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만남을 만들어가라 (룻기 4장 13-15절)
< 위대함의 일부가 되라 >
요새 <월새기(월간새벽기도) 유튜브> 말씀으로 필자 자신도 은혜를 많이 받는다. 필자가 쓴 말씀 원고지만 은혜가 되니까 13분 분량의 말씀을 하루에 보통 5번 이상 듣는다. 어떤 날은 10번 이상도 듣는다. 전에는 <네트영어> 비전을 위한 영어 실력 감퇴를 막기 위해 쉴 때나 운전할 때 <유튜브>로 주로 영어 뉴스와 영어 설교를 들었지만 요즘은 중독된 것처럼 거의 <월새기 유튜브> 말씀만 듣는다.
필자는 잠을 잘 자는 편이지만 가끔 잠이 잘 안 들 때가 있다. 그때 침대에 누워 <월새기 유튜브> 말씀을 들으면 말씀의 은혜에 몰입되면서 대개 2편을 듣기 전에 잠든다. 반대로 장거리 운전을 하면서 몸이 힘들고 졸릴 때 <월새기 유튜브> 말씀을 들으면 말씀의 은혜에 몰입되면서 피곤과 지루함이 많이 가시고 졸음이 깬다. 신기하게도 잠자야 할 때는 자게 만들고 깨야 할 때는 깨게 만들니까 <월새기 유튜브> 말씀을 더 듣게 된다. 나이가 들어 심신이 약해지니까 말씀을 붙잡고 사는 것이 얼마나 복된 삶인지 더 실감된다.
요새 새로운 것을 배우기 싫다. 이해력이 떨어져 배우기도 힘들다. 그런 사람이 어떻게 천년영향력의 비전을 가지고 나아갈 수 있는가? 하나님을 믿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사람의 연약함을 얼마든지 도울 수 있다. 또한 집중력을 발휘해 한 가지 잘하는 것에 집중하면 되기 때문이다. 하나 잘하는 것에서 9가지를 새로 배워 10가지를 다 잘하려면 속도감도 필요하고 새로운 것에 대한 이해력과 습득력도 필요하지만 자기가 잘하는 한 가지에 집중하면 그 한 가지만은 잘할 수 있다. 오랜 경험이 녹아 있고 그동안 쌓아놓은 것에서 새로운 것을 추가하면 되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제까지 <성경전체강해>를 약 80% 완성했다. 2026년쯤에는 100% 완성한다. 첨단 IT 시대에 수많은 발명품이 나오는데 <성경전체강해>가 얼마나 내용이 출중하고 방대하기에 천년영향력을 운운하느냐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내용의 탁월성이나 분량의 방대성을 내세워 천년영향력을 언급하는 것이 아니다. 천년영향력을 언급하는 핵심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강해했기 때문이다. 즉 성경에 붙잡히고 성경에 딸린 작품이기 때문이다.
급속한 과학 발전 사회에서 점차 성경이 설 자리가 줄고 성경의 절대성이 약화되다가 언젠가 성경은 구시대 유물이 될 것 같지만 그런 일은 없다. 사람에게 영혼과 양심이 있기에 성경의 존재 가치는 영원할 것이고 고난과 공허와 죽음이 존재하는 한 성경의 절대성은 영원할 것이다. 세계적인 유행을 일으킨 세상 콘텐츠의 영향력이 백 년을 가기 힘들어도 <성경전체강해>는 퀄리티만 어느 정도 보증되면 성경에 딸린 방대한 작품이기에 천년영향력 운운도 가능해진다. <성경>에 위대하기에 <성경전체강해>도 위대함의 일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왜 루디아가 위대해졌는가? 자주 장사로 성공한 여성 사업가였기 때문이 아니라 사도 바울의 신실한 동역후원자였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의 위대성 때문에 그녀의 위대함의 일부가 된 것이다. 왜 데오빌로가 위대해졌는가? 유력한 권력자였기 때문이 아니라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남기도록 누가를 후원했기 때문이다. 성경의 위대성 때문에 그도 위대함의 일부가 된 것이다. 앞으로 누군가의 헌신으로 <월새기 영어판>이 발행되어 세계선교의 도구가 되고 <성경전체강해 영어판>이 완성되면 성경의 위대성으로 그 헌신자도 위대함의 일부가 될 것이다.
< 중요한 사람을 붙잡으라 >
사람은 무엇을 붙잡고 살고 무엇에 붙들려 사는가에 따라 인생이 현저히 달라진다. 누구를 붙잡아야 하는가? 훌륭한 인물이나 멘토를 붙잡으면 인생길이 열릴 가능성은 커진다. 그러나 나의 사랑과 헌신과 순종과 충성이 없다면 훌륭한 인물이나 멘토가 내 인맥이 될 가능성은 별로 없다. 하나님이 아무리 좋은 인물이나 멘토를 내 곁에 보내주셔도 내가 계산적이 이익과 이기적인 생각에 눈멀어 행동하거나 나의 사랑과 헌신과 충성과 순종을 보여주지 않으면 인물이나 멘토가 나를 진정으로 붙잡아주지 않는다.
