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5.31 주일설교 (사도행전 강해 25)
예수님 안에 참된 행복이 있습니다
사도행전 10장 24-48절
“이튿날 가이사랴에 들어가니 고넬료가 그의 친척과 가까운 친구들을 모아 기다리더니
마침 베드로가 들어올 때에 고넬료가 맞아 발 앞에 엎드리어 절하니
베드로가 일으켜 이르되 일어서라 나도 사람이라 하고
더불어 말하며 들어가 여러 사람이 모인 것을 보고
이르되 유대인으로서 이방인과 교제하며 가까이 하는 것이 위법인 줄은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께서 내게 지시하사 아무도 속되다 하거나 깨끗하지 않다 하지 말라 하시기로
부름을 사양하지 아니하고 왔노라 묻노니 무슨 일로 나를 불렀느냐
고넬료가 이르되 내가 나흘 전 이맘때까지 내 집에서 제 구 시 기도를 하는데 갑자기 한 사람이 빛난 옷을 입고 내 앞에 서서
말하되 고넬료야 하나님이 네 기도를 들으시고 네 구제를 기억하셨으니
사람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그가 바닷가 무두장이 시몬의 집에 유숙하느니라 하시기로
내가 곧 당신에게 사람을 보내었는데 오셨으니 잘하였나이다 이제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
베드로가 입을 열어 말하되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다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
만유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화평의 복음을 전하사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보내신 말씀
곧 요한이 그 세례를 반포한 후에 갈릴리에서 시작하여 온 유대에 두루 전파된 그것을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우리는 유대인의 땅과 예루살렘에서 그가 행하신 모든 일에 증인이라 그를 그들이 나무에 달아 죽였으나
하나님이 사흘 만에 다시 살리사 나타내시되
모든 백성에게 하신 것이 아니요 오직 미리 택하신 증인 곧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후 그를 모시고 음식을 먹은 우리에게 하신 것이라
우리에게 명하사 백성에게 전도하되 하나님이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으로 정하신 자가 곧 이 사람인 것을 증언하게 하셨고
그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도 증언하되 그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의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
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놀라니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
이에 베드로가 이르되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세례 베풂을 금하리요 하고
명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 하니라 그들이 베드로에게 며칠 더 머물기를 청하니라 ”
어떤 사람이 고속도로를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날 따라 모든 사람들이 차선을 거꾸로 달리는 것이 아닙니까? 그는 몇 번이나 정면에서 오는 차들과 충돌할 뻔하면서 아슬아슬하게 진땀을 흘리면서 차를 달리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휴대폰이 찌르롱하고 울렸습니다. 집에서 아내가 한 전화였습니다. 아내는 말했습니다. “여보 !조심하세요! 지금 T.V 뉴스를 보고 있는데 당신이 가고 있는 고속도로에서 어떤 미친 사람 하나가 고속도로에서 거꾸로 달리고 있대요." 남편이 대답했습니다. “지금 미친 놈이 하나 둘이 아니야! 위험하니까 얼른 전화 끊어!”
많은 사람이“열심히 사는데 왜 인생 살기가 이렇게 힘드느냐?”고 묻습니다. 인생에 있어서 열심히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한신대 정태기 박사님이 미국에서 공부할 때, 미국인 친구 목사가 담임하는 교회에 가서 설교 부탁을 받고 찾아갔답니다. 교회 입구에서 청소하는 한 사람과 마주쳤습니다. 40대로 보이는 그 분이 청소하는 모습이 얼마나 신바람이 났는지, 혼자서 춤을 추듯 걸레질하며 청소에 열중해 있었습니다. 친구 목사를 만나 그 사람을 칭찬했습니다. "자네 참 좋은 관리 집사를 두었네." "누구? 아, 현관에서 청소하시는 그 분은 관리 집사가 아니라 바우서 박사라고,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분으로 세계 물리학의 대가요 대학 총장을 지낸 분이셔, 우리 교회에서 지난 40년간 장로로 수고하시다가 이제는 은퇴하셨는데, 40대가 아니라 올해 여든 하나시지." 라고 하였습니다. ‘81세 노인이 그렇게 젊어 보일 수 있을까? 걸레를 들고 신바람 나게 청소할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 분은 40대에 예수님을 만나는 체험을 했다고 합니다. "내 안에 예수님이 살아 계십니다." 라는 고백으로 사셨습니다. 교수이요 총장이요 노벨상을 받은 그가 예수 영접하고 나서 교회에서 하는 일은 교회를 쓸고 닦는 봉사였답니다. 40여년 동안 한결같이, 즐거운 마음으로.
