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토를 기쁘게 하는 삶 (빌레몬서 1장 20-25절) < 멘토를 기쁘게 하는 삶 >
사도 바울이 2차 선교 여행 중 에베소에서 복음을 전할 때 골로새 출신의 두 사람이 그의 말씀에 큰 은혜를 받고 복음 전파의 사명을 품고 고향으로 돌아가 교회를 개척했다. 그들은 골로새 교회 담임목사 역할을 했던 에바브라와 장로 역할을 했던 빌레몬이었다. 그 중 빌레몬에게 오네시모란 도망친 종이 있었다. 오네시모는 로마에서 사도 바울을 만나 회개하고 극진히 섬겼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오네시모를 용서하라는 서신을 보내면서 서신 말미에 자신에게 기쁨을 얻게 해달라고 썼다. 그처럼 영적인 멘토를 기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1. 마음을 평안하게 하라
사도 바울은 오네시모의 용서를 호소하고 결론 부분에서 “오 형제여!”라고 다정하게 호칭한 후 자기에게 기쁨을 주어 자기 마음을 평안하게 해달라고 했다(20절). 제자는 십자가도 잘 지면서 멘토에게 기쁨과 평안을 주는 일도 잘해야 한다. 신실한 교인은 대개 목회자의 비전에 일조하기를 원한다. 비전 공유는 매우 중요하다. 하나님이 목회자와 교인을 한 교회에 두신 핵심 이유는 비전을 공유하라는 뜻이다. 오랫동안 같은 목회자로부터 말씀을 들으면 아무리 은혜로운 말씀도 식상하게 들릴 수 있다. 그래서 말씀의 은혜와 함께 꼭 필요한 것이 비전 공유다.
하나님은 <월새기(월간새벽기도)> 문서선교의 비전에 여러 동역자와 기도자를 많이 붙여주셨다. 몇몇 사람들은 넘치는 은혜를 속으로 감추지 못하고 자기 의사를 드러낸다. “목사님! 제가 <월새기 영어판> 발행의 마중물이 되고 싶습니다.” 그런 말은 안 해도 속으로 그런 의사를 가지고 때를 기다리는 사람도 꽤 있다. 어떤 사람은 스스로 감동해서 “목사님의 선교 사역을 위한 선교센터를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라고 하기도 한다.
너무 앞선 느낌도 있지만 그런 말을 들으면 고맙고 큰 힘이 난다. 그처럼 비전 공유가 이뤄지면 목양관계가 견고해진다. 어느 순간에 말씀의 은혜가 떨어져도 찬란한 비전은 성도가 제 자리를 굳게 지키게 한다. 그러다보면 다시 말씀의 은혜가 회복되고 새로운 은혜가 다른 쪽에서 생기면서 교회생활을 잘 지속시켜준다. 그처럼 비전 공유가 중요하지만 늘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비전 공유 이전에 멘토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려는 자세다.
선교센터를 짓는데 크게 헌신해도 덕이 안 되는 행동으로 교회를 불편하게 만들고 목회자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면 복된 모습이 아니다. 그래서 겸손한 믿음과 덕이 있는 사람이 큰일을 하는 것이 좋고 반대로 큰일을 한 후에는 더욱 겸손한 믿음과 덕을 나타내야 한다. 교회는 ‘많은 일’보다 ‘좋은 일’을 해야 하고 좋은 일을 할 때는 좋은 방법과 모습으로 해야 한다. 사람들이 다 지켜보고 있고 자녀도 다 보고 배우는 것을 인식하고 많은 일을 하기 전에 은혜롭게 일함으로 멘토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일이 우선임을 늘 잊지 말라.
2. 순종의 확신을 주라
당시에 종의 도주는 사형에도 처할 수 있는 큰 죄였다. 그런 죄를 지은 종을 위해 그 주인에게 용서하라고 부탁하는 것은 어려운 부탁이었다. 사도 바울도 아무에게나 오네시모의 용서를 구하는 편지를 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오네시모의 주인이 빌레몬이었기에 그런 편지를 보낼 수 있었다. 왜 빌레몬에게 그런 어려운 부탁을 할 수 있었는가? 그가 순종할 것을 확신했기 때문이다(21절).
아무리 자기가 권위 있는 사도이고 빌레몬이 신실한 복음의 제자라도 그런 부담스런 편지는 보내기 쉽지 않다. 자칫 잘못하면 불의한 청탁으로 여겨져 자신에 대한 신뢰를 잃고 둘의 관계가 깨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목회자가 교인에게 어려운 부탁을 하면 온전한 목양관계가 깨질 수 있다.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부탁도 아무에게나 하면 부작용이 생길 수 있기에 꼭 부탁해야 하면 순종할 것을 확신하는 교인에게 하는 것이 좋다. 순종의 확신을 주는 팔로워가 되라. 그러면 리더가 큰 힘이 된다.
