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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 만족하십니까? 계4:9
이 글은 김복남 전도사님이 1997.06.19. 기업은행 기독선교회에서 간증한 내용입니다.
많은 은혜 되시기 바랍니다.
◑1. 만족하십니까?
제 간증은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병원에서 생활하면서, 환자와 더불어 살면서,
그들을 통해서 늘 제 자신을 바라보면서 몇 가지 느낀 점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하는 것입니다.
▲먼저 여러분에게 한 번 묻겠습니다. 여러분 지금 어떠하십니까? 행복하십니까?
여러분 지금 하나님이 여러분에 게 주신 직장에 만족하십니까?
여러분의 주위에 만족하십니까?
여러분의 가정에서 여러분의 아내에게 만족하십니까? 남편에게 만족하십니까?
자녀에게 만족하십니까? 여러분들의 만족의 기준은 어디에 있습니까?
저는 병원에서 일하면서 사람들을 통해서
믿는 사람이건/ 안 믿는 사람이건..
삶의 만족의 기준이, 참으로 상대적이다.. 라는 것을 느끼고 있어요.
제가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일하고 있는데,
저는 특별히 재활의학 쪽 환자와 직원들을 담당하고 있는 전도사입니다.
그래서 각 병원에서 직원들과 상담하고, 환자와 보호자와도 상담하고 있는데
직원들을 통해서 느끼는 것과, 환자들에게서 느끼는 것이 동일합니다.
(다 불평불만족 가운데 살면서, 남을 부러워하면서, 자기만족이 없습니다.)
①청소하는 직원들, 이 분들이 저를 만나면
"전도사님 병원에서 직원으로 일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저는 밥을 나르는 저 영양과의 아주머니들을 보면 너무 부러워요.
저 영양과에서 일할 수 있도록, 저를 취직 좀 시켜주십시오"라며
영양과에서 일하는 분들을 부러워하십니다.
②그러나 정작 그들이 부러워하는 영양과 직원들을 만나게 되면
또 다른 얘기를 하더군요.
"집에서도 허구헌 날 밥하구. 병원에 와서도 밥하구.
의사들이 아무리 치료 잘 하더라도, 우리가 먹이지 않으면 굶어 죽을 텐데..
그런데도 우리는, 우리가 하는 이 일이 힘들게만 여겨집니다.
다른 사람들은 시원한 곳에서 일하는데, 우리는 매일같이
이 더운 날에도, 뜨거운 밥솥 곁에서 일하고 있으니까요.."
그러면서 하시는 얘기가 "저렇게 에어컨 밑에서 일하는 사무직원들은 얼마나 좋겠습니까?
사무직원으로 일하면 좋을 것을 잘못했습니다."며 부러워하십니다.
③그런데 정작 제가 만난 사무직원들은 또 다른 얘기들을 합니다.
"전도사님, 병원에서 사무직 별 볼일 없습니다.
사무직으로 일할 것 같으면, 큰 기업체나 은행 같은데서 일해야 빛을 보는 거예요.
병원에서 일하려면 의료진으로 일해야 되는데, 우리는 직업을 잘못 선택한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의료진, 치료진을 무척이나 부러워하는 것입니다.
④그런데 치료사들은 또 다른 얘기를 하십니다.
"전도사님,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딴 놈이 번다'고
우리(재활치료사)는 죽어라고 환자들을 만지고 치료하는데
환자들이 고맙다는 얘기는 의사 선생님들에게 합디다.
이럴 줄 알았다면 공부 좀 더 열심히 해서 의사가 되는 건데요,
병원에서는 뭐니 뭐니 해도 의사가 최고입니다."
그래서 제가 '그렇구나 역시 병원에서는 의사가 최고로 존경받고 대접받는 구나'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⑤그런데 저와 친한 의사 선생님은 또 다른 얘기를 하십니다.
"전도사님, 의사 좋다는 얘기, 옛날 얘기입니다.