좋은 인물이나 멘토와 가까이 있으면 내 인맥처럼 생각되지만 그것은 그저 알면서 함께 있는 관계지 내 인생길에 복을 가져다줄 인맥은 아니다. 어디서든지 순수한 사랑과 헌신과 순종과 충성의 전제가 없으면 복된 인맥을 얻기 힘들다. 그런 훌륭한 인물이나 멘토 인맥보다 더 소중한 인맥이 부모 인맥이다. 결국 복된 길로 가기 위해 가장 소중히 붙잡고 모셔야 할 사람은 부모다. 부모를 붙잡는 것은 다른 어떤 유력한 사람을 붙잡는 것보다 중요하다.
유력한 사람에게 붙잡히려면 사랑과 헌신과 순종과 충성이 필요하지만 그런 것이 부족해도 부모님께는 굳게 붙잡힐 수 있다. 심지어 말썽을 부리고 심기를 불편하게 해도 붙잡힌다. 부모를 붙잡고 부모에게 붙잡히는 것은 위대한 축복의 시발점이다. 부모님이 연로해서 힘이 없어지면 더 붙잡고 외로워지면 더 곁에 있어 드리라. 그때가 부모님께 더 도움과 동행이 필요할 때다. 그렇게 하면 가정의 중심이 되고 하나님이 그 마음을 기억해 축복을 내려주신다.
필자는 8남매 가정에서 자랐다. 가정에서 형제가 많으면 형제간의 갈등 가능성도 커진다. 옛날에 연대와 고대의 연고전(고연전)이 벌어지면 8남매가 연대편과 고대편으로 대략 4대 4로 갈라져 응원했다. 형제간에도 파당이 형성되는데 세대 차이, 사상 차이, 지역 차이 등은 생길 수밖에 없다. 인정하고 잘 승화시키면 된다. 아버님은 8남매를 키워야 했기에 질서를 중시하며 엄격히 키우셨다. 자연히 나이 순서대로 발언권이 컸지만 그 발언권도 점차 변했다.
세월이 흐르면 서열과 권력과 발언권이 점차 변한다. 재력에 따라 변하기도 하고 사회적인 위치와 자리와 영향력에 따라 변하기도 한다. 가정 내의 발언권도 마찬가지다. 나이는 점차 종속 변수가 되어 가정 내의 위치에 따라 발언권이 달라질 때 누가 가장 발언권이 강해지는가? 정상적인 가정이라면 부모님을 극진히 모시는 사람이다. 필자의 8남매 중에도 발언권이 가장 강한 사람은 나이가 많은 사람이 아니라 연로하신 어머님을 극진히 모시는 사람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극진히 잘 모시면 인류의 중심이 될 수 있고 천년영향력의 꿈을 이룰 수 있다. 하나님 다음으로 극진히 잘 모셔야 할 대상이 부모다. 부모를 모시면 형제자매의 중심이 되고 복의 중심도 된다. 다른 유력한 사람을 붙잡아 인맥을 삼기 전에 내 안에 있는 최대 인맥의 줄기인 부모님을 붙잡으라. 부모님이 연로해지면 더욱 힘써 붙잡아드리라. 그러면 부모님의 마음도 얻고 하나님의 마음을 얻어 가장 복된 길이 펼쳐질 것이다.
< 약속이 있는 첫 계명 >
왜 모압 출신의 이방인 과부였던 룻이 유대 사회에 와서 다른 유대 여인보다 더 복된 길로 갈 수 있었는가? 당시 유대 여인들은 나오미에게 룻을 ‘일곱 아들보다 귀한 네 며느리’라고 칭했다(15절). 남아선호 사상을 가지고 족보를 중시하고 가문의 번성을 가장 큰 축복으로 여긴 이스라엘 사람은 ‘일곱 아들을 가진 것’을 세상에서 가장 큰 복으로 여겼다. 그런 사회에서 룻을 일곱 아들보다 귀하다고 한 것은 룻의 효심이 얼마나 컸는지를 잘 보여준다. 결국 룻기가 전하는 가장 뚜렷한 메시지 중 하나는 “효도하면 반드시 복 받는다.”는 메시지다.
진정으로 복 받기를 원하면 복만 집착해서 추구하지 말고 먼저 하나님을 추구하고 그 추구를 부모에게 효도하는 모습을 통해 나타내라. 하나님은 부모님께 효도하는 것을 하나님께 충성하는 것과 동일시하고 효도할 때 반드시 복의 문을 열어주신다. 인간의 사랑 중 하나님의 사랑에 가장 가까운 사랑이 부모의 사랑이다. 부모는 내 존재의 출발점이기에 부모님을 섬기는 삶은 하나님을 섬기는 삶의 기초 훈련 과목과도 같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과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동떨어진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부모도 사랑하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는 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라고 했다(엡 6:2). 십계명 중 실제적인 복이 약속된 첫 번째 계명이란 뜻이다. 추상적인 복이 아닌 실제적인 복을 원하면 효도는 필수적인 것이다.
