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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직분자의 3가지 자세/딤전 1:12-17

by 【고동엽】 2023. 1. 21.

교회 직분자의 3가지 자세

2002-10-15 15:02:15 read : 6202

 

딤전 1:12-17 // 020929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

 

서울의 한 가정에서 고등학교 2학년 딸이 부모 말을 듣지 않고 말썽을 부렸습니다.

학교도 제대로 가지 않고, 친구들하고 놀러 다니며, 밤늦게 집에 들어왔습니다.

우리가 야단을 쳐도 아무 소용이 없어서 고민하다가 두 부부가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어떻게 하나요? 우리 딸이 다시 좋은 아이로 돌아오는 길이 없을까요?"

 

간절히 기도하는데 하나님의 음성이 마음속에 들렸습니다.

"딸 때문에 안타깝지? 그런데 네가 말을 듣지 않았을 때 내 심정은 어떠했겠느냐?"

딸을 위해 기도하는데 이상하게 자기가 말씀대로 살지 못한 것이 깨달아졌습니다.

그리고 자기를 향한 하나님의 인내하심을 생각하니까 마음이 편해지는 것을 느꼈고,

자기도 딸에게 그렇게 인내하면 언젠가 무사히 딸이 돌아온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날 밤도 딸이 늦었습니다. 갑자기 전화 벨소리가 울리는데 불길한 느낌이었습니다.

받아보니 병원 응급실에서 온 전화였습니다. 딸이 병원에 있으니 오라는 전화였습니다.

딸이 친구 셋과 함께 택시를 타고 가다가 택시가 전신주와 충돌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떨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병원 응급실로 갔습니다. 모두 피투성이가 되어있었습니다.

그런데 운전석 옆에 앉았던 딸만 약간의 찰과상만 입고 얼굴이 하얗게 질려있었습니다.

 

두 부부는 하나님께 깊이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가장 위험한 곳에 앉았던 딸을 지켜주신 그 깊은 사랑을 잊지 않겠습니다."

2주일간 딸이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이들은 깊은 가족간의 사랑을 회복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면 우리의 행복을 막는 그 무엇도 반드시 뚫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힘들어도 낙심하지 말고,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에 주력하십시오.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었거든 조금 더 기다려보십시오.

자녀가 허물이 많아도 조금 더 기다려보시고, 일이 안 풀려도 조금 더 기다려보십시오.

하나님은 믿음을 가지고 바르게 살려는 자녀에게 반드시 축복을 베풀어주실 것입니다.

 

가끔 우리 자녀의 행동을 보면 속이 답답할 때가 있지만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정말로 걱정해야 할 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답답한 우리 자신의 모습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진정으로 회개하고 돌아오면 자녀도 반드시 돌아오게 됩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한번 헤아려 보라고 자녀를 통해 기도제목을 주시는 것은 아닐까요?

 

때로 말을 안 듣는 자식을 심하게 때리고 싶지만 너무 사랑하니까 계속 참습니다.

그처럼 자식을 키우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우리 모습이 바로 하나님의 모습입니다.

 

어떤 목사님이 있었는데 중학생 딸이 사춘기를 맞아 자꾸 탈선을 했습니다.

밤늦게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고, 거짓말하고, 나중에 반항하며 말대꾸까지 했습니다.

성경의 돌아온 탕자는 용서해도 자기 딸만은 도저히 용서하지 못할 것 같았습니다.

딸이 그분을 역겨워하는 듯한 모습을 하면 그분도 그런 딸이 모습이 역겨웠습니다.

 

어느 날, 새벽기도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저 멀리서 누군가 걸어왔습니다.

곧 밤을 지새우고 터벅터벅 걸어 집으로 돌아오는 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그토록 미웠지만 막상 딸을 보니까 분노가 어디로 가버렸습니다.

사랑하는 딸 앞에서 아버지는 너무 무력했습니다.

목사님은 골목길에서 숨어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의 소중한 딸을 지켜주세요!"

딸이 집에 돌아오는 것 외에 더 바랄 것이 없었습니다. 그것이 아버지의 사랑입니다.

 

< 나를 능하게 하시는 예수님 >

 

우리는 그런 사랑을 받으며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상상 이상입니다.

이제까지 은혜를 받았지만 앞으로도 계속적으로 그런 놀라운 은혜가 주어질 것입니다.

 

지난 화요일, 미국의 코너스톤 침례교회 웹사이트를 방문했는데 이런 글이 있었습니다.

미국의 한 아마추어 미술가가 한 전시회에 나이아가라 폭포의 그림을 제출했습니다.