요즘 '환자 권리장전'인가 뭔가 만들어서, 환자들이 얼마나 똑똑한데요.
조금만 잘못하면 법정에서야 합니다.
저는 전도사님이 부럽습니다. 전도사님이 늘 웃으면서 기도해 주고요.
환자들이 나으니까, 우리에게 고맙다는 소리 안하고
전도사님이 기도해 줘서 낳았다고 전도사님께 고맙다고 얘기합디다.
우리는 낫지 않으면 욕먹는데, 전도사님은 안 나아도 할 말이 있지 않습니까?
'니 믿음이 없어서 안 나았다'라고 하면 되잖아요."
⑥그런 얘기를 하기에, 재활병원에서는 그러면 '내가 가장 부러운 대상이고 가장 행복한 사람인가?'
그렇게 생각해보니까, 나도 아니예요.
같이 근무하는 분은 목사니까, 저보다 더 좋은 대접을 받고
65세까지 정년인데 저는 전도사니까 60세까지 정년이고, 월급차이도 많고요.
이렇게 따지니, 목사님이 제일 부러운 사람이 되더군요.
⑦그래서 목사님께 ‘제일 행복하시지요?’ 물어보니까,
목사님께서는 "기관(병원)목회, 아무 소용이 없다"라며
"평생을 해도 교인 한 명 없지 않냐" 하소연하시며
일반 목회 하시는 분들을 부러워하시는 거예요.
이렇게 병원에서 일하시는 분들, 각종 직업을 가지신 분들 얘기를 들어보면
각기 남이 하는 일은 보람돼 보이고, 쉬워 보이고,
사람들에게 대접받는 것처럼 보이고,
자기 하는 일은 힘들고 어렵다는 생각을 하면서
다른 사람을 저울질하고 있었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2. 환자라도 감사해야 하는 이유
마찬가지로 환자들도 저에게 똑같은 얘기를 합니다.
제가 근무하는 재활병동에는 갖가지 장애를 가진 환자들이 많습니다.
①팔이 없는 환자들은 제게 이렇게 얘기합니다.
"전도사님, 이 세상에서 가장 부러운 사람들은
자기 두 팔 을 가지고 열심히 일할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닐까요.
저렇게 일하고 있는 청소부가 부럽습니다.
내게 팔이 주어져서, 내 사랑하는 아내를 다시 안아볼 수 있고
열심히 일할 수만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②절단의 아픔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팔이 없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한쪽 발이 없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전에 저는 다리 없는 사람들이 의족을 끼고 산다고 하길래
'그냥 그렇게 사는가 보다'고 쉽게 생각했어요.
그런데 막상 제가 병원에서, 다리 없는 사람들이 의족을 끼고 사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그들이 얼마나 힘들게 살고 있다는 것을, 그들을 볼 때마다 가슴 아프게 생각하고 있어요.
절단된 부위와 의족이 맞물려서 굳은살이 생겨서 통증을 느낍니다.
그 통증을 느끼지 않고 의족을 신고 다니려면, 많은 세월이 흘러야 되는 것입니다.
십 년이란 세월이 흘렀는데도 아직도 통증 때문에
진통제를 날마다 쓰는 환자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의족을 맞추고 난 뒤에 살이 쪄서 그 의족이 맞지 앉자
비싼 의족을 다시 구입할 수 없어서,
힘들게 의족을 신었지만 10m도 못 가서 통증 때문에 의족을 벗어야 하는
그런 환자를 만난 적도 있습니다.
③한쪽 다리가 없는 경우는 그런대로 괜찮습니다만
두 다리가 없는 경우는 그 딱함을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예전 같으면 두 다리 없는 환자들은 엉덩이로 밀어가면서 살라고 할 수밖에 없지만
우리 병원에서는 웬만하면 두 다리 없는 환자들에게 의족을 신겨서
걸을 수 있도록 치료를 시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두 다리 없는 환자들이 의족을 신고 일어서서 걷는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아십니까?
