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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잔이 넘치나이다 /시 23:5

by 【고동엽】 2023. 1. 26.

2011.9.4. 주일 설교(시편 강해 28)

 

내 잔이 넘치나이다

23:5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제가 시편 23편을 한절 한절 강해하기로 하고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제가 시편 23편의 진정한 은혜를 몰랐다는 것입니다. 전에는 시편 23하면 1절 한 절만 알면 다 아는 것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한절, 한절 나누어 묵상해 보니 뒤로 갈수록 더 은혜로운 것을 깨달았습니다. 5절은 1절 보다 더 은혜롭습니다. 1절에서는 다윗이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고백하였습니다. 그것도 너무나 엄청난 고백입니다. 이 믿음 이 고백도 안되는 이가 많습니다. 그런데 5절은 내 잔이 넘치나이다입니다. 부족함이 없는 정도가 아니고 이제는 흘러 넘칩니다.

그런데 사실 이것이 예수님을 믿는 자의 고백이요 축복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저와 여러분 모두에게 약속된 삶입니다.

7: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상을 차려 주신다는 것은 식탁(食卓)을 말하는데 잔치를 베풀어주신다는 말입니다.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라는 말은 고대 근동 풍습인데, 손님이 집으로 들어올 때 주인이 입구에 서서 손님의 머리에 기름을 발라서 정중하게 맞아들이는 풍속입니다.

예수님께서 시몬이라는 바리새파 사람의 집에 손님으로 초대받아 가셨을 때, 시몬이 예수님의 머리에 기름을 발라 드리지 않아 예수님께서 그 사실을 지적하신 적이 있으셨습니다.

7:46 "너는 내 머리에 감람유도 붓지 아니하였으되 ..."

"내 잔이 넘친다" 라는 표현은 주인이 손님의 잔에 포도주를 넘치도록 따라준다는 말인데, 아쉬움이 없는 풍성한 접대를 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목자 삼고 사는 자는 하나님께서 이렇게 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원수의 목전에서" 라는 말이 언뜻 이해가 되지 않지만, 전쟁에서 승리하여 적국의 왕을 포로로 잡아 와서 무릎 꿇리고 있는 상태에서 승전 축하 잔치가 벌어지는 것을 상상해 보시면 이해가 될 것입니다.

다윗에게 실제로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사무엘상 24, 26장에 보면 다윗이 자신을 죽이려고 광야까지 쫓아온 사울 왕을 두 번이나 죽일 수도 있었는데, 살려 준 일이 있었습니다. 한번은 굴 속에 숨어 있는데, 하필 사울 왕이 그 굴에 들어와 용변을 보았던 때입니다. 부하들은 사울 왕을 죽이자고 성화였지만 다윗은 하나님이 기름부음 왕을 죽일 수 없다고 사울 왕의 옷자락만 칼로 베어서 사울 왕이 굴에서 나가자, 뒤에서 사울 왕을 부릅니다.

삼상 24:11 “내 아버지여 보소서 내 손에 있는 왕의 옷자락을 보소서 내가 왕을 죽이지 아니하고 겉옷 자락만 베었은즉 내 손에 악이나 죄과가 없는 줄을 오늘 아실지니이다

그 때 사울 왕이 깜짝 놀라서 말합니다.

삼상 24:17-20 “나는 너를 학대하되 너는 나를 선대하니 너는 나보다 의롭도다 보라 나는 네가 반드시 왕이 될 것을 알고 이스라엘 나라가 네 손에 견고히 설 것을 아노니

이런 일이 사무엘상 26장 또 한번 있었습니다.

이 얼마나 통쾌한 순간입니까? 다윗의 원수인 사울 왕이 자기 입으로 다윗이 왕이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정말 5절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원수의 목전에서 잔치를 베푸시고 머리에 기름을 부어주신 것 아닙니까? 다윗은 정말 내 잔이 넘치나이다고백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잔치를 경험한 다윗을 부러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5절에 나오는 잔치는 모든 하나님의 자녀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누릴 천국 잔치를 상징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6절 말씀을 보면 다윗이 영생의 눈이 뜨인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6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그렇습니다. 다윗이 사울 왕을 죽이고 이스라엘의 왕이 되고자 하는 유혹을 이길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누릴 영원한 천국 잔치를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의 성공은 천국 잔치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비록 사울 왕을 살려주어 이 세상에서 왕이 되지 못한다 하더라도 다윗에게는 상관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잔치에 초대받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믿음을 가진 사람은 이 세상에서 사는 것이 다릅니다. 천국에 가서야 내 잔이 넘치나이다하는 것이 아니라 여기서부터 내 잔이 넘치나이다하며 삽니다.

