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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의 하나님

by 【고동엽】 2023. 1. 22.

날 짜 :2001.09.30
제 목 :아브라함의 하나님
본 문 :창세기 28 : 10 ∼ 19

인생을 가장 비참하게 만드는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인생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은 결코 외적인 환경의 문제가 아닙니다. 거기서 불행이나 행복은 동물의 그것과 인간의 그것이 다른 것입니다. 동물은 배만 부르면 됩니다. 그러나 인간은 배부르면서부터 문제가 있습니다. 동물은 좋은 여건에서 충분히 행복합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아무리 좋은 여건에서도 저만은 불행합니다. 그것이 다른 것입니다. 자본이다, 지식이다, 기술이다, 건강……. 심지어는 건강까지도 결코 행복의 여건이 아닙니다. 여러분, 병들었다고 불행하고 건강하다고 모두 행복한 것입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고로 가장 중요한 문제는 복이 무엇인지를 모른다는데 있습니다. 인간만이 행복할 수 있는 복,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복이 뭐냐? 우리 영혼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 복은 무엇일까? 그걸 모르는 동안은 그는 불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여건에서도 그는 불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없어서가 아니라 결국은 몰라서 불행한 것이올시다. 또 한가지는 복 받을 그릇의 문제입니다. 온 우주에 축복과 은혜로 가득 차 있다하더라도 내 그릇이 문제입니다. 태평양 바다에 떠 있는 물병에 병마개가 꼭 막혀있는 동안은 그 병 속에 물 한 방울도 들어가지 않습니다. 그와 같이 어떤 복이 우리에게 있다하더라도 복 받을 만한 그릇이 되지 못한다면, 그는 그 복과 상관없는 사람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유명한 사회학자인 커밍 웍(Cuming Walk) 의 아주 명언이 있습니다. 현대인이 성공하려면 지능과 지식과 기술이 있어야 한다구요. 지능과 지식과 기술, 그것은 절대요소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위해 말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네 번째 ‘태도’라고 하는 것입니다. 자세가 문제입니다. ‘attitude’. 외적인 문제가 아니고 내적, 나 인간 존재의 나 자신의 삶의 자세, 그것이 성공여부를 좌우한다고 사회학자의 양심으로 말합니다.
여러분, 생각해 봅시다. 얼마나 환경을 원망하며 살아왔습니까? 이제는 그만큼 하시고 생각을 돌리세요. 이제부터 행복하든, 이제부터 불행한 것은 나의 삶의 자세에 있다는 것입니다. 의식을 바꾸면 세상이 달라집니다. 또 하나는 이미 주어진 복을 모른다는데 있습니다. 어찌 생각하면 그만하면 참 행복할 수 있는데 저런 특별한, 복된 여건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불행하더라구요. 왜요? 복을 모르고 있습니다. 내가 처한 이 처지를 모르고 있기 때문이에요. 어떤 사람은 너무 늦게 깨닫는 것을 봅니다. 좌우간 80이 되가지고 한마디 하더라구요. 나는 평생 원망하며 살았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모든 사람 중에 내가 제일 행복하게 산 것 같다. 그래서 내가 농담을 좀 했습니다. 노인에게 “철났군요”그랬어요. 80에 철나더라구요. 여러분 어찌 생각하십니까? 나는 행복하다 생각하십니까? 나는 특별하게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나만은 불행하다고 생각하십니까? 가장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여건 속에서도 그 행복을 행복으로 모르는 사람들은 영영 구제불능이 올시다. 그런고로 복과 복된 사람의 문제입니다. 복의 여건이 따로 있는게 아니고, 문제는 복된 사람이 문제입니다. 그런고로 사람은 한평생 복을 배운다고 생각합니다. 물질이 복인가, 친구가 복인가, 사랑이 복인가, 뭐 혹은 많은 재산이 복인가, 명예가 복인가, 이리 헤매고 저리 헤매고, 그 많은 세월동안 참 복이 무엇인지 그것을 배워가는 것입니다. 또 한가지는 한평생 복된 사람으로 양육되는 것입니다. 복 받을 만한 성품, 복 받을 만한 인격, 복 받을 만한 심력, 마음가짐을 배워가는 거예요. 한평생 공부하는 거예요. 그렇게 키워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쁜 습관을 버리기도 하고, 잘못된 생각을 고치기도 하고, 그리고 전에 없던 거룩한 마음을 가지고 사랑의 손길을 펴기도 하고…… 여러분, 한평생 복된 사람으로 다듬어 지고 양육되어 가는 과정에 살아가는 것이다. 그걸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한평생 우리는 더 나은 복, 더 영원한 복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것이올시다.