일곱 살짜리 꼬마가 유치원을 가다가 교통사고를 당해서 두 다리를 몽땅 잃었습니다.
이 조그만 아이에게도 의족을 신기고 걷는 연습을 시키는데
이 아이가 힘이 든다고 떼를 쓰면서 우니까. 엄마가 소리를 질렀어요.
"이놈아! 네가 지금 포기하면 너는 평생 앉은뱅이로 살아야 해, 다시 일어나!"
이렇게 소리를 질렀지만, 아이가 힘들다고 일어나지 못할 때
이 엄마가 이런 말을 했어요.
"전도사님, 내 다리를 잘라서 우리 아이에게 붙여 줄 수 없을까요.
우리 아이는 지금 한 번의 고통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키가 자라면서 또 다른 의족으로 바꿔야 하는데
그럴 때마다 우리 아이가 얼마나 힘들까요."
이렇게 다리가 없는 사람들 참으로 힘들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제가 아는 의사 선생님 한 분은, 자기가 의사인데도 자기 당뇨를 다스리지 못해서
두 다리를 다 잘라야 하는 경우였습니다.
너무 심했기 때문에 엉덩이 깊숙이 잘라서 의족마저 신을 수 없었어요.
그 때 의사 선생님이 이런 말을 하더군요.
"내 평생 모은 전 재산을 다 주고 다리 하나만 구할 수 있어서,
한쪽 다리라도 있어서, 목발이라도 짚고 한 번 일어서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 분(병원장 의사)의 전 재산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렇다면 그분이 갖고 싶어한 한쪽 다리를 가치가 상당할 것입니다.
거기에 비교한다면 우리가 갖고 있는 이 두 다리는
수십 억, 아니 수백 억, 아니 수천 억 가치가 있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다리가 없는 분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다리가 좀 못 생겼으면 어떻습니까? 다리를 좀 절면 어떻습니까?
관절염으로 무릎이 좀 쑤시면 어떻습니까?
내 다리가 있어서 걸을 수만 있다면, 그보다 행복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④다리가 절단된 분들은 힘들게 살고 있습니다만
우리 병원에서 이런 분들은 '나이롱 환자'라고 불릴 만큼 양호한 환자들입니다.
다리가 절단된 환자들을 지켜보면서
"우리 남편이 저 정도만 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라며 부러워하는
또 다른 환자들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환자들인가 하면.. 하반신 마비환자들입니다.
다리는 붙어 있지만 결코 일어설 수도 없는 환자들,
다리를 꼬집어도 아프다고 소리를 지르지 않는 환자들,
마취를 하지 않고 발톱 열 개를 다 뽑았는데도 단 한마디도 아프다고 소리하지 않는 환자들,
하반신이 마비된 환자들인데
병원에서는 이런 환자들을 척수손상장애인이라고 합니다.
이 환자들은 다리가 절단된 환자들을 지켜보면서
"저 사람들은 우리보다 낫지 않습니까.
힘들지만 그래도 목발을 짚고 의족을 신고 다닐 수 있고 계단을 오르내릴 수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아무리 좋은 곳이라 해도, 휠체어가 다닐 수 없는 곳은 갈 수가 없습니다."
라면서 다리 절단된 사람들을 부러워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부러워하는 이유가 또 하나 있다면
이들은 하반신이 마비될 때 일어서고 걸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소변과 대변 마려운 느낌도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희 병원에 오시면 '방광훈련'이라는 것이 있어서
하루에 4-5번 씩 주먹을 쥐고 아랫배를 주먹으로 때려서
그 자극으로 소변을 뽑아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손목이 저리도록 아랫배를 두드리고 있는 모습이나,
손가락을 넣어서 대변을 긁어내는 모습이나,
발가락까지 동원해서 소변을 짜내는 모습을
여러분이 단 한번만이라도 지켜보신다면..
밥 먹을 때만 기도하지 않을 것입니다.
