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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에 하나님의 뜻은? 마25:21

by 【고동엽】 2023. 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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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이스턴 대학에서 수 년 동안 가르쳤습니다.

그때 대학생들이, 계속적으로 제게 물었던 질문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제 인생에, 저를 통해 하기 원하시는 일을, 제가 어떻게 알 수 있나요?’

대단히 훌륭한 질문이지요.

그런데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제가 그 질문에 결코 대답을 줄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우리가 미래를 내다보는 것을 원하신다’는 것을, 제가 확신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확신하는 바, 예수님이 우리를 통해 하시기 원하시는 일은, 바로 이것입니다.

‘오늘 내가 무슨 일을 해야 하는가?’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죠.

‘내일 일을 염려(생각)하지 말라, 내일 뭘 먹을까, 뭘 마실까..를 생각하지 말라.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다.’

 

당신은 정말, 오늘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하실 의향이 있으십니까?

이것이 바로, 궁극적인 질문입니다.

 

매일 당신은 일어나자마자 이렇게 말하고, 생각해 보십시오.

‘이 날은 주님이 지으신 날이다. 오늘 하나님은 나를 통해 무슨 일을 하기 원하실까?

오늘 하나님이 나를 통해 이루고 싶으신 일은 무엇일까?’ 이것이 중요합니다.

 

▲제게 마이크 야키넬리 라는 목회자 친구가 있었습니다.

하루는 그가, 어느 믿음이 미지근한 집사님에게 부탁했습니다.

 

‘오늘 청년들이 한 달에 한 번, 요양원을 방문해서 예배드리는 날인데,

집사님이 운전을 좀 해 주시겠어요?

집사님은 오직 운전만 하시면 됩니다. 찬양이나 기도 같은 다른 봉사는 안 하셔도 됩니다.’


집사는 미적거리며 동의했습니다.

그가 요양원을 방문한 첫 날이었습니다.

그는 강당 맨 뒤편에 서서 팔짱을 끼고,

저 앞에서 청년들이 예배를 인도하는 것을 지켜만 보고 있었습니다.

 

그때 깜짝 놀랐는데, 누가 자기의 팔을 잡아끄는 것이었습니다.

주위를 살펴보니, 어떤 늙은 노인이 휠체어에 앉아서, 자기 팔을 붙들고 있었습니다.

그 집사도 남은 팔로, 그 노인의 손을 잡아 주었고,

그 노인은 그 예배시간 내내, 그 집사의 팔을 붙들고 있었습니다.

 

다음 달이 되었고, 한 달에 한 번 방문하는 요양원 예배 때,

똑같은 일이, 그 집사에게 일어났습니다.

휠체어에 앉은 노인 할아버지가, 그 집사의 팔을 붙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갔습니다.

그 다음 달에는, 그 휠체어 탄 노인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집사는 요양원 직원들에게 물어보았습니다. 누가 이렇게 말해 주었습니다.

 

‘오, 그 분은 지금 아래 층 복도 세 번째 방에 계세요.

그는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는 무의식 가운데 있습니다.

만약 집사님이 가서 기도해 주기 원하시면, 그렇게 하셔도 됩니다.’

 

그래서 그 집사는 아래층으로 내려가서, 그 노인이 누워있는 방으로 찾아갔습니다.

보니까 몇 개의 튜브를 꽂고 있었고, 의료장비의 전깃줄들이 어지럽게 널려있었습니다.

 

집사는, 그 노인의 손을 잡고서, 위해서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분을 편안히 천국에 영접해 주십시오.

이 세상에서 저 천국으로 안전히 인도해 주시고, 영생을 주시기를 기도했습니다.

 

그 믿음도 별로 없는 집사님이 기도를 막 끝내자,

그 노인은 그 집사님의 손을 꽉 쥐었습니다.

집사는, 그 노인이 자기 기도를 들었다는 것을 직감했습니다.

또한 고맙다는 표시일 수도 있겠지요.

 

집사는 너무 감동을 받았습니다. 눈물이 그의 볼을 타고 흘렀습니다.

다시 노인은 조용해졌습니다. 혼수상태로 다시 돌아간 것입니다.

그는 비틀거리듯이 그 방을 나오다가, 어떤 연세 든 아주머니와 부딪힐 뻔 했습니다.

 

그 아주머니가 이렇게 집사에게 말해 주었습니다.

“그 분(노인 할아버지)은, 당신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분은 ‘내가 예수님의 손을 한 번 더 잡기 전에는 죽을 수 없다’고 말했지요.”

 

그 말을 듣고, 집사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물었습니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네, 저희 아버지가 말씀하시기를

‘한 달에 한 번씩 예수님이 이 요양원에 오셔서, 내 팔을 붙잡아 주신단다.

한 시간 동안이나 내내 내 손을 붙들어 주시지.