사람들은 수많은 공동체에 얽히고설켜 속해있다. 팔로워로만 있는 사람도 없고 리더로만 있는 사람도 없다. 수많은 사원을 거느린 기업인 리더도 가정에서는 부모 말을 따라야 하는 팔로워다. 수만 명 교회 담임 목사도 교단에서는 교단 총회장 말을 따라야 하는 팔로워다. 그래서 리더로 있는 곳에서는 리더 역할을 잘하고 반대로 팔로워로 있는 곳에서는 힘써 리더십을 따름으로 순종의 확신을 주라. 그런 팔로워가 결국 행복한 리더가 된다.
펠로우쉽(fellowship)은 팔로워쉽(followship)을 통해 견고해진다. 즉 교제는 순종하는 영성을 통해 견고해진다. 어떤 팔로워는 리더가 정상적이고 바른 비전을 세우면 마음으로 온전히 함께 해준다. 실천까지 잘해주면 좋지만 먼저 마음으로라도 온전히 함께 하라. 그때 리더는 순종의 확신을 주는 팔로워에게 속마음을 내보인다. 결국 순종의 확신을 주는 좋은 팔로워가 복을 받고 새로운 딸 공동체의 리더 혹은 다음 세대의 리더가 된다.
3. 숙소를 마련해주라
사도 바울은 자기 제자가 개척한 골로새 교회가 아름답게 자라는 소식을 듣고 평소에도 그 교회에 꼭 가보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석방을 위해 간절히 기도한 골로새 교인들의 기도가 응답되면 그 교회에 가보고 싶다고 하면서 빌레몬에게 “나를 위하여 숙소를 마련하라.”고 부탁했다(22절). 자기 거처를 마련해달라는 부탁은 개인적인 의식주와 관련된 부탁인데도 빌레몬이 평소에 자신의 선교 사역을 힘써 후원했기에 사도 바울은 자신의 임시 거처 문제까지 스스럼없이 부탁한 것이다.
사도 바울은 텐트를 만들어 팔면서 자비량 선교를 했지만 동시에 많은 사람들이 그의 사역을 후방에서 기도와 물질로 도왔다. 그처럼 풀타임 사역자의 필요를 채워주려는 고운 마음을 가지라.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명을 받았다는 말은 다 사역자가 되라는 말이 아니다. 사역자를 음지에서 혹은 후방에서 기도와 물질로 돕는 것도 하나님의 일이다. 사역자를 떠올리며 그의 의식주를 염려해주는 마음은 하나님이 주신 마음이다. 그때 “그분은 하나님이 먹이실 거야.”라고 하면서 그의 의식주 채워주는 일을 외면하지 말라.
물론 하나님의 사역자는 하나님이 먹이신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 성도를 통해 먹이신다. 하나님은 내가 사역자의 필요를 채우는 데 일조하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의 일은 제사장인 멜기세덱을 통해서만 이뤄지지 않고 평신도인 아브라함을 통해 더 멋지게 이뤄질 때도 많다.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에게 바른 길을 제시하며 복을 빌어주고 아브라함은 그 길을 따라 세상을 정복해서 멜기세덱의 필요를 채워줄 때 하나님 나라는 더욱 멋지게 확장될 것이다.
4. 신실한 동역자가 되라
사도 바울은 빌레몬과 골로새 교인들에 대해 깊은 애정과 동역자 의식을 가졌다. 그런 음지의 동역후원자들이 있었기에 사도 바울은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며 사역할 수 있었다. 당시에 골로새 교회를 개척해 담임목사 역할을 했던 에바브라는 바울과 함께 로마 감옥에 갇힌 상태였다(23절). 그의 문안도 전했기에 빌레몬은 바울의 권고를 더욱 진중하게 받아들였을 것이다. 에바브라와 함께 마가, 아리스다고, 데마, 누가가 언급된 것을 보면(24절) 빌레몬도 그들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것은 빌레몬도 바울을 중심으로 한 예수 공동체의 핵심 일원이었다는 암시다.