오늘 본문 성경에는 야곱이라는 사람이 나옵니다. 그 이야기입니다. 그는 한평생 복을 추구한 대표자올시다. 어쩌면 복 받을 수 없는 사람으로서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도저히 복 받을 수 없는 못된 성격의 소유자였어요. 간사하고, 거짓말하고, 또 그런 사람이에요. 그러나 계속 다듬어지고, 다듬어지고 다듬어지고 깨달아서 복된 자의 위치 올라가고 마침내 열두지파의 자손들에게 그 복을 물려주는 그런 사람이 되었습니다. 창세기 47장 9절에 보면 바로왕 앞에서 그가 일생을 이렇게 회고하고 있습니다. “나의 나그네의 길의 세월이 백삼십년입니다. 그러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백삼십세가 되어 인생을 돌아보니 허무해요. 뭔가 많이 잘못 살았어요.” 이제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면서 이렇게 고백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람마다 마음의 고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고향에 가기를 좋아합니다. 그런데 고향은 마음에 두는 게 좋은 겁니다. 제가 바로 몇 달 전에 52년만에 처음으로 고향을 가보았습니다. 한바퀴 빙 돌아보았습니다. 옛날 우리 살던 집, 무너지고 다시 지었죠. 예배당이 있던 곳, 내가 다니던 국민학교, 그 벌거벗고 목욕하던 그 냇가……다 한바퀴씩 돌면서 여러 시간동안 뭔가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결론은 뭔지 아십니까? 안 보았으면 좋을 뻔했어요. 너무 실망했어요. 그럴 수가 없어요. 제가 어렸을 때 교회 다니면서 내 생각에는 지금도 생각할때 아마 한 15분내지 20분 걸어야 교회 간다……그 정도로 생각했어요. 그렇게 멀다고 느껴졌어요. 이번에 가보니깐 5분도 안돼요. 바로 거기더라구요. 왜 그렇게 작아졌는지 내가 커졌는지 고향이 작아졌는지 모르겠습니다.
에스키모족은 고향을 생각하게 되면 반드시 넓은 눈이 덮인 산을 생각합니다. 설원, 설원을 생각하고 모닥불을 떠올린다고 합니다. 중국사람들은 고향 하면은 소나무와 대나무 숲을 생각하고 그리고 매화꽃이 있는 풍경을 생각한답니다. 미국사람들은 넓은 호수와 언덕 위에 지은 집 통나무집을 생각합니다. 우리 한국 사람들은 동구 밖에 있는 미루나무와 초가집을 생각합니다. 마음의 고향입니다. 그러나 정말 마음의 고향은 그러한, 그러한 환경이나 물질이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아버지와 어머니 할아버지 할머니라고 하는 가정입니다.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여러분은 아버지 어머니에 대한 어떤 인상을 가지고 있습니까? 어머니하면 무엇이 생각이 납니까? 아버지하면 첫째로 떠오르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이 마음의 고향입니다. 나이 들면 들수록 옛날 생각이 많이 납니다. 여러분을 무엇을 생각하고 있습니까?
