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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후 시대의 교회

by 【고동엽】 2023. 1. 22.

사도교부(使徒敎父)

 

사도후시대(使徒後時代)는 일반적으로 2세기 전반을 지칭하고 있다. 이는 계시의 사도시대가 끝나고 사도들로부터 물려받은 신앙을 후세대에 전해준 특징을 지닌 시대로서 사도들과 후대 교회 사이에 다리를 놓아준 성전(聖傳)이 비로소 시작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시대의 저술가 그룹을 '사도교부'라고 부르고 여기서 '사도교부시대'라는 명칭도 나왔다. 이들은 사도들과 면식(面識)이 있는 제자들이거나 문하생들, 혹은 사도들과 개인적인 친교를 없었다고 하라라도 사도들의 전통을 이어받은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신약성서의 저자들은 이 그룹에 속하지 않는다.

사도 교부로서 로마의 클레멘스,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 뽈리까르뽀, 헤르마스, 빠삐아스 등을 들 수 있다. 이들 이외에 연대적으로나 내용에 있어서 사도시대에 밀접한 저서들의 저자들도 사도교부에서 다루고 있다. 예컨대 '디오네토에게 보낸 편지', '바르나바의 편지', '디다케', '코린토 인들에게 보낸 편지'등의 저자들이다.

이러한 사도교부들의 저서들은 초기 교회의 사상, 관습, 생활을 알아보는 데에 더없이 귀중한 가치를 지닌 문헌들이다. 이 문헌들은 처음에 카리스마적 정신으로 지배되었던 사도들의 공동체가 어떻게 제도적 성격을 띤 교회가 되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들은 또한 신약성서의 정경(正經)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도 밝혀준다. 이 저서들 중에 어떤 것은 처음에는 신약성서로 간주되어 계시된 신앙의 정경으로 취급되거나 전례에 사용되기도 하였으나 사도교부들 자신에 의해서 영감(靈感)이란 개념이 규정된 후에는 신약성서와 분리되었다.


 

 

교회전례(敎會典禮)

 

 

사도후시대의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아직도 유대교의 배경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따라서 교회관습은 유대교적, 또는 유대인 그리스도교적인 색채를 띠고 있었다. 교회관습 중에서 가장 잘 알려진 것은 입교의식과 주일집회였다.

그리스도교 입교의식 : 세례를 위한 준비에 대해서 알려진 바는 별로 없지만 이는 매우 오래 전에 이루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세례준비에는 두 단계가 있었다. 우선 개종을 원하는 이는 교육을 받고, 다음에 그리스도교의 교리를 깨달아 믿고 신도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면 그는 준비기간으로 들어갔다. 여기서 교육은 교리교육과 윤리교육을 말한다. 교리교육의 내용은 창조주인 하느님, 그리스도와 그의 부활 및 구약 예언의 성취 등이었다. 이러한 교리교육은 바오로 사도의 서한이나 초기 교부들의 저서에 있는 옛 신조들을 요약한 것으로 이 신조들은 최초의 신경을 이루었고, 여기서 오늘날 우리의 사도신경이 발전되어 나온 것이다. 윤리교육은 하느님과 인간에 대한 사랑의 계명, 그리스도교 신도의 생활방법, 그리고 예루살렘 공의회에서 정한 법에 의한 규율 등을 내용으로 하고 있었다.

이러한 교육이 끝난 다음에는 세례예절이 있었다. 이 예절 이전에 세례 지원자들은 단식을 실천하였는데 이는 구마(驅魔)와 같은 결과를 내던 것으로 보인다. 단식 외에 안수(按手)가 있었고 곧 세례예절이 시작되었다. 이 예절은 간접적으로는 요르단 강에서의 세례, 직접적으로는 세자 요한의 세례, 최종적으로는 그리스도의 요르단 강에서의 세례와 연결되었다.

세례는 샘물에 세 번 침수함으로써 이루어졌는데 이는 천주성삼을 불러내는 것에 해당되는 것으로서 죄의 사함과 성령의 은혜를 갖고 오는 것이었다. 침수 후에 몇 가지 부수적 예절이 따랐다. 십자 모양으로 축성된 기름을 바르는 예절이 있었는데 이는 유대인 그리스도교 사상의 흔적으로 십자 표시는 본래 히브리어로 하느님 이름의 상징을 의미하였다. 이 예절은 세례 자체를 뜻할 만큼 매우 중요하였다. 그리고 흰옷을 입는 예절이 있었고, 동정자들에 한해서 나뭇잎으로 엮은 관을 쓰고, 세례수를 마시고 우유와 꿀을 먹는 예절 등도 있었다. 성서예식이 끝난 다음에는 세례 후의 교육이 있었다. 세례는 보통은 빠스카 전야에 있었기 때문에 이 교육은 빠스카 설교의 형식을 갖고 있었다. 이는 유대인들이 에집트에서 나올 때의 그들의 해방에 대한 이야기(haggadah)를 대체한 것이다. 이 설교 후에는 회식(會食)이 따랐는데 이는 유대교의 빠스카 식사를 대체한 것이다. 여기에는 세 번의 감사기도, 즉 포도주에 대한 기도, 빵에 대한 기도, 그리고 식사 후의 기도가 있었다.