화장실 가서도 기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잘 나오니까 감사 기도)
또한 '내 발로 걸어서 화장실을 다닌다'는 자체가
바로 하나님의 축복이기 때문에.. 반드시 기도하게 됩니다.
⑤이렇게 하반신이 마비된 사람들, 참으로 힘들게 살고 있지만
그런데 더 딱한 일은
이 하반신이 마비된 척수손상장애인들을 지켜보면서
"전도사님, 우리 형편이 저 정도만 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라며 그들을 부러워하는
또 다른 많은 환자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목을 다쳐서 사지가 마비된 경추손상 장애인들입니다.
요즘의 교통사고가 목을 다치게 해서, 사지마비 장애인들을 많이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사지 마비 장애인이 될 경우에는 스스로 옆으로 돌아누울 수도 없습니다.
스스로 앉아서 설 수도 없습니다. 자기 손으로 밥을 떠먹을 수 없습니다.
자기 몸이 가려워도 자기 손으로 긁을 수가 없습니다.
성경을 읽고 싶어도 자기 손으로 성경을 넘길 수가 없어서
성경을 읽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지마비 장애인들은 제게 이렇게 말합니다.
"하반신 마비된 저 사람들 너무 부럽습니다.
저 사람들은 휠체어라도 밀고 다닐 수 있지 않습니까.
손이라도 움직이기 때문에, 앉아서는 무슨 일이라도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전도사님, 손가락 다섯 개라도 움직일 수 있어서
내 몸이 가려울 때 옆에 사람 도움 받지 않고 긁을 수만 있다면요,
내 손으로 밥을 떠먹을 수만 있다면요,
아니 손가락 하나만이라도 움직여서 컴퓨터라도 누를 수 있다면
내가 남의 도움 받지 않고 살아갈 수 있겠는데요."
그러면서 그런 기적이 일어날 수 있도록 기도해 달라는 부탁을
날마다 수없이 듣고 있습니다.
이렇게 사지마비 된 분들 참으로 딱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⑥그러나 여러분, 이 사지 마비된 경추 손상장애인들을 지켜보면서
"전도사님, 우리 환자 형편이 저 정도만 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라며
그 환자들을 부러워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면.. 여러분 상상할 수 있겠습니까?
뇌를 다쳤거나 뇌를 수술 받았지만 중풍으로 쓰러졌는데 의식이 돌아오지 않아서
입으로 음식을 씹어 삼킬 수가 없어서
배에다 (가슴을 절개하고) 호스를 끼워서, 시간을 맞춰 음식물이 들어가고 있고,
눈은 떠 있지만, 수십 년 함께 산 가족이 아무리 앞에서 어른거려도
그 가족을 알아보지 못하고,
귀는 열려 있지만 자기 이름을 부르고, 여보라고 부르고,
엄마라고 부르고, 아빠라고 불러도 대답을 하지 않은 채
하루, 이틀이 가고 한 달이 가고 일 년, 이 년이 흐르기도 합니다.
이런 상태로 7년이 지난 환자의 보호자와 상담을 했습니다.
이렇게 오랜 세월동안 숨만 쉬는 환자를 둔 보호자들은 제게 이렇게 말합니다.
"사지가 마비되었지만 저런 환자를 둔 보호자들은 우리보다 낫겠습니다.
저들은 의식이 온전해서 말할 수 있지 않습니까?
입으로 음식을 씹어 삼킬 수 있지 않습니까? 대화를 나눌 수 있지 않습니까?
우리 환자는 움직이는 것은 고사하고, 우리를 알아보지도 못하고
대화를 나누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 상태로 한 달, 두 달이 가고, 일 년, 이 년이 년이 흐르고,
우리는 날마다 가슴을 조이면서
'오늘은 무언가 달라지는 것이 있을까?' 기다리고 있습니다만
우리 환자는 저 상태에서 침묵만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의식이 살아있는) 사지마비 장애인들을 너무나 부러워하는 것입니다.
