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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헌금 예화모음 17편

by 【고동엽】 2023. 3.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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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금에 관한 예화 모음

 

▣ 노처녀의 건축헌금

“교회에 건축헌금을 드려라.” 한 교회학교 여선생님이 이런 꿈을 꾸었다.

그녀는 공단 사무실에 근무하며 10년간 모은 혼수비용을 모두 건축헌금으로 드렸다. 당시 노처녀였던 선생님은 좋은 상대를 만나지 못했다. 그녀는 성전이 완공되는 것을 보고 서울로 이사갔다. 그때 나이 서른둘…. 10여 년의 세월이 지난 어느 주일, 그 여선생님이 건실한 남편, 아이 둘과 함께 나를 찾아왔다. 나는 대뜸 어떻게 됐느냐고 물었다. “결혼이 좀 늦었지요. 남편은 대학병원 원무과장이고, 아이 둘은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어요. 집도 장만했구요. 안수집사 직분도 받았어요.” 혼수는 어떻게 해갔느냐고 물었다. “남편될 사람에게 혼수비용은 건축헌금으로 바쳤다고 고백했어요. 그랬더니 혼수는 아무 것도 준비하지 말라는 것이었어요. 하나님께서 참 좋은 남편을 주셨어요.” 그날 남편은 “하나님이 이런 아내를 주신 것에 늘 감사해요”라고 고백했다. 하나님의 능력과 섭리는 항상 인간의 상상을 초월한다.
/고훈 목사(안산제일교회)

 

 

 
 
 

 

 



▣ 사장님 며느리 된 가정부

한 처녀가 집이 너무 가난하여 중학교를 겨우 마치고 취직 자리를 찾았으나 할 수 없이 어느 집에 식모로 가게 되었다.

그런 형편에서도 주인의 양해를 구하여 주일에는 빠짐없이 예배에 참석하는 처녀였다. 그날도 어김없이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교회건축이 마무리 단계에 왔으나 재정이 모자라 중단할 위기까지 되었으며 내일 밀린 인건비를 주지 않으면 인부들이 목사님께 행패를 부리겠다는 말을 들었다. 이 말을 들은 처녀는 5년 간 식모살이를 하며 쓰지 않고 모아둔 돈을 몽땅 찾아서 목사님께 드렸다. 그러면서 “버릇없는 사람들이지 돈을 제때 못준다고 주의 종에게 행패를 부리다니 말이 됩니까?”

“자매님, 이 돈이 있어야 시집이라도 가지요.”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제가 한 푼 없어도 해결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목사님은 헌금을 받았으나 그 어린것이 갖은 고생을 하며 소중히 모은 돈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자매와 함께 눈물로 기도하였다. 이렇게 해서 건축은 계속되었고, 이 사실을 들은 온 교인들은 눈물로 회개하고 헌금하여 교회는 완공되었다. 뿐만 아니라 교인들 중에서 큰 회사의 사장인 장로님이 무조건 우리 며느리라며 납치하다시피 데려가서 돈 한 푼 없이 결혼하게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과감한 투자를 하는 자에 과감한 복을 주시려고 준비하고 계신다.

 

 

 
 
 

 

 



▣ 내게 있는 향유 옥합

마리아는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리고 예수의 머리에 부었다.

제자들이 그녀를 그렇게 혹독하게 비난했을 때 마리아의 마음은 많이 다쳤을 것이다. 그녀에게는 여러 가지 선택권이 있었다. 향유를 팔아 현금으로 바꿔서 그것으로 뭔가 “유용한” 일을 하거나, 그것을 저축해서 노년을 대비한다거나, 주님 보시기에 아름답도록 자신을 가꾸는 일에 쓸 수 있었으며, 너무 오래 두어서 쓰지 못하게 될 수도 있었다.

주님과 우리의 관계에서 우리에게도 이와 유사한 선택권이 있지 않은가? 하나님은 우리처럼 그렇게 경제적이고 실리적이지 않다. 그분의 창조물에서 보면 얼마나 낭비이고 대범한가? 그러나 현금으로 측정할 수 없는 마음과 영혼의 것들이 있다.

