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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당신의 구원을 확증하라! /고전 1:18

by 【고동엽】 2023. 1. 26.

2011.4.17 주일 설교(종려주일)

 

당신의 구원을 확증하라!

고전 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교회 게시판에 대전에서 목회하시는 박의규전도사님의 321일자 영성일기가 올랐습니다. 환상 중에 자신이 죽어서 주님 앞에 갔을 때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 땅을 떠나 주님 앞에 섰지만 심판자 이신 주님 앞에 얼굴을 감히 들을 수가 없다. 다만 주님의 오른 편에 서 있는 사람들을 조금 바라 볼 뿐이다. 그 곳에는 나와 같이 신앙생활을 했던 신앙의 선배들이 서 계시고 그 중에 내 눈에 반가운 사람이 눈에 들어오는데 이는 세상에서 그토록 사랑했던 딸, 먼저 죽어 하늘 나라에 간 찬양이가 그들과 함께 서있는 것이 아닌가? 천사의 얼굴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만 볼 뿐 아무 말도 없다. 찬양이와의 거리는 손만 뻗으면 손에 잡힐 거리이다.

그런데 손이 들려지지 않는다. 뒤로 한 발짝도 움직여지지 않고 앞으로도 한 발짝 옮길 수 없다. 아제 주님의 선고가 내려지면 내 의지와 상관없이 가야할 길이 주어질 뿐이다.

내 몸은 굳어져 있다. 주님은 세상에서 나의 행위록을 살펴보신다. 주님의 왼편에는 악한 자들이 기다리고 있다. 주님의 말씀에 따라 나의 영을 속박할 무리들이다.

찬양이도 주님의 말씀을 기다리고 신앙의 선배들도 역시 주님의 선고를 기다린다.

주님이 말씀을 하신다.

잘했다. 충성된 종아!”라는 말씀과 동시에 찬양이가 달려와 나를 반겨주며 서로 부둥켜 앉고 기쁨의 재회를 한다. 이 얼마나 기다렸던 순간일까? 주님곁에 서 있던 많은 신앙의 선배들도 기쁨으로 나를 반겨 맞아준다.

그러나 만약에, 만약에 주님께서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 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하신다면 악한 자들이 달려와 나를 결박하여 내 영을 끌고 간다.

찬양이 바로 앞에서 영원히 헤어져야 한다. 손만 뻗으면 손에 잡히는 거리임에도 찬양이를 바라만 볼 뿐 말한 마디도 건네지 못하고 나는 처절하게 끌려만 간다.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 통곡이 터진다.

모든 것은 세상에서 이미 결론이 났기에 아무리 몸부림을 쳐도 소용이 없다.

찬양이는 얼마나 안타까워 할까? 얼마나 나를 원망할까? 자신의 죽음이 나에게 아무런 의미없이 되는 순간 얼마나 마음 아파할까? 나와 우리 가정을 위하여 아사셀의 제물이 되어주었건만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말이다!

이런 엄청난 일이 나에게 일어 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숨이 멎는 것 같다.

그렇기에 나의 삶 하나하나가 살얼음판을 걷는 마음이다. 성령님이 온전히 나를 다스려주시길 기도할 뿐이다.

잘했다! 착하고 신실한 종아 와서 주인과 함께 기쁨을 누려라.”라는 주님의 음성을 듣기를 이 순간도 사모한다. 찬양이와 기쁨의 재회를 항상 생각하며.

 

저는 지난 두 주간 연속해서 부흥회를 인도하면서 심각한 주님의 마음을 느꼈습니다. 그것은 거짓 구원에 만족한 교인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무엇보다 먼저 우리 자신이 정말 구원받았는지 확인하고 살아야 합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영적으로 잠들어 있으면서도 그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5:14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너에게 비추이시리라 하셨느니라

많은 교인들이 자신들이 구원받은 줄로 생각합니다. 교회를 다니고 세례를 받았고 집사도 되었고 분명히 예수님을 영접한다고 고백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살기는 세상 사람들처럼 삽니다. 세상이 너무 사랑스럽습니다. 세상이 너무 부럽습니다. 세상이 너무 아쉽니다. 음란한 것도 보고 거짓말을 하고 욕심을 부리고 싸우고 오락에 빠지고 도박을 하고 삽니다. 자신이 사랑하는 많은 것들이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살아도 교회만 다니면 구원받은 사람일까요?

 

마태복음 721절에서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이 구주라는 것을 알고 고백한다고 구원받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구원받은 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싫어하는 것은 나도 싫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좋은 사람이 구원받은 자입니다.

 

오늘은 종려주일입니다.

이 날은 예수님이 공생애 3년을 마치시고 십자가에서 최후의 죽음을 맞이하시기 위하여 예루살렘성에 입성하시게 되었을 때 제자들과 군중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꺾어 흔들며 주님을 환영했던 그 날을 기념하여 종려주일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이 날은 예수님이 대환영을 받으셨지만 기쁜 날은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바로 이 날부터 고난주간이 시작되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향하여 호산나!” 하고 외치던 그들이 곧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외치는 자들이 됩니다.