▲제가 아는 젊은 부인은
자기 남편이 아침에 출근길에 교통사고를 당해서
지금 6년째 의식이 돌아오지 않고 있는데,
언젠가 그분이 저를 찾아와서 이런 부탁을 했습니다.
"전도사님, 제가 지금 이 마당에 와서, 우리 남편이 예전처럼 건강한 모습을 되찾아서
돈 벌어 오는 것을 감히 바랄 수 있겠습니까?
우리 남편이 일어서서 걷는 것을 감히 바랄 수 있겠습니까? 6년을 기다렸는데요.
저, 더 이상 바라지 않겠습니다.
제가 평생 파출부를 해서 남편을 벌어 먹여 살려도 좋습니다.
제가 우리 남편 손, 발이 되어서 밥을 떠 먹여 주고, 대 소변을 받아내도 좋으니까,
의식만이라도 돌아와서
내가 자기 아내인 것을 알아보고
다시 한 번만 '여보'라고 불러 줄 수만 있다면 저도 더 이상 바라지 않겠습니다.
우리 남편 입에서 여보라는 소리를 듣고 싶습니다.
그런 기적이 일어나도록 기도해주십시오"
그래서 저도 생각날 때마다 그 남편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만
아직까지 그이의 남편의 의식은 돌아오지 않고 있습니다.
때때로 저는 젊은 여자분들,
특별히 남편이 돈을 적게 벌어 온다고 짜증내시는 분들,
남편이 집에 돌아와서 아이들과 놀아주지 않고
집안일을 거들지 않는 다고 불평하는 여자 분들을 보면,
평생을 남편을 벌어 먹여 살려도 좋고,
평생을 남편손발이 되어서 밥을 떠먹여 주고, 대소변 받아 주어도 좋으니까,
그 입에서 한 번만 '여보' 소리 듣기 원하는 그 여자 분을 생각하면서
건강한 남편을 주신데도 감사하지 못하고 사는 여자분들,
참으로 딱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3. 더 불쌍한 어린이 환자들
이렇게 환자들과 보호자들의 고백을 들으면
제가 어떻게 위로를 해 줄 수 있을 까요. 저는 정말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더욱더 할 말을 잃게 하는 또 다른 환자들이 있다면,
태어나면서부터 갖가지 장애를 갖고 살아가는 아이들,
어린 나이에 질병과 사고로 장애자가 된 아이들입니다.
특별히 3층은 우리나라에서 하나밖에 없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면서 초등학교 교육 과정을 마칠 수 있는 학교가 있습니다.
저는 그 학교에서 어린아이들에게 성경을 가르치고 있는데
성경을 가르치면서 저는 수없이 절망합니다.
'도대체 내가 이 아이들에게 무엇을 제대로 가르칠 수 있을까?'
수업시간 내내 고개만 떨구고 있는 아이,
침을 질질 흘리고 있는 아이,
까닭 모르게 소리를 지르고 있는 아이,
육 년을 가르쳤지만 제 이름도 쓰지 못하는 아이,
자기 엄마인 것도 알아보지 못하는 아이,
이런 아이들에게 내가 어떻게 하나님이 우리를 만드셨고, 우리는 죄인이고,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돌아가셨다는 것을 어떻게 가르칠 수 있을까...
얼마나 많이 절망하는지 모릅니다.
▲대다수의 아이들이 우리 학교를 졸업하지만, 일반학교를 가지 못하고 특수학교를 가거나
그나마도 가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그래서 그 엄마들은 제게 이렇게 말합니다.
"전도사님, 어떻게 하면 자식을 잘 낳아서 정상아를 낳아서,
자기 발로 걸어서 책가방을 메고 학교에 보낼 수 있겠습니까?"
언젠가 연세대학에 입시가 있던 날
그 어머니들이 참으로 가슴 아픈 얘기를 제게 했습니다.
