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인 리더에게 필요한 것 (레위기 8장 1-36절) < 영적인 리더에게 필요한 것 >
어느 날 빌리 그래함이 미국 <기독교선교연맹(C&MA)> 청년 전도자로 사역할 때 그가 다니던 플로리다 성경 대학 학장인 C&MA 목사 토머스 왓슨에게 말했다. “학장님! 저는 제 전도 집회의 참석자 숫자를 과장했습니다.” 그때 왓슨은 웃음이 터져 나올 뻔 했다. 많은 전도자가 그렇게 숫자를 과장하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빌리가 심각하게 말하자 왓슨이 기도했다. “하나님! 이 청년 전도자가 진실한 예배자의 마음을 늘 가지게 하소서.”
한번은 빌리가 전도 집회에서 처음 사례비를 받고 그것을 받아야 하는지 고민할 때 그의 또 다른 멘토였던 C&MA 목사 존 마인더가 고린도전서 9장을 통해 전도자가 복음을 전하며 사례비를 받는 것은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주었다. 빌리 그래함이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전도자가 된 이유는 편법 목회를 삼가고 늘 진실한 예배자와 설교자로 살려고 했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 교회는 바른 영적 리더를 절실히 요구한다. 영적 리더와 관련된 추문들이 전도와 교회사랑을 막고 있다. 결국 높은 자리에 있는 리더보다 바른 자리에 있는 리더가 중요하다. 영적인 리더에게 무엇이 필요한가?
1. 하나님 말씀
본문에는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것과 같았더라.”는 말씀이 계속 반복해서 나온다. 모세는 제사장 임직식을 철저히 하나님 말씀대로 거행했다. 그처럼 하나님 말씀을 무엇보다 중시하라. 가장 뚜렷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기독교 신앙의 헌법과도 같다. 최종 권위는 성경에 있고 성경에 꼭 붙어있으면 리더에게도 권위가 생긴다. 다른 성공은 못해도 말씀중심적인 삶에서는 최고로 성공하라. 그 성공이 다른 성공도 따라오게 한다.
미국 C&MA 창시자인 심슨 목사는 1882년에 뉴욕 나약에 성경을 중점적으로 가르치는 선교사 훈련 대학(Nyack Missionary Training Institute)을 세웠다. 1922년에 그 대학을 졸업한 토머스 왓슨이 플로리다에서 4천 석 규모의 텐트를 치고 빌리 선데이(Billy Sunday), 모리슨(Morrison), 토레이(Torrey) 같은 유명한 복음주의 설교자들을 초청해 전도 집회를 하면서 탬파에 플로리다 성경대학(Florida Bible Institute)을 세웠다.
1937년 그 학교에 입학한 빌리 그래함은 플로리다 성경대학에서 무엇보다 성경을 깊이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 성경 사랑은 왓슨 목사의 제일 비전이었다. 그는 많은 학생들이 신대원에 가서 성경 외의 학문에 너무 시간을 쓰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고 자기 학생들은 성경을 깊이 알기를 원해서 많은 과목을 성경 중심적으로 편성했다.
빌리도 성경중심적인 삶의 틀로 인해 그가 설교할 때 가장 많이 쓰는 표현이 “성경은 말씀합니다(The Bible says).”란 표현이었다. 그가 위대한 전도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성경에 꼭 붙어서 사역했기 때문이다. 모세가 모세오경을 쓴 위대한 지혜자와 출애굽을 이끈 위대한 지도자가 될 수 있었던 것도 말씀중심적인 리더십을 가졌기 때문이다. 성경에 꼭 붙어있어야 바른 영적인 리더가 되고 그때 복된 길도 펼쳐진다.
2. 공적인 권위
성막이 완성되고 제사 규례가 정비된 후 모세는 하나님의 뜻대로 종교 권력을 제사장에게 넘기는 위임식을 거행했다. 누가 제사장으로 위임 받았는가? 아론과 그의 네 아들이었다. 제사장은 레위 지파 중 아론의 직계 자손만 될 수 있었다. 위임식 준비물은 제사장 의복과 성별의식에 쓰일 거룩한 기름인 관유와 제사장의 속죄에 쓰일 속죄제의 수송아지와 번제물과 화목제물로 각각 쓰일 숫양 두 마리와 소제물로 쓰일 무교병 한 광주리였다(2절).