세계를 주도하는 CEO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CEO, Chief Executive Officer라구요. 이런 지도자들을 50명을 선발 연구해 보니까, 그들에게 큰 공통점이 하나 있어요. 그것은 어렸을 적 기억이 다 좋은 사람들이에요. 어렸을 때에 살아왔던 마음의 고향이 아름다운 사람들이에요. 그것이 오늘 CEO가 되게 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반대로 아주 어렸을 적 기억이 나빠요. 술 먹고 들어와서 어머니를 때리는 아버지, 그리고 죽여라 살려라 하면서 아버지와 싸우는 그 어머니. 이것 밖에는 마음속에 없다이거예요. 이 사람이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이걸 생각해야 합니다. 마음이 고향, 그것이 바로 한평생 우리를 인도화하고 우리의 가치관이 되고 세계관이 되는 것이올시다. 복은 받은 복이 있습니다. 상속받은 복이 있고 내가 얻어야 하는 복이 있습니다. 상속받은 복은 있는데 내가 그것을 깨닫고 감당하지 못하면 내복이 될 수가 없어요. 그런고로 받아들이는 복이 있고, 그 다음에는 물려주는 복이 있습니다.
야곱의 할아버지 아브라함, 아버지 이삭, 그로부터 야곱은 많은 복을 물려받았습니다. 그러나 아시는데로 이것은 양도 아니고 소도 아니고 물질도 아니고 집도 아닙니다. 그러나 분명히 말합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그 믿음을 물려받은 것이올시다. 그런데 말입니다. 한평생 복을 배우고 깨닫고 그리고 물려주어야 했습니다. 얼마 전에 미국에서 ‘갑부들의 아름다운 반란’, 아름다운 반란이 있었습니다. 상속세 폐지에 반대하는 시위였습니다. 백만장자들이 모여서 말입니다. 이거 상상할 수 없잖아요? 남이 그런다면 몰라도 본인들이 백만장자 자신들이 상속세를 폐지하는 것을 반대했어요. 우리는 어떻게든지 탈세해서 자식들에게 상속시키느라고 몸부림치다가 망신들 하는데, 안 그렇습니까? 이 사람들은 상속세를 물리겠다, 그것을 그만두자고 하는데, 아니요! 세금을 많이 물려야 됩니다. 이걸 본인들이 반대했어요. 참 아름다운 반란이 아닙니까? 부시대통령이 선거공약으로 내걸었던 상속세 폐지를 추천할 때 2월 달부터 그들은 억만장자 120명이 모여서 상속세 폐지는 않됩니다. 이렇게 주장을 하고 나섰습니다. 꿈같은 얘기죠?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의 자식이라 하여서 자동적으로 금메달리스트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학자의 자식이라고 그대로 학자가 되는 것이 아니요. 재벌의 자식이라고 재벌이 되는 게 아니라 이 말이야. 왜요? 부가 절제 없이 세습되면 나라가 망하기 때문이요. 자본주의의 가장 장점인 기회와 경쟁이 없어진다면 미국산업은 무너질거라고 예언합니다. 그런고로 안된다는 거요. 기회, 기회는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져야지, 돈 있는 집 자식이라고 그냥 주어져서는 안된다는 거야. 그러면 회사도 나라도 세상도 다 망한다는 거예요. 이 얼마나 놀랍고 강한 웅변입니까? 자 아브라함의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 큰 믿음입니다. 위대한 믿음입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사람입니다. 그 믿음을 유산으로 야곱이 물려받았습니다. 이제 물려받았으면 이것을 지켜가야 할 거 아닙니까? 그 물려받은 복을 받을 만한 사람으로 키워져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그는 복을 받았습니다. 분명히 아버지 이삭으로부터 복을 받았어요. 축복기도를 받았어요. 그런데 복 받자마자 집에서 쫓겨납니다. 그 어머니의 사랑을 받으며 살던 단란한 집에서 낯선 곳으로 추방당합니다. 본래 그는 내성적인 사람이고, 집안에 사람이었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야성적인 사람이 아니에요. 