하나님을 만나야 인생은 비로서 의미를 찾습니다. 하나님을 만나기까지 누구도 진정한 삶의 참 의미를 알 수 없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분명히 만나고 살아가는 삶은 완전히 변화 됩니다. 만약에 아직도 내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실제로 체험하지 못했다면 내 인생은 실제로는 방황하는 것입니다.
한번은 러시아에서 4성 장군을 대표로 한 고위 장교들이 우리나라를 방문하였다가 한국 군인 최고 지휘관들을 만나보고 그들이 한결같이 믿음이 좋은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사실 공산 치하에서는 신앙이란 나약한 자만이 갖는 것이라고 배웠기 때문입니다. 지휘관이 신앙을 갖는 다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부인한 결과가 무엇입니까?
러시아는 대단한 나라입니다. 문화와 문명이 우리나라와는 비교할 수 없도록 앞섰습니다. 러시아가 전 세계에 끼친 사상적, 문화적 영향력은 말로 다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나라가 왜 지금 이렇게 되었습니까? 원인은 공산주의가 철저히 하나님 무시하는 정책과 교육과 사회를 만들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것과 하나님을 부인하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 초청을 받아오신 분들도 그렇고 우리 모든 교우들도 정말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하는 주일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오늘이 성령 강림주일이기도 합니다. 우리에게 처음 성령 하나님께서 임하신 날을 기념하는 주일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하는 것은 성령 하나님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살아게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까?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에 대한 갈망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 사도행전 10장의 내용은 로마 군인 고넬료와 그 가정에 성령 하나님이 임한 기사입니다. 이방인에게 성령이 임하는 공식적인 첫 사건입니다. 고넬료 집에 성령이 임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지금 우리들처럼 세계 모든 민족과 족속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증거되는 문이 열리게 된 사건입니다. 이 고넬료 가정이 로마 교회의 씨앗이 되었다고 추측합니다.
고넬료는 로마군의 장교였고 유대인들을 지배하기 위해서 파견된 군대의 지위관입니다.
성경은 고넬료가 하나님을 경외하고 늘 기도를 많이 하는 사람이고 선한 일을 많이 한 사람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아주 특별한 경우입니다. 자기가 지배하고 있는 민족의 종교를 그가 받아들인 것입니다.‘하나님이 살아계시다.’ 당시의 로마 장교라면 권력도 재산도 명예도 다 가지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고넬료는 하나님을 갈망했습니다.
어느 날 고넬료는 기도 중 특별한 체험을 했습니다. 천사가 나타나 하나님께서 고넬료의 기도와 구제에 대하여 기억하고 계시다고 말하였습니다.
혹시 이 시간에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분명치 않으신 분들이 있다고 하더라도 여러분의 기도와 선한 일이 하나님이 기억하고 계신 바 된다는 사실을 꼭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욥바에 있는 베드로라는 사람을 청하여 말씀을 들으라고 지시하는 것이었습니다. 고넬료은 그렇지 않아도 하나님이 계시다는 믿음을 가졌었는데, 천사까지 만나고 그 말을 듣게 되면서 가슴이 뜨거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천사의 말에 고넬료에게 더욱 간절한 갈망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급히 베드로를 부르러 사람을 보냈습니다.
베드로가 고넬료가 보낸 사람을 따라 고넬료의 집에 왔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고넬료가 온 가족과 친지 친구들을 다 불러 모으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가 도착하니까 베드로 앞에 엎드려 절을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로마의 속국 백성인 유태인이고 고넬료는 지배 민족인 로마군 장교입니다. 이것은 겸손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고넬료가 얼마나 이 순간을 사모하고 기다렸는지 이 사실 하나만 보고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베드로를 하나님처럼 대하였습니다.
(33절)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
베드로 앞에 있는데 자기는 하나님 앞에 있다고 고백을 했습니다. 그만큼 하나님으로부터 주실 말씀을 사모하고 기다렸다는 뜻입니다.
