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04월 16일] 제 3의 신앙고백 (요 21:5~17) - 곽선희 목사
https://www.youtube.com/watch?v=PliSDKe2EgA
🙏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요한복음 21장 5-17절)
말씀 봉독 및 설교 (요한복음 21:5-17 중심)
오늘 아침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봉독하겠습니다. 신약 성경 요한복음 21장 5절로 17절에 있는 말씀 되겠습니다. 신약성경 184면입니다. 184면 요한복음 21장 5절부터 봉독하게 됩니다. 이 계시의 말씀을 봉독할 때에 다 함께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대답하되 "없나이다." 이르시되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 하시니 이에 던지니 물고기가 많아 그들이 그물을 들 수 없더라.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베드로에게 이르되 "주님이시라" 하니 시몬 베드로가 벗고 있다가 주님이라 하는 말을 듣고 겉옷을 두른 후에 바다로 뛰어내리더라. 다른 제자들은 육지에서 거리가 불과 한 오십 한 길(약 쉰 길)쯤 되는 작은 배를 타고 물고기 든 그물을 끌고 와서 육지에 올라보니 숯불이 있는데 그 위에 생선이 놓여 있고 떡도 있더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지금 잡은 생선을 조금 가져오라" 하시니 시몬 베드로가 올라가서 그물을 육지에 끌어올리니 가득히 찬 큰 물고기가 백쉰세 마리라. 이같이 많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아니하였더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조반을 먹어라" 하시니 제자들이 주님이신 줄 아는 고로 "당신이 누구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 예수께서 가셔서 떡을 가져다가 그들에게 주시고 생선도 그와 같이 하시니라. 이것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 세 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이라.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이 사람들보다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시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또 두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시되 "주님, 그러하오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양을 치라" 하시고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심으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
여러분, 다 함께 한 번 더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누구겠습니까? 나를 비롯해서 모든 사람을 놓고 한 번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 제 생각에는 다섯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뭐니 뭐니 해도 건강해야 행복이 행복될 수 있습니다. 축복이 축복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축복 중에 가장 근본은 건강입니다. 여러분, 지금도 건강하니까 여기 나오지 않았어요? 이 자리에 나와 예배드리는 것도 사실 건강이 기본이거든요. 그렇지 않습니까? 몸도 정신도 마음도 그렇게 해야겠다. 이게 첫째 축복이고요.
- 할 일이 있는 사람입니다. 할 일이 없는 사람은 용도 처분된 겁니다. 존재할 이유가 없거든요. 일이 있어야죠. 일거리를 찾아야 돼요. 그래서 무엇이라도 좋아요. 어디서 무슨 궂은일을 하더라도 일이 있어야 됩니다. 일이 있으면 그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 자기가 하는 일에 의미를 알고 있어야 됩니다. 의미 없는 일, 무의미한 일에 만일에 자기의 마음과 몸을 투자하고 산다면 그 사람은 허무주의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일의 의미, 특별히 의미의 궁극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영원한 하나님의 뜻과 어떻게 연결이 되어 있나. 그는 의미 있는 일,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거룩한 소명에 의해서 충만한 하루하루가 의미가 있는 그런 의미 있는 생활을 사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 자기 진실을 믿어주는 사람이 주변에 있는 사람입니다. 주변에 있는 사람이 다 나를 믿어 줍니다. 세상에 제일 무서운 건 의심입니다. 그러니까 의처증 환자하고 사는 사람, 이건 미칠 지경이죠. 의부증 환자하고 사는 사람. 여러분, 주변에 있는 사람이 다 나를 의심한다고 한번 상상해 보세요. 이렇게 불안할 수가 없어요. 이건 참으로 그런고로 자기 진실을, 내 중심에 있는, 하나님과 나만이 아는 진실을 믿어주는 사람이 옆에 있다? 행복한 사람이고요.