또한 바울이 축도하면서 ‘너희 심령’이라고 복수로 표현한 것은 빌레몬의 가족과 교우들에게도 축복을 빌어주었다는 뜻이다(25절). 사도 바울이 골로새 선교를 직접 하지 않았어도 그처럼 골로새 교인들과 깊은 목양 관계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에바브라와 빌레몬의 역할이 컸다. 그래서 골로새 교회는 사도 바울이 직접 개척했던 교회에 못지않게 사도 바울의 선교사역을 기도와 물질로 후원했을 것이다. 또한 사도 바울이 로마 감옥에 있을 때도 빌립보 교회에 못지않게 옥중수발에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그들의 동역후원이 사도 바울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었겠는가?
바울을 바울 되게 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자신의 헌신적인 삶’이었지만 ‘신실한 동역후원자의 존재’도 큰 요소였다. 신실한 동역후원자로서 리더의 비전을 기도와 물질로 힘써 도우면 그 비전이 이뤄지는 꿈같은 때가 온다. 거룩한 비전 성취는 인생에서 가장 큰 성취감과 행복을 준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멜기세덱을 뒷받침하며 하나님의 일을 간접적으로 한 아브라함의 동역 후원이 아브라함을 4천년 영향력을 가진 위대한 인물로 만들었음을 잊지 말라.
< 좋은 분을 놓치지 말라 >
가끔 누군가 생각한다. “천년 영향력의 비전은 너무 과장이 아닌가?” 10년도 아니고 100년도 아니고 천년이라니까 과장과 허풍 느낌이 난다. “요즘 BTS 아이돌 그룹에 비하면 BDS(분당샛별교회)는 작은 교회인데 무슨 천년이냐?”라고 생각할 수 있다. 저도 처음에는 천년이란 얘기를 감히 못 꺼냈다. 그러나 7년 전에 <성경전체강해>를 약 60% 완성하면서 천년이란 얘기를 쓰기 시작했다. 지금은 약 80%를 강해했기에 그 비전은 더 뚜렷해지고 있다.
왜 그 비전이 허풍이 아닌가? 성경을 빠짐없이 비교적 알차게 강해하기 때문이다. 성경에 붙은 강해이기에 위대성의 흔적을 조금이라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성공을 위해 인맥을 추구하려고만 하지 말고 선한 영향력을 위해 위대한 분을 붙잡고 위대한 것을 붙잡으라. 위대한 분은 하나님이고 위대한 것은 성경이다. 성경은 너무나 위대한 책이고 인류 역사가 존재하는 한 없어질 수 없기에 성경을 꼭 붙잡으면 누구나 천년 영향력을 꿈꿀 수 있다.
좋은 인간 멘토도 놓치지 말라. 본문에는 안타까운 인물 한 명이 나온다. 바로 데마다. 사도 바울이 빌레몬에게 여러 동역자의 문안 인사를 전할 때 가장 먼저 골로새 교회 담임목사로 있다가 함께 로마 감옥에 갇힌 에바브라를 언급했다. 그 다음에 마가, 아리스다고, 데마, 누가 순서로 언급했다. 누가는 사도 바울의 사역 증언과 건강을 책임진 비전 동역자였고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기록한 위대한 존재인데 그런 누가보다 데마가 앞서 언급된 것은 그의 존재 의미가 상당했다는 암시다.
데마는 한때 인정받는 일꾼이었지만 세상을 사랑해서 사도 바울 곁을 떠났다. 그 선택은 그의 일생에서 가장 큰 패착이었다. 그가 세상을 사랑해서 세상에서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른다. 혹시 세상에서 성공했어도 그는 ‘세상을 사랑해서 배반한 자’로 성경에 낙인찍히는 불행한 존재가 되었다. 좋은 곳도 떠나지 말아야 하지만 좋은 사람도 떠나지 말라. 새로운 사람만 너무 사귀려고 하지 말라. 하나님이 지금 내 곁에 있게 하신 좋은 사람을 놓치지 않고 떠나지 않는 것이 사실상 더욱 복된 일이다.
특히 하나님과 성경은 결코 놓치지 말라. 하나님과 성경을 꼭 붙들면 그 영원성이 부분적으로 흘러들어와 누구나 천년 영향력을 가질 수 있다. 세상 것은 아무리 화려해도 일시적이고 천국과 관련해서는 오히려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가장 좋은 일은 가장 좋은 것을 붙들고 가장 좋은 분을 붙드는 것이다. 좋은 것과 좋은 분을 놓치지 말라. 가장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성경이고 가장 놓치지 말아야 할 분은 하나님이다. 사람 중에서 가장 놓치지 말아야 할 사람은 혈육적인 부모이고 부모 다음으로는 목자와 멘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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