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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구원을 이루라 /빌 2:12-18

by 【고동엽】 2023. 1. 26.

2011.11.6. 주일 설교(빌립보서 강해 6)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구원을 이루라

 

2:12-18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이 언제나 순종한 것처럼, 내가 함께 있을 때뿐만 아니라, 지금과 같이 내가 없을 때에도 더욱 더 순종하여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자기의 구원을 이루어 나가십시오.

하나님은 여러분 안에서 활동하셔서, 여러분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릴 것을 염원하게 하시고 실천하게 하시는 분입니다.

무슨 일이든지, 불평과 시비를 하지 말고 하십시오. 그리하여 여러분은, 흠이 없고 순결해져서, 구부러지고 뒤틀린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없는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하면 여러분은 이 세상에서 별과 같이 빛날 것입니다.

생명의 말씀을 굳게 잡으십시오. 그리하면 내가 달음질한 것과 수고한 것이 헛되지 아니하여서, 그리스도의 날에 내가 자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믿음의 제사와 예배에 나의 피를 붓는 일이 있을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여러분 모두와 함께 기뻐하겠습니다. 여러분도 이와 같이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십시오.”

 

 

 

 

어느 집사님, 자신이 정말 구원받았는지, 확신이 서지 않아서 두려웠다고 합니다.

그래서 잘 아는 장로님께 상담을 했더니, 크게 책망을 받았답니다.집사님, 세례 받았잖아요?묻더랍니다. 세례 받았다면 믿어야지! 의심한 것 회개하세요. 이제부터는 어떤 일이 있어도 집사님은 구원받은 사람이예요. 믿으세요. 이번 주일에 감사헌금을 드리세요!

과연 잘한 상담인가요?

 

애매합니다. 구원의 확신을 가져야 한다고 가르친 것은 잘했습니다. 그러나 세례 받았으니 무조건 구원받았다고 안심하고 기뻐하기만 하라는 말은 잘한 권면이라 할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말씀에 보니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자기의 구원을 이루어 나가십시오. 하였습니다. 이 말은 무슨 말씀입니까? 평생 구원받았는지 아닌지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처럼 읽어집니다. 구원의 확신과는 전혀 다른 말씀이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사도 바울이 말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자기의 구원을 이루어 나가십시오. 란 말의 의미를 정확히 알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증거는 단순히 교회 다니는 것, 세례 받은 것, 집사, 권사, 장로, 목사라는 직분도 아닙니다.

구원의 증거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로 자신의 모든 죄가 속죄함을 받았음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나 또 하나가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마음에 오신 것입니다. 속죄함을 받은 자에게 예수님은 오십니다. 그래서 이제 평생 예수님과 동행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여기까지 믿어야 구원받은 자입니다.

13하나님은 여러분 안에서 활동하셔서 여러분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릴 것을 염원하게 하시고 실천하게 하시는 분입니다.”

우리 안에 오실 수 있는 하나님은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성부 하나님 성자 예수님 성령 하나님은 한 분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성령 하나님이 오신 것을 하나님이라고도 하고 예수님이라고도 합니다. 같은 말이기 때문입니다.

고후 13:5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니라

같은 말입니다. 예수님은 육신으로 계실 때, 갈릴리 호수를 중심으로 사셨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임하심으로 모든 그리스도인 안에 임하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누구든지 이 믿음을 가지게 되면 삶이 변화됩니다. 예수님과 동행하는데 옛날 처럼 살 사람이 누구겠습니까?

그래서 어떤 사람이 구원받았는지 아닌지는 삶을 보면 알 수 있는 것입니다.

7:17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18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19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

 

사도 바울이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자기의 구원을 이루어 나가십시오. 라고 말씀하실 때, 빌립보 교인들에게 권면한 것은 사도 바울이 함께 있을 때와 사도 바울이 없을 때, 삶이 달라서는 안된다는 것이었습니다.

2:12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이 언제나 순종한 것처럼, 내가 함께 있을 때뿐만 아니라, 지금과 같이 내가 없을 때에도 더욱 더 순종하여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자기의 구원을 이루어 나가십시오.”

사도 바울이 빌립보에 있을 때, 빌립보 교인들은 언제나 순종하였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빌립보를 떠나자 순종하는 태도가 달라졌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되면 큰 일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정말 구원받은 사람인지 아닌지는 삶으로 드러나는데, 교회에서 보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목사와 같이 있을 때 보다 직장 동료와 있을 때,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보다 혼자 있을 때 드러나는 것입니다.