OMF의 선교사 중 하나가 암으로 죽어가고 있었다. 암을 발견했을 때 그녀의 외동딸이 선교사로 막 파송될 때였다. 당연히 그 딸은 어머니 곁에서 간병을 하기 원했다. 어머니는 스스로를 위해 자신의 “향유 옥합”을 간직해둘 수 있었지만 그 아름다운 방향이 자기 하나 때문에 못쓰게 될 수 있었다. 딸이 출발을 연기하지 않도록 했다. 우리는 하나님께 받은 선물을 자신의 치장에 쓰는가 아니면 그분의 발에 붓는가?

 

 

 
 
 

 

 



▣ 하나님의 몫

어떤 사람이 존 록펠러에게 십일조를 하는지 물었다.

“제가 어렸을 적에, 처음으로 일을 해서 번 돈이 1달러 50센트였습니다. 저는 일주일 동안 일하고 받은 돈을 집으로 가져가서 어머니에게 드렸던 기억이 납니다. 제 기억으로는 어머니에게 돈을 드리면서 자랑스러워 했습니다. 어머니는 그 돈을 앞치마로 감싸면서 제 눈을 바라보셨지요. 그러면서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얘야, 네가 주님에게 십일조, 그러니까 15센트를 드린다면 아주 자랑스러울 게다.'’

그는 말했다. “저는 난생 처음으로 번 돈의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렸고, 그후 지금까지 빠짐없이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서 이런 말을 잊지 않았다. “그 1달러 50센트의 십분의 일을 드리지 않았더라면 제가 처음으로 백만 달러를 벌었을 때 십일조를 드릴 수 있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의 말은 당연히 옳다. 우리는 종종 다음과 같은 말로 스스로를 속인다. “아, 조금만 더 있었더라면 드렸을 텐데.” 그런 식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우리는 가지면 가질수록 그만큼 더 힘들어진다. 우리가 돈의 손아귀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나는 어느 목회자가 이렇게 말한 것을 지금도 기억한다. “우리는 생활비를 바치는 사람에게는 관심이 없습니다. 우리가 실제로 관심을 갖는 것은 하나님께서 번성하게 하셨던 하나님 자신의 몫을 받으신다는 것입니다.”

 

 
 
 

 

 

 



▣ 나를 받아주소서

그레이스 데니와 짐 모어헤드는 나이지리아에 선교사로 갔다.

그레이스는 식사를 하지 않고 물과 크래커만 며칠 동안 먹고 있었다. 이유를 물으니 헌금을 하려고 하는데 돈이 나올 데가 없어서 먹은 것을 줄여 내려고 한다는 것이었다.

아이 여섯을 키우면서 근근히 살아가는 과부 한 분이 매주일 정기적으로 교회에 헌금을 했다. 그 교회의 한 부자가 그 사실을 알고 목사님께 부탁하여 그 과부가 내는 돈 액수를 전부 자신이 낼 테니, 다음 주일부터는 헌금을 내지 말고 그 돈을 살림에 보태쓰도록 해달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 과부는 심히 노여워하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어찌하여 나의 기쁨을 빼앗으려 하십니까? 매주일 주님께 바치는 이 즐거움이 없다면 나는 죽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먼저 우리를 받으시고 그 다음에 우리가 바치는 헌금을 받으신다.

1816년 스코틀랜드의 한 교회에서 선교헌금을 하는데, 당시의 풍습에 따라 바구니를 사용했다. 헌금 위원들이 헌금을 거두어 강단 앞에 놓으려 할 때, 열 살 난 소년 하나가 그 헌금 바구니 안에 들어가 이렇게 기도했다고 한다. “오 하나님, 저는 헌금할 돈이 없습니다. 그래서 제 몸을 헌금으로 바칩니다. 받아주십시오.” 13년 후 그 소년은 23세의 청년 교사로 인도에 가서 교육 선교사가 되었다. 이 사람이 그 유명한 알렉산더 더프였다.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우리 자신과 우리의 헌금이 되자.

