 두려움 등으로 간절히 하나님께 호소하셨겠지요. 그런데 그렇게 기도하는 중, 뜻밖의 음성을 들으셨답니다.


"너는 겨우 뺨 한 대 맞은 것으로 그렇게 분하고, 억울해하느냐?
나는 모든 이에게 멸시천대와 고난을 받았고, 너를 위해 십자가를 지었다...."


침 뱉음을 당하고, 저주와 욕설, 살을 찢는 채찍으로 맞으시면서, 아무런 자존심도, 혈기도, 변명도 없이 묵묵히 당신의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길을 오르셨던 우리 예수님.
손과 발에 못을 박고, 조롱하던 그 무리들을 저주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고통의 십자가 위에서도 저들의 죄를 용서해달라고 하셨던 그 예수님의 음성이 아닙니까?
뺨 한대 맞은 것은 어찌 고난이라고, 분해하고, 직장까지 그만두려했을까요?
A 집사님은 그 신비한 음성에, 그리스도의 고난을 깊이 생각하며, 자신의 자존심을 버리고, 눈물로 회개하셨답니다.
그리고는 산을 내려와서 다음날 직장으로 출근하셨습니다.
며칠 간의 무단 결근 후의 출근이었죠.


근데, 회사에서는 그 며칠동안 놀라운 일이 벌어져있었습니다.
그의 뺨을 때린 그 상급자가 아주 곤란한 지경에 처하여, 징계를 받을 처지에 있게 된 것입니다!
그 상급자가 회사에서 처리했던 여러 일들이 문제가 되었던 모양인데, 그 중에서 A 집사님의 빰을 때린 사건도 문제가 되었던 모양입니다.
A 집사님은 자신의 뺨을 때린 그 분을 두둔하며, 그 분의 구명을 위해 힘썼습니다. 피해 당사자인 A 집사님이 적극 나서서 그 분을 도우니, 결국 회사에서 내리려던 징계도 잘 해결되었습니다.
술을 마시지 않는다고 뺨을 때렸던 그 상급자는 A 집사님의 "이해하지 못할" 관용과 사랑에 감동되어, 복음을 받아들여, 그리스도인이 되었고요,


지금은 직장 선교회의 한 지부의 leader(지도자)가 되어
열심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술 안마신다고 뺨을 때렸던 바로 그 사람이 말입니다.
A 집사님께서 자신의 빰을 때린 그 분을 용서하고 도울 수 있었던 것은 어디에서 나온 힘일까요?
바로 그리스도의 음성을 듣고, 그 사랑을 깊이 깨달았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그 엄청난 구원을 너무도 무덤덤하게 받아들이진 않는지요.
억울하고 슬픈 일을 당할 때, 십자가에서 달리셔서 모든 것을 쏟으신 예수님을 바라보세요.
우리를 향한 그 한없는 사랑을 마음으로 깊이 받아들인다면, 우리가 용서하지 못할 그리고, 사랑하지 못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주 안에서 사랑하는 형제 자매님들이여!
그리스도의 사랑을 본받아, 우리 모두 늘 사랑하며 섬깁시다. 

 

 

 
 
 

 

 

교회가 애매히 받은 박해
 
1919년 3.1운동 후였다. 4월도 중순에 들어 섰을 때, 일제가 가장 잔인무도하게 횡포를 부린 [수원 사건]이 일어났다.
그것은 한국 겨레의 자유를 찾으려는 항거에 터무니 없이 화가 치밀은 일본 경찰과 헌병이 더욱 무도하게 탄압을 가하는중에, 4월 15일에 수원군 향남면 제암리에 일본군 중위가 인솔하는 일본 군대가 나타나서, 주로 동네의 젊은 남자 약 30명을 강제로 제암리 교회에 몰아 넣고 출입문을 모조리 굳게 잠근 후, 살려 달라고 아우성치는 청년들에게 일제 사격을 퍼부은 사건이다.