 

어느 목사님께서 예배당 건축을 하다가 업체가 부도가 나서 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하청업자들을 일일이 만나서 건축대금을 정산해야 했는데, 어려운 교회 사정을 말하고 받을 돈을 조금씩 덜 받아가 달라고 부탁을 하는 중에 한 건축 업자를 만났습니다. 이 사람에게는 2200만원을 주어야 하는데, 500만원을 깍아달라고 사정하였더니, 단호하게 안된다고 하더랍니다. 그러면서 만약 교회가 2,200만원을 다 주면 자기가 500만원을 헌금하겠다고 제안하더랍니다. 목사님은 마음에 속는 것 아닌가 의심도 했지만 어렵게 돈을 마련하여 만났습니다. 그 업체 사장님이 돈을 다 세어 보더니 감사하다고 하면서 가방에 다 넣더랍니다. 목사님은 순간내가 속았구나.’생각하였는데, 그 분이 안 주머니에서 500만원 새 수표가 든 헌금봉투를 꺼내더랍니다. 목사님이 만일 그 사람을 믿지 않고 약속대로 돈을 다 준비하지 않았다면 얼마나 부끄러웠겠습니까?

 

어떻게 사람이 한결같을 수 있습니까?

예수님이 마음에 계심을 알면 그렇게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자기의 구원을 이루어 나가십시오. 하였습니다. 이 말은 구원에 대하여 두려워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받은 것은 자격증이나 합격증을 받은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운전면허증을 받으면 운전을 해도 경찰이 두렵지 않습니다. 대학 합격증을 받으면 당당하게 합격의 기쁨을 누립니다. 이제 두렵고 떨리는 마음은 없어집니다.

그러나 세례 받고 구원 받은 자는 다릅니다. 예수님과 함께 산다면 사람의 마음은 어떻겠습니까? 두렵고 떨리는 마음이 아니겠습니까?

 

논산 선한목자교회 김철 전도사님이 교회 홈페이지 게시판에 글을 올렸습니다.

오늘 차로 접촉사고를 냈다. 주위에는 아무런 사람이 없었다. 그냥 가려는 그 순간, 예수님이 보고 계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 주인을 찾아가 사고 경위를 말씀 드렸더니 차수리를 해 달란다. 말을 들어 보니 이참에 기존에 수리해야할 부분까지 다 수리하려는 속셈이 환히 들여다 보였다. 몇몇 주변 분들은 본 사람도 없는데 왜 자기 발로 찾아가 문제를 만들었냐고 머리를 절레절레 흔든다.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그런데 한 가지 확신하는 것은 예수님이 그때 봤다는 것이다. 나는 '바보'. 예수님만 아는 '바보'.

 

구원받은 사람은 마음에 예수님이 모시고 사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것을 사모하게 하시고 또 그 일을 하게 하십니다.

13하나님은 여러분 안에서 활동하셔서, 여러분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릴 것을 염원하게 하시고 실천하게 하시는 분입니다.”

 

교회에서 집사를 세울 때, 기준은 마음에 교회 일을 하는 기쁨이 있는가 입니다. 집사님으로 섬겨주세요. 하는 말을 할 때, 기쁘면 주님이 집사로 세운 사람, 일해 달라는 것인데, 아니요 예! 권사도 겸손할 일 아닙니다. 더 수고하는 직책, 아멘, 아니요, 아 예,

임원 재헌신 서약서, 중요합니다, 그 사람에게 임원 책임을 묻는 것입니다.

은행 돈 찾아 가라, 보상금 찾아가라, 얼마나 신경쓰겠는가?

우리가 주목할 것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예수님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믿을 만한 사람인 것입니다. 그 사람 안에 계신 예수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지난 주간, 선교사 훈련, 젊은 청년들, 어떻게 선교사로 보냅니까? 그들 안에 계신 예수님을 믿고 그들을 선교사로 보내는 것입니다.

14:23 “각 교회에서 장로들을 택하여 금식 기도하며 그들이 믿는 주께 그들을 위탁하고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특별히 당부합니다.

14무슨 일이든지, 불평과 시비를 하지 마십시오.”

이렇게 말씀하신 것을 보니 빌립보 교회에 불평과 시비가 생긴 모양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것이 너무나 안타까운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마음에 계심을 안다면 그럴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은 언제나 원망과 불평을 하였습니다. 그들은 애굽에 있을 때에는 애굽에 있다고 원망하였습니다(2:23). 애굽에서 나왔을 때에는 애굽에서 나왔다고 원망하였습니다(14:11~12). 마실 물이 없다고 원망했습니다(15:24). 먹을 것이 없다고 원망했습니다(16:7). 고기가 없다고 원망하고 불평했습니다. 계속해서 원망과 불평이 그들의 입에서 떠나지 아니했습니다. 결국 그들의 원망과 불평으로 인해 그들은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40년 동안이나 광야에서 방황하며 죽도록 고생만 했습니다.

