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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 중에도 기뻐하라 (사도행전 5장 40-41절)

by 【고동엽】 2023. 1. 18.

고난 중에도 기뻐하라 (사도행전 5장 40-41절)< 문제가 없는 곳은 없다 >

 한 남편이 아내를 따라 교회에 나왔다. 그런데 교회에 다니면서 마음에 안 드는 모습이 너무 많이 보였다. 교회에 오면 자기를 잘 대우하고 사랑해줄 줄 알았는데 의외로 친한 사람끼리만 똘똘 뭉쳐있었다. 봉사하고 싶어도 기존 교인들이 비집고 들어갈 틈을 주지 않았다. 교인들이라면 정직하게 살 줄 알았는데 별로 정직한 것 같지 않았고 용서와 양보가 많을 줄 알았는데 가끔 사소한 일로 다퉜다.

 그 모습에 실망해서 구경꾼처럼 있다가 신도시로 이사했다. 마침 집 앞에 작은 교회가 있어 등록했는데 거기서는 등록하자마자 감투란 감투는 다 씌워줬다. 자신도 신났다. 처음에는 목사와 호흡이 척척 맞아서 목사를 도와 멋진 교회를 만들겠다고 했다. 그런데 1년도 안 되어 목사와 이견이 생겨 상처를 받았고 목사도 자기를 걸림돌로 여기는 것 같았다. 서로에 대한 기대가 컸기에 환멸도 컸다. 결국 교회를 옮겼는데 거기서도 또 상처받고 실망했다.

 잠시 교회 출석을 포기하고 가정예배로 대신하기로 했지만 그 결심도 얼마 가지 못했다. 그래도 주일성수를 해야 한다는 믿음은 있어서 어딘가 좋은 교회가 있겠지 하고 매주 여기저기 교회를 순례했지만 대부분 마찬가지였다. 문제가 없어 보여도 조금 깊이 들어가면 문제가 있었다. 점차 자기를 반겨주는 교인들과 목사의 환대도 순수하게 보이지 않았다. 그처럼 냉소와 비판으로 교회를 순례하면서 그 부부가 거쳐 간 교회가 25개가 넘었다.

 문제가 없는 교회도 없고 고난이 없는 인생도 없다. 중요한 것은 극복이다. 왜 하나님이 신실한 성도에게 고난을 주시는가? 잘 극복해서 하나님이 쓰실만한 성도가 되라는 뜻이다. 고난이 있다고 해서 하나님을 무심하다고 하지 말라. 그때도 하나님의 선한 섭리를 인정하고 감사하라. 하나님이 고난을 허락하신 선한 목적이 있다. 하나님은 무심하지도 않고 어디로 가지도 않고 여전히 나를 사랑하신다.

 어느 날 한 목회자 딸이 난생 처음 말도 없이 주일예배에 빠졌다. 그때부터 목회자는 딸을 전략적으로 철저히 외면했다. 몇 년간 그렇게 하자 남들이 말했다. “아빠가 너무 사랑도 없이 잔인하다. 먼저 사랑으로 손을 내밀어야 한다.” 그러나 그 아빠는 겉으로는 외면했지만 딸을 위해 기도하며 무수한 사랑의 손길을 은밀히 펼쳤다. 그 사실을 사모만 알았다. 남들은 피상적으로 아빠가 사랑도 없다고 말했지만 사모는 딸을 얼마나 사랑하면 저렇게 하느냐고 생각했다. 결국 딸이 변화되었다. 말로만 사랑하는 것과 진짜 사랑하는 것은 다르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녀의 성숙을 위해 때로는 고난도 허락하신다. 그때 불평하지 말고 “하나님이 얼마나 나를 사랑하면 이런 고난을 펼치실까?” 하면서 더 하나님께 바로 서려고 하라. 말로만 믿음이 크고 사랑이 많은 것처럼 하지 말라. 고난 중에 어떻게 행동하느냐가 중요하다. 나의 고난에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다고 믿으라. 내가 속한 진영이나 공동체의 고난에도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다. 역사의 이면에서 역사를 정의롭게 운행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있음을 굳게 믿으라.

< 고난 중에도 기뻐하라 >

 공회원들은 사도들을 불러 채찍질한 후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고 놓아주었을 때 사도들은 예수님의 이름을 위해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겨짐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났다(40-41절). 사도들은 복음을 전하면 고난이 당연히 있을 줄 알았고 고난을 성도의 표식으로 여겼기에 고난 중에 오히려 기뻐했다. 심리학에서 맞을수록 쾌감을 느끼는 사람을 마조히스트(masochist)라고 하는데 사도들은 예수님을 위해 당하는 고난을 오히려 기뻐하는 거룩한 마조히스트처럼 살았다.

 누가 조용히 있으라고 하고 심지어 고난과 손해가 예상되어도 예수님을 향한 사랑과 복음의 열정을 포기하지 말라. 20세기의 최대 실천신학자인 본회퍼는 조용히 있으라는 독일 정부의 명령을 듣지 않아 결국 교수형에 처해졌지만 후세 사람들은 그를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행동하는 양심’으로 일컬었다. 거룩한 비전을 따라 선한 일을 할 때는 끈질기게 하고 고난 중에도 쉽게 후퇴하지 말라. 끈질긴 좋은 고집과 완고한 나쁜 고집은 다른 것이다. 좋은 일에 끈질긴 고집은 복된 은사다.

