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7.31. 주일설교(시편 강해 25)
죽어라하고 예수님만 붙잡고 삽시다
시 23:2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여러분, 요즘 평안하십니까? 더 구할 것도 없이 만족하십니까? 그렇다면 참 목자가 있는 사람일 것입니다. 불안하십니까? 불평 불만이 많으십니까? 그렇다면 목자없이 살기 때문입니다.
목자없이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모여드는 사람들을 보시고 ‘목자없는 양’과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 9:36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
오늘 말씀에 양이 풀밭에 누웠다고 합니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필립 켈러(W. Phillip Keller) 목사는 『양과 목자』(A Shepherd Looks at Psalm 23)라는 책에서 양들은 생리상 다음 네 가지 조건을 충족시켜 주지 않는 한 절대로 눕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첫째, 두려운 것이 없어야 하고 둘째, 자기들 안에 싸움이 없어야 하고 셋째, 파리나 기생충 등으로 괴롭히는 것이 없어야 하고 넷째, 배부르게 꼴을 먹어야 비로서 눕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양이 풀밭에 누웠다는 것은 그 양이 얼마나 평안하며 만족한지를 보여주는 완벽한 묘사입니다. 그러나 ‘푸른 풀밭과 잔잔한 시냇물’ 때문에 양이 만족하고 평안해 한 것이 아님을 명심해야 합니다. 양이 누리는 평안과 만족은 근본적으로 목자가 함께 하였기 때문입니다. 만일 목자가 없으면 푸른 풀밭도, 잔잔한 시내도 양에게는 공포의 자리일 뿐입니다.
오늘 다윗의 고백은 하나님만을 목자로 삼았더니 하나님께서 얼마나 완벽하게 보호하고 인도하고 채워주셨는지를 간증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누리는 가장 놀라운 복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이런 삶으로 초대하십니다.
마 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요 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그러나 예수님을 믿고도 이런 평안과 만족을 누리지 못하는 이들은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예수님을 목자 삼고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목자 삼는다는 것은 죽어라 하고 예수님만 붙잡고 사는 사람이 되었음을 말합니다.
양에게는 목자가 생명줄이고 길이고 진리입니다.
혹시 예수님을 믿고도 불안, 불만으로 가득한 삶을 사는 분이 있다면 오늘 성경 말씀이 어떤 느낌으로 다가 오십니까? 정말 인생 문제의 답을 얻은 것 같아서 흥분이 되고 감동이 되고 안심이 되셨습니까? 아니면 진부한 말처럼 여겨지거나 과대 약광고 처럼 여겨지지는 않았습니까?
“푸른 초장이요? 잔잔한 물가요? 정말이예요? 그러면 한번 보여줘 봐요! 손에 쥐어줘 봐요!”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교회 안에 불신자가 있다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전도자 빌리그래함 목사님이 은퇴를 앞두고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나는 복음이 교회 밖에만 필요한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새삼스럽게 깨닫는 것은 교회 안에 복음을필요로 하는 사람이 더 많다는 사실입니다.”
많은 교인들이 인생 문제의 답인 생명줄을 보고도 선뜻 붙잡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에게 평안을 주겠다고 속삭이는 또 다른 복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요한복음 14장 27절에서 “세상이 주는 평안”이 있다고 했습니다. 세상이 주는 평안은 마귀가 조종하는 것입니다.
마귀는 아담과 하와를 그렇게 무너뜨렸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에덴 동산에서 정말 평안하고 만족한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이 목자가 되셨습니다. 그들은 불안, 불만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이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에게 단 하나 선악과만 먹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이 말씀을 지키고 살았다면 아무 문제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마귀가 아담과 하와에게 속삭였습니다. “선악과를 먹어 봐. 하나님 처럼 될 거야!” 아담과 하와는 마귀가 하자는대로 따라갔습니다. 마귀가 제시한 길이 더 행복하고 재미있고 만족스러울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마귀가 거짓의 아비인 것을 몰랐던 것입니다.
요 8:44 …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아담과 하와가 마귀가 하는 말을 따라 했다가 에덴 동산의 축복을 다 잃어 버린 것입니다.
참 안타까운 것은 지금도 마귀의 거짓말이 통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은 어떤 분 같으십니까? 이래라 저래라 요구하시는 것이 많으시고, 재미있는 일, 욕심나는 일은 다 하지 말라고 하시고, 힘든 일, 어려운 일만 하라고 하시는 하나님으로 생각하지는 않습니까? 그에 비하여 세상은 너무 재미있어 보이고, 마음대로 살아도 될 것 같고 거기는 진짜 만족함이 있을 것 같지 않습니까? 마귀는 끊임없이 속삭입니다. ‘다 해봐! 본능에 충실해, 재미있게 살아! 마음껏 즐겨!’
