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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의 심각성과 복음의 능력 / 벧전1:18~19

by 【고동엽】 2023. 1. 17.

죄의 심각성과 복음의 능력             벧전1:18~19           출처

David Feddes

    

▲죄에 대한 타종교의 견해 → 그렇게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다.

예를 들면, 그들은 죄를 이렇게 여긴다;

*우리가 고쳐야할 실수, 잘못된 행동 behavior problem

*교육이 부족해서 저지르는 잘못, 잘 교육/훈련하면 고칠 수 있는 것.

*그래도 안 되면, 제사(ritual, 종교의식) 또는 고행을 하면 없어지는 어떤 잘못.

 

오늘날 크리스천들도 이런 주장(죄를 가볍게 여김)에 무의식적으로 동의한다.

다이어트 중에 아이스크림 한 숟갈 퍼먹듯이... 하찮은 실수 정도로 여긴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죄를 가볍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그 심각성을 고의적으로 회피하고 희석시키는 경향이 있다.

 

살다보면 이따금씩 고장 나는 가전제품처럼, 사람도 잘못을 안 저지를 수 없다.

죄 짓는 것은 사람이 피할 수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죄의 심각성을 은연중 완화시키면 ... 잘못이다.

본질적 기독교는 죄를 매우 치명적이며, 대단히 심각한 것으로 여긴다.

 

◑죄의 심각성 - 죄의 3 D

 

▲1. Debt 빚

오늘날 사람들은 신용불량자가 아니면, 자기는 빚이 없다고 여긴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께 큰 빚을 진 신용불량자처럼 묘사한다.

(주님이 주신 모든 자원을 제 멋대로 이기적으로 썼으니... 우린 빚 진자다.)

 

(타)종교성이 있는 어떤 사람은, 자기가 빚 진 죄인임을 인정하기도 한다.

그러나 자기의 선행 정도로 갚을 수 있을 정도의 작은 빚으로 여긴다.

 

▲성경에 일만 달란트 빚진 자가 나오는데, 한 달란트는 일만 데나리온이다.

한 데나리온을 하루 품삯으로 친다면....300,000년 일해야 갚을 수 있는 돈이다.

그것도 한 푼도 쓰지 않아야....

 

그런데 우리 인간 수명은 백 년이 채 안 되니... 일 해서 갚을 수 없는 빚이다.

또한 설령 일해서 갚는다 하더라도,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이자도 못 갚는다.

 

▲2. Distance 하나님과 멀어짐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 3:23)

 

하나님의 완전한 영광과, 죄악된 인간 사이에는 큰 간격이 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거저 쉽게 하나님께(천국에) 갈 수 있으리라 착각한다.

무작정 죽으면 천국에 간다는 생각은.... 세상의 미혹이다.

 

어떤 사람은 자기가 타인에 비해 좀 더 선한 삶을 살아서 천국에 가리라 생각한다.

두 언덕 사이에 넓고 깊은 골짜기가 있는데, 넓이뛰기 좀 잘 뛴다고 소용 있겠는가?

넓이뛰기 세계 금메달이 뛰더라도, 깊은 골짜기 바닥으로 추락하고 말 것이다.

 

죄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도달할 수 없는 갭을 만들었다.(롬 3:23)

이와 같이, 세상에서 최고로 선한 사람이라도, (넓이뛰기 세계 기록 보유자처럼)

결코 자기 선행으로 계곡 건너편에 도달할 수 없다.

 

▲3. Deadness 사망

세 번째, 죄의 심각성은 사망이다.

우리는 “허물과 죄로 죽었다”(엡 2:1).

정욕을 쫓아 사는 사람은 살았으나 죽은자이다(딤전 5:6)

 

하나님을 떠나 사는 삶은 → 살았으나... 죽은 삶이다.

죽은 사람이 (도덕적으로) 개선해봐야 얼마나 개선되겠는가?

죽은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썩는 것, 부패하는 것뿐이요, ←죽었으니까.

그가 아무리 선행을 해도, 죽은 선행이다. 그 속에 생명은 없다.

이런 지적은 냉혹할지 모르나 진리(성경의 가르침)다.

 

죽은 사람이 서로 시체가 덜 부패했다고 비교, 자랑할 수 있겠는가.

그런 점에서 불신자의 선행... 다 무가치하다.

남들과 비교해서 자기는 조금 덜 부패했다 자위하지만...

시체는 어디까지나 죽은 시체일 뿐이다.

 

심장발작으로 깨끗하게 죽은 사람이, 자동차 사고로 뭉개져 죽은 사람보다

더 고상하게 죽었는가?

오늘 당장 죽어서 형체가 분명한 시신과, 옛날에 죽어 해골만 남은 것과

무엇이 비교해서 더 낫다고 할 수 있겠는가.