"전도사님, 어떻게 하면 자식을 낳아서 대학시험을 치게 해서,
시험을 한번 쳐서 떨어지게라도 해 볼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 '합격해 볼 수 있겠습니까?'가 아니었어요.
떨어져도 좋으니까, 대학시험 칠 수 있는 그런 자식이면 얼마나 좋겠느냐고
그 엄마들이 고백을 합니다.
그 엄마들로부터 더 가슴 아픈 얘기를 들은 적도 있습니다.
"이 세상의 어떤 부모가 자기 자식이 먼저 죽기를 바라는 부모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우리들은 때때로 '자식들이 우리보다 먼저 죽었으면' 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죽은 뒤에 아이들이 다른 사람 손에서 천덕꾸러기가 되는 것보다
우리 살아있을 때 죽는 다면, 아이들을 묻어주고
우리도 마음 편히 눈감을 수 있을 텐데..,
(우리가 먼저 죽고 난 뒤에는, 이 아이들을 누가 돌 볼 것입니까!)
그러나 그런 생각은 잠깐입니다.
아이가 아프면 우리는 다시 아이를 업고 병원으로 뛰어 옵니다.
사람들은 말하더군요.
'사람구실 못하는 아이들, 뭘 그렇게 가르치고, 뭘 그렇게 고치려고 애를 쓰느냐?'고 말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합니까, 전도사님.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자식인 걸요."
▲15년 동안 몸이 뒤틀릴 대로 뒤틀린 뇌성마비 아이를 안고 사는 엄마가 있었습니다.
그 아이는 너무 많이 몸이 뒤틀렸기 때문에
잠이 들지 않고 깨어 있는 시간은, 엄마가 안아줘야 합니다.
15년 동안 아이를 안고 사는 이 엄마는, 아직 마흔도 안 됐는데
머리가 반백이 된 오십대의 얼굴을 하고 있었습니다.
"장애아를 낳은 것이 죄입니까?
이 아이를 낳았다는 이유로 남편에게 버림을 받았습니다.
이 아이가 잠든 시간에 재봉질을 해서 백화점에 행주 같은 것,
앞치마 종류를 내다 팔고 있는데
이 아이가 잠이 들어야 일을 하는데, 요즘 이 아이가 잠이 안 듭니다.
어떤 사람이 저보고 '술을 먹이면 잠들 것'이라고 하는 데
제가 아이를 잠들게 하기 위해서 술을 먹여야 할까요?"
저는 할 말이 없었습니다.
▲병원에서 제가 전도사로 일하고 있으면서
여러분, 말의 빈곤을 느끼는 곳이 병원입니다.
도대체 내가 무슨 말로 위로해 줄 수 있을까?
손가락 한 개만이라도 움직였으면 좋겠다고 하는 사람 앞에서
손가락 열 개가 다 움직이는 내가 뭐라고 위로를 해 줄 수 있을까?
골수암으로 두 다리를 몽땅 잘라낸 여학생 앞에서
못난 다리지만 서 있는 것이 얼마나 송구스럽던지...
여러분, 제가 오늘 환자들과 무엇을 위해서 기도하다가 여기에 온 줄 아십니까?
"하나님, 일어설 수 있는 기적을 베풀어주십시오,
말할 수 있는 기적을 베풀어주십시오,
볼 수 있는 기적을 베풀어주십시오,
한 발짝이라도 걸을 수 있는 기적을 베풀어 주십시오!"
이런 기적(여러분이 다 갖고 있는 기적들입니다.)을 베풀어 달라고
목이 메도록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들이 그토록 소망하는 그 기적, 여러분과 저는 다 행하고 있는데도,
우리가 하나 님 앞에 감사하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우리 환자들은, 제게 이렇게 말합니다.
"팔다리는 당연히 있는 것 인줄 알았습니다.
사람이라면 당연히 볼 수 있고, 당연히 말할 수 있는 것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당연한 줄로 여겼던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장애인들이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가 예비 장애인들입니다.