 
일본군은 그것으로도 모자라 문틈으로 기어 나오는 어린이들을 총검으로 찔러 죽이고, 그리고 나서는 교회 건물과 그 주위의 민가에 석유를 끼얹어 불을 질러 버린 것이다. 이것만으로 끝내지 않고, 그들을 학살한 일본군은 그외에도 제암리 근처의 곳곳에서 많은 사람을 죽이고,민가를 불태우는 등 만행을 감행했다.
이것은 직접 한국인의 벗으로 알려지는 영국의 의료 선교사 스코필드 박사가 사진을 찍어 전한 사실이다. 교회는 때로 이런 애매한 박해를 옛날부터 받아왔던 것이다. 그러나 박해는 그렇다고 교회를 없이하지는 못한 것이다. 

 

 

 
 
 

 

 

아둘람의 핍박
 
조만식 장로님과 주기철 목사님과의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이들은 평양 오산학교 사제지간입니다. 1915년 주목사님이 학생이었을 때 조장로님은 교장이었습니다. 이 분들은 1930년대에 평양읍 산정현교회에서 담임목사와 장로로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부산에 계시던 목사님을 청빙하러 내려갔던 분이 바로 스승인 조장로님이었습니다.

그 후 어느 날 목사님은 예배시간에 늦은 장로님을 꾸중했습니다. 그때 학교의 스승이셨던 조장로님은 눈물을 흘리며 목사님과 성도들께 사과를 드렸습니다. 한국 역사에서 커다란 획을 그을 만한 훌륭한 인물들이었음을 입증하는 좋은 일화입니다.
한국교회가 세속화된 것이 아니냐는 질문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함과 권위는 과연 누가 지켜야 하고 세워나가야 할까요? 

 

 

 
 
 

 

 

선은 악을 핍박하지 않는다
 
악행으로 인한 고통은 핍박이 아니지만 선행으로 말미암아 받는 고통은 핍박이며 그 핍박속에는 하나님의 축복과 상급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악이 선을 핍박한다 해도, 선이 악을 핍박할 수는 없습니다. 북한이 선량한 남한 어선을 침몰 시키고 살해 했다고 남한도 같은 악을 저지를 수 없는 것이며 소련이 민간 여객기를 미사일 공격으로 격추시키고 살해했다고 미국이나 한국이 같은 악을 행할수는 없습니다.

아벨의 제사가 열납되는 것을 보고 가인 은 아우를 농기구로 죽였습니다. "가인같이 하지말라. 저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찐 연고로 죽였느뇨.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니라"(요일3:12). 예수님은 열두 영 더 되는 천사를 명하여 악당들을 멸할수 있었으나 참고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이로써 만민을 구원하고, 부활의 영광을 받았고 사랑을 정복 했습니다. 폭력과 복수는 끝이 없습니다. 

 

 

 

 
 
 

 

 

그리스도를 위해 고통받는것이 즐겁지 않으세요?
 
마드라스의 주교가 한번은 트라반코레를 방문하게 되어 '꼬마 사도'라 불리는 한 노예 소녀를 만났다고 한다.
그녀는 아주 열심히 복음을 전했기 때문에 이러한 별명을 얻게 되었는데 그녀의 조용하고도 꾸준한 전도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개종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녀는 혹독한 박해를 받아, 얼굴과 팔 등 온 몸에 맞은 자국이 많이 있었다.
이를 본 주교가 눈물지으며 '꼬마야, 이것을 어떻게 참았느냐?'라고 묻자 그녀는 웃음지으며 '주교님은 그리스도를 위해 고통받는 것이 즐겁지 않으세요?'라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왕성하여 가니라
 
행6:7"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1919년 3.1운동 후였습니다. 4월도 중순에 들어 섰을 때, 일제가 가장 잔인 무도하게 횡포를 부린 [수원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것은 한국 겨레의 자유를 찾으려는 항거에 터무니 없이 화가 치밀은 일본 경찰과 헌병이 더욱 무도하게 탄압을 가하는 중에, 4월 15일에 수원군 향남면 제암리에 일본군 중위가 인솔하는 일본 군대가 나타나서, 주로 동네의 젊은 남자 약 30명을 강제로 제암리 교회에 몰아 넣고 출입문을 모조리 굳게 잠근 후, 살려 달라고 아우성치는 청년들에게 일제 사격을 퍼부은 사건입니다.


