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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트러블 메이커? / 마 10:34~36

by 【고동엽】 2023. 1. 17.

1. 예수님은 트러블메이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비와 딸이 어미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마 10:34~36)

 

위 본문에 의하면,

예수님은 세계 최고의 트러블메이커 trouble maker 이시다.

평화를 흩트리고 분쟁을 일으킨다.

갈등을 조장하고 가족간에 서로 등 돌리게 한다.

 

또한 예수 때문에 죽기를 강요하기도 한다.(‘갈등’보다 더 높은 차원의 문제 유발)

내가 이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지 말라. 대신 칼을 주러 왔노라.

내가 온 것은 남자가 자기 아버지로부터, 딸이 자기 어머니로부터,

며느리가 시어머니로부터 돌아서게 함이니

사람들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이니라(집안 식구끼리 서로 원수가 되리라)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내게 가치가 없다.

자기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도 내게 무가치 하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사람도 내게 무가치하다.

자기 생명을 찾으려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해 자기 생명을 버리려 하는 사람은 (생명을) 찾을 것이다.(마 10:34~39)

 

위의 주장은, 反가족주의 사이비 종교단체에서나 들음직한 소리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을 펼치신 것으로 보아, 예수님은 트러블메이커임에 틀림없다.

불신자를 처음 전도할 때, 이런 성경구절을 인용하면 아무도 예수 안 믿는다.

 

▶신병모집관 같은 목회자

전도 할 때 예수님을 소개하려면,

트러블메이커가 아니라, 피스 메이커로 소개해야 한다.

가족을 분리시키는 분이 아니라, 분리된 가족을 연합시키는 분으로 소개해야 한다.

우리 생명을 지켜주시는 분으로 소개해야지, 잃게 만드는 분으로 소개하지 않는다.

실제로 우리는 전도할 때, 상대를 설득시키기 위해 온갖 감언이설을 다 동원한다. 

 

“당신이 원하던 바로 그 사람이 될 수 있다!” ← 신병모집관은 달콤하게 말한다.

목회자들도 십자가의 군병들을 모집할 때는 이렇게 다소 달콤하게 말하기도 한다.

 

원래 군인이란 직업은 매우 고생이다.

‘돌격 앞으로!’라는 명령이 떨어지면, 죽음을 무릅쓰고 적진을 향해 전진해야 한다.

자기 아빠, 엄마, 아들, 딸, 형제, 자매 다 포기하고,

심지어는 자기 목숨까지 포기할 것을 각오하고 전선에 투입되는 것이다.

이렇게 군인은 상관의 모든 명령에 절대 복종한다.

 

그런데 군인 모집 광고를 보면, 사실을 보여주지 않고, 행복한 장면만 보여준다.

가족과 이별하고, 전장에서 피 흘리는 처참한 모습을 보고 누가 자원입대 하겠는가?

 

그래서 목회자들도 비슷한 방식으로 십자가의 군병들을 모집한다.

예수 믿으면 얻게 되는 모든 장밋빛 유익들의 목록을 만들어 종합적으로 제시하고

군사로서 따르는 모든 위험과 고생은 슬그머니 뒤로 감춘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렇게 달콤하게 소개하지 않으셨다

장밋빛 환상과 동시에, 거기에 따르는 대가와 고생과 갈등까지 적나라하게 보이셨다.

 

<마치 실전에 투입되는 군인처럼> 너는 가족과 떨어지게 되고,

군에 입대해서 희생하겠다는 너의 생각과 반대하는 가족들과 서로 분쟁하게 되고,

심지어 너는 목숨을 잃을지도 모른다고...

 

▶예수님은 당시에 트러블메이커 였다

오늘날 우리는 예수님이 트러블메이커라고 믿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당시 많은 사람들은 “실제로” 예수님을 트러블메이커로 그렇게 인식했다.

 

만약에 예수님이, 오늘날의 설교자들처럼, 정말 그들에게 행복과 달콤함을 주었다면

무엇 때문에 사람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겠는가?

당시 사람들은, 예수님을 처형해야 마땅할 만큼, 트러블메이커로 보았던 것이다.

 

가족들조차 예수님을 신뢰하지 않았고, 심지어 미쳤다고 여겼으니(요 7:5, 막 3:21)

다른 사람들이야 오죽했으랴. 그래서 보통 사람들은 귀신들렸다고 믿었고,(요 7:20)

종교지도자들은 귀신 중에서도 ‘왕 귀신’이 들렸다고 믿었다.(막 3:22) 

 

특히 예수님의 언사는 그런 오해를 사기에 충분했다.

