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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개오가 축복받은 이유 (누가복음 19장 1-10절)

by 【고동엽】 2023. 1. 18.

삭개오가 축복받은 이유 (누가복음 19장 1-10절)1. 예수님을 추구했기 때문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려고 예루살렘으로 가기 며칠 전에 삭개오가 살던 여리고에 잠시 들리셨다(1절). 삭개오는 부자 세리장이었지만 백성들로부터 사람취급도 받지 못했다. 동족의 혈세를 빨아 로마 정부에 바치는 앞잡이로 여겨졌으니 얼마나 괴로웠겠는가? 그는 가끔 생각했을 것이다.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가?” 중년에 자기 인생을 돌아보면서 가족도 모르는 고민에 빠졌을 것이다. 인생에는 돈과 권력이 풀지 못하는 내면의 문제가 많다. 그 문제를 보는 눈이 열려 돈보다 귀한 것을 삭개오는 찾고 있었을 것이다.

 그때 사람들이 예수님의 명성을 듣고 모여들자 삭개오는 예수님이 어떤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했지만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앞으로 달려가서 보려고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갔다(3-4절). 진리와 행복을 막는 2대 걸림돌은 “내가 키가 작다.”라는 내 탓 의식과 “나를 막는 사람이 많다.”라는 남 탓 의식이다. 그런 의식의 한계에 갇혀 살지 말라.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 내달려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가면 자기 한계를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다. 믿음이란 하나님을 향해 열정적으로 나아가고 하나님을 배경으로 자기 한계를 극복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열정적으로 찾을 때 만나주신다. 하나님을 만나려면 예배에 힘써 참석하고 열린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해 봉사하고 고난 중에도 믿음을 포기하지 말라. 하나님 이외의 것을 노리고 계산적으로 하나님을 추구하지 말라. 순수한 동기를 가지라. 하나님을 순수하게 사랑하기보다 물주처럼 생각하고 믿지 말라. 믿음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지 ‘소원성취를 위한 수단’이 아니다. 물질과 성공과 기적을 얻으려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진짜 사랑이 아니다.

 한 남편이 아내를 매우 사랑했다. 특히 순수함을 사랑했다. 결혼 전에 선을 볼 때 자신이 사회적으로 유력한 집안 출신임을 알고 대부분 그런 배경을 생각했는데 그의 아내만은 자신을 순수하게 사랑해서 그 모습에 끌렸다. 순수한 사람은 순수한 사람을 좋아한다. 하나님은 더욱 그렇다.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얻으려면 순수하게 하나님을 사랑하라. 축복과 기적과 성공을 노리고 하나님을 찾으면 진짜 축복은 멀어진다. 하나님이 없는 성공은 성공이 아니다. 반대로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실패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재료가 된다.

2. 체면을 버렸기 때문

 삭개오는 부와 권력을 가졌기에 교만할 수 있었고 세리장으로서 나이도 꽤 들었을 것이다. 그런 사람이 예수님을 보겠다고 체면을 버리고 돌무화과나무로 올라갔다.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가면 그의 키 작은 콤플렉스는 더 드러나지만 그래도 올라갔다. 그처럼 예수님을 만나기를 원하면 체면을 버리는 자기 파괴의 아픈 시도가 필요하다. 진리를 찾는데 체면이 걸림돌이 되지 않게 하라. 진리와 구원은 체면이나 자존심보다 소중하다.

 하나님 앞에는 내세울 것이나 숨길 것이 없다. 나를 버리고 내 모습 이대로 받아달라고 하라. 진리에 붙잡히려는 자기 파괴를 힘써 시도하라. 로켓이 우주로 나갈 때 가장 힘든 일은 대기권을 탈출하는 일이다. 그 짧은 순간을 위해 로켓이 가진 전 에너지의 4분의 3을 쓴다. 그러나 대기권을 빠져나가면 자유가 있다. 나를 끌어내리는 잘못된 습관 중력을 뚫고 나가기가 힘들어도 뚫고 나가면 자유와 다른 차원의 행복이 있다.