- 뭐니 뭐니 해도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항상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신다, 오늘도 사랑하신다, 이 사건 저 사건 전부 하나님의 사랑의 증거다, 사랑의 표징이다, 사랑의 표본이다! 항상 사랑을 확증하면서 느끼면서 감격하면서 그런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베드로의 세 가지 고백
어떤 날 예수님 갈릴리 호숫가에 나타나셨습니다. 베드로와 요한, 그 제자들이 갈릴리 호수에서 밤새도록 그물을 던졌는데 한 마리도 못 잡았습니다. 이 물고기가 떼를 지어 다니기 때문에 이걸 바로 만나면 많이 잡을 수도 있지만 못 잡을 때는 한 마리도 못 잡는 거예요. 이렇게 아주 피곤하게 아침을 맞았습니다. 그럴 때에 예수님께서 그 호숫가에 나타나서 어부인들에게 말했습니다. 상상해 보세요. 예수님은 목수입니다. 여기서 물고기 잡는 사람들은 한 평생 이 호수에서 물고기를 잡은 전문적인 어부입니다. 그런데 목수가 어부에게 말합니다. "깊은 데 가서 그물을 던져라." 이건 말이 안 되는 겁니다. 자기들의 생각으로는 전혀 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하는 말이 아주 묘합니다. "밤새껏 수고해서 잡은 것이 없습니다마는 말씀하시니 그물을 내리리이다." 거기에다가 괄호하고 한 줄 넣고 싶어요. '못 잡을 건 뻔하지만 말씀하시니 모처럼 하는 말이니까 내가 순종하겠습니다. 못 잡을 줄 알고.' 이건 못 잡을 건 뻔한 건데 그리고 빈 그물을 가지고 '보라고요. 이렇다구요' 이러려고 했던 것 같은데 가득 잡았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얼마나 놀랐으면 베드로가 말하겠습니까?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여기서 말하는 죄인은 도덕적인 사회적인 그런 죄를 말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불신(不信) 죄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실 때 "깊은 데 가서 그물을 던져라" 할 때 그때 벌써 "어이구, 감사합니다. 주여, 이제는 만선입니다." 그랬어야 될 건데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믿지 아니한 죄, 불신한 죄를 이렇게 고하고 있습니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의심 많은 죄인입니다."
예수님 아무 설명을 하지 않고 넘치는 은혜로 그를 감싸고 말씀하십니다. "네가 사람 낚는 어부가 되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깊이 생각해 보십시다. 이 일 후에 베드로는 예수를 따라다니면서 많은 이적을 경험합니다. 오천 명을 먹이는 일도 보았고, 또 물 위로 걸어오라 할 때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물 위로 걸어가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런 경험도 있습니다. 그 무서운 풍랑을 향해서 "고요하라" 할 때 풍랑이 고요해지는 이런 놀라운 경험도 했습니다. 예수님이 모든 사건을 통해서 계시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이 누구냐 하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이 모든 사건을 통해서 예수님을 알아보기 시작합니다. 능력의 사람, 권능의 사람, 말씀의 사람,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 조금씩 조금씩 예수님에 대해서 알기 시작합니다. 그가 누구냐 하는 것을, 그가 무엇을 하고 계시는가(what and who). 이 사이에서 그는 what에서 시작해서 who, 그가 누구냐 하는 것을 조금 조금 알기 시작합니다.
마태복음 16장에 마침내 그 클라이맥스에 옵니다. 예수님 베드로에게 묻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누구. 무엇이 아닙니다. 누구. 그때 베드로가 고백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라고 고백을 합니다.
1. 믿음의 고백
이 고백적 신앙,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베드로의 마음속에 아직도 의심이 많습니다. 풀리지 않는 일이 많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은 "당신은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라고 고백합니다. 이건 고백입니다. 확신이 아닙니다. 이건 지식이 아닙니다. 이건 신학의 세계가 아닙니다. 이건 고백의 세계입니다. 주님을 만나면서 주가 누구인가를 고백하고 있습니다. 대단히 중요한 시간입니다. 이 confession(고백)이란 또 모르는 것이 많아요. 의심도 많아요. 뭐 이해할 수 없는 세계가 많아요. 그러나 예수님을 바라보는 순간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라고 고백합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말씀합니다. 마태복음 16장 17절에서 말합니다. "네가 복이 있다. 이것을 알게 한 것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니라."
