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손이 오히려 축복이다 (요한복음 21장 4절)
< 새벽의 승리자가 되라 >
제자들은 소중한 사명과 비전을 버리고 물고기를 잡으러 갔다. 그때 신기하게도 능숙한 어부들이 밤새 고기를 한 마리도 못 잡았다. 그것도 기적이다. 사실상 하나님의 자녀의 실패는 기적이다. 기대가 무너진 상태에서 밤새 고기를 한 마리도 못 잡았으니 얼마나 그 마음이 허탈했겠는가? 그런 허탈함도 필요하다. 그래야 동트는 새벽에 예수님을 만날 수 있다.
아무 소득 없이 제자들은 새벽을 맞았다. 새벽 시간은 어둠이 물러가고 새날이 시작되는 신비한 시간이다. 무엇보다 신비한 하나님의 은혜가 내려지는 시간이다. 새벽 시간은 하루 24시간 중 사람이 가장 깨끗해지는 시간이고 첫 열매를 원하시는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시간이다. 한 사람이 보내는 새벽 시간은 그의 사람됨과 성품과 장래를 잘 보여준다. 새벽 시간을 잘 보내면 하루를 훨씬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된다. 큰 인물 중 잠이 많은 사람은 별로 없다.
새벽 시간의 승리자가 하루를 승리하고 그 승리들이 쌓여 인생 전체의 승부에서도 승리한다. 특히 새벽 시간을 잠자는 시간이 아닌 기도 시간으로 만들면 큰 복이다. 새벽에 말씀 묵상 후 간절히 기도하며 “하나님! 오늘도 아무 사고 없이 지켜주세요.”라고 기도를 마치면 마음이 든든해지고 넉넉해진다. 새벽 시간을 잘 활용하면 영혼의 각종 어둠이 물러간다. 그때 어두운 마음과 생각이 물러가고 가정과 영혼의 걱정 근심도 물러가고 예수님을 가장 깊은 차원에서 만나게 된다.
예수님은 아무 것도 얻지 못한 빈손의 제자들을 새벽에 찾아주셨다(4절). 그것이 예수님의 속성이다. 사람들은 풍요한 사람은 찾고 부족한 사람은 멀리하지만 예수님은 풍요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멀리하고 부족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가까이 하신다. 세상은 힘을 정의로 보지만 주님은 사랑을 정의로 본다. 주님은 내가 잘 나가 마음이 높아지면 더 이상 은혜로 함께 하지 않지만 내가 부족한 줄 알면 은혜로 함께 하신다.
사람이 힘이 있을 때는 별로 관심이 없다가 힘이 없을 때는 따뜻한 사랑을 가지고 급히 찾아오신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신앙이 부족하고 신앙생활이 부끄러우면 하나님이 나를 멀리할 것 같지만 그때도 하나님은 여전히 내 곁에 계신다. 내가 여러 번 실패해도 하나님은 결코 내 사명을 빼앗아가지 않으신다. 오히려 그때 나를 찾아와 주시고 다시 안아주시고 사명을 주신다. 그런 의미에서 빈손이 오히려 축복이다.
< 빈손이 오히려 축복이다 >
본문 4절을 묵상하면 예수님은 어디 가셨다가 새벽에 찾아오신 것이 아니라 그 전에도 계속 지켜보셨다. 그러나 제자들이 그때는 예수님이 계신 줄 몰랐다. 자기 힘으로 열심히 고기를 잡아보려고 할 때는 주님이 보이지 않았지만 고기가 안 잡히고 자기 연민에 빠져 있을 때 예수님은 나타나셨다. 혼자 열심히 살려고 몸부림 칠 때는 주님이 잘 보이지 않지만 고기도 안 잡히고 낙심되고 내 힘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을 느낄 때 주님이 보인다.
술 먹고 젓가락 두드릴 때는 주님은 보이지 않지만 술이 깨서 허탈함을 느낄 때쯤 주님이 보인다. 노름을 열심히 할 때에는 주님은 보이지 않는다. 새벽 1-2시까지는 주님 없이도 돈을 따는 것 같지만 새벽 5시쯤 되면 자신이 빈털터리임을 깨닫고 고백하게 된다. “하나님!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저는 길이 없습니다.” 바로 그때 주님이 보이고 주님의 음성이 뚜렷하게 들린다. 그런 의미에서 가끔 빈손이 되는 것도 오히려 축복이다.
빈손도 축복이다. 빈손일 때 절망하지 말라. 하나님이 한쪽 문을 닫으면 다른 쪽 문을 열어주신다. 실패와 빈손은 정지 신호가 아니라 방향 전환 신호다. 그때 방향을 주님 중심적으로 잘 바꾸면 오히려 그때부터 훨씬 복된 인생이 펼쳐진다. 실패는 주님을 바라보라는 표지판이다. 실패해도 주님을 바라보면 그것은 실패가 아니고 성공이다. 반면에 성공해도 자기 의를 드러내면 그것은 실패이다.
간증도 조심하라. 잘못하면 간증이 자기를 높이는 수단으로 전락된다. 물론 처음의 간증은 순수했다. 그러다가 유명해지고 강사비도 두둑이 생기면서 직장과 일을 그만두고 전문 간증집회 강사로 나서면 재미있는 말, 환상적인 얘기, 모험적인 무용담이 더해지면서 결국 자기를 높일 수 있기에 조심해야 한다. 옛날에 극적인 변화 얘기를 가진 한분이 처음에는 간증을 많이 다니다가 나중에는 간증을 다니지 않겠다고 했다. 처음에는 순수했는데 간증하다 보니까 자꾸 자기 의가 드러나고 조금씩 무용담이 첨가되는 것 같아 간증집회를 사양한 것이다.
내가 잘나서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 때문에 사는 것이다. 세상살이가 다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다. 때로는 힘든 때도 있지만 그때 빈손으로 주님을 더욱 붙잡고 이해되지 않아도 그 일을 통해 주어질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기대를 포기하지 말라. 하나님은 나의 실패와 고통과 낙심과 좌절의 순간을 통해 가장 깊은 차원에서 만나주시고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하신다. 중요한 것은 ‘실패의 이해’보다 ‘실패 중에 하나님께 보여드리는 내 믿음’이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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