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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를 살피는 사람들

by 【고동엽】 2023. 1. 22.

고전 11:27-29

성찬식은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하셨던 최후의 만찬에서 유래했습니다. 최후의 만찬기사는 마태복음 26:17-29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잡히시던날 밤 제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에 있는 어느 다락방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저녁식사는 다른날 저녁식사와는 다른 것이었습니다.
마태복음 26:26을 보면 "떡을 떼어 주시며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몸이니라"고 하셨고, 27-28절을 보면 잔을 저희에게 나눠주시며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사함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누가복음 22:19을 보면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고 하셨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분부를 따라 제자들과 초대교회는 떡과 포도주를 나누며 주님의 고난과 죽으심, 교훈과 당부를 기리며 성찬식을 거행했습니다.
복음서와 고린도전서 11장에 나오는 성찬에 관한 기사가 주는 몇가지 교훈이 있습니다.

1. 성찬식은 주님의 고난과 죽으심을 생각하고 기념하는 것입니다.
"나를 기념하라. 이를 행하라"는 말씀의 뜻은 형식적 성찬식을 경계하는 것입니다. 떡을 들고 잔을 마실 때마다 나위해 십자가에 돌아가신 주님을 생각해야 합니다.
어느 잡지에 실린 글을 읽었습니다. 신장병으로 사경을 헤매는 아들을 위해 어머니가 자신의 신장을 이식해 주었습니다. 그 당시 어머니는 48세였고, 아들은 중학교 1학년이었습니다.
어머니의 신장을 이식받은 아들은 빠른 속도로 건강이 회복되어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진학했습니다. 그리고 대학을 졸업하고 군대도 다녀왔고 회사에 취직하고 결혼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어머니는 수술 후유증으로 건강이 악화돼 수술 후 3년 되던 해 세상을 떠났습니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던 날부터 하관식을 하는날까지 아들은 어머니 곁을 떠나지 않은 채 대성통곡을 했습니다. 아들의 통곡소리 속에는 "엄마, 나 때문에, 나 때문에∼"라는 절규가 섞여 있었습니다.
그는 어머니가 세상 떠난지 20년이 돼가지만 매 주말마다 어머니 묘소를 찾아가 꽃을 꽂아드리고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는 것입니다. "엄마, 감사해요. 저 때문에 생명을 버리신 엄마의 그 숭고한 사랑 이 생명 다하는 날까지 잊지 않고 살게요. 엄마 천국에서 만나요" 라고.
왜 우리가 성찬식을 거행합니까? 나 때문에 죽으셨고, 나는 주님 때문에 생명을 얻었고 영생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날 위해 죽으셨네 왜 날 사랑하나
갈보리 십자가 지시었네 왜 날 사랑하나
왜 날 사랑하나 왜 날 사랑하나
예수님 갈보리 가야했나 왜 날 사랑하나

손과 발 날 위해 찢기셨네 왜 날 사랑하나
고난을 당하여 구원했네 왜 날 사랑하나

내 대신 고통을 당하셨네 왜 날 사랑하나
죄 용서 받을 수 없었는데 왜 날 사랑하나
그렇습니다. 우리가 때를 따라 성찬상을 베풀고 떡과 잔으로 주님의 죽으심과 그 고통을 기념하는 것은 나 때문에 죽으셨고 나 때문에 고통을 당하셨기 때문입니다.

2. 그 곳엔 가룟 유다도 있었습니다.
마태복음 26:21을 보면 "너희 중에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고 했고, 23절을 보면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그가 나를 팔리라"고 했고, 24절을 보면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그가 바로 가룟 유다 였습니다. 주님은 유다에게 여러차례 뉘우치고 돌아설 수 있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기회를 외면 했습니다.
교회 공동체 안에는 베드로도 있고, 요한도 있고, 유다도 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 면전에서 예수를 모른다고 세 번씩이나 저주하며 부인했습니다. 철면피한 죄를 범한 것입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를 팔아 넘길 흉계를 품은 채 시침을 떼고 만찬석에 앉아 있었습니다. 죄질로 따지면 별차이가 없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회개했고, 유다는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베드로는 통곡했고, 유다는 슬금슬금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그 결과 베드로는 살았고, 유다는 죽었습니다. 베드로는 하나님이 종으로 쓰셨고, 유다는 버렸습니다.
누구라도 베드로나 유다처럼 잘못을 범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누구라도 베드로처럼 용서받을 수도 있고, 유다처럼 버림받을 수도 있습니다. 베드로가 되렵니까? 유다가 되렵니까?