죽은 사람은 모두 마찬가지로 죽은 것이다.

 

예수를 안 믿는 사람은, 하나님과 멀리 떠나 있고, 그것을 “죽음”이라 말하는데,

거기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폭군과 평화주의자가 일반이다.

수전노와 자선가가 일반이다. 좀 더 외적으로 더 낫게 보일 사람이 있겠지만,

매한가지로 “죽었다.”

 

▲예수를 안 믿지만, 그래도 선한 사람이 세상에 꽤 많은데....

부패한 정도 차이는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기는... 똑같다.

스스로 구원할 수 없는 존재라는 점에서도, 악인이나 /선한 죄인... 똑같다.

 

위의 3-D 세 가지 진술을 들으면, 사람들은 기분이 나쁘고, 거부반응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진실이다.

세상 어느 종교도 이렇게까지 암울하게 사람의 운명을 진술하지 않는다.

 

오직 기독교만이... 죄에 대해 이렇게 심각하게 다루고 있다.

이런 심각성은 → 복음/구세주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게 해 주는데....

 

 

◑Good News - 복음의 3 R 능력

 

기독교가 인간의 상태를 가장 절망적으로 묘사함에도 불구하고,

기독교만큼 낙관적인 종교도 없다. 그 이유는,

구원을 - 인간의 능력과 가능성에 두지 않고, 하나님의 능력에 두기 때문이다.

(루터가 로마서에서 깨달은 것도, 인간이 획득하는 義가 아닌, 하나님의 의 -

그러니까 하늘에서 입혀주시는, 거저 주시는 의였다.)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he saved us, not because of righteous things we had done,

but because of his mercy.(딛 3:5)

 

▲예수님은 완전한 구세주 100% Saviour

그러니까 구원에 있어서, 인간의 어떤 공로나 도움이 필요치 않다.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he is able to save completely those who come to God through him(히 7:25)

 

회사에 입사하거나 무슨 관공서에 서류를 제출할 때 -여러 증명서가 요구된다.

그러나 우리가 천국 갈 때 - “예수님의 믿음” (증명) 하나면 족하다!

혹시 믿음 말고, 또 다른 무엇이 필요할까 하여... 전전긍긍할 필요 없다.

 

▲1. Redemption 구속 (↔ Debt 빚)

우리가 갚을 수 없는 빚debt을 지고 있는데, 예수는 다 지불redemption 했다.

구속(리딤숀)이란 말은, 돈을 완전히 지불하다. payment in full 란 뜻이다.

 

구약의 구속 개념

이스라엘아 여호와를 바랄찌어다 여호와께는 인자하심과 풍성한 구속이 있음이라

(시 130:7) 풍성한 구속 = full redemption = 완전한 지불 = 100 percent payment!

 

달러로? 무엇으로 지불하셨나? → 예수님의 보배로운 피로 지불하셨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그 머리에서, 그 손과 발에서, 그 옆구리에서

흘러내린 피는 .... 바로 나의 죄의 빚을 다 청산하시기 위한 구속이었다.

 

신약의 구속 개념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redeemed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벧전 1:18~19).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redemption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엡 1:7)

 

우리 인간의 상태는 절망적이다. 그 빚은 내가 다 갚지 못하는 것이어서...

그러나 복음은 너무 낙관적이다. 그 피로 못 갚을 빚이 없어서....

예수 안에서 있는 자에겐 신용불량자가 없다. 마귀의 채권을 다 갚았다.

 

다 이루었다의 원래 뜻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다 끝냈다 it is finished" 하신 것은

그 지긋지긋했던 십자가의 고통이 끝났다는 뜻이 아니고,

3년간 공생애가 끝났다는 것도 아니고,

헬라어로 이 뜻은 경제 용어로 “모두 지불했다!”는 뜻이다.(요 19:30)

 

예수님이 다 지불하신 것이 못 미더워, 내가 거기 뭘 보태겠다고 하면 - 어리석다.

내 은행 구좌를 뒤져보면, 거기엔 (내 죄로 인한) 빚만 가득 쌓여 있다.

자기 성의표시로 억지로 뭔가 좀 내려고 해도.... 빚뿐이라서 낼 능력도 없다.

그러니까 거저 빈 손들고 예수님만 의지하는 길이... 가장 지혜로운 길이다.

 

▲2. Reconciliation 화목 (↔ distance, 멀어짐)

 

죄는 우리를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게 했지만(롬 3:23)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엡 2:13)

 

전에 악한 행실로 멀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케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골 1:22~23)

 

부실 시공 다리bridge는 안 됨

앞서 두 언덕 사이에 깊은 골짜기가 있고, 사람은 뛰어서 건널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그 사이에 다리bridge가 있으면 안전하게 건널 수 있다.