그 그림에는 엄청난 양의 물이 아래로 떨어져 내리는 장관이 잘 묘사되어 있었는데

그림 아래에는 "더 많은 물이 밀려오고 있음(more to follow)"이라는 제목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나이아가라 폭포가 끊임없이 엄청난 양의 물을 아래로 흘려보내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은혜도 우리에게 폭포수처럼 주어지고 있고, 앞으로도 더 주어질 것입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은혜가 이처럼 놀랍습니다. 그 은혜로 우리가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이미 넘치도록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은혜를 깨닫고 사는 것입니다.

그 은혜를 깨닫고 살면 우리의 삶은 항상 생동감이 넘치고, 행복은 가까이에 있습니다.

바울이 일생 능력 있는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은 그 은혜를 깨닫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12절을 보십시오. 바울은 예수님을 '나를 능하게 하신 예수님'이라고 합니다.

14절 말씀을 보십시오. 바울은 주님의 은혜가 넘치도록 풍성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바울에게 사명을 주시고, 그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과 은혜도 주셨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사명 주실 때 그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힘도 주십니다.

 

여러분! 남편이나 친구에게 전도하고 싶을 때 너무 주저하지 말고 전도해보십시오.

하나님께서 그 일로 우리를 부르셨다면 반드시 그 일을 할 수 있는 힘도 주실 것입니다.

만약 교회에서 어떤 직분을 주었다면 너무 주저하지 말고 기쁘게 맡아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어떤 직분을 주셨다면 반드시 그 직분을 감당할만한 힘도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을 하도록 부르시는 일은 없습니다.

조그만 다윗이 거대한 골리앗 앞에 서도록 부르신 것처럼,

엘리야를 아합 왕 앞에 서도록 부르시고, 다니엘을 사자 앞에 서도록 부르신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의 팔 안에 있을 때 우리는 결코 실패하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생활 잘 하는 방법을 하나 알려드리겠습니다.

그것은 최소한 직분 하나를 맡고 그 직분에 감사하며 최선을 다해 일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어려운 여건이라도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한 가지 일은 맡을 수 있습니다.

못한다고 속단하지 마십시오. 누구든지 한가지 일은 할 수 있는 정도의 힘이 있습니다.

한 가지라도 직분을 맡아서 같이 참여하다 보면 신앙도 금방 자라게 될 것입니다.

 

< 교회 일꾼에게 있어야 하는 기본 자세 >

 

그런데 교회 일에 참여하다보면 가끔 안타까운 일도 보고 어려운 순간도 당합니다.

그 순간을 잘 극복하고 승리하려면 직분을 맡은 자에게 꼭 필요한 자세가 있습니다.

그 자세가 무엇일까요? 오늘 본문을 통해서 3가지만 같이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충성스런 자세

 

직분자에게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충성스런 자세입니다. 본문 12절 말씀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에게 직분을 맡기신 이유는 그를 충성스럽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교회에서 일할 때 유능함이 도움이 되긴 하지만 그것이 가장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충성하는 자세입니다. 그 자세만 있으면 조금 부족해도 괜찮습니다.

사실 주님은 능력이 많은 분이기 때문에 우리의 능력을 보시지 않을 것은 당연합니다.

부족한 그대로 나와도 충성 한 가지만 있으면 하나님께서 참으로 기뻐하실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생활을 하면서 힘들어도 끝까지 충성하시고 봉사를 포기하지 마십시오.

때로는 열심히 봉사해도 오히려 봉사를 받는 사람으로부터 원망을 듣기도 있습니다.

그래도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원망을 들어도 봉사를 포기하지 않으면 결국 이깁니다.

사실 힘들 때 포기하는 것보다 쉬운 방법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 유혹을 이겨야 합니다.

 

직장 생활을 할 때에도 힘들면 사표를 쓰는 것보다 더 쉬운 해결 방법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좋은 해결방법은 아닙니다. 좋은 해결방법은 십자가를 앞세우는 것입니다.

십자가가 없는 문제 해결을 바라지 말고, 계속 봉사하며 문제를 이길 수 있어야 합니다.

 

무슨 이유이든 포기는 항상 이른 것입니다.

이론이 필요 없고 계산해볼 필요도 없습니다. 어떻든지 간에 포기는 없을수록 축복입니다.

기도도 쉽게 포기하지 마십시오. 조금 내 뜻대로 안 된다고 기도를 포기하면 안됩니다.

우리가 욕심 없이 기도하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그 기도한 만큼 축복하실 것입니다.

 

대개 재능이 있고, 환경이 좋은 분이 실패하는 이유는 항상 쉽게 포기하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실패는 진짜 실패한 것이 아니라 도중에 포기하니까 실패로 끝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포기가 실패이고,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실패는 기도와 봉사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아무리 어려워도 직분을 포기하지 말고, 주님 붙들 듯이 더 붙들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요새는 조금만 힘들어도 직분을 포기합니다. 충성스런 종이 참 적은 시대입니다.