 삭개오는 사회적인 습관 중력을 뚫으려고 체면을 다 버리고 돌무화과나무에 올라앉았다. 대기권과 같은 체면의 껍질을 힘써 깨뜨리라. 내가 죄인임을 모르면 하나님 앞에서도 체면을 생각하지만 내가 죄인임을 알면 체면을 버릴 수 있다. 체면을 잘 버리라. 사회적인 지위와 체면의 껍질에 갇힌 삶에서 해방될 때의 자유와 기쁨을 생각해 보라. 껍질의 화려함은 생명력이 짧지만 껍질을 깨고 내용으로 승부하면 생명력이 길다.

 맹인 바디매오가 예수님이 부르신다는 말을 듣고 겉옷을 내버리고 일어나 예수님께 나아왔다. 예수님이 “네게 무엇을 해 주기를 원하느냐?”고 하자 그가 말했다. “선생님! 보기를 원합니다.” 결국 보게 되었다. 거룩한 척, 잘난 척, 아는 척, 안 괴로운 척, 부러움이 없는 척, 행복한 척 하는 겉옷들을 내버리라. 문제 해결의 길은 하나님 앞에 무릎 꿇는 길 밖에 없다. 자존심과 체면을 내버릴 때 하나님이 내 삶에 찾아오신다.

 하나님 앞에서 인간적인 옷을 잘 벗으라. 지식의 겉옷도 잘 벗으라. 조금 배웠다고 아는 척 하면 믿음이 깊어질 수 없다. 제대로 많이 배운 사람은 겸손하다. 지위의 겉옷도 잘 벗으라. 한 사단장 집사는 주일에 제일 먼저 교회에 와서 주보를 들고 교회 앞에서 안내하니까 부하 장병들이 큰 감동을 받는다. 지위가 높아질수록 겸손해지라. 감정의 겉옷도 잘 벗으라. 예수님 때문에 참고 마음의 상처를 잘 극복해서 기뻐하면 하나님의 위로와 축복이 넘치게 될 것이다.

3. 예수님을 영접했기 때문

 예수님이 삭개오의 열정적인 추구를 보고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고 하자 삭개오는 급히 돌무화과나무에서 내려와 즐거워하며 예수님을 영접했다(5-6절). 그는 계산이나 머뭇거림이 없이 즉시 예수님을 영접했다. 구원은 예수님을 영접할 때 주어진다. 예수님을 좋은 분으로 여기거나 멋지게 경배하는 것으로 끝나지 말고 내 마음과 가정과 삶의 주인으로 영접하라. 그때 하나님이 세상 끝 날까지 함께 해 주신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갈 때는 늘 베다니의 삼남매인 나사로, 마르다, 마리아의 집에 머무셨다. 그들이 예수님을 힘써 영접했기 때문이다. 왜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배반했는가? 자기 사상에 몰입되어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고 겉으로만 따랐기 때문이다. 사람의 사상은 시대에 따라 변한다. 내 생각과 사상과 자존심과 고집을 버리고 예수님을 온전히 영접하라. 그때 참된 회개가 나오고 날마다 동행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도 있게 된다.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은 구원받은 성도답게 살려는 것까지 포함한다. 당시 군중들은 예수님이 따돌림의 대상인 삭개오의 집에 들어간 것을 보고 수군거렸다. “어떻게 불결하게 저런 죄인과 어울리는가?” 그러나 부모가 자녀를 선한 길로 인도하려는 목적 하에 펼쳐진 ‘사랑의 외면’과 같은 조치를 제외하고 누군가를 부당하게 따돌리는 삶은 결코 복된 삶이 아니다. 그 사실을 깨우쳐 주려고 예수님은 보란 듯이 삭개오의 집에서 유하겠다고 하셨다.