베드로가 오히려 민망할 정도였습니다. 그래서“일어서시오, 나도 사람입니다.”라고 말했을 정도였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겸손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갈망이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그 모든 일을 보고서‘하나님께서 이방인들을 부르시는구나! 이방이들에게도 하나님이 역사하시는구나!’하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34절) “하나님은 참으로 사람의 외모를 취하지 아니 하시고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
여러분, 오늘 이 말씀은 저와 여러분에게 동일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갈망하는 자를 분명히 아십니다. 결코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지난 번 미국에 가서 뜻밖에 반가운 권사님 한 분을 만났습니다. 이미 80세가 다 되신 그 권사님은 제가 그 교회에서 설교하는지도 모르고 이웃 교회 목사님을 따라 수요 예배를 드리러 왔던 길이었습니다. 제대로 걷지 못하시는 그 권사님은 저를 보고는 너무나 반가와하셨는데, 그렇게 반가와하실만 하였습니다. 벌써 30년 전 일입니다, 부산에 사시던 그 분이 중풍으로 쓰러져 꼼짝을 못하고 누워계실 때, 교회 담임 목사님마저 돌아가셔서 교회에서는 새 목사님을 찾고 있었습니다. 그 권사님은 누워서, 빨리 교회에 새 목사님이 부임해 오셔서 목사님 심방 한 번 받기를 기다리고 또 기다렸습니다. 목사님이 오셔서 기도만 해 주시면 금방 일어날 것 같은 간절한 소원이 있었습니다. 목사님 한번 모시는 일이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고 3개월 쯤 지나서 제가 그 교회에 부임하기로 결정되었는데, 아직 부임한 것은 아니지만 주변에서 꼭 심방을 가 달라는 부탁을 받고 갔습니다. 조그만 방에 들어가 그 분을 보는 순간, 얼마나 불쌍한지 나도 모르게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누워 꼼짝을 못하는 분을 붙잡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사를 위하여 서울로 왔는데, 그 날 이후 그 권사님께서 기적적으로 일어나신 것입니다.
교넬료의 가정처럼 그 권사님의 간절한 갈망이 응답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갈망이 없으면 교회를 다녀도 성령의 체험을 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갈망하는 자를 알고 계시고 또 그에게 역사하십니다. 성령을 받지 못한 사람은 교회를 다녀도 성경을 읽어도 설교를 들어도 부담만 되고 짜증만 납니다.
지금 무서워서 죽겠는데“두려워 말라, 근심하지 말라, 오히려 기뻐하라.”고 하면 부담만 되지 않겠습니까? 돈 아까워 죽겠는데 베풀어 주라, 나누어주라 하나님께 헌신하라고 합니다. 내가 낳은 자식도 때로는 꼴 보기 싫을 지경인데, 원수를 사랑하라고 합니다. 갈 바를 알지 못하고 고향을 떠났던 아브라함을 보라고 합니다. 저주를 퍼붓는 시므이를 보고도 용서하는 다윗을 보라고 합니다. 어떤 유혹을 받아도 끄떡하지 않는 요셉을 보라고 합니다. 어떤 시험이 와도 기도로 이겼던 다니엘을 보라고 합니다.
하나같이 현실성이 없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 어떤 사람들은 속으로 생각할지 모릅니다. 내가 정말 그렇게 할 수 있다면 미쳤다고 여기 이렇게 앉아 있겠소?’
그렇습니다. 예수를 믿는다 해도 성령을 받지 못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도 그대로 살 수가 없습니다. 실제로 성령 하나님을 체험하지 못하고 신앙 생활하는 것은 그 자체가 또 하나의 짐을 지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가운데 성령을 부으시기를 원하시고 그것은 우리 모두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그러면 교회를 다니는데도 왜 성령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까? 마음 중심에 하나님을 향한 갈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부목사로 있을 때, 한번은 교인들에게 [예수님 얼굴이 그려진 액자]를 심방 선물로 나누어 드린 일이 있습니다. 모든 교인들이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교인들의 반응이 뜻밖이었습니다. 액자를 거실에 걸어놓고 보니 예수님이 보시는 눈과 마주치기 두렵다는 것입니다. 부담스럽다는 것입니다. 부부 싸움한 날, 술 마시고 들어온 날, 아이들에게 화를 내고 야단친 날 보니 너무 부담되어 예수님 액자를 창고로 쓰는 방에 걸어놓았다는 교인들이 꽤 많았습니다. ‘하나님, 너무 그렇게 보지 마세요. 무섭습니다. 괴롭습니다.’ 이런 마음으로는 아무리 교회를 다녀도 성령 하나님을 체험하는 축복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갈망한다고 다 하나님을 만나는 것은 아닙니다.