조금만 힘들면 나가떨어지고, 조금만 맘에 안 들면 나가떨어지고 배반의 길로 갑니다.

꾸준함이 없습니다. 문명은 점차 발달하지만 사람의 품격은 점점 떨어지고 있습니다.

사실 인간처럼 배반을 잘 하는 존재가 있을까요? 이 문제는 아주 심각한 문제입니다.

 

어느 해 여름 복날이었습니다. 한 주인이 키우던 개를 묶어 들판으로 끌고 갔습니다.

개는 두들겨 패야 고기 질이 좋다는 말을 듣고 주인을 개를 두들겨 패기 시작했습니다.

놀란 개가 날뛰다가 묶었던 끈이 풀어져 주인한테 맞아죽지 않으려고 도망을 쳤습니다.

주인은 "이 개놈이 어디로 도망쳤을까?"하고 궁금해하며 집으로 돌아와 보니까

개가 조금 전에 자기를 때린 일은 다 잊고 집에서 꼬리를 흔들면서 그를 맞았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주인은 개를 꼭 껴안고 다시는 개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

"내가 앞으로 이렇게 충성스런 개고기를 다시 먹으면 개자식이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조금 힘들다고 달아나지 말고 좋은 말과 좋은 행동으로 충성을 보여주십시오.

어떤 분은 생각으로만 충성합니다. 그러나 진짜 충성은 말과 행동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어떤 분은 행동도 없이 "충만! 충만!"만을 구하다가 아까운 세월을 다 날려보냅니다.

나가서 복음 전하고, 뜨겁게 사랑하고, 죽도록 충성하면 반드시 충만해질 것입니다.

 

교회에서 직분을 맡은 사람은 협력하는 사람입니다. 충성을 다해 협력해보십시오.

아무리 유능한 사람도 좋은 협력자를 만나지 못하면 무능한 사람이 되지만

아무리 무능한 사람도 좋은 협력자는 만나면 100% 이상의 힘을 발휘해 유능해집니다.

우리가 각각 맡은 직분에 충성하면 우리 교회는 진정 능력 있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여러분! 더욱 주님께 충성하고, 교회에 충성하고, 충성하는 분은 힘껏 격려해주십시오.

충성이란 원래 사람의 칭찬을 너무 기대하지 않을 때 진짜 충성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칭찬을 바라지 말되 다른 사람이 잘하면 힘껏 칭찬해주어야 합니다.

그처럼 충성하고, 서로 충성을 격려할 때 우리 교회는 칭찬 받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2. 겸손한 자세

 

13절 말씀을 보십시오. 사도 바울은 자신이 엄청난 죄인이지만 은혜를 입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본문 15절 후반부에서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이 고백에서 바울은 "내가 괴수였다"라고 하지 않고 "괴수이다"라고 현재형으로 말합니다.

, 자기의 죄인 됨의 문제가 믿기 전의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 현재의 문제라는 말입니다.

아무리 능력 있는 사도라도 죄의 문제는 계속되는 문제라고 인식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저도 목회하면서 신앙생활을 잘 하는 사람들을 보면 한 가지 느끼는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가까운 겸손한 사람일수록 더 자신의 죄를 많이 깨닫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더 가까워지고, 말씀을 더 많이 알면 알수록 우리는 죄를 더 인식하게 됩니다.

진실한 신자는 자신의 죄의 깊이를 알고, 끊임없이 하나님의 은혜에 놀라움을 표합니다.

그래서 정말 훌륭한 신자는 매일 바울처럼 "내가 죄인 중의 죄인이구나!"라고 느낍니다.

 

사실 우리가 얼마나 부족합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부족한 것뿐입니다.

그러나 "부족하다!"고 하면서 지나치게 낙심하는 것은 부족함을 인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모습은 사실상 아직도 겸손하지 못하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입니다.

"부족하다!"고 인정한 후에 주님을 의지하고 희망을 가지는 것이 진정 겸손한 것입니다.

 

좌절하는 것, 낙심하는 것, 자살하려는 것은 "나는 절대 부족하지 않다"는 반증입니다.

"본인이 부족하지 않은데 왜 이런 일을 내게 당하지?"하고 생각하니 속상한 것입니다.

그러나 겸손한 태도를 취하고 낮은 데서 시작하면 마음이 얼마나 편해지는지 모릅니다.

마음이 편한 상태에서 다시 시작하면 못할 것도 없고, 못 이룰 것도 없습니다.

 

어느 날, 부산에 사는 한 교인이 사업에 실패하고 태종대로 자살하러 갔습니다.