성찬례의 거행으로 빠스카 전야는 끝난다. 우리는 이 시대의 성찬전례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문헌을 갖고 있지 못하다. 이는 그리스도에 의해서 빠스카 식사중에 세워진 것으로 보여진다. 빵과 포도주에 대한 축성의 기도는 유대교의 축복 형식에서 취한 것으로 성찬례는 유대교 예절에서 온 것으로 보인다.

주일집회 : 신약성서와 사도후시대의 저서들은 주일집회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이 저서들에 의하면 신도들은 주의 날(주일) 동이 트기 전에 그리스도를 찬미하고 빵을 나누기 위해 함께 모여 감사하였다.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는 안식일 의식 거행을 나무라면서 주일을 준수할 것을 적극 옹호하였다. 그리고 이 주일집회 이전에 고백 또는 참회예절이 있었다. 주일집회는 복음서와, 바오로 사도나 클레멘스 등의 편지들과 같은 저서들의 낭독으로 시작되었고 이러한 예전적 독서 후에 설교가 있었다. 교회의 중요한 지향을 위한 기도가 있은 다음에 성찬기도가 신도들의 아멘이란 답으로 끝났다.

주일에 대한 명칭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이는 그 기원을 우리에게 암시하여 주고 있다. 첫째로 가장 오래된 것은 「디다케」에서 발견되는 '주의 날'이다. 이 단어는 처음에 그리스도교의 부활절을 의미하였다. 둘째로 주일은 '제8일'로 표현되기도 하였다. 신도들은 유대교의 제7일을 지낸 후에 다음날 동이 틀 때까지 그들 고유의 예전을 거행하였는데 이는 유대인 그리스도교에서 기원하였다. 셋째로 천지창조와 그리스도의 부활과 연결시켜 '첫째 날'로 지칭되었다. 특히 그리스도의 부활은 매우 중요한 첫째 날이었기 때문에 모든 주일도 역시 첫째 날로 불리었다. 주일 이외에 수요일과 금요일은 그리스도교의 단식일이었고 많은 유대인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계속 안식일을 지키고 있었다.

유대교 축제일 : 유대인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유대교 축제일을 계속 지키고 있었다. 그러나 이 시대의 유대교 달력은 여러 가지가 있었고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사용한 달력도 이런 다양한 것 중의 하나였다. 더욱이 대부분의 그리스도교 축일은 유대교 축제일이 변형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리스도교 신도들이 지낸 유대교 축제일들은 그리스도교적 의미를 갖고 재현된 것이다.

교리(敎理)

 

사도후시대의 교리는 전례와 마찬가지로 아직 유대교의 사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이러한 유대인 그리스도교 신학은 구약성서 특히 창세기의 첫 부분(1-3장)의 여러 성구(聖句)에 대한 주해나 예언서, 주로 예레미아와 에제키엘의 단편적인 인용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유대계 그리스도교 신도들은 유대교의 저서들을 구독하고 있었고 또는 이 책들을 그리스도교적 의미로 부분적으로 개정하거나 첨부하였다. 예컨대 「12 성조의 성약서」, 「이사야의 승천」, 「요셉의 기도」, 「에녹 1, 2서」, 「에스드라 4서」 등은 일부는 유대교적, 일부는 그리스도교적 내용이다. 또한 그들은 묵시록들을 저술하였는데 이 저서들은 유대교의 묵시사상의 직접적 영향을 받은 것이다. 이 묵시록들 중에서 일부는 그리스도가 사도들에게 계시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예컨대 영지주의자들이 사용하였던 「베드로의 묵시록」, 「12 사도의 편지」, 「진리의 복음」, 「클레멘스의 설교」, 「야고보의 묵시록」등이다. 그리고 「요한의 묵시록」과 헤르마스의 「목자」역시 묵시문학에 속하며, 사도교부인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와 빠삐아스도 그리스도교의 묵시사상을 단편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이 묵시 저서들은 계시의 사실을 설정하려는 의도를 드러내고 있다. 묵시중에 천공이 열려 계시를 받는 이가 천계(天界)를 꿰뚫어 보면서 그곳에서 일어나는 일을 관조(觀照)하고 그 모습을 설명하는 메시지를 받음으로 천계의 비밀들을 밝힌다. 이러한 비밀들은 신, 천사, 사자(死者)들의 거처와 신이 천상 저서에 정하여 놓은 시기들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이런 비사(秘事)들을 아는 것을 그노시스(지식)라고 하였고 따라서 이는 무엇보다도 묵시적 지식을 의미하였다. 이상의 저서들은 유대인 그리스도교의 신학의 대표적인 주제들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 성삼에 대한 이론은 천사론을 표절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가장 사랑받는 자'라고 불리는 성자(聖子)는 '영광을 받는 천사'로서 여섯 대천사들의 지도자로 지칭된다. 헤르마스는 이 천사를 「요한의 묵시록」에서도 나오는 미카엘로 대체하였다. 성령은 가브리엘 천사의 형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이사야 예언서에 나오는 두 천사(세라핌)들은 성자와 성령의 재현으로 보고 있는데, 이는 유대인 그리스도교적 개념으로 4세기에 다시 예로니모에 의해서 제창된다. 그 밖에 성자는 구약성서에 나타나는 몇 가지 표현으로 지칭되고 있었고 이는 유대교의 이론적인 해석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그 중에 대표적인 명칭은 '이름'과 '율법' 등이다.