그런데 들로 쫓겨나서 생전 가보지 않은 낯설은 곳으로 그는 혼자서 여행을 하게 됩니다. 이제 어디로 가야하며 누구를 만나고 저가 나를 반겨 줄 것인지 안해줄 것인지 내 운명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답답하고 괴로운 중에 그는 60km를 가다가 이제 돌 베개하고, 해가져서 광야에서 잠을 잡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십니다. 여기서 그는 깨닫게 됩니다. 조상의 하나님의 내 하나님이라고, 아브라함의 하나님의 오늘은 내 하나님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을, 그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하나님과의 관계를 물려받았습니다. 분명히 십계명에서 말합니다. 너희가 내 계명을 지키면 네 복을 수천대까지 이루게 할 것이다. 계명을 범하면 3, 4대까지 벌을 내리겠다. 그것이 성경이 주시는 말씀이요. 복은 물려받아요. 분명히 물려받는데, 그러나 이 물려받은 것을 오늘 이 시간 확인하고 아브라함의 하나님을 내 하나님으로 깨닫게 됩니다. 그뿐입니까?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실 때, ‘이 땅을 너와 네 후손에게 주리라’하시던 그 하나님이 나타나서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주리라’ 꼭 같이 말씀하십니다. 복이 그대로 이어집니다. ‘또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마. 어디로 가든지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시듯이 오늘 야곱에게 같은 말씀을 합니다. 야곱은 아브라함만 못합니다. 아브라함만큼 훌륭한 사람도 아닙니다. 아직은 아닙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것을 그대로 그 후손에게도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반드시 다시 이 자리로 돌아오게 하리라. 네가 낯선 땅 하란으로 가고 있지마는 너 누운 땅 바로 이 자리로 내가 돌아오게 하리라.’ 보장해 주십니다. 야곱은 이에 감격합니다. 그런고로 하나님이 여기 계신 것을 내가 몰랐구나, 하늘의 문이로다. 그리고 기름을 붓고 하나님 앞에 경배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제 그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을 바로 내 하나님으로 그렇게 상속받는 시간입니다. 그래서 복된 자의 정체의식을 바로 세우게 됩니다.
듀크(Duke)대학의 기독교교육학자인 그는 존 웨스터 오프(John Westerhoff)라고 하는 분이 계십니다. 웨스터 오프(John Westerhoff), 그의 책 가운데에 “Bring up Children in the Christian Faith”라고 하는 책이 있습니다. 기독교 신앙 안에서 자녀를 양육하라. 자, 그런데 이 책 중에 이런 신앙에 단계를 설명을 합니다. 첫째 단계는 귀속적 신앙이라는 것이죠. Affiliative Faith. 귀속적 신앙,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어렸을 때에 자기가 독립적으로 믿음을 가지는 게 아니에요. 말을 배울 때 벌써 하나님을 가르칩니다. 기도를 가르칩니다. 성경을 가르칩니다. 성경 읽는 법을 가르칩니다. 예배하는 법을 가르칩니다. 귀속된 거예요. 그런고로 마음에 어렸을 때에 이런 교육을 받았다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지 몰라요. 얼마나 큰 복 입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저는 어머니가 늘 성경을 읽었어요. 나를 위해서만 읽은 건 아닙니다. 제 옆에서 성경을 내 잠잘 때 읽었어요. 그때 들은 성경이 내가 읽은 성경 보다 더 많은 것 같아요. 얼마나 깊이깊이 기억이 됐는지 또 읽다 말고 너 이거 무슨 소린지 알겠냐하고 묻고 말씀도 해주시는데, 귀속적 신앙이 있어요.