베드로가 신앙을 고백했는데 예수님은 평가하십니다. "그건 네가 한 것이 아니고 네가 발견한 것이 아니고 네 지식이 아니고 네가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네게 믿음을 주어서 이 귀중한 사실을 알게 하시고 고백하게 하신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어쩌면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고 베드로에게 "야, 너 그동안 많이 배웠다. 그만하면 참 훌륭하다" 이렇게 칭찬했을 것 같은데 아니옵시다. 이건 칭찬이 아닙니다. "이건 네가 한 것이 아니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네게 알게 한 것이다." 이 고백적 신앙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고백합니다. 이것은 고백적입니다. 하나님께서 계시하시고 하나님께서 믿음을 주어서, 믿음을 주어서 그 사건을 나로 하여금 받아들이게 하십니다. 그 받아들이는, 받아들이는 그 자체가 그게 고백입니다. 이것을 confessional faith(고백적 신앙)입니다. 여러분, 완전히 알고 완전히 느끼고 완전히 감격하고 거기까지 기대하지 마세요. 큰 어려움 없습니다. 지금 오늘 여러분 이 자리에 고백적 신앙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거룩한 계시 역사 앞에, 내게 주신 역사 앞에 응답하면서 고백하고 나오는 것입니다. 믿음을 주십니다. 신앙적 고백입니다.
2. 소망의 고백
그런가 하면 조금 더 나가서 두 번째 고백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6장 60절에 가보면 예수님께서 오천 명을 먹이실 때, 오천 명을 먹이시는 기적을 행하시고 거기다가 설명을 붙입니다. "내 살은 먹어야 하고 내 피는 마셔야 하느니라. 나와 영생을 누리라." 이런 말씀을 하니까 아니, 예수님이 떡을 나누어 주면서 "내 피를 마셔야 하고 내 떡을 먹어야 한다." 이게 이해가 됩니까? 많은 사람들이 "모르겠다. 그 이상한 사람이구먼. 어떻게 자기 살을 먹어라, 자기 피를 마셔라 이 말이 되나?" 다 흩어지고 말았습니다. 떡을 먹기 위해서 오천 명이 먹었지만 이 사건 뒤에 많은 사람들은 다 흩어졌습니다. "알 수가 없다. 불가사의하다. 이해할 수가 없다. 그럴 것도 같고 알 것도 같고 모르고도 같고. 도대체가 어떻게 자기 살을 우리더러 먹으라 하느냐, 자기 피를 마셔야 한다거나. 이해가 안 된다." 전부가 흩어지고 맙니다. 그럴 때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입니다. "너희도 가려느냐? 너도 저 사람들처럼 의심이 많고 이해가 되지 않고 그만 가려느냐?" 고맙게도 참 예수님에게 이런 좋은 제자가 하나 있었어요. 베드로가 대답합니다. "영생의 말씀이 주께 계시매 내가 뉘게로 가오리까?" 예수님 마음이 흡족하셨을 것 같아요. '이 많은 사람 중에도 쓸 만한 거 하나 있구나.' 그런 생각하실 것 같아요. 안 그렇습니까? "영생의 말씀이 주께 계시매 내가 뉘게로 가오리까?"