둘째, 그리스도의 신비가 역시 천사론과 관련하여 성자는 천사들이 머물고 있는 일곱 천국들을 거쳐서 천사의 형상으로 내려왔다가 같은 방법으로 승천하여 천계에서 천사들에게 흠숭을 받고 있다는 교리로 풀이되고 있다. 그러나 이 승천중에 천사들이 그리스도가 갖고 있는 인성(人性) 때문에 그를 알아보지 못하였다는 견해도 있다. 이런 견해는 신학적 의미가 첨부된 것이다. 즉 그리스도의 강생의 신비는 신이 자신은 천사보다 낮추었고, 승천의 신비는 인간이 천사보다 높이 들어올림을 받았다는 신학을 제시한다.

 

셋째, 그리스도께서 고성소에 내려갔다는 교리 역시 유대인 그리스도교의 신학의 주제 중의 하나이다. 이 교리는 구약성서 속에 나오는 의인의 구원 문제와 연결되는 것으로 보인다. 헤르마스는 사도들이 죽은 이들에게 성세를 베풀기 위해서 고성소에 내려갔다는 특이한 교리를 내세우고 있다. 이렇게 그리스도가 고성소에 내려갔다는 견해의 신학적 의미는 그리스도께서 죽음을 이기셨다는 데에 있다.

넷째, 교회관은 당시의 유대교에 기원하고 있는 몇 가지 상징을 사용하여 설명하고 있다. '농장', '배', '건물' 등이다. 그러나 가장 의미깊은 상징은 선재(先在)하는 교회이다. 이는 첫 창조물인 '노부인'의 상징, 물 위에 세워진 '건물'의 상징, 창세기 2장 24절에 대한 묵시적인 주해에 의한 '남자와 여자'의 상징 등이다.

마지막으로 종말론과 관련하여 그리스도의 재림(再臨)에 대한 기다림과 지상왕국의 건설에 대한 교리가 있었다. 이 종말론은 몇 가지 요소로 구성되어있다. 즉 그리스도의 재림, 죽은 의인들의 부활, 살아있는 성인들의 변형, 낙원생활을 하는 메시아의 천년왕국 등이다. 이러한 상징주의는 유대교에 기원을 두며, 유대계 그리스도교 신도들이 교리로 규정하였다.


 

신앙생활

 

그리스도가 그의 제자들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기도가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있다고 가르친 사상은 사도후시대에서 별로 영향력이 없었다. 그리스도교 신자의 기도는 유대인의 기도와 유사한 점을 많이 갖고 있었다. 물론 신도들은 아브라함, 이사악, 야곱의 하느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임을 알고 있었지만 그들은 이 구약의 신에게 기도를 바쳤다. 그리고 이 기도는 구약성서의 기도형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는 새로운 성격의 기도였다. 신도들은 예수 안에서 인간에게 부여된 새로운 생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성부(聖父)에게 기도하였다. 그들은 성부에게 찬미와 영광을 드리고 '아멘'으로서 감사하는 마음을 굳게 하였다. 로마의 클레멘스는 새로운 형태의 기도를 지적하고 있다. 즉 그리스도교 신도는 이 세상에 정의와 평화를, 가난한 이에게는 도움을, 통치자에게는 지혜를 신에게 청하는 기도를 드렸고 아울러 그리스도의 이름을 통해서 성부께 기도하였다. 그러나 성자께 바치는 기도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신도들은 그리스도에게도 기도하였다.

그리고 사도후시대의 신심은 그리스도 중심이었다. 그리스도의 뜻은 바로 신도들의 윤리생활의 규범이었다. 그의 계명은 신도들의 행동을 좌우하였고 성자 자신이 '법'이었다. 그리스도의 생활은 신도들이 따라야 할 표본이었고 그리스도를 본받음은 그리스도교 신심의 기본이 되었다. 이러한 생활의 가장 숭고한 증거는 순교에서 나타난다. 신도들은 그리스도의 뜻 뒤에는 성부의 원의가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표양을 따르는 이는 성부에게로 가고 성부 안에서 살게 된다. 이렇게 그리스도 안에서의 생활과 그리스도를 본받음은 모든 신도들이 추구해야 하는 이상(理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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