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에는 실패가 없습니다// 20010304
2001-12-08 17:45:50 read : 1270
주일 낮예배// 마태복음 21장 18-22절
작년에 조창인 씨의 가시고기가 많은 사람들을 눈물 흘리게 만들었습니다.
가시고기는 특이한 고기입니다. 엄마 고기는 알을 낳고 그냥 떠나 버립니다.
그러면 아빠 고기가 생명을 걸고 다른 것의 먹이가 되지 않도록 알을 지킵니다.
그래서 알에서 새끼가 깨어나면 그 새끼는 아빠의 고생을 모르고 떠나버립니다.
그처럼 새끼가 떠난 후 아빠 가시고기는 스스로 바위에 머리를 박고 죽습니다.
그러한 가시고기의 모습이 조창인 씨의 소설 속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어느 날 한 가정의 10살 짜리 다움이에게 무시무시한 백혈병이 찾아옵니다.
그 순간에 부잣집 딸로 자라난 엄마는 자기밖에 모르고 아이 곁을 떠납니다.
그러자 아빠는 혼자 남아서 그 아이의 병을 고치려고 혼신의 노력을 다 합니다.
다움이는 항암치료로 머리가 다 빠지고 열은 40도가 넘어 숨이 차 헐떡거립니다.
그런 모습을 보기가 너무 고통스럽지만 아빠는 아이 곁을 혼자 끝까지 지킵니다.
그리고 아이에게 생명력을 더하게 하려고 같이 여행도 가고 즐겁게 해 줍니다.
그러다가 다시 병세가 악화되면 병원에 입원하는데 그러기를 10번이나 합니다.
병원비 때문에 이 아빠는 양심을 파는 글을 써 보기도 하지만 뜻대로 안됩니다.
바로 그때 돈 많은 중년 화가와 재혼한 엄마가 이 아이를 데리고 가려고 합니다.
사랑해서가 아니라 아이에게 조각 솜씨가 있는데 그 재능이 탐났기 때문입니다.
그 사실을 알고 아빠는 아이를 보내지 않고 스스로 병원비 문제를 해결하려고
장기매매를 통해 자기의 신장을 팔기로 결정을 내리고 병원에서 검사를 받습니다.
그런데 자기도 이미 간암에 걸려서 오래 살 수 없다는 진단을 받게 됩니다.
그러니까 신장도 팔 수도 없어서 결국 그는 각막을 팔고 한쪽 눈을 실명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다행히 일본의 한 이름 모르는 젊은이가 자기의 골수를 기증해서
다움이는 골수이식 수술에 성공하여 살아나게 되고 점차 건강을 회복하게 되는데
반대로 다움이 아빠는 간암으로 점차 죽어갑니다. 복수가 차고 황달이 생기고
그런 상황에서 다움이를 만날 수 없어 할 수 없이 다움이를 엄마에게 보냅니다.
결국 아빠의 사랑으로 아들은 백혈병을 극복하지만 아빠는 혼자 죽는다는 얘기입니다.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다움이 아빠는 특별한 영웅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아마 거의 대부분의 부모들은 그런 경우를 만나면 비슷한 사랑을 펼칠 것입니다.
그런데 그처럼 사랑하는 자녀를 어떻게 지켜줄 수 있습니까? 돈이 필요합니까?
물론 돈이 있으면 조금 안심은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정말 안심이 됩니까?
자칫 잘못하면 한 순간에 휩쓸려 나가는 것이 돈인데 어떻게 안심할 수 있습니까?
돈은 그렇다고 치고 만약 우리 자녀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사람들이 돈에 집착하는 것 같지만 자녀의 목숨 앞에서는 돈을 휴지처럼 여깁니다.
얼마 전에 한 초등학교 아이가 아버지 고생하는 것을 보고 아버지가 하라는 대로
자기 손가락을 자르고 강도가 했다고 했습니다. 그것을 보면 얼마나 순수합니까?
우리는 흔히 부모의 사랑만 얘기하는데 철모르는 아이의 부모 사랑도 대단합니다.
얼마 전에 제가 둘째 아이 한나를 시험해 보려고 아주 끔찍한 장난을 했습니다.
배가 고파서 고통스러운 표정을 하면서 한나에게 이런 말을 해 보았습니다.
"한나야! 아빠가 너무 배가 고파! 그러니까 네 손가락 하나만 잘라서 줄래?"
그러니까 한나가 눈에 눈물을 머금고 잘라먹으라고 손을 저에게 내밀었습니다.