다름 아닌 예수님 스스로 당신을 위험인물로 홍보하고 다녔다;

“나는 화평을 주러 온 것이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 ←테러범같은 위험인물. 

“가족이 서로 원수이리라” ← 전통적 절대적 가치관 파괴범, 추방해야 될 인물.

 

★ 예수님이 트러블메이커처럼 말씀하신 이유

예수님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이 하나님을 등지고 돌아섰으므로,

그것을 되찾기 위해서는 세상과 전쟁이 필요함을 보셨다.

사탄에게 점령된 세상을 되찾기 위해서는, 전쟁 아니고 평화적으로는 힘들었다.

 

예수님 편에 설 것인가? 사탄 편에 설 것인가? - 분쟁division이 안 생길 수 없다.

이와 같이, 예수를 믿는 다는 것은 - 갈등과 전쟁 없이는 안 되는 면이 있다.

 

 

◑2. 예수를 믿는 것과 예수를 이용하는 것을 구분해야

 

▶예수님을 믿는다지만 이용하는 사람

어떤 사람은 예수님을 믿지만,

항상 예수님이 자기 가족과 사업에 도움이 되는 뭣을 주시는 분으로만 여긴다.

그러다가 시련을 만나서 어려워지면, 믿음이 마구 흔들린다.

 

정직하게 말하면, 이런 사람은, 예수를 <사랑>함이 없다.

예수를 <믿는> 사람이 아니라  예수를 <이용하는> 사람이다.

 

▶기독교 신앙은 순수한 사랑을 요구한다

어떤 사람이 당신의 친구인척 하지만, 실제로는 당신을 이용해 먹으려고만 한다면...?

어떤 여자/남자가 당신은 사랑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당신의 돈을 사랑한다면...?

그런 사람을 친구로/ 그런 사람을 배우자로 선택하겠는가?

 

예수님도 마찬가지다.

단지 내게 복을 주시는 분으로만 예수님을 이용하고자 한다면... 나를 내치신다.

 

예수님이 요구하시는 것은 우리의 진정한 <사랑>이다.

우리가 <사랑>함으로 믿고 섬기는 것이지, 무슨 큰 이득을 바라고 믿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우리가 듣는 메시지는, 종종

우리에게 큰 이득이 되므로 - 우리가 예수를 믿는 것처럼 들린다.

 

물론 믿는 것은 당연히 이득이 된다.

그러나 <사랑>이 빠지고, <희생>, <십자가>, <충성> 등이 빠지고,

오직 이득이 예수를 따르는 주된 이유라고 논하는 것은..... 본질을 떠나는 것이다.

 

본의 아니게 그렇게 전파할 때가 종종 있는데

그 이유는, 예수가 트러블메이커로 비치지 않고, 좋은 분으로 소개하기 위함 때문.

 

 

◑ 3. 가족관계에서 실제적 사례

 

▶당신의 가족이 믿지 않는다면

당신은 아빠, 엄마, 형제간에서 뚜렷이 왕따가 되고 이방인이 될 것이다.

더욱이 그들이 다른 종교를 따른다면... 가족간 분쟁은 불가피하다.

나머지 가족들은 수시로 당신을 미워하고 따돌리고, 자기들의 신앙을 강요할 것이다.

모슬렘/힌두 권에서는, 기독교 회심자들은 생명의 위협을 느끼기도 한다.

그래서 믿음을 포기하고, 평탄했던 옛날로 되돌아가고픈 유혹을 느낀다.

그러나 예수님은, 가족을 미워하면서까지 내 제자가 되라고 가르치신다.

 

▶당신의 불신 연인

성경은 불신자와의 결혼을 금하고 있다.

그래서 아예 불신자와는 교제조차도 안 하는 것이 좋다.

삼손도, 솔로몬도 불신자와 교제/결혼하다가 타락했다.

당신이 삼손이나 솔로몬보다 더 위대한 신앙인으로 착각하지 말라!

 

참 성도, 제자는, 그런 관계를 즉시 끊는다.

예수님을 가장 제일 사랑하기 때문에...비록 쓰라린 아픔이 있어도...

트러블메이커처럼 단호하다.