 

에녹은 평생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천국에 들려 올라 갔습니다.

5:24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에녹이 죽지 않고 천국에 들려올라간 것만 차이가 나지, 이 세상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천국에서 영원히 하나님과 사는 것은 모든 성도가 똑같습니다.

지금 나의 잔이 넘치나이다고백이 안되는 사람은 천국 잔치에 참석할 수 없는 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천국 소망을 가진 사람은 기쁨이 충만한 삶을 산다고 말씀하셨습니다.

13:44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저는 천국을 믿는다 하면서도 보화를 발견한 농부와 같이 기쁜 것은 몰랐습니다. 소망이 소망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예수님과 동행하면서 비로서 천국 소망 때문에 기쁨이 충만한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목사가 되고도 한동안 성공을 위하여 살았습니다. 목사도 성공이 있습니다. 100명 교인이면 300명을 바라보고, 300명이 넘으면 1000명을 바라보고 목회했습니다. 그 때도 무엇인가 이루지기도 했지만, 항상 불만이었고, 매사가 스트레스였습니다. 더 큰 교회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고 나 죽고 예수로 사는 복음으로 살게 되고, 24시간 예수님을 바라보게 되면서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내 잔이 넘치나이다하는 고백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천국이라는 보화를 찾았고, 내가 이미 그것을 소유했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4장을 보면 사마리아 수가 성 여인이 동네 사람들에게 달려가 외쳤습니다.

4:28-30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 두고 동네로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 그들이 동네에서 나와 예수께로 오더라

이 여인은 남자를 다섯 번씩이나 바꾼 여자였습니다. 그런 여인의 외침입니다. 더 이상 마음의 상처가 가득하고 독기를 품은 말이 아닙니다. 기쁨의 외침입니다. 인생의 참된 행복을 발견한 사람의 환희의 외침, “내 잔이 넘치나이다하는 외침입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이렇게 변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지 못하는 자는 천국이 있음을 알게 되면 기쁜 것이 아니라 두려워집니다.

아무나 천국 잔치를 누리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천국을 소유하셨습니까? 그렇다면 다윗 처럼 내 잔이 넘치나이다하고 누려야 합니다.

 

천국 잔치를 누리며 살려면 예수님이 목자이심을 믿고 죽어라 예수님만 붙잡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목표는 푸른 초장, 잔잔한 시냇가가 아닙니다. 목자이신 예수님이 함께 하시지 않으시면, 푸른 초장, 잔잔한 시냇가도 양에게는 죽는 길입니다.

우리의 목표는 성공도 아닙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오직 예수님 뿐입니다.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 찰스 스펄전은 자신의 설교에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누가 나더러 제왕의 면류관을 쓰고 한 나라의 임금이 되라고 말한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하겠습니다. 나는 그러한 사소한 일에 마음을 쓸 시간이 없습니다.”

이 말을 처음에는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임금이 되는 일이 사소한 일인가?

그런데 빌립보서 37-9절 사도 바울의 고백을 듣고 그럴 수 있겠구나 깨달았습니다.

3:7-9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사도 바울이 3층천에 올라가 역사의 미래와 예수님의 재림 계획을 알았습니다. 이방인의 시대가 왔구나! 이방인들에게 전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구나! 그리고 난 다음 자신이 누리던 사회적 종교적 학문적 특권을 다 버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명을 깨달은 사람에게는 한 나라의 임금이 되는 일도 사소한 일이 될 수 있겠구나!