오늘날도 많은 교인들이 주 예수님을 찬송하고 예배합니다. 그러나 진정 거듭난 자가 아니면 곧 예수님을 배반할 것입니다.

 

이런 말을 듣고 불안해진 사람들은 주변의 그리스도인들을 봅니다. 가만히 보니 대부분 자기처럼 살고 있음을 봅니다. 그래서 안심합니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네!’

큰 일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 삼아야지 주변 사람들이 기준이 아닙니다.

너무 부끄러운 말이지만 목사님들도 여러분의 구원에 대하여 기준이 아닙니다.

마태복음 722-23절 말씀을 보면 주님의 심판대 앞에서 엄청난 사역을 했던 목사님들 중에 많은 분들이 네가 누구인가? 나는 너를 모르겠는데" 하는 답을 들을 이가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 뿐 아니라 이 불법을 행한 자야 내게서 떠나가라고 하는 무서운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어쩌다가 한 두 사람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이 그리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목사님들이 싸운다고 싸워도 되는 줄 알면 큰 일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12:14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겉으로는 예수를 잘 믿는 사람 같은데, 실제는 아닌 사람들이 많습니다.

계시록 2-3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초대교회 일곱 교회에 편지를 보내십니다.

계시록 24-5절에서는 에베소 교회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예수님을 열심히 믿고 이단들과 싸웠어도 아가페 사랑, 곧 원수도 용서하고 사랑하지 못하면 구원의 촛대가 옮겨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계시록 216-17절에서는 부자 교회라고 자랑하던 라오디게아 교회가 책망을 받습니다.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부유하게 산다고 복받았다고 자랑할 것이 아닙니다.

계시록 31절에서는 사데 교회가 책망을 받습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정말 두려운 말씀입니다. 예수믿는다, 교인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구원받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구원을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고후 13:5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그러나 듣고 아는 지식이 아니라 삶을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12:33 나무도 좋고 열매도 좋다 하든지 나무도 좋지 않고 열매도 좋지 않다 하든지 하라 그 열매로 나무를 아느니라

 

여러분에게서 은밀한 죄가 사라졌습니까? 원수도 사랑하게 되었습니까?

천국을 믿으니 보화를 발견한 것처럼 기쁘십니까? 주님의 음성을 듣습니까?

두려움과 염려가 사라졌습니까? 부족한 것이 없이 너무나 만족하십니까?

예수님과 함께 자아가 죽었습니까?

우리가 정말 구원받은 자인지 이것을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어떤 분은 말할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요? 그렇게 살기 얼마나 어려운데요?” 정말 그런 사람이 적습니까? 예수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7:13-14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 좁은 문입니다. 많은 사람이, 심지어 교회 다니는 사람들 조차 그렇게 살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그 길을 놓지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십자가 복음은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했습니다.

고전 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모든 죄가 깨끗이 씻음을 받는 것, 마귀 자식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 천국 백성이 되는 것처럼 큰 능력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것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모든 죄가 씻음을 받을 뿐 아니라, 다시는 죄의 종노릇하지 않게 되는 것,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받는 것 뿐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 사는 것, 천국 백성이 되는 정도가 아니라 천국 백성답게 사는 삶으로 바뀝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복음으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1034-36절에서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이 이해가 되고 아멘!”이 됩니까?

37-38절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38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이 말씀을 읽고 숨이 탁 막히지 않습니까?

그저 주님을 사랑하라면 하겠는데, 부모나 자식을 버릴 수 있느냐 할 때는 꼭 이렇게 믿어야 하는 것인가?’ 주저하게 됩니다. 이 말씀을 읽고 감격스럽게 받는 사람이 있고, 이상한 말씀으로만 들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십자가의 능력을 체험한 것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22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독자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고 명령하십니다. 그 때 아브라함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이삭을 바치러 갑니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서 보면 이 보다 더한 불화가 어디 있습니까?

이럴 때, ‘어떻게 그럴 수 있어.’ 하지 않고 도대체 아브라함은 어떤 믿음을 가졌기에 그럴 수 있었을까? 주여 나에게도 그런 믿음을 주옵소서! 기도할 수는 없나요?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부모를 버리라, 자녀를 버리라, 가족들과 원수 되라, 사람들과 분쟁하고 불화하라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사랑이 첫째 사랑이 되면 , 그동안 사랑하는 사람들은 다 두 번째 세 번째 사랑이 된다는 것입니다.

 

정말 예수님을 믿으면 삶이 변화되나요?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지나요? 정말 옛사람이 죽나요? 많은 교인들이 궁금해 합니다. 어떻게 그렇게 되었습니까? 난 아직 옛날 그대로인데요? , 예수믿으면 사람이 변화됩니다.