 

▶당신의 불신 배우자

가족의 가치를 지키고, 배우자를 사랑한다고 해서.... 믿음을 떠나면 안 된다.

남편 따라 놀러간다고 주일 예배에 빠지면 안 된다.

쉬운 길을 택했다간... 나중에 자기 신앙마저 놓친다.

 

그렇다고 성경의 가르침을 곡해해서, 평소에도 싫은 남편... 잘 됐다며 떼놓지 말라.

이런 것을 이혼의 꼬투리로 삼지 말라. 하나님은 이혼을 미워하신다.

좋은 삶의 모범을 보여, 배우자로 하여금 기독교 신앙을 갖도록 해야 한다.

 

욥의 아내는 남편 사업이 잘 되고, 자녀가 잘 될 때는 주님을 믿다가... 배신했다.

그러나 욥은 아내를 따라가지 않았다. 나는 욥인가? 욥의 아내인가?

 

▶당신의 자녀

자녀를 사랑한다고 해서, 그들과 대립과 분쟁을 원치 않아서

자녀가 혼전 동거를 해도 나무라지 않는 부모가 있다.

아들이 큰 죄를 지어도, 못 본 척 넘어가는 부모가 있다.

그런 자녀의 우상을 깨야 한다.

 

예수를 따르는 것은, 가족 관계의 대립과 분쟁이 일어나게 되어 있다.

그러나 타협보다는 정면 승부로 나가면

결국 가족 관계가 더 탄탄해지고, 십자가 이후에 부활의 영광을 맛볼 것이다.

 

그러나 정면승부보다 타협으로 나가면

결국은 가족 관계가 더 악화되고, 잠깐 화평 후에 고통과 영벌을 맛볼 것이다.

 

예수님 가르침대로, 가족을 미워하는 것이 → 가족을 가장 사랑하는 것이다.

분쟁을 피하려고 쉬운 길을 택해서 대충 넘어가면 → 가족을 미워하는 것이 된다.

 

▶당신의 교회 가족도 마찬가지다

양떼를 사랑하는 목회자는... 성도를 미워한다.

성도를 사랑해서 대충 쉬운 길을 제시하는 것은... 성도를 미워하는 것이 된다.

그 쉬운 길을 잠깐 지나면, 험한 가시밭길이 한없이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족보다 예수님을 가장 사랑하도록, 좀 엄중하게 가르칠 필요 있다.

예수님이 트러블메이커처럼 말씀하신 것처럼!

성도들이 우리 목사님이 트러블메이커/미친 사람으로 오해할 만큼!

 

▶예수님의 본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모친 마리아의 가슴을 찢는 그런 큰 고통을 안겨 주었다.

그러나 하나님께 순종하기 위해, 육신의 어머니를 희생하셨다.

 

복음전파 사역을 그만두게 하려는 가족들에게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이들이 내 가족이다, 형제 자매 모친이다”며 굽히지 않으셨다.

자기 가족만 사랑하던 사람에서 → 모두를 가족처럼 사랑하고 섬기는 종으로 사셨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독신으로서, 가족의 행복을 포기하면서까지 주님을 섬기는데

그들은 독신으로 가족을 스스로 버리신 주님을 본 받고 있다.

은사자만 그렇게 할 것임!)

 

예수님은 자기 목숨을 스스로 버리고 주를 따르신 본까지 보여 주셨다.

그리고 나를 따르려면 십자가를 지고 죽기를 각오하고 따르라니...

정말 오늘날까지 트러블메이커이시다.

 

▶마치는 말

그러나 트러블을 위한 트러블메이커가 아니라,

사탄의 나라에서 하나님 나라로 옮겨오는 데는, 분쟁 없이 안 된다는 뜻이다.

희생, 고난 없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더 값진 영생의 가치를 위해서... 기꺼이 분쟁, 희생, 고난을 감당하라신다.

 

좋은 말로 청년들을 꾀는 신병 모집관이 아니라

정직한 (십자가의) 군병 모집관이셨다.

 

오늘날 세상 어느 곳이든지 메시지가 좀 신사적으로 부드러워졌다.

군대의 신병모집관처럼 달콤한 복음을 주로 전하고 있다. 

그러나 복음의 본질을 전하기 위한 트러블메이커들이 필요한 세상이 되었다.

 

출처 : https://rfcdrfcd.tistory.com/15976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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