고넬료는 오랫동안 경건하고 선한 일을 많이 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나님을 만나지는 못하였습니다. 천사가 나타나 베드로를 청하여 그 말을 들으라고 하셨지, 성령 하나님이 직접 임하지는 않았습니다. 베드로가 와서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을 전할 때, 고넬료의 집에 모인 모든 사람들에게 성령 하나님이 임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갈망하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들어야 하고 믿어야 합니다.
전도를 하면 많은 분들이“착하게 살면 되지 왜 꼭 예수를 믿어야 하느냐?”고 질문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반드시 예수 믿어야 하는 이유가 분명히 있습니다.
고넬료는 정말 착하게 살았던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인정해 주셨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그런 고넬료에게 아직 한 가지가 부족했습니다. 고넬료 집에서 베드로가 선포했던 말씀 “죄 사함을 받느니라” 그 말은 그렇게 기도 많이 하고 하나님을 마음으로 믿었고 선한 일을 많이 했던 고넬료도 죄 문제 해결은 반드시 필요했다는 말입니다. 이 세상에 속죄가 필요 없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예수 믿으면 반드시 복을 받지만, 예수 믿는다고 하루 아침에 부자가 되고 건강해지고 성공하는 것은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전도를 받지만 쉽게 결단을 하지 못하는 것은, 예수 믿고도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많은 것을 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이미 하나님께서 다 말씀하신 일입니다. 마가복음 5장 45절에 보면“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해를 선인에게만 비취게 하시고, 하나님이 비를 의로운 자에게만 내리우신다면 훨씬 전도하기가 쉬울 터인데, 하나님은 악인에게도 햇빛을 주시고 불의한 자에게도 똑같이 비를 주십니다.
그러면 예수 믿으나 안 믿으나 마찬가지라는 말입니까? 아닙니다. 로마서 1장16절에“복음은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를 믿은 축복은 구원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보배같은 피를 흘리고 죽으셨고 누구든지 그 예수를 믿으면 그가 어떤 사람이든지 모든 죄가 사함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고넬료 집에 성령이 임할 때 바로 이 복음이 선포되었고 고넬료와 온 가족이 그 복음을 받아들일 때 성령이 임했던 것입니다.
구원이 무엇입니까? 구원의 핵심은 죄사함을 받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서 예수님에 대하여 증거하면서 그 결론을 43절에서 말하였습니다.
(43절) ...그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의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
죄사함이 중요한 이유는 성령 하나님이 임하실 수 있는 전제 조건이기 때문입니다.
영국의 스로스츠라고 하는 사람이 교도소에서 40년이라는 긴 세월을 복역하다가 풀려났습니다. 그가 출옥하던 날 모두는 그가 곧 다시 들어올 것으로 알았습니다, 그는 도무지 다스려지지 않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가 출옥하던 날, 구세군 숙박소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 날 밤 전도 집회가 있었는데, 그 시간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영접하고 성령을 체험하였습니다. 그리고 새롭게 변화되었습니다.
그는 그 후 구세군 출옥자 보호소에서 18년을 봉사하다가 죽었습니다, 그는 늘 출옥자들에게 간증하였습니다. “나는 가죽 채찍으로 400대나 매를 심하게 맞고 40년 동안이나 교도소에서 생활했어도 변화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는 순간, 이렇게 변하여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은 인생을 바꾸는 역사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갈망하는 사람이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을 붙잡으면 반드시 성령님을 체험하게 되어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그냥 이 세상에서만 살고 끝나는 것이라면 구태여 힘들게 예수 믿을 필요는 없습니다. 예수 안 믿어도 얼마든지 건강할 수도 있고, 부자가 될 수도 있고, 성공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은 정말 잠깐이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가 있습니다. 분명히 천국이 있고, 지옥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공부 잘 한다고 들어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부자라고 들어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인간적으로 좀 착하다고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성공했다고 들어갈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는 예수를 믿고 죄사함 받고 성령 하나님을 체험한 사람만이 들어갈 수 있는 나라입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를 믿지 않으면 죄사함과 성령을 체험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자신의 잘못된 삶을 진심으로 회개하고,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음을 믿으면 다 성령충만을 받습니다.
로마서 8장 1-2절은 이렇게 선언합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하였음이라”
고넬료는 예수는 믿지 않았지만, 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고 선한 일에 힘쓰고 경건하게 산 사람을 대표하는 사람입니다.