사람이 철든 2대 징표가 있다. ‘받을 생각보다 줄 생각을 더 하는 것’과 ‘부모의 큰 사랑을 깨닫고 보답하려는 것’이다. 사람이 철들기가 참 어렵다. 어떤 사람은 죽을 때까지도 철들지 않고 많은 사람이 뒤늦게 철든다. 그러나 철들면 이미 부모는 기억력이 없거나 이 세상에 없을 때가 많기에 제대로 효도하기기 쉽지 않다. 내가 바르게 크기까지 부모의 희생적인 사랑의 우물은 마르지 않았다. 너무 힘들 때는 겉으로 말라보였지만 깊은 곳에서는 여전히 넘쳐흘렀다. 그 넓고 깊은 사랑을 외면하지 말라.
부모의 사랑은 포기가 없었다. 자녀의 수많은 허물도 능히 덮고 작은 희망만 있어도 끝까지 기대를 잃지 않고 기도하며 기다렸다. 그런 부모에게 함부로 말하지 말고 최대한 존중해 말하라. 부모는 행여 자녀 마음을 상하게 할까봐 그동안 무수히 언행을 주의했다. 그처럼 자녀를 위해 무수한 고통을 감수한 부모를 위해 그만큼 큰 고통을 감수하는 자녀는 거의 없다. 그런 현실을 이해하고 수시로 자신을 일깨워 부모의 사랑에 힘써 보답하려고 하면 하나님도 기뻐하시고 그 하나님의 기쁨이 내게 복으로 나타날 것이다.
< 좋은 만남을 만들어가라 >
룻기의 해피엔딩을 보면 만남의 중요성을 새삼 느낀다. 좋은 만남은 행복과 축복의 원천도 되지만 능력의 원천도 된다. 그 만남을 통해 그동안 못했던 일을 할 수 있게 될 때도 많다. 그래서 사람들은 밖에서 좋은 만남을 열심히 찾지만 그 전에 해야 할 우선적인 일이 가족을 좋은 만남의 대상으로 만드는 것이다. 가정 내의 좋은 만남은 모든 좋은 만남의 뿌리와 같다. 좋은 가정 만들기에 일조하라. 가정환경이 좋으면 좋지만 사실상 가정환경보다 더 중요한 것은 좋은 가족이 되려는 내 의지다.
좋은 부모를 만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효도해서 부모와의 만남을 좋게 만들어가는 것은 더 중요하다. 받은 상처에 너무 몰입하지 말라. 사람은 ‘받은 상처’는 잘 기억해도 ‘준 상처’는 잘 기억하지 못한다. 받은 상처를 오래 기억하고 거기에 집착해 사는 것은 남에게 준 상처는 생각하지 않고 자기감정에만 치우쳐 사는 모습일 때가 있다. 내가 받은 상처를 잘 잊어야 남에게 준 상처를 하나님이 잘 잊어주시고 내일의 좋은 만남도 허락하신다.
특히 가장 잘 잊어야 할 상처는 부모로부터 받았다고 생각하는 상처다. 자신은 부모에게 상처를 주지 않았겠는가? 부모로부터 받은 상처를 잘 잊으라. 그때 내 자녀에게 그 상처를 전수하지 않게 된다. 반면에 부모로부터 받은 상처를 잊지 않으면 자기도 모르게 자녀에게 비슷한 상처를 물려줄 때가 많다. 상처의 악순환과 대물림이다. 부모로부터 받은 상처를 잘 잊고 끊어낼 줄 아는 것은 큰 효도이면서 큰 복의 원천 중 하나다. 그때부터 부모와의 만남이 좋은 만남으로 형성되기 시작한다.
가장 복된 만남은 역시 하나님과의 만남이다. 룻은 가난한 이방 과부 여인이었지만 하나님을 만남으로 횡재했다. 아무리 처참하게 무너진 인생도 하나님을 만나면 소망이 있고 하나님을 붙잡으면 다시 일어설 수 있다. 그처럼 하나님을 만나 하나님의 손길에 붙잡히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룻처럼 하면 된다. 룻은 고향과 가족과 원래 가졌던 모압 신앙을 포기했다. 또한 재혼과 물질을 포기했고 앞날의 창창한 인생을 포기했다. 그런 룻에게 하나님은 가장 복된 재혼을 허락하셨다. 하나님은 하나님 때문에 포기하면 그 포기한 것보다 훨씬 더 큰 것을 주신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만남을 좋은 만남으로 만들어가라. 좋은 사람을 만났으면 꼭 붙잡고 섬기라. 그가 내 틀에 맞는 완벽한 존재가 되길 바라지 말고 그저 그의 기쁨이 되어주려고 하라. 사람 중에서는 어느 누구보다 부모를 꼭 붙잡아 섬기라. 더 나아가서 하나님과 말씀을 꼭 붙잡고 교회를 꼭 붙잡아 섬김으로 멋진 역전 인생을 만들어가라. 절망적인 상황에 처했어도 하나님을 인생의 결론으로 알고 꼭 붙잡고 살면 얼마든지 역전 인생의 길은 열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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