 

그런데, 한강대교 건설에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 재료가 좀 부족하다 싶어서

내 공로 라는 자재를 좀 섞어 넣으면....옛 성수대교처럼 된다. 부실공사 된다.

다리는 오직 100% 예수 그리스도 공로만 되어야 튼튼하다.

내 공로가 조금이라도 섞이면, 규정 철근 안 들어간 부실공사 되고 만다.

그 다리를 건너 하나님께 가려다가는... 무너질 것이다.

 

한강대교 건축자재는 모두 완벽한 것으로 갖추어 건설되어져야 안전하다.

그것은 오직 예수님이다. 예수님은 100% 완벽한 구원대교, 화목이 되신다.

 

▲3. Rebirth 살리심, 중생 (↔ deadness, 사망)

인간은 죄로 인해 사망했으나, 복음으로 인해 중생한다.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엡 2:1)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엡 2:5)

 

사람이 태어나는 것도 내 공로와 무관하게 세상에 태어난다.

태아가 태어날 때, 자기의 무사 탄생을 위해 뭘 기여하는 바는 없다.

마찬가지로, 예수 안에서 은혜로 얻은 새생명도 거저 주시는 것이다.

전적으로 은혜다. 특별히 내가 해야 할 일은 없다.

 

사람이 뭔가 기여merit를 좀 하려고 해도, 죄로 죽은 사람은 아무 것도 못 한다.

죽었으니까....

 

그러므로 자연인은 자신의 구제불능 hopeless한 상태를 깊이 자각해야 한다.

또한 오직 그리스도만이 100% 완전한 구세주 되심을 깊이 설득 받아야 한다.

 

 

▲마치는 말 : 인간의 공로....

 

인간의 공로를 내세울 수 없는 이유

역사적으로 돌아보면, 심지어는 교회 안에서 조차 일각에서는,

예수님이 이루신 구원에, 우리 인간이 뭔가 기여contribute해야 한다는 주장이

끊임없이 있어왔다.

 

비슷한 부류로, 구원에 있어서, 예수님이 이루신 부분이 있고,

또한 인간이 이루어야 할 부분efforts도 있다는 주장도 끊임없이 제기되었다.

 

인간은 전적 타락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인간의 공로는, 그것이 타락되고 죽어서, 아무런 능력을 발휘하지 못 한다.

그러니까 뭘 하고 싶어도, 아예 자격이 안 되는 것이다.

 

만약 인간이 전적으로 타락하지 않았다면, 선한 구석이 1%라도 남아 있다면

구원에 있어서 자꾸 인간의 공로를 들고 나오게 된다.

 

우리가 뭔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할수록, 인간의 공로를 내세우려 할수록

우리는 예수님의 공로를 전적으로 의지하지 않게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The more we think we can do, the less we depend on Jesus to do

 

좋은 것은 좋다 하고, 나쁜 것을 철저히 나쁘다고 하라 ← 복음의 메시지

역사적으로, 사람들은 <인간의 죄의 빚, 하나님과 멀어짐, 영적 사망>등

나쁜 것들을 → “그다지 나쁘지 않다”고 말하고

 

정말 놀랍고 좋은 <예수님의 구속, 화목, 중생>등

너무 좋은 것들을 → “그다지 좋지 않다”고 말해 왔다.

 

그래서 주님은 바울, 어거스틴, 루터, 캘빈 등 시대마다 개혁자들을 보내서

복음의 메시지를 바로 잡아오셨다.

 

오늘날 우리는, 나쁜 것(죄와 그 결과)들은 얼마나 나쁜 것인가를 철저히 드러내며

좋은 것(복음과 주님의 십자가 공로)들은 얼마나 좋은 것인가를 철저히 드러내자!

 

Because of the continual tendency to make the bad news not so bad

and the good news not so good,

God-ordained leaders from Paul to Augustine to Luther and Calvin to our own day

have had to reform the church's message again and again and again

to keep it in line with the biblical gospel.

The Spirit of Christ is always reforming and reviving his church

so that the church will preach the bad news in all its dreadfulness

and the good news in all its glory.

 

영접기도

예수님, 우리는 오류에 빠지기 쉽고, 쉽게 스스로 속습니다.

내 공로로는 도저히 주님께 나아갈 수 없음을 고백합니다.

오직 내 소망은, 믿음을 통해서 얻는 은혜에 의한 구원에 있습니다.

오직 예수님의 공로에, 인간은 아무 것도 보탤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내가 아무리 착하고 선해도 ... 그것으로 나는 구원받지 못하며, 내세울 수도 없고

절망에 처한 나의 상태에서 구원은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를 믿음으로

거저 얻게 됨을 인해 주님을 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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