제가 잊을 수 없는 기억이 있습니다. 국민학교 다닐 때에 아마 한 모름지기 3, 4학년 같은데 제가 장난이 심했거든요. 어쨋든 그때는 아동예배, 아이들의 예배가 있고, 또 어른 예배가 있습니다. 아이들의 예배는 9시, 어른예배는 11시인데, 그런데 우리 어머니는 제게 요구하기를 아이들의 예배도 참석하고 어른예배도 참석하라고.. 다들 어른인데 나 하나만 아이.. 거기에 참석을 했어요. 어머니에게 효도하는 마음으로 꼭 참석을 했어요. 무슨 소린인지는 모르지만….그랬는데 어느 날 날씨가 좋은 겨울날인데 아주 그 스케이트 타기에 좋은날이에요. 제가 스케이트를 무척 잘 타고 좋아했거든요. 그 스케이트장이라는 건 뭐 방안에 있는 게 아니고 들판이에요 노상. 들판이 전부다 스케이트장예요. 거기에 이젠 가고 싶어 못 견디겠는데, 어린아이예배만 보고 아동예배를 보고 빠져나가서 거기엘 갔어요. 아 그랬는데, 그 다음엔 날씨가 좋더니 또 눈이 오기 시작을 합니다. 어쨌든, 저희 어머니가 어떻게 어떻게 수소문해 가지고 거기까지 찾아왔어요. 지금도 기억합니다. 선희야! 하고 소리 지릅니다. 그래 어머니 앞에 갔더니 “어째서 여기 왔느냐.” “아, 나는 아이예배, 아동예배는 다 봤는데요.” “어른 예배도 참석해야지. 어떻게 주일을 지켜야되냐. 가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붙들고 가요. 교회 들어가니깐 3장 찬송 부르고 예배 끝났어요. 그래도 그 기억은 너무너무 제게 큰 인상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말입니다. 제가 미국 가서 공부할 때에 부족한 영어를 가지고 공부하느라고 얼마나 좌우간 열심히 공부를 하는데, 주일날이 되면 뭐 그 숙제도 많고 책도 읽을 것도 많은데, 바쁘지만은 주일날만은 절대로 공부를 하지 못했습니다. 그 어머니의 “주일날은 안 된다.”그거야. “주일을 거룩히 지켜라.” 공부 안 했어요. 여러분 주일날 아이들보고 “공부해라 야!” 그딴 소리하지 마세요. 아이들은 공부가 일이거든요. 자, 우리는 지금 자녀들에게 무엇을 주고 있습니까? 이게 귀속적 신앙이라는 거요. 이 단계가 있고 고등학교에서 청년까지 요걸 하면서는 그때는 탐구적 신앙이 있어요. 한번쯤 반항해 봅니다. Searching Faith. 이 생각 저 생각 독립되기 위해서 신앙의 독립을 위하여 방황하는 시간이 있습니다. 경험도 많이 하게 됩니다. 그 다음에는 Mature Faith. 성숙한 신앙이 도달합니다. 이건 내 신앙입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이건 내 하나님입니다. 이제부터. 이게 성숙한 신앙입니다. 하늘의 문이 열립니다. 야곱은 큰 시련을 통하여 많은 환난과 고통과 역경과 배반과 배신과 이 사건을 통해서 점점, 점점 성숙해 갑니다. 나의 하나님을 확실하게 알게 되고 섬기게 되고, 또 그 하나님을 다시 열두지파에게 물려줍니다. 거기서 요셉이 나오고 모세가 나오는 겁니다. 여러분, 내가 물려받은 상속된 믿음이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내가 물려주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다 그 누구의 자손입니다. 그러나 머지 않아 또 그 누구의 조상이 됩니다. 어떤 복을 물려받았는지는 이제 묻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후손들은 장차 여러분 아버지 어머니를 어떻게 기억할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여러분은 지금 무엇을 물려주고 있습니까? 그까짓 집 한 채? 그 몇 억원? 그게 무슨 대수요? 잘못하면 자식 망쳐요. 그게 아니라 아주 귀한 아브라함의 하나님 그리고 하나님께 대한 신앙적인 바른 자세 바른 가치관 바른 행복관을 물려주어요. 거룩한 유산을 물려주어 갈 때 이 땅이, 이민족이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이렇게 귀한 믿음의 유산을 주시사, 아브라함의 하나님을 우리 하나님으로 섬기게 하시고 오늘 예배하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간구하오니, 물려받은 신앙도 소중하지마는 그 물려받은 신앙을 받아들이고 수용할만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키워지게 하시고 또 소중한 믿음의 유산을 자손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그런 가정들이 되고 주의 자녀들이 되고, 가문들이 되어서 우리 가정과 이 민족 앞에 하나님의 큰 축복이 임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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