오늘 초청받아 온 여러분은 고넬료와 같으신 분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마음으로 알고 사셨던 분들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오늘 교회 문턱을 넘어 여기까지 오실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교회 문턱을 넘어오는 것이 하나님을 향한 갈망이 없다면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성실하게 사셨던 분들입니다. 남에게 폐를 안 끼치고 정직하게 살려고 하고 선한 일을 하며 살려고 애쓰셨던 분입니다. 고넬료와 같은 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고 선한 일을 많이 하고 경건하게 살아도 하나님을 만나기까지는 우리 영혼은 아직 구원받은 것이 아닙니다. 그랬다면 고넬료가 베드로를 청하여 복음을 들을 이유가 없었을 것입니다. 천사가 고넬료에게 베드로를 청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들으라고 역사하신 것은 오늘 이 시간 여러분에게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그렇게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죄 문제가 해결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죄 사함을 받고 성령을 체험하기까지 우리 영혼은 아직 구원받은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하려면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면 반드시 성령님을 선물로 받게 됩니다.
저는 목사의 아들로 목사까지 되었지만 신학교에 들어갈 때까지도 십자가 복음은 알았지만 그 능력은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신학생 때, 선배의 권유로 병원 전도대에 따라갔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복음에 대한 확신도 없었고, 전도는 어떻게 하는 지도 몰랐던 저는 그 날 얼마나 혼이 났는지 모릅니다. 같이 짝을 지어 전도하는 여학생 때문에 중도에 도망도 못 가고, 한 병실 한 병실 방문하여 전도를 하였지만 죽는 것 같았습니다. “예수님 믿으세요!” “예수님 믿으세요.” 하는 저를 사람들은 이상한 사람 보듯이 바라보았습니다. 어떤 환자를 붙잡고 기도를 하였는데, 아무래도 그 사람은 기도하지 않는 것 같아 기도하면서 살며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보니 저를 똑바로 쳐다보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식은 땀이 났습니다. 산부인과 병동인 줄 모르고 임산부가 중환자인 줄만 알고, 하나님께 병을 고쳐달라고 입에 침을 튀겨가며 기도하고 나오는데, 시선이 너무 차가와 돌아보니 산부인과 병동인 것을 알고 다리에 힘이 다 빠졌습니다.
그 날 저는 다시는 전도 나오지 않으리라고 속으로 다짐을 하고 또 다짐을 했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청천벽력같은 통보를 받았습니다. 제가 병원 전도대 총무로 뽑혔다는 것입니다. 저와 한 짝이 된 여학생이 제가 환자들의 반응이 너무나도 차가운데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병동을 다 돌았던 것을 전도의 사명감이 투철한 신학생으로 오해하고는 그렇게 보고를 했던 것입니다.
다음 전도를 나가는 날, 아침에는 밥 맛도 없었습니다. 전도대원을 피해 도망 다니느라, 점심도 굶고 도서관에 숨어 있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전도대 활동을 통하여 저는 복음의 역사와 기도의 역사를 체험했습니다. 한 달 뒤에 제가 기도할 때 기도 안하고 두 눈을 부릅뜨고 저를 쳐다보던 그 사람이 사실은 눈이 실명된 환자였고, 그 날 예수 믿고 죄사함 받으라는 전도와 엉터리같은 기도를 통하여 기적적으로 시력이 돌아왔다는 말을 들었을 때, 저는 전기에 감전되는 것 같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복음이 무엇인가? 십자가 복음이 도대체 무엇이길래 나같은 자가 전했던 복음과 내가 드렸던 그 기도로 이런 역사가 일어났다는말이가?’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 진로를 복음을 전하는 목회로 정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인생을 뒤바꾸어놓고 우리 구주이고 또 우리 삶의 주님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 복음 안에 성령의 놀라운 체험이 뒤따라오게 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은 약속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4장 18절에서 예수님은 분명히“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고 했습니다.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고아처럼 살고 있습니다. 고아가 어떻게 삽니까? 자기 문제는 자기가 해결하고 살아야 됩니다. 아버지가 안계시니까. 그런데 하나님의 계획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우리를 고아처럼 살게 내버려두지 않으십니다. 우리에게 오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는데도 현재 고아와 같은 처지에서 살고 있는 분이 계십니까? 성령 하나님을 체험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가 계신 것은 알지만 아버지와 함께 살지 않는 고아인 것입니다.
오늘은 성령 하나님이 임하신 날을 기념하는 성경 강림 주일입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가 다 성령을 체험하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먼저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을 갈망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도 우리를 간절히 원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을 믿으십시오. 속죄함을 믿으십시오. 예수님과 함께 죽고 예수로 살게 되었음을 믿으십시오.
그러면 성령 하나님께서 임하시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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