신앙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시간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를 따를 때, 물고기를 잡을 때, 오천 명을 먹일 때, 엄청난 높은 또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고백할 때, 예수님께서 "천국 열쇠를 네게 준다" 할 때 베드로의 마음은 부풀었습니다. 높아졌습니다. 그리고 그 마음속에 뺄 수 없는 사건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메시아에 대한 **대망(待望)**입니다. Messiah expectation(메시아적 기대). "메시아가 와서 옛날 다윗 왕, 솔로몬 왕 때 같은 왕국을 다시 세울 것이라" 하고 기대했던 겁니다. 정치적인 기대입니다. 정치적인 왕국, 정치적인 새 나라, 메시아의 나라를 기다리고 "예수가 메시아가 되면 나는 바로 오른편에 내가 있다"라고 생각하고 여기까지 온 거거든요. 다시 말하면 세속적인 욕망, 정치적인 욕망, 경제적인 욕망, 세상적인 많은 욕망이 그를 사로잡고 있었어요.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의 하시는 일을 가만히 따라가면서 그 마음이 변합니다. 조금씩 조금씩 비워지면서 마침내 영생. 이 세상에서의 부귀영화가 아니고, 세상에서의 안정도 아니고, 번영, 평등, 자유 이런 얘기가 아니고 영생. "주께는 영생이 있다. 주의 말씀 속에는 영생의 약속이 있다." 이거 고백합니다. "영생의 말씀이 주께 계시매 내가 뉘게로 가오리까?" 아마도 예수님의 마음을 흡족하게 해 드렸을 거예요. 정말 이런 제자가 있다면 이야말로 행복한 시간이지요. "영생의 말씀이 주께 계시매 내가 뉘게로 가오리까?" 이제야말로 세상에서 떠나서 하늘나라를, 영생지향적 메시지, 영원지향적 메시지를 이 제자가 알기 시작한 것이에요. 그걸 고백하고 있는 거예요. 영생에 대한 소망. 소망적 고백입니다. 소망적 고백에 대해서 예수님 만족하십니다.
3. 사랑의 고백
오늘 세 번째 고백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다음에 제자들이 예수님을 만나 보았잖아요. 여러 차례 만났어요. 그런데 너무나도 어이가 없어요. 요한복음 21장에 보면 베드로가 하는 말이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도대체 무슨 소리예요, 지금 이게. 부활하신 예수를 만나 보았는데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옛날 직업으로 돌아가겠다는 거죠. "난 할 일이 없어. 예수님은 부활 승천하셨고."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또 다른 제자들이 "나도, 나도." 일곱 제자가 따라나섰습니다. 한심한 것들이에요. 어쨌든 물고기 잡으러 갔어요. 밤새껏 수고하고 오랜만에 하는 그 그물질이라서 한 마리도 못 잡았어요. 그리고 아침에 피곤해 가지고 있는 그 시간에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타났어요. "오른편에 그물을 던져라." 말씀대로 그물을 던졌더니 백쉰세 마리 큰 고기가 백쉰세 마리죠. 그물이 찢어질 줄 알았는데 찢어지지도 않더라. 백쉰세 마리를 잡았어요. 깜짝 놀라는 순간 베드로가 생각합니다. '저분은 예수님이다.' 그리고 겉옷을 걸치고 그냥 물속으로 뛰어 들어가서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께 인사를 드리게 됩니다.
그리고 왔더니 벌써 예수님께서 물고기를 다 불에다 구워서 아침 식사를 다 준비해 놓으셨어요. 제자들이 그 아침 식사를 받아먹으면서 감격하고 있는 순간에 또 한쪽으로는 부끄러워하고 있는 순간에, 다 생각이 복잡해요. 예수님 조용하게 말씀하십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예, 제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십니다." '아가페의 사랑을 하느냐?' '저는 그건 못하고요. 필리아의 사랑, 친구 지간의 사랑 같은 그런 정도의 사랑은 제가 하고 있습니다.' 두 번 물어봅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지 않습니까?" 세 번째는 다시 재차 묻습니다. '필리아의 사랑, 내가 아가페의 사랑을 못한다 하자. 그러면 친구 사랑은 하느냐?' 그때 베드로는 말합니다. "주님은 모르시는 것이 없으신데, 내가 주를 모른다고 한 일은 사실입니다. 내가 물고기 잡으러 간 것도 사실입니다. 부족한 것이 많지만은, 모르시는 것이 없으신 주님, 내가 부끄러운 마음으로 지금도 주님을 사랑한다는 것 아시지 않습니까?" 그때 예수님께서 말씀합니다. "내 양을 먹이라."