그 슬픈 표정이 얼마나 안됐는지 제가 곧 한나를 꼭 껴안아 주면서 말했습니다.
"한나야! 아빠가 장난 한 거야. 한나의 손가락 하나도 아빠에게는 제일 소중해!"
맨 정신으로는 우주를 준다고 해도 제 아이 손가락 하나 잘라줄 수 없습니다.
그렇게 소중한 우리의 아이들입니다. 어떤 때는 너무 지나칠 정도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보다 앞서면 우상이라고 하는데 아이가 우상처럼 되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한테는 인색합니다. 그러나 자녀를 위해서라면 펑펑 씁니다.
그리고 기도할 때 제일 소중한 기도제목이 무엇입니까? 자녀에 관한 기도입니다.
그처럼 자녀를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데 어떤 방법으로 그를 지켜주겠습니까?
언뜻 봐도 부모의 노력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안보이고 부작용만 많이 보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노력과 물질만으로는 자녀들의 앞길을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가 자녀를 위해서 꼭 해 주어야 할 것은 바로 기도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의 각 가정들에 얼마나 어려움이 많습니까?
어떤 경우에는 분명히 사랑한다고 하는데 가정이 깨집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장 큰 상처를 입힙니다.
정말 고약한 본능입니다. 그러한 본능을 절제하지 못하니까 가정이 어려워집니다.
어떤 젊은 연인이 있었습니다. 아무 때나 보기 민망할 정도로 애정 표현을 합니다.
남들 앞에서 서로 바라보는 눈길이 보통 눈길이 아니니까 질투가 생길 정도입니다.
그래도 남의 눈치 생각해서 열정을 참는데 그 참는 모습이 가엾게 보일 정도입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빨리 결혼해서 그 가엾게 보이는 모습을 끝내라고 주문했습니다.
결국 그들은 성공적으로 결혼에 골인했고 담임목사님은 기쁘게 주례를 서 주었습니다.
그런데 2년만에 이 자매가 담임목사님을 찾아와 "심각하게 되었다"고 울먹였습니다.
이것이 우리 가정의 모습입니다. 그처럼 사람은 약한 존재입니다. 인정해야 합니다.
흔히 사랑이 가정을 지켜준다고 하는데 그렇습니까? 그 반대인 경우가 많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가 있는 가정이 우리의 사랑을 지켜주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그러므로 가정에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도록 가정을 위해 기도해야 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을 자주 찾으십시오. 그래야 문제를 가지고 저를 찾는 일이 줄지 않겠습니까?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의 소원을 이루기 위한 가장 소중한 축복의 원천도 기도이고,
우리의 삶을 유형무형으로 지켜주는 힘도 바로 기도를 통해서 주어지는 것입니다.
언뜻 세상을 보면 마치 힘이 있는 자들이 마음대로 요리하며 사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들의 기도는 힘이 없는 사람의 푸념으로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아닙니다. 기도는 개인과 교회와 가정과 자녀를 위한 가장 소중한 축복의 기초입니다.
절대 기도는 푸념이 아닙니다. 기도가 능력이요 자원인 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기도의 능력을 잘 말해 주는 본문입니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오는데 시장하셨습니다.
그런데 길가에 서 있는 한 무화과나무가 열매는 없고 잎사귀만 무성했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영원토록 열매가 없을 것이라고 그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셨습니다.
왜 주님께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셨을까요? 배고파서 화가 나신 것일까요?
아닙니다. 주님은 무화과나무를 통해 잎만 무성한 바리새인적 삶을 경고한 것입니다.
그렇게 주님께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자 신기하게도 곧 무화과나무가 말랐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이 그것을 보고 물었습니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그 질문에 대답하시면서 주님께서 기도의 능력을 말씀하십니다. 21-22절을 보십시오.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치 아니하면 이 무화과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지우라 하여도 될 것이요/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이 말씀은 믿음의 기도가 얼마나 큰 능력이 되는지를 잘 나타내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어떤 기도가 믿음의 기도이고 우리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기도일까요?
1. 기도가 정말 소중한 것으로 생각하는 기도
기도는 전능하신 하나님과 우리를 맺어주는 기적적인 도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고 응답해 주신다는 이 단순한 사실!
이처럼 판에 박도록 들은 단순한 사실을 다시 한 번 묵상해보고 믿어보십시오.
그 사실을 진정 믿는다면 삶은 뿌리까지 뒤흔드는 지각변동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사실이라면 다른 어떤 것보다도 기도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실질적으로 생명력 있는 기도보다 더 큰 역사를 일으키는 것은 없습니다.