3. 성찬식은 교제의 현장입니다.
그날 최후의 만찬은 이 세상에서 갖는 선생님과 제자간의 마지막 교제의 시간이 었습니다. 그날 그곳은 하나님과 인간, 스승과 제자, 구속자와 죄인, 사랑하는 분과 배신자가 함께 둘러 앉아 떡을 떼며 잔을 나누는 코이노니아의 현장이었습니다.
흔히 우리는 친한 사람끼리, 또래끼리, 동창이나 동향이나 동기끼리 모여 교제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세계인 교회는 그럴 수가 없습니다,
교회 안에서는 동향을 따지고, 동창을 따질 수가 없습니다. 서울시내 모교회는 함경도와 경상도가 싸운다고 합니다. 서울시내 모 교회는 연세대와 고려대가 싸운다고 합니다. 어떤 교회는 민주당과 한나라당으로 패를 갈라 싸운다고 합니다. 교회는 그러면 안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모든 벽을 허물었습니다. 하나님과 인간사이의 벽을 허물었고, 사람과 사람사이의 벽을 허물어 버렸습니다. 그리하여 동서남북을 가로지르는 십자가 다리를 건설하신 것입니다.
교회는 특별한 조직이 위세를 떨치면 안됩니다. 모든 사람이 성찬상을 중심으로 떡을 나누고 잔을 나눠야 합니다.
초대교회의 경우는 모여 예배드릴 때마다 성찬식을 거행했습니다. 그리고 성찬식을 거행하면서 성도들이 함께 모여 공동식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공동식사 시간이 되면 부자는 부자끼리, 가난한 사람은 가난한 사람끼리 자리를 따로 하기 시작했습니다. 친한 사람끼리 모여 히히낙락하는가 하면 가난한 사람은 소외시켰습니다.
결국 성찬식과 함께 한 공동식사는 교회안에 차별과 파벌의 원인제공을 하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그것을 경계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1:22을 보면 "너희가 하나님의 교회를 업신여기고 빈궁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느냐 너희가 먹고 마실 집이 없느냐"라고 책망했습니다.
우리는 교회안에서 주님과의 교제를 가로막고 형제와의 교제를 가로막는 모든 부정적 원인과 요소들을 제거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잘산다고 교만하지 말고, 많이 가졌다고 허세를 부리지 않아야 합니다.
날마다 주님의 성찬상에 둘러앉아 있는 자세로 살아야 합니다.

4. 자기를 살펴야 합니다.
27절을 보면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치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가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초대교회 교부였던 크리소스톰은 회개하지 않고 성찬을 먹는 것이 합당치 않게 먹고 마시는 것이라고 했고, 벵겔은 자기 성찰 없이 먹고 마시는 것이라고 했고, 앨포드는 "주의 죽으심에 대한 올바른 이해나 믿음없이 먹고 마시는 것이라"고 해석했습니다.
28절을 보면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라고 했습니다.
성찬식은 먹고 마시고 즐기는 만찬이나 회식이 아닙니다. 자기를 살피고 주를 생각하며 먹고 마시는 거룩한 예식인 것입니다. 배부르게 먹고 취하도록 마시는 것은 보통식사인 것입니다.
28절의 "자기를 살피고"라는 말씀은 "자기 죄를 회개하고, 자기를 다듬고" 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29절의 "주의 몸을 분변하라"는 말씀은 주님의 희생과 그 고통을 깊이 이해하라는 것입니다.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고 했고, 바울은 "너 자신을 살피라"고 했습니다.
부지런히 남을 살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허물을 살피고, 눈치를 살피고, 약점을 살피지만 정작 자신은 살피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본문은 말씀합니다. "너 자신을 살피라"고.

5. 주님 오실 때까지 계속해야 합니다.
26절을 보면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주님이 재림하시면 성찬식이 끝납니다. 왜냐하면 어린양 예수와 함께하는 혼인잔치가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천국에서는 먹고 마실 필요가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성찬식을 계속하는 것입니다.

오실 때까지 우리는 주님을 생각해야 합니다. 주님의 십자가를 전해야 합니다. 주님 뵙는날까지 사랑하고 교제하고 섬겨야 합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살피고 주님의 구원을 증거해야 합니다.

"자기를 살피고" 아멘.  

출처/박종순 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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