여러분, 굉장히 중요한 시간입니다. 이건 사랑의 고백입니다. 사랑이란 게 뭡니까? 사랑하고 나면 다 소화가 됩니다. 다 이해가 됩니다. 모든 의심이 다 사라집니다. 모든 두려움도 다 사라집니다. 진짜 사랑이 뭐겠습니까? 사도 바울이 말하는 것처럼 "너희 믿음과 재물 위에 내가 나를 관제로 드릴지라도 기뻐하리라. 내가 너희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너희들을 위해서 내가 피를 쏟아부어도 나는 기뻐하리라." 그거예요. 사랑이 뭡니까? 아주 아주 세상적인 말로 할까요? "이대로 죽어도 좋다." 그겁니다. 더 바랄 것이 하나도 없어요. "이대로 죽어도 좋다." 여기는 만족함이 있어요. 아무 의심도 없이 이 고백을 합니다.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제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제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고백합니다. 바로 이 시간에 예수님 말씀하십니다. "내 양을 먹이라." "이제부터 네가 내 대신에, 내가 구속한, 내가 십자가로 구속한 양을 네가 목이라."
믿음, 소망, 사랑. 여기 고백이 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믿음입니다. "영생의 말씀이 주께만 있습니다." 소망입니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겸손한 사랑의 응답입니다. 아주 겸손한 사랑. 여기는 어떤 욕망도 어떤 교만도 어떤 비판도 없습니다. 그저 감사한 마음 그대로 "내가 주를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주께서 나를 어디로 인도하시든지 그것을 기뻐할 겁니다. 주께서 어디로 나를 인도하시든지 그대로." 나를 완전한 사랑의 고백, 믿음의 고백, 소망의 고백, 사랑의 고백.
그때야 예수님 비로소 말씀하십니다. "내가 십자가로 구속한 저 소중한 양, 내가 내 양을 먹이라."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주님을 따른다고 하지만 늘 의심투성이요, 늘 허전함이 많고 의심도 많고 부족함도 많아서 갈수록 점점 더 하나님 앞에 가까이 가야 할 것만 부끄러운 마음으로, 두려운 마음으로, 때로 갈 밭을 향해 갔던 베드로처럼 미련하고 우둔한 저희들을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주여, 성령으로 함께하사 확실한 믿음을 고백하게 하시고, 확실한 영생의 소망을 고백하게 하시고, 그리고 확실한 아가페 사랑을 고백하면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온전한 하나님의 사람들 되도록 그 고백적 신앙에 충실하게 하시고, 헌신하게 하시고, 그리고 또 감사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 요약: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요한복음 21장 5-17절)
제공해주신 설교 내용('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요한복음 21:5-17 중심)을 말씀 봉독 및 설교,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 베드로의 세 가지 고백의 세 가지 주요 부분으로 나누어 구체적으로 요약했습니다.
1. 📖 말씀 봉독 및 설교 (요한복음 21:5-17 중심)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세 번째로 나타나신 사건을 다룹니다.
- 기적적인 만남: 밤새 고기를 잡지 못한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나타나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고 말씀하십니다. 순종하여 그물을 던지자 그물이 찢어지지 않을 정도로 큰 물고기 153마리를 잡는 기적을 체험합니다. (5-11절)
- 예수님의 준비: 제자들이 육지에 오르자 예수님은 이미 숯불과 그 위에 놓인 생선과 떡으로 아침 식사를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인 줄 알았기에 감히 묻지 못하고 함께 조반을 먹습니다. (9-14절)
- 베드로에게 던진 질문: 식사 후, 예수님은 시몬 베드로에게 세 번에 걸쳐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이 사람들보다 더 사랑하느냐?" (첫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두, 세 번째)라고 물으십니다. (15-17절)
- 베드로의 응답: 베드로는 세 번 모두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라고 대답하며, 특히 세 번째 질문에는 근심하며 주님께서 모든 것을 아신다고 고백합니다.