그때 하나님의 명령대로 온 회중이 회막 문에 모였다(3-4절). 당시 출애굽한 20세 이상의 남자만 약 60만 명이었기에 전체 인구는 약 200만 명이었을 것이다. 그들이 다 회막 문 앞에 모이기는 불가능하다. 아마 전체 회중을 대표해 각 지파 핵심 리더들이 모였을 것이다. 왜 하나님은 제사장 위임식에 전 회중을 모았는가? 제사장의 권위를 온 회중 앞에서 공적으로 인증해 그들이 기쁘게 제사장을 존중하고 순종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공동체의 질서를 존중하고 리더로 세워진 사람을 존중하는 삶은 리더의 축복을 받기 위해 꼭 필요한 삶이다.
요즘 존경할만한 리더가 없다는 말이 많지만 그 말은 교만하게 들리기 쉽다. 또한 존경할만한 리더가 없다는 사실이 예의 없음과 버릇없음의 핑계는 될 수 없다. 바른 말을 바르게 하는데도 예의 없다거나 버릇없다는 말을 듣는 경우는 거의 없다. 리더는 팔로워에게 존경받을만한 행동을 하고 팔로워는 리더를 힘써 존중해주어야 한다. 순서를 존중하는 마음은 좋은 마음이다. 권위주의는 버려야 하지만 권위 존중은 필요하다. 위계질서의 강요는 없어야 하지만 기본적으로 질서를 존중하는 마음은 가져야 한다.
3. 반듯한 외양
위임식 준비를 마친 후 가장 먼저 모세는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데려다가 물로 그들을 씻겼다(6절). 성소와 번제단 사이에 있는 물두멍의 물로 그들의 손과 발은 물론 몸 전체를 씻겼을 것이다. 그리고 아론에게 속옷을 입히며 띠를 띠우고 겉옷을 입히며 에봇을 걸쳐 입히고 에봇의 장식 띠를 띠워서 에봇을 몸에 매고 흉패를 붙이고 흉패에 우림과 둠밈을 넣고 그의 머리에 관을 씌우고 그 관 위 전면에 금패를 붙였다(7-9절).
속옷은 하안 베옷이고 그 위에 입는 겉옷은 청색 세마포 옷이다. 그 위에 걸친 에봇은 조끼나 앞치마처럼 생겼다. 에봇의 장식 띠는 옷을 단정히 묶는 띠다. 흉패는 5가지 가는 색실로 두 겹으로 짠 한 뼘 크기의 정사각형 천으로 천 위에는 이스라엘 12지파 이름이 각각 새겨진 12개의 보석이 박혀있고 천 안에는 하나님의 뜻을 묻는 제비뽑기 도구인 우림과 둠밈이 보관되어 있었다. 머리에 씌운 관 위 전면에는 ‘여호와께 성결’이란 금패를 붙였다.
당시 대제사장 의관이 매우 화려했다. 그에 대해 “광야에서 너무 사치가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 수 있다. 영적인 리더는 사치가 없어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이 인류 역사상 첫 제사장 위임식 때 화려한 의관을 갖추게 하신 것은 대제사장으로서 외양으로도 존중심이 들게 하려는 특별한 목적 때문이었을 것이다. 사치를 부리지 않는 범위에서 최대한 단정하게 외양도 관리해서 그로 인해 존중심이 떨어지지 않게 하라.
한때 ‘열린 예배, 열린 교회’란 표현이 한국 교회를 휩쓸었었다. 당시 한 열린 목회자는 목회자가 목사 가운을 입고 설교하는 것은 시대에 뒤떨어진 닫힌 모습이라면서 주일예배 때 티셔츠와 청바지를 입고 설교했다. 너무 닫혀도 안 되지만 너무 열려도 안 된다. 좋은 목적이 이끄는 삶 자체는 좋지만 좋은 목적을 이루겠다고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은 좋은 것이 아니다. 내적인 목적이 좋으면 외양과 수단방법도 최대한 좋도록 해야 열매도 좋아진다.