그래서 놀라운 복음을 듣고도 무덤덤한 것입니다. 죽어라 예수님만 붙잡고 살라는 말이 복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인생을 다 맡기기가 두려운 것입니다. 솔직히 세상이 이끄는 대로 사는 것에 마음이 더 끌립니다.
여러분, 여전히 마음대로 살고 싶어하십니까? 그러면 목자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들에게 있는 불안의 뿌리인 것입니다. 이것이 원죄인 것입니다.
설교 준비를 하면서 주님의 마음을 깊이 느끼면서 탄식이 나왔습니다. “오 주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제가 조용 조용 설교하지만 마음은 불같습니다.
여러분, 양이 목자 앞에서 “당신을 어떻게 믿어요? 믿을 수 있게 보여주세요. 만져보게 해 줘 봐요?” 한다면 어떤 느낌이 들겠습니까? 그 양은 이미 위험에 처해있는 것이지 않습니까?
우리가 그렇습니다.
사 53: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자기 마음대로 사는 것이 죄입니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외쳤습니다.
수 24:15 …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하니
엘리야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외쳤습니다.
왕상 18:21 엘리야가 모든 백성에게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 하니 백성이 말 한마디도 대답하지 아니하는지라
여러분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영적으로 심각하게 오염되어 있습니다.
벧전 5: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고후 4:4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몇 년 전에 북한에 다녀올 기회가 있었습니다. 북한에 들어갈 때, 불안했습니다. 나흘 정도 갔다 왔는데, 넉달은 된 것 같았습니다. 그만큼 긴장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평양에 사는 북한 주민들은 너무나 평안했습니다. 우리는 북한 주민들이 걱정이 되어 도와주러 갔는데, 그들은 모든 일이 잘 되어가고 있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노동신문]을 보니 온 세계가 북한과 김정일을 사모한다는 기사로 가득하였습니다.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 동지께서 로시아 연방 공식 방문을 성과적으로 마치고 조국에 돌아오셨습니다.]부터 시작하여 도로 공사가 아주 성공적으로 끝난 소식, 함경도에 많은 양어장을 건설하였다는 소식, [보람찬 병사 시절], [태양의 품 속에서 빛나는 조선 청년] 등 걱정스런 그림자도 찾아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서울에 오는 비행기에 탑승하였을 때 신문을 보았더니, 경제, 사회 온 지면에 걱정거리로 가득하였습니다.
북한 사람들은 모든 것을 김정일 장군이 다 해결해 준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먹는 것도, 공부하는 것도, 몸이 아파서 병원가는 것도, 아기 낳는 것도, 살 집도 다 김정일장군과 나라가 해결해 준다고 정말 믿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유치원 앞에는 [세상에 부럼이 없어요]라고 썼고, 길거리마다 붙은 [김일성 장군만 함께 계시면 우리는 이긴다]는 구호처럼 정말 걱정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북한 사람들에게서 느껴지는 평안함에 대하여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나중에 그것이 세상이 주는 평안임을 깨달았습니다. 세상 평안의 특징은 모르니 평안한 것입니다. 그들은 눈과 귀가 다 막혀 있었습니다. 오직 반복되는 선전을 듣고, 모든 것이 장군님의 은혜라 믿고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현실을 아는 엘리트 간부들은 달랐습니다. 마지막 날 저녁에 북쪽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 담당자와 저녁 식사를 하였습니다. 그는 40대 중반으로 저와 비슷한 나이였는데, 그는 자기들이 말하는 공화국의 장래에 대하여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정말 우리를 푸른 풀밭과 잔잔한 물 가로 인도해 주실까요?
그렇습니다.
우리가 조심할 것은 오히려 세상이 준다고 속삭이는 거짓 평안입니다,
어떤 분이 높은 지위에 올랐습니다. 세상 말로 출세한 것이어서 목사님이 "축하합니다." 라고 인사를 했더니 "목사님 솔직히 큰 걱정입니다. 불안해서 견딜 수 없습니다." 했다는 것입니다. 남들은 입을 모아 축하를 해주지만 정작 당사자는 잠을 못 이룰 정도로 걱정이 태산같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세상의 평안이라는 것입니다.
어느 성도님이 찾아와 상담을 하였습니다. 이 분은 사회적으로 성공한 분이고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사는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아내의 불륜을 목격했습니다. 그러나 이 성도는 그것을 밝히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자녀들의 결혼 문제가 걸려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모른 척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가정은 겉으로 너무나 행복해 보입니다. 그러나 속으로는 뒤집어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세상이 주는 평안입니다.