 

 

 
 
 

 

 



▣ 생명을 원하십니다

인디안 부락에서 선교하는 한 선교사님이 있었다.

어느 날 인디안 추장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였고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삶이 변화되었다. 얼마 후 이 추장은 구원받은 것을 감사하기 위해서 예물을 가져왔다.

“선교사님, 주님께서 저에게 생명을 주셨으므로 그 은혜에 보답하고저 이 사슴 가죽을 하나님께 바치기를 원합니다.”

선교사는 이 말을 듣고 조용히 대답해주었다. “미안하지만 하나님은 이 사슴 가죽을 쓰실 수가 없습니다.”

인디안 추장은 이 말을 듣고 실망하여 돌아가더니 얼마 후에 한 마리의 백마를 가지고 와서 또 자기의 소원을 이야기했다.

“선교사님, 이것은 이 부락에서 나와 아주 중요한 사람들만 타고 다니는 말인데 이것을 하나님께 바치고 싶습니다.”

선교사는 이번에도 그 말을 하나님이 받으실 수가 없다고 했다.

그 다음에 추장은 뼈로 만든 머리장식을 가져왔다. “이것은 추장의 상징입니다. 나 주장의 권위와 명예까지도 다 주님께 바치기를 원합니다.”

그것마저 거절당하자 추장은 심히 낙심하면서 물어보았다. “그러면 내가 무엇을 바칠 수 있단 말입니까? 지금까지 나의 가장 귀중한 것을 다 바쳤습니다. 이제 제 생명밖에는 남지 않았습니다.”

추장의 이 고백을 듣고 선교사는 “하나님은 바로 당신의 그 생명을 원하십니다!”라고 말하면서 성경을 펼쳐서 인디안 추장에게 이렇게 읽어주었다.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 20:24).
/ 박상훈

 

 

 

 
 
 

 

 


▣ 작은 겨자씨

영국의 어떤 교회에서 5살 된 한 소년이 헌금을 했습니다.

헌금 시간에 헌금을 하는데 1페니를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것으로 꼭 신약성경을 사서 인도에 보내 달라고 지정했습니다. 이것은 그냥 우습게 지나칠 수 있는 작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5살 된 소년의 뜻을 귀중하게 여겨 그 교회 목사님이 조금 보태어 아주 작은 신약성경 한 권을 사서 소년이 사인을 해, 그 책을 인도로 보냈습니다. 그리고 그 일을 이 소년도 잊었고 목사님도 잊었습니다.

20년 후 이 목사님이 인도에 들러 어떤 마을을 방문하게 되었을 때, 그 마을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참 진지하게 신앙 생활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여러 가지 질문을 합니다.

"어떻게 이 마을에 복음이 전파되기 시작했습니까 ?"

그때 뜻밖에도 한 선교사가 이 마을을 찾아와서 작은 신약성경 한 권을 건넨 것이 그 마을의 복음화의 기초가 되었다는 놀라운 소식을 접했습니다. 그러면서 그 성경을 가져왔습니다. 다 떨어지고 남루한 자그마한 신약성경의 마지막 표지에서 20년 전 자기 교회의 5살 된 어떤 소년의 사인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을 발견할 수가 있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위대한 역사는, 복음의 위대한 역사는 트럼펫을 울리는 거창한 선전으로 시작하지 않습니다. 작은 겨자씨 하나, 그리고 작은 누룩을 통해서 가장 놀라운 일이 시작됩니다.

 

 
 
 



▣ 거지의 강냉이 다섯 알

우리가 하나님께 예물을 드릴 때에 어떤 예물을 드려야 하는가?

물론 드리는 액수는 생활 형편에 따라 다르겠지마는 적든지 많든지 우리의 참정성의 표현이 아니고서는 안될 것입니다.
전에 인도의 어떤 왕이 궁전에서 나가다가 한 거지를 만났어요. 손을 내밀고 무엇을 달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 왕이 거지에게 하는 말 "네가 나에게 무엇을 주면 나도 너에게 주겠다."