죽어야 할 우리가 전능하신 하나님과 기도로 맺어진다는 사실을 생각해보십시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도하지 않는다면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승리를 원하면 우리는 우리에게 내리신 지극한 축복의 도구를 활용해야 합니다.
어떤 분은 기도에 대해 "기도는 하늘과 땅이 서로 입맞추는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그처럼 기도를 중시하고, 하늘과 땅의 중심에 서 있는 기분으로 기도를 해 보십시오.
그처럼 기도의 중요성을 아는 사람에게 기도는 정말 능력의 통로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자세히 보면 기도를 중시하는 사람들은 대개 하루의 첫 시간을 중시합니다.
물론 새벽에 기도하는 것을 절대시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중요합니다.
역사상 위대한 신앙 위인들을 보면 대개 새벽에 기도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람의 얼굴을 보기 전에 하나님의 얼굴을 추구하면 얼마나 기분 좋고 상쾌합니까?
요즘 늦게 자는 경우가 많아 새벽 4시가 지나서 교회에 올 때가 가끔 있습니다.
그처럼 4시가 넘어 허겁지겁 교회에 올 때에는 가끔 환경 미화원 차를 만나는데
분주하게 쓰레기를 차에 올리는 환경미화원들의 모습을 보면 가슴이 뜨끔합니다.
사회를 깨끗하게 하려고 저들이 저처럼 일찍 활동하는데 목사가 그들보다 늦다면
무엇인가 중요한 것을 놓친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운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영혼을 위해서 하루의 첫 시간에 사람을 만나기 전에 하나님을 만나고,
일하기 전에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면 얼마나 기분이 좋고 영혼이 상쾌하겠습니까?
반면에 하루의 첫 시간을 하나님과 함께 시작하지 않으면 답답하지 않습니까?
어떤 목사님이 새벽기도가 참으로 힘들었습니다. 그러다 이민 목회를 떠났습니다.
이민 목회를 하니까 너무 좋은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새벽기도가 없는 것입니다.
새벽기도 하다가 새벽기도 안하면 얼마나 육신이 편한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웬 일입니까?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자기 영혼이 흐릿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결국 다시 새벽기도를 시작했는데, 몸은 힘들지만 영혼이 소생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새벽기도가 하루의 첫 시간이기에 강조한 것이지 모든 기도가 다 중요합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요?
죄 때문일까요? 그것도 중요한 이유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하지 않기 때문일까요? 그것도 중요한 이유입니다.
그런데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는 기도의 중요성을 모르고 기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를 마지못해 해야 하는 의무나 혹은 취미로 생각하지 말고
우리에게 주어진 놀라운 특권이고 축복의 통로라고 생각하고 기도해보십시오.
그처럼 기도가 중요한 줄 알고 기도할 때 하나님은 그 기도를 기뻐하실 것입니다.
2. 진실한 마음으로 드리는 기도
안타깝게도 어떤 분은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요구부터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 다급한 마음은 이해할 수 있지만 하나님의 입장도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게다가 어떤 경우에는 자기 욕심만 내세우고 기도하는데 그러면 되겠습니까?
우리가 살다가 어떤 유력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나를 도울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렇다고 그에게 당장 "저에게 사업 자금 좀 빌려주세요"라고 하면 됩니까?
먼저 그를 알고 그에게 나를 알게 해서 친해지는 작업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의 많은 기도가 "사업 자금 빌려주세요"라는 기도 수준에 있습니다.
그러다가 그분이 사업자금을 빌려주지 않으면 자기 혼자 실망했다고 합니다.
그런 식으로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 우리 하나님께서 어떻게 생각하시겠습니까?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의 기쁨을 나누는 것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깨끗하고 진실한 마음으로 기도할 때 그 기도는 결코 실패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나의 욕심으로 구하는 기도나 하나님을 시험하기 위한 기도보다는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하나님의 인도를 겸허하게 수용하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그러나 기도의 주된 목적이 하나님의 뜻과 인도를 받기 위해서만도 아닙니다.
더욱 중요한 목적은 하나님의 인도에 대한 자발적인 순종심을 구하는 것입니다.
즉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마 26장)"를 구하는 것입니다.
세계적 선교단체인 월드 비전의 밥 피어즈 목사님은 아침마다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아버지의 소원이 저의 소원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처럼 기도는 하나님의 소원을 가진 기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기도여야 하고
또한 모든 기도응답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찬미하는 재료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 마음으로 기도할 때 하나님의 놀라운 응답의 역사가 주어지게 될 것입니다.