 그때 삭개오는 예수님의 사랑과 의도를 깨닫고 감격하며 말했다. “주여 보소서, 제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았다면 네 갑절이나 갚겠습니다(8절).” 그는 회개의 표시로 소유의 절반을 선교와 구제를 위해 내놓았고 부당하게 속여 빼앗은 것에 대해서는 4배의 보상도 약속했다. 회개는 죄의 고백과 함께 삶의 변화를 수반해야 한다. 믿음에는 하나님의 선행적인 은혜와 함께 나의 변화도 요구된다.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 받지만 구원받은 후에는 더 나은 삶을 결단하고 실천하라.

 구원받은 성도로서 더 나은 삶을 결단하라. 특히 부당한 돈 욕심을 잘 버리라. 많은 사람들이 돈을 거의 신처럼 숭배하며 돈을 따라 직업과 배우자와 진로를 선택한다. 또한 돈 때문에 미워하고 거짓말하고 싸우면서 사탄에게 미혹될 때도 많다. 믿음이란 마음의 중심에 ‘돈을 둘 것인가? 하나님을 모실 것인가?’의 싸움이기도 하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한다고 하셨다(마 6:24). 돈에서 해방될 때 참된 믿음이 가능하다.

< 구원받은 성도답게 살라 >

 바른 헌금 생활은 바른 믿음의 표식도 된다. 청교도들은 주머니의 회개가 없으면 가짜 회개라고 했다. 삭개오는 회개 고백을 물질에 대한 욕심 극복의 고백으로 뒷받침했다. 그 고백에 담긴 진심을 알고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9-10절).”

 확신은 헌신으로 진전되어야 한다. 구원받은 성도답게 헌신을 결단하고 선교와 구제에 힘써 동참하라. 돈을 버는 목적도 ‘나누려고 번다’는 목적을 뚜렷이 하라. 돈을 잘 쓰는 사람이 소유하는 것은 돈을 못 쓰는 사람이 소유하는 것을 방지하는 의미도 있기에 돈을 벌 때도 사명감을 가지고 벌러. 행복은 돈의 소유로 좌우되지 않는다.

 2001년에 미국의 멧칼프 부부가 6540만 달러의 로또에 당첨되었다. 당첨 후 그들은 곧 이혼했다. 그 후 남편은 2003년에 음주운전과 법정다툼에 시달리다 45세에 죽고 아내는 2005년에 오하이오 강변의 대저택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 돈을 의미 있게 벌거나 의미 있게 쓰지 않으면 의미 있는 행복한 인생은 펼쳐지지 않는다. 미국의 한 연구에 의하면 거액의 로또 당첨자들의 90% 이상이 5년 만에 당첨 전보다 더 가난해져 있었고 더 불행을 느꼈고 더 정신과 병원을 찾았다. 돈 자체가 행복을 주는 것은 아니다.

 예수님은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고 하셨다(마 6:21). 말과 생각으로만 선교하지 말고 실제로 선교에 동참하라. 거룩한 선교 비전에 넉넉히 동참할 수 있는 능력 있는 존재로 준비되라. 돈을 벌 때도 사명감을 가지고 벌라. 가난이 한이 되어 돈을 벌려고 하면 그 목적을 이루기도 전에 영혼이 망가지지만 사명감을 품고 돈을 벌려고 하면 성취 가능성도 커지고 성취가 늦어져도 낙심하지 않고 성취 후에도 영혼을 잘 지킬 수 있다.

 인생에서 돈이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도 많다. 돈이 건강을 주는 것 같지만 때로는 병을 준다. 현대인의 많은 병은 못 먹어서 생기는 병이 아니라 잘 먹어서 생기는 병이다. 돈이 친구를 주는 것 같지만 진짜 친구를 빼앗고 돈이 사랑을 주는 것 같지만 진짜 사랑을 빼앗기도 한다. 돈과 세상 명예에 너무 매이지 말고 삭개오처럼 구원받은 성도답게 헌신하며 살기로 결단함으로 축복과 행복과 건강의 은혜를 누리며 사는 복된 심령이 되라.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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