일본군은 그것으로도 모자라 문틈으로 기어 나오는 어린이들을 총검으로 찔러 죽이고, 그리고 나서는 교회 건물과 그 주위의 민가에 석유를 끼얹어 불을 질러 버린 것입니다. 이것만으로 끝내지 않고, 그들을 학살한 일본군은 그외에도 제암리 근처의 곳곳에서 많은 사람을 죽이고, 민가를 불태우는 등 만행을 감행했습니다. 이것은 직접 한국인의 벗으로 알려지는 영국의 의료 선교사 스코필드 박사가 사진을 찍어 전한 사실입니다. 교회는 때로 이런 애매한 박해를 옛날부터 받아왔던 것입니다. 그러나 박해는 그렇다고 교회를 없이하지는 못한 것입니다. 

 

 

 
 
 

 

 

핍박에 대한 경고
 
120여 년 전, 우리나라에 첫발을 내디딘 언더우드 선교사가 하나님께 드린 기도문이 있습니다.
“주여, 지금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메마르고 가난한 땅, 나무 한 그루 시원하게 자라지 못하는 땅에 저희들을 옮겨와 앉히셨습니다. 보이는 것은 고집스럽게 얼룩진 어둠, 가난과 인습에 묶여 있는 조선사람뿐입니다. 그들은 왜 묶여 고통 당하는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고통을 벗겨 주겠다’고 하면 의심하고 화부터 냅니다. 조선 남자들 속마음이 보이지 않습니다. 조정도 내심을 보이지 않습니다. ‘가마를 타고 다니는 여인들을 영영 볼 기회가 없어지면 어떡하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조선의 마음이 보이지 않고 저희가 해야 할 일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 순종하겠습니다. 겸손히 순종할 때 주님께서 시작하신 그 일을 우리의 영적 눈으로 볼 수 있는 날이 올 것을 믿습니다. 경계와 의심과 멸시와 천대가 가득한 곳이지만, 머지 않아 은총의 땅이 될 것을 믿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 하신 말씀을 따라 조선에서 믿음의 앞날을 보게 될 줄 믿습니다. 주여, 오직 제 믿음을 지켜 주소서.”


언더우드 선교사의 눈에 비친 조선 땅은 장밋빛이 아니었습니다. 가난과 편견, 억압과 투쟁, 분파와 분리로 가득한 어둠의 땅이었습니다. 왜 많은 선교사들은 이 땅에서 어둠, 가난, 두려움을 보고서도 자신들의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았을까요? 그들은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부르셔서 이 땅에 보내셨기에 온 것입니다.
핍박은 생명을 살리기 위한 대가
시대와 상황은 다르지만, 예수님께서 복음을 들고 세상으로 나가는 사람들에게 항상 환난과 위험이 따른다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시련과 핍박
 
요16:2 사람들이 너희를 출회할 뿐 아니라 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예라 하리라"

1979년 8월 30일, 카터 대통령은 에모리 대학에서 아주 인상적인 연설을 하였습니다. 그는 아널드 토인비의 말을 인용하여, 역사상 문명이 최고로 발전했던 시기는 평탄할 때가 아니라 고통스러운 때였음을 상기시켰습니다. 그러면서 카터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위기는 각성을 낳고, 각성은 참신하고 창조적인 생각을 낳습니다." 한마디로 위기가 우리에게 유익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한 것입니다.