4. 성령 충만
아론이 대제사장 의관을 갖추자 모세는 관유를 성막과 성막 모든 기구에 발라 거룩하게 했고 또한 번제단에 일곱 번 뿌리고 그 번제단과 그 모든 기구와 물두멍과 그 받침에도 발라 거룩하게 했고 또 아론의 머리에 붓고 그에게 발라 거룩하게 했다(10-12절). 사람의 머리에 관유를 붓는 것은 임직자로 성별되었다는 공적인 표시다.
아론의 기름 부음을 마친 후 모세는 아론의 아들들에게 속옷을 입히고 띠를 띠우며 관을 씌웠다(13절). 아론은 대제사장으로서 속옷, 겉옷, 에봇, 띠, 흉패, 관, 금패의 7가지 의관을 하고 기름 부음을 받았지만 그의 네 아들은 제사장으로서 속옷, 띠, 관의 3가지 의관만 하고 기름 부음을 받았다.
유대 전승에 의하면 제사장 임직 때 대제사장인 아론에게는 관유를 머리를 적시고 수염을 타고 의복까지 흘러내리도록 흠뻑 부었고 제사장인 아론의 아들들에게는 손가락으로 찍어 이마에 발랐다. ‘기름 부음을 받은 자’는 히브리어로 메시야라고 하고 헬라어로는 그리스도라고 한다. 하나님의 일을 위해 구별된 사람이 구약시대에는 ‘관유로 기름 부음을 받은 자’란 뜻이지만 신약시대에는 ‘성령으로 기름 부음을 받는 자’란 뜻이다. 영적인 리더에게는 “나는 거룩하게 구별된 존재다.”라는 의식과 성령 충만한 삶이 있어야 한다는 암시다.
5. 희생하는 삶
제사장 위임식을 위해 속죄제 희생 제물로는 수송아지가 사용되었다(14절). 본문 18-21절에는 숫양을 번제로 드리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보통 번제는 생활 형편에 따라 수소, 숫염소, 숫양, 비둘기 등을 제물로 드렸지만 제사장 위임식 번제에는 준비된 숫양 두 마리 중 한 마리가 사용되었다. 왜 제사장 위임식에 번제용 수양을 드리게 했는가? 번제는 자기를 온전히 드리고 희생하는 제사를 뜻한다. 결국 제사장 위임식 때 숫양 하나를 번제물로 드린 것은 영적인 리더는 희생하는 삶의 모델이 되어야 한다는 암시다.
왜 현대 교회가 힘을 잃었는가? 희생정신의 결여 때문이다. 교인이 줄면 마음이 너무 슬프다. 사기도 저하되고 재정도 줄어든다. 그래도 그것이 두려워 바른 길로 이끌지 않으면 그 교회는 외적으로는 혹시 성장해도 내적인 힘과 영향력을 잃는다. 목회자가 성도의 숫자와 호주머니에 연연하지 않고 재정적인 마이너스와 헐벗음을 각오해서라도 영혼을 바르게 인도하려고 해야 그 영혼도 살고 교회도 건강해진다. 참된 사랑이란 영혼을 내 곁에 두려는 것이 아니라 희생을 감수해서라도 영혼을 바르게 만들고 주님 곁에 두려는 것이다.
요새 이단들로 인해 한국 교회는 2가지 큰 피해를 입고 있다. 이단이 구원받은 영혼을 미혹해 빼앗아가는 것도 피해지만 교회 이미지를 망가뜨려 영혼 구원이 힘들어지게 만드는 것도 피해다. 파렴치한 막된 언행으로 방송을 타서 불신자의 지탄을 받는 교회는 대부분 이단 교회다. 그처럼 한국 교회가 많이 힘들어진 상태이기에 바른 영적인 리더가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늘 영혼 구원과 세계선교의 비전을 가지고 영적인 리더의 요건들을 잘 구비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좋은 영적인 리더가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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