3. 기도한 후 사람이 사랑스럽게 보이는 기도
기도는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기도 하지만 기도자를 변화시키기도 합니다.
그래서 생기는 기도자의 변화는 환경을 변화시키는 놀라운 파워를 가지고 있습니다.
즉 기도를 통해 야곱이 변화될 때에 에서도 변화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런데 어떤 분은 기도하고 난 후에도 사람에 대한 미움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십시오. 그런 기도에 하나님이 응답하시겠습니까?
때로 사람에 대해 실망할 수도 있고, 인간관계로 배신감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간절히 기도하고 난 후에도 아직 그 미움의 앙금이 남아 있으면 될까요?
아닙니다. 기도 전에는 미움이 있어도, 기도 후에는 그것이 없어져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진실한 기도를 한 셈이 되고, 그런 기도에 하나님이 기쁘게 응답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기도로 하나님과 사귀는데 우수한 사람은
사람과 사귀는데도 우수할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정말 그렇지 않습니까?
때로 갈등의 순간, 싫은 순간이 있어 참기 힘들지만 기도하면 참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진실하게 기도하며 나의 부족함에 대해 하나님께 울부짖고 난 다음에는
신기하게 우리가 싫어하는 사람도 용서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그런 마음을 얻는 것은 기도함으로 얻는 가장 큰 축복의 열매가 아닙니까?
우리의 기도는 영혼에 대한 사랑이 가득한 기도여야 합니다.
주님의 기도가 그런 기도였고, 지금도 주님은 우리를 위해서 그렇게 기도하십니다.
왜 요한복음 17장에서 주님께서 우리가 은혜로 하나 되기를 위해 기도합니까?
나 홀로 신앙은 건강한 신앙이 되기 힘들고 건강한 인격을 얻기도 힘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을 하면서 교회에서는 교우로 지내셔야지 혼자 지내서는 안됩니다.
하와가 혼자 있을 때 유혹을 받았습니다. 혼자 지내면 유혹 받기가 쉽습니다.
그리고 혼자 있으면 아무리 많이 알고, 많이 기도해도 실패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한 후 하나됨을 회복하기 위해 더욱 노력하고 힘써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드리는 기도가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능력 있는 기도가 될 것입니다.
4. 기도가 헌신의 땀으로 발전하는 기도
기도는 조금 전에 말했듯이 요구라기보다는 복종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기도는 입으로 한을 토로하는 것보다는 실천을 위한 다짐이어야 합니다.
그처럼 사명을 감당하려는 사람들의 겸손한 부르짖음이 바로 기도이기 때문에
기도의 능력을 아는 사람은 그 삶이 참으로 적극적이고 긍정적이 됩니다.
어떤 그 교회의 한 남자 구역장은 중학교까지밖에 나오지 않았는데
구역 식구들을 자기 식구처럼 챙겨주고 기도하는 참으로 성실한 구역장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구역식구가 5명에서 10명이 되고, 그 중에 대학교수가 3명이나 되었습니다.
그런데 대학교수들이 이 기도하는 구역장을 얼마나 잘 따르고 존경하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그 교회 목사님이 그 구역장에게 '총장구역장'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습니다.
대학교수가 세 명이나 구역에 있는데 기도로 그들을 세워가니 총장답지 않습니까?
그런 분들은 기도가 삶에서 그대로 행동으로 나타나니 얼마나 소중한 분입니까?
그처럼 "믿습니다"에서 끝나지 말고 믿음을 실천해 열매 맺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어떤 학생은 열심히 철야기도를 하지만 그 다음 날 아침 수업 시간에 빠집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생각하실까요? 그런 경우에는 지혜롭게 행동해야 합니다.
그래서 교회의 공식 철야보다는 개인 형편에 따른 철야가 좋다는 말도 합니다.
어찌 되었건 우리의 기도생활은 실생활의 충성과 책임완수를 뒷받침해야 합니다.
그런 뒷받침이 없는 기도는 자칫 하면 허무한 믿음, 허무한 기도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도한 후에는 반드시 땀을 흘려야 하고 준비를 해야 합니다.
기도하지 않고 흘리는 땀과 기도한 후에 흘리는 땀은 확실히 다르지 않습니까?
회의를 주재할 때에도 기도로 모든 상황을 정제한 후 인도하면 얼마나 잘됩니까?
