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십보다 마더십이 중요하다 (요한복음 21장 12절) < 용서가 없으면 사랑도 없다 >
요한복음 21장을 보면 요란한 큰 소리는 없어도 조용한 중에 곳곳에 펼쳐진 주님의 사랑의 그물은 빈틈이 없다. 주님의 어느 행동, 어느 말씀을 봐도 제자들을 향한 따뜻한 사랑이 읽힌다. 베드로가 어색한 상황을 모면하려고 딴청하며 잡은 고기를 다 세자 큰 고기가 153마리였다. 그 일이 끝나자 더 이상 딴청 부릴 것이 없었다. 다른 제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베드로가 고기를 셀 때 숯불에서 불을 쬐거나 옷을 말리는 척 했을지 모른다. 그런 어색한 상황에서 주님이 말씀했다. “와서 조반을 먹으라.”
얼마나 다정다감하신 말씀인가? 그 한 마디 말씀에는 제자들을 향한 사랑과 용서와 위로가 다 들어 있었다. 경상도 말로 하면 “밥 묵자.”라는 말인데 그 무뚝뚝한 말에는 “너를 사랑한다. 너를 용납한다.”는 뜻이 있다. 함께 하는 식사에는 깊은 의미가 있다. 그런 식사가 없으면 인간관계도 잘 깊어지지 않는다. 식사를 함께 하는 것에는 “당신과 친하고 싶다. 당신을 좋아한다. 당신을 용납한다.”는 뜻이 있다.
본문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와서 조반 먹어.”라고 하신 것은 “너희를 여전히 사랑한다. 너희 잘못을 다 용서했다.”는 뜻이다. 용서를 실천하라. 정의와 공평에 대한 신념이 투철한 사람은 대개 용서를 잘 못한다. 용서 자체가 너무 불공평하기 때문이다. 용서는 원래 사리에 맞지 않다. 사리를 따지면 용서할 수 없다. 용서는 이해도 아니다. 이해하고 용서하는 것은 진짜 용서가 아니다.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것을 용납하고 큰 어려움과 실망을 시킨 사람도 용납하고 사랑하는 것이 용서다. 예수님은 그렇게 용서하셨다.
용서를 절대 못하겠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고갈되고 은혜의 연료가 바닥났다는 증거다. 용서하지 않는다는 것은 지금 은혜가 없다는 말도 되고 앞으로 받을 은혜가 없다는 말도 된다. 불행한 일이다. 용서하지 않으면 불행의 열매가 고스란히 내게 돌아온다. 용서는 본능적으로 힘들지만 하나님의 큰 용서를 생각하면 용서할 수 있다. 하나님이 지옥의 자식을 천국 자녀로 삼아주신 사실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면 용서가 힘든 것만은 아니다.
온전한 믿음은 불가능한 용서도 가능하게 만든다. 용서하면 마음이 편해진다. 행복과 평안은 용서하는 사람의 것이다. 용서의 영성이 흐를 때 사람은 가장 활력과 희망이 넘치고 가장 사는 맛이 나게 된다. 그 사실을 알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와서 조반 먹어.”라고 말씀하시며 용서의 자리로 초청하셨다.
< 리더십보다 마더십이 중요하다 >
“와서 조반을 먹으라.”는 예수님 말씀에는 사명을 주실 때 먼저 내면을 채워주시려는 마음이 잘 나타나 있다. 그 마음이 참 목자의 마음이다. 참 목자의 1차적 관심은 ‘먹을 것을 주는 것’에 있어야 한다. 어떤 사람은 목회자는 대접만 받아야 되는 줄 안다. 식당에 가면 제일 안 내는 사람 3순위가 세무서장, 2순위가 경찰서장, 그리고 1순위가 목회자라고 한다. 그러나 목회자도 내는 재미를 누려야 한다. 내는 재미처럼 재미있는 것은 없다. 마이너스 통장 생활을 해도 낼 때는 내는 것이 아름답다.
한 청년이 믿음이 깊어지면서 가진 돈을 대부분 교회를 위해 쓰고 교회 식구를 대접하는 데 썼다. 그때 내는 재미를 알았다. 나중에 목회자가 된 후에는 대접을 많이 받는 편인데도 여전히 최선을 다해 내려고 했다. 내는 즐거움처럼 기쁜 즐거움은 없기 때문이다. 그 즐거움을 스스로 박탈하지 말라. 대접받는 기쁨도 크지만 대접하는 기쁨은 더 크다. 남을 먹이고 대접하는 것처럼 행복한 일은 없다. 목회의 제일 초점은 “어떻게 하면 성도를 잘 먹일까?”에 있어야 한다. 잘 먹이고 나서 사명을 주어야 한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사명을 일깨우실 때도 조반 먹은 후에 하셨다. 사명을 위해 일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나님 앞에서 잘 먹는 것도 중요하다. 요새 성도들은 고생이 많다. 요새 목사 노릇 하기 힘들다는 말이 많지만 어떻게 보면 성도 노릇 하기도 힘들다. 세상에서 6일간 열심히 일하다 주일에는 교회에 와서 대가를 조금도 바라지 않고 헌금까지 하면서 일한다. 그런 헌신적인 성도를 보면 자연히 “어떻게 말씀을 잘 먹일까?”에 제일 관심을 가지게 된다.
성공학에서는 사명을 잘 맡기는 목회자의 리더십(leadership)을 중시하지만 하나님은 목회자의 밥 짓는 마더십(mothership)을 더 중시하신다. 사명만 강조해서 생긴 사명은 가짜가 되기 쉽다. 밥 잘 먹고 그 사랑의 식사에 감격해서 생기는 사명이 진짜다. 세상적인 성공 리더십은 일을 조직적으로 잘 시키는 것에 관심이 많지만 교회는 밥 잘 먹이는 일에 가장 관심을 둔다. 밥을 잘 먹고 영혼이 풍성해질 때 사명의 열매도 많이 맺힌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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