나는 죽기 전에, 그 예수님의 손을 한 번만 더 붙잡아 보고 싶어!’

 

▲‘내 삶에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저는 그것을 이렇게 생각합니다.

‘내 삶에 하나님의 뜻이란, 오늘 내가 처한 자리에서, 예수님처럼 행하는 것입니다.’

어떤 절실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그들에게 예수님이 되어주는 겁니다.

 

우리 주위에 보면, 여러 이유로 상처 입은 사람도 있는데,

그래서 그들은 위로자 예수님을 필요로 하는데,

그 역할을 내가 감당하는 것입니다.

뭐, 하나님의 뜻을 먼 미래에, 또한 거창한 일에서 찾으려 하지 마십시오.

 

내 주위에 살펴보면, 외로운 사람도 있습니다.

그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격려의 미소와, 말을 건네는 예수님이 되어주어야 합니다.

 

◑내가 그들에게 ‘예수님’이 되어주려면, 3가지가 필요합니다.

 

▲1. 그런데 이렇게 하려면, 먼저 사람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이웃 사람을 믿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이웃 사람을 믿습니다.

왜냐면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듯이, 그 이웃도 사랑하신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절망적인 사람이라도, 그들의 잠재력과, 미래의 가능성을 믿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이웃 사람을 믿으실 수 있겠습니까?

내가 하나님을 믿으므로, 하나님의 자녀인 그를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부모들도, 자기 자녀를 믿어야 합니다.

자녀들도, 부모를 신뢰해야 합니다.

 

오늘날, 교회를 신뢰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는데요,

하나님이 살아계셔서, 교회를 운행하시고 붙들고 계심을 믿어야 합니다.

혹시 교회가 지금 흔들거려도, 곧 다시 건강성을 회복할 것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을 바라보시며, 그들을 다 믿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창기와도 만나셨지만, 창기를 창기로 만나신 것이 아닙니다.

창기를 ‘사랑스런 자녀’로 만나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믿어주셨기 때문에, 심지어 갸룟유다까지요,

설령 그들이 나중에 실패한다 하더라도, 그건 내 비즈니스가 아니지요.

 

그들의 변화될 미래의 가능성을 내다보셨기 때문에,

예수님은 그들에게 사랑을 베풀어 주실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각자도, 누군가에게 내가 예수님처럼 되어주려면,

먼저 그 사람들을 믿어야 합니다.

 

▲2. 둘째는, 우리는 사람을 용서해 주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자기를 의탁한 것은,

예수님은 ‘용서자’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죄인이라도

예수님은 다 용서해 주시고, 용납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고, 예수님의 피와 DNA가 흐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예수님처럼, ‘용서의 사람’이 되는 게 가능합니다.

 

더욱이 나 같은 죄인도, 주님께 용서를 받은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내가 용서치 못할 죄인이, 세상에 어디에 있겠습니까.

 

저 토니 캄플로는 교도소 선교를 하는 척 콜슨과 함께 사역할 때도 있습니다.

한번은 제가, 척 콜슨과 그의 전도팀과 함께, 어느 교도소를 방문해서,

재소자들과 함께 예배를 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다 마치고 교도소 바깥에 나와 보니까, 한 사람이 부족했습니다.

전도팀원 한 사람이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깜짝 놀라서, 교도관을 대동하고, 팀원 한 사람을 찾으러

다시 교도소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가보니까, 그 팀원이 한 수인과 감방 안에서,

강당 예배실이 아니라, 감방 안에서,

한 수인과 무릎을 꿇고 함께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빨리 나오라고 재촉하니까, 비로소 그가 무릎을 펴고 일어나 나왔습니다.

 

‘도대체 무슨 영문입니까?’ 그러자 그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브류어 판사입니다. 저 수인은 제가 사형 판결을 내린 사람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를 용서하는 기도를 드린 것입니다.’

 

▲3. 하나님의 뜻은, 먼데서 찾지 말고, 먼 미래에서도 찾지 말고

오늘날, 내 주위에서 얼마든지 그 뜻을 행할 수 있는데,

그렇게 하려면, 내가 ‘무조건적인 사랑’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당신은, ‘무조건적인 사랑’을 갖고 있습니까?

이것, 저것 다 따지는 조건적인 사랑을 갖고는, 결코 사람을 사랑할 수 없다는 뜻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내가 주위에 예수님처럼 되어주려면, 이게 하나님의 뜻인데

-먼저, 그들을 믿어야 하고요,

-다음으로, 그들을 용서해야 하고요,

-또한 그들에게 무조건적 사랑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서두에 설명 드린, 요양원 노인에게, 어느 집사님이 베푼 사랑처럼 말입니다.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니,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라. 마25:21, 23

여러분, 미국이 이라크 전에 참전하는 것이 옳은 일인가?