거지가 뭐 있겠습니까? 옆집에서 강냉이 한 홉을 얻었는데 그 강냉이 주머니를 열고 "저는 이것밖에 없습니다." 하며 강냉이 다섯알을 내밀었습니다.

왕이 그것을 척받더니 웃으면서 하인에게 "얘! 금주머니에서 이 강냉이 알만한 금덩이 다섯개만 꺼내서 주라" 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내가 이것을 대신 너에게 주니 받아라." 물론 거지가 감사히 받았지요.

그러나 속으로 탄식하면서 갔다고 합니다. 왜? "내가 그 강냉이 주머니를 다 그대로 드렸으면 금주머니째 내가 다 받았을텐데"하는 탄식이었던 것입니다.

그것 보세요. 적게 심은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두는 것입니다. 감사의 예물은 정성을 다해야 합니다.

 

 

 
 
 

 

 



▣ 감사헌금 봉투

며칠 전 우리 교회 노하나 집사가 신분증, 신용카드, 현금과 열쇠 등이 들어 있는 손가방을 잃었다.

강원도 삼척의 장애인 시설 위문 연주를 위해 고속도로를 운행하던 중 횡성휴게소 화장실에 손가방을 놓고 나온 것이다. 휴게소를 떠나 동승한 사람들과 얘기하며 한 시간 이상 달리고 있을 때, 한 아주머니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횡성휴게소 화장실에서 가방을 주웠는데 가방 임자가 맞느냐는 것이었다. 노 집사는 그제야 가방을 화장실에 두고온 것을 알았다. 두 사람은 전화로 약속한 장소에서 만났다. 가방을 주운 사람은 불신자였으나 가방 속에 들어 있는 감사헌금 봉투를 보고 이 사람은 믿음이 아주 좋은 사람일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노 집사는 사례를 하였고 결국 그 분을 전도했다. 평소 더 많은 사람을 전도해 구원코자 애쓰던 노 집사는 잃은 가방을 통해 또 하나의 잃은 영혼을 찾은 셈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는 자들은 모든 일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
/최낙중 목사(해오름교회)

 

 

 
 
 

 

 



▣ 전도 헌금

필자의 교회는 해마다 가을 추수전도를 한다.

불신자를 초청해 결신시키고 영혼을 구원하는 총력전도 축제다. 금년에도 온 교우들이 열심히 초청했는데 서리집사 부부가 전도 감사헌금을 드리며 전도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의 영혼을 이번 전도주일에 구원하여 주시옵소서.”

월급생활을 하는 중산층 40대 부부다. 그렇게 어렵지도 않고 넉넉지도 않는 생활에 조금씩이라도 저축하며 살 수 있는 축복주신 하나님께 항상 감사하며 살고 있으나, 아버지 영혼을 아직 구원 못한 것이 한이 되어 큰 헌금을 한 것이다. 가슴이 뭉클했다. 아버지 영혼을 위해 하나님께 드리는 그 순수한 손길이 아름다웠다.
영혼은 천하의 재물로도 살 수 없다. 오직 예수의 피공로로밖에 안 된다. 그러나 값 주고 살 수 없는 영혼을 구원해달라고 하나님께 가장 값진 재물 드릴 수는 있다.
/고훈 목사(안산제일교회)

 



 

 

 
 
 

 

 



▣ 어떤 목회자

시골교회에서 부흥회를 인도했다. 목회자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했다.

“목사님, 농촌 목회는 정말 힘들어요. 도시교회가 도와주지 않으면 생계를 잇기도 어려워요.”

목사님은 아주 우울한 표정으로 하소연을 했다. “우리 교회 교인은 총 15명이구요. 한달 총 헌금은 5만 원 정도 됩니다. 가족을 먹여살리기 위해 부업을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나는 그분께 물었다. “무엇을 하십니까.”

목회자의 대답. “토끼 150마리, 개 5마리를 키우고 있어요. 어떤 목회자는 돼지를 키우기도 합니다.” 마음이 무거웠다. “교인은 15명인데,토끼는 150마리라니….”