 왜 하나님은 믿음이 좋은 제자들에게 고난을 허락하셨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그 고난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사도행전 7장에는 스데반 집사의 순교 장면이 나오는데 그의 순교와 함께 예루살렘 교회에 대한 핍박이 있었기에 제자들이 사방에 멀리 흩어지면서 복음이 안디옥을 거쳐 로마까지 힘차게 뻗어나갈 수 있었다.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은 어려울 때 더욱 나타난다. 환경이 좋아야 믿음이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못 살고 불편해도 잘 믿고 잘 살고 편해도 잘 믿는다. 반대로 믿음이 없는 사람은 편하면 편해서 못 믿고 힘들면 힘들어서 못 믿는다. 기도 안 하는 사람은 시간이 없으면 시간이 없어서 기도를 못한다고 하고 시간이 있으면 다른 일 때문에 기도를 못한다고 한다. 반면에 기도하는 사람은 잘돼도 기도하고 못돼도 기도하고 바빠도 기도한다. 능력이 없는 사람은 이것 때문에 못하고 저것 때문에 못한다고 하지만 능력이 있는 사람은 좋은 환경에서도 일을 잘 하고 나쁜 환경에서도 일을 잘 한다.

 어려움이 없어야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 어려움을 극복해야 성공한다. 교회도 어려움이 없어야 부흥하는 것이 아니라 어려움을 극복해야 부흥한다. 초대교회에서 사탄은 여러 모양과 방법으로 교회를 핍박했지만 그것 때문에 교회는 더욱 힘 있게 바로 서면서 복음도 멀리 퍼질 수 있었다. 고난 중에도 믿음을 잃지 않으면 고난은 축복 기회가 되고 더 나아가 인생과 사랑의 참된 실체가 무엇인지도 가르쳐준다.

 어떤 지역에서 길을 한 번도 잃어버린 적이 없으면 그 지역을 오래 다녀도 세세히 잘 모른다. 반면에 길을 잃어버려서 지도도 보고 물어도 보면서 헤맸었던 사람은 그 지역의 지리와 상황에 대해 조금 더 세세히 알게 된다. 그처럼 환난을 잘 극복하면 영혼은 더욱 지혜롭게 되고 더욱 축복 받을만한 재목이 된다. 고난은 인생길을 편하게 만들지 않다. 다만 그로 인해 적어도 인생길을 잃지는 않는다. 고난의 산고는 참된 진리와 자유를 낳게 한다. 고난 때문에 질려서 약해지지 말고 질기고 단단해지라.

 은혜 받고 성령 받았다고 다 좋은 교인이 되지 않고 평화롭고 문제가 없다고 다 좋은 교회가 되지 않는다. 좋은 교인과 교회가 되려면 한 가지 더 받아야 한다. 바로 고난이다. 고난을 극복할 때 더욱 담대하고 성숙한 믿음이 생긴다. 문제와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문제와 고난 중에 오히려 기뻐하고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하나님을 더욱 믿고 의지해서 문제와 고난 후에 주어지는 영광스런 축복의 주인공이 되라.

< 고난을 극복하고 승리하라 >

 역사상 많은 인물들이 고난을 당했지만 그 고난을 잘 극복해서 작품 인생을 만들었다. 오래 전에 1불에 팔렸던 미술 작품이 오늘날 경매에서 1억 불에 팔리기도 한다. 한 사람의 가치도 시간이 지나면서 혹은 사후에 더 빛나는 경우도 많다. 특히 성도의 가치는 천국에서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사람이 평가하는 현세적인 가치에 너무 목을 매어 울거나 웃지 말라. 인생의 참된 가치는 오직 하나님만이 온전히 평가하실 수 있다.

 예수님은 사람을 죽인 후에 더 이상 아무 것도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죽인 후에 심판까지 하실 하나님을 두려워하라고 하셨다(눅 12:4). 복된 삶을 살려면 하나님만 두려워하고 다른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 안에서는 어떤 극심한 고난도 얼마든지 작품 인생의 재료로 만들 수 있다.

 성도는 어떤 고난도 극복해낼 수 있고 마음과 영혼으로 얼마든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 고난 때문에 꿈과 뜻을 포기하지 말라. 나를 통해 지금부터라도 위대한 일이 얼마든지 이뤄질 수 있음을 믿으라. 세상의 빛이 되고 남들을 행복하게 하려고 십자가의 노력과 고통을 감수하고 고난에도 선제적으로 대응하라. 어디서든지 좋은 일에 자기를 바치려고 하면 얕은 상처는 입어도 깊은 상처는 입지 않고 인생 자체가 몰락하는 일은 없다. 진리를 사랑하고 더 나아가 진리를 위해 고난을 감수하면 언젠가 일어서고 올라설 때가 온다.

 왜 고난 중에도 기뻐하며 끈질기게 살아야 하는가? 나를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어디서든지 좋을 일을 할 수 있다. 어떤 상황에서도 꿈과 비전과 사명을 포기하거나 절망하지 말라. 나를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이 고통에 처하게 하셨다면 그것도 하나님의 뜻이다. 그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며 비참한 상황에서도 스스로를 격려하며 살라. 하나님을 꼭 붙잡고 살면 고난 중에 사라지지 않고 살아진다.

 내가 아무런 이유 없이 지금의 현실에서 사는 것이 아니다. 나의 현실에는 하나님의 선한 목적과 사명이 담겨 있다. 그 목적과 사명을 따라 힘써 살다가 때가 되어 하나님이 오라고 하면 기쁘게 하나님 품으로 떠나라. 지금의 현실에서 영혼 구원에 힘쓰라. 세파와 시류에 그냥 떠밀리듯이 살지 말고 욕심과 본능의 인력에 끌려 살지 말라. 남은 인생을 남과 비교하면서 남의 인생으로 살지 말고 내 인생으로 살라. 고난 중에도 하나님의 선하신 뜻과 길에서 이탈하지 말고 교회를 잘 섬기며 결국 승리하는 복된 성도가 되라.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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