성도 여러분, 죽어라 하고 푸른 풀밭, 잔잔한 시내를 붙잡으면 안됩니다.
우리가 죽어라 하고 붙잡아야 하는 분은 예수님입니다.
양이 살 길은 오직 하나 목자만 따르는 것입니다. 언제나 목자와 함께 하는 것입니다. 그 때 푸른 초장과 잔잔한 시내를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이 함께 하심을 알고 나면 어디서나 푸른 풀밭이고 잔잔한 시내입니다.
빌 4:11 (새번역) 내가 궁핍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어떤 처지에서도 스스로 만족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12 나는 비천하게 살 줄도 알고, 풍족하게 살 줄도 압니다. 배부르거나, 굶주리거나, 풍족하거나, 궁핍하거나, 그 어떤 경우에도 적응할 수 있는 비결을 배웠습니다.
제게 딸이 둘 있는데, 중학생 때, 혼자서 해외여행을 보낸 적이 있었습니다. 부모인 저희들이 같이 갈 형편이 못되어서이기도 했지만 어려서 세계를 경험하는 훈련이 되겠다고 생각했기에 결단한 것입니다. 큰 딸은 중학생 때 독일에, 둘째 딸은 중학생 때 미국으로 혼자 가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첫째의 경우 혼자 보내지만 독일에 계신 목사님의 도움으로 독일 프랑크푸르트 공항을 잘 그려 주었는데, 도착해 보니 공항 내부가 변경되었답니다. 미국에 간 둘째는 폭설로 다른 공항에 내렸습니다. 두번 다 큰 고생을 했습니다. 미국이나 독일은 다 선진국으로 살기 좋은 나라가 아닙니까? 나라로 보면 푸른 풀밭이요 잔잔한 물가이지만 혼자 가니 위험하기 짝이 없는 곳이었습니다.
반면에 이번 청소년국 필리핀 단기선교, 대부분 첫 해외여행이었습니다. 그런데 첫 해외여행으로서는 너무 열악한 곳을 다녀왔습니다. 필리핀 빈민촌에 다녀왔습니다. 그러나 너무나 행복하였다고 했습니다. 어제 귀국했는데, 너무나 좋았다고 흥분하였습니다. 주님이 함께 하시니 어디나 푸른 풀밭이고 잔잔한 시내였던 것입니다.
이번 젊은이교회에서 인도에서도 오지에 선교팀이 다녀왔습니다. 그곳에서 아무도 사람 취급하지 않는 불가촉 천민이 사는 동네에 있는 산탈리교회에 가서 주일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공연을 위해 꺼내두었던 주진규전도사님의 기타를 그곳 남자 청년이 특송을 하면서 치고 있는 것을 보고 순간, 그 기타가 그 형제에게 너무 잘 어울리는 것은 생각이 들어, 그 청년에게 주고 왔답니다. 그 기타는 고 1때 주전도사의 아버지가 사주셨던 첫 번째 기타이자 유일한 기타였고, 지난 15년 동안 참 많은 곳을 가지고 다니며 찬양했던 기타였습니다. 그러나 너무도 감사한 마음으로 인도 청년에게 주고 왔습니다.“이제 저에겐 기타가 없습니다. 이젠 산탈리교회에서 이름도 모르는 그 청년을 통해 주님의 이름을 찬양하고 높이는데 쓰여지길 기쁜 마음으로 기대합니다. ^^”
인도 땅 오지 불가촉 천민의 동네에서도 주님이 인도하시는 곳이니 푸른 풀밭 잔잔한 시내를 경험한 것입니다. 그렇게 만족스러우니 소중한 기타도 감사한 마음으로 주고 올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삶에 지치셨습니까? 목자없이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목자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죽어라 예수님만 붙잡고 예수님 말씀대로만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 진정한 평안을 누리게 됩니다.
오늘 분립 개척교회에 파송합니다. 처음에는 천 명도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한 분 한 분 갈 분이 확정되면서 마음이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저 분은 이제 갈 분이구나! 마음이 아려왔습니다. 그러나 제 마음이 아려온 것은 교인 욕심이 아닙니다. 딸을 시집보낼 때 이런 마음이겠구나 싶었습니다. 개척교회를 세워갈 때 겪을 어려움이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오늘 파송하며서 제가 드릴 선물은 이 설교입니다.“오직 목자이신 예수님만 죽어라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당장 다음 주 첫 예배부터 푸른 풀밭과 잔잔한 시내물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으로 인하여 진정한 평안을 누리기를 축원합니다.
♬ 평안을 너에게 주노라, 세상이 줄 수 없는, 세상이 알 수도 없는 평안, 평안, 평안, 평안을 네게 주노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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