그는 교인들 신앙을 보살피는 것보다 토끼 키우는데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나는 그 목회자에게 3년 동안 생활비를 보내줬다. 그 대신 가축을 모두 팔고 목회에 전념할 것을 약속받았다. 한국에는 생활고에 허덕이는 목회자가 많다. 도시교회가 농어촌 교회를 돕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이것이 바로 민족복음화를 위한 연합전선이다.
/최낙중목사 (해오름교회)

 

 

 
 
 

 

 



▣ 오규옥 장로의 믿음

경남 김해읍교회 오규옥 장로는 예수를 믿은 지 20년 만에 친 척과 동리 사람 100명을 인도하였다.

그는 교회를 위해 몸과 마음을 바침으로 예배당건축에 1,500 원을 연보하였고 매월 10 원씩 7년 간 계속 물질을 바쳤다. 그러던 중 임종이 가까워 오자 평생 모은 재산을 자손에게 나눠주면서 1,000 원 가치의 가옥을 주 앞에 바치도록 유언하였다. 그런데 오히려 부족하다고 생각하여 아내와 아들에게 유언하기를 "전도인을 주 강림하실 때까지 세우되 부족한 금액은 너희가 담당하거라"라고 말했다. 그리고 성경을 찾으며 "성신이 나를 오라 하시는 구나"라고 말하고는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1926년 65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 소중한 5백만원

저희 교회에 출석하시는 주용삼 장로님 이야기입니다.

작년 6월 마지막 주일 아침,제 손에 봉투를 하나 꼭 쥐어 주시면서 “목사님! 이 돈은 정말 값지게 모은 것이니 값지게 사용하여 주십시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봉투를 열어 보니 100만원 수표 두 장이었습니다.
“목사님. 새벽기도 올 때에는 이 길로 오고, 갈 때는 저 길로 가면서 길거리 신문지 박스 조각 휴지를 모았다가 팔아 저금하고 또 모으면 저금하여 6개월 간 모은 돈입니다. 누가 들으면 장로가 조잡하다고 할 터이니 창피합니다. 절대로 말하지 마십시오”
장로님의 집과 교회의 거리는 걸어서 15분입니다. 나는 이 말이 끝나자 말자 “절대로 말할 것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나는 지금도 말하고 있습니다. 주장로님은 지난 12월 말에도 그렇게 하여 300만원을 또 제게 들려 주었습니다. 오늘도 새벽예배 오가며 종이를 줍고 계십니다.
/강문호 목사

 

 

 
 
 

 

 



▣ 부도교회

우리 교회는 파나이 섬을 집중 선교하면서 교회를 건축한 이야기를 드린 적이 있습니다. 교회마다 지어진 뒷이야기들이 아름답습니다.
서울에 한 사업가가 있었습니다. 사업을 하던 중 부도가 났습니다. 손에 남은 돈이란 고작 500만원 정도였습니다. 그는 마지막 남은 돈으로 파나이 섬에 교회 하나를 지어 하나님께 바치기로 작정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돈을 선뜻 내놓았습니다. 교회를 지을 돈이 없서서 나무 밑에서 예배를 드리던 사람들이 이 돈을 받아 교회를 건축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교회 이름을 ‘부도 교회’라고 지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업가를 위해 매일 기도 하였습니다.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부도가 났던 사업가는 다시 사업이 번창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신 것입니다. 부도교회 교인들의 기도 때문이었습니다. 헌신은 씨앗이고 기도는 능력입니다.
/강문호 목사

 

 

 
 
 

 

 



▣ 27프랑의 헌금

프랑스 파리의 어느 교회에서 선교사를 보내기 위한 헌금을 하는 중이였습니다.