성도의 원망과 불평이 하나님의 마음을 너무나 아프게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을 안 믿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과 환경에 대하여 불평하는 것이 다 사실은 하나님께 하는 불평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아직도 누군가를 원망을 하며, 자신의 환경에 불평을 하고 계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예수님이 여러분 안에 계심을 안 믿는 것입니다.

불평 안하는 것 만도 엄청난 믿음의 역사입니다.

 

미국 미주리주 캔자스시티에서 200여 명의 작은 교회를 목회하는 윌 보웬(Will Bowen) 목사님 <불평 없이 살아가기> 책을 쓰셨는데,‘인간이 겪는 모든 불행의 뿌리에는 불평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가 시무하는 작은 교회에서불평 없는 세상 만들기(A Complaint Free World)’운동을 전개했습니다. 이 운동은 보라색 고무 밴드를 손목에 끼고 21일 동안 불평하지 않는 것입니다. 부지불식간에 불평하면 밴드를 다른 쪽 손목으로 옮기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합니다. 이 과정을 거치면서 불평을 억제하고, 긍정적인 방법으로 표현하거나, 침묵하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그리고 마침내 의식하지 않고도 불평하지 않는 단계에 도달하게 합니다.

어느 목사님이 시도해 봐야겠다고 생각해서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하루에도 10번이 넘게 고무 밴드를 옮겨야 했습니다. 이 실험을 하면서 제 자신도 깜짝 놀랐습니다. 불평하지 말라고 그렇게 설교하면서도 정작 제 안에 습관화된 불평이 너무 많았습니다. 혼자 있을 때도 불평했지만 가까운 친구를 만날 때 더 불평이 나왔습니다.

 

40년을 은혜롭게 목회하신 목사님의 비결이 검정색 표지로 된 노트 한 권이었답니다.

이 노트는 바로 <교인 불평록>이었습니다. 교인 중 누가 목사님을 찾아와서 어떤 교인의 잘못이나 과오에 대하여 불평을 말합니다. 그러면 목사님은 교인 불평록을 폅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지금부터 말씀하는 불평의 내용을 다 적겠습니다. 그리고 끝에다 자신의 이름과 사인을 남겨 주십시오. 제가 확인한 후에 바로잡도록 하겠습니다.”그러면 대부분 불평하러 왔던 사람들이 당황한답니다.“목사님! 사실은 그게 아니고~ 뭐 기록까지 남기고 사인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별것 아닙니다.”대부분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목사님은 40년 동안 평안한 목회를 했다고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예수님을 믿고, 이렇게 살면 세상이 놀라게 되고 세상을 변화시키게 됩니다.

15그리하여 여러분은, 흠이 없고 순결해져서, 구부러지고 뒤틀린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없는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하면 여러분은 이 세상에서 별과 같이 빛날 것입니다.”

 

이 보다 더 기쁠 일은 없습니다!

16-18생명의 말씀을 굳게 잡으십시오. 그리하면 내가 달음질한 것과 수고한 것이 헛되지 아니하여서, 그리스도의 날에 내가 자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믿음의 제사와 예배에 나의 피를 붓는 일이 있을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여러분 모두와 함께 기뻐하겠습니다. 여러분도 이와 같이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십시오.”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이 이처럼 살게 된다면 자신이 제물의 피처럼 죽어도 기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날에 자신의 자랑이라고 했습니다.

뭐가 그렇게 기쁠까요? 복음으로 정말 구원받은 증거를 가진 사람을 보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성찬을 받으면서 여러분 안에 계신 예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정말 기쁘고 감사하고 춤을 출 일입니다. 구원의 확신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두렵고 떨리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입니다. 죄 짓고 살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무서운 것이 아닙니다. 부담되는 것만 아닙니다. 흥분이 됩니다. 세상이, 사람이 두렵지 않습니다.

오늘 예배 후 예수님과 함께 집에 가신다고 해 보십시오. 내일부터 예수님과 함께 직장에 나가고 학교에 간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두렵고 떨림과 함께 가슴이 설레고 놀라운 일에 대한 기대감이 가득할 것입니다. 이것이 구원받은 자의 증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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