 

부끄럽지만 어느 제자훈련 세미나 때 부목사 시절 함께 하던 전도사님이 목사님이 되어 참석하였습니다.“목사님 정말 많이 바뀌셨습니다.”너무나 부끄러운 말입니다. 우리 교회 부교역자 중에는변했다고? 아직 아닌데!”할 이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제가 전에는 지금보다 더 엉망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감사한 것은 조금이라도 변화되었다는 것입니다.

 

자꾸 좋은 방향으로 변화되어가는 것이 복음의 능력입니다. 한 달 뒤, 1년 뒤, 3년 뒤가 너무나 달라지는 것이 복음의 능력입니다. 그러면 잘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문제는 점점 나빠진다는 것입니다.

 

지난 성남 장로 연합회 총회 때, 초대회장이었던 원로장로님 양문교회 신석복장로님이 인사말을 하였습니다. 요즘에 남한산성에 올라가서 한 시간 기도하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지난 날 3-4 시간 나라 위하여 교회 위하여 밤새워 기도했었음을 회상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자신이 그렇게 기도하지 못하여 한국 교회가 이처럼 어려워진 것 같아 너무나 죄송하다고 회개한다고 눈물을 글썽이면서 고백하였습니다. 그 장로님의 말씀을 듣고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그 분들은 기도로 이 민족을 한국 교회를 지켜오신 분들입니다. 이제 그 기도 사명을 누가 감당해야 하는가? 우리인데, 그 장로님이 기도를 그친 자신의 죄라 하며 기도하신다니!

기도가 이전 보다 더 많아졌으면 감사한 일입니다.

그러나 기도가 이전 만 못하다면 큰 일입니다.

 

여러분은 삶이 점점 더 좋아지고 있습니까? 변화되어 가고 있습니까?

 

예수님을 믿는데도 여러분의 삶이 변화되지 않았다면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았다고 단정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제 구원받는 길을 아는 것입니다. 그 길 입구에 있는 것입니다. 거기서 중단하면 안됩니다.

은행 현금인출기에서 카드를 넣었는데도 돈이 나오지 않는다면 그저 넘어갈 사람이 있겠습니까? 반드시 원인이 무엇인지 확인하고 바로잡지 않겠습니까?

돈은 그렇게 꼼꼼히 챙기면서 왜 영생 구원의 문제는 그리 안합니까?

 

오늘 본문의 고린도 교회는 참으로 대단한 교회였습니다. 고린도전서 15절에 보면󰡐모든 언변과 모든 지식에 풍족하므로󰡑라는 말이 나옵니다. 고린도 교회 교인들이 세상적으로 공부 많이 하고 철학에 능하고 논쟁을 즐기던 사람들이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17절에 보면󰡐너희가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림이라󰡑한 것을 보면 고린도교회가 성령의 은사가 강하게 나타난 교회였고, 재림에 대한 신앙도 뜨거웠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린도 교회에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는데 교회 안에 파가 갈리어 서로 다투고 싸우는 분쟁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장부터 말을 돌리지 않고 저들의 분쟁을 언급하며 책망합니다. 정말 십자가의 복음을 알고 믿는다면 이럴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 교인들에게 다시 십자가의 복음으로 돌아가라고 외칩니다. 십자가의 도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사랑하게 하고 하나되게 하는 능력이라는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의 모든 문제는 교인들이 십자가를 잊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삶이 변화되지 않았다고 두려워하지도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능력인 십자가 복음에 귀를 기울이면 됩니다.

분명히 성경은 복음을 들으면 우리에게 구원받을 믿음이 생긴다고 했습니다.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한 집사님은 어느 남편이 결혼 30주년을 기념하여 아내에게 선물을 해 주려 했더니, 2시간 내 말 좀 들어주면 반지도 옷도 다 소용없다고 한 예화를 듣고 주님의 말씀이라 깨달았다고 했습니다. 그동안 잠언 3015절에 나오는 거머리의 두 딸처럼 주님께다오 다오하며 살았지, 주님이 하고 싶은 말씀에 귀 기울여 보지 못했구나!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이번 고난 주간 새벽기도회 때 주님이 하고 싶어하시는 말씀 앞에 서 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구원을 확증해 보시기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십자가의 복음 앞에서 여러분 자신을 내어 놓고 점검해야 합니다.

 

이번 부흥회 때 장로님의 아들인 40대 한 집사님이 간증을 하였습니다. 그는 아버지가 장로님이시지만 천국간증 책 사다드리며 꼭 천국갈 믿음을 가져보시라고 했답니다. 아내가 이번 부흥회 때 은혜받고 변화되기를 기도하였답니다. 그런데 말씀을 듣고 은혜받다 보니 정작 변화될 자가 자기 자신임을 깨달았다고 했습니다.

 

이번 고난 주간 특별 새벽기도회, 저와 여러분이 정말 구원받은 자인지 확증하는 기회가 되기 바랍니다. 철저히 십자가 복음 앞에 서야 합니다.

그렇다면 한 주간 뒤 부활절에는 정말 우리의 믿음이 부활의 능력으로 충만할 것입니다. 부활의 감격 속에서 부활절을 맞이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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