 

사망의 험한 골짜기라도 주님이 가시면 내 잔이 넘칩니다

 

순회선교단의 김용의선교사님의 딸이 선교 훈련 중 위급한 병으로 쓰러진 일이 벌어졌습니다. 고국으로 후송하여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결론이 났는데, 문제는 20여 시간의 비행을 포함한 장거리 여행을 감당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아버지이기에 달려갔지만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고민 고민하다가 현지에 그저 둘 수도 없어서 한국으로 데려오기로 결정하였답니다. 떠나는 날 아침, 아버지로서 너무나 두렵더랍니다. 그런데 기도하던 중, 갑자기 주시는 마음이 있어서 기록하였답니다. “아빠 손잡고 떠나는 여행, 위험하지만 행복한 여행, 주님과 함께 가는 여행, 안전하고 아름다운 여행딸의 손을 잡고 이 고백을 들려주었답니다, 아버지이지만 아무 것도 해 줄 수 없는 부족함, 위험한 여행이었지만 주님과 동행하는 자에게는 어디나 안전하고 행복한 여행임을 알게 하셨답니다.

예수님 한 분이면 충분합니다!내 잔이 넘치나이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목자이신 성도들은 환경과 여건과 상관없이 나의 잔이 넘치나이다하고 고백하게 됩니다.

 

정연희씨가 쓴 실명 소설 "내 잔이 넘치나이다"에 등장하는 맹의순씨는 한국 전쟁 당시 신학교를 다니다가 피난하던 중 북한 첩자로 오해를 받아 괴뢰군, 중공군과 더불어 거제도 수용소에 잡혀 들어갔습니다. 거기에서 모진 고생을 하면서도 중환자를 돌보는 사랑의 삶을 살기 시작했습니다. 2년 후 그가 억울하게 수용되어있다는 것이 밝혀져서 석방을 받게 되었지만 그는 석방을 거부하였습니다. 그는 친구에게 써보낸 편지에서 "나로 하여금 이곳에 있도록 허락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할 뿐이라네. 내가 이곳에 남아 있는 것은 결코 희생이 아닐세. 이곳에 있는 형제들 중에서 나 같은 부족한 것이나마 필요로 하는 이들이 적지 않으니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그는 수용소에 남아서 중공군 환자들을 돌보다가 2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장례예배에서 한 중공군 포로가 대표로 읽은 추모사입니다.

"맹의순 선생 영전에 드립니다. 평화의 왕자, 화평의 사도, 인애의 왕, 우리에게 사랑의 주인이셨던 맹의순 선생이 가시다니.--우리는 서로 말이 통하지 않던 이방인들이었습니다. 그가 우리의 병동을 찾아오던 초기에 우리는 그를 경멸했고 무시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얼굴은 늘 온화했고 그의 행동은 희생과 헌신으로 한결같았습니다. 우리를 찾아오시는 선생의 한손에는 성경책이, 그리고 다른 한손에는 물통이 들려져 있었습니다. 선생은 움직이지 못하는 환자를 골고루 만져주고 주물러 주면서 그렇게도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우리는 그의 말을 알아 들을 수 없었지만 그의 기도를 듣고 있으면 그렇게 고통스럽던 통증이 가라앉고, 신음과 함께 목이 타서 잠못 이루던 육체가 편안한 잠의 품에 안기게 되곤 하였습니다. 겨울이면 따뜻한 물로 여름이면 시원한 물로 우리의 얼굴을 씻어주고 손을 닦아 주셨습니다. 때로는 발도 씻겨 주셨습니다.--선생이 쓰러지던 그 마지막 날 밤--마지막 환자를 다 씻기고 일어난 선생은 눈물을 흘리며 그 눈물 씻을 생각도 않으시고 시편 23편을 중국말로 더듬 더듬 읽어 주셨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다 봉독하신후 높은 곳을 바라보시며 다시 한번 말씀하셨습니다.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내 잔이 넘치나이다." 우리도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따라 외었습니다."내 잔이 넘치나이다. 내잔이 넘치나이다." 이 말씀과 함께 마지막 환자를 씻겨낸 물통과 대야를 들고 일어나시다가 그대로 그 자리에 쓰러 지셨습니다. 우리는 통곡했습니다. 염치없는 우리가 선생을 돌아가시게 했다고. --우리는 통곡합니다. 우리는 통곡합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맹선생을 만나기 위해서라도 예수안에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있습니다.--그렇습니다, 우리는 이제 버려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맹선생과 함께 주님안에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통곡합니다. --거제리 포로 수용소 중공군 병동의 환자들 일동

 

어제 교회 게시판에 김미옥 전도사님의 글이 올랐습니다

가족 전도는 예수님이 진정 주님이 되셔서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고 기뻐하면 예수 믿지 않는 가족들이 그 기쁨 안으로 들어오고, 저절로 전도가 된다고 하신 목사님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나에겐 가슴 따뜻한 가족이 있지만 아픔이 있다면 100% 가족 전도가 되지 않은 것이다.