서양에서는 헌금 접시를 돌릴 때 만약 큰돈을 가졌는데 적게 내고 싶으면 헌금 접시에 큰돈을 놓고 잔돈을 거슬러 갈 수 있도록 되어 있다고 합니다. 자기 형편대로 또 하고 싶은 만큼 하는 것은 흉이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무튼 그 헌금 접시가 어느 눈먼 사람 앞에 멈추었습니다. 그 사람은 1프랑도 헌금할 수 없는 형편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27프랑을 접시에 세어서 놓는 것이었습니다. 깜짝 놀란 옆 사람이 "당신이 어떻게 그많은 돈을?" 하고 묻자, 눈먼 사람은 웃으며 "저는 눈이 안 보이지요. 그런데 제 친구에게 물어보니 저녁 때 불을 켜는 비용이 일 년에 27프랑이 든다고 하더군요. 나는 불을 켤 필요가 없으니 일 년이면 이만큼의 돈을 저축할 수 있겠구나 생각하고 모은거죠. 그래서 예수님을 몰라 어두운 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참빛이 비치도록 하고 싶었습니다."
이 이야기 또한 우리를 부끄럽게 만드는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 여운학(지하철 사랑의 편지 운영자)

 




 

 

 
 
 

 

 

헌금의 개념

본문 : 막 12:43 , 눅 21:4
● 막 12:43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연보 궤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 눅 21:4  저들은 그 풍족한 중에서 헌금을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의 있는바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 

  윤형주 장로님의 간증속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가 연대 의대생 시절부터 성가대원으로 봉사를 하는데, 어느 주일날 성가대석에 앉아 예배를 드리는데 헌금시간이 되었습니다. 뒷자리에 앉아있던 선배가 옆구리를 꾹찌르면서 ‘야 헌금 좀 꿔줘’하는 것이었습니다. 못마땅한 생각이 들었지만 부득이 한 일이 있어서 헌금을 준비해오지 않았나보다 생각하고 헌금을 빌려주었습니다. 그런데 그다음 주일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주일마다 ‘야 헌금 좀 꿔줘’ 그것도 예배중, 헌금시간이 다 되어서 번번히 그러는 것이었습니다.
 윤장로는 어려서 부터 부모님의 엄격한 신앙교육을 받은 학생이라 이를 용납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날 예배를 마친 후 그 짓궂은 선배를 교회 뒷편으로 불러냈습니다. 그리고 정색을 하고 단호하게 잘라 말했습니다. “형님, 해도 너무합니다. 헌금은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것인데 준비도 해오지 않고 번번히 꾸어달라고 하는데 이제 앞으로는 절대로 꾸어줄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그 친구가 하는 말이 “야, 너 가진 돈이 누구 것이냐? 하나님의 것이지! 야, 하나님의 것 가지고 골치 아프게 뭐 이러쿵 저러쿵하니. 하나님의 것을 갈라내는데 뭐가 어떻단 말이야” 하더랍니다.
  그 골치아픈 선배가 바로 가수 C씨라고 하는데 지금까지 꿔간 헌금 한번도 갚지 않았다고 합니다. 주님이 주신 물질에 대한 올바른 관념을 가지십시오.

 주님, 헌금할 때마다 주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드리게 하소서.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을 어떻게 준비하고 있습니까?/김장환 목사

 

 

 

 

 
 
 

 

 

감사의 예물

 

  인도의 어느 시골 교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추수를 마치고 감사 예배를 드릴 때 한 여인이 많은 양의 곡식을 예물로 드렸습니다. 평소 가난한 살림을 꾸려가던 그 여인이 많은 예물을 바친 것에 대하여 목사는 의아하게 생각했습니다.
"성도님, 특별히 감사할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예. 사실은 제가 열 살 난 아들이 있었습니다. 지난해 그 애가 병이 났을 때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이 아이가 다시 살아날 수만 있다면 하나님께 많은 예물을 드리겠습니다.'
"그러면 아들이 이제 회복이 되었나보군요?"
"아닙니다. 일 년 가량 시름시름 앓다가 한 달 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과의 약속은 무효가 되었을 텐데, 어떻게...?"
"아닙니다. 이제야말로 주님께 선물을 드릴 때라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제 아들을 하늘나라로 데려가셨고, 지금은 그 품에 안고 계신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특별히 감사하는 마음으로 예물을 드린 것입니다."
 우리가 주께 드리는 예물은 주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축복에 비례하여 드릴 것이 아니라, 진정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께 우리 마음을 드리는 것이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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