가보니까 그곳에서 뛰어내리면 하나님께도 죄송하고 몸이 너무 아플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자살바위에서 밑만 쳐다보는데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네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지? 돈이냐! 돈이 그렇게 좋으냐!"

스스로 대답했습니다. "그래도 제가 명색이 교인인데 어떻게 돈 때문에 살겠습니까?"

스스로 그 말을 하고 나서 생각해보니까 돈보다 인생이 더 중요함을 잊고 있었습니다.

 

그는 새롭게 각오했습니다.

"어차피 빈손으로 태어났는데 사글세방에서 살면 어떤가?

그래도 몸은 건강하니까 아파트 처분하고 사글세방에 살면서 다시 열심히 살아보자!"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편한 마음으로 새롭게 시작하니까 금방 재기할 수 있었습니다.

 

겸손한 마음을 가지면 마음이 편해집니다. 없어도 넉넉해집니다. 성격이 부드러워집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14절 말씀처럼 겸손하면 하나님의 은혜가 더 넘치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더욱 겸손해보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더욱 크신 은혜를 내려주실 것입니다.

 

3, 본이 되는 자세

 

16절 말씀을 보십시오.

바울이 은혜 받은 이유는 다른 믿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에서 "본이 되게 한다!"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남에게 본이 되어달라!"고 요구하라는 말이 아니라 "내가 본이 되라!"는 말입니다.

어떻게 본이 될 수 있습니까? 그 사람 위치로 가서 그를 이해하고 받아주어야 합니다.

그런 식으로 상대방을 받아주면 모든 오해는 풀리고, 모든 사랑은 회복될 것입니다.

 

서울에 있는 일류 대학을 다니던 한 남녀가 있었습니다.

이 둘은 서로 좋아하게 되어 캠퍼스 커플로 지내다가 결혼했습니다.

그런데 결혼 10년쯤 되자 남편이 자꾸 바깥으로 돌며 다른 여자와 놀아났습니다.

아내는 남편의 마음을 돌려보려고 사정도 하고, 위협도 해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몰래 뒤를 밟아서 여자를 한번 보았는데 자기보다 훨씬 못한 여자였습니다.

 

더 자존심이 상해서 목사님을 찾아가 어떻게 해야 될지 하소연을 했습니다.

목사님이 "남편을 아직도 사랑하느냐?"고 물으니까 "사랑하는 마음은 있다"고 했습니다.

다시 목사님이 물었습니다. "밤에 같이 잠을 잡니까?"

그러자 그분이 대답했습니다. "그렇게 더러워진 사람하고 어떻게 같이 잠을 자나요?"

 

그 말을 듣고 목사님이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에 관해 깨우쳐 주었습니다.

"더러운 사람을 사랑하려면 나도 더러워져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십자가의 원리입니다.

더러운 남편이 싫어도 주님의 사랑으로 남편을 한번 따뜻하게 맞이해 보세요."

 

그후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이 마음을 잡고 가정으로 돌아왔습니다.

목사님이 "어떻게 남편의 마음을 돌렸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날 이후로 남편을 이해하면서 "남편이 밖으로 도는 것은 내 책임이다"고 생각하니까

마음이 편해지고, 말이 곱게 나오니까 남편도 아내에게 마음을 열게 되었다고 합니다.

 

"본이 된다"는 것은 남의 변화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변화를 인식하는 것입니다.

나의 변화를 인식하면서 내가 죄인의 위치에 내려갈 때 진정한 사랑이 나오게 됩니다.

의인의 자리에 서서 죄인에게 말로만 "사랑한다"고 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 아닙니다.

그제 국민일보에 두 번째로 수재후원금을 힘써 헌금해서 보냈습니다.

졸지에 집을 잃은 사람들을 보며 생각으로만 "안타깝다"고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사랑의 대상을 찾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을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죄인을 사랑하면 주님이 그렇게 하신 것처럼 죄인의 위치에 같이 설 줄 알아야 합니다.

어려운 사람을 보면 어려운 사람의 위치에 서서 실제적으로 도움의 손길을 펴야 합니다.

그처럼 우리가 서로 남의 위치에 서 줄 때 우리들은 더 아름다운 존재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 그냥 태어난 존재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사명 주어서 보낸 존재입니다.

그런 사명감을 가지고 좋은 세상을 찾아다니기보다는 좋은 세상으로 변화시키려고 하고

좋은 사람만 찾아다니기보다는 만나는 사람을 좋은 사람으로 변화시키려고 해야 합니다.

그래서 요셉처럼 가는 곳마다 그곳을 변화시키고, 축복을 몰고 다니는 사람이 되고.

결국 '천만 만민'이 우리를 통해서 복을 받게 하리라는 원대한 꿈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 꿈을 가지고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며 큰 복을 예비하는 분들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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