- 예수님의 당부: 예수님은 베드로의 사랑 고백에 대한 응답으로 "내 어린 양을 먹이라" (첫 번째), "내 양을 치라" (두 번째), "내 양을 먹이라" (세 번째)는 사명을 부여하십니다.
2. 😊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
설교자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의 다섯 가지 조건을 제시합니다.
| 조건 | 구체적인 내용 |
| 1.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사람 | 모든 축복의 근본이며, 건강해야 행복과 축복이 의미를 가질 수 있습니다. |
| 2. 할 일이 있는 사람 | 할 일이 없으면 존재 이유가 없고 용도 처분된 것과 같으며, 무엇이라도 일이 있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
| 3. 자기가 하는 일에 의미를 아는 사람 | 일의 의미, 특히 영원한 하나님의 뜻과 연결된 소명으로서의 의미를 알아야 허무주의에 빠지지 않고 행복할 수 있습니다. |
| 4. 자기 진실을 믿어주는 사람이 주변에 있는 사람 | 의심이 가장 무서우며, 하나님과 자기 자신만이 아는 중심의 진실을 믿어주는 사람이 옆에 있는 것은 큰 행복입니다. |
| 5.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사랑을 확증하는 사람 | 항상 하나님이 자신을 사랑하신다는 것을 느끼고, 모든 사건을 하나님의 사랑의 증거로 확신하며 감격하는 사람이 행복합니다. |
3. 🙏 베드로의 세 가지 고백
본문은 베드로의 신앙 성숙 과정을 세 가지 고백을 중심으로 설명합니다.
(1) 믿음의 고백 (Confessional Faith)
- 계기: 예수님께서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물으셨을 때. (마태복음 16장)
- 고백 내용: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 의미: 이것은 지식이나 확신이 아닌, 예수님을 만남으로 나오는 고백의 세계입니다. 예수님은 이 고백이 베드로 자신의 능력(지식/발견)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믿음을 주어 알게 하신 것임을 평가하십니다. 이는 **고백적 신앙(Confessional Faith)**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2) 소망의 고백 (Hopeful Confession)
- 계기: 예수님이 "내 살과 피를 먹고 마셔야 한다"는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을 하셨을 때 많은 제자가 떠나갔으나, 예수님이 "너희도 가려느냐"고 물으셨을 때. (요한복음 6장)
- 고백 내용: "영생의 말씀이 주께 계시매 내가 뉘게로 가오리까?"
- 의미: 베드로가 가졌던 **정치적/세속적 메시아 대망(待望)**과 욕망을 버리고, 오직 **영생(永生)**에 대한 소망, 영원지향적 메시지를 고백하며 예수님께 남겠다는 결단입니다.
(3) 사랑의 고백
- 계기: 부활하신 예수님과의 조반 후, 예수님께서 세 번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셨을 때. (요한복음 21장)
- 고백 내용: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 의미: 베드로가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했던 일, 다시 물고기 잡으러 갔던 미련함을 인정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을 사랑한다는 겸손하고 진실한 사랑의 응답입니다. 예수님의 질문은 **'아가페(Agape, 헌신적인 사랑)'**를 물으셨으나 베드로는 **'필리아(Philia, 친구 간의 사랑)'**를 고백하며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합니다. 이 사랑의 고백에 대한 응답으로 예수님은 **"내 양을 먹이라"**는 사명을 다시 부여하십니다.
🌟 결론: 믿음, 소망, 사랑의 고백
설교는 베드로의 세 가지 고백을 통해 온전한 신앙인의 모습을 제시하며 마무리됩니다.
- 믿음의 고백: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 소망의 고백: "영생의 말씀이 주께만 있습니다."
- 사랑의 고백: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이러한 고백적 신앙에 충실할 때, 예수님은 **"내가 십자가로 구속한 저 소중한 양, 내 양을 먹이라"**는 사명을 맡기신다는 메시지로 끝을 맺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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