140명 입원해 있는 우리 병동의 환자들 가운데, 의사가 3명이나 있습니다.
젊은 의사 한 분은 교통사고로 사지마비가 되었고,
또 40대 의사 한 분은 연세대를 나와서 지방에서 개업한 병원장이신데
환자들을 열심히 돌보다가 과로로 쓰러져서 반신불수가 되었습니다.
그분이 제게 오늘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평생 가운입고 의사일 줄 알았는데 내가 환자로 살아야 되다니...."
목사, 교수, 박사, 전직장관 출신, 우리가 뭐 잘났다고 큰 소리 칠게 있는 줄 아십니까.
다른 사람보다 내가 지위가 높다고,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배웠다고..
뭐 자랑할 게 있는 줄 아십니까?
머리 핏줄 하나만 터지면 그 많은 기억을 다 잃어버리고
말 한 마디 못하게 되는 것이 바로 우리 인간인 것을.
저는 날마다 병원에서 확인하고 있습니다.
내가 똑똑하고 걸을 수 있고 움직일 수 있는 것은, 내가 잘나서 그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인 것을 기억하시고, 나눌 수 있을 때 나누시기 바랍니다.
<아침은 늘 눈부시다> 나침반 출판사
◑감사로 인생을 새롭게 출발한 사람 출처
스튜아트란 분은 태어날 때부터 심한 심장병을 고생하고 있었는데
그가 교회에서 가장 듣기 싫은 설교는 ‘항상 기뻐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런 설교를 들을 때마다 반발심이 생기기를
‘흥, 자기도 나처럼 심장병을 앓아 보라지. 그러면 절대로 저런 설교를 못할 거야.’
라고 비웃었답니다.
이 여인은 온갖 병원을 다니면 치료해 보고
능력 있다는 이에게 안수도 받았으나 전혀 효력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후에는 캘리포니아 오벨이라는 조그마한 마을로 이사를 가서
날마다 병상에서 지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 마을에 ‘리’라고 부르는 부부가 자주 와서 말하기를
‘심장병을 고치는 길은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라.’는 말을 듣고
처음에는 내키지 않았으나 자기 주변에서 감사할 조건을 찾아서
자꾸 감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랬더니 이상하게 불평이 사라지고 감사하는 빈도가 많아졌고,.
건강이 점점 좋아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리 부부는 이번에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감사하라고 충고했습니다.
그 충고대로 꽃이나 새소리, 맑은 하늘, 푸른 잎 새를 찬양하기 시작하자
무디어졌던 온 몸의 오관이 찬양으로 가득 차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이번에는 다시 충고하기를 ‘이제는 이웃들을 불러서 하나님이
당신에게 얼마나 큰 은혜를 주시며 사랑하시는 가를 고백하고 간증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차마 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직도 건강이 완전하지 못하기에
다시 재발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부부가 하도 강조하니까,
하루는 온 동네 사람들을 전화로 불러 모으고
하나님이 주신 은혜와 사랑을 감사하고 고백하며 간증했습니다.
그러자 많은 사람들이 은혜를 받고 함께 찬양했습니다.
그 때부터 간증하는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자 마치 덮였던 뚜껑이 활짝 열리고
그 속에서 생수가 뿜어 올라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것은 37년 만에 얻는 평안과 기쁨이었습니다.
▲그러나 심령의 기쁨과는 달리
그녀의 고난은 여전히 그녀 곁에서 떠날 줄을 몰랐습니다.
여전히 심장병은 많이 남아 있습니다.
남편은 실직상태 그대로여서 가난은 물러갈 줄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녀가 찬양과 감사로 고백하고 간증하자
큰 기쁨이 그녀의 마음과 가정에 넘치기 시작했습니다.
얼굴이 밝아졌고 마음의 갈등이 사라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를 그처럼 괴롭혀 왔던
심장병과 가난이 떠나간 사실을 체험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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