바그다드를 폭격해야 되는가?

 

또는 두꺼운 신학책을 펴고서, 어려운 용서를 써 가며 신학을 논의하는 것.

그런 모든 크고 중대한 일들이, 세상에 다 필요하겠지만,

 

그런데 정작 성경을 자세히 읽어보십시오.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그런 크고 거창한 일을 하라고, 명하신 것이 아닙니다.

 

정작 예수님이 우리에게 명하시고,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바는,

오늘, 내 주위에

소자에게, 연약한 자에게, 병약한 사람에게, 가난한 사람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보여주라는 것입니다.

 

그럼 평생 그렇게 작고 평범한 일만 하다가 죽을 것인가요?

그렇게 하더라도, 그는 ‘예수님의 뜻대로 산 삶’으로서

정말 후회가 없는, 성경적으로 성공적인 삶을 사는 것이고,

영생의 관점에서 잘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도 가치가 있는 삶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니,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마25:21, 23

 

여러분은, 크리스천으로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며 살기를 원하실 겁니다.

그걸 너무 거창하게만 생각하지 마십시오.

 

오늘 여러분이 가시는 식당에서,

여러분이 일하는 직장의 복도에서,

또한 직장에 찾아온 민원인/ 거래처 사람들에게,

오늘 우리가 만나는 몇몇 사람들에게

‘과연 예수님은, 그들을 어떻게 대하셨을까?’

 

그것을 고민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여러분의 삶에 이루시는 겁니다.

 

..........................

 

관련글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삶이란?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살전4:3

 

<어떤 직업을 갖는가 보다, 어떤 직업인이 되는가? - 그것이 더 중요하다>

 

▲의학을 할까? 신학을 할까? 진로로 고민하다

대학시절 나는, 졸업 후 의학신학 중 한쪽을 택일해야 하는 힘든 시기가 있었다.

나는 수개월간 그 문제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기도했고, 조언을 구했고, 양쪽의 장단점을 심사숙고 했다.

어느 쪽이 내 인생을 향한 진정한 하나님의 뜻인지 알고 싶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어느 한 쪽을 선택한 내 선택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 마음이 흔들렸다.

 

큰 갈림길에 다다른 나그네가 이정표가 없어 당황하는 것처럼,

나는 바른 길로 들어선다는 분명한 확신 없이 선택을 해야 했다.

그래서 마음이 어지럽고 착잡했다.

 

▲마침내 나는 깨달았다

의학을 하든, 신학을 하든.... 그 선택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

어느 직업도, 그 자체로 좋거나 나쁜 것은 별로 없다.

의사와 목사도 예외는 아니다.

 

한편으로 나는 제2의 슈바이처나, 제2의 빌리 그레이엄이 될 수 있겠지만

다른 한편으로 제2의 나치당 의사나, 제2의 사기꾼 전도자가 될 수도 있었다.

 

어느 길을 가든 결국 내 장래는

내 성품의 성숙도와, 믿음의 깊이와, 능력의 정도에 달린 일이었다.

 

마침내 나는  의학이냐 신학이냐를 택일하는 것이

문제의 요지가 아니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날마다 내리는 작은 선택-성실한 학생, 자상한 남편, 훈련된 크리스천이 되는 것-

에 충실하지 않는 한,

내가 어느 길을 선택하든

선택이 내가 원하는 풍성한 삶에 인도해 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렇듯 미래에 관해 큰 결정을 내려야 할 때 우리는 전혀 안달할 필요가 없다.

내 삶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놓칠지 모른다는 끔찍한 가능성 때문에 염려할 필요 없다.

단순히 현재 이미 알고 있는 일을 행하기만 하면 된다.

 

어느 길을 가느냐의 선택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느 길을 가더라도, 어떤 가치관을 갖고 가느냐의 문제이다.

올바른 성경적 가치관을 갖고 거기에 순종하며 간다면....

사실 어느 한쪽 길을 선택하는 것은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어느 쪽을 선택하더라도,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의학과 신학 사이의 선택 -

우리 앞에는 그런 선택이 많이 있고, 그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이런 선택은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것이다.

 

어떤 사람이 되어 하루하루를 어떻게 살 것인가

- 그 선택이 나머지 모든 것의 궤도를 결정한다.

 

미래보다는 오늘!

성경에 미래를 위한 하나님의 뜻에 대한 말은 별로 없고

오늘 그분의 뜻을 이루기 위해 해야 할 일이

그토록 많이 나와 있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 아닐까.....

 

(미래의 하나님 뜻을 구하기 전에

오늘 하나님 뜻대로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으로 이해함.

성경은 그것을 가르친다는 것)

 

*출처: 제럴드 L. 싯처, 「하나님의 뜻」성서유니온선교회 pp. 15-25

 

출처 : https://rfcdrfcd.tistory.com/15976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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