믿음의 생활에는 정도만 다를 뿐 늘 시련이 따르게 마련입니다. 게다가 예수님은 심판의 시기가 다가올수록 시련의 무게는 더해갈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말로만 위하고 오히려 하나님의 사람들을 핍박하는 자들이 늘어날 것입니다. 두려운 이 시련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믿음을 버릴 것입니다. 그러나 믿는 사람들은 시련을 회피하거나, 핍박 속에서 좌절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시련을 신앙의 성장 단계로 만들려는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위기를 통해 자신과 하나님의 나라에 유익이 될 수 있는 사람은 구원의 확신과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소유한 사람입니다. 

 

 

 
 
 

 

 

스폰지 역할에 대한 두려움
 
그리스도인이란 대적하고 고통을 주는 사람들에게 분노하고 좌절하고 비참하게 되어 거부하고 응징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런 사람들을 조용히 흡수하고 받아들임으로 그것을 멈추게 하는 사람이다. 분노란 테니스 경기의 공과 같다. 양쪽의 경기자가 그 공을 계속 받아치기 시작하면 공의 속도는 증가하고 마침내 한 쪽이 패해야 끝이 난다. 한 가지 중요한 다른 점은 자아경기에는 승자가 없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육을 나타낼 때 그리스도인이 육으로 반응한다면 그는 “하나의 실패자를 따라 동시에 또 다른 실패자가”가 된다.


그러나 그가 다른 사람들에게서 나오는 흉한 것들을 그대로 흡수하여 받아들이면 모든 문제들이 진행을 곧 멈추고 승리자로 끝나게 됨을 발견할 것이다. 즉 패자를 통하여 승리자가 된 것이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께서 그렇게 사셨다. 그는 세상 사람들 앞에 철저히 패배한 자였다.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 그는 완전히 실패자이셨다. 당신의 가정 안에서, 당신의 대인 관계에서, 당신의 마음속에서 갈등하고 있는 문제들을 빨리 끝내기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그것을 위한 가장 간단하고 쉬운 길은 단순하게 스폰지가 되는 것이다. 그러면 주님이 주시는 참 평안을 맛보게 된다.

 

 

 

 
 
 

 

 

박해의 낱말뜻
 
1. 히브리어
라다프 - 뒤쫓다, 추적하다, 쫓아가다, 박해하다, 학대하다.
사탐 - 미워하다, 증오하다, -에게 악의를 품다, 반대하다, 대항하다.
짜라르 - 초조하게하다, 괴롭히다, 고민시키다, 제한하다.

2. 헬라어
디오그모스 - 핍박 디오코 - 핍박하다, 빼앗다.
에크디오코 - 핍박하다, 쫓아내다.
라크티조오 - 핍박하는, 발길질하는.


*** 박해에 대한 성구 ***

1. 왜 성도가 박해를 받는가?
요15:18 - 세상이 주님을 미워하기 때문
행14:22 -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어려움이 많으므로
갈4:29 - 성령으로 따라 난 자이기 때문
딤후3:12 - 경건하게 살고자 하기 때문
벧전4:12 - 금보다 귀한 믿음을 가지도록 하기 위해서
벧전4:19 - 하나님의 뜻대로 살 때

2. 박해 받을 때 성도의 태도
시119:161 - 마음으로 주의 말씀을 경외해야 함
요16:33 - 담대할 것
행5:41 - 합당한 일로 생각하라
고후4:8 - 낙심하지 말 것
살후1:4 - 인내와 믿음으로 대할 것

:10 - 오래 참아야 함
벧전2:19 - 하나님을 생각해야 함
벧전4:16 - 고난을 부끄러워 아니함
약1:2 - 온전히 기뻐해야 함

3. 박해를 받는 자의 기쁨
마5:11 - 복이 있음
마10:22 - 구원을 얻음
눅6:23 - 상이 큼
롬8:18 - 영광을 누리게 됨
롬8:17 - 그리스도와 함께 후사가 됨
히11:35 - 좋은 부활을 얻음
벧전1:7 -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됨
벧전4:14 -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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