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님의 인도를 받는 길 (요한복음 16장 12-15절) 1. 철저히 포기하라
성령의 인도를 받기 위해 기초적으로 필요한 것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훈련된 영적 감각을 갖추는 것이다. 그 영적 감각은 성경을 가까이할수록 좋아진다. 특히 하나님의 뜻을 잘 분별하려면 자아를 포기할 줄 알아야 한다. 자아를 포기할 때 성령님은 더욱 세심하게 그의 앞날을 인도하신다.
‘자아의 포기’는 ‘욕심의 포기’와 같은 말이다. 예수님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고 했다. 두 가지 선택의 길이 있을 때 선한 길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잘 안 찾고 인기가 없는 길은 대개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이다. 특히 역풍이 불고 내가 간절히 원하는 길이 다 막혀서 하나님의 길을 이해할 수 없을 때 더욱 자아를 포기하라. 그때 위대한 인물의 길로 들어서는 중요한 전기를 맞이한다.
어느 날 부유한 포목상 아들인 프랜시스가 “내 교회를 새롭게 하라.”는 성령님의 음성을 듣고 가진 돈을 교회 수리에 다 썼다. 아버지는 아들이 돈을 분별없이 쓰는 것으로 여기고 주교 앞으로 데려가 부자관계의 청산을 선언했다. 돈을 되찾고도 싶고 아들에게 경각심도 주기 위해서였다. 그때 아들이 갑자기 입은 옷을 벗어 아버지 발 앞에 내려놓자 주교가 자기 망토를 벗어 프란체스코의 알몸을 덮어주었다. 그때 프랜시스는 알몸이 되면서 옛 세상과 단절하고 성자의 길로 들어섰다. 자기 포기는 위대한 인물의 길로 들어서게 하는 핵심 요소다.
2. 철저히 순종하라
자아를 포기한 후에는 하나님의 뜻에 철저히 순종해야 한다. 최선의 순종이 없으면 성령님의 인도는 의미가 없게 된다. 성경을 관통하는 가장 분명한 메시지는 “순종이 있을 때 축복이 있다.”는 것이다. 왜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되었는가? 순종하기 어려울 때 순종했기 때문이다. 현대인에게 왜 기적적인 믿음의 역사가 적은가? 하나님의 뜻에 철저히 순종하는 믿음이 약해졌기 때문이다. 현대인을 가장 순종하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가? 돈이다.
서양 속담에 “돈이 말한다(Money talks).”는 속담이 있다. 동양 속담에도 “돈은 귀신도 움직인다.”는 속담이 있다. 사람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성령님은 움직일 수 없다. 사도행전 8장에 나오는 사마리아의 시몬은 성령을 통해 놀라운 역사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감탄해서 사도들에게 돈을 주며 그런 능력을 사려고 했다. 그때 베드로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으로 사려고 했기에 돈과 함께 망할 것이라고 무섭게 질책했다. 사랑의 사도지만 때로는 엄중한 공의로운 모습을 나타낼 필요도 있다.
베드로의 질책은 “돈이 다가 아니다.”라는 질책이다. 돈은 매력적인 것으로서 자신감과 키워주고 많은 것을 부리고 누리게 만든다. 돈이 많으면 사람들도 많이 다가와 외로움이 덜어지는 것 같다. 그러나 진실한 사람이 다가오는 것은 덜해서 오히려 더 외로워질 수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돈의 힘에 고개를 숙이고 돈의 뜻에 움직이지만 성도는 하나님의 뜻에 움직여야 한다. 성령님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사람에게 오셔서 가장 합당한 길로 인도하신다.
3. 철저히 신뢰하라
순종 후에는 철저히 하나님의 인도를 신뢰하라. 하나님의 뜻에 철저히 순종해도 위기상황은 닥치지만 그때도 “이번 위기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선한 뜻이 있다.”라고 믿으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생을 각오한 선한 결심을 하고 애굽을 떠나자 바로가 군사를 몰고 좇아왔다. 선한 결심으로 큰 위기가 닥쳤지만 결국 이스라엘 백성이 끝장나지 않고 애굽 군대가 끝장났다. 그처럼 선한 결심을 하고 새 출발을 할 때 더 큰 위기를 만날 수 있지만 그때 믿음을 잃지 않으면 내가 끝장나지 않고 위기가 끝장난다.
성령님의 뜻대로 살면 고난과 위기 중에도 망하지 않는다. 위기가 와도 이제까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왔고 앞으로도 계속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로 작정하면 그때 사탄과 문제는 사라진다. 왜 세상이 불행하게 느껴지는가? 대개 사람에 대한 신뢰 상실 때문이다. 신뢰할만한 사람을 만나는 것은 행복의 중요한 요소다. 그처럼 사람도 신뢰해야 하지만 하나님은 더욱 신뢰해야 인생의 행복을 위한 기본 바닥이 다져진다.
때로는 대책 없을 정도로 순종하는 것도 필요하다. 물론 그것을 몰상식한 순종으로 오해해서 영혼과 인생과 시간과 물질과 가정을 다 잃는 우를 범하면 안 된다. 상식을 초월하는 것이 비상식과 몰상식은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지혜와 희생의 십자가를 토대로 하나님의 뜻에 대해 철저히 신뢰하는 삶을 훈련하라. 잘 이해되지 않아도 나보다 나를 더 아시고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철저히 신뢰하면 성령님이 마음의 평안을 주시고 최상의 길로 인도하신다. 성경은 여호와를 의뢰하는 것이 힘이라고 했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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