그러나 기도 없이 회의하면 회의 시간만 늘어나 회의(會議) 시간을 회의(懷疑)하게 만듭니다.
어떤 것이든지 기도 후의 땀이 필요합니다. 목사가 설교를 그냥 하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성도 한 분의 마음에 웃음을 드리기 위해, 감동과 깨달음을 드리기 위해
목회자는 상당히 많은 시간을 하나님 앞에서 진통해야 한다는 것을 아십니까?
예수원에 가면 "기도는 노동이다"라는 팻말이 있습니다. 땀도 기도인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기도하면 땀 흘릴 곳이 보입니다. 그러면서 점차 책임적인 교인이 됩니다.
참으로 신기합니다. 기도하지 않는 분들에게는 교회에 떨어진 휴지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기도할 줄 아는 책임적인 교인에게는 휴지가 보입니다. 보이도록 기도하십시오.
기도하면 변화가 없다구요? 그런 시각의 변화가 얼마나 큰 변화인 줄 아십니까?
축복이 그저 옵니까? 그런 시각의 변화와 태도와 인격의 변화가 없이 축복이 옵니까?
만약 그런 변화 없이 주어지는 축복이라면 그것을 오히려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피흘림이 없으면 죄 사함이 없듯이 땀흘림이 없으면 축복이 없는 줄 알아야 합니다.
그처럼 땀을 준비하는 기도가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이는 기도가 될 것입니다.
5. 하나님에 대한 전폭적인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기도
오늘날 왜 사람들이 간절히 기도하지 않습니까? 너무 머리가 좋고 빨라서입니다.
쉽게 말하면 하나님을 전폭적으로 신뢰하지 않습니다. 비상구가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겉으로는 기도하는 척 하면서 속으로는 인간적인 방법을 다 동원합니다.
그리고 기도한 후에도 응답되지 않을 상황까지 예측해서 대비를 해 놓습니다.
그러니까 그 기도가 간절한 모습이 되지 않습니다. 이것이 딜레마입니다.
이 말은 준비하지 말고, 땀도 흘리지 말고, 예측도 하지 말라는 말이 아닙니다.
대비도 해야 하고, 비상구도 마련해야 합니다. 그런 것들을 무시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들과 함께 우리는 전폭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며 간구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기도하는 사람에게 가장 심각한 병은 자기를 믿는 태도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피조물의 겸허함을 가지고 무릎을 꿇을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문제는 거대한 산으로 보이지 않고 하나님이 나를 두르는 산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기도할 때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고 기도 후에도 믿음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조지 뮬러는 "기도할 때 기도시간보다 기도 끝나고 15분 후가 더 중요하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기도 끝나고 15분쯤 지나면 환경이 보이며 다시 믿음이 흔들리기 때문입니다.
그처럼 자주 흔들리는 사람이 성공한 예를 보셨습니까? 굳건해야 합니다.
무엇이 우리의 흔들림을 막아줍니까?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기도가 아니겠습니까?
사람들은 누구나 행복을 기대하지만 그것을 위해 눈물로 기도하는 사람은 적습니다.
그것이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가 아닐까요?
기도는 오늘날의 정보 통신시설과도 같습니다. 그 통신이 두절되면 안됩니다.
이번에 사순절 릴레이 기도라는 틀을 활용해 같이 기도하려고 합니다. 동참하십시오.
우리는 무엇보다 기도의 뒷받침으로 우리 인생의 승부를 걸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 자신이 기도가 없어도 될 정도로 유능하다고 생각하는 모습은 없어야 합니다.
기도가 없는 유능함은 예측 못한 부끄러움을 잉태하고 있는 것인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기도하면 큰 의미의 실패는 없을 것입니다.
기도에는 실패가 없습니다. 기도는 실패할 리가 없습니다. 실패해도 잠시 뿐입니다.
그리고 지금 기도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지금 승리하고 있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돈 아래 있는 가정은 망해도 무릎 아래에 있는 가정은 결코 망하지 않습니다.
학벌 아래에 있는 자녀는 망해도 눈물의 자녀는 망하는 법이 없습니다.
사람 아래 있는 교회는 무너져도 기도의 입김이 곳곳에 도사린 교회는 무너지지 않습니다.
거름을 많이 준 나무는 반드시 무성하게 잎이 나고 열매는 거두듯이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반드시 여러 종류의 열매를 맺게 하실 것입니다.
기도를 통해 풍성한 열매를 거두며 사는 귀한 성도님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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