그날 말씀을 들으면서 내 아픔에 울었고 가족복음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성도들의 마음이 느껴져 또 울었다.

기도하는 가운데 주님께서보석을 준 나에게 감사하라고 하셨다. 이유는 기도 제목이라고 여겼던 그 형제들 까닭에 내가 더 많이 기도하고 주님과 더 친밀해질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그 후 나는 기도 제목이 생길 때면 보석을 선물 받는 기분으로 기도한다. 오늘 여러 가정에 전화 심방을 했는데 가정마다 기도 제목이 많았다. 성도의 기도 제목이 짐으로 여겨지는 것이 아니라, 보석을 받는 것과 같은 감사함이 더 컸다.

나는 보잘 것 없지만, 기도 제목을 나눠주는 성도가 있어 감사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오늘 많은 보석을 받은 나에게 주님은 내가 참으로 부유한 자임을 말씀하셨다.”

이것이야 말로 나의 잔이 넘치나이다하는 고백이 아닙니까?

 

우리가 다윗 처럼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는 고백을 하며 살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입니까?

예수님이 목자 되신 것을 부담스러워 하고, ‘목자 없는 양을 부러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어떤 교인은 목자가 귀찮고 싫어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정말 큰 시험이고 두려운 일입니다

마귀는 교인들의 귀에 목자가 귀찮다, 부담된다하며 속삭입니다.

하와가 마귀의 유혹을 받았습니다. 가룟유다가 마귀의 그 유혹을 받았습니다.

그 결과가 어떤 것이었습니까?

 

유명한 작곡가 리스트가 어느 날 독일의 조그마한 마을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그 마을에는 피아니스트 한 명이 있는데 이 아가씨가 피아노 독주회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사방에 광고를 써붙이고 소문을 냈습니다. 신문에도󰡐아무개가 피아노 독주회를 가집니다. 그리고 그녀는 리스트의 제자입니다.󰡑라고 했습니다.

리스트의 제자라면 아주 명예가 높아지는 것이거든요.

그런데 독주회하기 바로 전날 리스트가 이 마을을 방문했습니다. 이 여자는 리스트의 얼굴도 본 일이 없는 사람입니다. 이 여자가 이것을 알고 깜짝 놀랐습니다.‘리스트가 여기 왔으니 이제 난 죽었다.’그래서 숙소에 찾아가서 무릎을 꿇고 엎드리고 빌었습니다.󰡒저는 고아 출신으로 혼자서 피아노를 배웠고, 이제 독주회를 가지려고 하는 때 선생님의 고귀한 이름을 이렇게 도용하고 선생님의 제자라고 광고를 했는데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회개를 했습니다. 그러자 리스트가 껄껄 웃으면서󰡒큰 실수를 했구먼. 그러나 누구나 실수는 한답니다. 이리 오세요. 피아노에 앉아서 한 곡을 치세요.󰡓그래서 잠깐 피아노를 쳤습니다. 리스트는 말했습니다.󰡒여기 이렇게 조금 달리 했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리고 리스트가 하는 말이󰡒분명히 내가 당신을 가르쳤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당신은 분명히 내 제자입니다. 떳떳하게 나는 리스트의 제자라고 말할 뿐 아니라 연주회에 내가 참석하겠는데󰡐마지막 곡은 제 스승 되시는 리스트 선생께서 하시겠습니다.󰡑라고 하세요. 제가 한 곡 쳐드리겠습니다.󰡓

이 여인은 그 연주회 날나의 잔이 넘치나이다하는 말의 의미를 느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저와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성찬을 받으면서 깊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독생자를 보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나 대신 죽으셨습니다.

성령님은 내 마음에 오셨습니다.

지옥 갈 자가 천국가게 되었습니다.

마귀 자식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것을 믿으면 내 잔이 넘치나이다하지 않고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예수님 한 분이면 충분합니다!”

 

내게 목자가 계십니다. 내겐 왕이 계십니다. 저는 예수님만 원합니다.” 이 길이 살 길입니다.

잔이 넘치는 삶을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잔이 넘쳐 옆 사람들에게 나누며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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